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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한광
작품등록일 :
2024.06.14 1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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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09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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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7.01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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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천재에게 찍혔을 때(2)

DUMMY

그 이후로 헬리온은 달리안과 이야기를 더 나누었다. 초고의 설정과 어느 부분이 달라진 건지 확인하려는 목적이기도 했지만, 이야기를 나누며 든 솔직한 생각은 이랬다.


‘어린애가 어떻게 컸으면 이렇게 경계심이 많아? 꼭 라피 병원 데려갔을 때 같네.’


털을 잔뜩 세운 고양이 같은 태도는 헬리온에게 큰 위협이 되지 못한다. 그런 모습은 반대로 연민을 불러일으켰다. 사람을 쉽게 믿지 못하는 어린 시절의 명진과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어서일지도 모른다. 간단한 대화를 마친 두 사람은 사람이 거의 사라진 길을 따라 기숙사로 향했다.


“그러고 보니까, 성별 숨기려는 거 아니었어? 남자 기숙사에 당당하게 들어가도 괜찮은 거야? 그리고 1층부터 3층은 전부 2인 1실이잖아.”

“바보야? 여기도 건물인데 뒷문 정도는 있지. 없어도 [도약] 마법을 쓰면 창문으로 들어갈 수 있고, 내 방은 4층이야. 그리고 나는 굳이 기숙사 안 들어와도 개인 연구실 받았으니까 괜찮아.”

“···그렇구나.”

“게다가 내 성별이 막 엄청난 비밀도 아니고. 사정이 좀 있긴 하지만, 이제 알려진다고 해서 위험할 건 없어.”


일주일간 나름 기숙사 건물을 레온하르트와 돌아다녔지만, 평소에도 주변 지형지물에 큰 관심을 두지 않는 헬리온이다. 뒷문을 보았다 하더라도 기억할 리 없었다.


“그럼 같이 올라가자. 나도 4층이거든.”

“와, 잘됐네. 너로 해보고 싶은···. 너한테 궁금한 게 많아서.”


잘못 튀어나온 듯한 말은 무시하기로 했다. 헬리온은 어색한 웃음을 흘리며 달리안의 뒤를 따라 걸었다.


두 사람은 아직 입구에 남아 있는 학생들을 피해 건물 뒤편으로 돌아갔다. 달리안은 자연스럽게 눈에 띄지 않는 문을 찾아 손잡이를 당겼다. 소리 하나 내지 않고 부드럽게 열린 문 너머로, 정식 입구에 위치한 계단과 비슷한 계단이 늘어져 있다.


“4층으로 바로 연결된 거야?”

“아마도? 뭐, 중간에 벽을 뚫으면 다른 층으로도 갈 수 있겠지만···.”

“그러고 싶진 않다.”


문득 이 건물에 뒷문이 있는 이유를 알 것 같았다. 마탑주의 추천을 받은 천재와 한 나라의 왕자가 함께 있는 건물에 입구가 하나뿐이라면 두 사람은 방 밖으로 나가기조차 힘들 테다. 헬리온은 그 두 사람에게 은혜를 입은 거나 마찬가지였다.


‘괜히 다른 사람 마주치기는 싫으니까. 이런 건 고마워해야겠네.’


본인 또한 백작의 아들이라는 사실은 전혀 고려하지 않은 생각이었다.

4층에 도착한 두 사람은 문을 열고 계단에서 빠져나왔다. 문은 레온하르트의 방과 정반대 쪽 벽에 연결되어 있었다. 뒤에 서 있던 헬리온이 문을 닫고 걸어 나오자, 달리안은 그를 빤히 쳐다보았다.


“응? 왜?”

“내 방은 바로 여긴데. 네 방은?”

“저쪽 복도 끝에서 두 번째.”

“그래? 가자.”

“···잠깐만, 내 방에 가자고?”

“그래. 뭐 보여주면 안 될 거라도 있어? 그 정도 시간은 허락해 줄게.”

“아니, 그런 건 아닌데.”


등줄기를 타고 식은땀이 흐르는 게 느껴졌다. 라피가 다른 사람을 만나게 되는 것 정도는 괜찮았다. 헬리온에게 지금 당장 친구라 말할 만한 이는 레온하르트뿐이었고, 이 이상 친구를 늘릴 생각도 없었으니 고양이의 활동 반경은 좁다. 게다가 지난 일주일 동안 지켜본 결과, 라피는 헬리온이 방에 없는 동안 바깥에서 신나게 놀다가 다시 돌아오는 듯했다. 게다가 이용하고 싶진 않지만, 그는 백작의 아들이 아닌가. 고양이 정도는 가볍게 넘어갈 만한 사안이다.

그러나 달리안이 무슨 짓을 할지 모른다는 게 문제였다. 그는 우선 레온하르트를 깨우고, 달리안에 대한 정보를 알린 후 혹시라도 위험해 보이면 구해달라고 할 생각이었다. 어색한 웃음을 지은 헬리온은 매서운 달리안의 눈초리를 살살 피하며 레온하르트의 방으로 다가갔다.


“얘가 입학식 끝나면 깨워 달라고 해서. 깨우고 가자, 깨우고.”

“뭐, 그래. 상관없어.”


안심한 헬리온은 레온하르트의 방문을 두드리고 문을 열었다. 원래라면 대답을 기다렸겠지만, 자고 있다면 노크 소리는 못 들을 가능성이 높았다.


“입학식 끝났어. 슬슬 일어나···, 어.”

