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여제의 아들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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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경오리
작품등록일 :
2024.06.09 15: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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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18 0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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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22 23: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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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쪽

왕좌를 비워라(3)

DUMMY

"황후 폐하, 정말 아름다우세요."


"카샤, 그 말만 벌써 몇 번째인지 모르겠네."


그녀의 충직한 시녀장 다쉬코바의 호들갑에 예카테리나는 찬찬히 거울 속의 자신을 들여다봤다.


당대의 유행을 따라 앞머리는 납작하게 빗어넘긴 모습을 유지하면서도 지위에 걸맞는 보석장식과 승리를 상징하는 월계수 잎으로 허전한 옆머리를 감쌌다.

드레스는 역삼각형 형태로 가슴과 배, 그리고 다리로 넓게 퍼지는 스타일을 골랐다. 전체적으로 하얀색이라 밋밋할 수 있는 부분에는 금색과 파란색으로 무늬를 수놓아 황후다운 부와 품위를 동시에 내보였다.


갓 시집왔을 때의 풋풋함 대신 황후로서의 위엄을 택한 예카테리나는 십자가 모양의 귀걸이를 고르는 것으로 단장을 마쳤다. 경건함과 우아함을 동시에 풍기는 황후의 성장(盛裝)에 다쉬코바를 포함한 시녀들이 그 앞에 무릎을 굽혔다.


'생각해보면 긴 시간이었지. 돌이켜본다면 짧았고.'


17년 전인 1745년, 큰 나라의 후계자와 혼인하게 됐다며 들떴던 어린 공녀를 떠올렸다.

난생 처음 보는 보석과 금으로 장식한 궁전에 두 눈이 멀어버린 듯 굴던, 못난 얼굴의 남편감과 차디찬 시이모의 경계에 숨죽여 지냈던 새색시를 되새겼다.

아내를 내팽겨친 채 이모의 시녀와 노닥거리고 어린애처럼 병정놀이나 하던 남편에게 수없이 설교했던 지난날이 눈앞을 마치 연극처럼 스쳐지나갔다.


이혼과 사별이란 갈림길에 서고서야 예카테리나는 자신의 마음을 온전히 이해했다.

그녀는 불쌍해지고 싶지 않았다. 초라해지고 싶지도, 보잘것 없어지고 싶지도 않았다.


'표트르, 우리 관계를 먼저 깬 건 당신이야.'


정부를 들인 것도,부부의 의무를 저버린 것도 표트르 당신이 먼저 시작했다. 가정의 평화를 깨는 것도 모자라 아예 그 자체를 부정하겠다 선언한 당신을 더이상 묵과하지 않겠다.

당신의 탐나는 그 왕좌는, 보론초바 따위가 아니라 오직 나와 당신과 내 아들의 것이어야 하니까.


"파티장으로 가자. 문을 열어라."


예카테리나의 지시에 복도와 이어지는 문이 활짝 열렸다. 복도에 그녀의 구두가 내디뎌졌을 때, 오른편에 예상치 못했던 수행인이 손을 내밀었다.

은색 바탕에 금실로 멋을 낸 코트와 이각모를 쓴 채 파벨 페트로비치 대공은 빙그레 웃으며 제 모친을 맞이했다. 허리춤에는 의장용 검을, 가슴 왼편에는 태어나자마자 수여받은 성 안드레이 기사단의 훈장을 패용한 차림새였다.


"황후 폐하의 수행을 맡을 파벨입니다. 파티장까지 모실게요."


"고마워요, 대공. 그럼 부탁하지요."


내밀어진 작은 손에 그녀의 손을 얹은 예카테리나는 발걸음을 뗐다.


시녀와 대공의 시종 둘이 뒤따르는 가운데 예카테리나는 슬쩍 옆을 바라봤다. 한달이 다 되어가는 지금도 하얀 뺨에는 손자국이 멍으로 남아있지만,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웃는 얼굴로 앞만 보는 아들의 옆얼굴에 황후는 익숙함을 느꼈다.

항상 오만했던 옐리자베타의, 그리고 조금 전 거울 속에서 본 예카테리나 자신의 모습이 앳된 얼굴에 녹아든 것처럼 닮아있었다.


