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녀 vs 마녀(144)
전투 후의 회의
혈풍에 돛이 갈가리 찢겼지만, 그 바람은 다른 맞바람을 맞아 상쇄되었다.
지금은 너무나 고요한 정적. 일시적이지만 평화가 내려앉았다.
군단은 마족과 처음으로 싸웠다. 그리고 마족의 무서움을 뼛속까지 아로새길 수 있었다.
군단은 무려 오만의 병력이었다. 마족은 단 이백 기. 오만대 이백이라는 말도 안 되는 전투가 벌어진 것도 사실이고 오만의 병력 중 수천이 이백에 의해 학살된 것도 사실이다.
이백의 숫자는 한계가 있었다. 이백이 살인을 해도 한계가 있다는 사실이다. 전투 성과를 논의 해 본 결과 마족 이백에 의해 죽은 숫자보다 아군의 메테오에 희생된 숫자가 더 많다는 황당한 결과를 보고 이 작전을 계획했던 얀샨 백작은 침통한 표정을 지었다.
물론 얀샨 백작의 계획은 아군의 피해를 최소화하는 것이었다.
여기서 퇴각 신호를 받았는데 제이미 백작이 즉시 반응하지 않았다. 그 덕분에 아군은 제때 퇴각하지 못하고 제이미 백작을 엄호할 수밖에 없었다.
계획은 퇴각 신호와 함께 참호로 빠져 후퇴해도 마족은 정면으로 목책을 부수고 전진해 왔기에 메테오를 정면으로 맞았을 것이다. 여기서 일차 패착이었다. 제이미 백작이 즉시 움직이지 않아 마족에게 틈을 벌어 준 것. 또 아군이 피할 시기를 놓쳐 버린 것.
두 번째 그놈 장군의 과도한 행동이었다. 아군이 휘말릴 것 같으면 어느 정도 메테오의 틈을 두었어야 했다. 아군이 휘말릴 것을 알면서도 심지어 마족이 없었던 목책의 앞부분까지 폭격한 것은 엄청난 작전 실수였다.
그놈 장군은 메테오가 떨어지는 것을 알면 마족은 뒤로 후퇴하기보다 오히려 앞으로 다가올 것으로 판단하고 미리 메테오를 전방에 떨군 것이다.
그놈 장군의 생각은 맞았지만 마족 한 명을 잡기 위해 희생된 아군의 수는 수백이 넘었다. 그것도 자신의 메테오에 의해서.
메테오는 총 22방이 떨어졌고 루엔 성 앞 평원은 거대한 구덩이만 흉측스럽게 남았다.
완전히 초토화 된 것이다. 아군의 시체는 흔적도 없이 사라졌지만, 마족의 시체는 뚜렷한 형체를 유지하고 있었다.
그것으로 메테오로 잡은 마족의 숫자를 정확히 파악할 수 있었다. 18마리. 이백 마리중 베틀 워락의 메테오로 잡은 마족은 18마리였다.
확실히 순수 인간의 힘으로 잡은 마족이었다는 것에 큰 의미를 둔다고 하지만 그 18마리 잡기 위해 희생된 아군은 모두 천삼백이었다.
성벽과 성내로 진입한 마족은 인간을 학살했으나 분명한 것은 마족이 광범위 마법 같은 힘이 아닌 개개인의 신체 완력으로 인간을 제압했기에 인간 한 명을 처리하기 위해 몇 번이나 움직여야 했다는거다.
즉 마족은 월등한 신체에 난공불락의 힘을 가지고 있을지라도 공격을 자체 물리적인 힘에 의존해야 했기 때문에 인간을 죽이는 것에는 분명한 한계가 있었다.
학살, 도살의 분위기였지만 마족 백오십이 군단을 휘저었던 것에 비해 전사한 인원은 겨우 천명 조금 넘을 정도였다.
즉 베틀 워락의 메테오에 희생된 아군의 손실이 더 컸다. 그리고 성벽에서 자폭한 베틀 워락에 휘말린 기사들의 희생도 만만치 않았다.
