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화. 보안 시설 1
< 35화 >
“······이미 이 세상에 없어.”
독고혈이 알 수 없는 표정을 하며 말했다.
공유식은 과거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듣고 싶은 마음은 컸지만, 그가 아직 말할 준비가 되지 않았다고 생각해서 화제를 전환했다.
“그럼···, 그 당시에 엄청 나쁜 일을 저지른 사람은 어떤 처벌을 받았어?”
“···글쎄. 중형이었다면 오체분시나 멍석말이하든가 젓갈을 담갔겠지.”
독고혈은 그 당시 법정 최고형 중에서도 가장 무거운 형벌로 생각되는 것을 말했다.
“···그러면 사이트에 젓갈을 담그겠다고 써봐.”
“젓갈은 왜 담가···?”
독고혈이 말한 형벌들이 이해가 안 가는 강충재가 되물었다.
“너 콩쥐 팥쥐 안 봤어?”
“아···, 전래동화?”
“그 얘기 마지막에 팥쥐로 젓갈을 담근 후, 그 엄마한테 보내.”
“···으, 사람으로 젓갈을 담근다는 얘기였어??”
처음 듣는 끔찍한 얘기에 강충재는 깜짝 놀랐다.
전래동화의 내용이 생각보다 무서웠다. 그런 걸 보거나 먹게 된다면 정신적인 타격이 엄청나게 클 것 같았다.
“···어? 뭘 보내라는데?”
독고혈이 젓갈을 담그겠다는 답을 하자마자 다음 문제로 영상이나 메시지가 있으면 보내라는 업로드 창이 떴다.
“아무래도 불법적인 일을 공유해서 안전을 담보할 생각인 것 같은데···.”
애초에 이 사이트에서 원하는 건 불법이나 그와 비슷한 일을 부추겨 종용하는 것으로 폭력적이고 가학적인 영상이 있어야 가입이 될 것 같았다.
-똑똑
“오! 식사 왔다!”
서빙 로봇이 음식을 담은 카트를 끌고 왔다.
“일단 먹으면서 생각하자.”
“···그래!”
셋은 한창 인기 있는 예능 프로그램 ‘미래왔섭맨’ 을 틀어놓고 탁자 위에 각종 음식을 잔뜩 올려놓자 점점 행복해지기 시작했다.
역시 삶의 행복은 완벽한 음식과 즐거운 볼거리라며 셋은 손뼉을 치며 기뻐했다. 드디어 모든 음식의 세팅이 끝나 젓가락을 들었다.
-퍽 타닥!
“-쿠왕왕!!!”
그때 갑자기 곰이가 문을 열고 들어와서는 탁자 위로 뛰어들었다.
“야! 임마! 저리가!!”
“으악! 탁자 위로 올려!!”
“안 돼!!! 내 피자!!”
“곰이야! 이리와!!”
라석양이 부르자 피자를 이미 입안에 가득 넣은 곰이는 그제야 뒤로 물러났다.
강충재가 재빨리 탁자를 들어 올렸지만, 공유식의 피자는 이미 끝이 난 상태였다.
“무슨 일이야···? 그 개 좀 어디다 넣어!”
“이드? 곰이 카트에 좀 넣어.”
“네!”
이드는 카트에 들어가지 않으려고 발버둥 치는 곰이를 무력을 사용해 힘껏 쑤셔 넣었다.
슬쩍 보니 라석양이 안 보는 사이 곰이의 배에 주먹을 꽂아 넣는 것 같기도 했다. 저래도 되나 싶었지만 이드의 표정에선 어떤 가책도 느낄 수 없었다. 아니, 즐기는 것 같기도 했다.
“사이트 가입은 어떻게 됐어?”
“···거의 다 된 것 같은데, 영상을 올려야 해. 가능하면 잔인하고 폭력적인 거로.”
라석양의 질문에 공유식은 탁자 위의 노트들을 가리키며 말했다.
