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녀 vs 마녀(150)
들썩이는 마교
세렌은 고개를 푹 숙이고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테츠는 그런 세렌을 보고 약간의 측은지심이 들었지만 바로 고개를 저었다.
세렌의 천살성은 확실히 누르지 않으면 안 된다. 그녀에게 성력까지 덧씌워 놓았다. 세렌을 통제하지 못하면 주신 제국 역사 이래 최고의 살인귀가 탄생할 테니까.
세렌의 조련하는 것은 오롯이 테츠의 몫이다.
"너는 팀을 이끄는 지휘자다. 그런 놈이 제 희열을 쫓아 팀을 버리다니···. 이번 출정은 다시 생각해봐야겠구나."
"스승님! 뭐라도 하겠습니다. 어떤 벌이라도 받겠습니다. 이번 출정에서 제외한다는 말씀만은 하지 말아 주십시오."
"이놈! 네 행동을 보면 부하들을 사지에 몰아넣고도 신경도 안 쓸 것처럼 보이는구나."
"제럴드."
중상을 당한 당주를 살피고 있던 사람은 다름 아닌 제럴드 일행이었다. 테드버드 장로의 부름을 받고 세렌이 움직이자 제럴드 일행도 급히 따라붙었다.
세렌이 있는 곳에는 언제든 제럴드 일행이 함께했다. 이들은 함께 무공을 연마했고 세렌은 더욱 강한 팀을 원했기에 제럴드 일행의 수행은 혹독했다. 물론 덕분에 무공의 진보는 타 당주와 비교해 월등한 성취를 이룰 수 있었다.
그런 상태에서 세렌이 성력을 힘까지 얻게 되자 힘의 격차는 더욱더 벌어졌다. 예전에는 어느 정도 자유대련이 되었지만, 지금은 대련 연습이 불가할 정도로 힘의 차이는 더 벌어졌다.
그에 따른 욕구불만은 팀의 불신을 가져왔다. 테츠가 만든 세렌의 팀은 마교에서 가장 출중한 팀이자 어떤 임무도 수행할 수 있는 만능 팀이었다.
무력의 세렌. 두뇌의 제럴드, 팀의 방패 브라이트, 길잡이 크림슨, 팀의 무력 담당 로이드, 추적술의 달인 바실. 이 다섯 명은 인커전을 넘어 시커의 영역에 접어든 상태였다.
그런데도 세렌은 오롯이 자신의 무공만 쫓았기에 팀에 완전히 융화되지 못했다. 테츠도 잘 알고 있던 사실이어서 이 부분에 대한 고민을 적지 않게 하고 있었다.
"교주님 어떤 지시라도?"
"별도의 명령이 있을 때까지 세렌의 바이올렛을 네가 보관해라."
"네?"
"그, 그것은."
세렌과 제럴드가 동시에 외쳤다. 세렌이 이 세상에서 가장 좋아하는 것 두 가지를 꼽으라면 바이올렛과 친우 아르펜 님버드다.
바이올렛은 자신의 분신이다. 그녀가 세상에서 끔찍할 정도로 싫어하는 것이 바이올렛을 다른 사람이 잡는 것이다.
심지어 날을 세울 때도 윌슨의 손에 맡기지 않고 자신이 직접 세울 정도였다.
그런 바이올렛이 타인의 손에 잡히는 것은 그녀의 자존감이 절대 허락지 못하는 것이다.
제럴드도 그것을 잘 알기에 매우 놀랐다.
"허! 내 앞에서 망설이는 거냐?"
그러나 두 사람도 절대 거역할 수 없는 사람이 있으니 교주의 명령은 절대적이다.
세렌은 한 치의 망설임 없이 바이올렛의 손잡이를 제럴드에게 내밀었다.
"그럼 교주님의 명이시니 바이올렛은 제가 보관하겠습니다."
제럴드는 일부러 검의 손잡이를 잡지 않고 검신을 양손으로 붙잡았다.
"세렌 명령이 있을 때까지 무기를 잡지 마라."
"명을 받듭니다."
