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여제의 아들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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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경오리
작품등록일 :
2024.06.09 15:32
최근연재일 :
2024.09.18 0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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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6.16 21: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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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쪽

세 황제의 해(1)

DUMMY

시간을 한 삼십 분쯤 되돌려보자면 상황은 이러했다.


예배시간이 길기로 악명 높다던 것과 달리 몸이 좋지 않은 황제를 위해 정교회 사제는 예상보다 빨리 예배를 끝냈다. 얼굴색이 시시각각 파래지는 황제를 맨 앞에서 보는데 안 그럼 지가 사람인가.


그렇게 황제는 침실로 돌아가느라 내가 어쩌든 신경쓰지 않았고, 부모님들은 차기 권력에 알랑거리는 이들에게 둘러싸여 피차 무신경했다.


자유시간이 생겼다면, 하고 싶었던 걸 하는 게 아이다운 법.


‘이것마저 없었으면 진짜 불 질렀다.’


착한 시종 안드레이에게 부탁해서 들고 온 책을 펼치자 퇴근길에 맥주캔을 사갈 때처럼 마음이 편안했다. 화로를 발치에 갖다놓자 추위도 제법 버틸만해졌고.


‘그래, 이게 바로 노는 거지.’


포로신의 추천에 들여온 요한 글라우버의 독일의 번영, 1600년대 후반에 활동한 질산 합성법의 개발자가 쓴 책을 보면서 한참을 낄낄거렸다.


머릿속에 쑤셔넣기는 잘했지만, 내 본질은 공돌이였다. 경영학이니 재무니 하는 것보단 허리춤에 스패너를 차고 기계나 주물럭대는 게 더 적성에 맞았다.


제왕학이니 외교니 열심히 가르치는 파닌 선생님께는 미안하지만, 포로신의 자연과학 수업이 다 아는 내용인데도 더 재밌었으니 말이다.


황산소듐, 염화안티모니, 염화비소, 익숙한 단어에서 풍겨오는 그리운 느낌에 애처럼 눈물도 찔끔 났다. 화학식을 그리며 노느라 머리맡에 그림자가 드리워질 때까지 정신이 팔려있었다.


‘너무 팔려있었지.’


조금 전까지 즐거웠던 시간에서 강제로 끌어올려진 현실에 나는 속으로 한숨을 삼켰다. 귀부인에 대한 예의로 손수건을 꺼내 익숙하게 벤치에 펼쳐놓곤 자리를 권했다.

그걸 본 예카테리나의 눈이 잠시 크게 뜨였지만, 아무 말 없이 그 위에 앉아 나를 보았다.


“말에서 떨어졌다고 들었는데 가보지 못해서 미안해요.”


몸은 괜찮냐는 말이 으레 따라붙을 법도 한데. 보이지 않는 금지선을 혀에 그려놓기라도 한 것처럼 예카테리나는 딱 거기까지만 말했다.


“팔을 살짝 긁힌 것뿐이고 다 나았어요. 걱정을 끼쳐드렸다면 죄송해요.”


눈치를 엄청 본다더니 진짜인 듯했다. 많은 정보가 머릿속에 있지만, 어떻게 추려내야할지 고민하던 나 대신 예카테리나가 선수를 쳤다.


“이 책을 읽고 있었나요?”


“그렇습니다.”


서둘러 일어나느라 벤치에 놔둔 ‘독일의 번영’을 집어든 예카테리나는 내 대답에 책장을 몇 번 넘겨보였다. 그린 듯이 담담한 두 눈에 아주 조금 놀란 기색을 띠었다.


“파닌 백작의 수업용 책인 줄 알았는데, 자연과학 책이었군요. 대공이 읽기에 아직 어려운 책 같아보이는데 다 읽으셨나요?”


“......막 읽기 시작해서 조금밖에....”


사실은 다 아는 내용인데, 옛날 생각 하느라 다 못봤다는 말은 할 수 없었다. 하지만 그정도 설명으로도 충분했는지 예카테리나는 도로 맨 앞장을 펼쳤다.


“이쪽으론 견식한 바가 적지만 재밌어보여요. 혹시 설명해줄 수 있나요?”


“예?”


