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1화. 귀신과 숨바꼭질 2
< 101화 >
-지지직 퍽
어디선가 낡은 전구가 방전되어 깨지는 것 같은 소리가 들렸다.
공유식은 옅은 피 냄새와 소독약 냄새를 맡고 잠에서 깨어났다.
팔에는 바늘이 꽂혀 링거병과 연결되어 있었고, 다쳤던 가슴 부근은 처치가 끝난 듯 붕대로 둘둘 말려 있었다.
몸을 일으켜보니 파편이 꽂혀있었던 당시의 충격적인 모습과는 다르게 상처가 깊지는 않았는지 움직이는 데 큰 무리는 없었다.
“저···, 여기요···!”
“···네! 무슨 일이세요?”
“이것 좀 빼주세요.”
“네, 잠시만요~.”
근처에서 환자를 보고 있던 간호사가 다가와 공유식의 상태를 확인한 후 링거에 연결된 주삿바늘을 빼곤 팔을 거즈로 닦으며 달리 이상한 점은 없는지 이곳저곳 생체반응을 확인하기 시작했다.
“저기, 어떻게 된 일이에요? 기억이 잘 안 나서···.”
“아···! 보험회사에 전화하시면 될 거예요. 무단횡단 건이죠?”
“···네? 아닌데요?”
“어머! 잘못 알았네! 차랑 충돌하신 분 아니세요?”
“아뇨. 전 몸에 파편이 튄 거로 알고 있는데···, 수술이 끝난 건가요?”
공유식이 자신의 붕대를 가리키며 말하자, 간호사는 상황을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아, 급히 수술하셨던 분이구나! 네~! 수술은 잘 끝났고요. 나머지는 보험회사랑 상의하시면 될 거예요. 입원 수속은 문 옆에 있는 데스크에 가서 하시면 되고요. 가셔서 이름이랑 사건 얘기하시면 해결될 거예요.”
“네. 고맙습니다.”
병원 내에서 일이 많았는지 공유식의 사건을 다른 사건으로 착각했던 간호사는 사람 좋은 웃음을 지은 후, 링거와 거즈 등 치료용품 등을 챙기며 올려져 있던 침대도 아래로 내려준 후 다른 환자에게로 사라졌다.
-찰각 찌익
침대 아래에 놓인 예비용 삼선 슬리퍼를 찾아 신고 주변을 둘러보러 방 밖으로 나간 순간, 공유식은 언젠가 동일한 일을 경험해 본 적이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지지직 퍽
어디선가 낡은 전구가 방전되어 깨지는 것 같은 소리가 들렸고, 순식간에 주변에 어두움이 내려앉았다.
“···어? 뭐지?”
문밖으로 나가자마자 갑자기 낡고 오래된 건물로 변한 병원은 운영이 중단된 지 한참이나 지난 것 같은 폐건물로 변해 있었다.
분명 조금 전까지 같이 대화를 나누었던 간호사나 다양한 환자로 가득했던 병동이 지금은 너무도 황량한 곳으로 변해 그 어디에도 사람의 그림자를 찾아볼 수 없었다.
너무도 급변한 환경변화에 놀라있던 공유식의 눈에 반투명하게 빛나는 귀신처럼 보이는 물체가 먼 곳에서 휙ㅡ 하고 지나가는 것이 보였다.
공유식은 갑자기 벌어진 현상에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했지만, 주변은 너무 공허했고 아무것도 하지 않고 가만히 있는 것도 좋은 선택은 아닌 것 같았다.
어차피 공포와 마주해야 한다면 좀 더 적극적으로 해결하는 것이 나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 공유식은 할 수 없이 슬리퍼를 질질 끌며 불빛이 지나갔던 장소로 발걸음을 옮겼다.
-찌익 찍찍
빈 곳에 울리는 자신의 낡은 슬리퍼 소리에 종종 놀라긴 했지만, 빛이 보였던 4층 병동의 방 앞으로 가는 동안에 특별한 일이 발생하지는 않았다.
-철컥철컥 쾅쾅!!
하지만 도착해보니 방문은 잠겨있었고, 어지간한 힘을 줘도 열리진 않았다.
한참이나 문고리와 씨름을 했지만, 별 소득이 없자 제풀에 지친 공유식은 근처의 긴 의자에 앉아서 숨을 몰아쉬었다.
서늘한 바람이 스쳐 지나갈 때마다 촉각이 곤두섰지만, 이상하게도 신변에 위협이 느껴지진 않는 평온한 병원이었다.
