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금술사도 먹고 살기 힘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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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녕
작품등록일 :
2024.01.26 13:26
최근연재일 :
2024.09.14 19: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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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3.25 1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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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루타 던전(6)

DUMMY

“일단 좀 쉬었다 확인하죠.”

“예. 좋은 생각이네요.”


레이먼의 말에 나는 그대로 바닥에 드러누워 버렸다. 가지고 온 기력 포션을 마셔볼까 했지만 지금은 아무것도 안 마시는 게 나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뜩이나 오늘은 행동 하나하나가 체력 소모가 극심했던 일정이었는데 마지막에 보빗웜에게 쫓기면서 있는 힘을 다해 달렸던 것이 가장 큰 무리였던 것 같았다.


몸은 물먹은 솜처럼 무거웠고 여기서 뭔갈 먹는다고 해도 그대로 게워 낼 게 자명했기 때문에 굳이 포션을 그렇게 소모하는 것 보다는 지금 이렇게 누워서 휴식하는 게 더 나을 것이라는 판단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건 다른 이들도 마찬가지였는지 각자 아무렇게나 앉아 휴식을 취했다. 그때 아조와 리리아가 나섰다.


“너희들은 쉬고 있어냥.”

“그래. 우리는 주변을 살피고 있을 테니까 너희는 쉬고 있어.”


우리들 중 가장 체력적인 여유가 있는 둘이었다. 마지막 보빗웜과의 추격전도 추격전이지만 실상 체력이 가장 많이 뺏긴 건 호수였으니 헤엄치지 않았던 맥주병 아조와 리리아가 상대적으로 여유가 있을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렇게 우리는 아조와 리리아가 경계를 하는 동안 조금이라도 편하게 잠들 수 있었고 이후엔 반대로 그 둘이 잠들 때 우리 셋이 일어나 주변을 지켰다.


그리고 모두가 일어났을 때 네 번째 방에 탐사를 시작했다.


리리아가 벽에 이곳저곳을 툭툭 건드려보고 레이먼과 아조가 함정은 없는지 살폈다. 하지만 10평 남짓한 공간의 이 방은 재질과 크기가 다른 열 개의 상자들만 존재할 뿐 다른 위험 요소는 발견되지 않았다.


“여기는 이거 말고는 없나 봐.”

“우리가 이 방에 체류한 지 시간이 좀 됐는데도 뭔가 안 나타난 거 보면 특별히 몬스터도 없는 것 같고.”

“그럼 이거부터 확인해 볼까?”

“그래.”


이 방에 있는 상자는 총 열 개.


상아로 만들어진 듯한 가장 큰 궤짝이 하나, 돌로 만들어진 함이 두 개, 덩굴들이 서로 얽혀져 상자의 모양새를 하고 있는 것이 셋, 어디서나 흔하게 볼 수 있는 나무 상자가 넷이었다.


“아조, 얼른 열어봐랑.”

“내가?”

“미믹이면 내가 뒤에서 파파박! 해주겠다냥! 걱정마랏!”

“···고오맙다.”


아조는 다소 떨떠름한 표정이었지만 널려있는 상자들을 하나씩 확인했다.


“? 꿈쩍도 안 하는데?”

“그래?”


단 하나 있는 궤짝은 물론 석재, 목재, 덩굴함도 열리지 않았다. 이에 아조는 물론 레이먼도 상자들을 뜯어내려 했지만 소득은 없었다.


“비켜 봐.”


아조를 밀치고 시아나가 자신의 메이스를 목재함에 내려찍었다.


콰직!


“아조 뭐야, 쉽게 부서지잖아.”

“······.”


솔리스파이더를 터뜨린 것도 그렇고 시아나는 보기보다 힘이 강한 것 같았다. 목재함을 박살 낸 시아나였지만 아쉽게도 그 외의 덩굴, 석재, 상아 궤짝은 부수지 못했다.


아쉬운 마음을 감추고 우리는 시아나가 메이스로 부순 네 개의 목재함의 내용물을 살피기로 했다.


“일단 내용물을 확인해 보죠.”

“반짝거리는게 있다냐!”

“금이야!”


네 개의 목재함에는 금과 은, 그리고 보석들이 잔뜩 들어있었다. 네 개의 함에 가득 들어있는 보화의 양을 보니 크루타 던전에 들어오기 위해 투자했던 돈을 회수하고도 남을 정도였다.


“이건 뭐냥?”

“조각상인가?”


