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레이어가 사는 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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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oplenic
그림/삽화
......
작품등록일 :
2024.01.21 18: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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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11 2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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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5.11 17: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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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클란 자치령(2)

DUMMY

[레벨이 올랐습니다.]


레벨이 올랐다는 상태창의 알람소리에 현수는 호랑이 호흡을 멈추고 눈을 뜨니 저 멀리 지평선에서 붉은 태양이 떠오르고 있었다.


“아! 해다.”


장관이었다.

어제 현수가 무도회에서 받은 정신적 피로는 상당했는데, 생명력이 충만한 아침 해를 마주한 현수는 혈류를 따라 온 몸에 마나가 돌자 정신적으로 힐링이 되는 기분이었다.

비록 현수가 이곳에 오기 전에 영국 귀족이 되었고 작지만 자치령까지 소유하게 되었다는 것은 알았지만, 그것들의 가치 이상으로 무도회에 참석한 사람들과의 대면은 이런 일에 전혀 경험이 없었던 현수를 적잖게 힘들게 했다.

그런 현수의 입에서 저절로 탄성이 흘러나왔다.


“이곳의 풍부한 마나 덕분인지. 레벨이 올랐어. 그날 이후 이쪽 세상에서 레벨이 오른 적이 없었는데. 이게 되네. 여기서....... 하긴 서울보다 마나가 이리 풍부하니 그럴 수도 있겠지만, 어찌 이곳이 좋아질 것만 같아.”


뜻밖의 선물에 입가에 미소가 걸린 현수는 조금 전까지 라클란 자치령에 온 것이 썩 마음에 들진 않았다. 그 이유는 라클란 자치령이 대고모부가 히로이를 생각하고 만들어 논 작품이란 생각이 들어서 그랬는지 몰라도 남태평양의 고도인 이곳의 평화로움까지도 싫었다. 어쩐지 낯선 곳에 자신이 끼어든 느낌이었는데 밤새 마나를 충전해 레벨이 오르자 현수는 조금은 이곳이 좋아졌다. 아직은 소금기가 가득한 공기가 마음에 들진 않았지만.......

사실 현수는 코마 상태에서 깨어난 뒤 지금까지 두 세상에서 정신없이 지내왔다. 이 모든 것은 현수가 양구 시에서 깨어난 이후 시작되었다. 그 뒤 전기동 가족을 만나고 아이언 콜로니를 거쳐 신동면까지......, 그럼 이쪽은 어떤가? 가족을 잃었고 할아버지가 일군 가업을 승계했다. 그 뿐인가? 동부그룹을 흡수해 명실상부하게 이젠 엄청난 규모가 된 갤럭시그룹을 얻은데다가 이젠 영국 귀족가문의 가주까지 되었다. 게다가 두 세상에서 얻은 재화만 따져도 자자손손 먹고 살 수 있는 돈까지 생겼다. 아! 그러고 보니 이쪽이나 저쪽이나 사람도 여럿 죽였다.

잠시 과거를 회상이라도 하듯 생각에 잠겼던 현수는 기감을 퍼트려 저택 안을 살펴봤다. 모두 잠들어 있었다. 아니 지금 이른 이 시간에도 저택의 정문엔 경비를 서고 있는 사람이 있었지만 후지와라 사장이나 스튜어트 집사는 모두 잠이 들어있었다.

현수는 창문을 통해 뛰어내렸다. 조금만 걸어도 바다였다. 파도가 섬 쪽으로 거칠게 밀려오고 있었다.


“쓰읍.”


길게 숨을 들이마셨다.

그런데 해가 뜨니 그토록 진하고 풍부했던 마나가 엷어졌다. 지금도 서울보단 풍부했지만 밤에 느꼈던 진한 마나의 맛은 느낄 수가 없었다.


‘해가 뜨니 마나가 엷어졌어. 이게 무슨 조화지. 그 많은 마나들이 어디로 사라진 걸까? 설마.......’


