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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한광
작품등록일 :
2024.06.14 1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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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09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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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6.28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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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천재에게 찍혔을 때(1)

DUMMY

헬리온이 경악하는 사이, 여기저기서 수군대는 소리가 들린다.


‘저 애가 걔야? 마탑주가 추천했다는 애.’

‘그런 것 같은데. 완전 어린애 아냐?’

‘그래도 마탑주 추천을 받을 정도면···.’


정작 당사자는 아무렇지도 않아 보였다. 많은 사람 앞에 서는 게 익숙한지, 좌중이 조용해질 때까지 기다렸다가 입을 여는 일련의 흐름이 물 흐르듯 부드러웠다.


“갑자기 제가 올라와서 놀라셨죠? 원래 선생님께서 먼저 올라오셔야 하는데, 급한 일이 생기셔서 제가 먼저 올라오게 되었습니다. 양해 부탁드립니다.”


아직 여리지만, 강단 있는 목소리에 그 누구도 입을 열지 않았다. 헬리온은 다른 의미로 입을 열지 못했다.


‘쟤가 신입생 대표라고?’


초고에서 그가 설정했던 외모의 특징을 가지고 있었으니 틀림없다. 그러나 외모적 특징을 제외하고 모든 게 달라졌다. 그러는 사이에도 단상 위에선 이야기가 이어지고 있었다.


“···해서, 이젠스 왕국의 무궁한 발전과 평화를 위하여······.”


헬리온은 혹시라도 그가 잘못 기억하고 있을 가능성을 염두에 두었다. 귓불을 살짝 건드려 귀걸이에 닿자, 금빛 책이 무릎에 내려앉았다. 생각만으로 페이지를 넘길 수 있어 다행이었다.

안심하고 설정을 대조해보려는 순간, 단상 위의 붉은 시선과 눈이 마주친다.

헬리온도 당황했으나, 상대방도 적잖이 당황한 모양이었다. 흔들림 없던 시선이 집요하게 그를 향했다. 얼른 고개를 숙인 헬리온은 초고 읽기를 포기하고 머릿속에 남은 기억으로 단상 위의 아이를 떠올렸다.


‘오렌지색 머리카락에 붉은 눈. 나이가 어리다는 것까지 분명 달리안 레스터가 맞아. 그런데 내 설정에선 분명 남자였는데.’


그러나 지금 단상에 올라간 이는 머리 장식부터 옷까지 전부 여성용이었다. 아직 어려서인지는 몰라도, 잘생기기보단 귀여운 쪽에 가까운 외모였다.

달리안 레스터는 이야기 중반쯤 레온하르트 일행이 만나는 인물이었다. 레온하르트와 베일린, 그리고 프레이야까지 등장한 시점에서 나오는 캐릭터라는 점을 감안하면 딱 맞는 타이밍이긴 했다.

초고의 그는 아카데미에 마탑주가 강연을 온 날, 마탑주를 보조하러 왔다가 주인공 일행을 만난다. 처음 만나는 또래 친구들이 마음에 들었는지 달리안은 마탑주에게 부탁해 특별히 아카데미에 재학하게 된다는 게 원래의 흐름이었다.


‘그런데 입학생이라는 건, 조기 입학이라도 했다는 건가? 나이 설정이 그대로 유지되었다면 해봤자 열네 살 정도일 거고.’


이런저런 생각을 하는 동안, 달리안은 단상에서 내려왔다. 지금부터가 정말로 지루한 시간일 테다. 잔뜩 신이 났던 프레이야는 그새 졸기 시작했는지 간헐적으로 고개가 떨어졌다.






지루했던 입학식이 끝나고, 몇몇 학생들은 벌써 친해져 삼삼오오 짝을 지어 홀을 빠져나갔다. 아마 지금쯤이면 기숙사 입사자가 몰릴 테니, 헬리온은 조금 기다렸다가 나갈 생각이었다. 꾸벅꾸벅 졸던 프레이야는 부끄러웠는지 짧게 인사하고 곧바로 홀을 나섰다.


‘웬만한 주요 등장인물은 다 본 것 같은데. 누가 남았더라.’


기다리는 동안 할 일도 없겠다, 헬리온은 초고를 읽기 시작했다. 타인에게 보이지 않는 이 노트는 기억을 되살리는 데 많은 도움을 주었다. 그는 빠르게 등장인물 란을 펼쳤다.


