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여제의 아들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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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경오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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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6.09 15: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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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9.01 21: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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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은 내가 벌고, 남이 쓴다(2)

DUMMY

"-라곤 했지만, 사실 제국의 사정은 그리 녹록치 않지요."


내 앞에 놓인 것과 똑같은 커피잔을 내려놓으며 제국의 외무장관 니키타 파닌 백작은 스스럼없이 인정했다. 덕분에 당황스러움은 내 몫이 됐다.


"단언하신 것과 다르신데요, 선생님?"


"경제에 대해 아는 바는 없지만, 듣는 귀는 있습니다. 8년 전쟁으로 입은 피해 복구가 이제 되어가는 참이라지요."


국토가 직접적으로 전화에 휩쓸리지 않았는데도, 손실된 인력과 빚은 타국과 다르지 않았다. 오히려 낙후된 사회체계로 더뎌지지 않은 게 용할 정도였다.

그럼에도 폴란드 내 정교회 신자를 위한 전쟁을 치르고 있는 지금, 여력이 부족하니 적을 돕는 이교도와의 전쟁을 마다한다? 부모님 욕으로 끝나면 다행일 걸.


"그러니 다른 방도로 우회해야지요. 우선 전하께서도 잘 아실 일로 최근 영국과의 무역량에서 철의 비중이 늘어나고 있지 않습니까."


제국 내 설탕사업의 큰손이 되면서 경제위원회 쪽에도 아는 사람이 여럿 생긴 덕분에 나는 어렵잖게 고개를 끄덕였다.


사면이 바다인 영국은 필연적으로 해군에 병력이 집중된 구조다.

나도 들어본 해가 지지 않는 나라란 별명에 걸맞게(여기선 스페인 왕국을 의미하지만) 여기저기 배를 띄우다보니 필연적으로 목재와 선박 관련 물자 수요가 급증한 건 당연지사.

그러나 목재란 건 단단함이나 재질에 쓰임새가 좌우되는 물자다.


선박 건조에 쓸 거라면 당연히 기준 자체가 까다로울 수밖에 없는데, 여기에 러시아산 목재가 딱이었던 모양인지 1733년부터 협정 맺어서 교역을 해왔다.


"그것 자체가 문제는 아니지요."


"맞습니다. 허나 세상일이 이 설탕처럼 달콤하진 못하지요. 전하께서 발명하신 설탕도 그렇고 전통적으로 사가던 목재나 수지(獸脂), 마직도 꾸준히 사갑니다. 대금지급을 늦추는 것도 아니니 오히려 반길 일입니다만, 그 대상이 영국만이란 게 장기적으로 이로운 일인지는 조금 의문이 들지요."


역사지식은 까막눈이지만, 엄연히 영업사원이던 내가 듣기에 파닌 백작의 우려는 타당하게 들렸다.


이 시대엔 다 그런지 모르지만, 러시아 제국의 산업 비중 중 9.5할은 1차산업이었다. 농업과 광업이 주류고, 0.5할은 수공업으로 섬유가 주 수출품이다.

이런 산업은 물건을 팔 거래처가 많으면 많을수록 좋다. 하나만 있을 경우 거래처 사정에 따라 수요와 공급 조절이 곤란해져 영향을 직격타로 받게 되니까.


그렇지만 영국처럼 '다량으로' 사주면서 '한 나라에서'만 사주는 경우라면 또 다른 문제가 생기기 마련이다.


"철을 만들 때 드는 비용이 올라도, 사주는 쪽 눈치를 볼 수밖에 없죠."


"과연 전하이십니다. 견문이 넓으시군요."


많이 사주니 제품을 생산하는 공장을 잔뜩 늘려놨는데, 원자재 가격이 오른다면? 저쪽에서 "비싸잖아, 그럼 이번엔 반만 살게." 라고 해버린다면 꼼짝없이 손해를 짊어지게 될 건 우리쪽인 거다.


