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금술사도 먹고 살기 힘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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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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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1.26 1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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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3.11 1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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던전 도시

DUMMY

던전 도시 크라프톤.


“오랜만에 장거리 여행이라 좀 힘드네. 플라위는 괜찮아?”

“쉬이익.”


헐렁하게 입은 로브 안에서 노란 눈빛의 뱀이 작게 울었다.


라르바티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크라프톤까지 온 이유는 역시 던전 때문이다. 크라프톤의 주변엔 미궁형 던전, 보스형 던전, 지하 던전 등 크고 작은 던전들이 자리 잡고 있고 이런 많은 던전들을 크라프톤에서 독점하다시피 관리하고 있었다.


그렇기에 던전을 방문하는 이들은 크라프톤에 머무를 수 밖에 없었고, 일종의 관광화, 상업 지구가 된 도시가 크라프톤이였다.


애초에 라르바티에서는 던전 탐사에 대한 구인 공고 자체가 없기도 했고.


그러면 자연히 가장 가까운 던전 도시로 가서 직접 구하는 수 밖에 없는 것이고 말이다.


“신분패.”

“여깄습니다.”


모서리가 둥근, 직사각형의 신분패.

그것을 받은 도시의 경비대원은 이리저리 확인하곤 다시 내게 돌려줬다.


“라르바티에서 예까진 무슨 일이지?”

“도시에 머물면서 던전에 들어가 보려고 합니다.”

“흠···. 뭐, 좋아.”


그러면 그렇다는 듯한 표정을 지은 그에게 묵직한 주머니 하나를 건네며 물었다.


“몇 가지 묻고 싶은 게 있는데···. 제가 바쁘신 시간 뺏는 게 아닐지 모르겠네요.”


주머니 속 내용을 확인한 남자의 입이 비뚜름하게 올라갔다.


“바쁠 게 뭐가 있겠나. 그래, 뭐가 궁금하지?”


이후 그에게 도시 혹은 던전에 대한 정보를 얻을 수 있었다. 라르바티에서는 던전에 대한 정보를 얻는 것이 한정적인 데다가 그마저도 양질의 정보를 얻으려면 정보 길드에 많은 돈을 주고 구매했어야 했기 때문이다.


물론 정보는 힘. 라르바티의 정보 길드에서도 크라프톤과 주변의 던전에 대한 정보를 구했지만, 혹시나 다른 점이 있을까 저어하여 현지인인 경비대원에게 약간의 성의를 지급하며 물어본 것이다.


“이 정도면 충분하겠지? 이제 들어가라고.”

“감사합니다.”


나는 그에게 가볍게 묵례하여 감사의 뜻을 표했다.


“조언 하나 더 해주자면, 괜한 시비 붙기 전에 눈 깔고 몸 사리고 다니라고.”

“다시 한번 감사합니다.”


던전이라는 복권을 두고 온갖 망종들이 모여드는 도시다. 당연히 치안은 개판이고 언제 어디서 누가 죽어나자빠져도 이상하지 않은 곳.


아무도 연금술사 테오도르를 모르는 이곳이 내게는 마법사라고 사기 치기 딱 좋은 무대인 것이다.


‘뭐··· 마법을 쓸 순 있으니까, 사기까진 아니겠지만.’


가장 먼저 크라프톤의 거래소들을 들렀다. 던전 도시인만큼 던전에서 나온 몬스터들의 부산물들이나 유물들 따위가 활발히 거래될 테니까 말이다.


“뭐 찾으러 오셨소?”


거래소의 주인으로 보이는 노인이 물었다. 단안경을 쓰고 이름 모를 광물을 이리저리 둘러보고 있는 노인.


“돌연변이 몬스터의 마석 있습니까?”

“돌연변이? 아, 혹시 보스 몬스터 말하는 게요?”

“그렇습니다.”


노인은 살펴보던 광물을 내려놓고 나를 빤히 바라보며 말했다.


“여기 온 지 얼마 안 된 모양이오?”

“이제 막 도착한 참입니다. 무슨 문제라도 있습니까?”

“그럴 줄 알았지, 여기서 그쪽이 찾는 물건은 찾기 힘들 거요.”

“구하기 어려운 이유가 있는 겁니까?”


