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여제의 아들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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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경오리
작품등록일 :
2024.06.09 15: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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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18 0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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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6.22 23: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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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황제의 해(2)

DUMMY

목덜미의 빈대 1마리가 운구차의 꽃다발보다 언제나 나은 법이다.


차갑고 권위적이던 이모의 왕좌를 바라보며 표트르 표도로비치 로마노프는 비실거리는 입꼬리를 주체하지 못했다.


이 왕좌가, 이 드넓은 겨울궁전이, 이 거대한 제국은 이제 그의 것이 되었다. 부친에게 물려받은 작은 영지마저 빼앗긴 채 떠돌던 그가!


‘보십시오, 아버지, 아버지는 못 이룬 꿈을 이 아들은 해냈다고요!’


변방의 소국에 만족하지 못하고 늘 위를 갈망했던 아버지. 황제의 딸과 결혼해 제위를 꿈꿨지만, 아내의 죽음과 함께 물거품이 되었던 남자의 꿈을 떠올리며 표트르 3세는 웃었다.


“폐하.”


오직 단 한 사람에게만 허락됐던 호칭이 들려오자 표트르 3세의 들뜬 마음은 더욱 충만해졌다.


어린시절부터 표트르 자신을 섬겨온 가장 신임하는 시종장 크리스티안 폰 브록도르프(Christian von Brockdorff)가 몸을 굽혀 인사했다.


“훈장 수여식을 진행하실 시각이옵니다.”


“아, 그랬지.”


사실은 일부러 시간을 죽이고 있던 거지만, 아닌 척 몸을 돌린 표트르는 그가 등지고 있던 거대한 홀에 빼곡하게 도열한 조신들을 느긋하게 훑었다.


‘보십시오, 이모님. 저를 항상 못나고 부족하다 질책하셨지만, 저들은 이제 죽은 당신이 아닌 저한테 머리를 숙이고 있지 않습니까.’


그를 멍청하다 비웃고 조롱하던 이들이 고개 숙인 꼴을 음미하며 표트르는 정면을 응시했다. 황제의 신호에 상급의전관 표트르 르포르 남작이 도금한 마호가니 지팡이를 두드리며 호명하기 시작했다.


“로만 일라리오노비치 보론초프 백작.”


“옛!”


표트르의 부름에 부푼 볼과 길쭉한 얼굴을 한 남자가 앞으로 나왔다, 궁정에 출입하는 이들답게 예복을 갖춰입은 그의 가슴 한켠에 오래전 수여받은 성 안나 훈장과 성 블라디미르 훈장이 달려있었다.


옐리자베타 선제의 충신이자 지지자였던 남자, 또한 그의 오랜 친구이자 특별한 지인을 마주보며 표트르 3세는 애써 근엄하게 선언했다.


“황실과 제국에 그대가 표한 놀라운 충성심과 용기에 대한 보상으로 성 안드레이 훈장을 수여한다. 그대의 헌신을 앞으로도 기대하지. ....그대의 딸에게도 고마움을 표하네.”


“결코 실망시켜드리지 않겠습니다, 폐하.”


넌지시 건넨 말을 알아들은 보론초프는 깊숙이 몸을 숙이곤 표트르의 인장반지에 예를 표하며 물러났다. 뒤이어 르포르 남작의 호명은 이어졌다.


“에른스트 요한 비론 공작!”


“드미트리 바실리예비치 볼코프!”


“홀슈타인-고트로프의 게오르크 루트비히 왕자!”


아끼는 이들이 호명될 때마다 표트르 3세의 눈은 마치 백 개의 촛불을 켠 것처럼 환해져갔다.


이모의 핏줄에 대한 집착이 그를 이곳으로 이끈 이후로 단 하루도 즐겁질 못했다.


이 빌어먹게 춥고 가난한 나라는 카를 페터 울리히에겐 거대한 감옥이었고, 그 자신은 수감자나 다름없었다. 십여년 전 훨씬 더 가깝고 손쉬었을 스웨덴의 왕위가 멀어지고, 숙부 아돌프가 그 자리를 대신 차지했을 때 얼마나 슬프고 안타까웠던가.


‘그러니 절대 내려가지 않을 거다.’


에른스트 비론 공작, 부르크하르트 뮌니히 백작, 그의 친애하는 친척인 게오르크와 페터 아우구스트 왕자.


