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9화. 불혹성 - 데스매치 2
< 39화 >
-탁탁
“어때? 누가 이길 것 같아?”
안세출은 탁자를 주먹으로 두어 번 내리치며 신이 난 듯 공유식을 보며 물었다.
공유식은 그런 안세출의 행동에서 묘한 정서불안과 루틴이 느껴졌다.
그는 같은 행동을 정서불안인 양 간헐적으로 반복하는 습관이 있었다.
마치 카드게임을 할 때 상대를 교묘하게 속이기 위한 루틴이 있는 것처럼 특정 행동을 상대방한테 각인시키는 것처럼 느껴졌는데, 상대를 골릴 속셈으로 각종 방법을 다양하게 구사해 보는 것 같았다.
“둘 다 죽겠지.”
공유식이 웃으며 말했다.
공유식의 대답에 잠시 안세출의 얼굴에서 웃음기가 사라졌다가 곧 다시 미친 듯이 웃기 시작했다.
“아하하하하!! 역시!! 재밌어!”
사실 안세출은 공유식이 깨어나기를 목이 빠져라 기다리고 있었다.
이번에 섬에 난파되어 온 사람들 중 망원경으로 관찰했을 때 유난히 눈에 띄는 사람이 하나 있었는데, 그 중 공유식이 어디서 많이 들었던 소문의 남자와 외모가 유사했다.
안세출은 공유식과 몇 마디 대화를 나눠본 결과 자신이 생각하는 소문의 당사자가 맞는 것 같은 확신이 들었다.
손도끼를 들고 다니다 매번 사고를 쳐 감방을 들락날락하던 권도찬이 퍼트린 소문으론 귀신 찾기 게임의 도전자 중 하나가 지금의 게임 규칙과 판돈을 난장판으로 만들어 놓은 장본인이라는 얘기였다.
권도찬의 말로는 그가 카드 게임에서 하도 장난질을 쳐 자신이 손도끼를 날려 얼굴에 흉터를 내었다고 했지만, 상처 하나 없이 매끈한 공유식의 얼굴을 보니 그 말은 모두 허풍이었던 것 같았다.
귀신 찾기 게임에서 과연 배당률 24배가 가능한진 모르겠지만, 소문의 그놈은 배율을 점점 올리더니 모든 사람이 혹할 즈음에서 히든카드를 열어 인생 한 방, 역전이 가능할까 같은 싶은 심리로 사람을 꾀기 시작하더니 배율이 올라가면 매칭에 실패하고, 배율이 내려가면 매칭에 성공하는, 미칠 것 같은 이상한 전략으로 코인을 걸던 사람들의 정신을 탈곡시켰다고 했다.
애초에 귀신 찾기 게임의 도전자가 가지는 위상이란 것은 지지하는 사람의 코인을 최대한으로 벌게 해주는 것이 필수 전략일 수밖에 없는 것으로, 그 결과에 따라 게임이 끝난 후에 도전자의 생사가 결정된다고도 할 수 있었다.
그러니 도전자가 저런 식으로 게임을 하리라고는 모두 상상할 수 없었다.
문제는 그다음에 있었는데, 그런 식으로 몇 번을 왔다 갔다 코인을 걸다 보니 결국 돈을 딴 사람은 아무도 없었고 주최자만 모든 이익을 얻게 되는 결과가 나온 것이었다.
그 일을 벌인 도전자도 문제긴 했지만, 결국 돈을 따간 건 그가 아니라서 사람들의 분노는 정신 탈곡기가 아니라 그걸 가능하게 한 시스템과 이를 모두 독식한 주최자한테로 향하게 되었는데, 우연하게도 그 게임을 주최했던 늑대가 죽어서 발견되는 바람에 사람들의 분노는 더 갈 곳을 모르고 헤매게 되었다.
하필이면 늑대가 죽는 바람에 숨겨놨던 은닉자산을 포함한, 연결된 다른 게임에 참가했던 사람들의 코인도 모두 발각되어 경찰의 수중으로 넘어가게 되었고 그 때문에 그와 비슷한 경기를 주최하고자 했던 사람들의 애로사항도 이만저만이 아니게 되었다.
전이라면 이능이 적용된 게임을 진행하면 그 명목으로 손쉽게 많은 수수료를 빼먹었었지만, 그 사건으로 인해 제한된 숫자로 수수료율이 고정이 돼버렸다. 물론 그것도 적은 수수료는 아니었지만, 예전의 수익에 비할 바는 아니었다.
공유식이 귀신 찾기 게임에서의 그 도전자가 맞는지 확인은 불가능했지만, 일반적으로 생각하자면 도전자는 게임이 끝난 후 자신의 조직에게 죽임을 당하기 마련이었다.
우승자를 제외하고는 살려둘 이유가 없는 것도 있지만, 이렇게 큰 피해를 준 경우는 목숨을 부지하는 것 자체가 기적이라고 할 수 있었다.
