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화. 인형 괴담
< 18화 >
“···독고혈이 죽는 게 가능해?”
공유식은 자신의 상식으로는 납득이 가질 않아 되물었다.
아니, 일단 독고혈은 작전에 투입되지도 않았었다. 대체 왜?
“우리가 들어가고 나서 소식이 없으니까, 독고혈이 어떻게든 해보려고 진입했었대.”
라석양은 무언의 신호를 하며 말했다.
눈치 빠른 공유식은 무슨 뜻인지 알아차렸다.
모든 정보가 공유되는 지금 독고혈의 치유 능력에 관한 정보를 노출하는 건 불필요한 부분이 있었다. 그럼 독고혈이 죽진 않았다는 얘기였다.
“허······.”
아무튼 공유식과 라석양을 구한 건 독고혈이라는 소리인데, 갑작스러운 이타적 행위에 공유식은 말문이 막혔다.
우리가 목숨을 걸고 서로를 위하는 애틋한 사이 정도는 아니었는데···. 그러고 보니, 이 모든 일의 시작은 강충재였다.
“잠깐만! ···그럼, 강충재는 찾은 거야?”
“아직 못 찾았대. 그래도 이 건물 어딘가에는 있겠지···?”
아직 살아있길 바라면서 라석양과 공유식은 서로를 마주 봤다.
“그럼, 지금 좀 찾아봐도 되나?”
답답한 상황에 공유식은 직접 저택을 둘러보고 싶었다.
“···물건을 건드리지 않는 선에서 가능할 것 같아.”
라석양이 경찰과 이어셋으로 협의한 후 고개를 끄덕였다.
-달각
“임시 발급증입니다. 주변의 사물에 주의해 주시고, 특별한 사항은 상부에 보고해 주시면 됩니다.”
잠시 기다리니 경찰이 자문용 발급증을 가져와서 라석양과 공유식은 저택을 둘러볼 수 있었다.
저택은 고풍스러운 옛 스타일로 관리가 꽤 잘된 곳이었다. 방도 매우 많았지만, 전등이 없어 부분마다 굉장히 어두웠다.
계단을 이용해 다른 층으로 이동하다가 공유식은 어떤 방에서 이상한 것을 발견했다.
“······어? 이거.”
“왜?”
“카드에 있던 컴퓨터처럼 생겼어.”
문득 귀신을 본 것처럼 공유식은 중얼거렸다.
귀신 찾기 카드에서 본 것은 망가진 컴퓨터였지만, 눈앞에 있는 것은 멀쩡한 컴퓨터였다.
컴퓨터는 켜진 채 어떤 인터넷 창 하나가 펼쳐져 있었는데, 어떤 사이트를 입력하다가 만 듯한 상태였다.
“잘 모르겠는데···, 이게 그 컴퓨터가 맞을까?”
라석양도 귀신 찾기 게임을 관람하긴 했지만, 공유식처럼 카드를 자세히 볼 수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확인해 보자! 그 카드 지금 있을 거 아냐?”
“그래!”
라석양은 이어셋을 통해 테이블에 놓여있던 카드를 조사해달라고 문의했다.
“아···. 카드가 전부 흰색이래.”
“······.”
게임이 끝났다는 걸까? 염매 인형의 능력이 더 이상 카드에 반영되지 않는다는 것 같았다.
어쨌든 귀신 찾기와 관련이 있다고 생각하니 라석양과 공유식은 괜히 언짢고 싫은 느낌이 들어 재빨리 자리를 피해 다른 곳으로 이동했다.
-탁탁
“조심하세요! 현장보존 하세요!”
무심코 지나가려다 주의하란 말에 쳐다본 방의 충격적인 모습에 라석양과 공유식은 그대로 굳고 말았다.
온 방의 전면이 피로 얼룩져 있었다.
무언가 거대한 것이 방 전체를 할퀴고 지나간 것처럼 보이는 섬뜩한 모습이었다. 바닥엔 내장이 파인 채로 죽어있는 사람이 있었고, 그 옆에는 늑대탈과 염매 인형이 있었다.
“늑대······.”
죽어있는 상태로 발견되었다던 그 늑대였다.
경찰이 오자마자 재빨리 튄 늑대가 죽었다는 말도 쉽게 납득할 수 없었는데, 이 방의 처참한 현장은 더 이해가 가지 않았다.
경찰이 도착하고 바로 늑대가 도망가고, 그다음 그 짧은 시간에 이 엄청난 일이 벌어졌다는 걸까?
방의 상태를 보면, 집채만 한 야수가 있지 않은 한 이런 일이 가능할 것 같진 않았다. 모두 도망가기에 바쁜 시간일 텐데, 여러 명이 한 명을 죽이려고 그 아까운 시간을 낭비했을 것 같지도 않고···. 상식을 벗어난 일이었다.
그보다 공유식은 섬뜩한 염매 인형으로 자꾸 시선이 가는 것을 억지로 되돌려 다른 곳을 보려고 애썼다. 하지만 다른 곳도 그보다 끔찍한 피로 얼룩져 있어서 도통 눈 둘 곳이 없는 방이었다.