그리고, 아직은 이 자리에 나올 수 없는 연인 옐리자베타와 함께 할 자신의 시대를 표트르 3세는 꿈꿨다. 그 꿈을 이룰 일만 남은 것이다.


‘그래, 그것부터 해야지.’


군주가 되면 최우선으로 해결할 일을 표트르 3세가 머릿속으로 되짚어갈 때.


옐리자베타에게 미움을 사서 망명하거나 쫒겨나거나 궁정에선 물러났던 이들이 한 명씩 호명될 때마다 그들과 반대편에 서 있던 이들의 표정이 시시각각 달라져갔다.


“여기도 저기도 홀슈타인 천지로군요. 이래서야 안나 여제 폐하시절과 다를 게 뭐랍니까.”


그 중에 한 명, 키릴 그리고리예비치 라주모프스키 백작이 옆에 서 있는 니키타 파닌 백작을 향해 소리죽여 투덜거렸다. 동시에 평온한 얼굴을 한 형 알렉세이 라주모프스키를 흘겨보았다.


엄연히 적국임에도 공공연하게도 프로이센에 대해 호감을 표시해온 황태자였다.

그런데 황제가 되자마자 게르만 족속이라면 경기를 일으키는 이 황궁에 홀슈타인 떨거지들을 불러모으다니.


“자중하시지요, 키릴 그리고리예비치. 듣는 귀가 많습니다.”


외교관다운 차분한 어조로 니키타 파닌 백작은 달래듯 말했다.


“크흠, 죄송합니다. 코사크 인들과 어울리다보니 저도 모르게 말이 거칠어졌군요.”


사납고 거칠기로 유명한 자포로제 코사크의 헤트만(Hetman) 키릴은 수긍한 듯 수염자국 없이 매끈한 턱을 매만졌지만, 볼멘소리를 멈추진 않았다.


“허나 저리 들떠있는 분의 귓가에 저같은 이의 목소리가 닿기나 하겠습니까. 이젠 저분의 시대인 것을요.”


키릴의 못마땅한 눈길이 왕좌가 놓여있는 단상에 선 표트르의 웃는 얼굴을 향했다.

별반 다르지 않는 얼굴로 황제를 바라보고 있는 제국의 귀족들을 살피며 니키타 파닌은 모호한 표정을 지었다.


‘허나 다모클레스의 칼은 쥐는 손을 가리지 않는 법이잖습니까.’


외교관답게 말을 삼키며 파닌 백작은 입가에 미소를 그렸다.

황제의 첫 수가 갬빗(gambit, 기물을 희생하여 이득을 얻는 체스의 도박수)일지 블런더(blunder, 게임의 판도를 바꾸는 중대한 악수)일지는 조만간 알 수 있게 되리라.


***


술을 진탕 마시고 일어났더니 이세계, 아니 먼 과거에 떨어진 날부터 줄곧 나는 이해란 걸 포기한 상태였다.


사실 아버지 말처럼 기어이 돌아버린 탓에 정신병동에서 망상중인 거면 또 모르지만.


“잠깐만, 다시 한 번 말해봐. 아버지, 아니 폐하께서 어머니 거처를 어디로 정하셨다고?”


하지만 그런 각오조차 부족했던 게 아닌지, 들려오는 꼬라지에 나는 헛웃음도 나오지 않았다.


“그, 그것이 궁전의 제일 끝으로 옮기라고 하셨답니다. 듣기론 보론초바 여백작도 부르셨다고...”


말하면서도 안드레이의 얼굴은 어린애한테 이런 말을 해도 되나 싶은 표정이었다.


‘자기도 어리면서 무슨.’


하지만 핀잔을 주기엔 뒷목이 당겨와서 그럴 여력도 없었다. 머릿속에서 한 이름을 떠올리며 나는 지끈대는 이마를 짚었다.


옐리자베타 보론초바 여백작, ‘황태자의 정부’.


귀부인들과의 담소 때 들은 바로는 아버지인 보론초프 백작은 지금은 죽고 없는 옐리자베타의 열렬한 지지자였다고 한다.


‘안드레이의 말대로면 즉위하자마자 훈장까지 내렸다하니 표트르랑도 친한 듯 하고, 본 적은 없지만 딸과 얼굴도 붕어빵이라지.’


내가 결혼할 것도 아닌데 미인인지 아닌지는 솔직히 알바인가 싶었지만, 이 옐리자베타에게 파벨의 아버지 표트르 황태자, 아니 표트르 3세는 아주 푹 빠져있다는 게 지금 문제였다.


