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7화. 불혹성 - 내부자
< 47화 >
-탁
“ㅡ아야···.”
굴러떨어진 바닥엔 쿠션이 깔려있긴 했지만, 상당히 거칠고 더러웠다.
“형아!!! 으아아아앙!!!”
“어어···, 괜찮아, 괜찮아!”
갑자기 공유식한테 달려든 독고혈이 어린애처럼 안겨 울기 시작했다.
독고혈은 끔찍한 순간에 자신을 구해준 공유식이 큰 형님으로 인식될 만큼 정신적 충격이 컸다. 이번에 또다시 팔려나가게 된다면 괴로운 일을 또 얼마나 겪어야 할지 상상도 가지 않았던 터라 정신을 놓기 일보 직전이었다.
하지만 나이로 치자면 고조할아버지도 넘을 녀석이 달려들어서 형을 부르짖자, 공유식은 머쓱해졌다.
“···진정해 봐~. 아직 살려면 멀었어.”
“엉···, 훅, 알았어.”
공유식은 독고혈을 토닥거리며 자리에서 일으켜 세웠다.
“여기 CCTV도 설치되어 있네···.”
“···지켜보고 있다는 거군.”
진정이 좀 됐는지 조금 전의 자기 모습이 멋쩍어진 독고혈도 주변을 살펴보기 시작했다.
밖으로 나가는 철문에는 비밀번호가 있었고 주변은 벽으로 둘러싸여 있어 외부가 어떤 상황인지는 알 수가 없었다. 문밖의 상황이 어떨지는 또 겪어봐야 안다는 소리였다.
“···일단 나가볼까?”
“여기 비밀번호가 있는데?”
독고혈이 문손잡이를 잡으며 물었다. 혹시나 해서 돌려봤지만, 두꺼운 철문이 그냥 열리진 않았다.
“그거 대충 찍어보지, 뭐.”
“그러다 뭔 일이라도 생기면 어떻게 해?”
“전기 충격이라도 있을까봐?”
“뭐, 그럼, 좀 짜릿하긴 하겠네.”
둘은 말하다가 어처구니가 없어서 크게 웃었다. 지금까지 세상에 없을 온갖 험한 일은 다 당한 판에 혹시 모를 전기 충격을 무서워한다는 것 자체가 유머에 가까운 수준이었다.
“잠깐만, 지문이···, 엄청 더러워서 눈에 잘 띈다.”
“어? 그러네.”
-삐릭
-끼익
너무 쉽게 열린 문에 이 상황이 맞나 싶었지만, 그대로 방에 있을 이유도 없어서 둘은 밖으로 나가기로 했다.
긴 복도와 방들이 연이어서 있었고 곳곳마다 CCTV가 설치되어서 감시되고 있었다. 아마도 경매장에서 불미스러운 일이 생기면 지하에 가둬서 해결하는 모양이었다.
-쾅 쾅쾅!
“살려줘!!! 문 열어!!”
방음시설이 안 되는 모양인지, 지하의 특성 때문인지, 여기저기 갇힌 사람들의 소리가 지하에 울려 퍼졌다.
-쾅쾅
“쓰레기 새끼들이!! 돈 떼먹고 사람을 여기다 가두네!! 내 돈 내놔!!!”
내용을 가만히 들어보니, 경매에서 물건을 낙찰받은 사람들을 가둔 것 같았는데 어째 돈을 줬는데도 갇힌 느낌이었다.
경매를 시작했을 때 너도 낙찰받는 거냐고 공유식이 물어보자 안세출이 ‘난 다 가질 수 있지!’라고 했던 말의 의미가 이런 뜻이었을까?
사실 경매 물품은 파는 것보다 갖고 있을 때 이득이 더 커 보이는 물건이 많았다.
소유하거나 대여했어도 될 만한 물건을 왜 굳이 사람들에게 공개해서 파는지 그때는 이유를 몰랐었지만 지금 보니 애초에 팔 생각이 없었던 듯했다. 아니면 팔 생각이 없는 소유주랑 짜고 이 일을 계획했는지도 몰랐다.
