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7화. 여우와 숨바꼭질 4
< 97화 >
-털썩
순간 매우 흥분했던 강충재는 다시 자리에 앉으며 한숨을 내쉬었다.
“나와 똑같이 생긴 인형을 발견한 나는···. 인형을 흥미롭게 쳐다보다가 그만 목을 부러뜨려버렸어. 왜 그랬냐고는 묻지 마!!! 그냥!! 어렸을 때부터 난 파괴 본능이 강했어!!”
“어···, 어, 그래! 뭐 그럴 수도 있지! 다들 어렸을 때 장난감 갖고 놀면 종종 부러뜨리거나 하지 않나?”
공유식은 그다지 이상해할 것은 없어 보이는 강충재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대충 수긍했다.
“하지만 문제는 거기서 내 목도 같이 부러졌다는 거야! 그렇게 난 그 자리에서 목이 부러져서 죽었어!”
“으악?!! 진짜? 그럼···! 여기 있는 인형한테 위해를 가하면 나한테도 그 영향이 온다는 거야?!”
“그래, 맞아!! 내가 하고 싶은 말이 바로 그 말이었어!”
“허·········.”
그렇게 어처구니없는 강충재의 사망 얘기와 여기 있는 모두가 목각인형과 운명 공동체라는 난데없는 사실에 충격을 받은 공유식은 잠시 할말을 잊었다.
“···아하! 그래서 건들지 말라고 한 거였구나···.”
“혹시라도 네가 잘못 만져서 부러지기라도 하면 어쩌나 하고 얼마나 놀랐는데!”
“어···, 그래···.”
아마도 강충재가 강하게 저지하지 않았더라면, 공유식도 너무 정교하게 만들어진 인형이 신기한 나머지 목각인형의 팔, 다리 하나쯤은 만져보다가 떼어봤을 가능성이 있었다.
그렇게 생각하고 나니, 조금 전은 굉장히 위험한 순간이었다.
강충재는 말을 하고 나서도 오한이 드는지 목을 만지며 몸을 부르르 떨었다.
“아무튼, 내가 다시 깨어났을 때는 그 끔찍한 느낌이 몸에 남아있어서 얼마나 소름 끼쳤는지 몰라!”
“으에엑······!”
심지어 목이 부러지는 느낌이 남아있었다니···, 절대로 겪고 싶지 않은 일이었다.
“그러고 나서 여기서 한참 동안 기다려도 아무런 일도 벌어지지 않았어. 다시 심심해진 나는 인형을 살짝, 아주 조금만 옮겨보기로 했지. 아니, 그냥···! 조심히 만졌다가 원래 위치가 아닌 다른 곳으로 옮겨놨을 뿐이었는데, 놀랍게도 내가 그 장소로 이동되어 있었어!”
“아···! 목각인형을 옮겨놓으면 실제로 그곳으로 가게 되는구나?!”
“그래, 맞아···!”
강충재와 독고혈은 공유식의 대답에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래도 얘기를 계속해서 듣다 보니, 자신이 이곳으로 오는 동안 겪었던 고생은 이들에 당한 일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던 모양이었다.
“더 큰 문제는···, 여기 올려져 있는 목각인형의 개수가 우리가 죽을 때마다 점점 줄어드는 것 같다는 점이야. 지금은 6개가 남아있지만, 우리가 죽기 전에는 개수가 훨씬 많았던 것 같아.”
독고혈은 조감도 모형 안에 있는 목각인형을 가리키며 심각한 표정으로 말했다.
“만약에 누군가가 또다시 죽어서 목각인형의 개수가 줄어들다 못해 아예 없어지기라도 한다면···? 우리는 전부 이곳에서 진짜로 죽을지도 몰라!! 물론, 전부 추측에 불과하지만, 아무래도 그런 불길한 예감이 들어···! 암튼 그래서 쉽사리 널 도우러 갈 수가 없었어!”
“어···. 그, 그래.”
이어지는 독고혈의 가능성 있는 추측에 공유식은 고개를 끄덕였다.
얘기는 상당히 알쏭달쏭하기도 했고 정체를 파악할 수 없는 곳이라 장담할 수는 없었지만, 위험하다고 생각할 만한 요인은 충분해 보였다.
“어쨌든 중요한 얘기는 지금부터야. 내가 인형을 옮겼던 곳은 나무가 가득한 숲의 한가운데였는데···, 그 순간 난 다른 사람이 되어있었어.”
“엉? 다른 사람이라니?”
