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녀 vs 마녀(103)
맨시티 그리고 새로운 출발
천마수라검이 내공이 담긴 천마수라검과 리딩 후크가 부딪치자 발루아가 휘청했다.
테츠의 눈빛이 살짝 빛이 났다.
'성력을 전체적으로 끌어내지 못하네. 사용할 부위만 끌어 올리고 있어. 리딩 후크를 잡은 두 팔은 그냥 평범한 인간의 근력이군. 힘을 내는 성력은 무기에 올려 져 있어. 순간적이지만 틈이 있구나.'
테츠는 정확히 발루아의 약점을 아니 성력의 문제점을 찾아냈다. 성력을 온몸으로 감싸는 것으로 보이는 것은 어디까지나 신체와 관련 없이 성력을 방패처럼 사용하는 것뿐이다.
실제 몸의 근력은 잘 훈련된 기사 수준밖에 되지 않았다. 그러니 몸에서 뿜어지는 내공의 힘이 무기를 타고 내려가자 순간적으로 뒤로 밀린 것이다.
물론 순수히 내공만으로 칠무신을 상대하는 것은 힘들다. 하지만 성력과 내공을 겸비한다면 칠무신을 상대하지 못할 것도 없다는 결론이 나왔다.
찰나의 반응이었지만 발루아는 즉시 성력을 일으켜 세렌의 바이올렛을 막아냈다. 성력은 공격과 방어를 원하는 대로 교차하여 사용할 수 있다.
발루아는 어릴 때부터 성력을 자유자재로 가지고 제어했던 사람이다. 일촉즉발의 타이밍도 놓치지 않고 활용하는 데는 도가 튼 사람이다.
그에 비해 세렌은 아직도 성력을 완벽히 제어하지 못할뿐더러 제어 술식까지 몸에 새기고 있는 형편이다. 그런 세렌이 발루아를 상대로 감히 전투를 이어갈 수 있는 것은 내공과 무공이라는 무기가 뒷받침 됐기 때문이다.
테츠는 두 사람의 대결을 보며 중원에서 있었던 일이 떠올랐다. 지금에야 완전히 이곳 생활에 적응이 되었다. 환마귀혼대법의 치명적인 단점은 상대의 몸만 차지 하는 거로 끝나지 않고 상대의 생전 기억을 모두 공유하게 된다.
그래서 가장 좋은 방법이 외상없이 상대를 죽게 만들고 빈 몸을 차지하는 것이 환마귀혼대법의 정석으로 알려져 있다.
그는 딸 혁설향의 구지절음맥을 치유하고 대체자로 쓰기 위해 남아를 한 명 납치했다. 그 남아로 인해 무림 전체가 발칵 뒤집어졌다. 그가 훔친 남아가 현 무림의 지존이자 자신과 철천지 원한 관계에 있던 천설문의 검성 북당오의 손자였기 때문이다.
빙백삼으로 설향의 구지절음맥을 치료하고 안 되면 최후의 수단으로 환마귀혼대법으로 북당오의 손자 몸으로 설향을 옮기려는 계획이었다.
하지만 결정적인 순간에 북당오의 기습을 받았고 그가 깨어 났을 때는 보지도 들은 적도 없는 이상한 세상에 와 있었다. 그것도 황태자 테드의 몸에서 눈을 뜬 것이다.
분명한 것은 환마귀혼대법이 작용했고 테드의 기억은 모두 혁련광의 기억과 공유되었다.
혁련광이 아주 빠르게 이 세계에 녹아 들 수 있었던 것은 기억의 공유만이 아니었다. 테드의 성격도 자신과 섞여 버렸기 때문이었으며 잠시 생각없이 행동하면 자신이 혁련광인지 테드인지 모호할 때도 있었다.
그것은 또 하나의 비밀 때문이었는데 테드도 혁련광도 모르는 비밀이었다. 레베카에게 살짝 듣기는 했어도 자세한 내용은 성황에 직접 들으라고 레베카는 더는 말을 하지 않았다.
