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화. 협상
< 6화 >
-달각
강충재는 사방이 검은색으로 막혀있는, 적막이 흐르는 취조실에 앉아 어떻게 하면 이 상황을 잘 대처해 나갈 수 있을지 생각해 봤지만, 사실 희망은 별로 없어 보였다.
건물이 부서지고 자기 부하를 포함해서 사람이 워낙 많이 죽은 사건이라서 잘못하면 살아남은 자신이 전부 뒤집어쓰고 최고형까지 구형받을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강충재는 긴장으로 인해 총알이 스쳐 지나갔던 뺨과 어깨의 상처가 욱신거렸지만, ‘호랑이 굴에 들어가도 정신만 바짝 차리면 산다.’라는 속담을 생각하며 정신을 다잡았다.
앞에 앉은 경찰들은 준비가 된 듯 그의 안색을 살피고 있었고, 상의가 끝났는지 취조를 시작하려고 했다.
“그럼, 준비되셨으면 시작하겠습니다!”
“······.”
강충재 앞에 마주 앉은 경찰들이 압박하듯 말했고, 강충재는 대답 대신에 준비한 AI 변호사를 불러냈다.
-삑
“강.충.재.님을 담당하게 된 AI-안 변호사입니다. 대화 내용은 녹음되며, 기록된 모든 내용은 법적 증거로 사용될 수 있습니다.”
“후ㅡ.”
경찰은 강충재가 AI 변호사를 켜자마자, 바로 티 나게 한숨을 내쉬었다.
상대방이 어떤 프로그램의 AI를 선택했느냐에 따라 대응 방법도 현저하게 달라지기 때문이었다. 사건 전반이 녹화되어 있었으나, 폭발로 인해 많은 내용이 소실된 상태이기도 했다.
무엇보다 대부분의 사람이 사망한 상태여서 강충재의 진술이 매우 중요한 상황이라 경찰은 까다로운 AI 변호사를 만나고 싶지 않았다.
가뜩이나 실적 문제로 위에서 쪼이고 있었는데, 명확해 보이는 사건까지 복잡하게 진행되는 건 사양이었다.
“잠깐만···, 변호사를 써도 상관은 없는데, 일단 우리 조건을 들어보시죠?”
“지금 대화는 정당한 권리를 침···.”
-삑
상관없다는 것 치고는 다급한 느낌으로 경찰이 앱을 끄라고 손짓하며 말했고, 옆에 있던 경찰은 재빨리 강충재의 변호사 앱을 껐다.
“뭐···, 하시는 겁니까?”
-삑
강충재는 경찰의 무력 대응에 항의하며, 재빨리 꺼진 변호사 앱을 다시 켰다.
“지문인식으로 추정···. 취조 중에 불합리한 사건이 일어난 점을 기록하겠···.”
-삑
또다시 AI 변호사가 몇 마디를 하기도 전에 경찰이 앱을 꺼버렸다.
“왜 이러시는 거죠?”
-삑
-삑
강충재가 항의하며 다시 앱을 켜자 경찰은 이번엔 대답도 없이 재빨리 앱을 꺼버렸다.
“하···.”
디지털 변호사가 생긴 이래로 실행 과정에 문제가 생길 수도 있다는 우려의 말은 들어봤지만, 실제로 무력으로 앱을 실행시킬 수 없는 상황이 펼쳐질 줄은 몰랐던 터라 강충재는 약간 당황했다.
강충재의 범죄 정황은 매우 높은 편이었고, 불리한 판결이 예측되는 사건의 경우 변호사들이 꺼리는 경우가 많은데다가 고액을 요구하는 상황도 잦아서 할 수 없이 AI 변호사를 선택했던 것이었다.
게다가 앞에서 벌어진 폭력 사건을 근거로 모든 재산이 압류되었고, 강충재는 과다한 소송비용을 감내할 수 없는 처지였다.
이런 상황에서 수갑이라도 확- 채워 앱을 클릭할 수도 없게 된다면···?
AI 변호사고 나발이고 소용없는 일이 될 테고, 경찰은 디지털 변호사를 허용했지만, ‘용의자가 사용하지 않아서 어쩔 수 없었다.’라는 식의 핑계라도 댄다면 인권이 높다 한들 이미 조직범죄와 살인이 얽힌 용의자에게 여론이 많은 아량을 베풀어 줄 것 같지는 않았다.
그리고 절망에 빠진 강충재가 다시금 앱 실행 버튼을 누르려고 하자, 경찰이 팔을 잡아들어 저지했다.
“아···.”
“이러지 말고 우리 좋게 협상하시지요?”
웃으면서 좋게 얘기하자고 하는 것치곤 무서웠다.
팔까지 잡힌 강충재는 순간적으로 자신과 경찰 둘 중에 누가 폭력배인지 헷갈렸지만, 애써 정신을 바짝 차리곤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일단 말이라도 들어보자···.’ 사실 지금 상황에선 그거 말곤 방도가 없을 것도 같았다.