반짝거리는 보화들 속에 어울리지 않는 돌 조각상이 나왔다. 조각한 자의 실력이 좋지 않았는지 모습이 굉장히 투박했다. 무엇을 본떠 조각하려고 했는지 간신히 알아볼 정도로 말이다.


“이건··· 거미랑 개구리···인가?”


다른 다리에 비해 크고 뾰족하게 조각된 두 앞다리를 치켜세운 듯한 거미, 그다음 앉아있는개구리 모습처럼 보였다.


뭔가 연상되는 것이 있었지만 일단 한 켠에 따로 치워놓고 목재함 속 보화들 사이에 다른 것들은 없는지 뒤적거렸지만, 추가로 발견된 것은 없었다.


결과적으로 네 개의 목재함에선 거미와 개구리 조각상, 금은보화들이 나왔다. 레이먼은 다시 다른 재료로 만들어진 상자에 시선을 돌리며 말했다.


“일단 이건 따로 생각해 보고 다른 것들도 열어보자. 저걸 어떻게 열어야 할지지 좋은 의견 있는 사람 있어?”


“음··· 일단 저 덩굴은 이걸로 잘라볼까요?”

“낫으로요?”

“검보다는 낫이 더 잘 잘리지 않을까 싶어서요.”


솔리스파이더를 푹 익은 토마토처럼 느끼게 해준 낫이었으니 어느 정도는 통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낫의 날은 곡면의 안쪽에 있는 터라 덩굴을 자르는 자세가 영 불편하긴 했지만, 그것과 별개로 덩굴들이 조금씩 끊어지고 있었다.


찌이이익. 텅!


어지럽게 얽혀있는 덩굴들 사이 유독 색이 바란 것 같은 덩굴 하나를 잘라내자 쩌억하고 입을 벌렸다.


“오오!”

“열렸다냥! 뭐가 들어있는 거냥?”


그 안에서 꺼낸 것은 덩굴들 사이러 뿌리를 내리고 있는 자그마한 식물이었다.


“반짝반짝한 꽃이 나왔다냥.”

“아는 사람 있어?”


레이먼의 물음에도 대답하는 사람은 나오지 않았다.


오팔처럼 반짝이는 반투명한 꽃잎들이 개화하기 직전의 작약처럼 둥글게 겹쳐 있었다. 그러나 꽃처럼 보이는 부분은 실제로 꽃이 아닌 잎이며 꽃은 이 잎들의 가장 안쪽에서 피어난다.


꽃이 필 때쯤이 되면 꽃잎처럼 보이는 잎들도 피어나 안에 들어있는 작고 노란 꽃을 돋보이게 하기보다는 꽃 속에 있는 수술과 앞술처럼 보였으므로 부활초를 처음 본 사람들은 이 잎 뭉치들을 꽃으로 착각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나는 식물의 뿌리 부근을 살며시 잡고 톡 떼어내며 말했다.


“부활초라고 하는 식물입니다.”

“부활···? 설마 죽은 사람을 살려주는··· 그런 겁니까?”


나는 살짝 시아나의 표정을 살폈다. 부활초는 일부 사제들이 신의 영역을 넘보는 물건이라며 대경실색했기 때문이다.


“···?”


하지만 다행히 시아나에게서 그런 낌새는 느껴지지 않았기 때문에 조금 편안한 마음으로 설명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진짜로 죽은 자를 부활시켜 주긴 합니다.”

“세상에!”

“그럼 목숨 하나가 더 생기는 거 아냐?”


위험한 던전을 드나드는 이들인 만큼 무려 다시 살아나게 해준다는 식물은 그 어떤 보물들보다도 높은 값어치를 할 테지만 그렇게 쉽게 부활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들뜬 레이먼 일행을 진정시키며 말을 이었다.


“진정들 하세요. 죽은 사람을 살려주긴 하지만 이건 그렇게 완벽한 물건이 아닙니다.”

“완벽···하지 못하다는 게 무슨 말씀인가요?”

“죽은 지 얼마 되지 않은 사람, 그리고 다시 살아나도 10분이라는 짧은 시간 동안만 살아납니다.”

“··· 그럼 그 10분이 지나면 다시 죽냥?”

“네.”

“뭐야 그게.”


다소 실망감이 역력한 아조였다. 이는 다른 일행들도 마찬가지였기에 설명을 조금 더 덧붙이기로 했다.