화롯불마저 술렁이게 하는 찬바람에도 마치 사람이 바뀐 듯이 예카테리나의 눈빛에 생기가 돌았다. 박식하고 총명한데다 볼테르니 몽테스키외니 하는 작가들의 책을 즐긴다는, 귀부인들의 조언을 떠올리게 하는 그런 얼굴이었다.


거절할 말이 궁했다. 그럴 상황도 아니었기에 나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저라도 괜찮으시다면.”


나는 앉기 전 화로를 조금 더 가까이 끌어당기곤 앉았다. 예카테리나가 입은 드레스가 워낙 커서 적당한 크기였던 벤치에 내 몸을 구겨넣다시피했다.


하지만 글줄을 손끝으로 함께 따라가면서 설명하는 순간이, 들어주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에 옛 생각도 나서 나쁘지 않았다.


***


나한테는 처음이고 파벨에겐 몇 달 만의 해후였던 그날의 바로 다음 날 예카테리나는 선물을 보내왔다.


‘이 동네는 성의표시 없이는 굴러가지 않는 건가.’


그나마 이번엔 책이란 점이 아쉬운지 기꺼운지 나 자신도 잘 모르겠다. 선물받은 사람의 예의로 직접 꾸러미를 풀자 책 세 권이 나왔다. 전부 새로 제본했는지 표지가 반질반질했다.


‘예카테리나 그 사람, 자기 아들 나이도 까먹은 건 아니겠지?’


뒤집혀있던 책을 바로 들자 프랑스어로 멋들어지게 쓰인 책제목에 나는 아연실색했다.

사실, 누가 봐도 나랑 똑같은 반응일 것을 확신할 수 있다.


그 이름도 찬란한 책 목록은 순서대로 법의 정신, 캉디드, 철학사전이 되겠다. 물론 훌륭한 책이고, 저자들 역시 볼테르, 몽테스키외로 휘황찬란하기 그지없다. 그런데.


‘ 난 아직 일곱 살이라고.’


제 아무리 명서라도 일곱 살 남자아이에겐 베개로 쓰기 딱 좋은 두께인 것이다. 아님 칼싸움할 때 방패로 쓰기라도 할까?


칼싸움 따윈 하지 않는 30세 지성인인 나로선 예카테리나의 머릿속을 이해할 수 없었다. 내가, 아니 자기 아들이 무슨 천재인 줄 아는 건가?


‘설마 나 때문은 아닐 거고.’


그날 만났을 때 함께 읽은 책 말곤 별말을 하지 않았다. 그냥 이 시대 사람들이 할 법한 얘길 머리 굴려 했을 뿐이다. 그래봐야 백여년 전쯤 살았던 뉴턴의 만유인력이나 프린키피아라든지 라이프니츠의 미적분학 같은 정도만 얘기했을 뿐이고.


‘다들 그러고 놀지 않아? 나 때는 그랬다고!’


아무리 굴려도 답이 나오지 않는 머리를 박박 긁다 손을 멈칫했다. 덜덜 떨며 빼낸 손에 엉킨 한웅큼 빠진 머리카락에 삼십대 탈모인의 심장이 덜컥 내려앉을 뻔하다 돌아왔다.


“...침착하자, 침착해.”


그래, 정작 예카테리나는 별생각 없이 보낸 걸지도 모를 일이다. 자기 같은 덕후를 널리 퍼뜨리고 싶은 덕질에서 비롯된 걸 수도 있다. 그렇게 생각하니 마음이 도로 편안해져서 나는 마음 놓고 책을 집어들었다.


읽고 있던 책이 아닌 캉디드를 집어들었다는 걸 안 것은 그로부터 오분 뒤였다.


***


예카테리나와 거리를 두기 위해 내가 선택한 건 옐리자베타 여제를 만나러 가는 것이었다. 황제가 있는 곳에 황태자비가 나서서 올 일은 없다는 건 온 궁전이 다 아는 사실이다.


하지만, 내 계획은 축일 다음날인 12월 1일부터 어그러졌다.


“폐하께서 쓰러지셨다고?”


“그렇습니다. 두비안스키 수사제(Protopresbyter, 결혼한 신부에게 주어지는 정교회 명예직)께서 부름을 받고 침실에 들어계신다고 합니다.”


"두비안스키라면, 폐하의 고해신부지?"


"맞습니다, 전하."


