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3화. 도깨비 우산 1
< 83화 >
-털썩
갑자기 악마의 눈이 바닥에 주저앉더니, 무릎을 꿇기 시작했다.
“사···, 산신령님···!”
“강충재!! 그놈 잡아!! 어어···? 잠깐만···.”
이상한 현상을 본 공유식과 독고혈은 말하다 말고 재빨리 강충재의 곁으로 달려갔고, 무슨 일이 벌어진 건지 파악하기 위해서 강충재와 악마의 눈을 번갈아 쳐다봤다.
“산신령님 잘못했어요···. 육식이 너무 하고 싶었어요!”
악마의 눈은 강충재를 보자마자, 갑자기 눈물을 뚝뚝 흘리며 사죄하기 시작했다.
그때 갑자기 강충재의 손목에서 번쩍하는 빛이 나더니, 그곳에서 유령과도 같은 사람, 아마도 ‘산신령’으로 추정되는 백발의 노인이 튀어나왔고, 그는 나오자마자 악마의 눈에게 벼락같은 호통을 치기 시작했다.
“네 이놈ㅡ!!!”
“흑흑···. 산신령님!! 제발 살려주세요!!”
“내가 없는 틈을 타서 사람을 몰래 잡아먹더니, 그걸로도 부족해서 사람의 생명을 갖고 장난을 쳐?! 네놈이 그러고도 무사할 줄 알았더냐?!”
두 손을 모아 싹싹 빌던 악마의 눈은 어느새 거대한 호랑이로 변해 있었고, 파랗고 검은 왕방울만한 눈을 닭똥 같은 눈물로 가득 채우며 엎드려서 빌기 시작했다.
“고약한 놈 같으니라고···! 내 그렇게 기회를 줬음에도 불구하고, 저놈이랑 같이 제 버릇 개 못 주고, 이곳에서도 행패를 부리고 다니다니!! 더 이상의 용서는 없다!”
산신령은 호랑이의 목을 한 손으로 잡아채고는 반항하는 그를 질질 끌고, 곧바로 강충재의 손목 속으로 사라졌다.
순식간에 벌어진 기이한 사건에 놀란 공유식과 독고혈은 강충재를 흔들어 보았지만, 그는 잠이라도 든 듯, 덤벨을 손에 든 상태 그대로 굳어있었다.
-찰싹 퍽퍽!
“야야!! 강충재!! 자냐?! 일어나!!”
“잠깐만!!! 저거!!”
공유식이 강충재의 뺨을 때리며 잠을 깨우려 드는 찰나, 뭔가를 눈치챈 독고혈이 소리를 치며 한 곳을 가리켰다.
그곳에는 악마의 눈이 들고 있었던 검은 가방이 있었는데, 독고혈의 눈에 그것이 이상하게도 조금씩 앞으로 움직이고 있는 것 같았다.
그러고 보니, 산신령이 한 말 중에서 ‘저놈이랑 같이 제 버릇 개 못 주고’라는, 그냥 넘길 수 없던 이상한 말이 있었다.
“ㅡ잡아!!!”
“어딜 도망가!!”
-쾅 퍽!
악마의 눈과는 다르게 검은 가방은 만져졌고, 꿈틀거리는 가방을 두 명이 꽉 움켜쥐자, 점점 모양이 달라지더니 우산과 같은 형태로 변하기 시작했다.
“뭐야? 이건···?!”
“기다란 막대기처럼 변했는데?!”
-쿵!
바로 그때 덤벨이 바닥에 떨어지는 소리가 나며 강충재가 정신을 차렸고, 그는 곧 주변을 둘러보며 말했다.
“어···? 여긴 어디지?! 공유식, 독고혈?! 여긴 웬일이야?”
“야야!! 강충재!! 이것 좀 못 움직이게 잡아봐!!”
그 말에 강충재가 다가와 반항하던 우선을 한 손으로 집어 들자, 갑자기 얌전해진 우산은 정말 우산인 척 전혀 움직이지 않았다.
“와! 요놈 보소?! 눈치가 보통이 아닌데??”
“···누울 자리를 보고 알아서 뻗은 건가?”
“···이게 뭔데?!”
영문을 모르는 강충재는 검은 우산을 들고, 이리저리 휙휙- 휘두르며 말했다.
“일단 도망가지 못하게 방으로 데리고 가서 붙잡아놓고 얘기하자.”
“그래! 근데 넌 왜 나와 있던 거야?”
“그러게···?”
강충재는 자신이 왜 밖에서 배회하고 있었는지 전혀 기억나지 않아 의아하게 생각하며, 자신이 바닥에 떨군 덤벨을 주워서 들곤 같이 방으로 돌아갔다.