"혹이라도 제럴드를 협박하여 바이올렛을 잡는다면 널 파문 시키겠다."
세렌의 온몸이 떨려왔다.
"그런 일은 없도록 하겠습니다."
테츠는 쓰러져 있는 당주들의 상태를 살피고 지혈을 했다. 다행히 생명에는 지장이 없어 보였다.
"제이미는 마녀의 정원으로 옮겨라."
테드버드가 제이미를 못 막을 정도는 아니었다. 문제는 제이미를 상처 없이 제압할 수 없었다. 그만큼 성력의 힘은 무서웠다.
다행히 세렌이 근처에서 수련했기에 즉시 사람을 보내 세렌을 불렀다. 제이미의 힘이 세렌의 힘과 같았기 때문에 그녀는 제이미를 제압할 수 있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세렌도 제이미를 제압하지 못했다. 테드버드는 할 수 없이 테츠를 찾을 수밖에 없었다.
테츠가 간과한 것은 제이미를 선정을 너무 얕게 봤다는 것이다.
제이미가 누구든가 이름도 제대로 생각나지 않는 시골 외딴곳 출신이다. 어쩌다 오렌시아와 엮이게 된 평범함이 그대로인 시골 청년이었다.
다만 기회를 잡을 줄 알고 또 그것을 이용할 줄 아는 약간의 야망이 있다는 것 그리고 운이 정말 좋은 녀석이라고만 생각했다.
시몰레이크 후작의 밑으로 들어가 군단장이 되기까지 물론 테츠의 도움이 알게 모르고 있었으나 운이 없었다면 그 자리에서 얼마 버티지도 못했을 것이다.
단지 운이라고 생각했던 것이 레베카의 말을 듣고는 매우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이 아이 말라키의 피가 흐르는 친구네요."
"그래? 출신성분치고는 너무 고귀한 피가 흐르는군. 어쩐지 성력을 버틴다고 했어."
"이것도 운명인 줄 모르겠네요. 어떻게 하실 생각이에요?"
"제이미는 마교에 가입했어. 마교인이니 버려둘 순 없지. 물론 제이미의 충성심도 시험대에 올라갈 거야. 그가 좋지 않은 선택을 하면 그만한 대가를 받겠지."
"사람 사는 곳은 어디라도 똑같군요. 시기와 질투는 집단에서 가장 조심해야 할 죄악의 덩어리죠. 안에서부터 썩기 시작하면 나중에는 알아도 도려내기가 힘들지도 모르죠."
"그래 그 사실은 누구보다도 내가 잘 알지. 세상에서 혼자인 것이 가장 편해. 하지만 내 신분에 그런 사치는 꿈도 꾸지 못 할 일이지. 어쩔수 없잖아. 상처가 커지기 전에 생살을 도려내야 한다면 망설이지 말아야지."
***
"네 녀석이 나를 속였느냐?"
"속이다니 섭섭한 말을···. 텔마에게 먼저 부탁을 받았을 뿐이야. 너를 죽여 달라고 말이지."
"텔마 그놈이 나를 죽이고 내 아내를 차지 위해서였나? 얼마를 받기로 했나? 그것에 곱을 해 주지 어때?"
사내는 이미 복부를 찔렸고 지혈을 하지 못해 피가 계속 흐르고 있었다. 그는 마지막 바람을 부여잡고 자신을 찌른 자와 협상을 하려 했다.
"아무리 그래도 앞으로 이 짓거리하기 위해서는 신용이 생명이라고."
"좋다. 내가 죽더라도 죽기 전에 의뢰하지."
"텔마를 죽여 달라고?"
"그렇다. 죽어도 그놈만은 용서할 수 없어."
"하하하, 그것참 안타까운 소리군."
뒤쪽 숲에서 한 인물이 걸어 나왔다. 그는 최소 남작 정도의 지위를 가진 듯 걸친 복장은 분명히 귀족의 복장이었다.
"텔마 이놈!"
"세상은 말이야. 기회를 먼저 잡은 사람에게 길을 열어 주는 법이거든. 내가 좀 더 빨랐을 뿐이야."
