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치병 걸린 공자로 환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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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부암(富馣)
작품등록일 :
2023.04.22 14:23
최근연재일 :
2023.08.12 2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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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7.20 2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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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쪽

시험 (1)

DUMMY

수신제가치국평천하(修身齊家治國平天下)라 했다. 정신을 차리고 제일 먼저 한 건 내 몸을 정돈하는 일.


싹둑. 싹둑.


이자벨라가 푸석해진 내 머리를 다듬어줬다.


“이자벨라. 미안해.”


“아니에요.”


“근데 손이 제법 매콤하더라.”


“다리아님이 때린 건 착각한 거겠죠.”


“이자벨라. 나 바보 아니야.”


“명색이 영지를 책임질 영준데. 이렇게 정신 차리게 해줄 사람 하나는 있어야죠.”


그녀가 도리어 뻔뻔하게 나갔다.

그녀의 새침한 모습에 마음이 놓였다.

정말 미안했다.

나를 바라보며 얼마나 애태웠을까?

근데 나는 또다시 그녀에게 미안한 짓을 해야 할 거 같다.


“이자벨라. 내가 무슨 짓을 해도 용서해 줄 거지?”


“절 두고 메피스토한테 가는 거면 죽을 때까지 용서 안 할 거예요.”


“누구한테 가긴 할 건데 메피스토는 아니야.”


“그러면 됐어요.”


내가 향한 곳은 순례자가 갇혀있는 감옥이었다.


“오랜만입니다.”


순례자가 움찔했다.

그리고 서서히 일어나 고개를 돌렸다.

그녀의 몸에 난 상처가 말해주고 있었다.

얼마나 혹독한 고문을 받았는지를.

그녀가 아직까지 살아있는 이유는 나 때문이었다.


“죽이든 살리든 자네 뜻대로 하게.”


타르칸이 나에게 순례자의 생살여탈권을 양도한 것.


“카일님이군요.”


그녀의 표정에 두려움이란 없었다.

오직 고요한 호수 같은 차분함만 있을 뿐.


“절 죽이러 왔습니까?”


“어떤 거 같습니까?”


“어떤 결정을 내리든 따를 준비가 돼 있습니다. 카일님에게는 그저 죄송한 마음뿐이니까요.”


“정말 내 손에 목숨을 맡겨도 되겠습니까?”


“네. 다만 한 가지 질문이 있습니다.”


“엘사는 붉은뱀 용병단에서 키우기로 했습니다.”


그녀가 죽어도 여한이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배려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너무 걱정 안 해도 돼. 우리야 전장 누비면서 이 인간, 저 인간. 상상도 못 할 경험을 많이 해서. 루나교는 차라리 귀여운 편이지. 우리 붉은뱀 용병단은 열려있어~”



어린애라고는 하나 루나교의 신자.

유바르교가 국교인 이곳에선 루나교의 기도문을 읊는 것만으로도 엘사가 위험해질 수 있다. 그런 면에서는 차라리 베인이 우두머리로 있는 붉은뱀 용병단이 안전하다.


“시작하세요.”


그녀가 벽을 짚고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털썩.


내 앞에 무릎을 꿇었다.


“시작하겠습니다.”


내가 그녀의 앞으로 다가갔다.

그리고


뽕!


최고급 포션을 그녀의 머리 위로 콸콸콸 쏟아내자 순례자의 몸이 빠르게 회복됐다.


“어째서?”


그녀가 이해하지 못한 표정을 지었다.


“아직 루나교 경전 갖고 계십니까?”


***


“이자벨라. 화 풀어.”


“화 안 났어요.”


“그렇다기엔 살기가 너무 따끔따끔한데.”


“아 공자님 때문에 아니에요. 저기 저년 때문이지.”


우리 심성 고운 이자벨라가 거친 말을 쏟아냈다.


“그때 일은 죄송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죄송하면 자결이라도 하지 왜 여기 뻔뻔하게 앉아있는 거죠.”


“이자벨라!”


“아니. 생각해보세요! 공자님 가슴에 곡도를 찌른 사람이에요. 처음이 어렵지 두 번이 어렵겠어요?”


이해는 한다.

내가 데려온 사람은 다름 아닌 순례자.

내 가슴에 곡도를 박아 넣은 여인이었으니까.


“그 얘기는 그만하기로 하자. 내가 무슨 짓을 해도 용서해준다면서.”


“이건 메피스토한테 가는 것보다 더 심한 일이에요!”