'피는 못 속이는 법인가.'


표트르가 아무리 의심한대도, 그 얼토당토않는 의심에 예카테리나 자신도 부응해주고 싶어지다가도. 혈통이란 형체 없는 명예와 같아서 때때로 의외의 장소에서 드러내보여지기 마련이니까.

아들이 이끄는 대로 걷다보니 어느덧 파티장 문이 보였다. 그녀를 발견한 의전관이 상징 같은 하얀 막대를 바닥에 세차게 두 번 내리칠 때 동시에 두 사람은 손을 거뒀다.


"다녀오세요, 폐하. 꼭 이기세요."


어느 것에든. 생략인지 무지인지 모를 말을 남기고서 웃는 얼굴 그대로 파벨은 인사하며 뒤로 물러났다.


돌아가는 대공의 뒷모습을 잠시 보던 예카테리나 알렉세예브나는 허리와 가슴을 편 채 당당히 발걸음을 뗐다.

황후의 전쟁은 이제부터 시작이었다.


***


"드디어 불청객이 오셨군."


홀 전체가 내려다보이는 하나뿐인 왕좌에 앉아 와인을 들이켜던 표트르 표도로비치는 빈정대듯 말했다. 거침없이 연회장으로 걸어들어오는 예카테리나를 향해 고개를 숙이거나 무릎을 굽히는 인파가 그의 눈에 거슬리기만 했다.


"괘념치 마세요, 폐하. 흥분은 몸에 좋지 않아요."


"....당신 말이 맞군, 리자."


왕좌 옆에 놓인 의자에 앉힌 옐리자베타의 다독임에 숨을 들이마신 표트르는 코앞까지 다가온 예카테리나를 노려봤다. 모두의 시선을 한몸에 받으며 화려하게 꾸민 차림새의 황후가 무릎을 굽혀 인사했다.


"폐하의 부르심을 받고 왔습니다. 초대해주신 점에 감사드립니다."


"어서오시오. 어서 앉으라 하고 싶으나 짐의 옆에 황후가 앉을 자리가 없구려."


그 말을 하며 옐리자베타의 손을 맞잡은 표트르는 술렁대는 좌중을 흡족하게 바라보다 예카테리나의 얼굴을 살폈다. 동그랗고 파벨과 언뜻 닮은 평범한 얼굴엔 황제가 기대한 불쾌감과 무안함은 찾아볼 수 없자 잠시 가라앉힌 못마땅함이 다시금 고개를 쳐들었다.


"배려에 감사드리나 왕좌는 단 하나면 충분하지요. 제가 앉을 곳은 직접 찾도록 하겠습니다."


"....마음대로 하시오."


"그럼."


수그린 어깨를 도로 편채 예카테리나는 뒤돌아서 파티장 곳곳에 마련된 탁자로 향했다.

볼콘스키 공작과 쿠라킨 공작, 돌고루코프 공작 같은 한때 루스차르국을 주름잡던 크냐지들과 어울리는 모습이 역시나 러시아인들의 비위나 맞추는 여자다웠다.


'몸에 흐르는 피에 대한 자부심도 체면도 없다니. 그런다고 황후 자리를 유지할 수 있다고 보는건가.'


힘을 잃은 류리크의 후손들 따위, 그의 홀슈타인-고트로프에 비할 바가 못되건만.

짧게 혀를 차며 표트르 3세는 신하들이 놀라건말건 옐리자베타의 입술에 키스했다. 그가 결혼하는 날, 그 누구도 새로운 황후를 떠받들게 될 테니.


악사들의 연주곡이 네 번 바뀔 동안 홀의 중앙에 서서 춤을 추던 사람들도 한 번씩 짝을 바꿨다. 흥겨운 무곡이 잔잔한 선율로 바뀔 무렵 표트르는 왕좌에서 일어섰다. 모두의 시선이 모인 가운데 마지막 바이올린 연주자의 활이 현에서 떨어졌다.


"짐의 파티에 온 손님들에게 진심으로 감사를 표하는 바요. 오늘은 짐이 태어나서 가장 기쁜 순간을 맞이한 날이라오!"