황제 옐리자베타의 병환은 날이갈수록 안 좋아지고 있었다. 휴식을 취해도 피곤해하는 시간이 길어졌고, 어지럼증과 감기 등을 달고 사는 날이 잦았다.


시종의 부축 없이는 혼자 걷기도 힘들어했고, 언젠가부턴 일어서는 것조차 옐리자베타는 버거워했다. 성 안드레이 축일 때 나온 것에 사람들이 놀라워한 것도 그 이유 때문일 거다.


‘ 다들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는 모양이고.’


시종 안드레이가 물어온 정보 중에 표트르 황태자를 찾는 발길이 늘어났다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는 사실이다. 황제에게 받은 선물을 조금 떼줬더니 더 착실해진 안드레이의 보고라 30프로는 믿을 만 했다.


‘거기에 고해사제까지 와있다는 건.’


모든 정보가 황제의 죽음을 가리킨다는 건 명백한 사실. 그럼 내가 할 일은 뭐가 있을까.


"표트르 전하께 가시렵니까?"


"아니, 바쁘실 텐데 나까지 가면 안돼."


아무런 추억도 없는 아들은 남과 다를 게 없다. 다른 자식이 더 생길 가망은 부부 사이를 봐선 없어보이지만, 만에 하나란 건 늘 모를 일이다.


‘남들처럼 표트르 황태자에게 가는 건 의미가 없겠지.’


가봐야 남들과 똑같은 말만 되풀이하는 앵무새가 될 바엔 좋은 인상을 남길 곳에 가는 게 더 낫다.


“안드레이. 예배당으로 가자.”


“예? 예배당은 어인 일로.”


내 증조부인 표트르 대제가 총대주교좌를 폐지하고 종무원이란 걸 만들어 통제하는 형식이 되었다해도, 여전히 러시아 제국의 국교는 정교회였다. 투철한 신앙심이 곧 건실한 사람임을 증명해주는 이 나라에서 정교회 사제들만큼 좋은 인상을 심어줄 수단도 없다.


“폐하를 낫게 해달라고 하느님께 기도드려야지.”


이뤄지든, 이뤄지지 않든 내가 손해볼 건 없는 것이다.


***


예상대로 예배당은 텅 비어있었다. 지는 권력을 거들떠보지 않는다는 말을 증명하는 듯한 모습에 나는 웃음만 났다.


“이런 건데 뭐 그리들 권력 같은 걸 집착하는지 몰라.”


“예?”


“아니야. 예배당이 춥다고.”


아닌 게 아니라 12월이 됐다고 바깥 공기는 한층 더 쌀쌀했고 매서웠다. 금세 빨개진 볼을 비비며 열을 내면서 나는 예배당 한쪽의 의자에 앉았다. 들고 온 성경을 예의상 펼치고 기도 매듭을 손에 쥔 채 슬쩍 주변을 둘러보길 수분째.


텅 빈 공간답게 굴절된 소리가 벽을 타고 귓가에 들려오자 나는 자연스럽게 매듭을 하나하나 세는 자세를 취했다. 두터운 나무문이 열릴 즈음 중얼거리듯이 예수 기도를 바쳤다.


“하느님, 자비를 베푸소서. 하느님, 자비를 베푸소서.”


일부러 매듭이 짧은 걸로 골라오긴 했지만, 그래도 오십 개가 넘는 매듭을 하나하나 세며 기도하려니 꽤 시간이 걸렸다. 계속 말을 하려니 이마에 땀이 흘렀고, 입에선 단내가 났다.


하지만 예배실 안을 들어오던 발걸음이 멈춰섰을 뿐, 도로 나가는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는 점에 희망을 가지며 기도를 이어갔다.


얼마가 지났을까, 눈을 떴을 때 뿌옇게 흐려진 시야에 누군가가 잡혔다. 검은 모자에 검은색 사제복을 입은 수염 덥수룩한 남자가 그를 향해 고개를 숙였다.


“주님의 가장 낮은 종 야코프가 전하를 뵙습니다. 기도를 올리시는데 방해가 된 건 아닌지 걱정되는군요.”


“...아, 아니에요. 멋대로 들어와서 죄송합니다.”


“하느님께 기도를 올리는 분께 성당의 문은 늘 열려있는 법이지요. 가까이 다가가도 괜찮으실런지요?”