현수는 거칠게 밀려오고 물러가는 검푸른 바닷물로 걸어 들어갔다. 그리고 허리까지 바다에 잠긴 채 마나를 느끼기 위해 집중했다.


‘바다였어. 역시 바다는 밤처럼 많은 마나를 품고 있어, 이건 마치 해가 뜨니 마나들이 바다로 몸을 숨긴 것 같잖아? 왜? 이런 현상이 일어난 걸까?’


체내로 마나를 받아들이던 현수는 마나를 갈무리한 뒤 천천히 바다에서 빠져나왔다. 불과 몇 미터밖엔 되지 않지만 모래와 해초들이 뒤섞인 해변에 서서 바다를 바라봤다. 바다를 바라보던 현수는 무슨 생각이 들었는지 언제나 마음속에 깊이 가라앉아있던 생각을 중얼거렸다.


“그때 나라면 물류창고를 털지 않고 가족들과 함께 개마 시를 빠져나왔을 거야?”


현수는 기억 속에 있는 개마 시가 자이언트 엔트들에 무너질 때를 생각했다.

그때 불가해한 크기의 아공간을 갖고 있던 현수는 아버지의 명으로 한 씨 가문의 물류창고에 있는 모든 물자를 챙긴 뒤 혈족의 어린 동생들과 충실했던 아버지의 수하들과 같이 개마 시를 탈출하란 말을 들고 탈출할 당시 지나는 길에 있었던 방치된 다른 가문의 물류창고를 만나 그 창고를 털기로 마음먹고 일행들에게 먼저 가라고 한 것이 수년 간 서로 떨어져 있게 만들었다.

물자만 챙긴 후 바로 빠져나갈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자이안트 엔트들이 개마 시에 둥지를 트는 바람에 상당한 기간 개마 시에 묶여 있었다. 하지만 그 기간 동안에 개마 시에 있는 대부분의 물류창고를 털 수 있었던 그가 개마 시를 빠져나왔을 땐 이미 일행들의 흔적을 발견할 수 없었다.

그랬던 일행과 마침내 신동면에서 만났던 것이다.

언 듯 보기만 했지만 훌륭하게 성장한 사촌 동생들을 보니 두 세상에 걸쳐 모든 가족들을 잃었다고 생각하고 심적으로 무척 힘들었던 현수 앞에 드디어 사촌 동생들이 나타난 것이다. 그리고 이 씨 아저씨까지.......

세상에 홀로 남겨졌다는 생각에 좌절했던 현수의 마음은 다시 기대와 희망으로 물들어가기 시작했다. 저 생명력이 가득한 태양처럼 현수의 마음에 꺼지지 않을 빛이 생겼다.

그때까지도 저택에선 깨어난 사람이 없는지 현수의 기감에 걸리는 사람이 없었다. 꽤 늦은 시간까지 깨어있던 후지와라 사장도 잠에서 헤어 나오지 못했다. 하긴 풍림사영 중 유일하게 닌자의 술법을 익히지 않은 그녀에게는 요 며칠 있었던 사건들은 강단이 있는 그녀조차 감당하기 힘들었을 것이다.

한편 바다를 빠져나온 현수는 기분이 좋아지자 평소 아침처럼 호랑이 격술을 시작했다.

평소보다도 더 천천히 더 느리게 양질의 마나를 흡입하며 시전 한 호랑이 격술은 뭐라 말할까? 진중하고 무거워 보였다. 한호흡한호흡 움직이는 현수의 동작은 서울에서 보다 더 느려졌지만 그 내면에는 꿈틀대는 마나를 자신의 의지로 통제했다. 호랑이 격술을 끝낸 현수는 사람들이 깨어나기에는 아직 이른 시간이었지만 저택을 나가 걷기 시작했다. 그가 저택을 나가자 현관을 지키던 군인들이 경례를 한다. 거리는 조용했다.