던전이라면 반드시 존재한다는 돌연변이 몬스터. 라르바티에 있는 벼벼르다는 몰라도 던전 도시에 돌연변이 마석이 하나가 없다는 게 이해가 되지 않았다.


“흠. 흠.”

“······.”


노인은 헛기침을 하면서 은근슬쩍 손을 내밀었다. 무슨 뜻인지 알았기에 작은 주머니를 그의 손에 얹었다.


“그걸 왜 찾는진 모르지만 자네에겐 안타까운 말이겠지만 이 도시에 있는 모든 거래소를 들러도 보스 몬스터 마석은 구할 수 없을걸세.”


그리고 노인은 내 쪽으로 몸을 가까이 붙이더니 작게 속삭였다.


“마탑에서 그 마석이 나오는 데로 족족 사 가고 있거든. 여기 있는 상인들은 전부 마탑과 계약했을 테니 더 돌아다녀봤자 헛수고라는 말일세.”

“···그렇군요.”


그렇게 노인의 거래소를 나와 도시의 다른 거래소들도 들려 확인해 봤지만 결과는 똑같았다. 도시 내의 어느 거래소에 가든 구할 수 없을 것이라는 노인의 말처럼 상인들은 모두 입이라도 맞춘 양 자신들은 판매하지 않고 있다는 말만 앵무새처럼 반복했다.


‘벼벼르다도 마탑 소행일 가능성도 있겠군.’


던전은 크라프톤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대륙 곳곳에 산발적으로 존재했지만, 크래프톤처럼 지하 던전이 밀집된 지역은 이곳뿐이었다.


그래서 크라프톤은 이런 지역적 특징을 이용해 사업을 벌였다.


가장 먼저 던전에서 나오는 부산물들을 도시 내에서 거래하게 한 것이다. 모험가 입장에서는 던전에서 나온 부산물을 멀리 갈 필요도 없이 바로 옆에 있는 크라프톤에서 돈으로 바꿀 수 있었고 도시는 거래소에 등록되는 부산물에 세금을 붙였다.


게다가 던전에 들어갈 모험가뿐만 아니라 이곳에서 나오는 여러 부산물들을 구매하기 위해 찾는 사람들도 있었으니 던전 외의 내세울 게 없는 크라프톤 입장에서는 던전 사업만이 도시를 키울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이기도 했다.


그리고 여기서 가장 흔하게 거래되는 몬스터 부산물 중 하나가 마석이다. 물론 내가 찾는 돌연변이 마석은 이른바 던전 보스만 뱉어내는 거니 일반 마석보다는 흔하지 않지만 애초에 마석이란 마법사나 연금술사가 아니고서야 찾는 사람이 없어서 이렇게까지 못 구할 정도는 아니란 얘기였다.


쉽게 구할 수 있을 거란 생각을 하진 않았지만 약간 기대도 있던 것도 사실이었다.


‘이왕이면 던전에 안 들어가고 끝나면 편하니까.’


던전에 들어가는 것을 상정하고 준비하긴 했지만, 그래도 안 들어가고 끝나면 좋았으니까.


하지만 그 기대는 마탑의 개입으로 박살났다. 마탑이 무슨 연유로 돌연변이 마석을 긁어모으는지 모르겠으나 그들이 마음 먹었다면 일반적인 방법으로는 구하기 힘들 것이다.


‘역시 직접 구하는 방법밖에 없네.’


작게 한숨 쉬곤 크라프톤 던전 관리 협회로 발걸음을 옮겼다.


던전은 크라프톤의 주요 자원이다. 그렇기에 크라프톤은 성주의 지고한 지침 아래에서 제법 빡빡한 규정과 절차를 통해 관리, 감독 하고 있다.


즉, 던전에 들어가는 것도 아무나 아무렇게 들어갈 수 있다는 게 아니란 소리다.


우선 던전에 들어가려면 던전 출입 허가증이 필요하다. 이 허가증이 없으면 던전 입구를 막아서고 있는 크라프톤 병사에 의해 제지당한다. 이들은 밤낮 할 것 없이 그 앞을 지키고 있으므로 몰래 들어간다는 선택지도 없다.