‘레온하르트 이젠스, 베일린 뮐러, 프레이야 하이트에 달리안 레스터···. 이제 남은 건 한 명이네.’


초고의 헬리온은 후반부에서나 두드러지는 인물이었기에 이 페이지에 적어 두지 않았다. 마지막 인물의 인적 사항을 확인하려 페이지를 넘기는 순간, 등 뒤에서 누군가 그의 팔을 강하게 잡아당겼다.

순간 넘어질 뻔한 그는 가까스로 균형을 잡고 뒤를 돌아보았다. 그곳에는 달리안 레스터가 서 있었다.

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묘한 표정으로 헬리온을 바라보았다. 팔을 얼마나 세게 잡고 있는지 조금씩 얼얼해질 정도였다.


“저기, 팔 좀 놔 줄래······.”

“하나만 대답하면 놓아주지. 너 뭐야?”

“뭐?”


질문의 의도를 알 수 없었다. 헬리온은 팔을 잡아빼려 했으나, 자칫 잘못했다가는 관절이 꺾일 것 같았다.


“뭐냐니, 사람이지···. 이름이 궁금한 거야?”

“전부. 네 정보를 전부 말해.”

“내가 왜 그래야 하는데?”

“지금 너······!”

“그리고, 여긴 사람이 너무 많아. 적어도 사람 없는 데 가서 이야기하자. ···이것도 좀 놓고. 멍들 것 같아.”


무심코 어린아이를 대하는 말투를 쓰고 말았다. 윤명진의 입장에선 한참 어린아이가 맞긴 했다. 달리안은 그제야 아직 홀에 사람이 꽤 남아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는지, 주위를 두리번거리다 엄지손가락으로 단상 뒤쪽을 가리켰다.

커튼이 있어 조용히 담소를 나누기 딱 좋았다.


“자, 이제 말해. 여긴 사람도 없어.”

“그 전에 하나만 물어보자. 왜 궁금한 건데?”


헬리온의 물음에 달리안은 어이가 없다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하, 지금 네 상태조차 모르는 거야? 진짜로? 어떤 의미론 대단한데.”

“내 상태가 어때서.”


건강하지 않다거나 하는 이야기를 하려는 건 아닌 듯했다. 달리안은 여전히 진지한 표정으로 그를 노려보았다. 결국 헬리온은 백기를 들었다.


“알겠어, 말해 줄 테니까 일단 이것 좀 놔. 진짜로 아프다고. 그리고 내가 나에 대해 알려 주면, 너도 왜 이런 행동을 했는지 설명해.”

“바라던 바야. 빨리 말하기나 해.”


‘얜 진짜 평생 마탑에 있는 게 맞다. 이 성격에 사회생활을 할 수나 있겠어?’


헬리온은 아픔과 거북함을 떨치려 일부러 가벼운 생각을 떠올렸다. 달리안의 붉은 눈은 여전히 매서웠다.


“헬리온 딜라드. ···열여섯 살이고, 신입생. 다른 정보가 필요한가?”

“딜라드? 흐응, 그래. 너, 몇 급 마법사지?”


이 나라에선 검사와 마법사 모두 급수로 관리되었다. 진급은 시험을 통해 결정되었으며, 급수가 확인되면 반드시 국가에 등록해야 했다. 헬리온은 마법을 어떻게 쓰는지도 모르기 때문에 진급 시험을 본 적도 없었다.


“없는데.”

“한 번도 진급 시험을 치지 않았다고? 거짓말하지 마. 이 정도의 힘을 가지고 등록도 하지 않고 돌아다니는 거야말로 살인 행위다.”

“무슨 말을 하는 거야···. 알아듣게 설명해. 내가 말하면 너도 말하겠다고 했잖아?”


달리안은 조금 진정한 듯 손의 힘을 풀었다. 자유로워진 팔에 피가 통하는 느낌이 들었다. 기둥에 삐딱하게 기댄 달리안의 눈엔 불신이 가득했다.


“설마 에테르에 대한 기본 개념조차 없다고 하진 않겠지. 모른다면 지금부터 기억해. 에테르는 마력의 하위 개념이다.”


헬리온 또한 알고 있는 이야기였다. 그가 설정한 개념이었고, 당장 어젯밤에 본 초고가 기억에 남아있었다. 헬리온은 고개를 끄덕이며 달리안의 말에 집중했다.


