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여제의 아들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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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경오리
작품등록일 :
2024.06.09 15: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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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9.18 0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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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수정)전쟁과 평화의 레가토(1)

DUMMY

"골리친 사령관도 참 게으른 군인이오. 이리 잘 할 수 있으면서 그동안 뜸을 들였다니."


여름을 맞아 옮겨간 여름궁전의 회의실에서 예카테리나 2세는 운을 뗐다.


골리친 총사령관의 보고서에 따르면 3군 사령관 올리츠와의 합동 공세로 오스만 제국군은 도합 육천 가까운 사상자를 기록한 반면, 러시아군의 사상자는 칠 백 남짓한 수준이었다.

이어진 몰도반치 알리 파샤(Moldovanci Ali Pasha)의 4만 병력에 맞서 그의 진격을 막아내는데 성공하기도 했지만, 이주가 더 지나서야 보고서를 수령한 예카테리나로선 알 길이 없었다.


"진즉에 포돌리아로 빼는 대신 오스만 제국 영내로 파고들었다면 야시까지 이미 진격하고도 남았을까 싶은데. 어찌 생각들 하오?"


언짢은 건지 아쉬운 건지 모를 황제의 표정에 하나의 탁자에 둘러앉은 위원들은 저마다 난처한 웃음을 지으며 대답을 피했다.

황제의 급한 마음이야 이해 못할 것은 아니나 굳이 승리를 거둔 이때 초칠 소리를 할 필요는 없는 것이다.


"전쟁은 회피할 수 없는 것이지요. 유리한 상황이 왔을 때 밀어붙이는 것도 명장의 면모이니 총사령관을 임명하신 폐하의 안목을 드러낼 겸 치하하심이 옳지 않겠습니까."


먼저 입을 뗀 건 최고 법원 평의회 부의장 알렉산드르 미하일로비치 골리친 공작.

오스만 제국과의 전쟁이 발발한 후 예카테리나가 창설한 자문회에 일찌감치 귀속했던 그였다.

하지만 이름과 부칭마저 똑같은 사촌형 골리친 총사령관의 느린 공세로 황제의 분노에 시달리던 차에 들려온 승전소식은 그의 차분한 얼굴에 잡힌 주름 하나까지 펴지게 했다.


"이제야 말씀을 해주시는군요. 알렉산드르 미하일로비치 부의장, 하도 입을 열지 않으시니 치통이라도 앓고 계신 줄 알았습니다."


"허허, 제국에 기쁜 소식이 찾아들었는데 춤은 못 출 망정 조개처럼 입을 막고 있을 수야 있겠소. 백작은 이리 차분한 걸 보면 그리 기쁘지 않은가 보오?"


"아무렴 그런 무도한 일을 범할까요."


평의회와 추밀원 의원으로 총리직을 대행하는 외무성의 수장 니키타 이바노비치 파닌 백작이 골리친 공작의 말을 넉살좋게 받아치는 사이 예카테리나가 한숨을 쉬었다.


"허나 아쉬움이 남소. 기왕 점령한 요새니 보수하여 적군을 막을 방도로 쓸 순 없었겠는가?"


보고서 말미에 적힌 총사령관의 다음 행보는 호틴 요새를 철저히 파괴한 후 포돌리아로 물러나 병력을 재정비 후 야시를 점령하여 적의 병력보충을 방해하는 것.

길어질지 모를 전쟁을 위한다면 필요한 준비일 것이나, 예카테리나는 못내 입맛을 다셨다.


동방의 고사에 빗댄다면 호틴이 계륵 같은 위치다. 철도가 없는 한 원활한 통치를 위해선 주변부까지 삼켜야할 제국은 타국의 견제와 본래 거주하던 오스만 제국민의 반발을 신경써야하는 처지가 된다.

허나 고스란히 내주자니 언제든 적의 칼끝이 그들의 주요 도시 중 하나인 키예프가 위협받지 않는가.


"하오나 폐하, 수성하여 제국군이 얻을 이득은 다른 전선에 물자와 병력을 돌려 얻을 이득을 상회하지 못합니다."


군무를 총괄하는 자카리 그리고리예비치 체르니셰프 전쟁 장관은 군인답게 딱딱하나 차분한 어조로 말을 이었다.

프로이센군을 도우려했다는 오명에도 신뢰하며 중책을 맡긴 예카테리나가 옳은 길을 택하길 돕는 것이 표트르 3세를 섬긴 그의 의무였다.


