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 시간여행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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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시나무1
작품등록일 :
2023.05.22 17:03
최근연재일 :
2024.08.14 14:05
연재수 :
30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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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4,511

작성
23.05.23 1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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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쪽

천지창조

DUMMY

[세상은 거짓이다.

사람은 혀를 즐겁게 하는 맛있는 음식이나 눈을 즐겁게 하는 아름다움, 혹은 더 많은 제물 등으로 자기의 욕망과 육신의 편함을 위해 산다.

고난을 겪고 싶은 사람은 아무도 없다.

나 역시 그러하다.

그러나 사람이 추구하는 어느 것에서도 만족은 없다.

맛있는 음식을 먹어도, 친구와 즐거운 시간을 가져도, 좋은 학교나 직장을 가져도 혹은 돈을 많이 벌어도 그때의 기쁨은 잠시일뿐 마음은 허망하다.

공허를 채우기 위해 더 많은 걸 쟁취하려 애쓴다.


사람은 무엇을 위해 살아야 할까.

자기 자신?

사랑하는 배우자와 자신과 배우자를 닮은 아이들과 함께 살아가는 것?

무엇이 내 허망함을 채울 수 있을까.


-삼규석의 젊은 시절 가졌던 고민]


*


김명숙과 결혼을 했다.

첫사랑이었고 행복했다.


*


어느 날 숙이가 교회를 다니기 시작했다.

그 많은 종교를 두고 왜 하필 교회?

처음으로 결혼 전에도 안 하던 말싸움을 했다.


*


명숙은 일요일만 되면 교회 가는 걸 시작으로 수요일, 그다음은 금요일, 이제는 새벽에도 교회를 시도 때도 없이 간다.

아내가 종교에 미쳤다.

나보고 예수를 믿자고 한다.

교회 가자고 한다.


1004호에서 부부 싸움한다는 소문이 온 아파트에 퍼졌다.


갈등은 해소되지 않았다.


*


김명숙과 싸울 때면 정문 밖 서성거리는 인기척이 들린다.

그러나 이젠 남들 눈치 따윈 상관 없어진지 오래다.

내가 고래고래 고성을 치자, 이 여편네가 눈에 핏대를 세우고 맞받아쳤다.

오냐, 네가 이기나 내가 이기나 해보자.

이 여편네의 콧대를 꺾어야 겠다 결심했다.


*


여편네가 죽었다.

방 구석에 몸을 기댄 채 차게 굳어 있는 그것을 바라보며 담배를 꺼냈다.

손끝이 조금 떨렸다.

새 담배 곽에서 후두둑 떨어지는 담배 하나를 집어 라이터로 불을 붙였다.


'끝났네.'


싸움은 끝이 났다.

더 이상 싸울 여자는 죽고 없다.


원래 이렇게 조용했나?

방이 이렇게 컸었나?


후련해야 하는데.


아니, 잘된 일이지. 그런 거야.


삼규석은 돗대를 다 피우곤 밖으로 나갔다.


*


그로부터 몇 십 년의 세월이 흘렀다.


삼규석은 운이 좋았다.

사업에 재능에 있는 건지 혹은 유행을 잘 따라서 인 건지

처음은 당구장. 그 뒤엔 골프장으로 업종을 바꾸고 그 후엔 카페, 지금은 노후에 편의점을 운영하고 있다.

이제 삼규석은 여든(80) 살의 나이로 많은 돈을 쥔 부자다.


그러나 그의 결혼 생활은 그렇지 않았다.

삼규석은 김명숙과 결혼 이후, 두 번의 재혼과 두 번의 이혼을 겪었다.

두 재혼 생활 모두 끝이 좋지 못했다.


삼규석은 자식이 없다.


처음은 여자들을 탓했다.

푼돈 쥐어 주고 내쫓아 버렸다.


그러나 나중에 사실을 알게 되었다.

문제는 삼규석에게 있었다.


이혼했던 두 여자는 이제는 하나 혹은 둘 아이의 엄마가 됐다.


삼규석은 그 후론 재혼하지 않았다.


그리고 더 제멋대로 살았다.

자기 아이를 뱃다는 여자를 벌거 벗겨 내쫓았다고 술자리에서 자랑거리로 삼아 이야기 하기도 했다.


삼규석은 나이가 많이 들었지만 여전한 성질 머리를 가지고 있다.