그렇게 생각해 보면 공유식이 소문의 그 도전자가 아닐 수도 있지만 몇 번 대화해 본 바로는 사람을 대하는 솜씨나 대범함이 일반적이진 않았다.
보통은 이런 상황에 닥치면 초조하거나 안절부절못하기 마련인데 아까 잠시 떠본 결과 태연하게 대응하는 걸 보면 어떤 설명을 하지 않아도 모든 사태를 알아챈 것이 틀림없었다.
게다가 자신이 옆에서 이렇게 정신없게 탁탁대는데도 놀라운 집중력을 발휘해 닭싸움을 지켜볼 정도의 여유가 있었다.
때마침 혼자만 즐기는 것도 슬슬 질릴 참이었는데, 소문의 그놈이 맞든 아니든 간에 공유식과 함께라면 앞으로 펼쳐질 데스매치가 더욱 재밌어질 것 같아 안세출은 점점 신이 나기 시작했다.
“일단 즐기려면 코인을 걸어야지. 언제 경기에 참여하든지 모든 사람은 공평하게 100코인으로 시작하거든. 큭큭···.”
“···오? 주는 건가?”
공유식은 경기의 끝물에 온 건 아닌가 싶었지만 100코인을 준다는 건지 빌려준다는 건지 확인해야 했다. 간악한 새끼들은 틈만 나면 돈을 빌려주고 이자를 받아 챙길 방법을 찾기 일쑤라 눈 뜨고 코 베일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오?! 큭큭···, 원래는 빌려주는 거지만~, 오늘은 서비스! 준다!”
안세출은 게임에 참가할 수 있는 스마트 버튼을 공유식한테 건네주며 말했다.
사실 안세출은 공유식한테 엄청나게 선심을 쓰고 있는 것은 맞았다.
누구나 게임당 100코인으로 시작하는 시스템은 귀신 찾기 게임의 여파로, 이 일의 원흉이 공유식이 맞는다는 가정이라면 때려죽여도 시원찮을 판에 무일푼인 그에게 100코인을 서비스로 준다는 건 대단한 호의에 가까웠다.
“그래? 엄청 고마운데~? 근데, 주는 거에도 이자가 붙는 건 아니겠지?”
세상은 만만한 곳이 아니라는 생각에 공유식은 다시 한번 웃으며 물어봤다.
“아하하하!! 당연히!! 내가 그건 포기 못 하지~. 공짜여도 30퍼센트 선이자는 받을게~.”
역시, 돈 빌려주고 이자를 챙기는 새끼들은 늘 한결같이 이 모양이었다.
확인해보니 공유식의 이름으로 된 스마트 버튼에는 70코인이 들어와 있었다.
하지만 이게 어딘가?
공짜로 시드머니가 생기긴 했다.
호랑이 굴에서 빠져나갈 최소한의 생존 자금.
“아하하. 그래···. 혹시 이 섬에서 나가는 데에도 코인이 필요한가?”
“역시! 내가 보는 눈이 있어! 그럼! 100코인 필요하지~!”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척척 알아듣는 것들은 정말 세상에 다시 없을 보석 같은 놈들이었다.
안세출은 자신의 안목에 다시금 감탄하며 말했다.
“그래? 그러면 저기 있는 내 물건은?”
공유식은 유리 상자에 담겨 있는 자신의 금강령과 착용했던 부속품들을 가리키며 말했다.
“하나당 100코인~.”
사람과 물건이 동일한 가격···. 아니 지금으로선 물건이 더 비쌌다.
그렇다면 여기서 얼마를 벌어야 빠져나갈 수 있는 걸까?
공유식은 밑도 끝도 없는 계산을 해봤다.
“혹시, 사람도 살 수 있나?”
“오~! 그럼~~!”
물질만능주의 새끼가 아주 태연하게 그렇다고 대답했다.
문제는 자신이 질문하거나 대답할 때마다 안세출의 눈이 반짝-하고 빛난다는 거였는데, 뭔가 그의 음침한 욕구를 충족시켜 주는 것 같았다.
공유식은 계속 안세출의 욕구를 충족시켜 줘야 할지 그 반대를 충족시켜야 할지를 고민했다.
“사람은 얼만데?”
“에이~! 사람을 어떻게 가격으로 정할 수 있어?!”
안세출이 말도 안 된다는 동작을 하며 말했다.
“그럼?”
“당연히 경매로 정해야지.”
“···그래. 그게 합당한 것 같다.”
공유식은 안세출의 말에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그렇지 싶었다.
공유식은 새삼 이 세계에 발을 담그려고 시작했던 때 자신이 상상했던 세상의 모습이 떠올라 연신 고개가 끄덕여졌다.
그래, 이쯤은 되어야 스릴 넘치고 재미있는 세상이지.