-삐릭 탁
방의 도어락을 풀고 안으로 들어간 셋은 일단 의자에 우산이 도망가지 못하게 밧줄로 꽁꽁 묶은 다음, 조금은 편안해진 상태로 자리에 앉아 상의를 시작했다.
이상한 일이 순식간에 벌어져서 잠시 진정하며 생각할 시간도 필요했고, 잃어버린 줄 알았던 강충재의 호랑이를 드디어 찾게 된 것을 기뻐해야 할지, 주사위 도박과 관련된 문제는 어떻게 되는 건지, 여러 가지 일들이 정리가 안 되어 의논해야 할 일이 많은, 꽤 뒤죽박죽인 상황이었다.
“일단, 요놈의 정체가 뭔지 굉장히 수상쩍단 말이야···?”
공유식은 아까 산신령이 했던 말들을 천천히 곱씹어보며 중얼거렸다.
“이거···. 아까 게임을 할 때 쓰던 말이랑 굉장히 비슷하게 생기지 않았어?”
독고혈은 징그럽게 느껴졌던, 이상한 ‘말’의 촉감을 기억해 내며 말했다.
“무슨 게임?”
공유식과 독고혈이 나누는 대화에 끼어들어 강충재가 물었다.
“응, 생명 도박에서 있던 일이야.”
“아···! 게임 말 같은 거?”
둘의 말을 들어보니, 공유식도 저 우산이 게임에서 쓰던 말과 비슷해 보이기 시작했다.
“어···? 가만히 생각해 보니, 그런 것 같기도 하네!”
“그치? 그리고 산신령님이 하셨던 말을 생각해 보면 뭔가 관련이 있어 보이지?!”
그러고 보니, ‘같이 행패를 부렸다.’는 산신령님의 말로 생각해 보면, 이놈이 생명 도박에서 무슨 역할 하나쯤은 한 것이 틀림없었다.
“산신령?! 산신령님이 또 나타나셨어? 돌아가셨던 것 아녔어?”
아까 벌어진 사태를 전혀 알지 못하는 강충재가 깜짝 놀라 소리쳤다.
“어···! 우리도 그런 줄 알고 있었는데, 너한테서 나오시더라고? 앗, 참! 네 호랑이 찾았어!”
공유식은 강충재의 손목을 가리키며 뭔가가 뭉게뭉게 나오는 형상을 표현하며 설명했다.
“오?! 그래? 어디 있어?”
다소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 섞여 있긴 했지만, 호랑이를 찾았다는 말에 강충재는 반색하며 물었다.
좀처럼 찾을 수 없을 것 같던, 문제의 호랑이를 찾았다니! 정말 다행이었다.
“그게···, 알고 보니 악마의 눈의 정체가 네 호랑이였더라고~. 그리고 산신령님이 호랑이를 잡아끌고 너한테 다시 들어가셨어.”
“뭐···?!!!”
“정확히는 네 손목···즈음? 으로 들어가시던데···.”
강충재는 너무 놀라 자기 손목을 쳐다봤지만, 양쪽 손목에는 금강저 문양 외에 아무것도 발견할 수 없었다.
강충재는 상식적으로 이해하기 힘든 너무나 해괴망측한 소리를 들었는데, 공유식과 독고혈이 자신을 상대로 장난을 치는 것 같진 않았다.
“무슨 소리야? 내 몸속에 산신령님하고 호랑이가 같이 들어있다고?? 아니···, 잠깐만! 그럼 생명 도박은? 그건 해결이 된 거야?”
강충재는 인상을 찡그리며 자기 손목을 노려보다가 다시 의아한 점을 물어봤다.
“아니···. 우리도 그걸 모르겠단 말이야.”
“중요한 건, 그 악마의 눈···, 아니 호랑이 새끼랑 같이 있던 게 이 우산이었어.”
“·········우산.”
세 명은 정체불명의 검정 우산을 다 같이 노려보며, 정상적이지 않은 현재의 상태를 타개해보려고 필사적으로 생각을 거듭해 봤지만···.
우산은 너무도 우산 같았고, 자신들은 정신건강 복지센터에 갇힌 환자들 같았다.
아니, 지금까지의 이 모든 일이 그냥 꿈이었으면 싶은 생각도 들었다.
“할 수 없지! 뭐···!”
공유식은 쉽게 포기하는 듯한 말을 꺼냈다.
“강충재! 이거 부숴버려!”
“엉···?”
갑작스러운 공유식의 파괴 명령에 강충재는 의아해서 되물었다.
“아니, 뭐! 우산 쓸 때도 없는 것 둬서 뭐 하게? 그냥 확! 두 동강을 내버려!”