젊을 땐 그의 성질을 고칠 사람이 없었고 이제는 그저 성격 더러운 노인네 취급을 받을 뿐이다.


현재 삼규석은 지하철 계단을 내려가고 있다.

한 손에는 검은 비닐 봉지를 쥐고 있다.

새로 온 알바생 교육을 마치자, 어느덧 퇴근 시간과 곂쳐 지하철은 사람들로 북적였다.


'요즘 젊은 것들은 끈기가 없어. 한 달도 못가서 그만 두다니. 어디 가서도 안 될 것들... 쯧.'


그때 누군가 외치는 소리가 들렸다.


"예수 믿고 구원 얻으세요!"


퇴근 시간으로 가득 찬 지하철 한구석 자리에서 한 남자가 외쳤다.

그 남자를 본 삼규석은 인상을 찌푸렸다.


'젊은 놈이 시끄럽게. 노인네 귀청 떨어지겠다.'


삼규석과 같이 계단을 내려가던 사람들이 한 둘 그 남자를 흘꼈다.


깨끗하지 못한 용모와 옷차림.

거지였다.


사람들은 코웃음도 치지도 않고 그를 외면했다.

거지가 외친 소리는 그저 한낯 소음에 불과했다.

유명한 사람, 인망 높은 자 혹은 멋있게 차려 입고 외모도 수려한 이성이 외쳤다면 달랐을까.

사람들이 가던 길을 멈추고 들어줄 만한 조건에 거지는 한가지도 해당 사항이 없었다.

오히려 물건을 도둑질 당할까, 더러움이 묻을까, 연민으로 혹은 멀리해야 하는 존재였다.


"회개하고 구원 받으세요!"


'흥, 본인이나 구원 받으라지.'

'저럴 시간에 일이나 구해라.'


사람들이 속으로 그렇게 생각하며 눈쌀을 찌푸렸다.


'저 거지가 타는 칸은 피해야 겠다.'


누구가는 그렇게 생각하며 그 자리를 피했다.


그때 삼규석이 거지에게 다가와 인상을 찌푸리며 천원 한 장을 꺼냈다.

노인이 말했다.


"이거 받고 조용히 해."


그러나 거지는 냉큼 받지 않았다.

고개를 숙이지도 않았고 오히려 웃으며 "하하. 그런 이유라면 괜찮습니다, 아버님." 하며 거절하는 것이었다.


돈이 부족했던 걸까?

삼규석은 천원 한 장을 더 얹으며 다시 한번 요구했다.


"그럼 딴데 가서 해."


2천원이면 편의점에서 삼각 김밥 한 개와 컵라면 한 개를 먹을 수 있는 가격이다.

삼규석은 거지에게 줄 돈의 값어치를 빠르게 계산했다.


"아버님, 예수님이 당신을 사랑하십니다."


'사랑 좋아하네.'


기독교는 참 사랑 소리를 좋아 했다.


'마음 약해 빠진 놈들이나 좋아할 얘기지.'


역시 자신은 그런 인간들 보다 나았다.

지금껏 살면서 단 한 번도 교회를 가거나 절이나 성당에 발을 들인 적이 없었다. 이건 그의 자부심 중 하나였다.

애초에 예수를 믿었다면 김명숙이 살아 있었을 때에나 가능했을지 몰라도 지금은 전혀 가능성이 없는 얘기다.


'고개가 뻣뻣해선. 쯧.'


그리고 뒤를 돌려는 순간, 거지가 물었다.


"비닐 봉지에 든 건 뭐예요? 주실 거면 그거 주세요."

"주인 있어."


비닐 봉지 안에는 편의점 폐기가 들어 있었다.

삼각김밥, 요거트, 젤리 등 총 7가지.

삼규석은 폐기를 늘 챙겼다.


'돈 받기는 자존심 상하고 음식은 괜찮다는 거야?'


"돈 받기 싫음 그만 둬."

"손자들 주시려구요?"


'손자 좋아 하네.'


삼규석은 손자는 커녕 애도 없었다.

살면서 수 없이 들어왔던 질문.

그는 입꼬리를 비틀며 대답했다.


"흥, 동네 애들 줄 거야."

"그래요? 좋은 일 하시네요."

"어, 알아."


노인은 시큰둥하게 대답하곤 뒤돌아 노인석으로 표시된 곳으로 이동했다.


"그래도 아버님, 행위로 구원 받을 수 없어요. 예수님 믿어야 구원 받아요."