"또한 크림 칸국 내에서 내분이 벌어진 이상 제국의 동쪽을 어지럽히던 타타르의 발이 묶인 셈입니다. 허면 폴타바와 바흐무트 전선에서 공세를 펼치기 족한 상황이겠지요."


유목민족을 상대하는 국가의 약점, 대 기병전력의 부재를 체르니셰프는 잘 알았다.

제 아무리 제국의 자랑 카자크가 용맹하다 한들 숫자의 약세를 무시할 정도는 아니며, 오스만보다 러시아의 기병전력이 떨어지는 건 부정할 수 없는 일이었다.

헌데 크림반도를 평정하도록 주님께서 주신 기회를 어찌 놓칠 수 있겠는가.


"그대의 말이 옳구려. 허면 총사령관이 올린 계획이 완수되는대로 그를 이곳으로 불러들이리다. 지휘권은 루먄체프 사령관에게 이양하며 2군 사령관에 표트르 이바노비치 파닌 백작을 임명하겠소."


"명을 받들겠습니다."


차리차롭스크 총독직에서 물러나 총사령관에 평의회 위원으로 영전한 표트르 파닌 백작은 기쁘게 고개를 끄덕였다.


"명령대로 전령에게 하달하겠습니다."


골리친의 초토화 작전에 공감하면서도 그동안의 손해와 병력을 물린다는, 적들의 승리인양 보여지는 것이 언짢은 예카테리나였지만, 고개를 숙인 표트르 파닌과 체르니셰프의 말에 마음을 달랬다.


"하오시면 다음 안건입니다. 군무를 모르는 신이 첨언하기 껄끄러운 사안입니다만, 외교와 연관되어있어 체르니셰프 장관이 동석한 이 자리에서 보고드리고자 합니다."


전선 문제가 얼추 해결되었다고 본 외무성 장관 니키타 파닌 백작은 준비한 서류를 황제에게 먼저 바치며 주위에도 나누도록 시종들에게 지시했다.


"이틀 전 도착한 보고서에 따르면 알렉세이 그리고리예비치 오를로프 소장과 그리스 반군의 주요인사들과 협상이 마무리되었다고 합니다. 저들이 가산을 털어 병력과 보급품을 약속하는 대신, 제국의 병력과 군수물자를 요청해왔습니다."


"모레아로 나간 표도르 그리고리예비치 소장은 어찌 됐소?"


"그 또한 조정이 막바지에 접어든 듯합니다."


"하오나 폐하, 우리가 아직 흑해로 나아갈 수 없는 지금으로선 미니 군도와 모레아에서 끌어모을 수 있는 병력은 얼마 되지 않을 것입니다."


체르니셰프 전쟁장관의 지적은 타당했다. 차리차롭스크(칼리닌그라드)를 제국의 영토에 포함한 이후로 발트 함대 건설에 온힘을 기울여왔지만, 그렇게 길러낸 전력을 오를로프 형제의 군도 탐험에 동원해버렸다.

남은 건 진수도 못한 전열함 한 척에 프리깃 몇 척이 전부인 지금의 러시아에는 그리스 반군을 지원할 여력이 없었다.


"맞습니다. 허나 황태자 전하께서 진언하고, 폐하께서 명하신 바처럼 반군을 실어나를 뿐인 목적이라면 굳이 전함일 필요는 없는 법이지 않겠습니까."


"그렇다면 혹?"


"그래요. 자카리 그리고리예비치. 파벨이 그레이트브리튼 왕국에서 별도로 구입한 상선이 이미 그리스 반도로 출항한 상태랍니다."


파벨 대공에게 미리 언질을 들은 파닌의 느긋한 목소리에 이어 예카테리나 2세는 체르니셰프의 의문을 차분한 얼굴로 풀어주었다.


"그들은 어디까지나 자국 내에서 사용할 사탕수수 설탕과 면직물을 사고팔기 위한 목적으로 오스만 영내에 방문하는 연합왕국의 배라오. 그곳에 잠시 하선한 제국군이 몰래 승선하여 상인들을 위협하고 뱃머리를 그리스로 돌리게 했다니 몹시 애석한 일이지."


상선의 최종 주인은 파벨 황태자의 런던 대리인이나 내걸린 깃발은 배를 구입한 연합왕국의 조지 앤 앤드류 기.

