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8화. SC복지 센터 7
< 58화 >
-덜컹
김용춘은 상체를 앞으로 내밀며 손을 꽉 쥐며 설명을 이어 나갔다.
“제가 정신을 차렸을 때는 뭔지 모를 실 같은 것들이 제 몸 전체를 둘러싸고 있었어요. 고치가 제 몸을 꽉 죄고 있었죠. 전 힘껏 몸부림을 쳐봤지만, 꼼짝할 수가 없었어요.”
대체 그에게 무슨 일이 벌어진 건지 전혀 짐작이 안 되는 상황이었다.
“전 너무 무서웠어요! 얼마나 무서웠는지 말도 안 나오더라고요! 공포에 짓눌려 덜덜 떨다가 문득 정신을 차려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이렇게 어딘지도 모르는 곳에서 영문도 모르는 채 죽을 수는 없다고 생각했죠!”
김용춘을 손을 덜덜 떨면서 설명을 이어 나갔다.
“절 감싸고 있던 얇은 실을 입으로 물어서 끊어내기 시작했어요. 한참 만에 겨우 틈이 생기고 밖을 볼 수 있을 정도로 구멍이 생겼죠. 숨을 내쉬면서 간신히 그 틈으로 밖을 쳐다봤더니, 맞은편에도 고치가 있었어요.”
사람을 납치해서 고치로 만들어 놓았다니 예삿일은 아니었다.
“처음에는 그 괴상한 고치에서 괴물이 튀어나올까 봐 무서웠지만, 곧 저와 같은 희생자가 갇혀있을 가능성이 높다는 생각이 들었죠. 그리고 이 끈적끈적한 고치가 절 녹여서 번데기로 만들어 버리는 건 아닌지 두려웠어요.”
상황 자체가 비현실적이라 듣는 사람들도 어떻게 될지 예단하기 힘들었다.
“그렇게 온갖 해괴망측한 생각이 들 때였어요. 어디서 이상한 소리와 함께 퀴퀴한 냄새가 풍겨오기 시작했어요. 폐가에 들어갔을 때 처음 맡았던, 바로 그 이상한 냄새였어요!”
사람들은 김용춘이 앞서 했던 말을 생각하며 주변 상황을 상상했다.
“키익- 하는 소리가 곤충 소리 같기도 했어요. 대체 무슨 소리지라고 생각할 때 갑자기 거대한 사마귀 같은 게 저 멀리서 다가오기 시작했어요.”
거대한 사마귀가 등장했다는 말에 사람들의 눈이 의아해서 동그래졌다. 그 상황에 사람이 등장했어도 무척 무서웠을 것 같았지만, 사람이든 사마귀든 둘 다 비현실적인 느낌은 마찬가지였다.
“괴물 사마귀는 제 앞에 있는 고치한테 다가가 윗 부근을 움켜쥔 채 통째로 갉아먹기 시작했어요! 눈앞에서 사마귀가 피와 살점을 삼키고 있는 충격적인 광경이 펼쳐지고 있었죠! 전 너무 놀라 현실이 아니라고 생각하고 싶었어요!”
김용춘의 얘기를 듣는 사람들도 같은 심정이었다. 하지만 그가 꿈을 꾼 얘기를 하는 것 같진 않았다.
“소름 끼치게 씹는 소리와 퀴퀴한 냄새가 코를 찌를 듯 점점 심해졌고, 전 공포에 질려 벌벌 떨면서 필사적으로 고치를 입으로 끊어냈어요. 하지만 아무리 해도 벗어날 정도가 되진 않았어요! 전 절망에 빠져 울면서 필사적으로 발버둥 쳤죠!”
얘기를 듣는 사람들도 그가 어떻게든 위기를 빨리 벗어났으면 하는 마음이었다.
“그때였어요! 제가 차고 있던 스마트 링에서 삑삑거리는 소리가 나기 시작했어요. 소리가 나자, 괴물 사마귀는 먹던 걸 멈추고 제가 있는 쪽으로 고개를 돌렸어요. 그리고 섬뜩한 초록빛 눈을 빛내며 사마귀가 천천히 저한테 다가왔어요. 가시가 있는 송곳니에서는 피가 뚝뚝 떨어지고 있었어요!”