거지가 따라 오며 말했다.

노인을 포교 대상으로 삼은 듯 했다.

그러나 삼규석은 속으로 그런 거지를 비웃었다.


'김명숙도 못한 걸 네가? 멍청한 놈.'


"나 팔 십이야."


거지는 노인이 무슨 소리를 하나 싶어 잠자코 들었다.


"한 두 번 들은 줄 알아? 천 번, 만 번 말해 봐라. 내가 예수 믿나."

"..."


거지가 잠시 침묵하더니 대답했다.


"아버님, 제가 2천원 받지 않았잖아요. 그럼 제 부탁 한 번만 들어주세요."

"뭐?"


'뭐가 어쩌고 어째?'


삼규석은 황당하기 짝이 그지 없었다.

이 건방진 거지 놈이 자기가 베푼 돈을 거절해놓고 이젠 그 돈을 받지 않았으니 대가로 부탁을 들어 달라니?


어이가 없어 헛웃음이 나와 화를 낼 타이밍을 놓쳤다.

이 고얀 놈이 무슨 부탁을 할까 궁금했다.


'들어나 보자. 이런 웃긴 놈은 처음 보네.'


"뭔데."


그러자 거지가 손에 쥐고 있던 책 하나를 건내며 말했다.


"선물이예요. 꼭 한 번 읽어보세요." 하고 내민 건, 닳고 닳은 성경책 한 권이었다.


'언제 쥐고 있었지?'


그러나 거지가 성경책을 들고 있던, 들고 있지 않던 그의 관심사는 그게 아니었다.


'명숙이도 이걸 읽었는데.'


과거 김명숙이 읽던 중고 성경책이 머리 속을 스쳐 지나 갔다.

그땐 당구장을 막 시작했던 때라 그리 풍족하지 않아 마음이 팍팍하고 여유가 없었던 시절이다.

그때를 생각하면 싸우기만 하다가 젊은 나이에 죽은 여자를 생각하면 짠한 마음이 들었다.


'남편을 믿어야지. 왜 있지도 않는 예수를 믿어 가지고.'


삼규석은 거지가 내민 책을 받을 생각이 없었으나, 김명숙 생각을 하는 사이에 관성적으로 손을 뻗었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손에 책이 쥐여 있었고 거지는 그새 어디 가버렸는지 보이지 않았다.


'아차!'


삼규석은 금새 짜증을 났다.


"에라이, 그 여편네 때문에 거지 같은 거 하나 받았네. 퉷!"


가는 길에 쓰레기통이 보이면 버려야 겠다며 다짐하고는 그걸 비닐 봉지에 집어 넣었다.

그리고는 곧 그걸 잊어 버렸다.


다시 상기하게 되었을 때는 집 근처 동네 아이들이 그가 내민 비닐 봉지를 뒤적이었을 무렵이다.


*


"욕할범, 이건 뭐야?"


첫째 미영이가 비닐 봉지 속 책을 꺼내며 물었다.


"보면 몰라?"

"욕할범 또 승질낸다! 얼리레 꼴리리!"

"꺄르륵!"


아이들은 삼규석을 좋아 한다.

성격은 고약하지만 맛있는 걸 매일 주기 때문이다.

아이들은 삼규석을 욕쟁이 할머니 별명을 따서 욕쟁이 할아버지라 짓고 단어를 줄여 욕할범이라 불렀다.

삼규석도 처음엔 호되게 혼을 냈지만 오히려 이 장난꾸러기들에게 놀림꺼리만 선사한다는 걸 알게 되자 그만 두었다.

허나 이미 그를 부르는 호칭은 욕할범으로 자리잡은 후 였다.


"씁! 그럼 다음에 간식 안 가져 온다?"

"에이, 우리 말고는 친구도 없으면서!"

"떽!"

"성..경...책! 성경책이야! 나 잘 읽었어?"

"그래, 이제 잘 읽네."

"그치! 헤헤. 나 이제 글씨 잘 읽어!"


막내인 보라의 말이 끝나자, 아이들은 욕할범을 바라보며 조용해졌다.

병아리들이 어미 닭을 바라보듯이 아이들이 그의 말을 기다리는 모습에 삼규석은 우쭐한 마음으로 입을 열었다.

아이들이 그의 말에 집중했다.