“물론이죠.”


내 허락이 떨어지자 사제는 빠르면서도 느긋하게 다가와 옆에 앉았다. 멀찍이 떨어진 곳에서 안드레이가 안절부절 못하는 게 보이는 듯했지만 늘 그렇듯 무시했다.


“폐하를 낫게 해달라고 간구하고 계셨습니까.”


“이모할머님은 좋은 분이시니까요. 아픈 건 싫으니까, 얼른 나으셨으면 했어요.”


“폐하께선 좋은 분이시죠. 하지만, 주님이 정한 수명을 거스르는 건 지극히 어려운 일이랍니다. 그건 하느님께서 자비롭지 않아서가 아닌 죽음은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찾아오기 때문이겠지요. 오래전 젊은 제 아들도 그리 가고 말았습니다.”


그러면서 저 멀리에 걸린 십자고상을 바라봤다. 가톨릭과 달리 화려한 장식이 달려있음에도 경건함을 잃지 않는 상징을 바라보며 사제는 입을 열었다.


“허나 일어날 일은 일어나기 마련이지요. 그러니 매순간에 후회없는 선택을 내리시면 될 것입니다.”


“후회, 없는 선택...이요.”


“예에, 가령 장난꾸러기다운 생각을 요 작은 머리에 숨기고 계시는 것처럼 말입니다. 무엇이든 사람으로서 남을 수 있는 선택을 내리신다면 그걸로 삶은 족한 겁니다. 65만원처럼 말이지요.”


나눈 말을 곱씹던 내 머릿속에 벼락처럼 한 단어가 꽂혀들었다. 이 세상에 살고 있을 사람들 중 오직 나만 알고 있을 그 말을 이 사제가 어떻게 아는 거지?


흠칫 놀라 고개를 들었을 때 주위엔 아무도 없었다. 어딘가로 갔다면 들렸을 발소리조차 들리지 않았다.


“전하. 왜 그러십니까?”


등 뒤로 들려오는 목소리에 고개를 돌리자 검은 사제복을 입은 중년 남성과 나란히 선 채 안드레이가 의아한 얼굴을 나를 보고 있었다.


“안드레이, 이분이 왜 여기에....”


“여기요? 아, 이분은 야코프 주교님이십니다. 저와 함께 전하께서 기도를 올리시는 것을 기다려주고 계셨지요.”


안드레이의 말에 하얀 수염이 덥수룩한 얼굴을 끄덕이며 야코프 주교가 말했다.


"주님의 종이 대공 전하를 뵙습니다. 연치 어리신 분께서 신실한 신자이심에 주님께서도 기뻐하시겠군요."


공손하게 고개를 숙이는 야코프 신부의 모습에 순간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분명 얘기한 기억도 나눈 대화도 머릿속에 남아있는데 안드레이랑 같이 있었다고? 설마 그럴리가.


하지만 내 기억도 안드레이의 말도 거짓이 아니라면 그건 꿈도 뭣도 아닌, 어떤 초현실적인 현상일 것이다. 받아들이지 않을 이유가 없을, 이름 모를 어떤 것.


‘사람으로서 후회없는 선택을 내리신다면 그걸로 족할 겁니다.’


“주교 예하께 인사드립니다. 그리고 안드레이.”


“예, 전하. 돌아가시겠습니까?”


“아니, 폐하께 가자. 나도 물수건 정도는 갈 수 있겠지.”


“예? 왜 그런 일을 전하께서. 전하?”


야코프 주교와의 인사를 마친 후 손에 쥔 기도 매듭을 정리한 나는 성경과 함께 챙겨 일어났다. 예배당을 빠져나가는 내 뒤를 따라 안드레이가 전하! 란 말을 거듭 외쳐도 멈추지 않고, 나는 이제는 익숙해진 황제의 침실로 향했다.


***


35일, 한달하고도 조금 안되는 이 시간은 내가 옐리자베타 황제를 간호한 기간이다.


어린애가 하는 간호라봐야 별 거 없었다. 시종이 차가운 물을 떠오면 이마에 맺힌 땀을 닦아주고, 추워하면 이불을 여며주거나 탕파를 가져오게 했다. 식사를 안하겠다는 옐리자베타를 아이 달래듯 하면서 조금이나마 먹이고, 옆에서 쪽잠을 자는.