‘듣기론 퐁파두르 부인이란 별명까지 붙여줬다지, 제 눈의 안경도 정도가 있지.’


교양프로에 종종 나오던 사람이라 초상화도 본 적 있는 나로선 웃기지도 않는 코미디였지만, 마냥 웃어넘길 상황은 아니었다.


“....어머니, 황후 폐하께선 뭐라 하셨어?”


“아무 말 없이 따르셨다 합니다. 그런데 전하 심부름으로 제가 멀리서 뵈었는데 안색이 좋지 않아보이시더군요.”


안드레이의 말에 눈가를 누르며 나는 참았던 숨을 뱉었다.


“.....그랬다고.”


옐리자베타를 간병하는 동안 예카테리나에게 몇 번 책을 빌려 읽은 적이 있다. 주로 안드레이가 책심부름을 하느라 오갔으니 황후의 달라진 모습을 못 알아봤을 리 없다.


‘이런 모욕적인 상황에 가만히 있었다고. 그 사람이.’


갓 즉위한 황제이자 남편이 내린 첫 명령은 정부의 방을 자기 옆방에 두고, 정부 아버지에게 훈장을 내리는 거였으니 충격받을 일인 건 얼추 맞았다.


하지만 예카테리나는 결코 멍청한 여자가 아니다. 남편의 사랑을 하릴없이 바라며 참는 여자는 더더욱 아니었고.


그런 사람이 가만히 있다는 건, 어떤 전조증상 같은 건 아닐까.


“어디 아프신 건 아니겠지?”


“그쪽 시동에게 듣기론 단순한 호흡곤란이셨던 듯 합니다. 옷차림을 편하게 하시니 한결 나아졌다고 하시던데요.”


밖은 매서운 바람이 몰아치는 겨울이지만, 궁전은 화로를 놓고 있으면 따뜻한 곳도 몇 개 있었다.


옐리자베타가 없는 지금, 궁전에서 그나마 내 편이라 할 만한 사람이 무사하다는 사실에 안도했다. 호흡곤란이야 뭐, 코르셋 때문이겠고.


‘결국은 황제가 문제란 건데.’


나름 영업을 뛰던 사람으로서 사람 보는 눈 하난 키웠단 자부심이 와르르 무너졌다. 짜증보다 헛웃음만 나왔다.


그야 제대로 본 건 예배당에서 만난 것 한 번뿐이지만, 얼추 무서운 회장님 겸 이모에게 주눅든 후계자 조카란 느낌 정도였다. 잘보여야 붙어있지, 안 그럼 국물도 없으니까.


하지만, 나는 마음속으로 진돗개 둘을 발령했다.


안 친한 애들 밀어내고 친한 애들 불러들일 수도 있겠지.


사이가 안 좋은 마누라를 멀리 떼어놓고, 정부의 방은 자기 방 바로 옆에 두는 것도 이 시대엔 그럴 수 있는 일이라 일단 치자.


하지만, 그 모든 걸 즉위하자마자 해도 되는 일인가 하는 의문부호가 생겼다.


‘천재거나 미쳤거나.’


사실 천재나 미친놈이나 한끝 차이다. 인생이 개같이 굴러가면 재벌집 도련님도 하루 아침에 다크나이트가 될 수 있는 세상이니까.


하지만 회사물 좀 먹어본 내 입장에서 미루어보건대 표트르 이놈은, 회사 차렸다 말아먹은 친구놈을 떠오르게 했다.


제법 괜찮은 아이디어로 벤처기업을 차린 친구녀석도 처음엔 잘 나갔다. 얼마간은 매출도잘 나왔고, 쏟아지는 돈벼락을 주체못해 돌이키지 못할 결정을 내려서 그렇지.


서 있는 곳은 아직 모래성인데, 사업 확장에 눈이 돌아가 투자금을 쏟아붓는 이들이 있다. 투자금은 내 돈이면서 내 돈이 아니란 걸 잊어버리는 이들의 끝은 늘 안좋았다.


‘이거 위험한데.’


절대권력은 그걸 용인하는 사람이 많을 때나 가능하다. 21세기에도 재벌가가 대대로 세습할 수 있는 이유는 받아먹는 콩고물에 만족하는 개미가 혁명가보다 훨씬 많아서다.