"저번에는 창수부터 골랐고 미영이가 마지막이였으니 이번에는 미영이 부터 고르고 창수가 마지막이다!"

"야호! 내가 첫번째다!"


미영이가 주먹을 하늘 높이 뻗으며 기뻐했고 창수는 입술을 삐죽이며 시무룩해 했다.


"미영아! 너 뭐 고를 거야? 난 두번째야. 요거트 먹고 싶은데 나랑 반씩 나눠 먹자!"

"야, 그런 게 어딧어? 미영아, 난 젤리 양보해 줘. 나 젤리 먹고 싶어."


삼규석은 아이들 사이에서 그가 간식을 가져오면 고르는 순서를 정해주는 역할을 맡고 있다.

간식을 다 고른 아이들이 동이 나 버린 검정 비닐 봉지를 삼규석 손에 넘겼다.

묵직했다.


'뭐지? 애들이 간식을 남겨 놓을 일이 없는데...' 하고 보니 그 성경책이었다.


삼규석은 책을 꺼내어 처리할 심산으로 애들에게 권했다.


"책 읽어라. 안 읽으면 나중에 머리 뽕구라된다."

"그거 재미없어!"

"너무 두꺼워, 싫어!"

"그림이 하나도 없는 걸!"

"예끼! 책을 가리면 못 써!"


그때 보라가 한 말이 삼규석 가슴에 꽃혔다.


"그럼 욕할범이나 읽어! 할배가 책 읽는 거 한~번~도 본 적이 없어!"

"맞아!"

"할배도 안 읽으면서~"


삼규석은 아이들의 놀림 섞인 말에 자신도 책 읽는다며 버럭 화를 내려했다가 다시 생각해보니 자기가 책을 폈던 기억이 떠오르지가 않았다는 걸 깨달았다.

삼규석은 그 사실에 충격을 받았다.

민망함이 몰려 왔다.

자신은 책 읽지도 않으면서 애들보고는 읽으라고 하다니.

그 마음을 숨기고자 "예끼, 이놈들!" 하고 버럭 소리를 치려는 찰나,


"그거 읽을 바에 이게 더 재미있어! 짠~"


미영이가 만화 캐릭터가 그려진 책을 자랑하듯 보여 줬다.

책 제목은 그리스 로마 신화였다.

미영이가 책을 보여 준답시고 책을 펼치자, 웬 여자가 젖가슴을 들어내고 갖난 아이가 모유를 먹는 장면이 등장했다.


"아이쿠, 망상스럽게!"


삼규석은 아이들이 이런 요망한 그림을 부끄럽지도 않은지 자기에게 보여주는 게 마치 자기가 아이들 앞에서 성인 비디오를 보다 걸린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꺄르륵!"

"에헤헤~ 할배 얼굴 빨게 졌대요!"

"이놈 시끼들!"

"할배도 읽고 싶지? 이게 학교에서 얼마나 인기가 많은데!"

"얼씨구? 그것보다 이게 더 재미있을 지 어떻게 알아?"


그의 속마음은 '당연히 재미 없지!' 하고 확신하고 있었다.


"그럼 우리 대결이야!"

"뭔 대결?"

"내일 책 읽고 재미있는 거 설명해서 둘 중에 뭐가 더 재미있는지 대결해!"

"대결해! 대결해!"

"이기는 사람 우리 편!"


남자애들은 대결이라면 좋다고 상황을 부축였다.


"지는 사람이 아이스크림 쏘기!"

"오오!"


'이게 아닌데.'


삼규석의 의도와 다르게 흘러가는 상황 때문에 이제서야 은근 슬쩍 발을 빼려 했다.

그때,


"할배, 나는 아이스크림 말고 복숭아 젤리!"


보라가 몽글몽글한 시선으로 아래에서 위로 그를 바라보자, 그냥 모르는 척 져주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는 마음이 들었다.

그러나 남자애들이 그 생각을 더 이어가지 못하게 했다.


"지는 사람은 벌칙으로 인디안 밥 맞기!"

"할배가 질 걸?"

"난 미영이한테 한 표!"

"이 녀석들! 내가 이기면 내일 간식은 없어!"

"에이, 치사해!"


그 생각도 쏙 들어갈 만큼 얄미운 말썽쟁이들이었다.


*


시끌벅적한 아이들을 집으로 돌려 보내고, 삼규석은 어둑해진 거리를 걸으며 집으로 돌아왔다.