“독고혈의 신체검사 영상을 활용하면 어떨까 싶은데···, 벌레 해부하는 것도 같이.”
“···그래, 알았어. 그리고 지금 급한 일이 생겨서 보안 시설로 가봐야 해.”
라석양은 뭔가를 생각하더니 바로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무슨 보안 시설? 지금?”
공유식은 자신을 가리키며 지금 꼭 가야 하냐고 물어봤다.
“유정천 순경이 합의하려면 독고혈을 꼭 봐야 한다는 걸 조건으로 삼았어.”
“···그걸 들어줘야 해?”
공유식은 왠지 불길한 느낌이 들어 꺼려졌다.
“남은 경찰관을 찾으려면 어쩔 수 없어.”
라석양도 그다지 내키지 않는 듯 말했지만, 별다른 방도가 없는 것 같았다.
갑자기 상황이 복잡해졌다.
유정천 순경은 전에 독고혈한테 물렸던 경찰로, 중간에 독고혈을 납치해서 칼로 위협까지 했던 사람이었다. 게다가 독고혈이 가야 하는 문제면 강충재도 가야 했고, 대면 업무를 봐야 한다면 누군가는 꼭 옆에 있어야 했다.
독고혈은 과거에 엄청난 배신을 당하고도 지금도 순진해서 사람들한테 속아 낭패를 보기 일쑤인 성격이었고, 강충재가 곁에 있다고 한들 무식함만 앞세울 것이 뻔해서 협의 하는 자리엔 영 도움이 안 될 터였다.
“···경찰은?”
“특수경찰이 같이 있을 거야. 무장도 해야 해.”
“···그럼 나는?”
“나도···?”
공유식과 강충재가 혹시나 해서 물어봤다.
“너네도 당연히 가야지. 셋 다 얼른 준비해서 나와.”
라석양이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는 거냐며 대답했다.
“···이건 어쩌고?! 음식 남기면 벌 받아!!”
“그건 곰이가 먹으면 돼.”
독고혈이 돌아서는 라석양의 뒤에 대고 소리쳤지만 돌아오는 건 허무한 답변뿐이었다. 카트 안에 가둬져 있던 곰이가 씨익하고 웃는 것 같았다.
“···지금 안 먹는 게 좋을 거야. 헬리콥터로 이동할 거라 멀미할 텐데?”
“아······.”
허겁지겁 고기를 집어 먹던 강충재는 포기한 듯 털썩 주저앉았다.
“···물이나 먹고 나가자.”
“쩝···, 그래.”
기분 탓인지 뭔가를 먹으려고 할 때마다 바쁜 일이 일어나는 것만 같았다. 마치 어떤 심보 고약한 놈이 평화롭게 인생을 즐기는 걸 허락하지 않는 것 같았다.
-달그락
방 밖에는 이미 각종 장비와 옷이 준비되어 있었다. 테이저건과 에너지 프리즘, 칼, 전기충격기, 방탄 고글, 금강저와 금강령, 각종 신호탄과 함께 총 지갑과 탄창 파우치, 벨트가 놓여 있었다.
“···뭔가 엄청난데? 어딜 가는 거지?”
“단단히 준비하라는 거 같은데···.”
벨트를 몸에 두르면서 강충재와 독고혈이 중얼거렸다.
“팔에 스킨을 착용하라고 하셨습니다."
그때 이드가 다가오더니 팔 위에 손처럼 장착할 수 있는 스킨 장비를 건네주며 말했다.
“이동하실 곳은 바다 위에 떠 있는 비밀기지로 A등급 기밀 장소입니다. 비상 탈출용으로 헬리콥터와 무인기가 있고, 수상 보트가 숨겨져 있습니다. 모두 세 분의 홍채로만 작동되며 위치는 고글에 수신되어 있고 그곳의 보안요원들은 탈출정의 정보를 모릅니다.”