하지만 세상 어디에도 ‘외국인’이 밥그릇 뺏어가는 걸 좋아할 자국민은 없다.

거기에 권력이 낀다면? 상상만 해도 오한이 드네.


“엮여선 안돼. 하지만 가만히 있어도 안되고.”


“전하?”


나를 이상하게 보는 안드레이의 시선은 일단 무시했다. 언제 끈 떨어질지 모르는 나같은 애를 열심히 보살펴준 것도 어느덧 한달이 넘었다.


이런 애까지 말려들게 해서야 어른 체면이 말이 아니다.


“일단 어머니께....아니, 편지 하나만 쓰고 가보자.”


“예? 편지는 왜...”


“왜겠어. 아, 그것도 챙겨가야지. 어디다 뒀더라?”


꼴보기 싫은 남편 닮은 아들은 문전박대 받은 후도 예상해야하는 처지지만, 쫒겨나더라도 ‘나’를 기억에 남기는 게 영업직의 사명이었다.


***


그 시각, 전 러시아의 황후 예카테리나 알렉세예브나는 편한 옷차림을 한 채 개인실을 찾은 손님을 맞이하고 있었다.


“황후 폐하. 몸은 좀 괜찮으십니까?”


“괜찮아요. 아이가 자꾸 꼼지락거려서 생긴 가벼운 호흡 곤란인걸요. 그리샤.”


널찍한 카우치에 몸을 기대며 예카테리나는 즐거운 얼굴로 ‘애인’의 애칭을 불렀다. 그 말에 척탄병 연대의 그리고리 그리고리예비치 오를로프 중위는 마주보며 웃었다.


일년 전부터 상트페테르부르크 사교계에서 인기를 끈 오를로프는 곧 예카테리나 대공비의 관심을 끌었다.

그의 군인다운 용감한 성격과 잘생긴 얼굴은 상관의 애인인 쿠리키나 왕자비와 밀회에도 도리어 승진할 수 있게 한 조건이기도 했다.


“어머니란 참 힘든 거군요. 말 안듣는 휘하 병사들은 팰 수라도 있는데 말입니다.”


“아이는 뱃속에 있을 때가 차라리 편한지도 몰라요. 내 뜻대로 좌지우지 할 수 있으니.”


황실 요리사들이 솜씨를 발휘한 마롱 글라세를 하나 집어 입에 넣으며 예카테리나는 입꼬리를 살짝 비틀었다.


그녀가 심기가 불편할 때 나오는 동작에 옆에 선 시녀 예카테리나 로마노브나 다쉬코바 부인과 오를로프는 동시에 긴장했다.


“황후 폐하. 너무 심려치 마세요. 제 언니는 그저 정부일 뿐이지요. 폐하야말로 제국의 정당한 차리나십니다.”


표트르 3세의 정부이자 그녀의 언니인 옐리자베타 보론초바의 행동에 난처한 다쉬코바 부인은 얼른 예카테리나를 달랬다.


“다쉬코바, 나는 그런 걸 걱정하는 게 아니에요. 그건 당연한 내 것이에요.”


향긋한 포도주가 담긴 잔을 들어올리며 예카테리나는 숨을 내쉈다. 잔을 빙글빙글 돌리며 황후는 방 안을 눈으로 훑었다.


“다만, 폐하의 성급함이 걱정될 뿐이죠.”


남자가 정부를 두는 건 길가의 돌멩이만큼 흔한 일이니 일일이 대응할 가치가 없다.


하지만, 못난 여자를 위해 그녀를 공공연하게 ‘무시’하고 황실의 재산마저 쏟아부을 기색을보이는 게 예카테리나를 몹시 불쾌하게 했다.


“듣기론 홀슈타인에 계실 적에 가까이 하셨던 이들을 다시 불러들이셨다지요? 개중엔 옐리자베타 폐하께서 내쫒은 이들도 포함돼있고요.”


“그렇습니다. 하지만 빼앗은 작위나 영지는 여전히 돌려주지 않으셨습니다.”


“그러니 아직은 잠잠한 거고요.”


오를로프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예카테리나는 와인을 홀짝이며 벽에 걸린 초상화를 잠시 응시했다.


예카테리나 1세. 그녀의 이름을 따온 옐리자베타 황제의 모후, 평민에서 제국의 황제까지 오른 여걸.