"그러니 교역에서 생길 적자를 대체할 새로운 교역로를 마련해둬야했던 겁니다. 오스만은 그걸 위한 교두보일 뿐이죠"


질나쁜 가정이긴 하지만, 실현가능성이 있어서 마음을 놓을 순 없다.

하지만 그게 튀르키예 아니 오스만 제국과 싸움을 결심할 이유가 될 수 있을까? 그것도 하필 지금 말이다.


"우린 지금 폴란드 내 바르 동맹군과 전쟁중입니다."


"반란군이라고 하심이 옳겠지만, 그렇습니다."


"허면 오히려 오스만을 달래고 폴란드에 집중해야할 텐데요. 폴란드-리투아니아를 중시하셨던 건 선생님이셨지 않던가요?"


"하하, 북부 협정 말씀이시군요."


북부 협정.

러시아, 프로이센, 폴란드-리투아니아, 스웨덴 네 나라를 하나의 운명공동체로 묶어 프랑스와 합스부르크를 견제한다는 외교관계.

그걸 설계했던 장본인 니키타 파닌은 웃느라 맺힌 눈물을 닦으며 말했다.


"그건 제 나름대로 잘 만든 계획이었다고 생각하곤 있습니다만, 이젠 아닙니다. 애초에 8년 전쟁에서부터 틀어졌지 않습니까."


영국, 정확히는 하노버에게 월경지를 떼어주는 걸 오스트리아와 함께 묵인하면서 프로이센과는 악연만 아닌 사이가 돼버렸다.

과거와 달리 스웨덴은 이제 소국으로 전락해버렸고, 폴란드-리투아니아는 앙숙인 러시아와 달리 프랑스와는 사이가 그만그만했다.


"거기에 폴란드 내에서도 벌써부터 소란이 이만저만이 아니지요. 서쪽을 방비할 완충지역이 필요했던 것인데, 이래서야 동맹으로 끌어들여도 중요할 때 발목이나 안 잡히면 다행일 겁니다."


"오스만이 그런 폴란드 편에 섰고요. 우리가 자신들과 국경을 맞댄 나라를 어지럽히고 있으니 돕겠다란 구실로요."


그러나 공들인 계획이 수포로 돌아갔는데도 파닌은 실망은커녕 즐거워보였다.

내 개인교사로 임명됐다면서 찾아온 날로부터 이 사람을 봐온지 얼추 6년쯤 됐다. 그 기간동안 항상 웃는 얼굴인 이 남자가 목적 없이 움직인 적은 한 번도 없다.


'순순히 대답할 생각은 없지만 물어본다면 대답은 해줄 생각이란 거지.'


입에 자물쇠를 채운 수준이라면 아예 시치미를 뗐을 사람이다. 하여간에 이 나라는 귀족부터 황제까지 속 쉬운 사람이 없다.

오래전 상속 관련 자문 받던 때보다 더 열심히 머리를 굴리고 요 근래 궁전에서 떠돌던 말을 되짚자 한 가지 가정이 떠올랐다.


"앞에서 적과 싸우고 있는데, 뒤에 언제든 칼을 겨눌 적을 놔두고 싶지 않아서입니까?"


"반은 맞추셨으니 오십 점을 드리겠습니다."


"바닷물보다 더 짜십니다. 선생님."


"허허, 제 첫 제자이시니 이만 인심 좀 써보지요. 나머지 답은 흑해입니다."


흑해(Black Sea), 이름과 달리 표면이 까만색이거나 하진 않고, 언제부턴가 그렇게 불렸던 것이 굳어진 것뿐인 바다.

그곳과 인접한 지역은 바로 오스만 제국과 러시아 제국의 사이, 알기 쉬운 지명로는 크림 반도였다. 3세기쯤 후에 문어머리 푸차르가 전쟁을 일으켜서 뺏었거나 뺏으려는 곳.


"제국이 자랑할 만한 수출품은 곡물입니다. 그리고 흑해는 지중해와 이어지게 되어있지요."


