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녀 vs 마녀(192)
뒤죽박죽?
테드버드는 안전 가옥으로 되돌아왔다. 거버트는 부하들과 아칸 왕궁 감시를 나간다는 짧은 쪽지를 탁자 위에 남겨 놓았다.
테드버드는 한참 생각에 잠겼다.
지금 돌아가는 사태가 깨끗이 정리되지 않았다.
명령은 이차원적으로 교주와 레베카가 다 달랐다. 이 때문에 세렌이 지금 상태에서 믿을 건 교주밖에 없다고 한 것이다. 세렌이 돌아오면 뭔가 실마리가 잡힐 것 같았다.
그리고 이해할 수 없는 아가므네의 행동. 그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아가므네가 배신? 절대 그럴 일은 없다.
아가므네가 배신할 단 하나의 건더기라면 자신이 속한 세븐 어쌔신을 교주가 다 죽이고 결국 성황의 명령으로 칠무신이 직접 나서 밤의 자매단 자체를 제거해 버린 것?
아니다. 아가므네는 철저한 암살자다. 세븐 어쌔신과의 동료애는 아예 없다. 오히려 실수하면 가차 없이 서로에게 검을 들이대는 조직이다. 애착이라곤 일도 없으며 오히려 자신을 받아준 마교를 매우 좋아했다.
혀까지 고쳐준 교주를 은인으로 생각하고 그에게 직접 무공까지 전수 하였고 특히나 마테니 장로와의 사랑 이야기는 마교에서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인데? 그런 아가므네가 배신했다고?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분명히 지금 진행되는 사건에는 자신이 모르는 무엇이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모그룩의 행동은 더 이해 할수 없다.
판테리온 시장에서 혼자 난동을 피워 관심을 끈 것은 무엇보다 조용히 처리해야 할 임무에 큰 위해를 가하는 행동이었다.
물론 그 덕분에 케이사르 후작의 비밀을 파헤쳐 냈다고는 하나 상급자인 엘빈 장로가 있는데 혼자 막무가내식 행동은 처벌받을 정도의 행위란 것은 분명하다.
후일에 드러난 결과를 보고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당시 모그룩의 행동에 크게 화를 냈었다. 결과가 아무리 좋게 나왔어도 모그룩의 행동은 반드시 처벌받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것이 마교를 위한 바른길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내성에는 온두라스와 마크라스가 있다. 도대체 어떻게 그들을 설득했기에 세렌 장로 일행을 살려 보냈지? 아가므네를 자신이 잡았으면 왜 아가므네의 행동에 관한 내용은 적어 보내지 않았을까?'
뭔가 잘못되어 간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무엇이 어떻게 잘못되어 간 건지는 알수 없으니 환장할 노릇이었다.
왜 교주와 레베카는 각기 다른 명령을 내렸던 것일까?
***
동탑에 들어선 메흘린은 살짝 놀랐다.
"레베카 님이 와 계신다고?"
"그렇습니다. 교주님과 이야기 하시는 중입니다."
"아주 중요한 일이니 일단 교주님께 양해를 구할 수 있는지 알고 싶네."
"기다려 보십시오. 대현자님께 여쭈어보겠습니다."
메흘린은 자신 앞에 있는 차가 다 식어 버린 줄도 모르고 생각에 잠겼다.
이윽고 로브를 착용한 테미스가 들어왔다.
아리스토틀의 보좌관이자 수석 제자였던 제시우스의 배신은 동탑의 마법사들에게는 큰 충격이었다. 평소 그의 품행을 잘 아는 자들은 처음에는 믿지 못해 제시우스를 두둔할 정도였다.
나중에는 제시우스의 죽음으로 인해 그의 범죄가 낱낱이 드러났지만, 아직도 소수의 마법사는 그가 누명을 썼다고 믿고 있을 정도였다.
테미스는 아리스토틀의 두 번째 제자며 제시우스를 대신해 동탑의 관리를 책임지는 마법사다.
"저를 따라오십시오."
메흘린은 테미스의 뒤를 따라 7층 수련의 층에 다다랐다. 테츠가 이곳에 온 뒤로 7층 자체가 완전히 폐쇄됐고 아리스토틀이 직접 문지기가 되어 7층을 지키고 있다.
동탑의 마법사들은 가끔 왜 유독 대현자께서 마교의 교주를 지독할 만큼 끔찍하게 생각하는 이유에 대해 늘 의문을 달았다.
"들어가시게 기다리고 계시네."
메흘린은 아리스토틀을 향해 고개를 숙이며 동시에 포권지례를 하여 양쪽의 예를 다 보였다.
7층은 일종의 홀이다. 특별한 마법 보호막이 처져 있어 수련생의 마법에는 끄떡없고 공간 창출 마법으로 만든 차원의 결계 안에서는 심지어 메테오를 떨어뜨린다 한들 탑 자체에는 아무런 위해가 없을 정도였다.
그 홀에는 여러 곳으로 이어진 수련의 방이 즐비한데 방이라기보다는 원형의 둥근 구체가 죽 늘여져 있고 각기 원하는 수련환경이 있는 공간으로 이어져 있다.