그런 보잘것없는 출신으로도 제국 중심부까지 오른 그녀를 유심히 바라보던 예카테리나의 귓가에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그녀가 눈길을 돌리자 익숙한 시녀가 당황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황후 폐하. 파벨 대공 전하께서 찾아오셨습니다.”


“....파벨이?”


그 애가 왜, 라는 말을 예카테리나는 성급하게 하지 않았지만, 얼굴엔 여전히 의문스러운 표정이 떠올라있었다.


하지만 그 애를 만나기에 예카테리나의 상황은 썩 좋지 못했다. 옷차림이든, 황제 표트르에 대한 감정으로든, 그녀의 몸상태로든.

그렇기에 예카테리나는 고개를 흔들었다.


“....대공을 몹시 보고 싶지만, 지금은 내 몸이 불편하니 나중에 찾아가겠다고 전하게.”


“예? 아, 알겠습니다.”


의아한 목소리로 대꾸하던 시녀는 다쉬코바의 눈짓에 오를로프를 한 번 보곤 함께 물러났다. 다쉬코바마저 나가자 옆자리로 다가온 오를로프의 품에 예카테리나는 안겨들었다.


“파벨 전하를 만나보시지 그러셨습니까.”


“지금은 좋은 말이 나올 것 같지 않아요. 특히 그 얼굴을 보면.”


누군가가 바로 떠오르게 될 테니까.

경멸하는 남편의 얼굴을 떠올리다 바로 지워버린 예카테리나는 문을 두드리는 소리에 오를로프를 떨쳐냈다.


“다쉬코바, 손에 든 건 뭐지?”


시녀와 함께 나갔던 돌아온 다쉬코바의 손에 편지와 함께 상자 하나가 담겨있었다. 어쩐지 감동한 듯한 얼굴로 시녀장이 말했다.


“말린 허브잎인데, 파벨 전하께서 폐하께 전해달라셨습니다. 폐하께서 호흡곤란이 오셨다는 말을 듣고 챙겨오셨다네요. 숨쉬는 데에 좋으니 차로 꼭 우려내서 드시게 하라며 당부하시고 가셨고요.”


다쉬코바가 탁자에 내려놓은 상자는 뚜껑이 덮혀있는데도 청량한 향기가 솔솔 새어나왔다.

그리고 위에 놓인 편지봉투의 겉면에 러시아어로 적힌 ‘사랑하는 어머니께, 파벨이’ 라고 적힌 동글동글한 필체에 예카테리나는 눈을 떼지 못했다.


작가의말

1. 헤트만(hetman)은 폴란드-리투아니아 연방에서 군 사령관을 지칭하는 호칭과 16세기 말쯤에는 우크라이나 카자크의 수장의 호칭으로도 불렸습니다. 유명한 우크라이나 헤트만으론 1648년에 반란을 일으킨 보흐단 흐멜니츠키가 있습니다. 작중 시점에서 조금 더 지난 1764년쯤엔 예카테리나 2세에 의해 헤트만이란 직책은 폐지됐는데 마지막 헤트마는 작중 언급된 키릴 그리고리예비치 라주모프스키 백작이고, 옐리자베타의 애인 알렉세이 라주모프스키가 그의 형입니다.


2. 표트르 3세의 정부 옐리자베타 보론초바 여백작과 예카테리나 2세의 친구이자 시녀인 예카테리나 다쉬코바 부인은 친자매이지만 이후의 삶은 극명하게 갈렸습니다. 물론 말년이 썩 좋지만은 않았다는 건 두 자매가 동일합니다. 그 원인은 표트르 3세 때문이기도 하고요.


3. 예카테리나 2세의 애인들은 무수히 많은데 유명한 사람 중 하나가 그리고리 오를로프입니다. 원역사에서 예카테리나의 쿠데타 때 형제인 알렉세이 오를로프랑 함께 가담했던 사람이기도 하고, 실제로 상관인 슈발로프 백작의 애인이기도 한 쿠라키나 왕자비(쿠라킨 왕자의 아내였습니다)와 밀회를 갖기도 했다고 합니다. 예카테리나와의 사이에서 사생아 그리고리 그리고리예비치 보브린스키를 두었는데, 참고로 보브린스키의 출생년도는 1762년 4월 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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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 돈은 내가 벌고, 남이 쓴다(1)(일부내용수정) +3 24.08.30 508 17 1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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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1761년 겨울(1) +3 24.06.09 1,100 25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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