"확실히 곡물은 어디서든 팔릴 상품이죠. 항구와 접한 지역이라면 육로보단 해로가 운송비 면에서 더 저렴할 테고."


화학자 프리츠 하버가 인공비료 개발에 성공하기 전까진, 성공한 후에도 기아는 지구상에서 종식되지 않았다.

그렇듯 곡물은 소금처럼 증감은 있어도 무가치할 일은 없을 상품이다.


다만 곡물 자체의 특성상 운송 시 비용문제를 염두에 둬야하는데, 무겁고, 도둑맞을 우려가 있어서다. 바다로 운반한대도 쥐라는 복병이 없진 않다만, 적어도 수송비는 줄어들지.


'하지만 그걸로 전쟁을 일으키려면 손해를 상쇄할 만한 돈벌이가 되어야할텐데. ...잠깐, 돈벌이?'


그정도로 전쟁이란 돈 먹는 하마를 부를 이유가 될까 싶었던 내 머릿속에 루블 은화가 쨍그랑거렸다.

파닌 백작이 왜 그리 즐거워했는지, 생각을 읽은 듯 미소지으며 내놓는 대답이 그제야 맞물렸다.


"명확한 이득이 눈앞에 있는데, 적과 손잡은 오스만과 전쟁을 벌이지 않을 이유가 어디 있겠습니까."


표트르 3세를 내쫒았던 쿠데타 이후 황제파에게 몰수한 영지를 분배받아 대지주가 된 가담자들.

그 중 한 명인 파닌 외무장관이 영지에서 생산한 막대한 곡물을 팔 곳이 늘어나는 걸 막거나 싫어할 일은 애초에 존재하지 않았던 것이다.


***


21세기의 부자국가들이 전쟁을 끔찍해하는 이유는 단순하다.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이 말했듯 있는대로 가진 무기를 쏟아붓다 사이좋게 나뭇가지와 돌멩이로 싸우던 아주 먼 옛날로 돌아가게 될 테니까.


하지만 이 시대에 러시아 제국은 물론이고 그만한 힘을 가진 나라는 어디에도 없다. 초강대국 미국도 지금은 영국의 무슨 13개주 식민지인 세상이다.


"돈만 벌겠습니까? 명예와 땅, 농노도 얻을 수 있지요."


거기에 한술 더 떠 전쟁이 돈이 된다고 여기는 사람은 내 주변에도 차고 넘쳤다.

여름궁전의 구석진 정원에서 국영 농노들이 건축자재를 옮기는 모습을 바라보던 나는 고개를 슬쩍 틀며 물었다.


"귀족들이 부자가 되는 게 황실에 이로운 일은 아니지, 알렉산드르?"


"하하, 걱정 붙들어 놓으시지요. 전하. 쿠라킨 가문 전체는 몰라도 저희 일가는 로마노프 가문의 신하입니다."


여덟 살에 만났던 말벗, 이제는 열여섯살이 된 알렉산드르 쿠라킨은 가슴을 퍽퍽 치며 자신했다.

얼마전까지 네덜란드 지역의 라이덴 대학에서 공부하던 애라 나도 오랜만에 보는 거였다. 나는 대학에 가고 싶어도 못 가겠지만.


"믿어도 될라나 모르겠는데. 그런다고 지분은 못 늘려줘."


"믿어주십쇼! 지분도 좋지만, 제가 몇 루블 더 받는다고 의리를 저버리는 못난 놈일리 없잖습니까."


말은 누구나 그럴싸하게 할 수 있다고 생각했지만, 그걸 곧이곧대로 말해봐야 귀만 시끄러울 것 같아 나는 그러려니 넘어갔다.

그러자 기가 산 알렉산드르는 은근한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


"그런데 말입니다. 제 눈엔 전하께서도 꼭 전쟁을 반대하시는 건 아닌 듯 보이는데, 돈 될 일을 찾으신 겁니까?"