말 그대로 간병인 생활이었다. 오랜간만인데도 역시 사람이 할 만한 일은 아님을 새삼 느꼈다.


내 간호에도 옐리자베타의 상태는 악화에 악화를 거듭했다. 꿈과 현실을 구분하지 못하는 듯 부모님을 찾았고, 사촌 안나 황제에게 저주를 퍼붓기도 했다. 누군가를 가둬놓은 듯 이반이란 아이에게 내 잘못이 아니라며 연신 중얼거리기도 했다.


언제나 끝에선 표트르를 찾았지만, 언젠가부턴 나를 찾기 시작했다.


“파벨, 파벨.”


“저 여기 있어요.”


내 손을 꽉 쥔 옐리자베타의 팔은 통증이 느껴질만큼 힘이 들어가있었다. 어디서 이런 힘이 났는지 신기할만큼 창백한 얼굴로 옐리자베타가 입을 열었다.


“이 제국은 우리의 것이야. 우리 로마노프의 것이고.”


내게 얘기하는 것인지 아니면 스스로에게 다짐해온 말인 건지, 맥락 없는 말에 내가 머뭇대는 사이 옐리자베타가 선언하듯 외쳤다.


“이반의 딸들이 아닌 우리 표트르의 자식들 것이란 말이다. 같잖은 이반의 딸이 아무리 욕심을 내도 우리는 결코 뺏기지 않아! 결코!”


실핏줄이 선 눈으로 옐리자베타 황제는 나를 노려보았다. 내게 다짐을 받고 싶어하는 것처럼 내 입술이 열리기만을 기다리고 있는 듯했다.


그래서, 나는 옐리자베타가 원하는 말을 돌려주었다.


“제국은 폐하의 것입니다. 그걸 누구도 부정할 수 없습니다.”


그제야 만족한다는 듯 팔에서 떨어져나간 황제의 손이 내 어깨를 잡았다. 한 마디, 한 마디 힘주어서 말하며 옐리자베타 황제는 마지막 명령을 내렸다.


“표트르를..... 제국을 네게 맡기마.”


그 말에 온 몸의 기운을 다 몰아쓰기라도 한 듯 거칠어진 숨을 내쉬며 팔이 떨어졌다. 두비안스키 사제가 다가왔고, 머지않아 성호를 그었다.


해가 바뀐 지 일주일도 채 되지 않은 1762년 1월 5일, 겨울바람이 매섭던 날에 로마노프 왕조의 6대 황제 옐리자베타가 서거했다.


같은 날 표트르 표도로비치 황태자가 표트르 3세로 즉위했다.


작가의말

늦게 와서 죄송합니다. 뭘 잘못 먹었는지 식중독으로 죽다 살아났네요....


회사를 어떻게 갔는지도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1. 두비안스키의 본명은 표도르 야코블레비치 두비안스키로 옐리자베타 황제와 예카테리나 2세의 고해신부였다고 합니다. 작중에선 언급되지 않았지만 파벨에게 세례를 준 사제이기도 하죠. 1749년부터 모스크바 크렘린에 있는 수태고지 대성당의 수사제이기도 했고, 옐리자베타가 애인인 라주모프스키와 비밀 결혼식을 할 때 성찬을 준 것으로도 여겨집니다. 오래전 예카테리나가 쫒겨날 뻔 했을 때도 도움을 준 적이 있었고, 그의 아들인 미하일은 예카테리나의 쿠테타에도 참여했다고 합니다.


2. 정교회에선 가톨릭, 성공회와는 달리 기도매듭이란 걸로 예배를 드린다고 합니다. 러시아어로는 초트키라고 하는 것으로 생긴 것은 비슷하지만 목걸이가 아니고 목에 걸면 안되는 점은 똑같습니다. 예수 기도를 드릴 땐 왼손으로 매듭을 잡고 마디 하나를 넘길 때마다 기도를 드리면서 오른손으론 십자 성호를 긋습니다.


3. 주교에 대한 경칭은 종파마다 조금씩 다른데, 보통 가톨릭에서는 각하, 정교회에서는 예하 등을 썼다고 합니다. 지금은 보통 주교님으로 통합되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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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프롤로그(수정) +2 24.06.09 1,102 19 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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