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화. SC복지 센터 9
< 60화 >
-드륵
정연백은 몸을 살짝 뒤로 빼며 주먹 쥔 손을 입에 대고 잠시 생각하는 듯했다.
“···부모님은 처음에는 저한테 미안하다고 했어요. 오빠가 살기 위해선 어쩔 수 없는 선택이라고 이해해 달라고 했어요.”
기가 막힌 변명에 사람들은 한숨을 내뱉었다.
사실 예언이 구체적인 내용과 정확한 시기가 있는 게 아니라 더 막연하고 답답하기만 했다.
“전 계속 풀어달라고 애원했죠. 그 누구하고도 만나지 않겠다고 했지만···, 부모님은 매우 단호했어요.”
사람들은 내용을 들을수록 점점 씁쓸해졌다.
예언이 사실이라고 가정하고, 정말 그녀한테 오빠의 목숨이 달려있다고 한다면 부모님의 마음을 이해하지 못할 것은 아니었지만, 지금 시점으로 판단했을 때 그녀가 잘못을 저지른 것은 아니었다.
사람들은 자신이 저 부모의 입장이라면 어떻게 행동했을지 생각해 봤지만, 쉽사리 답이 나오진 않았다.
“그렇게 갇혀있는 채로 시간이 더 흐르자, 어느 순간부터는 부모님이 저한테 화를 내기 시작했어요. 오빠가 망가져 가는 이유가 다 제 탓이라고 원망했죠. 오빠는 성인이 된 후로 여자, 술, 도박 등에 빠져 나태하고 방탕한 생활을 보내고 있었어요. 그 덕에 집안은 순식간에 가세가 기울었죠.”
첩첩산중인 식구들의 작태에 사람들은 저마다 ‘어이구···.’ 라는 말을 섞었다.
“하지만 문제는 그게 전부가 아니었어요. 아무도 없는 어두운 밤이 되면, 누군가 절 찾아와서 제게 말을 걸었어요.”
밤에 몰래 손님이 찾아왔다는 말인가 해서 사람들은 누구일까, 싶었다.
아니면, 설마···? 오빠의 목숨을 위태롭게 할 그 누군가를 그곳에서 만난 것일까?
사람들은 긴장과 불안감에 휩싸인 채로 다음에 나올 얘기를 기다렸다.
“처음에는 제가 적적할까 봐, 부모님이 말동무하라고 보내 준 사람인 줄 알았어요. ···하지만 그게 아니었어요. 그들은 모두 어딘가 상실된 외모를 하고 있었고···, 우울하고 어두운 과거를 품고서 절 찾아온 귀신들이었어요.”
갑자기 찾아왔다는 귀신 얘기에 사람들은 등골이 오싹해서 뒤로 멀어졌다.
“그들은 모두 한 가지 공통점이 있었어요. 제가 이 끔찍한 골방에 갇힌 이유와 같은, 어렸을 때 예언가 할머니로부터 저주···, 아니 미래를 들었던 사람들이었죠.”
정연백은 선글라스 뒤로 표정을 숨긴 채 심상치 않은 사연을 이어 말했다.
사람들은 이젠 귀신의 존재 그 자체보다 여러 명의 귀신이 무슨 이유로 그녀를 찾아왔는지가 더 궁금했다.
하지만 귀신을 봤다는 정연백의 얘기에 김용춘은 표정이 심각해졌다.
앞선 사람들의 얘기에서도 귀신이 종종 등장하긴 했지만, 어디까지나 사람들의 착각이나 오인의 결과로 느껴졌었고 저렇게 대화했다고 호언하는 경우는 없었기 때문이었다.
김용춘은 귀신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걸 증명하러 다녔던 자기 일과 배치되는 사연이 등장하자, 그녀의 말이 사실인지 아닌지 의혹이 들어 내용에 집중하지 못할 지경이었다.
하지만 문종현이 그런 김용춘을 보며 작게 고개를 끄덕이자, 곧 김용춘은 처음에 그가 했던 당부를 기억하곤 다시 얘기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처음에 찾아온 귀신은 제 나이 또래 여자였는데, 얼굴 한쪽이 불에 탄 듯 검게 그을려 있었어요. 그녀는 동생한테 죽게 될 운명이었죠.”
찾아온 여자의 끔찍한 운명에 사람들은 절로 심호흡했다. 정연백은 살짝 입꼬리를 올렸다가 내렸다.
“다음에 찾아온 귀신은 어린 아이였는데 그냥 이곳저곳을 마구 뛰어다니며 소리를 질렀어요. 그 아이는 어떤 말도 통하지 않았고, 전 잠도 잘 수 없이 소음에 시달렸죠.”
정연백은 피곤한 듯 손으로 눈썹을 살짝 누르며 말했다.
“가장 큰 문제는 그 뒤에 찾아온 남자 귀신이었어요. 그는 제 운명도 자신과 다르지 않을 거라며 저한테 악담을 퍼붓기 시작했어요. 그렇게 귀신들이 계속해서 찾아와서 괴롭히자 전 점점 더 무서워졌고 미쳐버릴 것만 같았죠.”
사람들은 그녀의 심정에 공감한 듯 깊게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끄덕였다. 저런 상황이라면 누구라도 미치지 않고는 견딜 수 없을 것 같았다.
“그러던 어느 날부터 부모님이 절 보러오지 않았어요. 아무리 기다려도 부모님은 오시지 않았죠. 전 굶주림 속에 방치되었고 화장실 물을 먹으며 기다렸지만, 며칠이 지나도 부모님은 절 찾아오지 않았어요. 전···, 기억 속에서 잊힌 것 같았어요.”