일황비 세르자비는 마녀다. 테일리아드 출신에 마녀면 얼마나 고초를 겪었을지 말하지 않아도 느낌이 전해올 지경이다. 그것도 테일리아드 왕실에서 마녀의 핏줄이 발현되었다는 것은 충격 그 자체였다.
평생 감금 생활을 해 오던 세르자비를 직접 데리고 나온 것이 성황 잉그람이다. 그때는 신성불가침 조약이 체결되기 전이었고 성황 잉그람은 용기사로 이름을 떨치던 때였다.
세르자비는 성황에 손에 이끌려 어반마르스로 왔고 순혈의 마녀 엘자임에 의해 진정한 마녀로 각성을 했다. 그녀는 힘은 대단했고 네크로맨서의 전쟁 때 모든 네크로맨서를 죄악이 가득한 땅, 죽음이 머무는 대지로 추방한 장본인이다.
세르자비 일황비는 성황이 구했고 엘자임을 스승으로 섬겼다. 마녀는 원칙적으로 마나를 모을 수 없다. 몸이 거부하기 때문이다. 마녀의 피를 가진 자는 오직 여성인 모계로만 유전되며 발현이 될 수도 안될 수도 있다. 마녀의 피를 가지고도 평생 모른 채 살다 죽을 수도 있다.
일단 발현이 되면 그 힘의 정도에 따라 미래를 예언한다든지 마녀의 권능을 부릴 수 있다. 대부분 사람이 무서워하는 것이 마녀의 힘을 발현한 여성들은 이것이 마녀의 힘인지 자각하지 못하고 통제하지 못해 사람들을 두려움에 빠트리게 하는 것이다.
이럴 때쯤이면 어김없이 위치 헌터들이 나타난다. 그들의 주요 임무는 마녀를 잡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즉결 처분하기 위해서다.
마녀와 마법사가 견원지간이 된 것은 오래전의 일이다. 수천 년을 내려오면서 마법사는 번창했지만, 마녀는 갈수록 쇠퇴했다.
마법사는 사람을 현혹하는 마녀의 주술을 달갑게 생각하지 않았다.
세렌의 공격이 더욱 날카롭게 변했고 무슨 생각에서인지 발루아는 방어 일변도로 세렌의 공세를 막아내고 있었다.
테츠는 됐다 싶어 이 둘의 싸움을 끝내려고 했다. 두 사람의 대결을 보면서 괜찮은 소득이 있었다.
멀리서 말발굽 소리가 들려왔다. 누군가 발루아와 세렌이 전투하는 소리를 듣고 이쪽으로 방향을 잡은 것 같았다.
테츠는 허공으로 치솟아 올라 달려오는 인물을 확인했다.
달려오는 상대도 테츠를 확인하고 말고삐를 돌려 방향을 틀었다.
"애시턴, 무슨 일이라도 난 거냐?"
"메흘린 군사로부터 급한 전갈입니다. 모우루니 협곡에 문제가 생긴 것 같습니다."
"모우루니 협곡?"
"로만 울프가가 잉겔리움 산지의 존재를 눈치채고 병력을 보낸 것 같습니다. 전서구가 날아온 날짜를 계산해 보면 로만 울프가에서 보낸 병력이 모우루니 협곡으로 들어섰을 것 같다는 메흘린 군사의 전언입니다."
"알겠다. 내가 직접 손을 쓰겠다."
잉겔리움 채석장에는 스톤 골렘이 경비를 서고 있고 일반 병력이 모우루니 협곡을 돌파하기는 쉽지 않은 일이다. 아니,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협곡의 구조상 아무리 대군이 몰려와도 협곡을 지날 수 있는 것은 소수의 인원뿐이다.
모우루니 협곡이 난공불락이라는 말이 달리 나온 것이 아니다. 아무리 많은 인원이 몰려도 결국 협곡을 통과할 수 있는 인원은 정해져 있고 그 좁은 길을 통화하는 동안 그곳에 서식하고 있는 몬스터의 공격을 감내해야 한다.
