판타지 세계의 초월자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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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8.19 23: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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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28 19: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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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화

DUMMY

탈레스는 강가에서 거의 반나절을 보냈다.

청량하고 상쾌한, 아주 즐거운 목욕이었다.

이 세계에 오고 가장 하고 싶었던 그것.

물에 몸을 푹 담그고 곳곳을 씻는 것.


“하하하! 이 세계에 오고 제일 맘에 든다. 후아. 사우나도 하고 싶은데.”


온탕이랑 사우나가 없는 건 조금 아쉬웠지만, 제법 만족스러운 시간이었다.

이 세계에 오고 나서 제일 즐거운 순간을 꼽으라면 지금을 선택할 만큼.

탈레스는 빨래를 마치고 나서 나무 몇 개를 부러뜨려 건조대 만들어 옷을 말렸다.

그리곤 적당한 돌을 내리쳐서 튀는 불꽃을 이용해 모닥불을 만들었고.

부싯돌이 없는 것 따위, 완력과 지구력으로 해결할 수 있었다.


“딘 그놈 물건이긴 해. 사람만 좋았더라면 따라다니며 많이 배웠을 텐데.”


탈레스는 이제 평생 마음을 알 길이 없어진, 다신 볼 수 없는 딘을 떠올리며 그가 만들던 야영지 방식, 그것 그대로 차리고 잠이 들었다.

아무런 근심 걱정 없이, 그냥 잠드는, 아주 오랜만의 휴식이었다.

물론 그리 길게 가진 못했지만.


“요즘엔 돈이 그냥 굴러다닌다니까.”

“흐흐. 덩치도 큰 것이 이놈 꽤 받을 수 있겠어.”


탈레스는 자기 목을 찌르는 따끔한 느낌에 눈을 떴다.

아직 밤하늘의 별이 총총히 떠 있고, 자기가 피운 모닥불이 꺼지지도 않았건만.


“역시 이 세계는 좆같은 곳이야.”


탈레스는 혼자 중얼거렸다.

자신을 둘러싼 시커먼 남자들에게 눈길도 주지 않은 채.


“이 새끼. 혼자 다니는 놈답게 겁은 없네. 너, 지금 네가 처한 상황을 알긴 하냐?”

“너, 지금 납치된 거야.”


탈레스에게 걸린 가시 목줄을 잡은 자가 킬킬거리며 말했다.

다른 놈들은 옆에 있던 가방을 뒤지며 크게 웃었고.


“이 시발! 이 새끼. 돈 존나 많은데. 그린 가든에 사라졌다던 그놈인가?”

“야. 이 금화 봐. 시발. 인생 폈다.”


놈들은 누리의 여행용 가방에서 나온 물건을 놓고 환호했다.

그리곤 어떻게 나눌지 의논하기 시작했다.

누리는 그저, 아주 차가운 눈으로 그들을 바라보았고.


“야. 우리 그냥 쨀까? 이 돈이면...”

“그래. 밤마다 돌아다니며 이것도 할 짓이 아냐.”

“미친 새끼들아. 브로디가 어떤 놈인지 벌써 잊었어?”


그들은 서로 말싸움을 벌이고 있었다.

목줄을 채우고 나름 나무로 만들어진, 아주 단단한 족쇄까지 찬 누리는 아예 던져두고서.


“너네 브로디 부하인가 본 데, 이쯤하고 사라져라. 돈은 원하는 만큼 줄게. 이거 풀고 빨리 꺼져.”


의욕은 없어 보였지만, 탈레스는 차갑게 말을 내뱉었다.

좆같은 세계니까 좆같게 사는 게 맞을까, 고민해 봤지만 역시 살인은 썩 내키지 않았다.

투기장에서 벌였던 의도적으로 저지른 첫 살인.

상대 공격에 놀라서가 아니라, 자기보다 약했던, 그 사람을 대상으로 자의적으로 행했던 처음의 그 짓.


탈레스는 그걸 잊지 못했다.