그 가운데 가장 큰 보호막 속에는 가부좌를 틀고 앉아 있는 교주가 있었고 그 앞에는 레베카가 무릎을 꿇은 자세로 엎드려 테츠를 바라보고 있었다.
두 사람 사이에 많은 대화가 오고 간 모양이다. 무엇보다 레베카의 자세가 꼭 용서를 비는 듯한 자세였다.
메흘린은 괜히 자신이 방해되는 것 같아 다가가기를 조금 망설였다.
"들어왔으면 인사부터 할 것이지 뭘 멀뚱멀뚱 거리는 거냐?"
"황태자님을 뵙습니다."
"황태자? 네가 그렇게 인사한 이유가 있을 것 같은데?"
메흘린은 교주 쪽으로 다가가다 레베카를 힐긋거렸다.
"눈치 볼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네가 더 잘 알지 않느냐? 레베카 앞에서 말 못 할 사정이라고 있는 거냐?"
그건 대놓고 말하는 꾸지람에 가까운 것이다. 레베카 앞에서 할 말 안 할 말 가리지 말라는 것이다.
"그럼 어제저녁의 일을 아시고 계시온지? 교주님께서는 모그룩이 일으킨 사건의 영향으로 세렌 일행이 내성 공격을 하지 말라고 명령하셨습니다. 그런데 레베카 님은 또 어제 내성을 공격하라 하신 것에 대한 사정을 알고 싶습니다."
"그렇지 군사인 네가 그것을 알아야겠지. 레베카, 네 입으로 말해 보아라."
"저는 마녀로서 이곳에 온 이래 황태자님에게 분명히 말씀드린 것으로 압니다. 제 우선 명령권자는 성황 잉그람 님이라는 것을."
"분명히 들었다. 그리고 충분히 인지했던 바다."
"그럼 어제 공격 명령은 레베카 님이 내린 것이 아니고 성황 잉그람께서?"
"그렇다는구나."
"···."
"지금 중요한 것은 그것이 아니라 케이사르의 행방을 알아내는 것이다. 놈이 이브리움의 피를 정제하는 날이면 정말 큰 적이 탄생하게 된다. 성황도 그 부분을 몹시 걱정하는 모양이더군."
"이브리움? 이브리움이 무엇입니까?"
"무엇이 아니라 인간과 마족과 같이 또 다른 형태의 종족이다."
"그럼 온두라스와 마크라스를 말하는 것입니까?"
"그렇다."
"전하께서는 어떻게?"
"모그룩은 내가 심어 놓은 또 다른 나와 같은 녀석이지. 녀석과 나는 서로 통할 수가 있다. 녀석이 습득한 모든 것을 나는 이곳에 있지만, 알수 있어. 대신 움직이지 못하고 집중하고 있어야 하지만···."
"그럼 전하께서 세렌 장로가 내성을 공격하고 난 뒤 어떻게 되었는지를 아시고 계십니까?"
"물론 그녀는 지금 내 앞에 있어."
"네? 무슨 말씀인지?"
"침묵의 숲에 있는 사령 앞이다."
"아, 그렇군요. 그럼 일단 안심입니다. 그녀가 어떻게 된 줄 알고 기다리지 못해 여기로 뛰어온 것입니다."
"그것이 아니라 명령이 엇갈린 부분 때문에 온 것이 아니냐? 나는 공격하지 말라고 했는데 레베카는 내 명령을 어기고 공격하라 한 이유 말이야."
메흘린은 교주 앞에서 핑계나 거짓말 따위는 아예 소용없는 짓이란 걸 가장 잘 아는 자다. 잘못해도 올바르게 인정하면 더 기뻐하는 분이시란 걸 누구보다 잘 아는 메흘린이다.
"저는 군사로서 간과 할수 없는 부분입니다. 정확히 말씀하신 부분에 대해 확신하고 싶어 온 것입니다."
"음, 레베카는 성황의 명령을 따른 것뿐이고 그런 사실을 미리 내게 이야기한 상태니, 문제 될 것은 없어. 간단히 생각해라 아들의 명령을 아버지가 번복한 것뿐이라고···."
"이제 충분히 이해되었습니다."
"골치 아픈 일이 일어났다며?"
"엠버스피어에 있는 아칸의 군단과 로만 울프의 군대가 아칸을 향해 진군을 시작했습니다."
"그래 그래야지. 올해가 가기 전에 황태자의 후견인 자리에 도전하려면 뭔가 큰 업적을 만들어 내야겠지. 테일리아드에서는 이미 후견인이 선정된 상태다. 로만 울프가와 팬텀 가드너가도 가만있지 않을 테지. 하하."
"어떻게 하실 생각입니까?"
"네가 조사한 아칸의 마족 규모는 어느 정도이지?"
"2천은 넘고 3천은 안되는 정도라고 생각합니다."