“그럼에도 부활초는 아주 높은 가격에 팔립니다. 잠깐이라곤 해도 ‘부활’ 한다는 것 자체가 신의 영역에 가까운 기적이니까요.”

“그렇게 짧은데도 사 가는 사람이 있단 말이야?”


아조의 반문에 나는 쓰게 웃을뿐 말하지 않았다. 겨우 10분이라지만 죽은 자를 일으킨다는 게 남은 사람에게 어떠한 의미를 갖는지 알기에는 이들의 경험이 모자랐기 때문이다.


“교단 몰래 팔아야 해서 더 비싼 것도 있습니다.”

“응?”


레이먼 일행은 견습이긴 하지만 교단 소속의 사제인 시아나를 바라봤다. 하지만 시아나도 잘 모르겠다는 듯 당황해하며 다시 나를 바라볼 뿐이었다.


“죽은 자를 다시 살리는 식물. 교단은 이 식물을 여신께 돌아가야 할 영혼을 붙잡아둔다해서 악종의 식물이라 규정지어서 그렇습니다.”

“겨우 10분인데도냥?”

“네. 뭐··· 짧아도 부활은 신의 영역이니까요. 아무튼 신자들 귀에 들어가서 좋게 끝날 일은 아니라는 겁니다.”


내 말에 집중하던 일행이 다시 한번 시아나를 바라봤다.


“나, 난 저런 게 있는지도 몰랐는데···.”

“그렇겠지, 시아나 넌 딱히 신실한 신자도 아니잖아.”

“무슨 소리야! 나도 제법 신실한 편이라구!”

“네네~.”


시아나를 놀리는 아조와 씩씩거리는 시아나의 모습이 보였다. 그의 말처럼 시아나는 교단에 몸을 담긴 했지만 교단의 교육을 새길만큼 신실한 신자는 아닌 것 같았다.


‘견습이라도 어느 정도 교육은 받을 텐데···. 뭐 오히려 잘 됐나?’


맹신자들만큼 위험하고 귀찮은 게 없었다. 애초에 그녀가 홀로 수행을 위해 돌아다닌다는 것 자체가 그 빡빡한 규율에 지친 견습 사제들이 이용하는 수행이었다. 교단은 혹여 탈교라도 할까 대부분 만류하지만, 정식 사제가 아닌 이들을 강제할 권한이 그들의 교리에 없기 때문에 설득이 통하지 않는다면 그냥 보낸다고 한다.


하지만 밖에서 이런 사제들을 보기 힘든 이유는 대부분의 견습 사제들이 고아들이기 때문이다.


배운 세상이 교단밖에 없는 아이들은 맹신자가 되거나 순응하는 법만을 배운 순둥이들로 그들의 선임 사제가 세상 밖을 궁금해하는 어린 사제들을 겁주면 그들은 곧이곧대로 믿고 교단에서의 생활에 만족하며 지내게 되는 것이다.


그런 만류에도 꿋꿋이 나온다면 고집이 세거나 신앙심이 별로 없거나.


시아나는 아마 후자인 것 같았다.


“아무튼 이걸 팔고 싶으면 크라프톤이 아니라 경매장에 익명으로 올리세요. 괜히 교단에 눈에 띄면 귀찮아집니다.”

“그렇군요.”

“일단 다른 것들도 한번 까보죠.”


이후 남은 두 개의 덩굴함을 낫으로 잘라내 내용물을 확인했다.


“풀떼기랑 또 조각이 나왔다냥.”

“부활초는 아니네요.”


남은 덩굴함에서 나온 것은 혈생초라는 체력 포션의 재료가 되는 식물과 두 개의 조각상이다. 혈생초야 흔하게 접할 수 있는 식물이라 그런지 이들의 표정에는 실망감이 역력했다.


하지만 레이먼은 혈생초보다는 이번에 나온 조각상에 더 집중했다.


“이거 아무리 봐도 이전 방에 있던 도마뱀이랑 벌레 같죠?”


레이먼의 말에 다들 ‘그러고 보니 그런가?’ 하는 표정으로 조각상을 바라봤다.


대충 아무 돌로 조각한 것 같던 거미와 개구리와는 다르게 이번엔 조각상을 본뜬 생물의 특성을 반영하려는 듯 재질이 달랐다.


도마뱀 형상을 한 조각상은 온몸이 미끈거리는 점액질이 있는 그레이맨더를 표현한 듯이 반질거리는 회백색의 돌로 조각해 광을 낸 것 같았고, 지네와 같이 긴 몸통에 여러 쌍의 다리를 달고 있는 벌레 조각상은 표면이 다소 거친 묵색의 광물로 만든 것 같았다.


