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녀 vs 마녀(151)
반석(磐石)
흉측하게 목이 꺾인 텔로드는 길게 혀를 빼물고 굳었다.
그 모습에 아이린은 입을 틀어막고 비명을 내질렀다.
"이, 미친놈이!"
텔마는 검을 뽑아 들고 레번에게 달려들었다. 검에는 조금 전 레번의 심장을 찌른 피가 아직 흘러내리고 있었다.
-휘익
레번은 축 늘어진 텔로드의 시체를 텔마에게 집어 던졌다.
"헛."
달려들던 텔마는 날아오는 텔로드를 피해 옆으로 뒹굴었다. 그가 막 고개를 들었을 때 눈 속으로 레번의 다리가 들어왔다. 신발이 심장에서 흘러내린 피로 붉게 물들어 있었다.
"레번! 난 자네를 죽일 생각이 없었어. 아이린 저··· 크악~"
텔마는 영혼이 빠져나가는 비명을 내질렀다.
위에서 아래로 떨어진 레번의 주먹이 등 뒤를 뚫고 심장을 박살 내 버린 것이다.
몇 번 부들부들 떨던 텔마는 축 늘어져 버렸다.
아이린은 경악과 공포에 질린 얼굴로 막 등에서 손을 뽑아내는 레번을 바라봤다.
온몸이 사시나무 떨듯이 떨리며 공포를 주체할 수 없었다.
"이, 이건 돌려 드릴게요."
그녀는 품 안에서 유언장 두루마리를 꺼내 레번 앞으로 던졌다.
-휘이익
레번은 대지를 나는 듯이 달려와 아이린의 목을 움켜잡았다.
"크으윽"
그녀의 눈동자는 흰자위를 들어내며 위로 말려 올라갔다.
-뿌드득
징그러운 소리와 함께 그녀의 목도 텔로드처럼 꺾여 버렸다.
레번은 할 일을 다 했다는 듯이 아이린을 던져 버렸다.
레번의 주위로 쥐 떼들이 새까맣게 모여들었다.
"제어는 할 수 있는 거죠?"
"어 괜찮아 이 정도면. 잠깐이지만 천마행공도 펼칠 수 있으니 소환식 그리는 것 정도는 문제없을 거야."
레번이 죽은 즉시 살려낸 것은 바로 테츠였다.
레베카는 싱싱한 재료를 원했고 주변을 순찰하던 까마귀의 눈에 마침 레번 일행이 걸려들었던 것이다.
쥐 떼 중에 테츠가 직접 만든 사령이 다수 섞여 있었다. 쥐에 걸린 사령을 죽은 레번의 몸에 심었다.
"뭐, 죽음에 대해 복수는 해 주었으니 몸을 좀 쓴다 해도 이해해 주겠지."
테츠는 침묵의 숲 가장 깊숙한 곳에 디멘션 포탈을 그렸다.
고된 작업이었다. 포탈의 진을 그려 내는 데 4시간이 걸렸다.
사령의 눈이 걸린 까마귀로 내려다보면서 전체 윤곽을 확인하고 다시 레번을 제어하여 소환진을 그리는 방식이었다.
"후아, 끝났다. 이걸로 아칸 시티로 가는 길이 열렸네."
"수고하셨어요. 그럼 일단 주위에 방어막을 쳐서 포탈의 기운이 밖에서 감지되는 것을 방지할 거예요. 하지만 이 정도 방어막은 온두라스 정도면 금방 눈치챌 것에요. 그가 이 근처로 오지 않기를 바랄 수밖에 없군요."
"이제 바빠질 거야. 한동안 볼 수 없을 것 같군."
"어디서 수련하시게요?"
"동탑만 한 곳이 있나? 아리스토틀에 갈 거야. 어쩌면 나는 그곳에서 계속 수련할지 몰라. 아칸에도 갈 수 없으니 그동안 도력을 더 닦아야겠어. 일전에 온두라스에서 흡수한 이상한 힘도 조사해 봐야겠고."
"음, 한동안 떨어져 있겠군요."