사람들은 고개를 뒤로 빼며 끔찍한 표정을 지었다. 일촉즉발의 위기의 순간이었다.
“너무 무섭고 끔찍했어요!! 소름끼치는 사마귀 괴물이 그악스러운 얼굴을 가까이 들이댔어요! 전 너무 놀라 비명을 마구 질렀어요! 곧 그 괴물의 턱 놀림에 제 머리도 믹서기처럼 갈려서 사라질 것만 같았어요! 미칠 듯이 소리를 내지르다가, 공포에 휩싸인 전 다시 기절하고 말았어요.”
김용춘은 다시 위기를 벗어난 듯, 안도의 한숨을 내쉬면서 설명을 이어나갔다.
“다시 정신을 차렸을 때는 병원이었어요. 제 방송을 보던 시청자들이 경찰한테 신고를 했고, 스마트 링으로 제 위치를 검색해서 절 구출했다고 했어요. 다행히 제 몸은 멀쩡했고 고치에 갇혀있던 정황으로 그동안의 혐의도 모두 벗을 수 있었어요.”
그가 무사히 구출되었다는 말에 사람들도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하지만 그게 끝은 아니었어요! 제가 정신을 차리자 경찰은 그곳에서 무슨 일이 있었냐고 물어봤어요. 당연히 저는 괴물 사마귀가 나타나서 사람을 잡아먹었다고 대답했죠! 경찰은 절 미친놈 취급했어요!”
김용춘의 말을 듣는 사람들은 모두 어험스러운 심정이었다.
지금까지 들었던 다른 사람들의 얘기도 공감가지 않는 부분이 있긴 했지만, 귀신이나 괴물 사마귀의 존재를 전부 믿기에도, 아니라고 하기에도 난감한 부분이 있어 선뜻 뭐라고 할 수가 없었다.
“제 시청자들한테도 똑같이 말해봤지만, 반응은 그다지 다르지 않았어요! 전 거기서도 똑같이 미친놈 취급을 받았어요!!”
김용춘은 억울함이 가시지 않는 듯 씩씩대며 말을 이었다.
“의사는 제가 현실에서 받은 충격이 너무 커서, 사실을 그대로 받아들일 수가 없어서 괴물 사마귀를 만들어 냈다고 했어요! 경찰은 그 말을 듣고는 정신 상담 치료를 받고 사건에 도움이 되는 얘기를 해달라고 당부했어요! 하지만 전 정상이라고요! 제가 본 건 정말 괴물 사마귀가 맞아요!”
김용춘이 흥분하며 말하자, 사람들은 진정하라는 듯 고개를 끄덕여 주기도 했다.
지금까지 여러 사람의 말을 들어본 결과 그들의 얘기가 사실이든 아니든 알겠다는 표시라도 해주는 것이 상담에 큰 도움이 된다는 것을 느낀 모양이었다.
“고생 많으셨습니다. 힘드셨을 텐데, 이렇게 말씀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모두 격려의 박수 부탁드립니다.”
-짝짝 짝짝
문종현은 김용춘에게 부드러운 표정으로 말하고는 이어서 남은 차트를 살펴봤다.
앞서 독고혈과 신수연, 황경민, 여해란, 공유식, 김용춘까지 6명을 상담했으니, 앞으로 두 명이 남은 상태였다.
“그럼, 이번은 강충재 님의 얘기를 들어보죠. 말씀해 주시겠어요?”
“흠···! 네.”
강충재는 짧은 기합 소리를 내며 대답했다.
그는 긴장했는지 슬며시 주변을 살펴봤는데 예리하다 못해 살벌한 눈매와 각진 턱, 근육으로 무장한 산만한 등치들이 그의 움직임을 따라 한꺼번에 꿈틀거렸다.
강충재는 조금 전까지도 운동하고 온 것 같은 편한 운동복 차림이었는데, 어딘가 찌뿌둥한지 몸을 피며 팔을 휘둘러 어깨 근육을 피고 있었다.
양쪽 옆에 앉은 사람은 그의 위압감에 슬쩍 떨어지며 자세를 고쳐 앉았다.