"얼마 전에 침묵의 숲으로 들어온 세 마리를 잡아 머릿속을 헤집어 보았으나 이놈들은 철저하게 점조직으로 되어 있어 전체 규모를 짐작하기 어렵더군. 하지만 지휘관급의 정보는 알아냈어. 저번에 몬테그레 숲으로 넘어온 녀석의 우두머리가 코발이라는 놈이고 엠버스피어에 원정 나왔다가 죽은 드레곤 머리통을 가진 녀석이 아세톤이다. 어제저녁 마크라스에 죽은 녀석이 에르카스탈이라는 쥐의 백작이라고 불리는 놈인데 테드버드 장로의 제자들이 놈의 시체를 수습하여 침묵의 숲으로 오고 있으니 곧 동탑으로 들어올 거고. 남은 놈은 테트론, 테세라, 만치오니 이 세 명이다. 놈들에 대한 자세한 정보는 레노번에게 넘겨주었으니 돌아갈 때 레노번 조사관에 들러봐라."
"알겠습니다. 그럼 가장 중요한 성황의 임무 처리는?"
"운명의 등불을 말하는 거면 보류다."
"아니 됩니다. 다시 한번 제고를 부탁드립니다. 그러면 성황께서 진노하실 테고 마교를 가만두지 않으실 겁니다."
레베카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거참, 내가 싫다는 데 무슨 상관이야? 아버지가 명령하면 자식은 꼬박꼬박 따라야 한다는 법이라도 있나?"
"이건 한 가장으로서 아비의 명령이 아닌 제국의 국운이 걸린 일이옵니다."
"네가 언제부터 국운에 그렇게 신경을 썼다고 그래? 운명이 등불이 밝혀지면 네게 뭐라도 떨어지는 것이 있는 모양이지?"
"아니 그런 말씀을? 저는 마교가 걱정되어 드리는 말입니다."
"내 말이 그 말이야. 네가 언제 마교 걱정을 한 적이 있긴 있어? 거짓말하는 놈들의 특징을 고스란히 내 앞에서 보이고 있어. 네 시커먼 속내의 냄새를 참을 수 없구나. 큰 실망이다. 레베카. 내 너를 나의 반쪽으로 생각했거늘 어제오늘 큰 실망을 보이는구나. 성황이 그렇게 좋으면 그의 애첩이나 될 것이지 왜 나를 선택했냐?"
"흐흑, 흑."
메흘린은 화들짝 놀랐다. 세상에서 무섭기로는 교주 다음으로 무서운 사람이 레베카라고 생각했다. 비록 열 살 안팎의 아이 모습이지만 그 속에 감추어진 무서운 심계는 메흘린조차 함부로 다가서지 못할 사람이었다.
그런 그녀가 목놓아 우는 것을 보니 섬뜩한 기분까지 들었다.
"그 말은 해서는 안 되는 말입니다. 성황은 나를 낳아 주신 부모와 같은 존재입니다. 아무리 태자 전하라도 그런 말씀을 하시는 것은 제가 감당이 안 됩니다."
"넌 내가 하고픈 말은 가리지 않고 하는 성미란 걸 알고 있을 텐데? 네가 나에게 감추는 것이 있는 만큼 내 입에서 좋은 소리가 나올 리는 앞으로도 없을 거다. 이 사건 이후 네 정원을 갈 일은 없을 터니 돌아가서 곰곰이 생각해봐."
메흘린은 레베카의 작은 몸집이 꺼덕꺼덕하며 흔들리는 모습이 애처롭다는 생각이 들었다.
"메흘린, 마녀는 동정할 것이 못 돼 그런 눈빛으로 저 꼬맹일 바라볼 필요가 없다. 그녀는 조만간 결정해야 할 거야. 나를 선택할 건지 성황을 선택할 건지."
아무리 교주가 그렇게 말해도 레베카의 울음을 거짓이 아니다. 하물며 자신이 보고 있는데도 그런 것이라면 적잖이 충격을 받은 것 같았다. 마녀고 꼬마의 모습이기 전에 테츠는 그녀에게 남편과 같은 존재다. 그런 그에게 입에 담기 험한 소리를 들었으니 감정이 격해진 것이다.
"질질 짤 거 같으면 네 집으로 돌아가서 하든지. 난 메흘린과 할 이야기가 따로 있으니까 조용히 하든지."
"알겠습니다. 저는 저대로 해야 할 일이 있으니 계속 케이사르를 추적하겠습니다. 이것 하나만은 알아주십시오. 저는 전하와 마교에 해가 되는 짓은 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어. 그렇지 않았다면 당장 죽여버렸을 테니까."
순간 레베카의 몸이 경직되듯이 바짝 굳어졌다. 테츠의 말은 장난도 흘리는 말도 아닌 진심이었기 때문이다.
메흘린도 흠칫했다. 평소 서로 사랑하는 부부 사이에 오가는 대화 수준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레베카는 눈물을 훔치고 일어나 메흘린을 슬쩍 바라보고는 수련장을 나가버렸다. 갑자기 정적이 찾아왔고 주변은 조용해졌다.
메흘린 너무 심한 말씀을 하신 것이 아니냐는 말을 하고 싶었지만, 꾹 참았다.
"우리 마교가 창설 이래 가장 큰 시련을 받게 될 것 같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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