딘을 따라 로우힐을 돌아다니며 알게 된 사실이지만, 그때 그 깡마른 남자는 스스로 노예가 된 놈이었다.


‘동생들을 먹여 살리기 위해서였다고 했나. 밑에 딸린 식구만 다섯이랬지...’


탈레스는, 아니 누리는 씁쓸함을 삼키며 눈을 떨구었다.

죄책감.

사람은 너무나 손쉽게 죽었지만, 죽은 이가 남기고 간 복잡한 감정은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이 새끼. 교육 좀 해야겠는걸.”


누리의 지금 이런 마음을 아는 지, 모르는 지, 저들은 기분이 상했는지 우르르 몰려왔다.

각자 몽둥이 같은 걸 하나씩 들고서.


“후. 그래. 이 세상은 좆같은 거야. 받아들여야지.”


탈레스는 체념했다는 듯 말했다.

그리고 팔에 힘을 주었다.

족쇄는 힘없이 부서져 나갔다.

나무와 약간의 철을 섞어 만든, 인간 사냥꾼의 필수 도구, 노예를 묶을 때 쓰는 가시 목줄 역시.


“뭐, 뭐야. 저걸 맨손으로...”

“시발. 뭐해! 두들겨 패!”


여럿의 몽둥이가 누리에게 날아들었다.

탈레스는 왼발로 땅을 차, 오른쪽으로 뛰는 동시에 몸을 틀었고, 가장 오른편에 있던 놈의 몽둥이를 잡았다.

그리곤 그걸 들어, 휘둘렀다.

들고 있던 사람까지 같이.


부 – 웅


묵직한 파공음이 일며 남자 셋이 동시에 넘어졌다.

짧은 비명과 함께.


그리고 뒤이어 날아온 탈레스의 주먹은 멀뚱히 뒤에 서 있던 남자 둘의 머리를 차례로 박살 냈다.


퍽 -


둔탁한 소리와 함께 초원은 붉게 물들었고 머리가 사라진 시신 두 구가 바닥으로 넘어졌다.


“뭐, 뭐야. 괴...괴물이다!”


뼈가 부러진 건지, 셋은 피를 토하며 바닥을 뒹굴고, 두 명은 머리가 터져버렸다.

몇 초도 안 되는 사이, 아주 짧은 순간에 벌어진 일이었다.

그나마 몸이 멀쩡한 둘, 금화나 만지작거리던 놈들은 서둘러 달아났다.

들고 있던 모든 걸 내던진 채.


쉐 – 엑


탈레스가 꺼낸 무언가가, 공기를 가르는 소리, 그 소리가 도망가는 이들의 귀를 때렸다.

그것이 마지막이었다.

그들이 이 세상에서 들을 수 있던 소리는.


“살려...살려 줘. 난 브로디의 부하야. 날 죽이면 브로디가 가만있지 않을걸.”


뼈가 부러져 바닥에 뒹굴던 놈 하나가 다가오는 누리를 보며 말했다.

실낱같은 희망을 담아.


빠드득 -


뼈가 빠개지는 소리가 차례로 들려왔다.

갈비뼈가 나가 움직이지 못하던 그는, 브로디의 조직원이라 외친 그는, 몸이 굳은 채로 지켜보았다.

살아있던 동료들이, 그러니까 몽둥이 잡은 놈 포함해 총 넷이 있었는데, 그들의 머리가 탈레스의 발에 밟혀, 두개골이 박살 나고 찌그러져 죽어가는걸.


“우...우리 조직원은 백명도 넘는다고! 이봐, 돈, 돈 줄게.”

“난 딸과 아들이 있어. 내가 없으면...”


그놈의 말은 끝까지 이어지지 않았다.

말이 끝나기 전에 탈레스의 주먹이 날아들었고, 곧 머리 없는 시신 대열에 합류했으니까.


“좆같은 세상이지. 안 그래? 다시 태어나면 착하게 살아. 이런 짓 하지 말고.”