강충재는 턱을 손으로 괴고는 인상을 찌푸리며 자신이 겪었던 일을 회상하며 말하기 시작했다.
“그곳에 도착한 순간, 난 한 가족의 가장으로 전혀 다른 삶을 살고 있었고, 이곳에서의 기억은 하나도 가지고 있지 않았어.”
“네가 전혀 모르는, 어떤 사람의 삶으로 들어가졌다는 거야?”
“그래! 그런 식이었던 것 같아!”
강충재는 공유식의 말에 동의하며 설명을 이어나갔다.
“내가 도착했던 곳의 숲에서 사람들은 야생동물을 포획하기에 여념이 없었지. 그 숲은 서식하고 있던 동물들로 인해 인명이나 가축, 농작물이 피해를 많이 받아서 대대적으로 포획허가가 떨어진 상태였어. 난 한때 호랑이도 잡았다는 이름난 사냥꾼이었고, 때를 맞아 마을에 피해를 주는 동물에겐 자비를 베풀지 않았지.”
도착한 숲에서의 강충재는 꽤 냉혹한 사냥꾼이었던 모양이었다.
“수렵 면허가 있는 사람들은 많은 동물을 총으로 쏴서 죽였지만, 유독 여우를 죽이는 것만은 꺼렸어. 아마도 여우가 한을 품는다는 소문을 들어서 건드리고 싶지 않았던 모양이었어. 하지만 나는 그런 것 따윈 전혀 괘념치 않고 보이는 족족 여우를 남김없이 사냥했지.”
사냥꾼의 성격이 강충재의 실제 성격과 닮은 부분이 많이 있는 것으로 보아, 다른 삶을 살아도 그 본질까지 바뀌지는 않는 모양이었다.
“사냥이 끝난 후 집으로 돌아와 토끼 같은 마누라와 함께 잠을 청했는데, 그날 밤 꿈속에서 웬 인자하게 생긴 노인이 나와서 내게 말을 건네는 거야. 근데, 그가 꺼낸 말이 굉장히 충격적이었지!”
강충재가 겪은 일은 굉장히 신기한 일이라 공유식은 과연 노인이 그에게 무슨 말을 건넸는지 궁금했다.
게다가 공유식이 놀란 만큼 독고혈도 강충재의 얘기가 충격적이었는지 생각이 깊어 보였다.
“나한테 사냥을 당한 여우의 가족이 한을 품었고, 그 때문에 내가 곧 죽게 될 거라는 말이었어! 난 너무도 황당했지! 그리고 노인은 그때 처음 본 사람이었는데, 이상하게도 어디선가 만난 적이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 뭐, 아마도 위험을 미리 알려주는 걸로 봐서는 조상님 정도가 아니었을까 싶었지.”
보통 현몽을 한다고 하면 조상님일 가능성이 높으니 그렇게 생각하는 것도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어쨌든 꿈에서 노인이 알려준 얘기가 사실이었다면, 보통 일은 아니었다.
“그래서? 어떻게 됐어?!”
“노인은 위험을 회피하는 법을 나한테 알려주고 사라졌어. 하지만 나는···, 그 일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 넘겨버렸어. 자고 일어나서 마누라한테는 꿈에서 있었던 일을 설명하긴 했었지만, 난 결국 죽고 말았지! 그리고 이 방으로 다시 돌아오게 되었어!”
강충재는 뒷맛이 씁쓸한 듯 입맛을 다시며 말했다.
“노인이 말한 위험을 회피하는 방법은 뭐였는데?”
“안타깝게도 그것도! 내가 어떻게 죽었는지도! 잘 기억나질 않아···. 문제는 내가 그렇게 죽고 난 뒤에 내 마누라와 자식들도 분명히 위험해졌을 거라는 거지. 뭐, 내 진짜 인생은 아니었지만···! 내 마음 어딘가에 상실감이 크게 남았고 되게 후회스러웠어!”
강충재는 후회 가득한 표정을 지으며 남은 말을 쏟아냈다.
“사실은···, 그 남자의 마누라가 나였어.”
“···뭐? 진짜···?!”
“···너라고?!”
놀랍게도 강충재의 말이 끝나자마자 독고혈이 이어서 자신의 얘기를 하기 시작했다.
“···그래! 나도 이곳에 오랫동안 갇혀있었고, 그중 인형을 옮겼다가 한 여자의 몸에 들어가게 되어 버렸어! 여기서 강충재를 만나기 바로 직전에 겪은 일이니까···, 아마도 내가 그 여자가 맞을 거야.”