“···그럽시다!”
인내로 마음을 꾹 누른 채, 강충재는 슬쩍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러자 경찰들은 순간의 공포를 숨기지 못하고 얼굴을 어색하게 일그러트렸다.
강충재로서는 지금까지 중에서 가장 호의적인 표정이었으나, 다른 경찰들에게 그의 웃는 모습은 사실 험상궂은 비웃음을 포함한 협박이었다.
그가 앉은 곳에서부터 올라오는 묵직한 위압감과 근육으로 다져진 강인한 몸매, 각진 턱, 웃음조차 허용하지 않는 살벌한 눈매.
강충재의 얼굴은 사실상 폭력 그 자체였다.
경찰은 직책에 맞게 모두 위엄을 챙기며 내색을 하진 않았지만, 잔뜩 쪼그라든 심장을 다스리며 태연한 척 말을 걸었다.
-탁
“강충재 씨. 지금 두목이 누굽니까?”
“일단···. 전 아니죠?”
“여기 들어와서 이 일을 지시한 사람이 누구냐고?!”
강충재가 살기 위해 모른 척 발뺌하자, 폭파로 얼룩졌던 시설물 자료를 손으로 가리키며 옆에 있던 경찰이 갑자기 소리를 지르기 시작했다.
이상하게도 조금 전에 좋게 협상하자고 했던 것과는 너무도 다른 말투였다.
“···전 아닙···니다?”
“뭐야?! 네가 아니라면 누구라는 거야?! 여기 제일 앞서서 걷고 있잖아?! 덩치도 제일 크고! 맨 앞에 있고!”
“······어?!”
경찰은 갑자기 강충재의 멱살을 붙들고, 침을 튀기며 화를 내기 시작했다.
조금도 좋게 얘기하는 태도가 아니라서 강충재는 적잖이 당황했고, 멱살을 움켜쥔 경찰의 손도 예사 힘이 아니라 목도 심하게 조여오고 있었다.
“저기···, 남 형사?!”
“···왜 이러세요?!”
갑작스러운 상황에 놀란 다른 경찰이 강충재의 멱살을 잡고 있던 남 형사의 팔을 있는 힘껏 저지하여 둘을 떼어냈다.
강충재는 무척 당황스러웠지만 여기서 소란을 부린다면 자신한테 불리하게 돌아가게 될 거라는 걸 잘 알고 있어서 그대로 참을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두목 일을 하던 때는 이보다 더 한 경우도 많았던지라, 생각보다 경찰의 행동이 위협적으로 느껴지진 않았다. 하지만 그래도 조금 이상하기는 했다.
“이거 놔!! 아이···씨!”
“···뭐야? 이거?! 왜 이래?! 밖에 누구 없어?!”
-쾅쾅
강충재의 멱살을 잡았던 경찰은 분이 안 풀렸는지 갑자기 벽과 테이블 바닥을 발로 쿵쿵 내려치며 난동을 부리기 시작했고, 다른 경찰은 남 형사의 이상행동을 말리며 소리쳐 동료들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쾅 탁탁
“아! 죄송합니다! 프로그램이 오작동한 것 같습니다!”
곧바로 취조실로 당황한 경찰들이 몰려왔고, 사람인 줄 알았던 ‘남 형사’ 로봇을 사과하며 밖으로 끌고 나갔다.
잘못된 모델을 덮어씌운 것 같다면서 서로 싸우기 시작하더니, 여러 상의를 거친 후 마지막 사람까지 거수경례하고 나갔고, 강충재만 남은 방은 다시 조용한 상태가 되었다.
사실 경찰 입장에서는 엄청난 인명피해와 재산파괴를 동반한 폭력 사건의 두목인 강충재를 면담하려면 웬만한 사람으로는 안 되겠다는 내부 논의가 있었다.
모두 강충재의 인상만 보고도 상대방에게 취조를 미루는 상황이라, 경찰 역사 중에서 제일 강력했던 사람의 성격을 벤치마킹해서 그 행동양식을 선발한 후, 로봇에 프로그램을 입력해서 취조를 진행하려고 했었지만, 오히려 상황은 더 난장판이 되고 말았다.
결국 경찰들이 다급히 내부 조정을 하는 사이에 위에서 지시가 들어온 사안으로 협의를 진행하기로 결정했고, 매우 드문 경우로 윗선에서 경찰이 파견되어 취조실로 들어오게 되었다.
-달각
“아···, 조금 전에 있었던 일은 내가 대신 사과하겠네! 그···, 전에 경찰과 안에 성격이 조금 괴팍한 사람이 있었는데, 그 사람의 행동을 AI가 잘못 인식한 거 같아!”
새롭게 들어온 경찰이 강충재한테 짧게 사과하며 말했다.
“아참, 난 김한규 과장이라고 하네. 김 과장이라고 부르셔도 됩니다!”
“아···, 네!”
