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9화. 환자와 소문들 5
< 89화 >
-탁
“헉! 뭐야!!!”
눈을 감았다가 자신도 모르게 잠이 들었던 공유식은 이상한 기분이 들어 눈을 뜬 순간, 몰라보게 달라진 주변 환경에 소스라치게 놀라며 자신이 꿈속에 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게다가 주변은 어디서 많이 본 장소였는데···, 뭔가 기분이 매우 좋지 않았다.
불길한 기운이 스멀스멀 들기 시작했고, 그는 곧 이곳이 어딘지 깨닫기 시작했다.
눈앞에 있는 장소는 다름 아닌, 그가 전에 ‘악몽’을 경험했던 바로 그 저택이었다.
“안돼!!!!!!!! 이런 씨발!!!”
“독고혈!! 강충재!! 으아아악!!!”
공유식은 머리를 쥐어뜯으며 좌절에 빠져서 고함을 질렀다.
분명히···! 어둑시니는 해치가 없앴을 텐데?!!
문제가 되던 유물 다이아몬드도 부서졌었고!!
게다가 진맥이 악몽을 다 빨아들였다고 했었으니, 이 악몽 같은 장소에 다시 돌아올 일은 절대 없었는데 왜 자신이 이곳에 있는지 아무리 생각해 봐도 알 수 없는 공유식은 미칠 것 같은 심정에 빠져들었다.
설마···! 악몽을 먹을 수 있다고 했던 진맥의 얘기가 모두 거짓말이었던 걸까?
어쩌면 정신병 환자가 꾸며낸 말을 조금의 의심도 없이 믿어버린 결과인지도 몰랐다.
“ㅡ으아아악!!!! 살려줘!!!”
“어이?! 이봐?! 진정해!”
공유식이 공포에 질려 미쳐가기 일보 직전에 어디서 얼굴 하나가 불쑥 다가와 그에게 말을 걸었다. 분명 조금 전까지는 아무도 없던 곳이었다.
“헉, ···어? 뭐야? 내가 보여?! 넌 누구야?!”
“난 샌드맨이야! 쯧···! 진맥이 또 말도 없이 게임할 사람을 늘린 모양이군. 따라와!”
“어···. 어?!”
공유식은 갑자기 나타난 남자가 손짓하며 자신을 따라오라고 하자, 식은땀을 닦으며 놀란 심장을 진정시키고는 조심스레 그의 곁으로 다가가 주변을 살피기 시작했다.
분명히 같은 장소로 보이는데 지금은 예전과 달랐다. 전에는 2층 서재에 있던 책을 읽기 전에는 누구도 알아볼 수 없었고, 자신을 알아보는 사람도 만날 수 없었다.
“참, 혹시나 해서 말해두는데, 이곳에 있는 방은 함부로 열어보지 마!”
샌드맨은 매우 간결하면서 단호한 어투로 말했다.
그는 마치 이곳의 주인인 양, 모든 것을 아는 것 같았다.
“왜···? 열면 어떻게 되는데?”
공유식은 이미 결과를 알고 있었지만, 자신이 알고 있는 것을 상대방도 알고 있는 것이 너무도 궁금해서 물어볼 수밖에 없었다.
공유식의 말에 샌드맨은 걸음을 멈추고는, 잠시 알 수 없는 표정을 짓더니 나직이 속삭이듯 말하기 시작했다.
“예전에 매우 아름다운 저택이 하나 있었어. 그곳은 모든 것이 풍요로웠고 방마다 진귀한 물건들로 가득 차 있었지. 하지만 빛이 있으면 어둠이 있듯이 저택에 있는 다른 수많은 방은 다 열어봐도 되었지만, 그중 단 하나! 절대 열면 안 되는 방이 있었어. 그곳에는 알면 안 되는 비밀이 숨겨져 있었기 때문이었지···.”
말을 마친 후 샌드맨은 다시 앞서서 걸어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말을 들은 공유식은 소름이 돋기 시작했다. 바로 전에 똑같은 말을 진맥한테서 들었기 때문이었다.