마침 운이 좋기로는 공유식이 제일가는 편이었다.
공유식의 예상대로라면 수상보트가 부서져서 난파된 다른 사람들은 콜로세움처럼 지어진 저 건물 아래 어딘가에서 먼지와 함께 뒹굴며 수난을 당하고 있을지도 모르는 일인데, 자신은 여기서 호화롭게 다리가 세계인 삼계탕을 먹으며 수다나 떨고 있으니, 이보다 좋은 팔자가 어디 있겠느냐 싶었다.
공유식은 지금의 운 좋은 상황을 최대한 많이 누려야겠다고 생각했다.
[ 기다리고 기다리던!! 보너스 대-전!! 칠봉이와 배적삼님의 대전이 곧 시작됩니다! ]
닭싸움이 곧 시작되려고 하고 있었다.
“근데, 여기서 굳이 배적삼을 죽일 필요가 없지 않아?”
“···왜?”
배적삼을 죽인다는 소리는 어디에도 없었는데, 마치 기정사실화인 양 공유식은 말했다.
“어차피 이 뒤에 대전이 또 있을 테고, 최대한 코인을 많이 모았다가 한 번에 뽑아내는 게 유리하지.”
“···그런가아~?”
안세출은 고개를 이리저리로 저으며 모르는 척을 하며 말했다.
내기에 참여하는 사람들 대부분은 사람과 닭의 대결이면 당연히 사람이 이길 테니 말 그대로 공짜로 돈을 버는 기회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게다가 칠봉이가 죽으면 그동안 칠봉이한테 져서 원통했던 사람들은 자신을 괴롭혔던 닭이 죽게 되니 그보다 통쾌한 일은 없을 테고, 그걸 또 닭 주인이 직접 실행하니 그보다 고소한 일도 없었다. 그 과정에 코인을 벌게 되는 건 보너스이니 일 석 삼조 아닌가.
여기서 제일 화가 나는 사람은 칠봉이의 주인인 배적삼일 텐데, 닭의 목숨값으로 본인이 딴 코인을 모두 걸어서 한방에 배로 벌게 되면 그건 또 그대로 큰 아쉬움은 없는 일이었다.
하지만 만약 여기서 결과를 임의대로 비틀어 배적삼이 죽거나 무승부라도 나게 된다면 안세출은 재미있을지 모르지만, 화가 난 사람들이 흥미를 잃고 더 이상 경기에 참여하지 않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렇다면 공유식은 계속해서 코인을 벌 기회를 잃게 되고 자신의 소지품과 함께 탈출할 기회를 박탈당하는 것은 물론이고, 어디 있을지도 모르는 나머지 애들의 생사까지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 될 수 있었다.
어쨌든 안세출은 이번 기회가 아니어도 코인을 벌 기회는 많았다. 굳이 무리하게 고집을 부려 승부를 조작하려 들어 좋을 일은 아니었다.
“여기서 둘 다 죽기라도 하면, 뭔가 조작되었다고 생각할 거 아냐? 그럼 좋은 일이 뭐가 있겠어? 일단 한번 신뢰를 준 후, 그다음 결정적인 순간에 팍~! 터트려야지.”
공유식은 살살 달래듯 말했다.
사실 공유식 말에도 일가견은 있었으나 그가 소문의 그놈이 맞는다는 가정하에 통하는 말이었다. 안세출은 쓸데없는 곳에 모험을 거는 유형은 아니었다.
만약 전에 귀신 찾기 게임에서 사람을 멋대로 우롱한 것처럼, 공유식이 여기서도 그 기술을 쓸 수 있다면?
어차피 자신과 같이 있으니 전략이야 공유될 테고 그렇다면 안세출이 손해를 볼 일은 없을 것 같았다.
“근데···, 귀신 찾기 게임이 끝난 후에 살아남은 비결이 뭐야?”
“아···, 하하하, 그거···.”
갑작스러운 질문에 공유식은 머쓱하게 웃으며 머리를 긁었다.
수상스러운 반응에 안세출은 예리한 눈을 번뜩였다.
거짓말을 하려고 드는 건지, 적절한 말을 찾으려고 시간을 끄는 건지 알아내려고 하는 순간, 공유식이 할 수 없다는 표정을 하며 말했다.
“우리 조직 보스가 바지거든···.”
“아···, 그래.”
뜻밖의 내용이라 안세출은 얼빠진 사람처럼 멍해졌다.
뭐, 하긴 자기 조직의 보스가 바지라고 말하는 건 쉽지 않겠다 싶었다.
머뭇거림의 이유는 납득이 갔다.
그렇다면 공유식이 소문의 그놈이 맞는다는 얘기였다.
“집사! 심판한테 연락해. 노- 라고.”
“네! 주인님의 명령을 전달하겠습니다.”
안세출의 명령에 시스템 AI가 대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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