“쩝···!”
사실 일이 계획대로만 진행되었다면 공유식이 이곳에서 이렇게 혼자 남아있진 않았을 터였다. 지금쯤 독고혈과 강충재와 함께 다음 일을 의논하고 있었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어디부터가 잘못이었는지 알 수 없는 막연한 상태에서 공유식이 침울하게 앉아있었을 때, 갑자기 소리도 없이 경비원 한 명이 근처로 손전등을 밝히며 다가왔다.
어쩌면 공유식이 멀리서 봤던 빛나던 물체는 경비원이었는지도 모를 일이었다.
“···자넨 누군가? 왜 여기 있지?”
“아···. 안녕하세요? 아저씬 누구세요?”
경비원의 등장에 깜짝 놀란 공유식이 묻자, 경비원은 그를 머리부터 발끝까지 쳐다본 후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여긴 외부인들이 들어올 곳이 아니야! 어서 밖으로 나가!”
“···어디로 가야 하죠? 아저씨?”
경비원의 매몰찬 대답에 공유식이 무심코 질문하자, 경비원은 당연한 것을 자신에게 묻는다는 듯 말을 이었다.
“자네가 왔던 곳으로 되돌아가면 될 것이 아닌가?”
“아···. 그런가요···?”
별다른 소득 없이 돌아온 호통에 고개를 끄덕이던 공유식이 다시 앞을 바라봤을 때. 경비원은 어느새 그 자리에서 사라진 후였다.
이상한 현상에 놀라 자리에서 일어나 주변을 둘러봤지만, 그 어디에도 방금 있었던 경비원의 흔적은 없었다.
어떻게 된 일인지를 거듭 생각해 보던 공유식은 재빨리 그곳에서 나와 아까 자신이 있던 곳의 데스크로 향했다.
아까 간호사가 했던 말이 기억난 공유식은 데스크에 널려져 있는 빛바랜 서류들을 살펴보기 시작했다.
데스크 안에는 다수 환자의 것으로 보이는 진료기록이 있었는데, 그 서류 틈에 무단횡단 사고가 섞여있었다.
사고의 결과로 인한 사망자는 신원미상자로 일시적 조치로 시신 안치실에 옮겼다고 쓰여 있었고, 다른 진료기록에서도 비슷한 신원미상의 사람들이 다소 있는 것으로 보였다.
-타닥 찌익
어쩐지 불길한 느낌이 든 공유식은 지하실로 거침없이 달려갔고, 어둡고 음산한 그 복도의 끝에 있는 시신 안치실에 당도하게 되었다.
안 좋은 예감이 들어 두려움도 잊은 채 문을 열고 들어가자 그 안에는 아직도 가동되는 것 같은 차가운 냉장고가 여러 개가 있었다.
그중에서 ‘무연고 시신’이라고 쓰여 있는 칸을 조심스레 열어본 순간, 그 안에서 온몸이 여기저기 훼손된 채로 방치된 독고혈의 시신을 발견했다.
“뭐야···?! 말도 안 돼!! 독고혈이 왜 여기에!!”
놀란 공유식이 꽁꽁 언 독고혈의 몸 여기저기를 만지며 울부짖었다.
세 명이 대로변으로 이동하기 전에 이미 목각인형이 3개밖에 남지 않았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나름 치밀하게 계획을 세웠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특별한 변고는 생기지 않을 것으로 생각했었다.
하지만 설마 했던 죽음이 진짜로 찾아왔고, 그 결과로 독고혈의 시체를 마주하게 되었다는 사실은 엄청나게 충격적인 일이었다.
정말로 이 안에서는 무슨 일이든 벌어질 수 있다는 얘기였고, 안전하게 원래의 세계로 돌아가는 것은 꿈에서나 일어날 일일지도 모르는 절망적인 상황이었다.
“이···, 이러면 안 되잖아!! 같이 돌아가야지!!”
공유식이 독고혈의 시체를 껴안으며 좌절에 빠져 울부짖었을 때, 어디선가 미세한 심장박동 소리가 들리는 것만 같았다.
-두근
“어?! 뭐야? 독고혈?! 살아있는 거야?”
신기하게도 공유식이 말하며 쳐다보는 동안 죽어있었던 시체의 몸에서 생기가 돋기 시작하더니, 심장이 뛰기 시작했고 서서히 무채색의 몸이 색을 덧입었다.
“···허억! 으ㅡ악!!!”
