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화. 제안
< 7화 >
-삐이이이···
자는 동안에도 계속해서 들리던 시끄러운 이명 소리의 여운에 시달리던 공유식은 눈을 뜨자마자 자신이 이상한 유리로 된 관 속에 누워있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치료실로 느껴지는 관 속에서 자신의 심장박동을 포함한 각종 생체리듬을 알리는 소리가 규칙적으로 울려 퍼지고 있었고, 다행히도 신체 상태는 ‘매우 정상’이라는 표시를 내고 있었다.
“아···, 아-.”
다행히 목소리가 나왔고, 말을 알아들은 것처럼 관이 열렸다.
오랫동안 누워있던 영향으로 공유식은 약간 비틀거리며 밖으로 나와 소파에 기대 누웠는데 바로 앞에서 라석양과 이드가 무언가를 열심히 하고 있었다.
“저기···, 어떻게 된 거야?”
공유식은 라석양을 보며 그간의 근황을 물어봤다. 건물이 폭파하고 난 뒤의 기억이 하나도 없었다. 왜 자신이 병원이 아닌 이곳에서 눈을 떴는지도 의문이었다.
-탁
“어? 강아지가 시커멓게 됐네? 탄거야?!”
“······.”
근황을 묻다 말고 공유식은 문득 강아지의 시커먼 모습에 깜짝 놀라 일어나서 라석양이 있는 곳으로 다가갔다.
“···잘 봐봐. 털이 없지?”
“그러네···? 근데, 원래 흰색 강아지 아니었어?”
잠시 뒤 뭔가 분노하는 듯이 라석양이 말했고, 자신의 질문과는 다른 질문이 되돌아와서 생각해 보니 어딘가 이상했다.
탁자 위 방석에 곤히 잠든 것 같은 강아지의 털은 모두 사라진 상태였는데, 마치 태생이 검은색 강아지인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분명 처음 봤던 강아지는 흰색 털이 수북한 모습이었다.
“나도 그렇게 알고 있었는데, 타버린 털을 다 면도하고 나니까 아니었어!”
“그···, 그래? 신기한 일이네?”
“이상한 일이지!”
공유식은 설마 자신이 일으킨 폭파 사건 때문에 살이 익어서 검게 변했다든가 하는 끔찍한 생각도 들었지만, 괜히 긁어 부스럼을 만들 것 같아서 대충 맞장구를 쳤다.
“···그럼, 불에 그을린 건가? 근데, 주변에 있는 음식들은 뭐야?”
공유식은 강아지 주변에 빙 둘러있는 각종 야채, 과일, 과자들이 이상해서 물었다.
마치 강아지 요리를 하려고 음식을 대기시킨 것 같은 기괴한 모습으로 보이기도 했다.
“지금 제사 지내는 거야.”
“···제사?”
“그래. 제물을 올리면 깨어날까 싶어서.”
상식을 벗어난 대답이 돌아오자, 공유식은 조금씩 헷갈리기 시작했다. 제사와 제물은 종류와 양식이 달랐다.
“어디에다가 제사를 지내는데?”
“어디긴? 곰이 깨어나게 해달라고 제사 지내는 거지?”
“······응?”
모양을 보면 강아지를 제물로 올린 후, 원하는 소원을 빌려는 모양으로 보였으나, 라석양이 하는 말을 잘 들어보니, 옆에 있는 음식은 강아지가 깨어나기 위한 공물인 모양이었다.
언뜻 보니 밑에 이상한 문양도 그려져 있는 것으로 보아, 현대세계의 샤머니즘을 잘못 해석한 영향이 짙어 보였다.
그나저나 라석양이 의사인 것으로 추정해 보자면, 해야 할 의학적 치료는 하지 않고 왜 이런 이상한 행위를 하고 있는지 의문이었다.
“아참! 이드? 그거 가져와!”
“네!”
공유식이 라석양과 강아지의 이상한 제사 의식에 고민이 짙어질 때쯤, 라석양이 뭔가를 지시했고 이드가 뒤쪽에서 원통으로 된 물건을 가져와 건넸다.
-탁
“뭐···, 뭐야!”
원통 안에 사람의 눈알 두 개가 고정된 것을 보고 깜짝 놀란 공유식은 뒤로 물러났다.
“무슨 짓이야! 너희들 혹시, 장기 밀매? 뭐, 그런 거 하는 거야?”
