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7화. SC복지 센터 6
< 57화 >
-달각
“이번에는 김용춘 님의 얘기를 들어보죠. 말씀해 주시겠어요?”
“···네.”
문종현은 차트를 체크하며 김용춘에게 부드럽게 말했다.
김용춘은 삼베나 모시로 지어진 부드러운 질감의 옷을 입고 있었는데 움직일 때마다 옷이 비단처럼 일렁거렸고 곁에 있는 용과 구름 모양이 번쩍거리며 빛이 났다.
“저는 흉가나 폐가 체험을 주 콘텐츠로 하는 개인 방송을 하고 있어요. 귀신 괴담이 돈다든지, 사람들이 기피하는 장소를 찾아가서 그 실체와 허상을 파헤치는 공익의 목적이었죠.”
김용춘은 간단히 자신이 하는 일을 사람들한테 설명했다.
“여러 괴담이나 음모를 주제로 하다 보니 제 콘텐츠의 내용을 의심하거나 비방을 하는 경우도 있었어요. 저한테 불만을 가진 사람들이 주작 방송이라고 깎아내리기도 했죠. 하지만 전 늘 사실에 기반을 두고 내용을 송출했고, 주로 생방송으로 진행해서 그런 일은 절대 없었어요!”
김용춘은 그동안 쌓인 것이 많았던지 곧 억울함을 토로하기 시작했다.
“흉가나 폐가들은 버려진 것처럼 보여도 대부분 사유지였고, 주인이나 관리자가 있는 경우가 많았어요. 흉흉한 소문이 돌던 폐가의 소유주들은 제가 가서 근거 없는 소문을 불식시켜 주는 것에 대부분 환영하셨어요. 실제로 그런 곳은 말만 무성했을 뿐 귀신같은 건 없었거든요.”
김용춘의 얘기에 사람들은 고개를 끄덕이기 시작했다.
버려진 폐가에서 귀신이 나온다는 소문이 돌고 그걸 체험하기 위해 많은 사람이 찾아오면 그곳에 사는 사람들도 골치가 아플 테니, 그가 찾아가서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것을 확인시켜 준다면 서로 이익일 듯했다.
“저한테 불만을 품은 경쟁 관계의 사람들은 제가 하는 일들이 전부 가짜라고 했어요. 저한테 귀신을 볼 능력이 없으니, 귀신이 있는지 없는지 파악하는 것도 불가능하다는 논리였죠. 전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생각했지만, 사람들은 끊임없이 저를 공격했어요.”
그의 말을 듣다 보니 사람들도 아리송해졌다.
귀신이 없다는 것을 확인하려면 귀신을 볼 수 있다는 걸 증명해야 하는 것이었나?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는 것을 확인해 주는 것이 문제의 핵심이 아니었는지 헷갈리기 시작했다.
“전 다른 사람들이 갔던 유명한 흉가나 폐가에 가서 그들이 사용했던 측정 장비나 귀신을 보는 장비들, 귀신이 좋아한다는 장난감들을 전부 준비해서 시험을 해봤죠.”
김용춘은 답답해하며 자신이 시도했던 여러 가지 노력을 조금 더 자세히 열거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심령 에너지 측정기, 전자기장, 플라스마, 모션 디텍터, 초음파 감지기 등 할 수 있는 모든 장비들을 다 사용해 봤지만, 그 어떤 것도 반응하지 않았어요. 귀신이 원래 없었거나 다른 사람들이 거짓말을 했거나 둘 중 하나였겠죠.”
여러 가지 장비들이 나열되자 사람들은 좀 더 김용춘의 얘기에 믿음이 가기 시작했다.
다른 사람들이 썼던 장비와 같은 것으로 확인을 해서 아무것도 발견할 수 없었다면 그의 말이 사실일 가능성이 높아 보였다.
“그러던 어느 날, 큰 문제가 생겼어요. 한 폐가에 들어갔던 사람 몇 명이 실종되기 시작했어요. 그중에는 저랑 경쟁 관계에 있던 사람도 있었어요.”
뭔가 심각한 사건이 발생한 것 같아지자, 사람들은 저마다 ‘아이고···.’ 라는 말을 섞었다.
애초에 흉가나 폐가는 들어가서 뭔가를 하기에 안전한 장소가 아니었다.
폐건물은 사람이 살지 않아서 음침하기도 하고 조직 폭력배나 불량 청소년, 부랑자나 범죄자, 노숙자들이 숨어서 지낼 장소가 될 가능성이 매우 높은 곳이기도 했다.
“그곳은 큰 화재로 일가족이 모두 사망했다는 소문이 있는 집이었어요. 그 근처에서 뜻 모를 실종 사건이 자주 일어나자 혹시 그런 사건들이 그 집과 관계가 있는 것은 아닌지 알아보기 위해 여러 사람이 몰리기 시작했거든요.”
김용춘은 점점 어두운 표정으로 말하기 시작했고 사람들도 불안한 표정으로 얘기를 들었다.
“그 때문에 소문은 걷잡을 수 없이 커졌고, 경찰도 수색을 몇 번이나 했었죠. 더욱 심각한 건 그곳을 정찰하던 경찰 몇 명도 같이 실종되었다는 사실이었어요.”
이쯤 되니 사람들의 실종이 정말 그 집과 관련이 있는 것인지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저한테 그 집을 찾아가 사실을 확인해 달라는 문의가 끊이질 않았어요. 저도 궁금하긴 했지만, 집의 소유주한테 허락받을 수가 없었어요. 일가족이 모두 사망한 사건이라 누가 상속을 받은 건지, 소유관계가 어떻게 되었는지 알기가 힘들었거든요.”