비행장 인근에 있는 인구 밀집지역을 거쳐 라클란 자치령으로 오는 데는 폭이 10M가 조금 넘는 상당히 긴 도로를 지나와야 했다. 군인들이 지키는 검문소부터 시작되는 자치령은 축구장 크기보단 작아 보였지만 도로를 제외하고는 집들이 빼곡히 들어차 있었다.

도로를 따라 걷던 현수에게 어제 자동차를 타고 들어오다 본 작은 부두가 보였다. 부두엔 어제 보지 못했던 항만경비정과 소형 어선 2척이 정박해 있었다.

현수가 다가오는 것을 본 항만경비정에서 군인들이 뛰어나와 부두에 이열횡대로 늘어섰다. 그들 속에 여자들의 모습도 보였다. 백인과 폴리네사아인들 뒤섞여있는 군인들은 남자들은 탄탄한 체격에 잘생겼고 여자들은 건강해 보였으며 예뻤다.

현수가 그들을 보고 멈칫하자 이열횡대 앞에 서있던 장교가 앞으로 걸어 나왔다. 계급은 대위였다.


“남작님께 경례.”

“남작님께 충성.”


대위의 말에 이열횡대로 서 있던 남녀 군인들이 내게 경례를 했다. 현수는 따로 배우지는 않았지만 경례 정도야 상식적으로 알고 있던 터라 대응은 어렵지 않았다. 근데 처음 본 저들이 나를 어떻게 알고? 하는 의문이 들었다.


“근데.......”

“옛, 남작님. 저는 알렉산더 모튼 대위입니다. 지금 스코트 함의 선장을 맡고 있습니다.”

“모튼 대위님, 저를 알고 있었나요?”

“예, 랜들 소령님에게서 무전으로 남작님이 오신 것을 들었습니다.”

“그래요? 그렇게 된 것이군요. 그럼 수고들 하세요. 제가 지금 산책 중이라서.......”

“예. 알겠습니다. 남작님.”


모튼 대위의 경례에 현수는 답례를 하고는 서둘러 불편한 그 자리를 벗어났다. 그런 현수의 뒷모습을 기대에 찬 시선으로 모튼 대위를 비롯한 군인들이 쳐다봤다.

오래전 뒷거래로 세습작위인 라클란 남작 위와 영지를 구매한 아사이 가문의 사정으로 오랜 기간 동안 라클란 남작령에 남작이 부재했었다.

그러다가 투발루가 독립을 하면서 라클란 남작령 역시 영지가 투발루에 포함되면서 잠시 혼란이 있었지만 아사이 회장이 독립자금이 필요했던 투발루 정부에 기부를 통한 교섭으로 지금은 라클란 자치령으로 바뀐 다음 비록 소속은 투발루에 속해있지만 국방과 외교를 포함한 모든 면에서 독립적인 지위를 가지고 있는 작은 왕국과 같은 상황이 되었다.

모튼 대위와 군인들은 대대로 이 땅에 살면서 라클란 남작령에 속한 영지민으로 살아왔다. 그들로서는 오랜만에 모습을 드러낸 남작의 모습에 호기심이 들 수 받게 없었다. 그것도 동양인이었다. 그들의 시선엔 기대와 우려가 공존하고 있었다.

남작가를 관리하는 스튜어트 집사나 적은 수지만 병권을 맡고 있는 제이콥 랜들 소령은 당대 라클란 남작의 신분을 가지고 있는 아사이 회장이나 대리인인 후지와라 사장을 접한 적이 있었지만 대다수 영지민들은 그들의 존재를 풍문으로만 알다가 이번에 실제로 동양인 남작의 모습을 보게 된 것이다. 그들로서는 삶에 집결 된 만큼 기대와 우려가 공존할 수밖에 없었다.

산책을 마치고 저택으로 돌아오니 후지와라 사장이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영내 구경을 잘 하셨습니까?”

“그런대로 잘 했습니다만, 제게 무슨 할 말이라도 있습니까?”