“마력의 순도를 낮추면 에테르가 되고, 반대로 에테르의 순도를 높이면 마력이 되지. 순수한 마력을 10이라고 했을 때, 평균적으로 강한 마법사의 에테르 순도는 높아 봤자 6할 정도. 순도가 높을수록 타인의 에테르를 느끼거나 타인으로부터 에테르의 기척을 숨기는 일에 능숙해지지만, 그 이상은 인간이 버틸 수 없어. 몸이나 정신 둘 중 하나는 반드시 망가지겠지. 나는 마탑에서도 인정받을 정도로 마법에 익숙하고, 5급 마법사로 인정도 받았으니 실력도 보장할 수 있어. 에테르 순도는 6.5할이다.

그런데 너는···. 가볍게 느끼기만 한 거지만, 에테르 순도가 적어도 8 이상이야. 네 귀걸이에 박힌 마석의 순도도 시장에 유통되는 마석의 에테르 함유 기준치를 훌쩍 넘길 것 같고. 아까 내가 단상에 올랐을 때, 뭘 했는지는 몰라도 에테르를 썼지? 신입생들은 대부분 순도 5 이하의 평범한 애들이니까 느끼지 못했겠지만, 나는 확실히 느꼈어. 그래서 가장 먼저 ‘뭐냐’고 물어본 거다. 인간인지 아닌지조차 순간 판별하지 못할 뻔했으니까.

참고로 말해두자면, 순수한 마력—균열에서 나오는 마수의 마력이 10이다. 딜라드라고 했지? 그럼 모르지는 않겠네.”

“···네 말이 진실이라는 증거는?”

“그런 것까지 필요해? 내 이름이 증거나 마찬가지···, 아. 이름을 안 말해줬네. 아까도 굳이 말할 필요 없대서 말하지 않았지만. 정 신뢰가 필요하다면야. 달리아 레스터다.”


초고의 이름과 달랐다. 헬리온은 긴장한 티를 내지 않으려 필사적으로 목소리를 가다듬었다.


“‘달리아’?”

“그래. 왜? 이제 신뢰가 좀 생겨?”

“···거짓말이지?”


헬리온은 달라진 부분에 대해 달리안을 직접 떠보기로 했다. 아니라면 어쩔 수 없지만, 적어도 그에게는 믿는 구석이 있었다.

 라케시스의 실타래.

초고의 레온하르트도 이 능력을 몇 번이고 썼다. 동료의 목숨이 걸린 절박한 상황부터, 말실수를 바로잡는 일에까지. 과도한 사용이 아니라면 페널티가 그리 크지 않아 몇 번이고 쓸 수 있었기에 편리한 특능이었다.

어떻게 쓰는지도, 왜 자신에게 이 능력을 줬는지도 알 수 없었지만, 최후의 수단으로는 고려해볼 만했다.

그러나 헬리온이 특능을 쓸 일은 없어 보였다.

하얗게 질린 달리안은 무서운 얼굴로 헬리온의 옷깃을 잡아끌었다. 휘청거리며 달리안의 코앞까지 끌려간 헬리온은 나지막이 속삭이는 달리안의 말을 멱살이 붙잡힌 채 들을 수밖에 없었다.


“어떻게 알았지? 말해. 거짓말을 한다면 바로 처리할 거야.”


마법을 쓸 줄 아는 사람이 이렇게 말하니 섬뜩했다. 헬리온은 최대한 침착하게 대답했다.

그러나 입에서 흘러나온 말은 엉성하기 짝이 없었다.


“···감이라고 하면 안 믿겠지?”

“당연한 소리를 하네. 너, 일단 닥치고 나 따라와.”


이건 위험했다. 아직 나이가 어리다고는 하나, 초고에서도 달리안은 마법을 꽤 거칠게 다루는 편이었다. 여기서 동행했다간 무슨 일을 당할지 모른다. 제 커뮤니케이션 능력이 원망스러웠다.


[[라케시스의 실타래]를 사용하시겠습니까?]


금빛 글자는 친절하게도 안내 문구를 띄워 주었다. 이 순간만큼은 신인지 뭔지에게 감사를 표하고 싶었다. 헬리온은 머릿속으로 격렬하게 동의를 표했다.


[[라케시스의 실타래]를 사용합니다.]


[시전자의 의사에 따라 약 3분 전으로 돌아갑니다.]