"그렇지, 그곳에 들어가면 외부와는 일체 연락을 할 수 없으니. 이참에 원하는 바를 이루지 않으면 그곳에서 나오지 않을 생각이야. 일단은 제이미부터 손을 보고 난 뒤 내 일을 해야 하니. 쩝. 참 메흘린에 연락을 부탁하지, 난 지금 제이미를 데리고 동탑으로 바로 갈 거야."
"알겠어요. 원하는 성과를 이루시길."
테츠는 제이미를 옆구리에 차고 동탑으로 향했다. 그즈음,
테드버드와 제자들은 알몸에 가까운 차림으로 수련장에 모두 집합했다.
제이미의 사건으로 테드버드는 몹시 흥분한 상태였다.
마교 내에서 그 누구보다 기사도를 중시하고 생명의 소중함을 강조하고 또 정의를 신봉하는 장로다.
그런데 시기와 질투에 눈먼 당주들로 인해 제이미의 폭주가 일어났으니.
뜬금없이 막내 당주로 들어온 것도 못마땅한데 그것도 아칸의 귀족. 심지어 부마다.
모든 것을 다 가진 사내.
제이미는 시작부터 삐걱거렸다.
더군다나 초보 정도로 생각했던 제이미의 무위가 하루하루 다르게 느는 것을 본 당주들은 더욱 질투 어린 감정에 사로잡혔다.
특히 교주의 명령이라고 한동안 테드버드는 제이미를 싸고돌았다.
온종일 제이미 옆에 붙어서 그를 지도했으며 제이미의 능력에 감탄사를 내질렀다.
당연히 당주들은 제이미를 곱게 볼수 없었다.
가르치는 사람 관점에서 하나를 가르치면 열을 알아듣는 제자가 있다면 그것만큼 가르치는 보람과 재미를 느끼는 일이 없을 것이다.
테드버드도 제이미를 가르치는 재미에 푹 빠져 다른 사람의 시선이 어떤지 느끼지 못했다.
결국 평가 대련에서 사달이 난 것이다.
테드버드는 치부를 가린 옷 한 장만 걸친 채 이 추위에 알몸으로 차가운 바위 위에 가부좌를 틀고 앉았다.
제자들은 안절부절못하지 못했다.
"너희들을 잘못 가르친 내 죄가 가장 크다."
라는 말을 한 뒤로 저렇게 앉아 몇 시간째 꿈쩍하지 않았다. 테드버드가 알몸으로 있었기에 제자들도 군소리 못 하고 모두 옷을 벗었다.
맨시티가 엠버스피어에 비해 나을 뿐이지 겨울은 겨울이다. 이 매서운 바람은 피부를 도려내는 것 같은 고통을 주었다.
제자들은 목소리를 높여 죄를 빌었으나 테드버드는 요지부동이었다.
그럴 수밖에 없는 이유는 따로 있었다.
테츠는 테드버드 휘하 당주들의 질투심에 크게 노했고 당연히 그 책임은 장로가 지는 것이 바르다는 결론에 테드버드에게 알몸으로 사흘을 버티라는 벌을 이미 내린 것이다.
곧 중요한 임무를 앞에 두고 있다. 그에 따른 기강 확립은 무엇보다 중요했다. 사실 그 이전부터 제자 간에 암묵적인 경쟁이 있긴 있었다.
앨빈 장로의 제자들은 대부분 성격이 급하고 화끈한 자들이 많아 제자들 간에 은근히 알력 싸움이 존재했었다.
테드버드 장로는 검법에 탁월했고 앨빈 장로는 장법과 경신이 좋았다. 그리고 각 제자는 각 장로의 색깔에 해당하는 옷을 입고 문장도 장로마다 달랐다.
그러니 같은 여관에서도 끼리끼리 모인다고 같은 색상의 옷을 입은 제자들끼리 모였고 만약 신생이 타 제자들에게 모욕을 당하면 반드시 보복이 이뤄졌다.
