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금술사도 먹고 살기 힘들다

무료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야녕
작품등록일 :
2024.01.26 13:26
최근연재일 :
2024.09.14 19:57
연재수 :
43 회
조회수 :
4,955
추천수 :
240
글자수 :
316,384

작성
24.07.29 12:39
조회
45
추천
3
글자
16쪽

목적(1)

DUMMY

플라위가 뱉어낸 조각. 그 조각 안 쪽으로 새겨진 주문진을 알아보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스승에게 받은 ‘마법 교육’이 다시 한번 빛을 발하는 순간이었다.


***


늙고 꼬장꼬장한 마법사는 맹랑한 꼬맹이에게 자신의 책 한권을 대충 던졌다.


“외워놓거라.”

“뭔데요.”

“보름 후에 보자.”


말을 마치고선 곧바로 바깥으로 나갔다.


아이는 제게 던져진 책을 집어들었다. 언제까지 외우란 말은 없었지만 그간의 경험으로 보건데 외출에서 돌아올때까지가 기한일 것이다.


“사람 새낀가?”


말이 책 한권이지, 크기하며 두께하며 뭐 하나 정상적이지 않았다.


“좀 곱게 가르치면 안 되나···. 어휴, 내 팔자야.”


늙은 마법사의 교육은 크게 두 가지.


하나는 몸이 고생하는 방법이고 나머지 하나는 머리가 고생하는 방법이다. 전자의 경우는 곁에 딱 붙어서 달달 갈구면서 괴롭혔고 후자는 이번의 경우처럼 책 하나 던져놓고 본인은 장기 출타하는 경우다.


“아냐, 그래도 이게 더 나을지도···.”


다시 생각해보니 교육이라는 이름의 고문을 받는 것보다 혼자 자습(?)하는게 더 좋은 듯도 싶었다.


그런 생각이 들자 아이는 스스로 고개를 끄덕이며 땅으로 꺼진 의욕을 끌어올렸다.


“이번엔 또 뭐가 들어있으려나.”


제목 하나 없는 두꺼운 책.


표지를 넘기니 큰 원과 여러 기하학적인 그림이 가장 크게 그려져있었다. 그림을 중심으로 상단엔 이 그림의 이름이, 하단엔 깨알 같은 글씨로 길고 복잡한 설명이 적혀져있었다.


“어?”


아이는 곧장 책의 페이지를 빠르게 넘겼다.


첫장부터 마지막장까지 엇비슷해보이는 그림과 내용들로 빼곡이 들어차있었다. 그것을 확인한 아이는 자신이 알고 있는 욕이란 욕은 전부 내뱉었다.


“죄다 비슷하게 생겼구만 이걸 어떻게 다 외워!”


하지만 ‘안 한다’라는 선택지는 아이에게 없었기에 책을 들고 바깥으로 나왔다. 그리곤 괜찮은 나뭇가지 하나를 가지고와 책에 그려진 그림을 흙바닥에 그리고 설명을 입으로 읽었다.


“바람, 압축, 불. 세 마법을 기본으로 하되 추가적인 속성을 집어넣어 폭발 반경을 늘리거나 줄일 수 있다···. 해당 마법을 표현하는···. 재료는···.”


노인이 건넨 책은 그가 직접 그리고 적은 주문진 도감이었다. 도감의 첫장은 폭발을 일으키는 주문진이었으며 아이었던 테오가 가장 먼저 외운 주문진이기도 했다.


***


스승에게 받았던 교육 중엔 이른바 ‘도감 교육’이 있었다. 기록하는 것이 취미였던 스승이 만든 것들을 교재 삼아 공부했던 것들인데 그 중에는 ‘주문진 도감’도 있었다.


그 덕분에 어지간한 마법의 주문진을 외울 수 있었고 그걸 이용해 스크롤도 만들 수 있었던거다.


어찌됐든 주문진이라는 것은 어떤 마법을 담고 있느냐에 따라 그 특징이 드러났기 때문에 약간의 훼손이 있더라도 유추하는 것이 어렵지 않았다.


다른점이 있다면, 화염을 동반하며 파괴적인 성질을 지닌 일반 폭발 마법이 아니라 바람과 압축 마법으로만 이뤄진 것 같다는 점이다.


‘이걸 까봐야 되나?’


만약 이 구슬안에 드비자의 체액이든 사체든 뭐든간에 들어있고 주문진이 발동해서 터지면 그 덩어리들이 마을 곳곳에 퍼질테고 악취가 뒤덮을 것이다.


그것만이라면 다행이겠지만 이 냄새는 몬스터를 끌어모은다.