괴로운 물건을 피해 이리저리 시선을 계속 돌렸을 무렵, 공유식은 다시 카드에서 봤던 물건 하나를 방에서 발견했다.
“저거···, 저 골동품 시계!”
공유식은 자기도 모르게 소리를 쳤다.
“이거요?”
공유식이 손짓하며 가리키자 주변을 수색하던 경찰 중 하나가 무심코 골동품 시계를 만졌다.
“만지지 마!”
-드르륵
갑자기 서재가 움직이더니 뒤쪽 벽이 열렸다. 조사를 위해 물건을 만지지 못하게 하려고 했던 경찰과 나머지 사람들은 그 상태로 굳었다.
하지 말아야 할 일이 해야 할 일로 바뀐 애매한 상황이었다.
“···여기 비밀 통로가 있어요!”
경찰 하나가 정신을 차리고 말하자, 모두 연락을 취하기 시작했다.
비밀통로를 발견한 공로를 인정해서 경찰은 공유식과 라석양에게도 같이 가겠느냐고 권유했지만, 둘은 고개를 흔들며 완강히 거부했다.
공유식과 라석양은 오늘 더 이상 위험한 일은 경험하고 싶지 않았다.
사람도 많고 굳이 둘이 앞장서야 일이 해결될 이유도 없었다.
강충재는 사람들이 알아서 잘 구해주리라 생각하며 공유식과 라석양은 정신을 부여잡고 저택을 재빨리 나왔다.
-타닥
“하아···.”
어느새 어스름이 낀 새벽이 둘을 맞이하고 있었다.
밖은 약간 추워서 쌀쌀했지만, 통신장비를 모두 빼고 자유로운 상태에서 둘은 공기를 맘껏 마셨다.
“늑대는 어떻게 된 걸까?”
드디어 듣는 사람이 없어지자, 공유식은 하고 싶던 말을 꺼냈다. 죽어서 발견되기 전까지만 해도 잡아서 능지처참하고 싶었던 늑대였다.
“글쎄···. 생포했으면 더 좋았을 텐데.”
라석양도 이어서 말을 했지만, 늑대의 죽음이 아쉽지는 않은 말투였다.
“난 왜 늑대를 죽인 게 사람이 아닌 것 같은 생각이 들지?”
공유식이 독백 비슷하게 중얼거렸다.
“···왜?”
“짧은 시간에 일어난 일치고는 방의 상태가 지나쳤다고나 할까?”
“···조사를 해보면 알겠지만, 애초에 그 방 상태가 그랬을 수도 있어.”
사실 라석양과 공유식의 말, 둘 다 가능한 얘기일 수 있었다.
상대는 가공할 만한 범죄단체로 이루어진 조직으로 강충재를 납치했고, 라석양과 공유식을 겁박해서 귀신 찾기라는 이름의 도박게임을 하고 있었고, 그 와중에 독고혈을 죽였으니 그사이 저택 내부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다고 해도 그렇게 이상한 것은 없는 상태이긴 했다.
“···혹시, 그 염매 인형이 죽인 게 아닐까?”
“그 인형이?”
갑자기 제시된 가설에 라석양이 물었다.
오싹한 인형이긴 했지만, 사람을 죽일 만한 능력이 있을까 싶었다.
“게임을 봐서 알겠지만, 정말 이상한 일이 많았거든!”
“그랬지···. 그러고 보니 그 인형을 확보해야겠네!”
염매 인형의 접촉 주술도 굉장히 놀라운 능력 중의 하나였다.
“···아니야! 좋은 생각이 아닌 거 같아!”
갑자기 공유식이 고개를 저었다.
“이능이 있다면 수집할 필요가 있어.”
염매 인형을 수집한다는 라석양의 말에 공유식은 생각만 해도 섬찟해졌다.
“오래전에 내려오는 인형 괴담 중에 그런 얘기가 있어. 인형과 단둘이 있지 말아라.”
“그런 얘기가 있어? 왜···?”
라석양이 반문했다.
대부분의 사람이라면 다 아는 오래된 인형 괴담 중 하나였다.
잘 웃지 않는 여자애가 있었는데, 인형 하나를 사줬더니 웃게 되었다. 하지만 인형을 파는 상인이 절대 인형과 아이를 단둘이 두지 말라고 당부했었는데···, 등으로 시작되는 얘기였다.
“단둘이 있으면 죽으니까···?”
“보통 인형과 단둘이 있지 않나?”
라석양이 의아해하며 말했다.
상당히 근원적인 답변이긴 했다.
생각해 보면 인형이 주술로 매우 많은 돈을 벌어다 준다고 해도 단둘이 있으면 죽는다는 건, 상당히 위험한 조건이었을 것 같았다.
회피할 수 있는 특별한 방법이 있지 않은 한, 수시로 단둘이 될 텐데 애초에 그건 너무 말이 안 되는 얘기였다.