남의 사유지에 무단으로 출입할 수는 없는 일이니, 그의 말도 틀린 말은 아니었다.
“제가 반려하는 동안 저랑 불화가 있었던 사람 몇 명이 그 집을 찾아갔다가 실종되는 사건이 발생했어요. 사람들은 바로 절 의심했죠!”
김용춘을 주먹을 불끈 쥐며 갑자기 탁자를 내려쳤다.
-쾅
“저한테 범행 동기가 있다는 거예요! 그 일로 경찰 조사도 받았어요! 전 너무나 억울했어요! 제가 하지도 않은 일로 용의자 취급을 받다니요?! 세상 사람 모두가 저를 살인자라고 하는 것 같았어요!”
갑자기 얘기가 형사사건으로 넘어가고 김용춘이 흥분하기 시작하자 사람들은 흠칫했다. 하지만 일단 감옥이 아닌 병원에 있는 걸로 추론해 보자면 그가 범인일 가능성은 적다고 봐야 했다.
“결국 저는 혼자 그 집을 찾아가 보기로 했어요. 물론 방송을 켜고 갔죠. 사유지 불법 침입이긴 했지만 어쩔 수 없었어요! 그대로 있다간 그동안 제가 쌓아온 커리어가 다 날아갈 판이었어요!”
김용춘이 자신의 절박했던 상황을 설명하자 그 말을 듣던 사람들은 고개를 끄덕이기도 하고, 가로로 젓기로 했다.
“사람들의 눈을 피하려고 밤에 찾아갔는데, 도심지가 아니라서 그런지 주변이 굉장히 어두웠어요. 그 집은 뒤에 산이 있는 커다란 주택이었는데, 주변은 새소리 하나도 들리지 않았고 분위기도 몹시 스산했어요. 소리라곤 앞에 있는 강에서 흐르는 물소리가 전부였죠.”
김용춘의 설명을 듣고 사람들은 산속 깊은 곳에 있는 음침한 계곡 산장을 생각해 냈다.
“바람이 불자 어디서 탄 냄새가 났어요. 그 집이 화재로 전소되었다는 말은 사실이었던 모양이었어요. 주변에는 사람들이 먹다 버린 커피 컵, 플라스틱 바가지, 라면 봉지와 각종 쓰레기 같은 것이 널려있었어요.”
본격적으로 계곡 산장으로 들어가는 얘기가 시작되었다.
“집 안에 들어가는 건 그렇게 어려운 일은 아니었어요. 담벼락을 넘고 나니, 폐가가 그렇듯 창문들은 거의 다 깨져있었어요. 그리고 굉장히 이상한 냄새가 났어요.”
김용춘의 얘기에 사람들은 긴장하며 귀를 기울였다.
“미처 맡아보지 못한 냄새였어요. 저도 겁이 아예 없는 편은 아니라 굉장히 긴장했죠. 사실 귀신보다 사람시체를 발견할까 봐 더 두렵기도 했어요.”
사람들은 몸을 앞으로 기울이며 얘기에 더욱 집중했다. 안전한 곳에서 스릴 넘치는 얘기를 들으니 은근히 설레기도 했다.
“조심히 거실로 들어갔을 때 뭔가가 번쩍거렸어요. 그때 너무 놀라서 방송 중인 노트를 놓칠 뻔했어요. 하지만 가서 살펴보니 깨진 거울 조각이었어요. 옆에 돌 같은 것들이 굴러다니고 있었고 액자 하나가 걸려있었어요.”
김용춘은 폐허가 된 집안 내부를 자세히 설명하기 시작했다.
“그림 액자에는 커다란 돌이 있었고, 그 위에 얇은 줄기 같은 것이 뻗어 나와 하얀색의 쌀알 같은 꽃봉오리가 맺어있었어요. 굉장히 신비한 느낌이었는데, 화재로 전소된 집에 그런 멀쩡한 그림이 있을 거라곤 생각하지 못했거든요.”
듣던 사람들도 왜 그 그림만이 멀쩡했을까 싶어 궁금하긴 마찬가지였다.
“뒤돌아서 2층으로 올라가려는데 뭔가가 따끔했어요. 바로 앞이 산이라 모기가 있는 것 같았어요. 물린 곳이나 모기를 찾아보려고 했는데, 처음엔 목이 따끔거리더니, 그다음은 팔, 다리가 연이어서 따끔거렸어요.”
김용춘은 점점 어두운 표정으로 자기 몸 일부분을 손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그러더니 갑자기 머리가 핑하고 돌았어요. 그리고 전 거기서 정신을 잃었죠.”
갑작스러운 기절 소식에 놀라 사람들은 손을 입에 대며 다음에 나올 말을 궁금해했다.
그때 문종현은 얘기하던 김용춘과 나머지 내담자를 두루 살펴봤다.
모두 처음에 그가 당부한 대로, 서로 다른 사람의 말을 존중하며 관심 있게 듣고 있었다. 이번 심리 치료 그룹은 좋은 분위기로 관계가 잘 형성되고 있었다.
다시 대화에 참여한 공유식도 별문제 없이 집중하는 듯 보였는데, 뭔가 곰곰이 생각하는 것 같았다.
특이한 점은 다른 사람들은 주로 오른쪽을 보며 상상력을 발휘하는 것처럼 보이는 반면, 공유식은 왼쪽 위를 보며 인상을 찌푸리기도 했다. 마치 과거의 기억을 생각해 내려는 듯한 모습이었다.
공유식과 김용춘이 과거에 어떤 식으로 접점이 있었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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