“예. 그게......., 이사님 아니 남작님께서 따로 홍영에게 지시한 것이 있으십니까?”

“홍영에게요? 예 그렇습니다만.”

“홍영이 남작님께서 지시하신 것에 대해 찾았다는 전화가 있었습니다.”

“그래요?”


현수는 이곳에 오기 전에 홍영에게 히로이가 말한 ‘오사카, 조선인 거리, 망향’ 이란 말을 단서로 정보를 좀 모아보라고 했었는데 홍영이 무언가를 알아낸 것으로 보였다. 그런데 직접 지시한 사항이라서 그런지 홍영은 후지와라 사장에게 그 내용에 대해선 말을 하지 않은 모양이었다.


“홍영이 무언가를 찾았나 보내요. 후지와라 사장님, 가능한 빨리 일본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준비를 해 주세요.”

“일본으로요? 예, 알겠습니다. 그런데 다음 비행기는 빨라야 모래쯤 일정을 맞출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모레요? 더 빨리는 안 됩니까?”

“그게 투발루에 오는 비행기는 피지의 난다 국제공항을 경유해야 합니다. 그래서 돌려보낸 전세기가 돌아오려면 경유지를 거쳐야 하기 때문에 2,3일 정도 잡아야 합니다. 그것도 2주일 이후에 오기로 했기 때문에 다른 전세기를 알아봐야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후지와라 사장님, 그래도 최대한 당겨보세요.”

“예, 남작님.”

“빨라야 모래라면, 오늘과 내일 중으로 둘러봐야 할 곳은 빠르게 둘러보기로 하죠.”

“예, 남작님.”


조식을 마친 후 현수와 후지와라 사장은 스튜어트 집사의 인도로 라클란 은행을 방문한 뒤, 자치 정부 관청을 방문했다. 그 다음으로 스코트 함을 타고 속령인 니올라키타섬을 방문했다.

니올라키타섬은 투발루 최남단에 위치한 4개의 호수와 늪을 가진 작은 섬인데 화산 폭발로 만들어진 섬이라 면적이 0.4km인 것에 반해서 넓은 대륙붕을 가지고 있었다. 거주 인구는 35명이었다.

이틀 동안 라클란 자치령을 둘러본 현수는 전세기 편에 일본으로 돌아갔다.

현수는 돌아가기 전에 스튜어트 집사에게 한국과 일본, 미국에 라클란 자치령의 영사관을 설치하고 영사와 직원들을 파견하도록 했다. 이를 집행하기 위해 자치령 자금으로 천만불을 스튜어트 집사에게 건네주었다.


오사카 조선인 거리.


“셋째 이모, 아직도 스토리가 풀리지 않아? 마감 시간이 30분도 채 남지 않았는데. 지금 그린다고 해서 제시간에 잡지사에 원고를 넘길 수도 없잖아?”

“준하야, 이젠 다 끝났어. 죽고 싶다. 야마모또 편집장님이 날 죽이려 하실 거야?”

“.......”


좌절하는 그녀를 준하는 안됐다는 얼굴로 쳐다봤다.

그런데 이 영특해 보이는 준하에겐 아버지가 없었다. 준하는 유복자였던 것이다.

‘그린 스네이크’라는 영화제작사에 다니던 준하의 아버지가 촬영 중 사고로 사망했다. 다행이 고의는 아니었지만 그린 스네이크 쪽에 약간의 과실이 있었기에 준하의 어머니는 그린 스네이크의 배려로 그쪽에 취업을 할 수 있었다.

준하의 어머니 오민희는 준하 아버지가 남긴 약간의 유산과 그린 스네이크에서 나온 위로금으로 준하 아빠와 자신이 어린 시절을 보냈던 오사카 외각 슬럼가인 ‘조선인 거리’에 있는 1층이 상가인 3층 목조주택을 사서, 시어머니와 3명의 여동생들 미영, 민지, 미진이와 더불어 갓 태어난 준하와 같이 옮겨와 살기 시작했다.