“그만! 이 얘기는 더 이상 꺼내지 마. 내가 그녀를 꺼내온데도 다 이유가 있으니까. 경전은?”


“여깄어요.”


순례자가 나에게 루나교 경전을 넘겼다.

우리는 마차를 타고 남쪽으로 내려가고 있었다.

대륙의 운명이 걸린 이 급박한 순간.

나는 천천히 경전을 읽기 시작했다.


“공자님. 갑자기 루나교 경전은 왜요?”


“메피스토 약점 찾으려고.”


루나교는 마왕 강림을 위한 수단이다.

그렇다는 건 그들의 경전, 교리, 생활방식에 메피스토를 처치할 힌트가 있을 수도 있다는 게 내 생각이었다.


“엘사가 사는 곳. 그곳 인구가 어떻게 됐습니까?”


“6,666명을 딱 유지하고 있었어요. 천막의 개수가 정해져 있으니까.”


“만약 아이가 태어나 6,666명을 넘으면요?”


“크게 세 부류로 나뉘어요. 저처럼 녹스의 단원이 되거나 대륙 곳곳에 퍼진 녹스교의 사제가 되거나 밖에 나가 돈을 벌거나.”


“그걸 총괄하는 사람은 누구였습니까? 교황?”


“대주교님이었어요. 지금 생각해보면 대주교님이 그로마였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고요.”


그러면 더욱 확실해진다. 그로마는 루나교를 통해 6,666명의 인구를 유지하고 있던 거다. 왜냐면 6,666명의 영혼이 메피스토의 소환 조건이니까. 나는 궁금한 점은 그때그때 순례자에게 질문하며 계속해서 경전을 읽어갔다.


[달처럼 창백한 피부에 별빛을 머금은 붉은 눈빛. 루나에게서 뿜어져 나오는 광채는 그 자체만으로도 고결함이 느껴진다.]


[우리는 기도를 게을리해선 안 된다. 그분은 자애롭지만 때로는 엄격하기 때문이다. 만약 우리가 기도를 게을리한다면 그분은 어둠을 틈타 우리를 찾아와 칠흑 같은 어둠의 불꽃으로 우리를 태워버릴 것이다.]


첫 구절은 메피스토의 평상시 모습을, 다음 구절은 그가 인파니아에 오러 블레이드를 둘렀을 때 모습을 묘사하고 있었다. 끝까지 독파한 결과 경전은 그로마가 메피스토를 기다리며 쓴 애끓는 팬레터에 불과했다.


“루나교는 언제부터 생긴 종교입니까?”


“유바르교가 창시된 다음 날에 생긴 종교예요.”


“에? 그럼 헬리온 왕국이 건국된 다음 날 생겼다는 소리네?”


“공자님! 무슨 말씀이세요?!”


“어?”


나는 당연히 유바르교가 헬리온 왕국이 건국된 뒤 사람들을 통치하기 위해 만든 종교라 생각했다. 하지만 그게 아니었다. 유바르교의 역사는 내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깊었다.


“대륙 최초의 유적이라 추정되는 갈파스 기록석에도 ‘유바르교’라는 고대어가 나와요. 그 유적이 사천 년 전 유적이라고 주장하는 학자들도 있으니 유바르교는 그것보다 훨씬 더 오래전에 만들어진 종교겠죠?”


“에?”


내가 다시 한번 경전을 살펴봤다.

아주 깔끔했다.


“순례자님.”


“말씀 편하게 하세요.”


“이 경전. 그때그때 개정하기도 합니까?”


“시간이 지남에 따라 교리를 조금씩 수정한다는 얘기는 대주교님한테 들었어요.”


“개정판이라는 소리네.”


이걸로 확실해졌다.

나는 거꾸로 생각했다.

마왕의 강림을 위해 루나교를 만든 게 아니었다. 루나교를 이용해 마왕 강림을 조금 더 수월하게 했던 거다. 생각이 거기까지 미치자 만약 신이 있다면 이 경전을 보고 눈이 뒤집혔을 거라고 나는 생각했다.


“도착했습니다.”


그리고 때마침

마부가 목적지의 도착을 알렸다.


***


“백작님. 손님이 찾아왔습니다.”


집사장이 하이머 백작을 보며 말했다.


“누구? 또 왕국이야? 왜? 사병 또 달래?”


하이머 백작은 생각했다.

자신이 언제부터 이렇게 됐을까?

카일에게 사병을 빌려주고 반대파에 밀려났을 때?

나인데일 백작이 승리를 거두고 국민의 지지를 얻은 국왕이 자기 팔과 다리를 잘랐을 때?