-달각
고글로 이드가 알려준 정보를 보니, 8층 건물의 설계도 사이사이에 자리 잡고 있어 기억에 의존해 찾아가기란 쉽지 않을 것 같았다. 별일이 없기를 바라는 수밖에 없을 듯했다. 각각 몸에 장비를 두르자 이드가 이동 카트를 준비시켰다.
-위잉
이동 카트를 타고 밖으로 나가니 헬리콥터가 준비되어 있었다.
“마음 단단히 먹고, 휘둘리지 마. 네가 유정천 순경을 조종할 수도 있어.”
공유식은 독고혈한테 주의사항이 적힌 문건을 보라고 하며 말했다.
해야 할 일과 하지 말아야 할 일들이 정리된 문건은 언뜻 보면 당연하게 생각되는 일로 나열되어 있었지만, 독고혈은 영 자신이 없었다.
어쨌든 자신이 공격해서 시작된 일이고 따지고 보면 유정천 순경도 피해자나 다름없었다. 원래대로 되돌릴 방법이 있다면 무슨 수를 써서라도 시도해 보겠지만 독고혈은 자기 몸조차도 원래대로 되돌릴 방법이 없었다.
그런 걱정으로 가득 찬 독고혈의 심정을 알기라도 하듯 공유식이 어깨를 툭툭 쳤다. 그래도 희망이라면 자신은 이제 혼자가 아니라는 점이었다.
-두두두두
헬리콥터는 상공을 한참을 날아가더니 바다를 넘어 어떤 장소에 착륙했다.
도착한 곳은 바다 위에 지어진 거대한 시설이었다. 건물의 반절은 물에 잠겨 있는 특성상 적절한 이동 수단이 없다면 출입과 탈출이 매우 힘들어 보이는 특수 시설로 보였다.
시설의 규모를 파악하고 보니, 공유식의 생각이 점점 복잡해졌다.
바이러스 유출의 문제는 현대사회에 굉장히 민감하고 심각한 일이었지만, 경찰이었던 사람이 이 정도의 보안시설에 감금되어야 할 정도면 그가 저지른 일이 생각보다 좀 더 심각한 일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단순한 면접이라고 생각했던 공유식은 갑자기 정신이 바짝 차려졌다.
사전지식이 없던 공유식이 보기에도 이 시설은 감옥이 틀림없었다. 이곳에 수감되어 있는 사람들은 적어도 종신형에 해당하는 중범죄자일 가능성이 높아 보일 정도로 이곳 자체가 하나의 커다란 요새였다.
A등급 기밀 장소가 중범죄자를 수용하는 감옥이라는 얘기는 없었던 것 같은데 공유식은 속은 느낌마저 들었다. 만에 하나 무언가 잘못되어서 사고라도 난다면···? 상상조차 하기 힘든 끔찍한 일이 벌어질 것만 같았다.
설상가상으로 무사히 탈출에 성공한다고 쳐도 이동할 탈출정이 없다면 바다 위에서 표류하거나 재난을 당할 가능성이 매우 높아 보였다.
건물 안으로 들어가자 조종사는 알 수 없는 비밀구호로 대화하며 셋을 조용히 지휘소로 데리고 갔다.
“안녕하세요.”
“아···, 네 안녕하세요.”
감독관으로 보이는 사람이 전면에 있는 대형 화면을 보다가 인사를 했다.
앞에 보이는 통합 관제 시스템은 상당한 영상을 제어하고 있었는데 관리하는 사람의 수도 꽤 많아 보였다. 이곳이 감옥일거란 공유식의 생각을 확인시켜 주듯 숫자가 쓰여 있는 수십 개의 영상이 죄수들의 방인 듯 나뉘어져 있었다.
“이쪽으로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네.”
-달각
안쪽의 방으로 안내받은 셋은 곧 중무장한 군인과, 경찰, 용병으로 보이는 사람들과 마주했다.