즉, 경매 물품은 이곳으로 들어온 후 경매장을 통해서 밖으로 나가지는 않는다는 거였다. 그렇다면 돈을 주고 구입한 사람들은 어떻게 처리되는 걸까?
안세출의 운영철학을 보면 확실히 협박의 빈도가 많은 것으로 보아, 신체를 억압하고 그걸 담보로 돈을 뜯어대는 것이 정해진 사업절차인 것 같았다.
더구나 이런 고가의 경매 물품 - 특히 저주나 이능이 포함된 어둠의 물건을 몰래 사들이려는 사람들을 상대로 한다는 것은 상대적으로 위험도도 낮고 경제력도 높은 사람들이라 수익모델이 꽤 짭짤했을 수도 있었다.
염매 인형을 낙찰받은 사람들도 여기 갇혀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들은 건드리지 않았을 가능성이 높았다.
아까 안세출이 한 말로 미뤄보자면 약쟁이라고 칭했으니, 최소한 범죄조직일 테고 그런 놈들은 건드려서 좋은 일이 없으니 정상적으로 판매했을 수도 있었다. 게다가 염매 인형 자체에 흥미가 없어 보이기도 했으니, 그들만 순순히 보내줬을 가능성이 높았다.
그렇다면 위에서 CCTV로 지켜보고 있다는 가정하에, 지금 방을 나선 시점에서 재빨리 탈출하기 위해서라면 여기 있는 사람들을 같이 구출해서 도망쳐야 하는 것인지, 나중에 경찰이 와서 해결하도록 하는 것이 맞는 건지 공유식은 헷갈려지기 시작했다.
앞선 낙찰 물품은 1번 운명의 주사위, 2번 저주받은 그림, 3번 염매 인형이었다.
1번과 2번을 낙찰받은 사람이 이 안에 갇혀있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물론 그들이 어떤 사람인지는 알 수 없는 일이기도 했다.
-탕탕
“밖에 누구 없어요?!! 문 열어!!!”
“······.”
“···여기 있는 사람들이랑 같이 나갈 방법 없을까?”
아니나 다를까, 순진한 독고혈이 운을 떼기 시작했다. 아마도 자신과 처지가 비슷해 보였기 때문일 듯했다.
사실 그대로 두고 가기에 눈에 밟히는 건 공유식도 마찬가지였다. 나중에 경찰이 와서 해결하기엔 이미 안 좋은 결과가 일어난 뒤가 될 수도 있었다.
“어디···, 한번 알아볼까?”
“엉!”
어차피 누군가 잡으려고 몰려오면 사람이 많을수록 유리한 면도 있긴 할 터였다.
최대한 장점을 생각해 낸 후 공유식은 독고혈과 같이 사람 목소리가 들려오는 방으로 뛰어갔다.
-탕탕
“이봐요! 거기 누구 있죠?! 살려줘요!!”
둘이 달려오는 소리를 들은 듯 방안에 있는 사람이 소리쳤다.
“어···! 저기 안에 혹시 비밀번호 치는 곳에 지문 흔적 없어요?!”
“네? 뭐라고요?!”
독고혈이 벽에다 입을 가까이 대고 장황하게 상황을 설명했다.
“혹시 비밀번호 판에 지문 흔적 없어요?”
“···없어요!!”
“···잠깐만, 여기 입구에 흔적이 있는데?”
비밀번호는 밖에서도 입력이 가능하게 되어있었는데, 비슷하게 겹쳐지는 지문의 모양을 잘 살펴보면 어쩐지 열릴 것 같기도 했다.
-삑삑 삐릭
-끼익
두꺼운 철문이 거짓말처럼 쉽게 열리자, 안에서 어떤 남자가 번개처럼 밖으로 뛰쳐나왔다.
-쾅!
“야이! 씨팔놈아! 빨리 안 쳐 열고 뭐했어?!”
“으읔···. 켁!”