즉, 인위적인 몬스터 웨이브가 발생할 수 있다는 뜻이다.


품 안에 멀쩡한 악취구슬을 매만지며 고민에 빠져있을 때 플라위가 내 뒤를 향해 경계음을 내기 시작했다.


“샤아아아!”

“······.”


뒤를 돌아보니 오늘 아침에 억지로 나를 끌어앉혔던 사칭 사제, 이비사가 기묘한 웃음을 머금은 채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안녕하세요. 여기서 뭐 하고 계신건가요?”


그녀는 가볍게 인사를 던지고, 그보다 더 가벼운 발걸음으로 내게 다가왔다. 내게 가까워질수록 플라위가 내는 경계음이 커져갔다.


플라위는 이빨까지 내보이며 그녀를 위협했다.


‘위험한데···.’


그동안 플라위가 이렇게 위험하다고 의사를 전한 적이 없었다. 더불어 웃고있는 표정과는 다르게 번들거리는 눈은 얼핏 광기까지 보이는 것 같았다.


뭘 원하는 걸까.


그 해답은 쉽게 찾을 수 있었다. 아주 노골적으로 내 손에 들린 구슬 파편을 바라보고 있었으니 말이다.


마른침을 삼키며 일단 그녀의 장단에 맞춰주기로 했다.


“딱히 뭘 하고 있었다기보단 그냥 산책이나 하고 있었습니다. 할게 워낙 없는 동네잖아요.”


이후 나는 플라위의 머리를 쓰다듬으여 억지로 진정시키는 시늉을 했다.


“얘가 왜 이러지. 하하···. 제 친구가 오늘따라 낯을 많이 가리네요.”

“친구? 아~ 애완동물을 자기 가족이라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더랬죠. 뱀을 그렇게 말하는 사람은 처음보지만요.”


이비사가 쿡쿡거리며 웃었다.


“그나저나 지금 들고계신 거, 그건 어디서 찾으신건가요?”


정확하게 구슬 파편을 가리켰다. 뚫어질 듯 쳐다보는 시선도 그렇고 역시 이게 목적이 맞았던 모양이다.


어설픈 거짓말은 상대도 알아차릴 것이다. 지금 내가 취해야할 스텐스는 ‘이게 뭔지 모른다’ 다.


“이 친구가 얼마전에 뭘 주워먹었었는데 그게 오늘 나온 겁니다. 전 그냥 뭔가 싶어서 본거고요.”

“그래요?”


어차피 이비사는 나를 ‘하찮은 마법 재능을 가진 버러지1’ 정도로 볼 것이다. 그녀가 나를 훑었던 만큼 내 마나 그릇이 아주아주 작다는 것을 알 테니 말이다.


만만하게 보였다면 그런 부분을 잘 이용해서 넘어가면 그만이다.


아직 정확히 이비사가 무슨 목적으로 온 것인지 알 수 없지만 결단코 좋은 의도는 없을 것이다. 그리고 내가 그걸 예상했다하더라도 굳이 티낼 필요는 없으니까.


이비사의 소름끼치는 시선이 나의 전신을 훑는다.


“뭔진 모르신다는 거죠?”

“그냥 쓰레기 아닙니까?”


어깨를 들썩이며 모르는 척 연기한다. 하지만 여전히 이비사의 속내는 읽을 수 없었다. 불길함만이 전신을 훑고 지나갔다.


‘조심해서 나쁠 건 없지.’


이비사가 눈치채지 못하게 방호 마법을 슬며시 둘렀다. 그리고 그때 이비사가 내 손목을 거칠게 낚아챘다.


그와 동시에 플라위가 아가리를 잔뜩 벌리고 이비사에게 달려들었다. 하지만 그 독니는 이비사에게 닿지 못했다.


“아, 깜짝이야. 뱀새끼가 건방지게.”

“샤아아아악!”

“플라위!”


어떠한 징조도 없이 플라위는 그대로 허공에 떠올랐고 이내 화염에 둘러쌓였다.


툭 하는 소리와 함께 까맣게 탄 플라위가 바닥에 힘없이 떨어졌다.


“플라위! 플라위!”


플라위가 눈 앞에서 산채로 태워지는 모습에 이비사에게 붙잡힌 손목을 뿌리치려했지만 아귀 힘이 얼마나 강한지 내 힘으로는 벗어날 수가 없었다.


그런 내 모습이 퍽 우스웠던 모양인지 이비사는 웃음을 억지로 참으며 말했다.


“오~ 애들이나 쓰는 보호 마법이네? .”


그녀는 가볍게 내 손목을 비틀고 지금까지 보인적 없는 표정으로 나를 훑었다.