우연히 운 좋게 몰래 들어간다고 해도 나오는 입구는 단 하나.


그때는 병사의 경고로 끝나지 않는다.


그럼 그 허가증은 어떻게 받을 수 있느냐?

바로 크라프톤에만 존재라는 던전 관리 협회에서 받을 수 있다. 물론 이 허가증도 유료다.


여기에 허가증 발급 절차에는 신분을 보증한다는 증명서가 필요했다. 다른 도시에서 발급받은 신분패가 아닌, 이곳 크라프톤에서 발급한 신분 증명서.


당연히 신분 증명서 발급까지는 복잡한 절차와 오랜 시간이 걸린다.


던전에 들어가기 위해 모인 사람들이 이거 하나 때문에 던전에 들어가지 못한다면 당연히 불만이 생길 것이지만 크라프톤은 여기서 신분 보증서 없이, 허가증 없이 던전을 출입할 수 있는 예외 사항을 한 가지 두었다.


그게 바로 증명서가 있는 사람 아래로 들어가 던전 관리 협회에 공인하는 것이다.


즉, 신원 증명서가 있는 탐사대장이 던전 관리 협회에 던전 출입 허가증을 발급받기만 하면 그 아래의 탐사대원들은 저절로 같이 들어갈 수 있게 된다는 것이다.


나 역시 언제까지 신원 증명서 발급을 기다릴 수 없었으니 이미 꾸려진 파티에 들어가는 게 나을 것이다.


‘을씨년스럽네.’


길드 건물 안에는 진득하고 꿉꿉한 쇠 비린내가 진하게 났다.


“던전에 들어가고 싶은데, 제가 적당히 들어갈 만한 곳이 있겠습니까?”


길드 직원은 날 보지도 않고 어느 한 곳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저기서 확인하고 다시 찾아오도록.”


직원이 가리킨 곳에는 커다란 게시판이 하나 있었다. 아무래도 던전 관리 협회는 허가권과 탐사대 등록에만 관여하고 그 외의 일은 하지 않는 모양이다.


게시판에는 탐사대원을 찾는다는 무수히 많은 공고가 붙어있었다. 공고문 아래에는 자신들의 스펙은 어떻고 여태껏 몇 번이나 던전을 돌았는지에 대한 설명글과 함께 구인하는 인재의 조건들이 적혀있었다.


그리고 게시판을 한번 쭉 훑어본 바, 생각보다 내가 들어갈 만한 곳이 많지는 않다는 걸 알 수 있었다.


‘그나마 여기랑 여기가 최선인가.’


후보지는 두 개.


하나는 밸런스가 잘 잡혀있는 베테랑 탐사대. 하지만 초급 마법사를 구하는 것이기에 던전에서 나오는 수익의 배분율이 낮았다.


안전하게 갈 수 있지만 분배되는 것에 어떠한 의견도 내놓을 수 없다. 주는 대로 받아야만 하는 팀.


‘이러면 돌연변이 마석 손도 못 댈 수도 있겠어.’


반대로 나머지 하나는 팀을 이룬 지 얼마 안 된 새내기 탐사대. 몇 개월간 던전에서 합을 맞춰봤다고는 하지만 실적 자체는 좋은 편이 아니었다.


‘그래서 마법사를 구하는 거겠지만.’


배분율은 너무 낮지도, 의심스럼게 많지도 않았다. 실적이 없다는 게 조금 걸리긴 하지만 아예 의견을 낼 수 없는 것보단 약간의 위험을 감소하고 원하는 것을 바로 얻을 수 있는게 이 새내기 탐사대의 장점이였다.


‘안전하지만 던전 보상이 불투명한 팀, 위험하지만 보상은 확실히 받을 수 있는 팀.’


고민은 길지 않았다.


이런 선택은 좋아하지 않지만···. 역시 하이 리스크, 하이 리턴이 맞는 거겠지.


던전 탐사 자체가 흥미로웠지만 언제까지고 돌연변이 마석 때문에 끌려다닐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우선 공고에 적혀있는 주소로 새내기 탐사대를 찾아가기로 했다.


***


공고문에 적힌 한 여관에 도착했다.


“여기 레이먼 오티스 라는 사람이 머물고 있습니까?”