탈레스는 녀석의 옷으로 몸에 묻은 피를 닦아냈다.

자그마한 욕설과 함께.


“시발. 세탁하고 하루도 안 지나서 또 빨아야 하네.”


시신들에서 쓸만한 것, 그리고 널브러진 자기 물건을 챙긴 탈레스는 자리를 떴다.

피 냄새는 아무리 맡아도 친해지기 힘들었다.


“후. 루시드라고 했나. 거긴 좀 괜찮을까. 살인은 그만하고 싶은데.”


탈레스는 새로운 도시에 기대를 품고, 빠르게 멀어졌다.

굳건한, 탄성 있는 두 다리는 말이 달리는 것처럼 빠르게 앞으로 나아갔다.

강가를 따라 쭉 이어진 길은 한참이나 이어졌고, 탈레스는 새벽녘이 해가 한가운데 뜬 정오쯤 되어서야 멈추었다.


‘뭐 좀 먹고. 씻고. 이만하면 용의자로 지목당해도 찾기 힘들겠지.’


어차피 혈흔으로 찾는다는 등의 과학과는 거리가 먼 세상이다.

레인져니 뭐니, 병사 한 둘이 와도 산에서 쓱 – 하면 찾을 길도 없고.

브로디의 부하가 오면 더 손쉬울 테고.

추격이 쉽지 않겠단 확신이 들었을 때, 탈레스는 짐을 풀고 목욕과 빨래를 시작했다.


“언제 해도 좋아. 너무 좋다고!”


탈레스는 첨벙거리며 물의 촉감을 즐겼다.

공업이 발달 되지 않은 곳이라 그런지, 물은 바닥이 다 보일 정도로 투명하고 깨끗했다.

그곳에서 이름 모를 물고기 몇을 잡아 불에 굽는 한편, 빨래까지 무사히 끝냈다.


“이거 뭐지. 맛있네.”


언젠가 들은 적이 있다.

갓 잡은 생선은 진짜 맛있다고.

바다에서 얼려와 먹는, 네가 먹는 그 물고기들, 그건 비교가 안 된다고.

탈레스, 아니 지구에 살았던 누리는 그걸 지금 체감했다.


목욕과 수영하느라 배가 고픈 탓인지, 여기 물고기가 특별히 맛있는 건진 알 길이 없다.

확실한 건 조온나게 맛있었다.

민물고기라 그런지 잔가시가 많은 게 흠이긴 했지만.


“와씨. 고등어 같은 건 비교도 안 되는데. 이거 가지고 장사해도 되겠다.”


탈레스는 뼈를 살살 발라가며 마시듯이 구운 생선 살을 들이켰다.

깨끗한 식수로 물을 마시고, 또 새로 바꿔 담는 것도 잊지 않았고.

그렇게 목욕과 식사를 마치고 나서야, 다시 짐을 들어 발걸음을 옮겼다.


“지도 좆같네.”


안 그래도 초행길인데, 지도가 워낙 간략하게 그려져 있어 자기가 어디쯤인지 알아보기 쉽지 않았다.

분명 지도엔 물가를 건너는 다리가 있는데, 아무리 걸어도 보이지 않았으니까.


“씁. 일부러 길 잃을까 싶어 냇가로 걸은 건데.”

“그냥 수영해서 건너갈까, 물도 얕은데.”


길을 잃었단 불안감과 새로운 대책이 필요하단 생각이 엄습할 때쯤, 비릿한 냄새가 풍겨왔다.

익숙한, 아주 익숙한 피 냄새였다.

탈레스는 눈살을 찌푸렸다.


“여긴 살인이 아예 일상이구만.”


짜증 섞인 목소리와 같이 냄새의 근원지를 향했다.

또 인간 사냥꾼 새끼들이 있으면 쳐죽일 마음으로.

이곳에서 확실히 깨달은 건, 자기가 살인, 납치 같은 범죄들을 싫어한다는 것이었다.


“시발 새끼들아. 그대로 딱 멈춰라...아?”