내 말에 모든 사람이 집중하는 쾌감이 표트르를 들뜨게 했다. 시원스레 마저 들이켠 와인의 취기가 즐거운 감정을 불러일으키며 그의 입에서 한달간 품어온 숙원을 풀어놓았다.


"명예로운 프로이센 왕국과 우리 제국은 해묵은 원한을 묻어둔 채 함께 미래로 나아갈 것을 선언하였소. 또한 덴마크가 지난 북방 전쟁 당시 무도하게 빼앗아간 짐의 슐레스비히-홀슈타인 영지를 되찾는데 거들어줄 것을 밝혔지.

하여 짐은 친정하여 박탈당한 생득권을 되찾기 위한 전쟁을 선포하는 바요!"


황제의 선언에 힘입어 연주소리마저 뚝 끊긴 파티장에 쥐죽은 듯한 적막이 내려앉았다. 정도의 차이는 있어도 대체로 놀라고 당황한 신하들의 얼굴을 표트르는 감탄해서 말을 잃은 것으로 보았다. 어떻게 그렇지 않을 수 있겠는가?


"출정식은 6월 29일, 짐의 명명일로 미루겠지만. 짐의 결심은 바뀌지 않을 것임을! 자, 여러분. 축배를 드시오. 차르와 제국과 홀슈타인-고트로프-로마노프를 위하여!"


"....위하여!"


누군가는 마지못해, 누군가는 분노에 차서, 그리고 대부부는 제국의 통치가문에 대고 얼떨결에 축배를 드는 와중에 단 한 명.

예카테리나 알렉세예브나는 잔을 들지도, 건배사를 따르지도 않았다.


"다들 저기 있는 황후를 보시게! 잘생긴 남자에 사족을 못쓰면서 취하면 못난 사내에게 안길까봐 건배조차 꺼리는 얼간이 같은 여자를 말이야!"


담담하게 자신을 무시하는 아내에게 분노한 표트르는 혀가 꼬부라지는 발음으로 비웃어댔다.


"폐하, 많이 취하셨습니다. 이만 들어가시지요."


보다못한 시종장이 만류해봤지만 도리어 표트르 3세는 도리질을 치며 예카테리나를 향해 손가락질했다.


"아닐세. 할 말은 하고 살아야지. 일전에 말하지 않았나? 어떤 부부에게 아이가 둘 있는데 하난 일찍 죽었고 다른 하나는 살아있다고. 헌데 정작 그 남편은 아내와 동침한 적이 없지 뭔가.

하느님 맙소사! 잠자리 없이도 아들을 얻다니, 이렇게 기쁠 때가 있나!"


황제 부부의 내밀한 이야기에 얼굴이 벌개진 이들 사이로 자리를 박차고 일어선 황후 예카테리나가 가로질렀다. 함께한 귀족들의 만류를 뿌리친 채 떠나는 그녀를 가까이서 본 이들은 황후의 눈에 맺힌 눈물을 보았고, 웃어젖히는 황제를 마저 바라봤다.


"불청객이 사라졌군. 안 그런가, 골츠 대사."


"폐하께서 여기시는 그대로가 옳겠지요."


아내가 나간 문을 가리키며 프로이센 대사와 히히덕대는 모습은 홀에 모인 귀족들의 분노를 불러일으켰다. 정작 프로이센 대사가 식은땀을 흘리며 물러날 각을 잡고 있다는 건 그들이 알 바가 아니었다.

겨울궁전에 맴돌던 불온한 공기는 날이 샐 무렵부터 마치 들불처럼 번져갔다. 그 시작을 끊은 건 황제의 체포명령이었다.


"근위대는 당장 황후를 잡아오게! 그녀는 사생아를 낳아 짐의 명예를 더럽히고 가문마저 욕보여 입에 담기도 치욕스럽지. 마땅히 수녀원에 보내 본보기로 삼아야할 여자이지 않겠나!"


진실인지 아니면 망상인지 모를 황제의 명령에도 근위대는 황후의 처소로 들이닥쳤다. 그러나 펼쳐진 여러벌의 드레스를 정리하던 시녀와 방을 치우는 하녀 외에 황후의 모습은 코빼기도 비치지 않았다.

황후의 시녀장 예카테리나 다쉬코바 부인은 당황한 얼굴의 근위병에게 울면서 읍소했다.