“아닙니다. 카일 자르온이 찾아왔습니다.”


집사장의 말에 하이머 백작이 벌떡 일어났다.


“뭐 누구?”


하이머 백작의 머리가 복잡해졌다.

자기 사병을 뺏어간 새끼.

이자벨라를 앞세워 자신을 농락한 새끼.

하지만 덕분에 귀족 자리를 연명하게 해준 새끼.

그 새끼가 지금 자신을 찾아왔다.


“어떻게 할까요?”


“일단 데리고 와. 내가 꺼지란다고 꺼질 놈도 아니니까.”


잠시 후,


“여긴 왜 왔소?”


하이머 백작이 카일을 퉁명스레 맞이했다.


“백작님에게 도움을 받으러 왔습니다.”


“나 이제 개털이다. 도와줄 병력은 왕국에 뺏겼고 내 말의 무게는 예전과 달라. 누구 덕분에.”


“아니요. 아직 도와줄 방법이 있습니다.”


하이머 백작이 치를 떨었다.


‘참 지독하다. 지독해.’


이제 자신은 말 그대로 허울뿐인 귀족이다.

그런 자신에게 뜯을 게 뭐가 있다고?


“돈을 원하나?”


“아니요.”


“돈도, 사병도 아니다? 그렇다면 설마?”


하이머 백작의 얼굴이 사색이 됐다.


“안 됩니다! 제 딸은 안 돼요.”


‘아니. 잠깐만.’


하이머 백작은 생각했다.

그는 왕에게 토지를 하사받은 영주다.

게다가 나인데일 백작과 함께 그로마의 진격을 막아낸 영웅.


‘이거 잘만 하면?’


하이머 백작의 눈이 빠르게 돌아갔다.

한편 카일이 하이머 백작을 보며 생각했다.


‘참 대단한 인물이다.’


처음에는 절대 딸을 줄 수 없다고 하더니 지금은 눈을 굴리며 딸을 통해 재기의 기회를 노리고 있다. 그게 얼굴에 다 드러났다. 카일이 단숨에 눈치챌 수 있을 만큼 노골적으로.


‘그 머리를 권력이 아니라 대륙을 구하는 데 썼으면 지금쯤 존경받는 귀족이 됐을 텐데.’


하지만 어쩌겠는가?

사람 본성이라는 게 마음대로 안 되는 것인데.


“상황이 워낙 긴박하니 바로 얘기하겠습니다. 초대 가주의 무덤. 그곳에 절 들여보내 주세요.”


하이머 백작의 표정이 순식간에 굳었다.


“초대 가주의 무덤에 들여보내 달라? 그게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고 하는 소린가?”


“잘 알고 있죠.”


“그럼 당연히 내 대답도 알고 있을 텐데?”


“꼭 들어가야만 합니다.”


“안 된다.”


하이머 백작의 의지는 확고했다.

백작으로서는 초대 가주의 무덤에 카일을 들여보내 줄 이유가 없었다. 초대 가주의 무덤은 하이머 백작가에 있어 성역과도 같은 곳이니까.


스릉.


말로는 안 될 것 같다고 판단한 순례자가 곡도를 꺼내 들었다.


“나를 협박하려는 건가? 소용없다!”


하이머 백작이 소리쳤다.

하지만 몸은 거짓말을 하지 않았다.

동공이 흔들리고 호흡이 가빠졌으며 온몸에 식은땀이 흐르기 시작했다.


파스스스.


이자벨라가 가세했다.


“어머. 죄송해요. 물건이 예뻐서 구경한다는 게 그만.”


이자벨라는 물건이 손에 닿는 족족 녹이고 있었다.


“죄송합니다. 상황이 워낙 급박해서.”


카일이 사과했다.

하지만 얼굴엔 전혀 미안한 표정이 없었다.


“......”


하이머 백작의 얼굴이 고민에 휩싸였다.

그리고 잠시 후, 생각을 정리한 백작이 입을 열었다.


“내가 얻을 수 있는 이득은?”


하이머 백작은 상인이다.

선조들이 말했다.

절대 손해 보는 장사는 해선 안 된다.

그리고 지금, 하이머 백작이 상인으로서의 역량을 발휘했다.


카일은 고민했다.

그가 혹할만한 미끼가 뭐가 있을까?


“이건 어떻습니까?”


고민을 끝낸 카일이 입을 열었다.


“왕궁에서 다시 큰소리 떵떵 치며 복도를 활보할 수 있게 만들어드리겠습니다.”