“좀 마르긴 했지만 그래도 내 취향이긴 했는데 이렇게 돼서 아쉽네.”

“그게 무슨!”

“이런 변수를 별로 안 좋아하는 분이 계셔서 말이야. 오, 그래도 마법사라고 방호 마법을 둘렀네? 근데 어쩌나, 고작 이걸론 못막을텐데.”

“무슨···. 윽!”


이비사의 말이 끝남과 동시에 손목에서 강렬한 통증이 올라왔다. 마치 지렁이 수백 마리가 한꺼번에 온 몸을 기어다니며 살을 파먹는 것 같은 느낌


피가 쏟아져나온다. 눈과 귀, 코를 통해서도 거뭇한 피가 흘러나왔다.


이윽고 소름끼치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징그러운 네 친구는 몰라도 너는 제법 내 취향이니까, 그대로 박제해서 내 컬렉션에 넣어줄게. 어떄. 완전 영광이지?”

“······.”


말 없이 이비사를 노려봤다. 신음을 참는 것이 고작인 고통이었기에 말을 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그런 내 눈빛마저 마음에 들었던 모양인지 이비사는 아주 즐겁다는 듯이 말했다.


“너 곧 죽을거야. 팡-! 하고 터져서. 그러니까 조금 더 벌레처럼 바르작 거려봐, 그럼 또 그게 웃겨서 살려줄 수도 있잖아. 재미없게 노려만 보지 말라고?”


빌어먹게도 그 말이 맞았다.


그녀가 내게 한 짓은 마나 폭주.


마나 폭주는 자신이 가진 마나 그릇의 몇 곱절이나 되는 마나가 체내로 들어오게 됐을 때 발생하는 현상이다.


물이 가득 담긴 물풍선이 한계치를 넘겨버리면 결국 터져버리는 것처럼 말이다.


마나 폭주는 확정적으로 마법사에게 사망 혹은 그에 버금가는 부작용을 가져오지만 그런 일이 흔하게 일어나지 않는다.


그 이유는 대부분은 당사자의 마나 그릇보다 얼마나 더 퍼 부어야 마나 폭주가 일어나는지 모르기 때문이다.


몇 곱절이라고 한 이유도 누구는 자신의 그릇의 2배만 넘어도 마나 폭주가 일어나고. 또 다른 누구는 10배가 넘어도 마나 폭주가 일어나지 않는다.


이렇듯 개인차가 워낙 크기도 한데다 대상이 지닌 마나 그릇이 얼마나 크냐에 따라 들어가는 마나가 많아 되려 마나 폭주를 일으키려던 사람이 마나 부족에 나가 떨어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너무 멍청했어.’


이미 나는 이비사로부터 마나 감찰을 당했다. 워낙 작은 그릇이었기에 이비사가 이를 노리고 마나 폭주를 일으킨 것이다.


후회해봤자 어차피 늦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내가 마나 폭주가 제법 익숙하단 점이다.


‘이딴 수련 왜 하나 했는데, 더럽게 고맙네요.’


스승은 나의 밤톨만한 내 마나 그릇에 탄식하면서 대비해야한다며 말도 안되는 짓을 시켰다. 당시엔 학대라고 생각했는데 지금 생각해보니 다 필요해서 한 짓이 맞았다.


‘아아악! 나 죽어! 아아악!’

‘아직 죽을 정도는 아니다, 호들갑은. 네놈은 가진 재능이 너무 하찮아서 타겟 되면 금방 터져 죽는다. 다 필요한 일이다.’

‘아악! 무슨 할 짓 없는 마법사가 나 같은 반푼일 건드린다고 그래애액! 솔직히 말해, 내가 영감탱 빵에 민트 시럽 뿌려서 줘서 이러는거잖아아악!’

‘허허···. 뿌렸느냐? 네놈은 안되겠구나.’

‘살, 살려줘어!’


그렇게 얻어낸 학대의 경험들로 얻어낸 것 중엔 당연히 마나 폭주를 해결하는 방법도 있었다.


문제는 여길 어떻게 빠져나가느냐다.


그때 이비사 뒤쪽에 새까맣게 변해버린 플라위와 눈이 마주쳤다. 이쁜 비늘들이 새까맣게 변하긴 했지만 그 비늘들 덕분에 다행히 생명엔 지장이 없었던 모양이다.


“어딜 봐?”


이비사가 플라위에게 시선을 돌리기 전에 급히 말을 걸었다.


“이봐.”

“이제 대답할 마음이 생겼어?”


나는 싱긋 웃었다.


“좆까.”