"황후께서 보이지 않으시네. 간밤에 파티에서 큰 욕을 보시고 상심하셔서 울기만 하셨지! 코코아를 드시고 싶다셔서 가지러 다녀온 사이에 이런 일이. 큰일이라도 나신 건 아닌지!"


손수건으로 눈가를 찍어내며 울부짖는 여인을 보며 근위병은 더는 묻지 못한 채 황제에게 돌아갔다. 황후를 체포하긴커녕 실종상태라는 말에는 표트르 3세조차 당황하고 말았다.


"실종이라니? 그럴리가 없어. 필시 궁전의 다른 방이나 애인의 집으로 도망갔겠지!"


그러나 다른 방을 샅샅이 뒤져봐도 예카테리나는 나오지 않았다. 파닌 백작의 집과 오를로프의 집조차 협조를 받은 보람도 없이 그림자도 비치지 않았기에 표트르의 의구심은 슬슬 걱정으로 변질됐다.

그럴 리야 없겠지만 만약 황실에서 변고가 생긴다면 중대한 전쟁을 앞둔 시기에 모양새가 좋지 않을 건 불보듯 뻔했다.


"프레오브라젠스키와 이즈마일로프 연대원들을 풀어 황후를 모셔오게. 분명 우리가 아는 곳에 머물고 있을 테니."


황제를 보다못한 황후의 외숙부 홀슈타인-고트로프의 게오르크 사령관의 지시에 근위대원들은 이잡듯 수도를 뒤졌고, 딱 일주일이 지났을 무렵 쿠라킨 공작의 저택에서 황후 예카테리나 알렉세예브나가 찾아냈다.

황실 마차에 올라 근위대의 경호를 받으며 쿠라킨 공작의 전송을 받는 모습은 누가 봐도 황후의 그것이었기에 언짢아하면서도 표트르는 재차 체포 명령을 내리지 못했다.


"겨울궁전에 가지 않겠어요. 아들을 돌보고 황후로서의 책무를 다하기 위해 페테르고프로 난 가야해요. 외숙부."


그렇게 기다리지 못하고 홀슈타인 연대를 손질하기 위해 황제가 오라니엔바움으로 내려갔을 때, 아들을 그리워하는 조카의 어머니이자 황후다운 모습에 감동받은 게오르크의 허락이 떨어지기 무섭게 예카테리나는 페테르고프 궁전에 머물렀다.

출정 축하 행사를 준비하느라 어수선한 궁전의 구석구석으로 젊고 야심만만한 장교들이 하나둘 대공의 내실로 초대받았고, 그곳에 있던 황후의 손등에 입맞춤을 하며 충성을 맹세했다.


우둘투둘 쌓여가는 시간의 흐름 속에서 다가온 출정일에 맞춰 오라니엔바움에 주둔해있던 홀슈타인 연대를 이끌고 선두에 선 황제 표트르 3세가 출정식이 열릴 페테르고프 궁전에 도착했을 때.


"이게 무슨 일이냐!"


"황후 폐하도, 대공 전하도 보이지 않습니다. 축하행사 준비도 애초에 거짓이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황후도, 대공도, 출정식 행사와 조신들까지 상트페테르부르크로 떠난지 오래였다. 조카를 믿었던 게오르크 왕자는 창고에 묶인 채 표트르 3세에 의해 발견되는 수모마저 겪었다.


"이게 무슨! 감히, 짐에게 대드는 것도 모자라 짐의 측근에게 이런 무례까지!"


분노하면서도 당황한 황제가 주저하는 사이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파벨 대공을 옆에 둔 예카테리나 알렉세예브나 황후는 그야말로 모든 계층의 지지를 받았다.


제멋대로 권력을 휘둘러대는 황제와 황제의 예스맨인 재상에게 지친 제국 상원의 의원들.

전쟁이 끝나기 무섭게 새로운 전쟁을 준비하느라 높은 세금에 허덕이는 평민들.

그리고 황실에만 유리한 세금 법령 제정에 불만을 품은 상인과 동료에게 설득된 근위대원들까지.


결정적으로 프로이센과의 화평이 만들어낸 맹렬한 지지는 폭포처럼 표트르에게 반격할 의지를 앗아갔다.