"내 아내가 그렇게 탐이 났나? 아이린은 네 녀석을 인정하지 않을 거다. 그녀가 나를 위해 복수해 줄 거다."
"후, 레번, 레번, 레번 이 미련한 친구야. 로드에 자네를 죽여 달라고 의뢰한 사람이 나인 줄 알지? 미안하게도 내가 아니야."
레번이라는 사내는 고통을 참으며 텔마를 노려보았다.
"네놈이 아니면 누구라는 말이냐? 그런 뻔한 거짓말을···. !!"
텔마의 뒤로 한 인물이 모습을 보였다. 전신을 덮은 긴 망토를 휘둘렀지만, 신체의 굴곡을 보면 여성이 분명했다.
주변이 어두웠지만 레번은 상대 얼굴의 윤곽을 확인하고 두 눈을 부릅떴다.
"이럴 수가, 아이린!"
그녀는 세상에서 가장 소중하게 생각하는 아내 아이린이었다.
"무, 무슨 일이! 어떻게 된 거야? 아이린?"
"어떻게 되긴 뭘 어떻게 돼? 자네를 죽여 달라고 의뢰한 사람이야. 아직도 눈치를 채지 못하고 있어?"
"그럴 일이 없다. 그녀가 무엇 때문에···."
아이린을 처음 발견한 것은 레번이었다. 그녀는 천한 신분이었지만 그 신분에 어울리지 않는 아름다움을 가진 여자였다.
잔버크 출신으로 그녀의 가족은 불행히도 오크의 습격으로 모두 사망했고 오크를 피해 도망치다가 노예상에게 붙잡혔고 그 길로 아칸의 노예 시장에 팔려 온 것이다.
우연히 그곳을 지나던 레번은 그녀를 발견하고 마침 시종이 필요했기에 거금을 주고 그녀를 사들였다.
레번은 한때 큰 상단을 운영했을 만큼 아칸에서 남다른 재산을 보유한 거상이었다. 오크의 난동으로 민심이 흉흉해져 상단을 처분하고 아칸 시장에서 가장 큰 상점을 내어 운영 중이었다.
돈으로 산 노예는 무슨 짓을 해도 법의 저촉을 받지 않았다. 돈으로 산 노예의 모든 것은 산자의 것이기 때문이다. 아칸에서 노예는 물건으로 취급되었다.
레번은 나이 55세였고 아이린의 나이는 18세였다.
레번에게 아이린은 노예였다. 그 순간 나이 차이는 아무런 의미가 없게 된다.
아이린은 무참히 짓밟혔고 레번을 위해 밤노예의 생활을 했다.
레번은 그녀를 무척 마음에 들어 했고 노예의 신분을 벗어나게 해 주었다.
결국 아이린은 레번의 애첩으로 들어갔다.
그러나 그런 아이린을 눈엣가시처럼 여기는 사람이 있으니 바로 레번의 본처와 그녀의 아들과 딸이었다.
이 세 명은 아이린을 사라지기를 바랐고 아이린은 그런 위협 속에서 살아갈 수밖에 없었다.
"이제 알겠어? 네놈의 비루한 몸뚱이를 느끼는 것도 한계가 있어."
"아이린 네가 어찌! 너를 노예의 신분에서 벗어나게 해 주었거늘."
"벗어나? 나는 영원히 너의 노예일 뿐이야."
"그래서 나를 죽이라고 사주했나? 직접 나를 죽이려고 여기까지 왔어?"
아이린은 품속에서 두루마리를 꺼내 레번 앞으로 던졌다.
"마지막으로 가는 길에 시원하게 하고 가. 네 유언서야. 서명을 부탁하지."
"크으, 내가 여기 서명할 거라고 기대하다니 웃길 일이군."
"물론 서명하지 않아도 돼. 나는 돌아가 헬로나와 일루리, 다커스는 죽일거야. 헬로나와 아들, 딸은 지하에 감금되어 있지."
"미, 미쳤구나. 그들까지 죽일 셈이냐?"