애초부터 그곳을 통과할 수 있는 사람은 전설의 사냥꾼과 같이 몬스터와 싸우지 않고 숨어서 조금씩 이동하는 수밖에 없다. 즉 들키지 않고 조용히 이동하는 수가 가장 좋은 수다.
무장한 병력이 협곡 앞에서 우왕좌왕하면 협곡 내 짐승을 오히려 흥분시킬 것이다.
테츠는 한참 싸움 중인 두 사람의 사이로 날아내렸다. 발루아와 세렌은 엄청난 암경을 느끼고 휘적거리며 뒤로 물러났다.
"그만하면 됐다."
발루아는 즉시 무기를 거뒀고 세렌도 깊은숨을 몰아쉬며 바이올렛을 검집에 넣었다.
"지금은 이 정도로 해 두자. 다들 이삿짐 나르느라 정신이 없는데 여기서 놀고 있을 수만은 없지 않으냐? 그리고 내 조만간 찾아뵙겠다고 전해라."
그 말에 발루아의 얼굴색이 환하게 펴졌다.
"그 말씀 그대로 성황께 전해도 될는지?"
"그래, 그렇게 해도 돼. 시련의 장에 무슨 오 년이나 걸렸는지 내 몸소 체험하러 간다고 전해라."
발루아는 좀처럼 보기 힘든 미소를 지으며 허리를 숙여 예를 취했다. 그리고 세렌을 보면 한마디 남겼다.
"지금 태자 전하 곁에는 너밖에 없으니 목숨을 걸고서라도 태자를 보필해야 한다."
세렌은 대답 대신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아, 그리고 다른 칠무신 놈들은 맨시티로 보내지 마라. 이건 부탁이 아니라 명령이다."
"알겠습니다. 그럼 소신은 먼저 말에 오릅니다."
발루아는 크게 점프하여 말이 풀을 뜯는 곳으로 정확히 날아내렸다.
"칠무신을 상대해본 소감이 어때?"
"부족함을 많이 절실히 느꼈습니다."
"다양성이 부족해. 너는 그를 충분히 궁지에 몰아넣을 수도 있어. 그런데 너는 마음에 든다는 그 이유 하나만으로 오직 천마수라검만 사용하지 않느냐? 파천수라장도 가르쳤고 다른 검법도 가르쳤거늘 넌 허구한 날 천마수라검뿐이냐?
"죄송합니다."
"어휴, 언제 죄송이라는 소리 안 듣고 살날이 올까. 따라와라. 갈 곳이 있다."
테츠는 맨시티로 돌아와 포탈에 몸을 올렸다.
밝은 빛이 가라앉고 테츠가 도착한 곳은 모우루니 협곡의 끝인 잉겔리움 채석장이었다.
테츠가 도착하자 채석장 관리자인 당주가 뛰쳐나왔다.
저 멀리 골렘은 한곳을 응시한 채 움직이지 않고 있었다. 다행히 아직 별일은 없는 것 같은 분위기다.
"교주님을 뵙습니다."
"연락을 받고 왔다."
"로만 울프가로 잉겔리움 소문이 들어간 것 같습니다. 메흘린 군사가 로만 울프의 테아칸 시티에 잠복시켜 놓은 정보원의 말로는 일단의 군사들이 모우루리 협곡으로 떠났다는 보고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사흘 전부터 골렘이 한 곳만 바라보고 움직이지 않고 있습니다."
테츠는 골렘이 왜 저러고 있는지 알 수 있었다. 자율제어식으로 설정한 골렘은 포탈이 아닌 협곡 아래서 올라오는 것들은 짐승이고 인간이고 간에 모두 적으로 인식하게 되어 있다.
골렘은 협곡에 도착한 인간을 이미 파악한 것이다.
잉겔리움 광산은 보호받아야 할 최고의 가치를 담고 있는 곳이다. 다행히 험지 중의 험지라 섣불리 접근이 어렵다는 것이 엄청난 이점이다.