"귀도 밝군. 또 안드레이한테 물어봤나?"


명색이 내 말벗이라선지 안드레이는 알렉산드르 앞에서 입에 자물쇠를 못 채웠다. 정말 중요한 건 합죽이를 하니 눈감아주고 있지만.

그러나 예상외로 알렉산드르는 고개를 젓더니 우쭐한 표정을 지었다.


"제가 전하를 모신 게 벌써 몇 년인데, 척 하면 척이지요. 하면 역시 군납이겠군요. 천한 상인놈들이면 몰라도 전하와 관련있을 일이라면 그것뿐이잖습니까."


"그렇긴 하지. 군수위원회에서 파블로프 공장 설탕을 군납품에 포함시키고 싶다고 제안을 해왔다."


달콤하면서 고열량인 설탕은 급격한 체력소모와 사기증진에 있어 전천후 만능식품이다. 누구나 뽀빠이처럼 시금치만 먹고도 차를 들어올릴 순 없는 법이지.


"어차피 내가 반대한다고 전쟁을 안하실 폐하도 아니고. 그럴바엔 찬성해서 돈이나 버는 게 나아. 말마따나 누구 배당금도 챙겨줘야하니."


"크으, 역시 전하십니다. 그럼 저희 영지의 농노도 빌려드리지요."


"대여비 받을 셈인 걸 모를 줄 아나. 꿈 깨."


아쉽다며 입맛을 다시는 쿠라킨의 반응만 봐도 알 수 있듯 군수위원회의 속셈은 사실 빤했다.


병사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평민들이 배급받는 건 흑빵이다. 그냥 먹으면 쓰고 텁텁해도 설탕과 함께면 훨씬 맛있게 먹을 수 있다.

자연히 식사에 신경을 덜 쓰게 될 테고 그만큼 예산에서 남는 돈을 슬쩍 할 수 있다. 거기에 황태자를 전면에 내세우면 단가 책정이나 유통, 배급 과정에 삥땅치기도 수월할 거라 생각했겠지.


'안됐지만, 남의 것도 내 것이라 할 수 있는 건 예카테리나뿐이라고.'


걸려만 보라지, 아주 속옷 때까지 털털 털어줄 테다.

매달 짤없이 뜯기는 상납금에 속이 쓰려와서 잠시 먼 곳을 쳐다보던 내 소매를 쿠라킨이 슬쩍 잡아당겼다.


"그런데 저기 짓고 있는 게 뭔-, 엇. 전하."


쿠라킨의 당황한 목소리에 뭔가 싶어 눈을 돌렸다. 유모로 보이는 여성을 등진 채 내 허벅지께에나 올 법한 남자아이가 안절부절한 얼굴로 서 있었다.


"여기 내가 오면 안되는 곳이었나, 알렉산드르?"


당황해서 고개를 돌리자 쿠라킨 역시 별반 다르지 않은 얼굴로 손사레를 쳤다.


"그럴 곳이 제국 내에 어디 있겠습니까. 보아하니 유모가 말리다 못 이겨서 나온 듯합니다만."


쿠라킨의 말처럼 뒤에 선 여자의 얼굴엔 피로감과 당혹감이 보였다. 여기서 날 볼 줄 몰랐다는 반응이라 안심한 나는 다시 남자아이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예카테리나 애인 중에 저런 얼굴이, 아마 오를로프였던가?'


어머니에게 애인이 많으니 누가 이부동생의 아빤지 생각할 시간이 필요했다.

이제는 옛날 일처럼 느껴지는 쿠데타 이전, 부활절의 식사자리에서 봤던 눈썹과 눈매를 물려줬을 한 남자를 떠올리다 나는 이리 와보라며 손짓했다.


"안녕. 이렇게 보는 건 처음인가?"


내가 먼저 말을 걸 줄 몰랐던지 몸을 깊이 숙인 남자애가 얼른 인사를 했다.