테츠는 이런 알력 싸움을 은근히 즐겼다. 그것은 같은 마교 내에서도 경쟁이 있어야 발전이 있다는 테츠만의 철학이 반영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그 선을 적절히 유지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 선을 넘기면 오늘과 같은 사태가 벌어진다.
테츠와 제이미가 동탑에 들어간 지 두 달이 지났다.
겨울은 정점을 넘겼고 눈이 오는 기간도 점점 벌어지기 시작했다.
메흘린은 여느 때처럼 매리엔이 끓여준 차를 음미하고 있었다.
"군사님 아리스토틀로부터 급한 전갈이 왔습니다."
"무슨 일이냐?"
문이 열리고 당주 한명이 공손한 걸음으로 작전회의실 안으로 들어왔다. 그의 손에는 작은 두루마리가 있었다.
메흘린은 두루마리를 펼쳐 들었다.
"음, 이제 슬슬 움직일 시간인가?"
그때 들어온 매리엔에 두루마리를 넘겼다.
매리엔은 두루마리를 읽고 고개를 끄덕였다.
"장로들을 소집하도록 할게요."
간만에 작전회의실이 북적북적했다.
"레베카님의 까마귀가 날았습니다. 이제 작전은 시작된 거나 마찬가지입니다."
"인원 편성에 변함은 없습니까?"
"이런 중요한 회의에 교주님은 어디에 계십니까?"
"안 보이는 분들은 어디에 있는 거요? 마교가 설립된 이래 가장 중요한 회의인 것을 그들은 모르는 것이오?"
목소리를 높이는 쪽은 역시 앨빈 장로다. 보이는 않는 사람은 아드리안경과 애시턴 그리고 성주 에미르슨 백작이다.
"하하, 그분들은 임무와는 상관없으니 제가 임의로 그들의 수련을 방해하지 않았습니다."
"어, 그런데 알프레드 장로는 왜 안 보이는 거요? 그도 임무와 상관없으니 빠진 거요?"
"알프레드 장로는 교주님의 비밀 임무를 수행 중입니다."
"어? 그런 소식은 들은 적이 없는데 테드버드 장로는 알고 있으셨소?"
"나도 처음 들어."
"알프레드 장로는 교주님이 동탑에 들기 전 비밀리에 다른 장소로 보내셨습니다."
"아니, 왜 그걸 모르고 있었지?"
"겨울 동안 수련에 임하시느라 주변 정세를 읽을 겨를이 없었던 겁니다. 중요한 임무를 눈앞에 두고 있었으니 수련에 집중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지 않습니까?"
"하긴 그날 이후로 수련장을 벗어난 적이 없긴 없었지."
"어머? 그래요? 저희는? 여자라고 밥하고 빨래하라고 하지는 않겠죠?"
실버팽의 눈썹에 쌍심지가 켜졌다.
이번 아칸의 임무에서 빠진 것에 대한 볼멘소리였다.
"당연한 것 아닙니까? 이번 임무는 개활지 전투가 아닙니다. 조용히 숨어 들어가는 임무에 기병대가 무슨···. 하. 궁수도 필요 없고 발이 무거운 타격대도 필요 없습니다. 타격대의 세실리아와 알프레드도 임무에서 빠집니다. 당연히 궁수인 루안도 마찬가지입니다. 다만 온두라스와 같은 사고가 또 발생할 수 있으니 맨시티를 방어하는 것에 소홀이 해서는 안 됩니다."
"임무에 출병하는 장로는 테드버드 장로와 앨빈 장로 두 분이십니다. 테드버드 장로는 교주님을 대신해 아칸에서 마교인의 총괄 지휘를 맡을 것이며 침묵의 숲과 아칸 시티내 안전 가옥까지의 노선을 확실히 확보하여야 합니다. 여차하면 언제든 모든 인원이 탈출로를 통해 탈출해야 하니 가장 중요한 임무입니다. 그와 동시에 마녀 에르제베트의 딸인 엘리제의 위치를 알아내고 신병을 확보해야 합니다. 이 임무에는 레베카님의 전폭적인 지원이 있을 겁니다."