황제의 충성스러운 원수 뮌니히는 즉시 크론슈타트로 가서 장기전을 대비해야한다고 주장했지만, 근위대마저 등을 돌렸다는 소식에 사람에 대한 불신이 강해진 표트르는 술과 옐리자베타만을 곁에 둔 채 자신의 장난감 요새에 머물려했다.


하지만 시간조차 표트르의 편이 아니었다.


"폐하. 상트페테르부르크 방향으로 군대가 오고 있습니다!"


예카테리나는 표트르 3세가 도망칠 곳을 순순히 내줄 생각이 없었다. 오를로프가 이끄는 근위연대의 병사들을 본 표트르는 고집을 꺾고 크론슈타트로 향했지만,

항구도시 크론슈타트는 먼 훗날 차르에게 반란을 일으키는 후배들처럼 자신들에게 먼저 손을 내민 새로운 '군주'에게 충성을 맹세한지 오래였다.


"모두가 짐을 배신했어! 짐은 정당한 차르이건만, 짐이 원한 건 생득권이었을 뿐인데!"


"폐하, 아직 포기하긴 이릅니다. 이곳은 폐하의 백성들이 있는 홀슈타인과 지척이고, 폐하야말로 진정한 러시아의 황제이자 표트르 대제의 손자이십니다. 반역도당에게 잠시 현혹된 충신들이 홀슈타인으로 달려올 것이니 레벨항으로 몸을 피하심이!"


"아니, 아니야. 짐은....잠시 자야겠네."


"폐하?"


거듭되는 배신과 분노를 휘두르느라 빠르게 기력이 쇠한 표트르 3세는 손을 내저었다. 비칠거리며 침대에 눕기 무섭게 코를 골아대기 시작하는 주군의 모습에 아연실색한 뮌니히는 이마를 짚었다.

그렇게 마지막 충신의 조언마저 거절한 표트르 표도로비치는 잠에서 깨기 무섭게 오라니엔바움으로 돌아가겠다 선언했다.


"짐은 러시아의 황제다. 죽을 때 죽더라도 짐의 왕좌에서 죽겠다!"


그러나 결심이 무색하게 오라니엔바움에 도착한 황제를 기다리고 있던 건 예카테리나가 보낸 오를로프의 군대였다.


"폐하!"


"리자베타! 네 이놈들, 대체 이 무슨 무례더냐!"


지긋지긋한 고생길을 함께 한 옐리자베타 보론초바가 우악스런 근위대의 손길에 끌려나가는 걸 지켜볼 수밖에 없던 표트르 3세는 고개를 돌려 아내의 정부를 노려보았다. 위엄도, 품위도 남아있지 않은 황제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며 그리고리 오를로프는 비웃었다.


"폐하. 이제 모든 것이 끝났습니다."


"하, 오를로프 중위. 짐의 제위를 찬탈하겠다는 건가?"


"그럴리가 있겠습니까. 제국은 로마노프 가문의 것입니다. 또한."


그의 턱짓에 끌려나가는 표트르 3세의 양팔에 팔짱을 낀 부하들을 보며 오를로프는 마지막으로 황제에 대한 경례를 붙이며 끝을 고했다.


"제국은 언제나 러시아인 군주로 섬길 뿐입니다. 예카테리나 알렉세예브나 로마노바 폐하처럼 말이지요."


율리우스력 1762년 6월 29일,성 베드로와 성 바울 축일.

정사를 돌볼 수 없는 심신상의 이유로 표트르 표도로비치 황제는 퇴위문서에 스스로 서명한 채 로프샤 궁전에 유폐되었다.


같은 날, 퇴위문서에 지명된 황후 예카테리나 알렉세예브나 로마노바는 예카테리나 2세로서 즉위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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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 ' 9

  • 작성자
    Lv.43 n6******..
    작성일
    24.08.23 00:20
    No. 1

    예카테리나 여제 만세!