그렇다면 진맥이 한번 만나 달라고 부탁했던 ‘진성준’은 자신을 샌드맨이라고 소개한 이 남자이고, 그가 있는 이곳이 바로 ‘비밀의 저택’이며, 자신이 그토록 피하고 싶었던 ‘악몽의 저택’도 같은 곳이라는 얘기였다.
아무래도 진맥이 했던 얘기의 대부분은 사실이었던 모양이었다.
“저기···. 헉헉···.”
공유식은 샌드맨에게 물어볼 것이 많았지만, 그가 워낙 빠르게 걸었기 때문에 뒤처지지 않기 위해 따라가느라 숨이 차서 더 이상 말을 할 수가 없었다.
공유식은 아무래도 자신의 이 저질 체력을 탈피하기 위해선 운동을 하든지, 무슨 수를 써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탁탁
“여기, 신입 데려왔어!”
“어?! 어서 와!!”
“오~! 안녕? 반가워?!”
“오늘은 재미를 좀 볼 수 있겠는데?”
긴 테이블을 사이에 둔 넓은 방 안에는 여러 명이 담소를 나누며 앉아있었다.
그들은 모두 진맥이 건네준 것과 같은 네임 태그를 달고 있었는데 낮에 만났던 최현수와 백승호가 다가와 뒤늦게 합류한 공유식을 보며 반갑게 인사했다.
“어···? 너희들도 샌드맨이 데려온 거야?”
“당연하지! 여긴 샌드맨의 꿈속이야!”
샌드맨의 꿈속이라는 말에 공유식은 생각이 복잡해졌다.
분명 이곳은 자신과 샌드맨이 만날 장소로 진맥이 주선한 것처럼 보였지만, 정작 진맥은 이렇다 할 설명도 없이 나타나지 않고 있었고, 샌드맨은 그런 사연은 전혀 모르는 것 같았다.
“그나저나···! 얘 누가 불렀어? 릴라···?”
“난 아니야~.”
릴라는 새로운 얼굴인 공유식을 흥미롭게 쳐다보며 말했다.
릴라는 부드러운 공단과 검은 벨벳으로 이루어진 파자마를 입고 작은 검정 우산을 머리에 달았는데, 우산의 끝에는 하얀 반점이 있는 거대한 검정 거미가 움직이며 무게를 지탱하고 있었다.
‘거미 여인’이 컨셉인 것 같은 그녀의 양쪽에는 특이한 복장의 두 남자가 같이 앉아있었는데, 그들 역시 그냥 지나치기에 쉽지 않은 생김새였다.
왼쪽에 앉은 슈타인은 시커멓게 문신한 눈알을 하고 있어서 꼭 해골이 쳐다보는 것 같았고, 피부는 전체가 흉터로 가득해서 여러 종류의 가죽을 피부에 덕지덕지 기워서 꿰매놓은 것처럼 보였다.
오른쪽에 앉은 자이크는 왼쪽과 오른쪽의 색이 다른 옷을 걸쳐 입었는데 녹색과 청록색이 나뉜 옷을 양쪽으로 입어서 아수라 백작이 연상되기도 했다.
-탁 타닥
“헉헉···.”
“여어~! 오늘은 신입이 많네?”
그때 샌드맨과 함께 상당히 지쳐 보이는 독고혈과 강충재가 도착했고, 그들은 곧 공유식이 있는 자리로 걸어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휴우···! 어떻게 된 거야?!”
“여기 설마···! 네가 전에 말했던 그 저택이야?”
공유식은 독고혈과 강충재의 물음에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며 일단 상황을 지켜보자는 눈짓을 했다.
사실 공유식도 이 상황에 관해서 이들에게 묻고 싶은 것들이 산더미같이 많았지만, 이곳에 온 과정이나 모인 사람들이 너무 괴상해 보여서 섣불리 나서기가 조심스러웠다.