사람들은 그녀의 딱한 사정에 측은한 표정을 지으며 자신도 모르게 탄식을 내뱉었다.
“그렇게 부모님께 버림받고 아사 직전에서 정신마저 온전하지 않은 상태가 되자 갑자기 예언 내용이 다시 떠올랐어요. 그리고 전 실성한 듯이 미친 듯이 웃었죠. 할머니의 예언이 사실이라면 제 운명은 여기서 죽는 건 아니라는 뜻이었으니까요. 그러고 곧 정신을 잃었어요.”
사람들은 아이러니한 현실에 한숨을 내쉬었다. 예언이란 걸 믿을 수도 믿지 않을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제가 다시 눈을 떴을 때는 병원 안이었어요. 경찰과 보험사 직원이 제 앞에 함께 있었죠. 부모님이 엄청난 금액의 사망보험금을 타낸 걸 부정수급으로 의심한 보험사 직원이 조사하던 중 절 발견한 거였어요.”
갑자기 사망보험금이란 얘기가 등장하자 사람들은 악연히 실색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대체 누구의 사망보험금이었을까? 라고 생각하다가 문득 소름이 돋았다.
“그때 오빠는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니었어요. 부모님은 오빠의 사망보험금을 타서 여행을 가셨고, 제 존재는 까맣게 잊어버리셨죠. 경찰은 감금과 학대 혐의로 부모님을 구속했어요. 그리고···, 살인미수 혐의도 넣었죠. 제 앞으로도 생명보험이 가입되어 있었거든요.”
철저히 계획되어 있었던 것 같은 철면피 같은 부모님의 행적에 사람들은 혀를 내둘렀다. 이쯤 되면 애초에 부모님의 목적이 오빠의 목숨 보전이었는지, 보험금이었는지 헷갈릴 지경이었다.
“나중에 상태가 안정되고 나서 부모님을 찾아갔지만, 일이 이렇게 된 건 모두 저 때문이라고 하면서 화를 내셨어요. 그러면서 필시 제가 그 안에서 누군가를 몰래 만나서 오빠를 죽이도록 작당 모의를 했을 거라고 했죠.”
정연백은 억울함을 가득 담아 설명을 이어나갔다.
너무도 뻔뻔한 모습으로 일관하는 부모님의 태도에 사람들은 어이가 없었지만 동시에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면 오빠를 죽게 만든 사람과 배필이 된다고 했던 예언은 뭐였을까? 처음부터 오빠의 생사여부는 그녀와 상관없는 일이었을까?
사실 그녀가 배필이 될 사람과 만나는 시점에 대한 얘기는 예언에 없었다.
“기가 막힌 부모님의 말씀에, 제가 그 안에서 만난 건 귀신밖에 없었다고 항변했죠. 그때부터였어요. 그 말을 듣던 부모님은 역시 그랬다면서 경찰한테 제 정신상태 감정을 요구했어요. 그러면서 애초에 부모님이 절 가둔 이유가 저의 정신이 온전치 못해서였기 때문이었다고 주장했어요.”
그녀의 얘기는 점점 아리송하고 심각해졌다.
그녀가 본 것이 정말 귀신이 맞았을까? 사람들은 착잡한 마음에 사로잡혔다.
“법정 공판이 진행될수록 상황은 점점 더 이상해졌어요. 상대측 변호사는 절 귀신 보는 미친 여자로 여기거나, 알 수 없는 사람과 작당모의해서 오빠를 죽게 만든 사람으로 몰았죠. 증언과 증인들도 차례대로 법정에 출두 되었는데 모두 저한테 불리한 증거로 가득 차 있었어요.”
그녀의 얘기를 듣는 사람들은 점점 판단을 내릴 수 없는 상황에 빠졌다. 그녀가 하는 말을 전부 믿기에도, 그 부모가 해온 일들을 정당화하기에도 미심쩍은 부분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오빠가 어렸을 때 그의 형편없는 외모를 보고 창피해했던 일, 오빠의 외모가 달라지고 난 후에 했던 ‘원래 모습은 추남’이라고 했던 발언들과 그가 운이 없었더라면 부모님이 창고에 가뒀을 거라고 했던 말들, 또는 ‘그냥 죽어버렸으면 참 좋았을 텐데’, 라는 말들을 주변 사람들은 모두 기억하고 있더라고요···.”
정연백은 담담하게 자신이 과거에 했던 말들을 열거했고, 사람들은 자기도 모르게 ‘아이고···.’ 라는 말을 섞었다.
“그렇게 계속된 재판은 돈이 들었어요. 성인이 된 후부터 쭉 갇혀 지냈던 저한텐 당연히 돈이 없었죠. 그러다 정신감정을 받는데 들어가는 돈을 부모님이 지원해 주시겠다고 했어요. 그리고 저만 인정하고 나면, 다시 화목한 가정으로 돌아가서 잘 살 수 있을 거라고 했죠.”
이미 그녀와 대립하는 입장에서 정신감정에 들어가는 돈을 지원해 주겠다는 부모님의 의도가 좋은 뜻으로 읽히지 않아 사람들은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저었다.
“그 말을 듣는데 꼭 제가 나쁜 사람 같더라고요. 나만 인정하고 나면 모두 행복하게 잘 살 수 있게 되는 건가 싶었어요.”
정연백은 착잡하고 우울한 말투로 자책하듯 말했다.
사람들은 그녀의 심정은 이해가 갔지만, 너무 미스터리 같은 사건이라 진실이 너무도 알고 싶어졌다. 얘기를 들으면 들을수록 어떤 것이 사실인지 알 수가 없었다.
사람들은 어느 쪽이 진실이든 간에 한쪽은 끔찍한 사람이 되는 것이 틀림없어서 마음이 너무 착잡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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