    찬성: 0 | 반대: 1

  • 작성자
    Lv.99 g2******..
    작성일
    24.08.23 00:24
    No. 2

    잘보고갑니다 작가님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41 Maecenas
    작성일
    24.08.23 00:57
    No. 3

    일단 저는 캐서린 치세는 스킵하고 파벨이 즉위하면 보러 오겠습니다. 이 시대 다뤄주셔서 감사합니다. 솔직히 표트르 대제나 알렉산드르 2세급 명군은 아닌데 뻥튀기가 심한 황제라 ㅋㅋㅋ

    찬성: 2 | 반대: 0

  • 작성자
    Lv.20 it******..
    작성일
    24.08.23 02:25
    No. 4

    결국 파벨은 사생아였나보네? ㅋㅋㅋ 예카테리나는 자기 사생아와 살아남기 위해 쿠테타 벌인거고, 꼴사납다

    찬성: 0 | 반대: 0

  • 답글
    작성자
    Lv.68 안경오리
    작성일
    24.08.23 07:02
    No. 5

    안녕하세요. 안경오리입니다. 먼저 제 글을 읽어주셔서 감사드리며, 작중 파벨은 두 사람의 친자가 맞다는 학계 정설을 따르고 있습니다. 업로드 전 충분히 퇴고하지 못해 오해를 드려 죄송합니다!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28 Dududud
    작성일
    24.08.23 07:44
    No. 6

    파벨 1세 초상화를 보면 빼박 표트르3세 자식임 ㅋㅋ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45 g5******..
    작성일
    24.08.23 10:51
    No. 7

    그럼 7년 전쟁은 원역사대로 영국과 프로이센의 승리로 끝나나요?

    찬성: 0 | 반대: 0

  • 답글
    작성자
    Lv.68 안경오리
    작성일
    24.08.23 11:08
    No. 8

    작중 시점에서 표트르는 프리드리히 2세에게 체르니셰프 백작과 휘하의 약 2만 정도의 지원병을 붙여주었습니다. 원래대로라면 예카테리나의 철수 명령에도 부르케르스도르프 전투에 참여해 오스트리아를 패배시켰지만, 파벨의 얘길 들은 파닌 형제의 선조치로 조금 양상이 달라질 예정입니다...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Personacon 양마루
    작성일
    24.08.23 17:23
    No.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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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여제의 아들이 되었다 연재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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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 전쟁의 전방과 후방(1) +4 24.09.07 417 13 12쪽
23 돈은 내가 벌고, 남이 쓴다(4)(수정) +5 24.09.04 410 21 14쪽
22 돈은 내가 벌고, 남이 쓴다(3) +6 24.09.02 446 19 15쪽
21 돈은 내가 벌고, 남이 쓴다(2) +4 24.09.01 469 22 17쪽
20 돈은 내가 벌고, 남이 쓴다(1)(일부내용수정) +3 24.08.30 507 17 15쪽
19 대관식과 폭풍 전야 +5 24.08.29 544 20 20쪽
18 정치란 전쟁의 연장선이다 (5)(수정) +3 24.08.29 472 17 13쪽
17 정치란 전쟁의 연장선이다 (4) +5 24.08.28 482 17 14쪽
16 정치란 전쟁의 연장선이다 (3) +3 24.08.26 488 13 14쪽
15 정치란 전쟁의 연장선이다 (2) +2 24.08.25 560 13 20쪽
14 (제목수정) 정치란 전쟁의 연장선이다 (1) +2 24.08.24 619 21 20쪽
» 왕좌를 비워라(3) +9 24.08.22 622 23 16쪽
12 왕좌를 비워라(2) +4 24.08.22 570 19 19쪽
11 왕좌를 비워라(1) +5 24.08.20 632 22 17쪽
10 세 황제의 해(7) +2 24.08.19 573 21 13쪽
9 세 황제의 해(6) +5 24.08.18 616 24 26쪽
8 세 황제의 해(5) +3 24.08.17 655 23 15쪽
7 세 황제의 해(4) +3 24.08.12 701 18 14쪽
6 세 황제의 해(3) +3 24.08.04 787 26 12쪽
5 세 황제의 해(2) +4 24.06.22 866 21 16쪽
4 세 황제의 해(1) +3 24.06.16 885 25 16쪽
3 1761년 겨울(2) +2 24.06.11 921 21 10쪽
2 1761년 겨울(1) +3 24.06.09 1,099 25 13쪽
1 프롤로그(수정) +2 24.06.09 1,101 19 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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