고요한 적막이 그를 반겼다.

삼규석은 집을 꾸미는데 취미가 없었으므로 그의 집 내부는 침대와 소파 그리고 바퀴 달린 2인용 테이블이 전부이다.

부엌 밑 수납장에 걸린 쓰레기봉지와 소파 옆에 위치한 쓰레기통을 제외하고는 쓰레기 하나 없없다.

아무도 초대 받은 적 없는 이 곳에 만약 삼규석을 조금이라도 아는 사람이 방문하게 된다면 '의외인데?' 라고 생각할 만큼, 살림할 여자도 없이 노인 혼자 사는 집 치고는 깨끗했다.


삼규석은 테이블 위에 검은 비닐 봉지를 놓고는 입은 옷을 모두 벋어 세탁기에 집어 넣고 샤워를 마친 후 닦은 수건을 세탁기를 돌렸다.

수 많은 반복으로 인해 몸에 베여 있는 습관이다.


삼규석은 미지근한 물을 한 잔 마시고는 늦은 저녁을 차렸다.

소분해둔 냉동 밥을 전자레인지에 돌리고 전 일 덜어 놓았던 육개장을 데웠다.

매콤한 국물에 밥을 잘 말아 후후 불어 한 큰 술 국물을 떠 마셨다.

후룩.

술 생각이 떠올랐지만 애써 무시했다.

알코올 중독에 담배까지 하는 성격 괴팍한 노인네를 자기 애들과 가까이 하게 둘 부모는 없다.


'욕하는 것도 못마땅해 하는데, 뭘. 지들이 못마땅해 하든 말든. 애들이 나한테 오는데 지들이 어쩔 거야?'


애써 그리 생각했지만 부모가 막으면 애들도 어쩔 수 없다는 걸 알았다.


*


잘 시간이 되었다.

그런데 오늘따라 잠은 커녕 정신이 말짱했다.


'내일 할 게 있나?'

'없지.'

'밥 먹고 오후에 폐기 모아서 애들 주고.'

'또 할 게 뭐 있지?'

'아, 대결.'


검은 봉다리에 들어 있는 거지가 준 책이 떠올랐다.


'이 녀석들 감히 할애비를 이겨 먹을라 그래? 괘씸한 것들!'

'지들만 학교 다녔냐? 나도 다녔어!'

'언제 적에 마지막으로 공부를 했더라?'


저 먼 옛날 학교 다녔던 시절이 떠올랐다.


'다 자라고서는 장사를 했지.'


당구장, 골프장... 카페... 편의점.


'쉬지도 않고 왔네.'


'내 나이가 80이야!'


거지한테 외쳤던 자신의 말이 머릿 속을 맴돌았다.


'팔십...'


아이가 없어서 그런가, 예전은 안 그랬는데 요즘엔 아이들이 너무 예뻐 보였다.

이제 사는 날보다 죽을 날이 가까워진 삼규석은 아이들이 조금은 부럽기도 했다.


'근데 이 노인장을 놀려 먹어?'


다시 괘씸한 마음이 도졌다.

삼규석은 침대에 누워 있다 벌떡 몸을 일으켰다.

전등을 키고는 식탁 위에 아무렇게나 방치 되어 있던 성경책을 펼쳤다.


창세기.


난생 처음 보는 단어다.


'무슨 뜻이지?'


갑자기 읽고 싶은 마음이 조금 줄어 들었다.


'애들이 무슨 뜻이냐고 물으면 뭐라고 대답하지?'


일단 읽기로 마음 먹었으니 삼규석이 의자에 앉고는 첫 문장을 읽었다.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삼규석은 그 문장을 읽는 즉시 책을 덮었다.


'얼씨구.'


읽고 싶은 마음이 사라졌다.

뜬금 없고 마치 하늘에 구름을 잡는 헛소리를 써놓았다.

현실적이고 보이는 것만 믿으며 평생을 살아온 삼규석한테 지루하고도 가치없는 얘기였다.


'저걸 믿는 예수쟁이들은 제정신인가?'

'아, 제정신이 아니니까 믿겠지.'

'그 놈들 말로 이겨 먹으면 참 좋을 텐데.'


그들 앞에서 논리정현하게 성경을 인용하며 지식인인 체 할 자신을 상상하니 어깨가 으쓱여졌다.


'그럴 일은 없겠지만.'


삼규석은 다시 첫 페이지를 펼쳤다.