“마침 계시는데 불러드릴까요?”

“공고문을 보고 찾아왔다고 전해주십시오.”

“예.”


빠르게 다녀온 여급이 말을 전했다.


“금방 내려오신다네요!”

“감사합니다.”


여관의 복도 끝에서 우당탕거리는 소리와 함께 목소리가 들렸다.


“반갑습니다! 제가 레이먼 오티스입니다.”


찬란한 금발 머리가 인상적인 청년이었다.


***


크라프톤 던전 관리 협회의 앞.


“테오님! 먼저 와계셨군요!”


금발에 벽안을 가진 잘생긴 청년의 이름은 레이먼 오티스. 이 탐사대의 리더이자 유일하게 허가증을 발급받을 수 있는 인물이다. 경갑과 검. 역시나 그의 포지션은 전위, 평범한 검사다.


‘평범한지 아닌지는 까봐야 알겠지만.’


레이먼의 뒤에서 얇고 앳된 목소리가 튀어나왔다.


“이 놈이 그 마법싸냥?”


미묘하게 혀 짧은 소리가 나는 묘족 소녀는 리리아 코쇼트. 고등어 태비를 가진 고양이가 사람처럼 두 발로 서서 옷을 입고 말하는 것 같았다.


묘족은 수인 중에서도 몸집이 가장 작은 부족으로 몸놀림이 은밀하면서도 빠르다고 알려져 있다.


“안녕하세요 마법사님. 시아나 엘럿입니다.”

“반갑습니다.”


그리고 인사를 건네는 은발의 여인은 시아나 엘럿. 그 옆에 다소 껄렁해 보이는 자세로 날 보고 있는 청년이 아조 노르다.


“반갑고, 하급 마법사시라고?”

“예.”

“쓸 수 있는 마법 종류는?”

“하급 마법이라면 거의 다 쓸 수 있습니다.”


하지만 내 대답이 마뜩잖았는지 아조가 인상을 잔뜩 찌푸린 채 말했다.


“아니, 누가 그거 모른대? 정확히 뭐뭐 쓸 수 있는 거냐고 묻는거잖수.”

“음.”


말해주는 거야 어렵지 않았다. 애초에 레이먼과 처음 만났을 때도 공개한 부분이기도 하고.


“공격 마법으로는 아이스, 파이어, 라이트닝 볼트. 일반 마법으로는 라이트나 내비게이팅 정도 있겠네요.”


사용할 수 있는 마법은 이보다 많았지만, 곧이곧대로 내 내 정보를 전부 오픈할 생각은 없었었다.


혼자 던전에 들어갈 수 없었기에 일면식도 없는 이들의 팀에 계약을 맺고 들어왔다. 하지만 그렇다고 그 얄팍한 계약 하나만 믿기에는 이 세계는 녹록지 않은 것이다.


사람 좋아 보이는 얼굴로 아무렇지 않게 배에 칼 찔러넣는 곳이 바로 이곳.


서로의 필요에 의해 협력 관계를 맺었으니 협력은 할 거다. 성실히 움직일 거고 어지간하면 이들의 의견을 따를 것이다.


하지만 그런다고 해서 경계심까지 놓아버리는 우는 저지르지 말아야 할 것이다.


던전 안에서는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르는 법. 믿을 수 있는 건 나, 그리고 내 품에서 숨죽이고 있는 플라위뿐이다.


물론 이들도 나를 그렇게 생각하겠지.


하지만 일단은 웃음으로, 마치 무해한 사람이라는 듯 미소를 지었다.


“궁금증은 다 해소 되셨습니까?”

“어? 어어.”


웃는 얼굴에 침 못 뱉는다고 묘하게 까칠하게 나오던 아조의 기세가 수그러들었다.


그때 리리아가 발랄하게 끼어들었다.


“마법싸! 진짜 네가 말한 마법 다 쓸 수 있냥?”

“네. 보여드릴까요?”


적을 향해 날리는 게 아니라면, 그리고 손바닥 위에서만 생성했다가 마는 것이라면 마법을 흩트리는 과정에서 마나를 다시 흡수할 수 있었으니 마나 사탕이나 포션의 도움 없이도 볼트 마법 정도는 여러 번 만들어 낼 수 있었다.