2년제 단기대학을 졸업하고 만화가를 꿈꾸는 민지는 스토리가 잘 안 풀려서 요즘 집에서 나가지도 못하고 있었다. 그런 민지를 지켜보던 준하는 자기 방으로 올라갔다.

준하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작은 무역회사에 다니는 막내 이모와 같이 3층에서 살았다. 2층은 크고 작은 방 4개에 욕실이 하나인데, 준하의 어머니와 시어머니, 미영, 미진이가 살았고, 망향이란 이름의 1층 선술집을 시어머니가 꾸려나갔다. 준하가 거주하는 3층은 막내 이모가 사용하는 욕실이 달린 방과 작은 방이 있었고, 전형적인 일본 구옥들과는 다르게 방 앞에 옥상 같은 테라스가 있었다.

작업에 몰두한 둘째 이모의 방에서 나와 옥상에 올라온 준하는 거리를 내려다 봤다. 옥상에서 거리를 내려다보던 준하의 눈에 검은 양복 입은 남자들과 흰 저고리에 검정 치마를 입은 여자들이 거리를 지나가는 것이 보였다.

지금은 북송선을 타는 사람들의 수가 많이 줄어들었지만, 그들은 1959년부터 시작된 북한의 북송 사업에 조선인 거리의 사는 무국적 조선인들을 북쪽으로 보내는 사업에 동원된 조총련계 사람들이었다.

오늘도 누군가를 찜해 놨는지 서로 말을 주고받으며 빠르게 지나갔다. 비록 거리가 떨어져 있어 준하는 그들 품에 있는 전단지 내용을 볼 순 없었지만 전단지에는 환한 웃음을 지으며 만경봉호에 타고 있는 사람들의 사진이 여러 장 실려 있었다.

이 가난한 거리에 산다고 다들 무지랭이들은 아니었다. 북한과 조총련계가 사활을 걸고 하는 북송선 사업에 동조해 북한에 간 사람들이 현지에서 당한 일들이 만경봉호 선원들이나 조총련계 사람들을 통해 조금씩 퍼지고 있었는데, 그 말이 어린 준하의 귀까지도 들렸다.

조선인 거리는 번화한 오사카와는 다르게 1950년대에 시간이 멈춘 것 같이 거리는 길고 꾸불꾸불한 골목을 따라 수많은 샛길이 미로처럼 이루어져 있었다. 낙후된 거리, 언제일지는 몰라도 도시재생이 예정된 이 거리는 말 그대로 슬럼가였다.

이 거리에 거주하는 조선인 무국적자들이 거의 만 명에 달했다. 무려 일본에 거주하는 무국적 조선인 3만 명 중 3분의 1정도가 이곳에 살고 있었다. 조선인 무국적자란 해방 후 남쪽과 북쪽 어디에도 적을 두지 않은 조선인들을 말했다. 5년마다 외국인 등록을 해야 하는 이들은 어찌 보면 난민이라고 할 수도 있었다.

할머니가 운영하는 ‘망향’이란 이름의 선술집은 할머니가 직접 담근 탁주가 일품이었다. 각종 부침개도 재료를 아끼지 않고 넣어서 일용직 노동자가 대부분인 이곳을 찾는 무국적 조선인들에게 하루의 고단함을 풀어줄 수 있은 소중한 곳이었다. 저녁이 되면 망향에서 흘러나오는 아리랑 노래 한소절의 꺾임은 조선인 거리를 찾아드는 애절한 조선인들의 심정을 어루만져 주었다.

하지만 이 망향의 주 고객층인 조선인들은 막걸리 한잔 파전 한 조각도 자기 돈을 내고 사서 먹기 어려운 그런 인생들이었다. 배운 것도 가진 것도 없는 이들 조선인들에게 막일조차 주어지지 않는 오사카에서 할 수 있는 일이란 거의 없었다.