"황태자 전하를 뵙습니다. 알렉세이입니다."


예카테리나의 사생아. 예닐곱쯤 되어보이는 걸 생각하면 내가 표트르 3세에게 뺨을 맞게 된 날 태어난 애다.


그런 대단한 뒷사정으로 태어난 거 치곤 애 목소리가 기어들어가고, 비리비리한데다 어딘지 기죽은 것처럼 보였다.

사생아라고 예카테리나가 신경을 안 쓰나? 애 아빠랑 아직까지 사이가 좋던데.


"그래, 알렉세이. 우리 처음 보는 거지. 여기서 뭐하고 있었어?"


내가 얠 본 적이 없다는 건 예카테리나가 소개시킬 생각이 없다는 거겠지.

하지만 그렇다고 아무 죄도 없는 애를 못살게 굴어서야 어른답지 못하니, 나는 무릎을 굽혀 앉아 시선을 맞췄다.


"계속 뚝딱거리고, 사람들이 몰려있어서."


우물쭈물하던 알렉세이는 유모의 채근에 털어놓았다.


"궁금해서 나탈리야한테 나가고 싶다고.."


말이 뚝뚝 끊겨서 이해하는데 좀 걸렸지만 뭘하는지 궁금해서 보러왔다는 것 같았다. 그런 거면야 오히려 쉽지.


"음, 아직 반도 안 지어서 볼 건 없는데 시간되면 보러 갈래?"


"정말요? 그럼 허락은."


"내 돈으로 짓고 있는 건데 누구 허락을 받겠어."


말 나온 김에 가보자며 일어나 손을 내밀자 알렉세이는 유모를 한 번 보다(나도 한 번 봐주니 고개를 끄덕였다) 내 손을 잡았다.

그걸 보고 눈을 휘둥그레 뜬 알렉산드르는 옆에 찰싹 달라붙어 속삭였다.


"전하. 그, 괜찮으십니까?"


"뭐 어때, 어린애잖아. 꺼려지면 넌 먼저 가봐."


막말로 내가 얠 어딜 데려가든 예카테리나 외에 뭐라 할 상대도 없었다. 애 아빠 오를로프? 내가 더 높은 사람이야.


"전하가 괜찮으시다면야, 근데 저도 같이 가도 됩니까? 뭘 짓고 계신지 궁금했습니다."


"그러든가. 별 건 없고, 작은 랩 아니 실험실이야."


초빙할 사람이 있는데, 그 사람들이 연구할 공간은 있어야지 싶어서 큰맘먹고 짓는 중인 내 아지트였다. 딴 건 몰라도, 맛없는 감자부터 맛있게 개량해야지.

프렌치 프라이가 없는 세상은 살 가치가 없었다.


***


"파벨이 그 아이를?"


프로이센과 덴마크, 스웨덴을 비롯한 북독일지역 왕국과 합스부르크 제국에서 보내온 편지에서 눈을 든 예카테리나 2세는 의아한 얼굴로 되물었다.


"둘이 마주칠 일이 없도록 했을 텐데?"


옆에서 편지와 초상화를 정리하던 시녀장 안나 마투슈키나 백작 부인은 차분한 어조로 대답했다.


"전하께서 명령하신 건물을 짓는 곳에 쿠라킨 공작과 함께 계실 때 마주치셨다고 합니다. 듣기론 유모를 졸라서 나가게 되었다더군요."


"이제보니 나탈리야도 못 쓰겠군. 아이의 떼쓰기를 짐의 지시보다 위에 두다니."


안나의 말에 예카테리나는 말없이 손끝을 톡톡 두드렸다. 그녀의 기분이 언짢은 걸 알아차린 애인 그리고리 오를로프는 얼른 말을 꺼냈다.


"아직 어린아이지 않습니까. 지내는 방에서 소리가 들리니 궁금해서 나가보았겠지요."