이윽고 우리는 아까 한켠에 치워놨던 거미와 개구리 조각상을 가지고 와 도마뱀과 벌레 조각과 함께 일렬로 세웠다.


“이거 여기 나왔던 몬스터 같은데 이견 있는 사람?”


레이먼의 추론이 모두 긍정하듯 반박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개구리가 베놈프룩, 거미가 솔리스파이더라고 한다면···.”

“이건 도마뱀이 아니라 도롱뇽이고, 그레이맨더겠네요. 벌레는 그 호수에 아가리를 벌리고 있던 보빗웜이겠고요.”


모두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그러면 하나가 비지 않나요?”

“어··· 맞다냥. 버섯 몬스터가 안 보인다냥.”

“스토닛머쉬룸···. 그게 없군요.”

“이게 뭘 의미하는 걸까?”

“너무 복잡하게 생각하는 거 아냐? 그냥 아무것도 아닐 수도 있잖아.”


안타깝게도 마지막에 아조가 한 말에는 공감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나는 스토닛머쉬룸의 특성에 대해 생각했고 한 가지 가능성이 떠올랐다.


“혹시 스토닛머쉬룸의 부식액으로 저 석재함을 녹이는 거 아닙니까?”

“예?”


스토닛머쉬룸의 주식은 광물이다. 그리고 그 광물을 섭취하기 위해 부식 독을 발달시켜 광물을 ‘녹여’먹는다.


즉, 저 돌로 만들어진 상자도 스토닛머쉬룸의 부식액만 있다면 손쉽게 안에 든 내용물을 확인할 수 있다는 얘기다.


이런 내용을 이들에게 설명했고 대부분 긍정하는 듯싶었으나 이번에도 아조가 의문을 제기했다.


“그걸 여기서 어떻게 구해올 건데?”

“저기서 다시 구해와야죠.”


내가 가리킨 곳은 우리가 보빗웜의 추격으로부터 벗어나고 곧바로 닫은 문. 즉, 아직 보빗웜이 문 앞에 있을지도 모르는 세 번째 방이었다.


“너무 위험하지 않겠습니까?”

“우리가 돌아가며 자고 있었을 만큼 시간도 꽤 지났으니 돌아가지 않았을까 합니다.”

“그렇게 생각하는 이유는?”


아조가 마음에 안 든다는 듯 툭 내뱉었다. 하지만 처음과 다르게 그저 내가 싫어서라는 단순한 이유가 아니라 위험을 감수해야 하는 이유에 대해 따져 묻고자 하는 느낌이 커서 이번엔 불쾌하지 않았다.


“보빗웜은 기본적으로 ‘물’벌레입니다.”

“음?”

“잠깐 정도는 물 밖에 나올 수 있지만 이렇게 오랜 시간 동안 물 밖에 있으면 버틸 수 없어요.”

“자금쯤이면 그 호수로 돌아갔거나, 저 문 앞에서 지금까지 있다고 해도 말라 죽었을 것이다?”

“맞습니다.”


아조가 제 머리를 거칠게 헝클였다.


“좋아, 좋아. 그럼 어떻게 그 돌도 녹이는 버섯독을 어떻게 가져오고 누가 갈 건데?”


나는 그의 말에 씨익 웃으며 빈 포션 병을 꺼내고 혈생초를 가리켰다.


“용기는 이거면 되고 갈 사람은 이걸로 정하죠.”


정확한 이유는 모르지만, 유리는 강한 산이나 염기에 강하다고 전생에서 겪었던 교육과정에서 배웠다. 그게 아니더라도 위험한 액체류를 담을 때 유리를 쓴다고 어디선가 들었던 것도 있었으니 스토닛마쉬룸의 부식액도 분명 유리와 어떤 반응을 하지 않고 잘 담길 것이라는 게 내 추측이다.


그러니 빈 포션 병으로 부식액을 담을 용기는 해결.


다음은 누가 가느냐, 그건 덩굴함에서 나온 혈생초로 정하기로 했다.


“방법은 간단해요. 돌아가면서 1개에서 3개 사이로 잎을 뜯고 옆 사람한테 넘깁니다. 그리고 마지막 한 장을 뜯는 사람이 가는 가죠.”


혈생초는 한 줄기에 잎이 많이 달린 식물이다. 일종의 폭탄 돌리기, 혹은 술 게임 베라32와 비슷한 게임이라고 볼 수 있는 것이다.