눈 가리고 아웅하는 수준이라도 오스만 제국군의 눈을 속일 수만 있다면, 아무래도 좋은 일. 기왕이면 오스만 군의 손에 함선이 침몰하면 더할나위 없이 금상첨화다.


물론 상상 이상의 손해를 입는다면 얼마전 과로로 쓰러졌다 깨어난 파벨을 두번 졸도케할 것이나, 그정도는 황태자로서 감내할 일이라고 예카테리나는 흘려넘겼다.


"그들의 상선이 오스만의 화포에 쓰러질 때, 우리는 선량한 그리스도인의 핏값을 연합왕국과 함께 받아내게 될 것이오."


그녀가 귀담아들은 건 서쪽에 외떨어진 섬나라와 친하게 지내야한다는 조언뿐이었으므로.


***


가마솥 뚜껑처럼 만든 무쇠 팬에서 보글보글 끓고 있는 기름을 보며 투하각을 잡고 있는데 갑자기 귀가 간지러웠다.

뒷담하는 종자가 과연 누굴까. 이바노프인가? 아니면 플라토프 위원? 차라리 앞담을 하지, 콧대가 낮아지게 서류를 쌓아줄 텐데.


"내가 욕 먹을 이유가 없다고. 할 일은 다 하고 왔으니 나도 좀 쉬어야지."


"혼자만 쉬시니 욕을 드시는 게 아니겠습니까."


등 뒤에서 기척도 없이 들려온 목소리에 화들짝 놀라 돌아보니 안드레이가 게슴츠레한 얼굴로 보고 있었다. 언제 온 거야. 시종 말고 닌자를 해도 될 법한 은신술인데?


"안드레이, 산 사람이 기척 좀 내고 살아야지. 그리고 서류더미를 헤치는 건 누구나 할 수 있지만 이건 나밖에 할 수 없는 중대한 일이야."


"기름 앞에 서 계시는 게 중대한 일이옵니까?"


"당연하지. 잘하면 새로운 돈벌이가 되어줄 수도 있다."


차마 은행 설립 문제로 머리가 터질 것 같아 도망쳤다고 순순히 인정할 순 없는 노릇.

여전히 미심쩍은 눈으로 보는 안드레이 옆을 지나쳐 나는 미리 채썰어 물에 담가뒀다 빼둔 감자 접시를 집어들었다. 소금과 후추로 미리 간도 해뒀지.


누가 먹어도 맛없던 감자개량에 착수한 지 어언 1년 째.

정밀한 DNA클로닝 기술이 부재한 이 시대에 내가 할 수 있는 품종개량은 틈나는 대로 씨감자의 눈을 떼어 심어보는 것이었다. 마침 재배할 땅도 예카테리나에게 가치나를 받아 얻은 상태였고.


팔팔 끓는 기름에 채썬 감자를 조심스레 쏟아넣었다. 기름이 감자 표면에 달라붙으며 튀겨지는 기분 좋은 소리와 함께 살짝 덮힌 뚜껑 사이로 익숙한 감자튀김 냄새가 온 실험실 주방 내로 퍼져나갔다.


이어지는 여러 시도에서 한 번에 성공을 거두는 기적은 일어나주지 않았다.

키릴 라주모프스키 백작의 소개로 만난 테플로프 씨와 함께 하고 있지만, 여전히 성과는 지지부진했다.


막대한 생산량을 보장하는 감자답게 씨감자로 쓰기 좋은 감자를 선별하는데 인건비가 들어가고, 남은 상품성 괜찮은 것을 처리하는데도 머릿속에 있는 온갖 요리법을 총동원해야했다.

무엇보다 짜증났던 건 내가 원하는 끈적이지 않는 감자는 안나오고 끈적이는 예전 감자 식감만 난단 거였다. 그래도 맛이 눈꼽만큼씩이나마 나아지고 있으니까.


"전하. 냄새가 좋습니다. 어떤 음식입니까?"


코를 벌름거리며 안드레이가 내 옆까지 다가와 타닥거리는 그림을 홀린 듯 바라보았다. 그렇지. 기름의 유혹을 견뎌낼 사람은 없다고.


"짬 처리가 아니라 아직은 맛 없는 감자를 소모해볼 방법을 찾다가 발견한 조합이라 이름은 없고, 맛이 꽤 괜찮아서 해보는 중이지."


무쇠로 만든 젓가락을 헝겊을 덧대 잡고 표면 깊숙히 휘휘 젓는 사이 마치 가벼운 물체가 젓가락의 방향에 따라 툭툭 부딪치는 느낌이 생겨났다.