갑자기 독고혈이 숨을 가쁘게 몰아쉬며 자리에서 일어나 앉으며 외쳤다.
“독고혈?! 진짜야? 정말 살아난 거야?! 이게 어떻게 된 거야?!”
“난 ···교통사고를 당했었는데···. 어떻게 된 거지?”
공유식이 독고혈의 몸을 계속해서 흔들며 물어보자, 혼란스러운 듯 그를 바라보다가 서서히 정신을 차린 독고혈은 이내 공유식의 어깨 부근을 바라보며 뭔가를 깨달은 듯 고개를 끄덕였다.
“해치 때문이구나···. 덕분에 살았어!! 지팡이! 네 지팡이가 날 살렸대!”
공유식은 독고혈의 말에 그동안 까맣게 잊고 있었던 해치의 존재를 떠올렸다. 왜 지금까지 잊고 있었는지 모를 일이었다.
“얼마나 놀랐다고!! 진짜 죽어버린 줄 알았잖아!!!”
공유식은 독고혈이 살아난 것이 너무도 반가워 그를 힘차게 껴안으며 말했다.
“정말 다행이야!! 근데 무슨 지팡이···? 아, 설마 산신령이 줬던 지팡이?”
“응···! 맞아! 지금 해치가 들고 있어!”
공유식은 기뻐하며 대답하는 독고혈의 말에서 산신령에게서 받았던 용도를 모르던 지팡이를 기억해 냈다.
“우와~! 그게 이런 효과가 있는 거였어? 놀라운데?”
“그러게~!”
공유식과 독고혈은 굉장한 능력의 지팡이에 감사를 표하며 여전히 얼떨떨한 표정을 지었다.
“그나저나, 강충재는 어디 있어?”
“모르겠어. 난 만난 적이 없거든. 너는?”
“나도 만난 적이 없어···. 혹시, 강충재도 죽었을까?”
공유식과 독고혈은 죽다 살아난 효과로 기분이 한껏 부풀어 올랐지만, 다시금 맞이한 강충재의 부재에 불안한 표정으로 시신 안치실의 냉장고 여러 개를 쳐다봤다.
-드륵 드르륵
“강충재!!”
“···강충재!”
둘은 시체 안치실의 여러 칸을 열어보다가 불에 탄 듯한 끔찍한 모습의 시체를 여럿 발견했다. 그리고 드디어 한곳에서 육중한 덩치의 강충재를 발견할 수 있었다.
엄청나게 초췌한 상태로 창백하게 얼어있는 강충재는 죽은 지 한참이나 지난 것 같아 그를 되살리는 것은 불가능할 것 같은 느낌마저 들었다.
“···어떻게 해야 강충재가 살아날 수 있지?”
“네가 손으로 만지면, 해치가 알아서 해결할 거야!”
마치 사령술의 봉인이라도 풀어야 다시 살아 돌아올 수 있을 것 같은 막연한 기분에 휩싸였지만, 공유식은 독고혈이 일러주는 대로 천천히 강충재의 몸에 손을 갖다 대었고, 부패가 한창 진행 중이었던 강충재의 몸에서 곧 미세한 빛이 새어 나오더니, 원래의 상태로 회복되기 시작했다.
-쾅
“···허헉!! 뭐야?! 설마, 나 죽었었어?!!”
요란한 소리를 내며 벌떡 일어난 강충재가 이상한 상황을 눈치챈 듯 크게 소리쳤다.
“와···!! 다행이야! 강충재!!”
“···살아났구나!!”
공유식과 독고혈은 어리둥절해하는 강충재를 부둥켜안고 기뻐했다. 그러자 강충재의 몸이 순식간에 뜨거워졌고, 둘은 시실 안치실의 냉기도 이겨낼 만큼의 온기를 그에게서 한꺼번에 전이 받았다.
“우와! 갑자기 몸이 엄청나게 따뜻해졌어!”
“뭐야···! 뭐가 어떻게 된 거야?! 엉?! 왜들 이래?!”
사태를 파악하지 못한 강충재가 어리둥절해서 외쳤다.
“잠깐만···! 여기서 이럴 게 아니라, 우선 위로 가서 옷 좀 입고 상의 좀 해보자!”
“그래! 여긴 생각보다 무서운 곳이었어!”
시신 안치실에서 벌거벗은 채로 부둥켜안아 있던 것이 어색하고 민망했던 세 명은 재빨리 가릴 것을 찾아 위층으로 이동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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