“그래! 이게 또 이상한 짓 할 바에는 그냥 부숴버리는 게 낫겠다.”
“어···. 그래? 알았어!”
독고혈까지 동의하자, 강충재는 별생각 없이 우산을 부수려고 다가갔다.
“잠깐!! 잠깐! 여보세요?!!”
“어···? 뭐야?!”
갑자기 우산이 말하기 시작하자, 깜짝 놀란 강충재는 뒤로 한 걸음 물러났다.
“···이 새끼! 이것 보소?! 드디어 말하기 시작하네?”
갑자기 우산에 눈 두 개가 생겨나더니, 이 이상 없을 다급한 말투로 외치기 시작했다.
“혀···, 형님들!! 지금 문제가 많아 보이는데···. 이러지들 마시고!! 제가 다 해결할 수 있어요!”
“아니야~. 우산 따위가 뭘 알겠어? 그냥 부숴버리자!”
“아니아니아니!! 이거 왜 이러실까?!! 진정하시고 제 말 좀 들어보세욧!!”
우산은 다급한지 생각보다 더 촐랑거리며 촉새 같은 말투로 다급히 얘기를 시작했다.
누구한테서 배워온 말투인 건지 사투리를 쓰는 것 같기도 했고, 어쨌든 굉장히 재빠른 말투였다.
“우선, 생명 거래가 궁금하신 거죠!? 제가 다 원래대로 되돌릴 수 있어욧!”
“···네가 어떻게?”
세 명은 의심이 가득한 눈으로 우산을 쳐다봤고, 우산은 세 명이 자신을 전혀 믿지 않는 것처럼 보이자, 땀을 뻘뻘 흘리며 재빨리 설명을 이어 나갔다.
“눈···, 눈속임!! 눈속임이었으니까요!! 제가 다 해결할 수 있어요!”
“눈속임? 생명 거래가 사실이 아니야?”
“네네!! 어휴~! 전혀 아녀요!! 호랑이는 그저 육식이 하고 싶어서 그런거고, 나머지는 제가 속인 거예요!”
세 명은 우산이 재빨리 내뱉는 말에 정신이 혼미해지기 시작했다.
“······진짜야?”
“와~! 이 새끼 뻔뻔한 것 봐?! 그럼, 지금까지 여기 있는 모두를 속였단 말이야?!”
“자···, 잘못! 잘못했어요!! 제가 다 되돌려 놓을 수 있어요!!”
우산이 나불대는 말을 과연 믿어야 할지, 말아야 할지···. 아니, 그보다 우산하고 대화를 하는 이 상황이 정말 정상이 맞나···, 지금 꿈인가? 싶은 생각마저 들었다.
“어떻게···?”
“생명 거래를 했던 분들은, 모두 자기 말을 가졌는데, 그것 때문에 정신이···, 어! 그러니까 착란상태에 빠진 거거든요?! 제가 그걸 모두 회수하면 돼욧!!”
우산은 뜻 모를 말을 재빨리 주절거렸다.
“무슨 착란상태?”
“어? 잠깐만! 나도 만졌는데?!”
공유식이 의심스럽게 되물었고, 독고혈은 자신도 만졌다는 사실을 기억했다.
“그, 그러니까! 저를 만진 사람은 기억이 왜곡되게 되는데! 제가 생각해 둔 어, 어떤 이야기가 있거든요? 그걸로 빨려 들어가게 돼요!”
“오···? 그래?”
공유식은 과연 이 촉새 우산이 하는 말을 어디까지 믿어야 할지 의심스러웠지만, 아는 정보가 별로 없어서 무슨 말을 하는지 보기 위해서 장단을 맞추며 대답했다.
“네네!! 그래서 다들 속았던 거예요!! 이제 제가 다시 되돌리기만 하면 돼욧!!”
“그래? 그럼 되돌려봐!”
“저, 저기! 게임 중에 받았던 말을 부수기만 하면 돼요!!”
“···그렇게 쉽다고?”
그 말에 독고혈은 아까 게임을 할 때 썼던 ‘보라색 우산’을 주머니에서 꺼냈다. 그리고 그걸 부수려고 손에 쥔 순간 뭔가 이상한 느낌을 받았다.
어쩐지 전에도 이런 일이 있었던 것 같은 묘한 기시감이었다.
그리고 순간 공유식을 쳐다봤더니, 그의 어깨에 걸터앉아있던 해치가 이상한 손가락 표시를 하고, 자신을 쳐다보라는 메시지를 계속해서 보내고 있었다.
그리고 그걸 보는 순간 갑자기 공간이 왜곡되더니, 다른 장소로 이동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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