나무로 표면까지 매끈하게 깎은 체반에 조금씩 건져 식히면서 슬그머니 다가온 안드레이의 손등을 세게 후려쳤다.


"조금 더 개량해서 괜찮은 씨감자를 보급하면 밀농사가 망할 때에도 먹을 수 있는 방편이 생기겠지. 감자빵이라던가 그런 거로 만들면 되지 않겠나."


"아픕니다. 그리고 밀빵을 더 찾게 될지도 모르지 않습니까."


"허면 귀족들만 먹을 수 있는 거라 공표해주면 그만이지 않겠나."


어떤 것을 금지할 수록 오히려 확장되게 만드는 심리학 용어가 있다던데, 스트라이샌드인지 샌더인지 하는 거. 아무튼 정보에 관한 심리라도 음식에 쓰이지 말란 법은 없다.


"그런고로 안드레이, 너도 분발해야지."


"저는 밀빵이 더 좋습니다, 전하아."


"그래, 이걸 먹고도 그럴 수 있나 보자."


적당히 식었다 싶어 소금과 볶은 양파가루를 뿌린 프렌치 프라이 두 조각을 집어 벌어진 안드레이의 입에 던져넣었다.

뜨겁다고 난리를 치던 안드레이의 입이 한참을 오물거리더니 꿀꺽 삼키기 무섭게 입술을 혀로 쓸었다.


"전하, 조금만 더 주실 수 없으십니까? 입 안에서 자꾸 맛이 맴돕니다."


손을 비비며 감자튀김 접시에 눈을 못떼던 안드레이에게 감자튀김 절반을 담아주며 나는 체반을 팬에 탕탕 쳐서 기름을 털어냈다.

역시 프렌치 프라이는 만국공통이다.


"여기 계셨습니까, 전하!"


"도망치셔봐야 결국 막다른 골목입니다!"


산더미만큼 쌓여있는 조금은 예뻐진 감자를 처리할 기회인 시식회가 기다려졌다.

그 전에 상무위원회 위원들의 손에서 벗어날 기회부터 찾아야겠지만.


작가의말

오늘도 제 글을 봐주시는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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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 전쟁의 전방과 후방(3) +2 24.09.11 372 16 11쪽
25 전쟁의 전방과 후방(2) +3 24.09.08 420 16 15쪽
24 전쟁의 전방과 후방(1) +4 24.09.07 441 14 12쪽
23 돈은 내가 벌고, 남이 쓴다(4)(수정) +5 24.09.04 432 22 14쪽
22 돈은 내가 벌고, 남이 쓴다(3) +6 24.09.02 467 20 15쪽
21 돈은 내가 벌고, 남이 쓴다(2) +4 24.09.01 495 23 17쪽
20 돈은 내가 벌고, 남이 쓴다(1)(일부내용수정) +3 24.08.30 534 18 15쪽
19 대관식과 폭풍 전야 +5 24.08.29 569 21 20쪽
18 정치란 전쟁의 연장선이다 (5)(수정) +3 24.08.29 494 18 13쪽
17 정치란 전쟁의 연장선이다 (4) +5 24.08.28 502 17 14쪽
16 정치란 전쟁의 연장선이다 (3) +3 24.08.26 510 14 14쪽
15 정치란 전쟁의 연장선이다 (2) +2 24.08.25 582 14 20쪽
14 (제목수정) 정치란 전쟁의 연장선이다 (1) +2 24.08.24 642 22 20쪽
13 왕좌를 비워라(3) +9 24.08.22 644 24 16쪽
12 왕좌를 비워라(2) +4 24.08.22 595 20 19쪽
11 왕좌를 비워라(1) +5 24.08.20 660 23 17쪽
10 세 황제의 해(7) +2 24.08.19 596 22 13쪽
9 세 황제의 해(6) +5 24.08.18 644 25 26쪽
8 세 황제의 해(5) +3 24.08.17 681 24 15쪽
7 세 황제의 해(4) +4 24.08.12 730 19 14쪽
6 세 황제의 해(3) +3 24.08.04 819 27 12쪽
5 세 황제의 해(2) +4 24.06.22 906 22 16쪽
4 세 황제의 해(1) +3 24.06.16 922 26 16쪽
3 1761년 겨울(2) +2 24.06.11 961 22 10쪽
2 1761년 겨울(1) +3 24.06.09 1,142 25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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