구전을 통해 전해 내려오는 얘기인지라 공유식도 사실이라고 확언하기엔 어려운 부분이 있었다.
“사실 인형보다는 네가 카드를 맞춘 게 더 신기했어!”
“아아···, 그거.”
라석양의 말에 공유식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건 공유식도 인정하는, 정말 터무니없는 부분이긴 했다.
애초에 저주 인형은 특별한 능력이 있겠거니 생각하겠지만, 공유식이 카드게임을 잘할 줄은 모두가 몰랐을 터였다.
사실 저택에 입장해서 카드에 쓰인 표식을 알아맞혔을 때나, 카드게임 중에 매칭이 되는 카드가 떠올랐을 때, 공유식은 이상한 생각이 들긴 했었다.
마치 누군가가 짚어준 것처럼, 혹은 보여주는 것처럼 알게 되었기 때문이었다.
이전까지는 경험해 보지 못한 이상한 감각이었다.
“참, 독고혈은 어디 있는 거야?”
카드게임을 생각하다 보니 둘을 구출하는 데 도움을 준 독고혈 생각이 났다. 아까는 듣는 귀가 있어서 자세한 얘기는 할 수 없었다.
“일단 연구소로 가 있을 거야.”
“···어떻게 된 거야?”
“상자에 넣어져서 칼이 꽂힌 채로 방치된 걸 지금 치료 중이라고 들었어.”
그냥 들어도 굉장히 심각한 상황인 듯했다.
“일단 독고혈은 죽은 상태로 처리해서, 이번 기회에 신분 세탁을 할 생각이야.”
“뭐···, 하긴. 300년 전의 사람으로 등록된 건 앞으로 생활하는 데 있어서 무리가 있지···.”
공유식은 말하던 도중에 독고혈이 희생해서 도와준 부분에 대한 고마움에 다시 한번 말문이 막혔다. 까딱하면 죽은 사람이 자신이 될 수도 있었다.
“하···, 강충재 한번 구하겠다고 이게 뭔···.”
공유식은 허탈한 한숨을 날렸다.
아직 발견되지 않은 강충재를 포함해서 공유식과 라석양, 독고혈은 오늘 모두 죽을 고비를 넘겼다.
귀신 시장에 갔을 때만 해도 오늘 하루 만에 이런 많은 일이 벌어질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었다.
물론, 결과적으로 보자면 엄청난 범죄 소굴을 소탕하게 된 날이기도 했다. 하지만 더 조사해 봐야 할 일이 남았고, 아직 강충재의 소재와 조직과의 관련성도 파악하지 못한 상태였다.
“근데 독고혈도 문제긴 하지만, 난 왜 벌레가 더 걱정스럽지?”
칼에 꽂힌 채로 방치되었다는 말에 공유식은 또다시 벌레 유출 사건이 벌어진 건 아닌가 싶었다.
“···지금 그 문제도 심각해!”
이 정도로 자주 문제가 발생하면 독고혈은 그냥 감금시키는 게 맞지 않나 싶은 라석양이었다.
감동의 순간이 그다지 오래가지 않는 두 명이었다.
“뭐, 그래도 어느 정도 마무리가 된 듯하네. 늑대도 죽었고, 비밀통로를 찾았으니 강충재도 찾을 수 있겠지?”
“우린 여기서 철수해도 될 거 같아.”
아직 마무리된 건 아무것도 없었음에도 둘은 갑자기 장밋빛 희망을 얘기했다. 둘 다 저택에 다시 들어갈 생각 따윈 전혀 없었기 때문이었다.
“근데 내가 궁금한 건 그거야. 우리가 처음 저택에 들어갔을 때.”
마음속에선 이미 벌레로 오염된 저택을 바라보면서 공유식은 말을 이었다.
“···이상했지.”
라석양이 공유식의 생략된 말을 눈치챈 듯 동의했다.
보통은 들어오기 전에 초대장을 먼저 확인하는 것이 입장의 순서일 텐데, 이곳의 문지기는 먼저 들어오라고 해놓곤 초대장을 보여달라고 했었다.
그 순간 모든 것이 꼬여버렸다.
애초에 라석양과 공유식은 근처를 살펴볼 요량으로 저택에 왔었던 거였을 뿐, 위험한 상황에 노출될 생각이 전혀 없었고 준비도 되어있지 않았다.
참으로 이상한 일이었다.
초대장을 보여달라고 할 거였으면 미리 얘기했으면 좋지 않았을까?
“···그 빨간 버튼의 용도는 뭐였을까?”
공유식이 의문을 담아 말했다.
선뜻 초대장을 제시하지 못하자 괴물형상을 한 문지기는 빨간 버튼을 눌렀었다.
그렇다면 문지기는 초대장이 없는 사람들은 어떻게 할 생각이었을까?
두 사람은 말을 하다 말고 저택의 입구를 바라봤다.
불길하게도 다시 들어가 봐야 할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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