하지만 잉겔리움은 마족이 노리는 가장 일 순위 목표가 될 수도 있다. 코발은 마족을 헤칠 수 있는 금속인 잉겔리움을 알아차리고 부하를 보내 윌슨 대장간을 노린 것만 봐도 이들이 바보가 아님을 알 수 있다.
만약 로만 울프가의 병력이 계속 껄떡거리다가 마족의 눈에 띄면 곤란해진다. 무엇보다 그들 중에는 하늘을 날 수 있는 마족이 있다. 마족에게 걸리면 협곡의 이점은 무용지물이다.
"이번 참에 확실히 해둬야겠군."
테츠는 협곡 아래로 내려갔다. 말하지 않아도 세렌이 그 뒤를 따랐다. 이곳에는 세렌의 팀은 데려오지 않았다. 금방 끝내고 돌아갈 참이었기 때문이다.
테츠는 다이어 울프를 뽑아내 협곡 사이 절벽의 위로 보냈다. 가장 맨 앞의 녀석에게 사령의 눈을 걸고 협곡 절벽에 난 길을 향해 달렸다.
왜 모우루니 협곡이 힘든지는 이 절벽 길 때문이라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성인 남자 한명이 겨우 어깨를 펴고 움직일 정도로 폭이 좁은 길이다. 아래는 천길만길 낭떠러지. 협곡 끝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유일하게 이 길뿐이다.
그러니 중무장을 하고 오를 수도 없다. 최대한 간편한 복장으로 올라야 하는데 앞에서 야생 짐승이라도 나타나거나 하면 치명적이다. 문제는 그뿐이 아니다. 이곳 하늘에는 거대한 독수리 서식지가 있다. 날개 길이만 해도 성인 남성 세 명이 팔을 펼친 길이와 같은 정도다. 놈들이 공격하면 진짜 난감해진다. 협곡이 좁아 활시위를 제대로 당길 수도 없고 방패도 없이 검으로는 단검과 같은 독수리의 발톱을 버틸 재간이 없다.
한참이나 아래로 뛰어 내려가니 아니나 다를까 수십 명의 기사가 막 협곡을 향해 오르는 모습이 보였다.
테츠의 다이어 울프는 네이쳐 포스로 소환한 정령체다. 기본적으로 야생동물은 네이처 포스로 소환한 정령은 공격하지 않는다. 오히려 다이어 울프는 야생동물과 소통할 수 있다.
원래 이곳의 주인을 일깨우면 되는 일이다. 다이어 울프가 움직이기 전에 이미 이곳의 주인인 회색늑대들은 협곡을 오르는 인간을 주시하고 있었다. 협곡 아래는 배고픈 야생동물이 널렸다. 그들은 절벽 위를 오르는 생명체가 떨어지기만 바란다.
회색늑대의 우두머리가 긴 하울링을 뿜어냈다. 그것을 습격을 알리는 전조였으며 죽음의 서막이었다.
다이어 울프의 덩치는 회색 늑대를 압도한다. 다이어 울프가 앞에 서자 회색 늑대가 그 뒤를 따랐다.
"후퇴! 후퇴해."
"미친!"
"여긴 오를 수 없는 곳이야."
"달려!"
"으아악"
긴 여운을 남기고 추락한 시체는 협곡 아래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다이어 울프는 기사의 어깨, 팔, 다리 심지어 검까지 물고 동반 추락했다.
"오르지 못한다. 여긴 안돼."
순식간에 십수 명이 떨어져 내리자 협곡을 오르던 병력은 미친 듯이 뒤돌아 움직였다. 하지만 오르는 것도 내려가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다.
일차로 협곡에 올랐던 병력은 깨끗이 전멸했다. 그 소식은 곧 협곡 아래 대기하던 부대로 이어졌다. 누가 소식을 전할 필요 없이 다이어 울프가 회색 늑대를 대동하고 협곡 아래 진을 치고 있던 부대를 습격했기 때문이다.
다이어 울프가 큰 하울링을 뿜어내자 주변에 있던 야생동물들이 한꺼번에 협곡 아래로 쏟아져 나왔다.
Comment ' 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