"네 하기에 달려 있지. 그 유언장에 서명하면 그 세 명의 목숨은 보전하기로 약속하지."
"유언장은?"
레번은 두루마리를 펴 보고 헛웃음을 지었다.
유언장의 내용은 자신의 모든 재산을 아이린에게 양도한다는 내용이 적혀 있었다.
"이걸 노린 거냐?"
"수많은 밤을 참고 견딘 대가다."
"내가 여우를 길렀군."
"시간이 없어. 빨리 결정해."
그때 텔마 곁에 서 있던 사내가 그 소리를 듣더니 검을 검집에 넣으면 말했다.
"레번이 텔마 자네를 죽여 달라는군."
그 말에 아이린이 발끈했다.
"그럴 필요 없어요. 유언장에 서명하면 그의 재산은 모두 제 것이에요. 그는 지급 능력이 없어요. 보너스를 원한다면 제가 두둑이 드리죠."
"그것참 반가운 소리군."
텔마는 허리에 찬 검을 뽑으며 레번의 목에 가져다 댔다.
"빨리 결정해라. 유언장에 서명하지 않으면 그 세 놈의 목숨은 보장하지 못한다. 만약 네가 서명하지 않아도 그 세 놈이 죽으면 자연스럽게 상속인은 아이린이 돼. 시간이 걸릴 뿐이지."
레번은 절망의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약속은 반드시 지켜라. 그 세 사람의 목숨은 반드시 살려 주어야 한다."
"걱정하지 말아요. 그 여자와 당신의 아들, 딸은 따로 살 곳을 마련해 주고 살 만큼 재산도 나눠 줄 거예요."
레번은 표독스럽게 그녀를 바라보다 유언장에 사인했다.
"약속은 지켜··· 크윽."
차가운 검이 레번의 심장에 박혔다. 텔마는 거침없이 그의 가슴에 검을 박았다.
레번이 힘없이 무너지자 텔마의 시선이 아이린을 향했다.
"진짜?"
"미쳤어요? 헬로나 그년은 내 손으로 가장 고통스럽게 죽일 거니까 걱정하지 마세요."
"크흐흐. 레번의 상점이 손에 들어왔으니 이제 경쟁 상대는 없어. 하하."
"어이, 어이. 두 분 보너스는 확실히 챙겨 주시는 거죠."
"흥, 시체나 잘 처리해요. 약속은 약속이니 돈은 확실히 지급할 거예요."
그녀는 두루마리를 주워 품에 집어넣었다.
"뭐야? 이건 무슨 소리지?"
숲속에서 무언가 움직이는 소리가 났는데 한두 마리가 아니었다.
"캭! 쥐 쥐예요."
수백, 수천 마리의 쥐 떼가 바닥을 가득 뒤덮으며 쏟아져 나왔다.
"젠장맞을 이것 들 다 뭐야?"
"캭! 캭! 어떻게 좀 해봐요."
바닥을 가득 덮은 쥐들은 금세 주변을 가득 메웠다.
"이런 더러운 것들이."
사내는 허리에서 검을 뽑아 달려드는 쥐 떼를 베었다. 하지만 그 수가 얼마나 많은지 가늠이 안 될 정도였다.
"제길 도망가자. 볼일 다 끝났으니."
"캭! 당신은 시체 처리를 확실히 해야죠."
"시체는 무슨 쥐 떼가 알아서 먹어 줄 거야. 난 볼일 끝···."
사내는 말을 잊지 못했다. 무언가 굵직한 것이 갑자기 자신의 목을 움켜쥐었기 때문이다.
"욱, 욱."
사내는 버둥버둥했다. 자신의 목을 감싼 것의 완력이 엄청났다.
"이, 이익! 크으으으윽"
-뿌드드득
듣기 거북한 소리가 나며 사내의 목이 완전히 옆으로 꺾였다. 그의 입안에서 혀가 축 늘어져 나왔다.
"으악! 텔마. 저. 저것!"
사내의 목을 부러뜨린 사람은 조금 전에 죽었던 레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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