“잘 봐봐! 이 눈.”
순식간에 섬뜩해진 공유식이 물었지만, 라석양은 아무렇지 않게 원통 안에 있던 눈을 확대했다. 그러자 무엇보다도 투명하고 실핏줄이 보이는 커다란 망막이 공유식을 강렬하게 노려보았다.
어디선가 본 적이 있는 눈이었다. 어디서 봤을까? 저 빨간 눈···.
머릿속에서 무언가를 생각해 내려다 공유식은 문득 이상함을 느꼈다. 이전에 언젠가 한 번 더 지금 있던 상황이 전에도 있었던 것만 같았다.
데자뷔라고 하기에 어딘가 정말 진짜 같은 과거가 있었던 것 같았다.
그렇게 생각하는 순간 공유식은 온몸에 소름이 돋았고 치가 떨려 정신을 바짝 차렸다.
“너랑 같이 왔던 정추백의 눈알이야!”
“······! 아···! 맞다!”
정추백은 백색증이 있었고, 다시 보니 엄청나게 밝은 빨간색 눈이라 닮은 것도 같았다.
“사회에 물의를 빚어 죄송하다면서 이왕 죽는 마당에 장기기증을 하겠다고 했어!”
“아···! 그, 그래···?”
공유식은 라석양의 말에 놀라서 멍하게 대답했다.
결국 그랬던 건가···? 폭파 뒤에···? 난 어떻게 무사했던 거지? 운이 좋았나···?
공유식은 복잡한 심경이었다. 갑자기 들이닥친 폭력배들을 도발했던 것은 유리 벽의 견고함을 믿었던 것이었는데, 그 여파로 이렇게 사망자가 나올 줄은 미처 몰랐다.
“···그리고, 이것 한번 봐봐!”
라석양이 멍하니 있던 공유식에게 한 영상을 틀어주며 말했다.
그녀가 틀어준 영상의 대부분은 사람들이 알 수 없는 이상행동을 하다가 죽는 내용이었다.
사람들은 앞으로 벌어질 끔찍한 일은 알지 못하는 것처럼 엄청나게 밝고 행복한 표정을 하고 있었고, 도심 교차로에 서 있다가 차가 들어오면 바로 달려 나가서 사고가 나는가 하면, 차들 사이로 아슬아슬하게 달리고 있는 사람도 있었다.
그런 사건이 담긴 영상들은 모두 하나 같이 위험하고 끔찍한 결과로 이어졌는데 유형도 다양했고, 사람들의 나이대도 달랐으며 사건이 일어난 시간도 다양해서 동일한 사건으로 보이지는 않았다.
“이게 무슨 상황이야···?”
“그걸 이제부터 알아볼 생각이야! 전에 정추백이 너한테 카드를 얻은 얘기를 꺼낸 적이 있었지?”
끔찍한 영상을 왜 자신한테 보여주는지 의아했던 공유식은 그녀가 정추백의 얘기를 꺼내자 언뜻 짐작이 갔다.
“아···! 그랬지! 뭐라더라 개 주인의 가방을 훔쳤다고 했던가···? 그러고 보니, 비슷한 사건인 건가?”
공유식은 정추백이 운 좋게 가방을 얻었다면서 했던 얘기가 생각이 났다.
주변 사물을 치고 다니던 사람이 갑자기 행인한테 시비를 걸더니 도로로 달려나갔다든가 하는 그런 내용이었는데, 어떻게 보면 지금 본 영상과 비슷하다고도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리고 그 카드는 원래 폭력배 무리가 갖고 있었던 거였고···.”
“그럼, 저 사건들이 다 관련이 있다는 건가?”
정추백은 이미 죽어서 더 이상 알아볼 순 없지만, 카드가 원래 폭력조직에서 나온 것이었으면 폭력배 무리와 관련이 있을 수 있었다.
“그걸 이제부터 알아보려고 해서 제안을 하나 할까 해!”
“무슨···, 제안?”
“이제 이 카드의 주인은 네가 되었으니까!”
라석양은 언제부턴가 잊고 있던 투명한 금색 ‘Dr.라’ 카드를 꺼내 보여주며 말했다.
그 순간 공유식은 잊고 있던 카드의 존재가 생각났다.
정추백이 죽었으니, 이제 자동으로 카드의 주인은 내가 되는 건가?