치켜 올린 중지와 함께 플라위에게 신호를 줬다.


그때 플라위가 본래의 거대한 모습으로 돌아가며 이비사에게 달려들었다.


“더 커지면 맞추기 더 쉽잖아, 바보같기는!”


화염으로 만들어진 화살들이 플라위에게 직격했다. 새까만 비늘들에 다시 한번 불길이 치솟았다.


플라위의 거대한 아가리가 벌어졌다. 자신을 향해 다가오는 거대한 뱀의 아가리에 다시 한번 화염 공격을 퍼부으려했으나 플라위의 목적은 처음부터 이비사가 아니였다.


나는 고통 속에서 정신을 짜내 플라위에게 신속과 경량화 마법을 걸어주었다.


이후 플라위는 몸을 빠르게 틀어 나를 꿀꺽 삼키곤 숲 안 쪽으로 도주했다.


***


이비사는 도주하는 플라위를 굳이 쫓아가지 않았다.


“아, 제법 맘에든 얼굴이었는데···. 딴짓하기전에 뇌부터 주무를 걸 그랬어.”


이비사는 진심으로 아쉬워했다. 그녀는 테오가 마나 폭주로 신체가 폭발하기 직전이라면 고통에 정신을 이미 잃었을 테니 그때 제 마나를 수거하고 깨끗하게 죽여서 박제시킬 계획이었기 때문이다.


“아쉽지만 어쩔 수 없지. 그럼 이제 어떻게 해야한담?”


제 주인을 잡아먹은 괴물 뱀은 죽든 살든 그녀의 관심이 아니었다.


문제는 타겟의 시체, 혹은 사망을 확인할 증거였다.


그녀의 윗분들은 이런 변수를 아주 싫어했기 때문이다.


이런 경우 뱀의 배를 가르던, 길바닥에 터져죽은 신원미상의 인간 조각을 찾아내야 그분들이 만족할 것이다.


“뭐, 굳이 내가 할 이유는 없지. 나는 신실하고 무해한 사제님이시니까.”


이비사는 지금 자신의 신분을 상기시켰다.


공격 수단 하나 없는 친절하고 상냥한 사제. 그런 사제가 몬스터나 다름없는 거대한 뱀은 혼자 잡을 수는 없을 거다.


거기에 더불어 그 뱀이 제 주인을 잡아먹었노라며 사람들 앞에서 눈물 흘리며 선동하면 알아서 일이 진행될 것이다.


사람을 잡아먹었다는 몬스터가 제 주변에 있는 것이 아주 찜찜한 일일 테니 다들 아주 열심히해줄거다.


“일이 좀 번거롭게 되긴 했지만, 그렇게 허접한 몸으로 살아남긴 힘들 테니.”


이비사는 발걸음을 돌려 마을로 내려갔다.


까악- 까악-


이비사는 마을 위로 날아다니는 불길한 까마귀 소리가 이 마을에 닥칠 미래를 암시하는 것 같아 퍽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다.


***

플라위에게 걸었던 신속과 경량화 마법의 유지가 풀리자 플라위는 조심스레 나를 뱉어냈다.


아무리 플라위가 거대한 뱀이라고 해도 성인 남자를 삼키고 빠르게 이동할 수는 없다.


“으윽.”

“쉬이익···.”

“ㄱ..괜···우욱··· 괜찮아.”


에메랄드와 루비를 갈아넣은 것처럼 반짝이던 비늘이 광을 잃은 채 새까맣게 변해버렸다. 무리하게 나를 삼켰던 것인지 주둥이는 찢어지고 온 몸에 비죽비죽 피가 흘러나와 굳은 흔적이 역력했다.


쿨럭.


그 여자가 얼마나 마나를 밀어넣었는지 남은 시간이 얼마 없다는 것이 느껴졌다.


힘이 들어가지 않는 몸을 이끌고 플라위에게 다가갔다. 플라위는 자기 다친 것은 생각도 안하는 것인지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날 바라봤다.


나의 작은 뱀, 플라위의 머리를 몸을 쓰다듬으며 나오지 않는 목소리를 쥐어자냈다.


“괜, 괜찮아. 금방 낫게 해줄게···. 조금만 기다려줄래?”


플라위가 긍정의 의미로 고개를 끄덕였다.


“후···.”


마나 폭주를 해결해야할 시간이다.


이를 해결하는 방법은 지금 내 몸을 망아지마냥 날뛰는 마나를 바깥으로 내보내는 것. 말은 쉬워보이지만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니었다.


자신의 마나가 아닌 타인의 마나는 다루기가 몹시 어려웠기 때문이다.