“그럼, 그 후에 어떻게 되었어?! 아···! 설마! 너도 죽어서 여기 오게 된 건가?!”
어쩐지 안 좋은 결말이 그려진 듯, 세 명은 침을 꿀꺽 삼켰다.
이곳에 있다는 것 자체가 왠지 죽어서 돌아오게 된 것 같이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그래···. 나도 결국은 죽음을 맞이했지. 남편은 꿈에서 깨고 난 뒤에 웬 노인을 봤다면서 횡설수설했어! 도대체 무슨 소린지 전혀 알아들을 수 없는 소리였지. 하지만 곧 남편이 죽었고, 나 역시 꿈속에서 어떤 할아버지를 만나게 되었어.”
자다가 일어나 횡설수설이 심했다는 독고혈의 말에 모두 일제히 강충재를 미묘한 표정으로 쳐다봤다.
강충재는 자신이 그랬을 리가 없다는 표정을 지었지만, 독고혈이 없는 말을 했을 이유는 없는 상황이었다.
“할아버지는 한 맺힌 여우가 남편을 죽인 것으로도 부족해서 나뿐만 아니라, 온 가족을 노리고 있다고 했어. 그리고 상세한 비책을 알려주면서 그대로 하면 화를 면하게 될 거라고 말했지. 내게는 아이도 있는 상태라 난 그 말을 꼭 지키리라고 다짐했어!”
얘기를 들어보면 강충재의 경우와는 다르게 독고혈의 상황은 조금은 헤쳐 나갈 가능성이 있어 보였다.
“하지만 내 다짐은 쉽게 지켜지지 않았어! 할아버지가 말한 비책은 어미인 나한테는 너무 무정한 말이었기 때문이었지···.”
“대체 무슨 말이었길래 그래?”
공유식과 강충재는 도저히 짐작할 수 없는 상황이라 그 비책이 무엇이었는지 너무도 궁금했다.
“할아버지는 막내만을 데리고 시장에 나가서 이것저것을 구경시켜 주고 먹고 싶다는 것과 하고 싶다는 것을 다 해주라고 했어. 벌이가 적어 사정이 여의치 않던 우리집에서는 흔치 않은 일이었지. 게다가 막내는 어려서 시장에 가는 것이 처음이기도 했어.”
심상찮은 얘기가 나올 거라고 예상했던 것과는 다르게 평범하게 아이와 나들이를 나가는 얘기로 독고혈의 사연은 시작되었다.
“손위 아이들은 왜 막내만 데리고 시장엘 나가냐고 질투를 하기도 해서 떼어내느라 여간 곤혹스러운 일이 아니었지! 아무튼 할아버지는 아이가 하고 싶은 대로 실컷 다 시켜준 후 생고기를 몇 근 사서 산을 오르라고 했어.”
느닷없이 생고기를 사서 산을 오르라는 말은 다음에 벌어질 일을 더욱 짐작하기 어렵게 했다.
“산속 깊은 곳으로 들어가야 한다는 말에 혹시나 아이가 투정을 부리거나 따라오기 힘들어하면 어쩌나 하고 고민했지만, 시장에서 만족스럽게 놀았던 탓인지 아이는 별다른 투정도 없이 그 높은 산을 곧잘 따라왔어.”
아직도 독고혈의 얘기에 달리 이상한 점은 없었다.
“하지만 문제는 여기부터였지! 할아버지는 산속 깊은 곳에 아이와 생고기를 함께 두고는 잠시 뒷간에 간다고 하고 자리를 비우라고 했어! 그리고 그사이 재빨리 산을 뛰어서 내려오라고 했어. 절대 뒤돌아보지 말고, 조금도 지체하면 안 된다고 했지. 그렇게만 하면 나와, 내 아이들은 모두 무사할 거라고 했어!”
굉장히 아리송한 말이었다. 아이를 산에 버리고 오면, 모두 무사할 거라니···.
“하지만 뒤돌아 산을 내려오는 도중 나는 마음이 약해졌고, 남겨진 아이가 어미를 찾으며 울고 있으면 어쩌나 싶었지···. 결국 모질지 못했던 나는 되돌아가기로 마음을 먹었어.”
할아버지가 시킨 말은 어린아이를 둔 어머니에게는 너무도 매정한 일이었다.
아이를 산에 버리는 어미라니···.
평소 독고혈의 성격을 생각해 봐도, 어미로 분한 또 다른 삶을 가장해 봐도 절대 쉽지 않은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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