'애들한텐 이런 허무맹랑한 책 읽지 말라고 말해 줘야 겠어.'


그렇게 다짐하며 그의 논리를 뒷받침하기 위해 읽어 나가기 시작했다.


*


"하암."


삼규석은 크게 하품했다.

성경은 참 잠이 잘 오는 책이다.

한 페이지를 다 읽지도 않았는데 누우면 잠이 잘 올 듯 했다.


내용은 삼규석 마음에 와닿는 부분은 하나도 없었다.

애들한테는 설화 하나로 천지 창조를 이야기하면 되겠구나 생각하며 불을 끄고 자리에 누웠다.


그때 삼규석이 어둠 속에서 번뜩 눈을 뜨더니 방 모서리를 바라보며 소리쳤다.


"누구야!"


침대 옆에 있는 야구 방망이를 손에 쥐었다.

이 곳에 자신 말고 침입자가 있었다.


삼규석이 전등 리모콘으로 불을 키려고 하였으나 그새 배터리가 나간 건지 켜지지가 않았다.

리모컨을 침대 위에 던지고 바닥에 한 발을 조심스레 내려 놓았다.


그의 재산을 노린 강도일까?


'누굴까? 친척? 동네 가게 사장? 아니면...'


떠오르는 사람들이 너무 많아 한 명으로 특정할 수 없었다.


'아니다. 사람이 아닐 수도 있어.'

'바퀴벌레? 아니야.'

'그럼 귀신?'


"귀신이면 썩 물러가라!" 그리 외치며 야구 방망이를 마구잡이로 휘둘렀다.


"헉! 헉..."


있는 힘껏 휘둘렀지만 아무 것도 없었다.

그러나 분명 여기에 무언가 있는 건 확실했다.


'조현증인가?'

'이제 내가 정신적으로 병이 들었나?'


"누구시오?! 나오시요!"


아무리 소리쳐도 대답은 들려오지 않았다.


그때, 그의 머리 속에 울림이 들렸다.


"태초에 신이 세상을 만들었다."


울림이 들리자, 삼규석 앞에 영화 장면처럼 영상이 그려졌다.

삼규석은 그 울림을 '외계인?' 하며 짐작했다.


"빛이 있으라." 하니, 빛이 생겼다.


어둠 속에 서 있던 삼규석이 눈이 부셔서 제대로 눈을 뜰 수 없었다.


그 울림이 보여 준 장면에서 어둠에서 빛이 생겼으나 이는 삼규석이 아는 낮과 밤이 아니었다.

그 둘은 한 공간에 존재하나 구분되어 있었다.

이 빛은 에너지를 말하기도 했다.


그의 앞에는 푸른 공 하나와 물이 무중력 상태로 부유하고 있었다.


'저건 지구다.'


삼규석이 자신의 생각에 깜짝 놀랐다.


'저게 지구인지 어떻게 알아?'


그러나 삼규석은 그게 지구라는 걸 알았다.


그 울림이 설명하지 않았음에도 설명하지 않은 것들에 대해 삼규석은 이해할 수 있었다.


"물과 물로 나뉘라." 하니, 하늘을 사이에 두고 물 하나는 하늘 위로, 다른 하나는 하늘 아래로 나뉘었다.

하늘 아래의 물은 바다였고 하늘 위의 물은 물층이라 불렀는데 그건 삼규석이 한 번도 보지 못한 것이었다.


'지금은 왜 없지?'


궁금증이 일었지만 대답은 없었다.


"뭍이 드러나라." 하니, 바다가 갈라지고 밑에 있던 땅이 들어났다.

태양이 없었으나 풀과 채소와 나무가 땅에서 자라 났다.

삼규석이 아는 과일과 채소도 있었지만 모르는 열매도 있었다.


삼규석은 식물이 에너지의 주체인 빛을 받음으로 성장했다는 걸 이해했다.


이제 삼규석은 그가 본 것들로 인해 세상의 큰 틀이 구축되었다는 걸 깨달았다.


처음은 빛과 어둠, 두번째는 하늘과 바다, 세번째는 땅과 식물이 만들어 졌다.

네번째 부터는 이 틀을 토대로 세부 사항들이 만들어 졌다.


같은 공간에 존재하던 빛과 어둠은 이제 삼규석이 아는 형태로 바뀌었다.

해는 낮을, 달과 별은 밤을 관리하였고 이때서야 시간이란 개념이 생겼다.