이번 전투로 인간이 마족과 싸우면 어떻게 되는지 똑똑히 경험했다. 만약 제때 마교가 도착하지 않았다면 군단은 끔찍한 결과를 받아들여야 했을 것이다.
전사, 중상자, 경상자를 다 합해 약 오천의 병력이 전투 불능 상태다. 이백의 마족과 오천의 병력을 바꾼 셈이다. 물론 그것도 마교의 도움이 있었기에 가능한 수치였다.
오만의 병력 태반을 지킬 수 있었던 것은 오롯이 마교의 도움 덕이다.
그놈 장군은 엠버스피어에 있을 때부터 마교와 부딪쳤었고 마교를 그저 그런 용병 집단이라고 생각했다.
진정한 마교의 힘을 경험하자 마교에 대한 인식이 완전히 바뀌었다.
"실로 참담한 결과입니다. 전투 결과를 논의 하는 게 정말 염치없고 부끄러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노르딕 사령관은 침울한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지나간 것을 후회 해봤자 앞으로 나가는 데는 도움이 안될 겁니다. 우리는 마교로 인해 병력을 보존했다는 것을 위안 삼아야 합니다. 앞으로 어떻게 할지 그것이 더 문제입니다. 보셨다시피 마족을 상대로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자폭뿐입니다. 그것마저도 통하지 않는다는 것을 아셨을 겁니다. 여기서 마족을 섬멸하고 아칸 시티로 진군하고자 했던 계획이 얼마나 무모한 것인지 아셨을 겁니다."
"도대체 마교는 어떤 집단입니까? 그들의 능력은 어디서 온 겁니까? 마족을 간단하게 베어낼 수 있다니 이건 어떻게 받아들여야 합니까?"
후오란 백작의 말에 제이미가 말했다.
"교주에게 들은 것으로 정리하면 제가 가진 이 검의 재질이 잉겔리움이라는 금속으로 만들어졌으며 이 잉겔리움 금속으로 만든 무기만이 마족을 벨 수 있다고 했습니다."
"잉겔리움이라면 전설에서나 나오는 금속이 아니오? 어쩐지···. 다른 검으로는 마족을 베지 못한다는 것에 의구심을 품었더니 그런 이유가 있었군. 그렇다면 마교 전원이 잉겔리움 무기를 가졌다는 것이오?"
"그렇습니다."
"어떻게? 그 무기를 우리가 수급할 수 없겠습니까?"
"잉겔리움은 흔한 금속이 아닙니다. 잉겔리움으로 만든 검 한 자루가 웬만한 성 한 채 값입니다. 아예 물자거래로 통용되는 무기가 아닙니다. 제국 통틀어 몇 자루도 존재하지 않는 무기란 겁니다."
"아니, 그럼 도대체 마교는 어디서 잉겔리움 무기를 찾아냈다는 겁니까?"
제이미는 헛기침하며 말했다.
"제가 미친 형에게 물어보니 마교에서 직접 잉겔리움 금속을 다스려 제련한다고 합니다."
"그럼 무슨 수를 동원해서라도 잉겔리움 무기를 사들인다고 전해 주시오. 원하는 금액은···."
"지금 나라를 판단해도 몇 자루 사들일 수 있을까 말까입니다. 그건 돈으로 살 수 있는 무기가 아닙니다. 그들이 돈을 받고 팔 것 같지 않아 보입니다."
"그런데 그들은 어디서 나타난 것입니까?"
블러베드 백작의 말에 제이미가 답했다.
"마교의 교주라는 분의 능력은 일반인이 가늠할 수 없을 정도입니다. 그는 공간을 뛰어넘는 포탈이라는 공간 이동 능력을 사용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마법인가? 역사를 보더라도 그런 공간 이동 마법을 사용한 마법사는 없었는데?"
그놈 장군도 믿지 못하겠다는 듯이 굳은 인상을 썼지만, 그들이 이동해 온 것은 분명 사실이고 마족을 쓸어 버린 것도 확실한 현실이었다.