"그리고리, 고작 그런 이유로 황태자가 신경 쓸 일을 늘려줄 필요는 있을까? 알렉세이와 달리 파벨은 할 일이 많아."


예카테리나의 단언에 오를로프는 잠시 입술을 달싹이다 그 말이 옳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안나, 나탈리야를 문책하고 알렉세이를 다시 슈쿠린 부인에게 보내게."


"분부대로 하겠습니다. 하온데 파벨 전하께선 그 아이와 저녁식사를 함께하고자 청하셨는데 어찌할까요?"


지켜보던 안나 백작부인은 황제의 앞에 다음 초상화를 펼쳐보이며 덧붙였다. 아주 잠시 종이를 쥔 손을 움찔했던 예카테리나는 대수롭지 않게 대답했다.


"뜻대로 하게 두지. 다음은 오스트리아인가?"


사생아의 거취 따위 지금의 예카테리나에겐 중요치 않았다. 그보다는 올해로 열네 살이 된 파벨의 혼처를 슬슬 고민해야했다.


태어날 적부터 못나던 아들의 얼굴은 시간이 지나면서 얼핏 보면 표트르 1세의 초상화와 닮은 부분이 보일 정도로 평범해졌다.

키도 어느덧 그녀보다 커진데다 친부논란은 흔적조차 사라져버린 것에 예카테리나는 흡족해했다.


'고려해볼만한 가문은 뷔르템베르크와 헤센-다름슈타트, 그리고 오스트리아인가.'


덴마크나 스웨덴, 노르웨이 쪽은 공주들의 나이가 너무 많거나 너무 어리거나 아니면 외모가 볼품없어 며느리감으로 적절치 못했다.

오스트리아는 혈통으론 문제가 없지만, 나이 어린 딸들의 혼처로 프랑스 부르봉 왕가쪽을 선호하는 듯 보였다.

자연히 선택지는 두 곳으로 좁혀졌지만, 예카테리나는 서두르지 않았다.


이제 겨우 코밑에 수염자국이 생긴 아들이다. 남편노릇을 하기엔 적어도 이삼년은 지나야할테고, 어쩌면 그 사이에 적당한 상대가 더 나타날 수도 있다.


'그때쯤엔 어떤 여자를 좋아하는지 알 수도 있겠지.'


제 아비와 달리 속 썩이는 일 없이 얌전히 지내는 아들이 원하는 상대와 결혼시켜줄 마음은 예카테리나에게도 있었다.

그러나 어떤 것도 전쟁준비보다 우선할 수 없다.


"폐하, 체르니셰프 전쟁 장관이 당도했습니다."


말쑥한 시종의 보고에 예카테리나는 입실을 허락했다.

그녀의 것이 아니었을 이 자리를 지키기 위해 황제는 모든 것을 해야했다.


작가의말

오늘도 제 글을 읽어주시는 분들께 깊이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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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 돈은 내가 벌고, 남이 쓴다(3) +6 24.09.02 446 19 15쪽
» 돈은 내가 벌고, 남이 쓴다(2) +4 24.09.01 470 22 17쪽
20 돈은 내가 벌고, 남이 쓴다(1)(일부내용수정) +3 24.08.30 507 17 15쪽
19 대관식과 폭풍 전야 +5 24.08.29 544 20 20쪽
18 정치란 전쟁의 연장선이다 (5)(수정) +3 24.08.29 472 17 13쪽
17 정치란 전쟁의 연장선이다 (4) +5 24.08.28 482 17 14쪽
16 정치란 전쟁의 연장선이다 (3) +3 24.08.26 488 13 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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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왕좌를 비워라(2) +4 24.08.22 570 19 19쪽
11 왕좌를 비워라(1) +5 24.08.20 632 22 17쪽
10 세 황제의 해(7) +2 24.08.19 573 21 13쪽
9 세 황제의 해(6) +5 24.08.18 616 24 2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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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프롤로그(수정) +2 24.06.09 1,101 19 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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