김 과장은 묘하게 반말과 존댓말을 섞어 쓰고 있었지만, 상대방의 침착한 말투에 강충재는 조심히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아무래도 한동안 소란스럽던 경찰 내부의 일들은 이제 좀 정리가 된 모양이었다.
“우리가 조사해 본 바로는 자네가 두목인 거 같은데···, 사실 행동대장이거나 조직원이어도 결과는 그리 다르지 않을 거야!”
“······.”
갑자기 본론으로 넘어가는 김 과장의 말을 강충재는 가만히 듣고 있었다.
처음에 취조실에 있었던 경찰하고는 급수가 다른 듯 그의 말에는 힘이 있었고, 자신의 미래를 뻔히 내다보고 있는 것 같기도 했다.
“무기징역이냐 사형이냐···, 그런 문제일 텐데! 난 이 사건을 다른 방향으로 해결하고 싶어서 온 걸세!”
“아, 네···!”
역시···, 특수 강력범죄의 경우는 어차피 감옥에서 오래 살거나, 죽거나 둘 중 하나일 듯싶었는데 다른 방향의 해결이라니···!
무슨 얘기를 하려는지는 몰라도, 강충재가 듣기에 그리 나쁜 얘기 같진 않았다.
“지금부터 하는 얘기는 일급비밀이라서 조금이라도 내용이 밖으로 유출되면, 합의는 없던 것으로 하겠네. 동의하나?”
김과장은 손을 조그마한 구멍도 없이 오므리면서 눈을 빛냈다.
침착하게 말을 시작하는 김과장의 태도에선 왠지 거부하기 힘든 아우라가 느껴졌다.
“네!”
강충재는 저도 모르게 홀린 듯 대답했다.
“두 가지 방법이 있는데···. 흠···.”
김과장은 잠시 말하기가 머뭇거려지는지 손으로 이마를 한번 스윽 긁었다.
“첫째로는···, 그···, 자네 조직원들이 가고 싶어 했던 그 게임에 보내줄 수 있네.”
게임에 보내줄 수 있다고···?
강충재는 자신이 뭘 잘 못 들은 게 아닌가 생각했다.
조직원들이 그리도 가고 싶어 했고, 심지어 자신의 형도 그곳을 찾아 나서서 실종되었었는데···, 그곳을 여기서 보내줄 수 있다고?
답이 없는 무궁무진한 질문의 꼬리표 속에서 강충재는 너무도 혼란스러웠다.
질문할 것이 넘쳐흐르는 이상한 조건이었다.
“둘째로는 연구를 돕는 목적의 공무원이 되면서 형량을 깎는 방법이 있네.”
“···무슨 말입니까?”
강충재는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는 선택지를 놓고 되물었다.
무기징역이냐 사형이냐를 논해야 할 시점에 가져온 제안이었다.
어떤 의도가 있는 건지 조건만을 들었을 때는 감히 짐작하기가 어려웠다.
“이게 설명하기가 어려운데, 둘 중의 하나만 선택할 수 있고, 지금 대답해야 해!”
“네···? 지금요? 질문도 할 수 없나요?”
“···인생에서 때론 빨간 휴지와 파란 휴지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할 때가 있네.”
불쑥 들어온 김과장의 말에 강충재는 이게 무슨 처녀 귀신이 화장실에서 똥 닦는 소리인가···. 라고 생각했다.
괴담 속의 빨간 휴지 줄까? 파란 휴지 줄까? 에서는 뭘 선택하든 결국 죽게 된다.
중요한 순간에 들어온 제안치곤 둘 중에 뭘 선택하든 안 좋은 결과가 될 것이라는 뜻인 것만 같아서 강충재는 선뜻 선택하기가 어려웠다.
“···지금 말해야 한다는 거죠?”
강충재의 말에 김과장은 무겁게 한번 고개를 끄덕였다.
생각해 보면 묘한 결정의 순간이었다.
어쩌면 그동안 강충재가 그토록 바라던 결과였을지도 몰랐다. 자연스레 원하지도 않던 형의 역할, 두목의 자리를 바지처럼 차지하게 된 후부터 해방되고 싶다는 울림이 끊이지 않았었다.
이들이 원하는 일을 하고 형량을 깎고 난 후에는 평소 본인이 좋아하던 운동을 하고 나태한 여가를 보내고 그런 꿈같은 생활을 다시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하지만···, 반면에 게임에 들어가면 형을 다시 만날 수 있을지도 몰랐다.
강충재는 아무런 정보도 없이 둘 중에 하나를 선택하기가 너무 힘들었다.
어디 가서 상의도 할 수도 없고, 말하면 합의는 없던 것으로 한다고 하니 답답하기 이를 데 없었다.
강충재가 고민하며 시간을 끌자, 김과장의 눈과 머리가 재촉하듯 움직였다.
“···신문지를 선택하는 방법은 없는 거죠?”
“······.”
예상외의 질척거림에 김과장의 머리가 한순간 멈칫했다.
매우 짧고도 긴 시간이 흐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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