"자, 자 뒷배 추측하는 것은 그만두고 이제 우리가 어떻게 움직여야 하는지 그것이 가장 중요한 사안이오. 아칸을 이렇게 내 버려둘 수 없는 일이 아니오?"
얀샨 백작은 고개를 갸웃하며 입술을 움직였다.
"마족의 능력이나 성정을 보면 아칸에 인간은 남아 있지 않아야 정상입니다. 분명히!"
노르딕 사령관도 얀샨 백작의 말에 동감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마족의 성정을 경험해 본봐 놈들은 인간을 짐승 이하로 취급하고 있소. 인간의 가죽을 뒤집어쓴 것만 봐도 소름이 끼칠 일이오. 저놈들이 뒤집어쓴 인간은 아칸 왕궁의 경비와 임페리얼 나이트 소속이오. 그렇다는 것은 아칸 왕궁의 인원은 이미···."
"아, 미치형, 아니 마교 교주의 이야기에 의하면 아칸 왕궁은 완전히 마족의 손에 들어간 것은 아니라고 합니다. 내성은 특별한 방어막이 쳐져 있고 마족은 내성으로 진입하지 못하고 있다고 합니다."
노르딕 사령관도 고개를 끄덕였다.
"아칸에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이 분명해. 귀족 지구도 무사한 것 같아. 아칸에는 후작 두 분이 멀쩡히 잘 계시지."
블러베드 백작도 동의했다.
"시몰레이크 후작과 연락이 닿은 것은 마족 침입이 있고 난 한 참 뒤였습니다."
"우리는 아칸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자세히 알고 보지 않으면 안 됩니다. 정보를 먼저 모으고 추후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를 논해야 할 듯싶습니다."
그때 문이 열리고 토끼 가면의 사내가 들어왔다. 밖에 경비가 있었지만 단 한마디의 보고조차 없었다.
노르딕 사령관과 지휘부들은 모두 자리에서 일어나 무작정 뛰어든 이 사내에 대해 어떤 인사를 해야 할지 몰라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정확히 놓고 보면 자신은 일국을 대표하는 고위 관직의 귀족이었고 마교는 일개 용병 집단에 지나지 않았다. 계급이랄까 그 지휘와 신분의 격차는 어마어마한 것이다.
노르딕 사령관이 마교의 교주에 머리를 숙인다면 말도 안 되는 신분의 역전을 초래하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엠버스피어가 비웠소. 이곳은 허물어지고 무엇보다 보급을 받을 수 없으니 이 병력으로 한 달을 버티기 힘들 거요."
"정확한 판단 감사하오. 그렇다면 그대의 의견은?"
"엠버스피어로 가서 일단 병력을 추스르고 정보를 모으시오. 엠버스피어의 창고에 보급품이 상당히 남았으니 그것을 이용하여 겨울나기를 해야 할 거요. 지금 아칸으로 행군은 무리고 만약 마족이 이차 원정을 나올 수도 있으니 대비해야 할거요."
"그대의 조언 감사드리오. 우리를 구해주었으니 내 친히 감사의 인사를 드리지 않을 수 없구려."
평민의 용병대장에게 무려 일국의 사령관이 지나친 예를 표시할 수 없으니 최대한의 칭찬으로 치하를 대신하려 했다.
테츠는 신경도 안 쓴다는 듯이 말했다.
"병력을 유지하는 것이 관건이오. 이곳의 겨울은 매우 혹독하오. 엠버스피어에 보금자리를 마련하고 겨울나기 준비하면서 아칸의 동향을 살펴보는 것이 좋을 것이오. 마족은 이번 원정의 실패에 대해 어떤 움직임을 보일 것인지 지켜보는 편이 좋을 거요."
"여러분의 생각은 어떠신지?"
"지금 상태에서는 그의 의견이 가장 합리적으로 판단됩니다."