“이제 더 올 사람은 없는 거지?!”
“그나저나 진맥이 안 왔네?”
게다가 자신들을 이곳에 초대했던 진맥은 무슨 이유인지 나타나지도 않고 있었다.
“···그럼, 이제 게임을 시작할 수 있겠어!”
릴라가 익숙한 동작으로 앞쪽의 상석으로 나서며 말을 꺼내기 시작했다.
방에 있는 긴 테이블에는 릴라와 슈타인, 자이크, 샌드맨, 유백서, 이연석, 최현수, 백승호, 그리고 공유식과 독고혈, 강충재까지 11명이 모인 상태였다.
“그럼, 여기 있는 사람들은 모두 게임에 참여할 거지?”
“···무슨 게임인데?”
공유식은 단순한 게임은 아닌 것 같은 불길한 느낌이 들었다.
“재미있는 도박게임이지~! 이기면 전부 가질 수 있고, 지면 칩을 잃고 이 꿈에서 깨는 거지. 하지만, 강요하는 건 아니니까···! 이곳에서 나가고 싶다면, 저 문을 열고 나가면 돼! 대신 게임 도중에는 나갈 수 없어!”
릴라는 방에 있는 유일한 문 하나를 가리키며 말했다.
“···얘 말로는 문을 열면 안 된다던데?”
공유식은 가늠할 수 없는 게임에 대한 설명과 꿈에서 나갈 수 있다는 얘기에 놀라서 재차 확인할 겸 샌드맨을 가리키며 물어봤다.
사실 그는 이곳에서 그렇게 쉽게 나갈 방법이 있다는 것도 믿기 어려웠다.
“열면 안 되는 건 다른 방 얘기고! 어휴···! 또 이상한 얘기로 겁준 것 아냐?”
“이상한 얘기라니···. 사실이라고!”
별일이 아니라는 듯 말하고 있는 릴라와 단호하게 말하는 샌드맨 사이에서 공유식은 갈피를 잡을 수가 없어서 혼란스러웠다.
아니, 일단 이곳의 정체가 대체 뭔지, 그것에 대한 설명이 너무도 듣고 싶었다.
“잠깐만···, 여기가 꿈속이라고 했지? 샌드맨의 꿈속이라고···?”
“그래! 우린 모두 같은 꿈을 꾸고 있는 거지!”
너무도 태연하게 그렇다고 대답하는 릴라의 말에 공유식은 ‘그게 가능해?’ 혹은 ‘그런 게 어떻게 가능하냐?’ 같은 말을 하고 싶었지만, 이미 벌어진 일이 사실이라면 실현 가능 여부는 지금 중요한 문제는 아니었다.
“···그럼, 모두 왜 여기 있는 거야?”
“무료한 병원 생활에 재미있는 일을 즐기기 위해서지. 인생은 길고~! 병원은 너무 지루하잖아?! 다행히 이곳은 꿈이니까 그 특성상 현실에서 할 수 없는 많은 것들이 가능하거든! 게다가 도박하면 돈도 벌고 좋잖아?!”
공유식이 의문을 표하자, 다들 그의 말이 재밌다는 듯 미소를 띠면서 쿡쿡대고 있었다.
“오늘은 유백서가 추천하는 게임을 할 차례야~! 게임의 설명을 듣기 전에 할 건지 말지 모두 결정해 주면 좋겠어. 거수로 확인할게!”
상당히 수상쩍은 설명이었지만 공유식은 비밀의 저택이 너무도 궁금했고, 또 이들이 이곳에서 무슨 일을 벌이는지 알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
공유식이 독고혈과 강충재의 의견을 물어보자, 그들도 할 수 없이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그렇게 한 명도 빠짐없이 모두 손을 들어 게임 참여 의사를 표하자, 릴라는 만족스러운 듯 미소를 지었다.
“좋아! 그럼, 모두 게임에 참여하는 걸로 알겠어!”
릴라는 게임의 시작을 선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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