“냐아!”


손바닥 위로 마나로 만들어진 얼음덩이가 만들어지다 이내 뜨거운 열기가 뭉쳐진 구로 변했다. 열기를 가진 구가 대기로 흐트러지나 싶더니 푸른 빛의 작은 번개가 만들어져 번쩍거렸다.


이를 본 리리아의 동공이 커졌는데, 마치 모 영화에 나오는 장화 신은 고양이의 모습을 보는 것 같았다.


“어때요?”

“진짜 마법싸다냥!”


시선을 슬쩍 리리아의 뒤쪽, 레이먼 일행 쪽으로 흘겼다. 레이먼은 이미 여관에서 한 번 보여줬으니 그다지 놀라진 않았지만 시아나와 아조는 아닌 척하면서도 신기하다는 듯 눈을 떼지 못하고 있었다.


작은 행동 하나이긴 했지만 괜찮은 마법사라는 이미지를 주긴 충분한 모양이다.


“봐봐, 내가 괜찮은 마법사님 모셨다고 그랬었잖아!”

“쯧.”


레이먼이 자랑하듯 자신의 팀원에게 우쭐거렸다. 그의 말에 아조는 그런 레이먼의 모습이 마음에 안 든다는 듯 혀를 찼고 시아나와 리리아는 반짝거리는 눈으로 나를 바라봤다.


“마법사님, 이제 가실까요?”

“예.”


적당히 서로 얼굴 보고 인사했으니 이젠 진짜 볼 일을 보러 가야 할 차례였다.


물론, 그 전에.


“아, 그리고 마법사, 마법사하고 불리는 게 불편해서 그러니 이름으로 불러주시겠습니까?”


진짜 마법사도 아닌데, 마법사라고 불리는 건 어쩐지 제 발 저렸다. 그리고 이왕이면 나도 이름으로 불리는 게 좋기도 하고 말이다.


이에 레이먼과 일행들은 흔쾌히 수락했다.


그들끼리는 이미 서로 이름으로 부르는데 나만 마법사라고 부르는 것도 불편했던 모양이다.


그렇게 호칭 정리는 가볍게 일단락하고 바로 크라프톤의 던전 관리 협회를 찾았다.


“던전 출입 허가증 발급 부탁드리겠습니다.”

“증명서.”

“여깄습니다.”


크라프톤에서만 발급할 수 있는명서. 양피지에는 레이먼의 이름과 신분, 종족 등 개인 정보 몇 가지가 적혀있고 크라프톤을 상징하는 인장. 검에 머리가 꿰뚫린 늑대 문양이 있었다.


협회 직원이 증명서에 세 종류의 가루와 두 종류의 액체들을 뿌려가며 유심히 살펴보았다. 이윽고 증명서와 함께 흑요석으로 만들어진 단검과 종이 한 장을 내밀었다.


“방법은 알지? 알아서들 하라고.”


레이먼이 자연스럽게 단검으로 제 팔뚝을 그어냈다. 팔뚝에 흐르는 피를 종이에 적시고 그 위로 자신의 이름을 적었다.


나머지 3인도 똑같이 단검으로 제 팔을 그었고, 상처에서 흘러나온 피를 종이에 적셔 제 이름을 적었다.


“네 차례다냥.”


리리아가 피 묻은 흑요석 단검을 내게 건넸다. 무엇 때문에 이런 행동을 하는지 알 수는 없지만 눈치껏 나도 저 다른 이들의 피가 잔뜩 묻은 흑요석 단검으로 내 팔을 베야 한다는 것쯤은 알 수 있었다.


‘정말 싫다.’


그렇지만 다소 꺼려지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자해(?)하는 거에 대한 거부감보다는 다른 이들의 피가 묻어있는 것으로 내 몸에 생채기를 내야 한다는 게 더럽다고 느껴졌기 때문이다.


내가 머뭇거리자 레이먼이 나를 위해 설명을 덧붙였다.


“테오님은 던전이 처음이라고 그랬었죠? 함께 들어가려면 필요한 주술적 의식이라고 하더라고요.”


어쩐지 그럴 것 같긴 했다.