카일은 알고 있었다.

그에게 지금 필요한 건, 돈도 사병도 아닌 상처받은 자존심의 회복이었음을.


***


초대 하이머 가주의 무덤.

카일이 하이머 백작의 도움이 필요한 이유는 대대로 내려지는 가보와 하이머 백작가의 혈통만이 무덤으로 가는 문을 열어줄 수 있기 때문이다.


‘내가 잘하는 짓일까?’


하이머 백작은 열쇠를 문에 끼는 그 순간까지 고민했다.


“제 말 믿으셔도 됩니다.”


그런 하이머 백작의 불안을 읽었을까?

카일이 걱정하지 말라는 듯 그의 어깨 위에 손을 올렸다.


‘그래. 이건 손해가 아니라 투자다.’


하이머 백작은 최대한 긍정적으로 생각했다. 그가 무덤에 들어가 깽판 칠 게 아니라면 무덤에는 가져갈 유품조차 없었다.


끼익.


이윽고 하이머 백작이 열쇠를 돌려 문을 열었다.


“여기서부터는 저 혼자 들어가겠습니다.”


“5분일세. 그 이상은 안 돼.”


“알겠습니다.”


카일이 문 안으로 들어갔다.

잠시 후


끼익. 탁.


무덤으로 들어가는 입구가 닫혔다.

순례자와 이자벨라가 문을 호위하듯 앞을 지켰다.


한편, 하이머 백작가의 성역이라 불리는 초대 가주의 무덤은 실로 수수했다. 사방이 하얀 벽에 검이 꽂힌 돌무덤 하나. 그게 전부였다.


[하이 백작은 절대 열어서는 안 될 성역으로 제이 파치노를 피신시켰다. 그때였다. ‘나를 꽂아라.’ 성검이 제이 파치노에게 말을 걸었다. ‘초대 하이머 백작의 무덤. 저 돌칼을 뽑고 나를 꽂아라.’]


카일이 소설의 내용을 생각하며 무덤의 돌칼을 뽑았다. 그리고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성검을 푹 찔러 넣었다.


“......”


아무 반응도 없었다.


‘역시 성검이 선택한 사람이 아니면 안 되는 건가?’


카일은 미련 없이 몸을 돌렸다.


‘어차피 얻을 수 없는 힘이면 과감하게 포기하는 게 옳다.’


이런 생각을 하며 카일이 문손잡이를 잡았다.

그때였다.


파아아앗!


성검에서 빛이 쏟아졌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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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치병 걸린 공자로 환생했다 연재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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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3 에필로그 +1 23.08.12 231 5 14쪽
122 돌아가자 23.08.11 215 4 12쪽
121 절공(切空) 23.08.10 210 4 12쪽
120 각자의 역할 (6) 23.08.09 188 4 12쪽
119 각자의 역할 (5) 23.08.08 185 4 11쪽
118 각자의 역할 (4) 23.08.07 192 4 12쪽
117 각자의 역할 (3) 23.08.06 194 5 13쪽
116 각자의 역할 (2) 23.08.05 195 5 13쪽
115 각자의 역할 (1) 23.08.04 193 4 12쪽
114 돌격 23.08.03 198 4 12쪽
113 약속 23.08.02 202 5 13쪽
112 스승과 제자 (5) 23.08.01 204 4 12쪽
111 스승과 제자 (4) 23.07.31 203 4 12쪽
110 스승과 제자 (3) 23.07.30 197 4 12쪽
109 스승과 제자 (2) 23.07.29 192 4 12쪽
108 스승과 제자 (1) 23.07.28 202 4 13쪽
107 영웅 (4) 23.07.27 204 4 13쪽
106 영웅 (3) 23.07.26 199 4 12쪽
105 영웅 (2) 23.07.25 207 4 13쪽
104 영웅 (1) 23.07.24 212 4 12쪽
103 시험 (4) 23.07.23 204 4 13쪽
102 시험 (3) 23.07.22 199 4 12쪽
101 시험 (2) 23.07.21 205 4 12쪽
» 시험 (1) 23.07.20 216 4 13쪽
99 너라는 변수가 (4) 23.07.19 222 3 13쪽
98 너라는 변수가 (3) 23.07.18 217 4 12쪽
97 너라는 변수가 (2) 23.07.17 219 3 12쪽
96 너라는 변수가 (1) 23.07.16 224 3 12쪽
95 모래성 23.07.15 234 3 13쪽
94 내 집 마련 (4) 23.07.14 231 4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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