“전 어렸을 때 ‘조폭 베이비’라는 영화에 아역으로 출연했었어요. 영화는 엄청난 성공을 거뒀죠. 사람들은 절 보기 위해서 갖은 노력을 마다하지 않았고, 전 인기 탓에 유명세를 톡톡히 치렀죠.”
강충재의 말에 사람들은 깜짝 놀랐다.
‘조폭 베이비’는 분명히 모두가 아는 영화였다. 너무나 유명한 영화라 모르기도 힘든 영화였다. 하지만 기억 속의 주연은 강충재랑 전혀 다르게 생겼었다.
주연인 아역 배우는 저렇게 흉악하게 생긴, 말 그대로 조폭같이 생긴 조폭 베이비가 아니었다.
“부모님은 이혼하셨는데, 제 양육권을 갖고 법정 싸움을 길게 하셨죠. 몇 년에 걸친 끝없는 싸움이었어요. 그러는 사이, 전 점점 삐뚤어지고 황폐해지기 시작했어요. 인생이 덧없고 허무하게 느껴졌어요.”
강충재의 얼굴을 보면 매치가 잘되지 않아 공감이 쉽진 않았지만, 그의 얘기를 고려해 보면 꽤 슬픈 얘기였다.
“처음에는 부모님이 재결합하고 다시 식구들이 화목하게 지내면 좋겠다고 소망했었지만, 아무리 빌어도 제 소망은 이뤄지지 않았어요. 결국 전 그런 제 생각들이 모두 덧없다고 생각하기 시작했죠.”
꿈도 희망도 잃어버린, 그의 어렸던 동심에 사람들은 슬프고 측은한 마음이 들었다.
“그러는 사이에도 일은 끊임없이 밀려들고 있었어요. 아역이 등장하는 많은 작품 대부분은 저와 작업을 하고 싶어 했죠. 부모님은 더 많은 일을 하지 못하는 걸 안타까워하셨어요. 전 쉴 새 없이 여러 작품에 출연해야 했죠.”
강충재의 얘기를 듣던 사람은 자기도 모르게 ‘아이고···.’ 라는 말을 섞었다.
“부모님은 제가 크는 걸 원하지 않으셨어요. 저한테는 ‘어릴 때가 좋은 거다. 넌 몰라, 어렸을 때가 얼마나 행복한지···.’ 같은 말씀을 하시곤 했어요. 전 그 말을 믿었죠. 부모님은 자라지 못하게 하는 약을 처방해 와서 저한테 먹이기 시작했어요.”
아동학대에 가까운 얘기가 흘러나오기 시작하자 사람들의 표정은 점점 심각해졌다. 그렇다면 강충재의 외모가 어릴 때와 다른 것은 혹독한 성장 과정의 여파였나 싶었다.
하지만 약을 썼는데도 저렇게 거대한 덩치로 자란 걸로 보면, 다행히 가져온 약이 별 효과는 없었던 모양이었다.
“문제는 약의 부작용이었어요. 전 점점 살이 찌기 시작했어요. 결국 소아비만까지 가기 시작했죠. 더욱 충격적인 건 팬들이 저한테 남긴 악플 때문이었어요. 소아비만이면 음경이 더 이상 자라지 않는다고 하더라고요···.”
갑자기 얘기의 주제가 생식기로 전환되자 사람들은 움찔했다. 사실이라면 지금까지 들은 얘기 중에 가장 무서운 얘기일 수 있었다.
“전 어렸지만, 만약 그 말이 사실이라면 그게 제 미래에 심각한 문제가 될 수 있음을 짐작할 수 있었어요. 전 부모님께 그 이유를 설명하면서 더 이상 약을 먹지 않겠다고 했어요. 하지만 부모님은 그건 그렇게 중요한 문제가 아니라고 했어요.”
강충재의 말을 듣던 사람 중, 특히 남자들은 속에서부터 올라오는 울화통 같은 긴 한숨을 내쉬었다.
내담자의 얘기를 가만히 듣고 있던 문종현도 이번 사연에서는 좀처럼 평정심을 유지하기가 힘들었다.
말할 수 없는 측은지심이 솟아 나와 강충재의 굳은 얼굴을 타고 흘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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