이 더러운 검으로 팔을 긋고 싶진 않았지만 어차피 해야 할 일. 쥐어진 흑요석 단검을 꽉 쥐고 평소처럼 가장 피가 많이 나오는 곳을 찾아 그었다.


“그, 그렇게 깊게 벨 필요는 없는데!”


레이먼이 소스라치게 놀라며 말했다.


퍼리니에 포션 만들 때 혈액 짜내던 버릇 때문에 나도 모르게 평상시처럼 베었는데 좀 과했던 모양이다. 나는 아무렇지 않았지만 레이먼과 시아나, 리리아가 오히려 빨리 지혈해야 한다느니 포션을 먹어야 한다느니 호들갑을 떨었다.


피가 좀 흐르긴 했지만 실제로 이 정도로는 아무렇지도 않았기 때문에 옷으로 대충 피를 닦아내고 종이와 단검을 협회 직원에게 건넸다.


“됐습니까?”


직원은 피 묻은 흑요석 단검과 이름이 적힌 종이를 수거했다.


이윽고 각자의 피가 묻은 종이를 불태우고 그 남은 잿가루를 마름모 모양의 금속 패에 뿌렸다. 금속 패에 보랏빛 기운이 일렁이더니 이내 사라졌다.


“됐네, 이제 가봐.”

“감사합니다.”


마름모 금속 패를 레이먼이 받아서 들었다.


“이제 바로 던전으로 들어가면 될 것 같습니다만···.”


레이먼이 말끝을 흐렸고 모두가 나를 바라봤다.


“왜 그러십니까?”

“치료받으셔야 하지 않겠습니까···.”

“아, 이거요?”


아직도 상처가 아물지 않고 팔을 타고 피가 흐르고 있었다.


새살카솔을 사용할까 하다가 그냥 체력 포션을 꺼내 마시기로 했다. 편하기로는 새살카솔이 더 좋았지만 출처를 묻거나 한다면 조금 귀찮을 것이기 때문이다.


어디서 났냐, 얼마에 파냐, 만들었다면 어떻게 만들었냐는 둥.


물론 어디까지나 지레짐작일 뿐이지만, 생각만 해도 귀찮아지는 건 사실이었으니 그냥 편하게 포션으로 치료하기로 했다.


소매에서 붉은색의 포션을 꺼내서 마시려 하자 이번엔 시아나가 나를 말렸다.


“자, 잠시만! 이쪽으로···.”

“네?”


시아나가 나를 구석으로 이끌고는 주변에 지나가는 사람은 없는지 두리번거렸다.


‘왜 이래?’


갑작스러운 행동에 당황하기를 잠시, 그녀가 나를 구석으로 끌고 온 이유는 금세 알 수 있었다.


“큐어.”


그녀의 손에서 포근한 빛이 은은하게 뿜어져 나왔다. 피가 멎고 상처가 아물었다.


“사제셨습니까?”

“아직은 견습이고 하루에 세 번이 한계지만요···. 그래도 포션보다는 나을 거예요.”


그녀의 등 뒤에 메여진 메이스를 보고 알아봤어야 했는데, 그녀는 사제였다. 그리고 견습이라곤 해도 사제는 이곳에서 귀족으로 추앙받는 직업이다. 그녀라면 이 탐사대보다 더 좋은 조건으로 갔을 수 있을 테지만 무슨 이유인지는 몰라도 이 탐사대에 머물기로 한 것 같다.


그렇지 않고서야 자신의 직업을 남들에게 드러내지 않기 위해 이런 구석으로 날 끌고 와 치료하지 않을 테니까. 사제인 것이 드러나면 그녀에게 수많은 러브콜이 쏟아질 것은 불 보듯 뻔했다.


“시아나님 감사합니다.”


그런 그녀에게 다시 작게 감사 인사를 전했다.


“시아나, 다 됐으면 이제 갈까?”

“응!”


시아나 엘럿이라는 존재 하나만으로도 이 탐사대의 생존율이 급격하게 올라갔다.


‘다행히 잘 고른 모양이네.’


아직도 나를 도끼눈으로 쳐다보고 있는 아조를 제외하곤 나쁘지 않은 팀 같아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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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 크루타 던전(2) +1 24.03.15 99 4 1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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