“이의 없으면 시작해 볼까요?”


***


“냐하하하.”

“아, 제발. 리리! 봐줘!”

“냐하하하하!”


토독.


리리아가 두 장을 뜯자 혈생초 줄기엔 이제 마지막 한 장의 잎 밖에 남지 않았고 그다음 타자는 마지막 한 장을 뜯음으로써 세 번째 방으로 들어가야 할 운명이 되었다.


“아조! 잘 다녀와랏!”


***


그래도 혹시 모를 위험을 대비해 아조와 함께 갈 다른 인원을 혈생초 게임으로 더 뽑았다.


그렇게 아조와 레이먼으로 결정되었다.


“가자···.”

“그래. 후딱 다녀오자고···.”


끼이익.


세 번째 방으로 가는 문을 조심스럽게 열고 아조와 레이먼이 주변을 살폈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는지는 모르겠지만 그곳에 아가리를 벌리고 우리에게 달려들던 보빗웜은 자취를 감춘 듯했다.


“젠장···.”


둘의 손에는 빈 포션 병이 들려져 있었다. 빛 한 점 존재하지 않는 곳이였으니 이번에도 마법으로 발광 인간을 만들었다. 이번의 발광 인간은 레이먼이였다.


이후 레이먼과 아조는 조심스레 스토닛머쉬룸이 있는 장소로 이동했다.


얼마간의 시간이 지나 그들이 돌아왔다.


“으아··· 여기··· 여깄습니다.”

“으··· 두 번은 못 가.”

“왜? 아무것도 없지 않았어?”


시아나의 물음에 아조가 질색하며 말했다.


“그럼 다음에 네가 가던가! 그 벌레 같은 게 진득하게 녹아있었다고···”

“그 와중에 살아있었는지 별로 움직이지도 못하는 게 기괴하게 소리내는 게··· 다른 벌레라도 몰려들 것 같은 공포감이···”

“··· 고생하셨습니다.”


나는 이들에게서 스토닛머쉬룸의 부식액이 담긴 병을 건네받고 아주 조금씩 석재함에 부었다. 한꺼번에 많이 부어 안에 내용물까지 녹이는 불상사를 막기 위해서다.


치이익.


석재함의 두께가 얼마나 두꺼웠는지 어린아이 주먹이 들어갈 만큼 움푹 팰 만큼이 되어서야 검은 구멍이 보이기 시작했다.


구멍과 부식액이 튀면서 얇아진 석재함을 시아나가 다시 한번 메이스로 내리쳤다. 그러자 얇아진 석재함의 윗면이 강한 충격을 버티지 못하고 부서졌다. 이것을 남은 석재함에도 반복했다.


두 석재함에서 나온 것은 자색의 모난 돌들과 열쇠 하나가 들어있었다.


“이거 설마 아석?”

“뭐? 진짜?”

“음··· 맞는 것 같은데요?”


아석이라고 불린 자색의 모난 돌. 이 돌은 아공간 마법 도구를 제작할 때 반드시 필요한 재료로 굉장히 희귀하고 값이 비싼 돌이다.


이 돌이 얼마나 많이 들어갔느냐에 따라서 아공간 마법 도구의 용량이 결정되기에 대부분 떠돌이는 아석을 발견하면 팔기보단 이를 이용해 자신만의 아공간 주머니나 가방 등으로 만드는 데 사용한다.


금은보화에 부활초, 거기에 아석까지.

이번 던전 탐사에 생각보다 성과가 좋았다.


들뜬 레이먼 일행들 사이로 나는 그 사이에 나온 열쇠를 집어 들며 이들에게 물었다.


“열쇠··· 혹시 주변에 열쇠 구멍 같은 게 있었습니까?”


하지만 나를 포함해 이들도 이 방에서 그런 구멍은 발견한 적이 없었다.


“혹시 저기에 쓰는 건 아닐까요?”


시아나가 가리킨 건 이 방에 마지막으로 남은 상아 궤짝. 이후 우리는 궤짝을 이리저리 살펴봤지만, 구멍이라고 할 법한 건 없었다.


“뭐 방법이 없···?”

“?”


상아로 만들어진 궤짝이 너무나도 쉽게 열렸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그냥 뚜껑을 가볍게 들어 올린 거였는데 맥없이 열려버렸다.


“열린 김에 확인이나 해보죠.”