여섯 번째로 땅에 각종 동물들이 만들어졌다.

그 중에 삼규석이 놀란 건, 지금은 화석으로만 볼 수 있던 매머드와 공룡이 그 만들어진 것들 중에 있었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사람이 만들어졌다.


남자, 곧 아담.

신이 처음으로 만든 사람.

삼규석은 성경을 읽지 않아도 아담과 하와 (혹은 이브) 이야기는 들어 알고 있다.

삼규석은 그 남자를 보자마자 그가 아담이란 걸 깨달았다.


영상은 희미해졌고 삼규석이 번뜩 눈을 뜨자, 아침이었다.


'어? 뭐지. 이상한데...'


삼규석은 무언가 이상하다는 느낌을 받았으나 무엇이 이상한지 알지 못했다.

그는 자신이 꾼 꿈을 기억하지 못했다.


작가의말

창세기 1장 1-27절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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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 ' 2

  • 작성자
    Lv.10 톨레도트
    작성일
    23.06.08 16:58
    No. 1

    작가님, 혹시 목사님이세요??

    찬성: 0 | 반대: 0

  • 답글
    작성자
    Lv.55 가시나무1
    작성일
    23.06.09 12:24
    No. 2

    ㅎㅎ 그냥 기독교인 입니다.
    성경은 기독교인인 저도 읽기 어려워서 (이해가 안 되는 부분들이 많아서)
    주인공이 던지는 질문들(제 궁금증들)도 해소하고
    일독 좀 해보자는 마음으로 시작했습니다.

    찬성: 1 | 반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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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 살렘 왕 멜기세덱, 하나님이 아브람과 맺은 계약과 예언 24.08.14 3 0 11쪽
29 엘람 대 소돔 전쟁, 롯이 사로잡히다 24.08.09 4 0 9쪽
28 아브람과 롯, 법을 모른다고 하여 벌을 피할 수 없다 24.08.05 6 0 13쪽
27 파라오에게 내려진 재앙과 하갈 24.02.28 11 0 14쪽
26 파라오3, 아브람5 (가나안 기근) 24.02.13 6 0 13쪽
25 파라오2 24.01.30 7 0 18쪽
24 아브람4, 이집트 통지자 바로(파라오=Pharaoh) 23.12.22 11 0 13쪽
23 아브람3, 니므롯과 아브람의 꿈 23.12.01 10 0 13쪽
22 아브람2 23.11.24 19 0 13쪽
21 아브람 23.11.24 9 0 12쪽
20 바벨탑1 23.11.03 9 0 13쪽
19 아브람, 바벨탑 23.10.27 10 0 13쪽
18 니므롯과 데라 그리고 아브람 23.10.19 17 0 13쪽
17 노아의 족보, 여호와 앞에 강한 사냥꾼 니므롯 23.10.13 16 0 13쪽
16 노아의 예언, 셈과 함과 야벳 23.08.19 16 0 13쪽
15 노아의 실수와 수치, 사랑의 태도 23.08.03 21 1 13쪽
14 노아의 제사1, 연약의 증표: 무지개 23.08.01 24 1 12쪽
13 방주와 새, 노아의 제사 23.07.21 26 0 13쪽
12 대홍수심판2 23.07.18 26 0 16쪽
11 대홍수심판1 23.07.12 29 0 13쪽
10 대홍수심판, 하늘의 창이 열리다 23.07.10 30 0 14쪽
9 노아와 방주 23.07.05 28 0 13쪽
8 악인과 심판, 위로와 안식1, 노아와 방주 23.07.03 31 0 15쪽
7 아담의 계보1, 에녹의 승천, 좋아하는 모든 여자를 아내로 삼다 23.06.29 37 0 11쪽
6 아담의 계보, 가인의 계보, 라멕을 위하여 벌이 77배, 위로와 안식 23.06.24 42 0 16쪽
5 가인이 받은 표의 의미 23.06.17 46 0 14쪽
4 첫번째 제사(예배), 가인과 아벨, 첫번째 살인 +3 23.06.08 59 1 16쪽
3 선악과를 먹지 말라 하신 이유, 첫번째 예언 23.05.27 69 1 14쪽
2 사람이 돼지보다 귀한 이유, 아담과 하와 23.05.25 99 1 16쪽
» 천지창조 +2 23.05.23 182 3 2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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