따스한 금빛이 헬리온의 주위로 퍼져나간다. 너무 밝은 탓에 자세히 볼 수는 없었지만, 마치 역재생 비디오처럼 사람들의 행동이 되감겼다.

빛이 사그라들자 달리안의 위치가 조금 달라져 있었다. 아니, 엄밀히 따지자면 ‘이전 위치로 돌아가’ 있었다.


“···아. 이름을 안 말해줬네. 아까도 굳이 말할 필요 없대서 말하지 않았지만. 정 신뢰가 필요하다면야. 달리아 레스터다.”


아까도 들었던 문장이다. 헬리온은 이번에야말로 실수하지 않겠다 다짐하며 입을 열었다.


“아니라면 정말 미안하지만, 너··· 남자 아니야?”

“···흐응? 왜 그렇게 생각해?”

“···부정은 안 하네. 골격이 여자랑은 좀 다른 느낌이니까, 혹시나 해서.”


달리안은 무언가 불만족스러운 듯 뾰로통한 표정을 지었다. 그래도 처리한다느니 하는 말이 나오지 않는 걸로 보아선 별다른 의심 없이 넘어갈 모양이다. 왜 이런 복장을 하고 있는지는 몰라도, 인물 설정은 바뀌지 않은 듯했다. 헬리온은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후. 바로 들킬 줄은 몰랐는데. 보기보다 눈썰미가 좋네? ‘달리안’ 레스터야. 적어도 한두 명 더 골려 주려고 했지.”

“수업 나가면 누구든지 알게 될걸.”

“난 수업 안 나가도 되니까 괜찮아. 학장님한테도 허락받았고.”


마법을 쓸 줄 아는 조기 입학생에, 실력도 뛰어나니 내려진 조치일 테다. 괜히 다른 학생들과 마주쳐 트러블이 생기는 것보다야 낫겠지만, 부러운 건 어쩔 수 없었다. 수업에 참여하지 않고 졸업장을 따는 건 분명 어느 세계에 가도 학생들의 로망일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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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 39. 균열 너머의 세계(1) 24.09.09 4 0 9쪽
38 38. 비밀 결사(4) 24.09.06 4 0 10쪽
37 37. 비밀 결사(3) 24.09.04 8 0 9쪽
36 36. 비밀 결사(2) 24.09.02 7 0 10쪽
35 35. 비밀 결사(1) 24.08.30 7 0 11쪽
34 34. 세상에 영원한 비밀은(5) 24.08.28 8 0 10쪽
33 33. 세상에 영원한 비밀은(4) 24.08.26 9 0 10쪽
32 32. 세상에 영원한 비밀은(3) 24.08.23 8 0 11쪽
31 31. 세상에 영원한 비밀은(2) 24.08.21 8 0 10쪽
30 30. 세상에 영원한 비밀은(1) 24.08.19 8 0 9쪽
29 29. 피할 수 없으면 즐겨라(5) 24.08.16 9 0 10쪽
28 28. 피할 수 없으면 즐겨라(4) 24.08.14 9 0 10쪽
27 27. 피할 수 없으면 즐겨라(3) 24.08.12 11 0 9쪽
26 26. 피할 수 없으면 즐겨라(2) 24.08.09 10 0 11쪽
25 25. 피할 수 없으면 즐겨라(1) 24.08.07 11 0 10쪽
24 24. 금빛 태양 24.08.05 10 0 10쪽
23 23. 헬리온 딜라드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4) 24.08.02 11 0 10쪽
22 22. 헬리온 딜라드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3) 24.07.31 13 0 10쪽
21 21. 헬리온 딜라드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2) 24.07.29 10 0 11쪽
20 20. 헬리온 딜라드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1) 24.07.26 11 0 11쪽
19 19. 피서지는 북쪽으로(2) 24.07.24 15 0 9쪽
18 18. 피서지는 북쪽으로(1) 24.07.22 13 0 12쪽
17 17. 진급 시험(5) 24.07.19 16 0 10쪽
16 16. 진급 시험(4) 24.07.17 17 0 10쪽
15 15. 진급 시험(3) 24.07.15 19 0 10쪽
14 14. 진급 시험(2) 24.07.12 17 0 13쪽
13 13. 진급 시험(1) 24.07.10 17 0 9쪽
12 12. 방어는 최선의 공격(3) 24.07.08 21 0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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