그러나 궤짝 안에선 뚜껑이 달린 장신구의 일종인 로켓(Locket) 하나와 낡은 책 한 권만 들어있을 뿐이었다.


“마법서냥?”

“음··· 아뇨, 그냥 일기 같습니다.”


낡은 책을 다른 이들에게 건넸지만 다들 인상만 찌푸릴 뿐이었다.


“용케 읽으셨네요.”

“너무 악필이라 공용어인지도 몰랐어.”


책에 있는 글씨가 얼마나 개판이던지 단어 하나조차 알아보기 힘들 정도의 악필이었다. 그리고 대부분이 누군가의 일기인 듯 ‘모월 모일 오늘은 어쨌다.’ 하는 내용이 대부분이었다.


“아! 로켓에 열쇠 구멍 같은 게 있어요.”

“이건 여기에 쓰는 건가 보네요.”


석재함에서 나온 작은 열쇠를 상아궤짝에서 나온 로켓 목걸이에 꽂았다.


끼리릭. 딸깍.


열쇠가 맞물리며 로켓이 열렸다.


로켓에는 붉은 도마뱀을 그림과 짐승의 것으로 추정되는 붉은 발톱이 들어있었다.


“무슨···.”

“뭔지 몰라도 기분 나빠···.”


로켓 안에 들어있는 발톱을 보고 다른 이들이 이런 반응을 보일 때 아조는 상아 궤짝에 다른 숨겨진 건 더 없다 이리저리 훑어보고 있었다.


“에이! 괜히 기대만 했잖아!”


그러나 정말 그거 외에는 없다는 사실을 확인하자 아조는 습관적으로 궤짝을 발로 걷어찼다.


덜컹!

퓩!


그리고 그때 궤짝의 하단에서 무언가 튀어나왔다. 그 방향이 나를 향하고 있어 깜짝 놀랐지만 피하기에는 튀어 나간 물체의 속도가 너무 빨라 피할 수 없었다.


철컹!


“?”


왼발에 가해지는 충격에 아래를 바라보니 남청색의 고리가 수갑처럼 채워져 있었다.


“아조! 뭐한 거야!”

“아니··· 나는 그냥 좀 살짝··· 걷어찬 건데···”

“뭔지도 모르는데 함부로 대하면 어떻게 해! 마법사님 괜찮으세요?”

“···. 일단은요.”


당황하긴 했지만 채워진 건 다시 풀면 되는 문제였기에 허리를 숙여 발찌를 풀려고 했었다.


하지만 발찌는 풀리지 않았다.


“···. 이게 왜 안 풀···리지? 저기 좀 도와주시겠어요?”


너무 꽉 결착되어 있어서 내 힘만으로는 못 푸는 것 같았기에 다른 이들의 도움을 구했다. 그리고 이런 상황을 만든 아조가 미안했는지 솔선해서 나섰지만 발찌는 요지부동이었다.


이후 레이먼도, 그리고 시아나나 리리아도 발목에 걸린 발찌를 풀려고 애썼지만, 단단히 결합된 듯 풀리지 않았다.


“일단 여기선 안 될 것 같은데요.”

“······ 어쩔 수 없죠.”


신체의 일부가 변형된다거나 고통스럽다거나 하는 등의 변화는 일어나지 않았기에 그저 풀기 어려울 뿐 딱히 저주가 걸려있거나 한 것 같지는 않았다.


물론 장기적으로 영향을 주는 저주일 수도 있지만 지금 확인할 방도는 없었기에 체념했다.


‘전자발찌 같은데···.’


발목에 걸린 남청색의 무광인 밋밋한 고리. 그 모양새가 꼭 전자발찌 같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었다.


그리고 그때 아조가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내게 사과했다.


“미안···.”

“괜···찮습니다. 이미 벌어진 거 어쩌겠습니까. 일단 여기서 할 일 다 끝났으면 출발하시죠···.”

“······.”


우울한 마음을 억지로 삼킨 채 우리는 다섯 번 째 방으로 향하는 문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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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 크루타 던전(3) +2 24.03.18 91 5 15쪽
21 크루타 던전(2) +1 24.03.15 99 4 18쪽
20 크루타 던전(1) +1 24.03.13 111 7 20쪽
19 던전 도시 +1 24.03.11 113 6 20쪽
18 준비 +1 24.03.08 129 7 18쪽
17 단서 +1 24.03.06 149 7 15쪽
16 퍼리니에 포션 +1 24.03.04 143 6 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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