“하지만 카드 사용에 문제가 있어. 이미 네가 저지른 일 때문에 손해가 엄청나거든.”
“······.”
뭐, 고의가 아니라고는 할 수 없는 도발과 폭파 사건이 있긴 했다.
“그래서 카드의 사용조건으로 네가 강충재와 함께 이 사건을 처리하는 걸 도울 수 있는지 물어보려는 거야!”
“잠깐, 강충재가 누구지···?”
공유식은 갑자기 튀어나온 사람의 이름이 아리송했다.
“여길 찾아왔던 조직의 두목인데, 형량 합의를 조건으로 협조하기로 했어!”
“···허···! 그 사람 좀 위험한 사람 아닌가?”
공유식은 건물을 부수며 들어왔던 강렬한 이미지의 남자를 생각해 냈다.
“······뭐, 그럴지도 모르지.”
라석양은 ‘그게 네가 할 소린 아닌 거 같다.’라는 표정으로 말했다.
건물의 일부는 강충재와 그 무리가, 그 나머지 반절은 공유식의 도발로 폭발했다.
“근데 뭘 믿고 나하고 저 일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거지?”
공유식은 아리송했다.
라석양과 자신은 접점이 없지 않은가? 서로 알지도 못하는데···! 게다가 자신은 관련된 일을 해본 경험도 없었다.
“너도 앞선 영상을 봐서 알겠지만, 이 일은 일반적인 방법으로는 해결이 불가능한 사건이야. 무엇보다 특별한 상황에 대처하는 능력과 비밀이 생명인 부분이기도 하지! 네가 카드를 어떻게 쓸지는 네 몫이지만, 앞선 폭파 사건에 사망한 사람들의 목숨에 관한 책임 정도는 질 거라고 보고 있어!”
공유식은 예상치 못한 일을 제안한 라석양의 얼굴을 쳐다보다가 이번 사건으로 사망한 사람의 수가 생각보다 엄청났을지도 모른다는 것을 추측해 보았다.
“···할 수는 있지만, 그런 위험하고 비밀스러운 일을 내게 맡기겠다고?”
“그래. 너한테 임시직책이 부여될 거야! 그리고 이 일이 해결되고 나면 카드는 원하는 대로 써도 좋아!”
공유식은 멍한 표정으로 그녀가 하는 말을 듣고 있었지만, 사실 인명피해라면 얘기가 다르기도 했다. 그런 얘기라면 자신이 저지른 일도 있으니, 제안을 받아들이지 못할 이유도 없었다.
게다가 덕분에 카드도 공짜로 얻게 되었으니, 이미 사망했고 장기기증까지 한 정추백을 위해서라도 이 정도 일은 해야 맞는 것 같았다.
-탁
“···그릉···.”
그때 어디서 이상한 괴물의 울림 소리가 들렸다.
“···어? 저기 웬 곰이···?”
공유식이 깜짝 놀라 중얼거렸다. 소리가 나서 쳐다본 탁자 위에는 전에 있던 검은색 강아지 대신 거대한 곰이 서 있었다.
“곰아!”
라석양이 소리치며 뛰어갔다. 아니, 다시 눈을 떠보니 귀여운 흰색 개 한 마리가 기뻐하는 라석양 품에 안겨있었다.
뭔가 이상했는데···?
부상에서 깨어난 지 별로 안 돼서 헛된 걸 보나보다 싶었다.
아니, 아니지??? 그게 아니지? 이상한 걸 본 게 아닌 게 아니었다.
왜 검은색 개 대신 흰 개냐고···?! 이상한 거 맞잖아??
-탁
“이봐! 닥터!”
“어···? 왜?”
공유식은 라석양한테 자못 심각한 어투로 말했다.
“당신 개 검은색이었잖아?”
“무슨 소리야···? 원래 흰색이었어!”
들어보니 원래 흰색은 맞았다. 그래, 그 말은 맞는 말이다.
단체 최면이라도 걸린 걸까?
순식간에 공유식은 지금 상황의 이상한 부분을 모르겠다 싶었다.
탁자 위에는 텅 빈 그릇들이 나뒹굴고 있었고, 위에 있었던 음식들은 온데간데없었다.
귀여운 흰색 솜뭉치와 라석양이 서로를 껴안고 기뻐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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