그나마 거류민단이나 조총련에 인연이 있는 사람들은 농촌 지역을 떠돌며 저임금 날품팔이라도 할 수 있었지만, 그밖에 많은 사람들이 호구를 연명할 일자리를 찾는 것이 어려웠다. 그런 이유에서인지 남자 애들은 중학교를 졸업하면 거친 어둠의 세계에 투신해서 일본인 야쿠자들의 뒤를 닦았고, 여자들은 그들이 운영하는 화류계에 빠져들었다.

물론 그중에 소수지만 뛰어난 미모와 끼를 가진 여자들은 연예인이 되거나 AV업계에서 애로배우로 활동하기도 하고 남자들은 운동선수가 되거나 야쿠자가 운영하는 지하격투장의 선수로 뛰어들었다.

오민희도 그렇지만 미모를 자랑하는 자매들 중에서도 특히 둘째 오미영의 미모가 아주 뛰어나 간혹 찾아오는 작은 역할의 엑스트라지만 배우로 활동하고 있었다. 물론 AV업계가 아닌 다음에야 무국적 조선인 여배우에게 소속사란 없었다. 다만 아름아름 연결된 인연이 능력 있는 그녀에게 작은 배역이나마 주어진 것이다.

시간이 흘러 해가 떨어질 무렵이 되자, 텅 빈 조선인 거리에 하루 일과를 끝낸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옥상에 있던 준하가 벌떡 일어났다. 저 멀리서 오민희가 걸어오고 있었다. 피곤한 표정이었지만 옥상에서 자신을 내려다보는 현수를 보자, 두 팔을 교차하듯이 마구 흔드는 그녀의 얼굴에 환한 미소가 피어올랐다.


“준하야.”

“엄마.”


한걸음에 옥상에서 내려온 준하가 달렸다. 두 사람은 누가 뭐라고 할 것도 없이 서로 달려와 부둥켜안았다. 이산가족도 이런 이산가족이 없었다. 준하는 민희의 품에서 맡아지는 향긋한 엄마의 향기에 취했다.


“이제 퇴근한 거야?”

“응, 오늘 우리 준하는 뭐했어요?”

“오늘 무척 심심했어. 엄마는 어땠어?”

“난 우리 준하를 만날 생각에 열심히 일했지요.”


두 사람이 대화를 풀어나가는데 옆에서 걸쭉한 할머니 목소리가 끼어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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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 야차대와 개마대 24.05.25 12 0 17쪽
37 조선인 거리(2) 24.05.18 13 0 15쪽
36 조선인 거리(1) 24.05.12 13 0 16쪽
» 라클란 자치령(2) 24.05.11 16 0 18쪽
34 라클란 자치령(1) 24.05.06 15 0 16쪽
33 아포칼립스의 호텔(2) 24.05.05 18 0 17쪽
32 아포칼립스의 호텔(1) 24.05.04 16 0 17쪽
31 강화인간(2) 24.05.01 18 0 17쪽
30 강화인간(1) 24.04.28 17 0 17쪽
29 블루 워터 시(4) 24.04.27 14 0 19쪽
28 블루 워터 시(3) 24.04.20 17 0 16쪽
27 블루 워터 시(2) 24.04.17 14 0 1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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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 야쿠자 야노스케 24.04.07 17 0 18쪽
23 갤럭시 컴퍼니(3) 24.04.06 17 0 15쪽
22 갤럭시 컴퍼니(2) 24.03.31 19 0 16쪽
21 갤럭시 컴퍼니(1) 24.03.30 22 0 16쪽
20 신 야차대(2) 24.03.23 21 0 15쪽
19 신 야차대(1) 24.03.23 22 0 15쪽
18 이 세상 플레이어 홍영 24.03.16 22 0 15쪽
17 오철웅 플레이어가 되다. 24.03.09 23 0 21쪽
16 현수에게 닥친 비극(2) 24.03.03 21 0 17쪽
15 현수에게 닥친 비극(1) 24.03.02 29 0 16쪽
14 아이언 콜로니(5) 24.02.25 25 0 1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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