"여기서는 오크의 습격도 생각해야 하니 엠버스피어로 들어가는 편이 가장 좋겠습니다."
"아칸의 변화를 자세히 알고 움직이는 편이 좋겠습니다. 저도 엠버스피어 입성에 찬성합니다. 섣불리 움직이는 것 보다 적의 상황을 먼저 판단하고 움직이는 것이 좋다는 판단입니다."
테츠는 이곳에 들어와서 고개 한 번 까닥이지 않았다. 솔라리스 군단의 수뇌부가 있는 곳에 들어와서는 저리 당당한 행동을 보이다니. 이곳의 신분은 최하가 백작이다.
그런데 일개 평민이 허리를 저리 당당히 펼 수 있다니 전혀 기죽지 않을뿐더러 오히려 군단장들이 테츠의 기개에 눌릴 판국이다.
정확히 따지자면 시몰레이크 후작으로부터 남작의 지휘를 받은 상태지만 이곳에서는 평민과 다른 게 없었다.
"그럼 결정한 것으로 알겠소."
"아, 저는 이쯤에서 본국으로 귀환하겠소."
"그대의 베틀 워락은 매우 중요···."
"이번 일로 깨달은 바가 크오. 마족은 쉽게 상대할 수 있는 집단이 아니라는 것을 뼈저리게 알게 되었소. 어쩌면 인류가 탄생한 이래 가장 위험한 순간을 맞이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오. 저는 일단 본국으로 돌아가 진지하게 논의할 생각이오. 마족이 이 땅에 발을 디뎠다면 가장 먼저 테일리아드를 침공하려 할 것이오. 돌아가 준비를 해야 한다는 생각이오."
"베틀 워락도 이번 전투에서 피해가 극심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소. 고국이 아닌 낯선 땅에서 흘린 피가 가치가 있길 기원하겠소."
노르딕은 한 치의 주저함도 보이지 않는 테츠의 기도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보통 평민이라면 허리를 구십 도로 숙이고 뭐라고 떨어질까 전전긍긍하는 것이 보통인데 이 자의 신위는 보통이 아니었다.
마치 앞에 거대한 태산이 버티고 있는 것 같은 충격을 받았다.
"염치 불고하고 그대에게 한 가지 물을 것이 있소만."
"그 손에 잉겔리움을 쥔다고 한들 마족을 벨 수 있을 거 같소? 그러다 행여 마족에게 빼앗기기라도 하면? 그때는 어떻게 책임지겠소?"
테츠는 한발 먼저 노르딕 사령관의 말문을 막았다.
노르딕은 입안이 바짝 탔다. 엄밀히 따지고 보면 마교는 솔라리스 왕국의 신민이다. 자신의 재량으로 얼마든지 무기를 징수할 수 있다.
"나는 솔라리스 군단의 사령관이오. 내 재량으로 얼마든지 무기를 징수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아, 미안. 우리 마교는 솔라리스를 탈퇴했소. 지금은 몬도르반 지역의 맨시티로 넘어갔소."
"맨시티로? 그럼 맨시티에서 어떻게 이곳에서 전투가 벌어진 것을 알고 넘어왔다는 소리오?"
"뭐, 군단 곁에는 늘 까마귀가 있어서 항시 보고 있었을 뿐이오."
"까마귀?"
"여하튼 잉겔리움 무기는 탐하지 마시오. 가진다 한들 효용성을 끌어내지는 못할 거요. 한 명 있다면 제이미 정도나 가능할까. 물론 그 녀석도 아직 한참 부족하기는 하지만."
"만약 마족이 오늘의 패배를 알아차리고 재차 병력을 보내서 온다면?"
"우리 마교가 돕기를 바라오?"
"물론이오! 그대들의 손에서 오늘 수만 병력이 구원을 받지 않았소이까?"
"음, 알겠소. 하지만 그대들도 도움을 받고 싶다면 마교가 원하는 대로 움직여야 할 것이오."
"그럼?"
"지금 당장 행군을 시작하여 엠버스피어로 입성하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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