마구잡이로 날뛰는 타인의 마나를 상황에 맞춰 잘 달래가면서 알맞은 길로 인도해야만 하는데 이번처럼 누군가를 해치겠다는 의지가 들어간 경우에는 난도가 더 올라간다.


하지만 어렵고 지난할지언정 불가능할것같단 생각은 들지 않았다.


이런 훈련을 할 때 스승이 항상 덧붙이던 말이 있었다. 악의를 가진 마나를 걷어내는 것은 몹시 어려운 일이지만 불가능한 것은 아니라고. 그러나 한번의 실수는 죽음으로 이어질 테니 정신 똑바로 차리라고 말이다.


스승이 일으킨 마나 폭주는 훈련의 일환이었고 정말로 위험하다 싶으면 스스로 거둬줬지만, 말 그대로 죽기 직전이 돼서만 도와줬다.


천천히 눈을 감고 내부를 관조한다.


무단침입한 빌어먹을 마나들을 내쫓을 시간이다.


***


달도 뜨지 않은, 지독히도 어두운 밤이다.


새까맣게 타버린 뱀은 가부좌를 튼 인간을 보호하듯 똬리를 틀었다. 뱀에게 있어서 가장 힘들고 아픈 날이었지만 잠들지 않고 인간을 지키며 주변 환경을 살폈다.


혀를 날름거리며 주변의 정보를 읽는다.


눅눅한 흙, 맛없는 버섯, 부패중인 나무 냄새가 들어온다. 이윽고 뜨거운 열기에 새까맣게 변해버린 비늘의 매케한 냄새와 소중한 인간의 숨, 그리고 비릿한 피 냄새까지.


‘짜증나.“


친구를 지켜줘야하는데 그러질 못했다.

뜨거운 열기에 녹아버린 비늘과 처음 겪어보는 작열통에 겁이나 친구를 삼켜 도망가는 것이 전부였다.


제 자랑거리라 여기던 비늘도, 못죽일 것이 없다 생각했던 독니도.


그 어떤 것도 도움이 되지 못했다. 고작 암컷 인간에 불과한 존재의 목덜미를 꿰뚫지 못했다. 고개를 올려 하늘을 바라본다.


달도 뜨지 않은 어두운 밤이다.


새까맣게 변해버린 비늘은 어둠에 묻힌다.


“!”


처음 맡아보는 냄새지만 이상하게도 낯익은 냄새 하나가 포착됐다.


까악-까악.


검게 변해버린 뱀 앞에 잿빛 깃털을 가진 까마귀 한 마리가 내려앉았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연금술사도 먹고 살기 힘들다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공지 자유 연재 공지 +1 24.07.29 28 0 -
공지 휴재공지 24.04.10 56 0 -
43 호랑이 굴(3) 24.09.14 15 0 16쪽
42 호랑이 굴(2) 24.09.13 16 0 15쪽
41 호랑이 굴(1) +1 24.08.23 25 1 14쪽
40 연금술사만의 방법(2) 24.08.15 31 1 14쪽
39 연금술사만의 방법(1) 24.08.14 28 1 16쪽
38 일촉즉발(3) 24.08.13 28 1 16쪽
37 일촉즉발(2) 24.08.07 33 1 14쪽
36 일촉즉발(1) 24.08.01 40 1 16쪽
35 목적(3) 24.07.30 44 1 14쪽
34 목적(2) 24.07.29 45 2 14쪽
» 목적(1) 24.07.29 46 3 16쪽
32 께름칙한 의도 +1 24.04.10 63 4 16쪽
31 의문의 악취 24.04.08 67 3 16쪽
30 전자발찌 24.04.05 72 4 16쪽
29 돌아가는 길도 쉽지 않다 24.04.03 74 6 17쪽
28 크루타 던전(9) 24.04.01 79 5 17쪽
27 크루타 던전(8) +1 24.03.29 72 5 15쪽
26 크루타 던전(7) +1 24.03.27 83 5 16쪽
25 크루타 던전(6) +1 24.03.25 88 7 20쪽
24 크루타 던전(5) +1 24.03.22 87 5 15쪽
23 크루타 던전(4) +1 24.03.20 89 6 15쪽
22 크루타 던전(3) +2 24.03.18 92 5 15쪽
21 크루타 던전(2) +1 24.03.15 100 4 18쪽
20 크루타 던전(1) +1 24.03.13 112 7 20쪽
19 던전 도시 +1 24.03.11 114 6 20쪽
18 준비 +1 24.03.08 130 7 18쪽
17 단서 +1 24.03.06 150 7 15쪽
16 퍼리니에 포션 +1 24.03.04 144 6 14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