갑자기 밖으로 뛰어나온 남자는 대뜸 공유식의 목을 손으로 누르고 벽에다 치며 고함을 지르기 시작했다.
-퍽퍽
난데없는 공격에 공유식은 숨이 막힐 지경이었고 남자는 그를 벽에 내려친 거로는 분이 안 풀렸는지 공유식의 배를 주먹과 발로 매우 치기 시작했다.
“···뭐 하시는 거예요?! 왜 이러세요!!”
독고혈이 남자의 팔에 매달리며 막아서자, 그는 독고혈도 쳐서 구석으로 날려버렸다.
-퍽 쾅
“으···, 왜! 왜···.”
“뭘 왜야? 씨팔! 어디서 꼬나봐!!”
멀찍이 날아간 독고혈이 항의하자 기분이 안 풀렸는지 남자는 욕을 해대기 시작했다. 이어서 침을 뱉고 앞으로 걸어가더니 벽을 발로 차기 시작했다.
-탕탕
“여기요!! 저도 도와주세요!!”
그때 남자가 지나가던 길에 있던 방에서 누군가 소리쳤다.
-쾅
“비밀번호 지문 잘 찾아보라고!!!”
“···네? 비밀번호···.”
그냥 갈 것처럼 생긴 입이 건 남자는 마저 지나가지 않고 옆방 남자에게 비밀번호 지문을 참고하라고 힌트를 말했다.
-삐릭
-끼익
“어?! 열렸다!! 와! 고맙습니다!!”
앞선 남자와는 다르게 다른 방에 갇혀있던 사람은 고개를 몇 번이나 수그리며 고맙다고 말하며 조심스레 밖으로 나왔다.
-삐릭
그리고 다른 쪽에서도 소리를 엿들었던 모양인지 비밀번호를 찾고 밖으로 나왔다. 알 수 없는 허술한 비밀번호로 복도에는 공유식과 독고혈을 제외하고도 5명이 방에서 나올 수 있었다.
순식간에 들어온 구타로 몸이 만신창이가 되어 숨쉬기가 힘들어진 공유식은 독고혈을 손짓해서 자신의 쪽으로 오게 했다.
분위기가 심상치 않았다.
잘 생각해 보자면 이곳은 지하도 아니고 여기 있는 사람들은 다 갇혀있던 사람도 아닌 모양이었다.
이 안에 내부자가 있었다.
경매가 진행되던 갤러리실은 2층으로 거기서 떨어졌는데 갑자기 지하로 와졌을 리가 만무했다. 그렇다면 여긴 1층이었고 허술한 비밀번호는 알아서 열고 나갈 수 있게 설계된 장치였던 모양이었다.
갑자기 공유식을 두들겨 팼던 깡패도 본성이 무뢰한이었다면 마저 패서 끝장을 봤으면 될 일이었는데 그러지도 않았다.
갇혀있었던 것이 억울했다면 문에서 나오자마자 밖으로 뛰어나갔으면 될 일이었는데, 남자는 갑자기 공유식을 패다 말고 앞으로 걸어 나가더니 침착하게 다른 사람들을 구출하고 있었다. 동일한 인물의 행동 패턴이라고는 믿을 수 없었다.
일단 한 대 거세게 얻어맞은 여파로 머리가 잘 안 돌아가는 공유식은 숨을 크게 내쉬고 다시 한번 생각을 해봤다.
CCTV가 설치되어 있다는 것은 감시하고 있다는 뜻인데, 방문을 나서서 탈출하기 일보 직전인데도 아직까지 아무도 찾아오지 않았다···.
그렇다면 분명 안세출은 이걸 보며 즐기고 있을 텐데···, 과연 어디서 어디까지 계획을 짜놨을까 싶었다.
-쾅쾅!!! 쾅!!!
갑자기 거대한 진동과 함께 폭발음이 건물 내부 어딘가에서 들려왔다.
“뭐야?! 무슨 일이지?!”
아무래도 건물 내부에 뭔가 큰일이 난 게 틀림없었다.
폭발 진동을 타고 건물이 부르르 떨며 먼지를 쏟아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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