“이쪽의 요원들이 항상 옆에 있으며 보호를 해드릴 겁니다. 무슨 일이 있어도 절대 떨어지지 마시고, 조금 뒤 소등 절차 후에 안내를 드릴 테니 잠시만 쉬고 계세요.”
“···네, 알겠습니다.”
소등 절차 후에 안내한다는 것으로 보아 감금된 사람들과 불필요한 마주침을 최소화하려는 생각으로 보였다.
셋은 각각 서로 통성명을 하며 악수를 주고받았다.
다행히 꽤 든든해 보이는 사람과 마주한 공유식과 독고혈, 강충재 세 명은 이곳에 들어오는 내내 가졌던 불안감이 조금씩 해소되는 듯했다.
하지만 상대방의 생각은 조금 달랐던 모양으로 이보필, 강대강, 한만배는 심히 불만이 있었다.
특수임무중대에서 갑자기 파견된 이보필은 어떤 임무를 맡든 간에 신중한 편이었지만, 이번에 보호해야 할 민간인의 조합이 매우 이상해서 이 사람들끼리 해치지 않도록 보호하는 것도 해야 할 임무 중 하나인지 의구심이 들었다.
여리여리하게 생겨서 죽도 못 빌어먹게 생긴 독고혈이라는 남자는 주눅이 심하게 든 것처럼 보였는데, 아마도 옆에 있는 조폭처럼 생긴 남자 때문인 것만 같았다.
강충재라는 남자는 그냥 봐도 험상궂은 폭력배처럼 생겼는데 독고혈이 조그마한 소리에 깜짝깜짝 놀랄 때마다 흉악한 표정을 지으며 그를 자신한테로 끌어당겼다. 아무래도 보호해야 할 대상들끼리의 분리 조치가 시급해 보였다.
그와 반대로 공유식이라는 남자는 분위기 파악을 전혀 못하고 있었다. 방탄 고글을 마치 패션 고글인 양 머리에 올리고 옷은 반쯤 풀어 헤친 채 주변을 얼쩡거리고 있었다.
이곳이 어떤 곳인지 모르고 오진 않았을 텐데도 상황파악을 못 하는 건지 정신이 나간건지 그의 껄렁거리는 태도에서는 긴장감이라곤 조금도 찾아 볼 수가 없었다.
특수 강력계에서 차출당한 강대강도 할 말이 많았다. 아무리 가장 능력이 좋고 뛰어난 사람을 발령한다고 공지했지만, 자신이 이곳에 올 짬밥이 아니었다. 새파랗게 어린놈들도 있었는데 굳이 자신을 지목한 일로 보아 직장 내 갑질로 신고해도 모자랄 일이었다.
강대강은 누가 자신을 무시하거나 지휘계통을 어겼을 때 화가 많이 나는 성격으로 이번 일을 그냥 넘어가지 않으리라고 단단히 마음먹었다.
용병으로 한세월을 보냈던 한만배도 나머지 둘과 생각이 그리 다르지 않았다. 아무리 돈으로 고용되는 용병이라지만, 두 배 이상의 급료를 준다고 해도 사람이 품위가 있어야지 이런 허술해 보이는 민간인을 보호하는 일이라니 당치도 않았다.
언뜻 봐도 전문성이 떨어지고 별것 없어 보이는 민간인을 보호하는 일이라 후에 돌아가면 동료들한테 돈밖에 모른다는 식의 치욕적인 대접을 받을 것이 분명했다.
-쾅쾅 삐웅! 삐웅!
“···어? 무슨 소리지?”
거대한 진동과 함께 비상사태임을 알리는 경보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고 방 밖이 갑자기 엄청나게 소란스러워졌다.
불안한 기운이 엄습해 왔다.
왜 슬픈 예감은 틀린 적이 없는 걸까?
공유식은 이곳에서 쉽사리 빠져나가기란 굉장히 어려울 거란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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