크게 외치며 달리던 틸레스는 발과 함께 말도 멈췄다.

그가 바라본 풍경은 예상을 완전히 엇나가있었으니까.


탈레스의 눈엔 배가 찢기고 내장까지 뜯어먹힌 사슴이 한 마리, 그리고 그걸 냠냠 하는 중인 탈레스의 몸통만 한 얼굴을 가진 곰.

두뇌, 머리의 사고는 일시적으로 정지되었다.


“아...안녕? 아니, 저거 뭐야. 나 좆됐나?”


우워어어어어 -


곰의 거대한 울부짖음이 숲을 찢었다.

큰 나무 사이에 숨어있던 자그마한 새들과 다람쥐 같은 소형 동물들이 일제히 달아났다.

두툼한 발로 몸을 일으킨 곰은 척 보기에도 거대했다.

네 발로 서있을 때도 탈레스의 목까지 오는 키였는데, 일어서니 그 크기는 탈레스 키 따위, 비할 바가 아니었다.


‘시발. 존나 크네. 원래 곰이 큰 건가? 아니면 여기 곰이 미친 건가?’


탈레스는 자기가 곰의 키 반밖에 안 된다는 사실과 저 발바닥 크기가 놈의 머리통과 맞먹는 걸 금방 알아챌 수 있었다.

발바닥엔 날카로운 발톱이 달려있었고, 주변에 부러진 나무엔 저것과 비슷한 게 그어져 있었다.


“와. 시발.”


탈레스는 공포로 움직이지 않는 몸을 달래려 애쓰며 곰을 노려보았다.


‘시발. 시발. 시발. 곰 마주치면 등을 보이지 말랬나. 산 아래로 뛰랬었나. 아, 시발. 생존 관련 다큐나 도서 같은 거 좀 봐두는 건데.’


두근두근 -


떨리는 심장 소리가 귓가에 그대로 울렸다.

탈레스는 차분하게 발을 뒤로 조금씩 움직였다.

곰은 그대로 바라보면서.

문워크, 언젠가 티비에서 보았던 것을 자연스럽게 생존 기술로 사용하면서 말이다.


짙고 어두운 갈색에 두꺼운 피부를 지닌 곰은 식사를 방해받은 게 기분 나쁘다는 듯, 탈레스를 향해서 네 발로 힘차게 달리기 시작했다.

큰 나무가 우거져 있었지만, 그 곰에게 썩 의미가 있진 않았다.

저 큰 곰의 앞발로 죽하고 그어버리거나 몸통 박치기만으로 나무들이 부러져 나갔으니까.


“시발. 시발. 시발. 아니, 사람 사는 데가 가까운 거 아냐? 왜 저런 게 있어!!!”


누리는 문워크 따위는 바로 포기하고 마구 뛰기 시작했다.

분명, 싸움은 자신 있었다.

경험도 많고, 인간 사냥꾼 몇 정도야.


아니, 근데 저건 너무하지 않은가.

앞발 휘두르기 한 번에 저 굵은 나무를 박살 낼 수 있는 생명체라니.

힘이 달라도 너무 달랐다.


‘시발. 그레이도 저건 못 이기겠다. 아니, 이 세계는 도대체 어떻게 생겨 먹은 곳이야.’


물론 지구에서 실제 곰을 본 적이 없어 알 길은 없지만, 확실한 건 여기에서 생존이 자기가 살던 환경에 비하면 무지막지하게 척박한 건 맞았다.


“시발! 좆같다!”


탈레스는 비명을 지르며 마구 내달렸다.

방향이고 어디로 가는 길이고 나발이고 이제 모든 건 미지에 빠졌다.

탈레스는 거대한 숲, 깊은 숲 안으로 들어갔으니까.

자의가 아니긴 했지만.


탈레스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오로지 두근거리는 자기 심장 소리만 들으며 전력으로 내달렸다.

곰이 생각보다 너무 빨랐기에 더더욱 힘차게 뛰어야만 했다.


작가의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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