"앨빈 장로는 반사르가의 비밀을 완전히 파헤쳐야 합니다. 이 임무에는 특별한 인원 두 명이 지원 할 겁니다. 제가 귀띔을 해드린 적이 있지만, 한때 밤의 자매단이었던 아가므네와 교주님께서 선정하신 인물을 보내 주신다고 하셨습니다."
"마지막으로 세렌 장로와 팀은 모든 것을 내성을 뚫는 것에 집중하십시오. 세렌 장로는 마교의 임무가 아닌 황제 잉그람이 직접 내린 명령을 수행해야 합니다. 이번 임무의 정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운명의 등불을 밝히는 데 희생이 따른다면 그 희생을 감수하고서라도 반드시 완수해야 할 임무입니다."
"오늘 장로들을 다 부른 이유는, 까마귀가 날았습니다. 준비하시라는 의미로 불렀습니다."
***
사흘 뒤 아칸 시티 외성에 한 마리의 까마귀가 모습을 보였다. 까마귀는 검은 보자기를 움켜쥐고 날고 있었다.
아칸 왕국 쪽으로 날아간 뒤 외성을 배회하던 까마귀는 쥐고 있던 검은 보자기를 떨어뜨렸다.
바닥으로 떨어진 보자기는 곧 주위를 순찰하던 왕국 경비대에 발견됐다.
경비는 무심한 눈길로 잠시 보자기를 내려다보다 코를 킁킁거리기 시작했다.
그는 다급히 보자기를 풀어 헤쳤다.
보자기 안에는 드래곤 형상을 한 마족의 잘린 머리가 들어 있었다.
그는 경악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머리통을 쥐고 달리기 시작했다.
하늘을 나는 까마귀는 그 모습을 지켜 보고 있었다.
테츠는 수련의 방에서 정신을 집중하고 까마귀를 쫓고 있었다. 까마귀는 생명이 없는 회색의 눈동자를 하고 있었다.
까마귀는 사령이었고 그 까마귀를 제어하는 사람은 테츠와 레베카였다.
마교는 어느 때 보다 긴장감이 팽배해졌다. 아드리안의 팀이 돌아와 메흘린과 합류했고 아드리안경은 매리엔으로부터 자신의 가족 소식을 들을 수 있었다.
메흘린은 뜻밖의 손님을 앞에 두고 있었다.
"모그룩이라고 했나? 교주님이 직접 가르쳤다니 믿어 의심치 않지만 다른 장로들이 이해할 수 있도록 약간의 테스트를 하고 싶네."
"문제가 될 것이 없습니다."
점심을 먹고 난 뒤 찾아온 손님은 180cm가 넘는 훤칠한 키에 매우 다부진 몸을 지닌 청년이었다. 인상은 조금 날카롭게 생겼으나 맑고 투지가 가득 담긴 눈빛을 하고 있었다. 무엇보다 그가 내민 편지는 교주가 직접 쓴 것이다.
"허, 교주님은 언제 이런 인재를 다 키우셨나?"
"그를 테스트 해 본다는 건 교주님에게 실례되는 행동이 아닌가?"
아드리안의 말에 메흘린은 편지를 넘겨주었다.
편지에는 모그룩의 신상 정보와 함께 장로들에게서 혹 말이 나온다면 그를 시험해봐도 좋다는 내용이 기술되어 있었다.
"출신이 어반마르스라고?"
"그렇습니다. 성군의 제삼 돌격대 소속이었습니다."
"성군이라면 기사들이 들어가고 싶어 안달인 단체가 아닌가? 성군에서 복무했다면 오를 수 있는 가장 높은 곳에 있었지 않았는가? 어찌해서 성군을 나온 것인가?"
"말씀드리기 부끄럽지만, 교주님께서도 비밀이 없어야 한다고 말씀하셨기에···. 실은 항명죄로 축출당했습니다."
"항명죄? 그거 좋지 못한 일인데···."
항명이란 상관의 명령에 반항하거나 복종하지 않은 죄다. 아래위 서열을 몹시 중요시하는 마교와 같은 단체에서는 가장 짓지 말아야 할 1순위의 죄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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