“어라. 누구?”


방 안엔 레온하르트만 있지 않았다. 레온하르트는 반갑다는 듯 손을 흔들었지만, 상대방은 그다지 반갑지 않은 모양이었다. 흑요석처럼 검은 눈동자가 헬리온을 향한다.


“그렇게 경계 안 해도 돼, 베일린. 아까 말했잖아? 쟤가 헬리온이야.”


그 말을 들은 상대방은 한순간에 날카로운 표정을 지우고 밝게 웃었다.


“아아, 네가 그 헬리온 딜라드구나? 미안 미안, 갑자기 사람이 들어오니까 놀라서. 네가 싫은 게 아니니까 걱정 마!”

“아, 어어. 그래.”

“레오한테 얘기 들었어. 그런데 지금 잠깐 할 이야기가 있어서. 한··· 10분 정도 후에 같이 밥 먹으러 갈까?”

“오, 그거 괜찮네. 헬리, 이따가 베일린도 같이 가도 괜찮지?”

“응.”


풍성한 붉은 머리카락을 하나로 높게 묶은 베일린 뮐러는, 정말이지 상상했던 모습 그대로였다. 훤히 드러난 이마는 매끈했고, 붉은 속눈썹 사이로 드러난 흑요석 같은 눈동자는 강인한 전사 같은 인상을 주었다. 예쁘다기보단 화려하게 잘생겼다는 수식어가 더 어울리는 베일린은 시원한 미소로 화답했다.


“그럼 이따 보자. 응? 근데 네 뒤에 있는 애는 누구야?”

“내 뒤에? ···우왓, 깜짝이야. 내 방 앞에서 기다리는 거 아니었어?”

“너무 오래 걸려. 무슨 얘기를 하길래 그래?”


불만족스러운 표정인 달리안은 열린 문틈으로 두 사람을 훑어보더니, 귀여운 미소를 지으며 밝은 목소리로 물었다.


“저도 이따 같이 먹어도 될까요?”

“당연하지. 너도 신입생? 헬리온한테 볼 일이 있는 거야?”

“네. 그럼 10분 후에 뵈어요.”


달리안은 방긋 웃으며 레온하르트의 방문을 닫았다. 순식간에 변하는 그의 표정은 경이로움까지 느껴졌다.


“그럼 이제 정말로 네 방에 가볼까? 할 이야기가 산더미거든.”

“그, 그래···.”









라피는 생각보다 훨씬 의젓하고 똑똑한 고양이였다. 문을 열자마자 헬리온의 바짓단에 머리를 비비며 애교를 부리나 싶더니, 그 뒤로 들어오는 달리안을 보자마자 뒤도 돌아보지 않고 옷장 속 제 고정석으로 뛰어 들어갔다.


“···고양이도 키워, 너?”

“어쩌다 보니···.”

“나중에 만져 볼래.”

“상관없는데, 라피가 가만히 있을지 모르겠다.”


시답잖은 이야기로 긴장이 풀어지려던 찰나, 달리안의 주위로 오렌지빛 에테르가 솟았다. 깜짝 놀라 눈을 감았다 뜬 헬리온은 그의 손에 들린 제 키만 한 완드에 압도당했다.


“그걸로 뭐 하려고?”

“네 에테르 측정. 손 내놔.”


반강제로 헬리온의 손을 끌어다 완드를 잡게 한 달리안은, 완드 윗부분에 자리한 자주색 수정구에 에테르를 불어넣으며 외쳤다.


“[빛의 궤적이여, 어둠을 헤치고 모습을 드러내라!]”


마법이 발동되자 수정구는 점점 붉게 물들었다. 헬리온은 완드를 잡은 손에서 열기가 느껴져 이만 손을 떼고 싶었지만, 그랬다가는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몰라 잠자코 마법을 감상했다. 그가 이 세계에 온 이후 처음으로 제대로 된 마법을 보는 순간이었다.


‘잘 모르겠지만, 봐 두면 도움이 되겠지.’


붉게 달아오르던 수정구는 이제 보랏빛을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붉어졌다. 달리안이 손을 떼자 수정구는 언제 그랬냐는 듯 맑은 보랏빛으로 돌아왔다.


“예상대로네.”

“뭐가?”

“네 에테르 말이야, 에테르. 수치로 정확하게 따지자면 8.5 정도의 순도야. 진짜 인간 맞아? 귀에도 순도 높은 아티팩트나 달고 다니고.”

“인간이 아니면 뭐겠어.”


헬리온의 대답은 달리안에게 닿지 않은 듯했다. 혼자 심각한 고민에 빠진 그는 완드를 팔에 끼운 채 방 안을 왔다 갔다 하더니, 무언가 결심한 건지 헬리온의 앞에 멈췄다.


“너, 마법은 나한테 배워.”

“수업은 어쩌고?”

“어차피 1학년 1학기는 뻔한 내용이야. 해봤자 서클 펼치고, 완전 기초적인 공격이랑 방어 정도? 무엇보다 이론이 먼저지. 누가 무식하게 실전부터 들어가? 2학기에 제대로 된 실습을 시작해도, 공격, 방어 마법을 제외하면 고작해야 [강화]나 [수복] 같은 시시한 기초 마법이나 배우겠지.”


‘[수복]은 2학년 때 배울 텐데. 쟤 눈엔 다 쉬워 보이는구나···.’


천재와 범재의 차이를 뼈저리게 느끼는 순간이었다. 5급 마법사는 얼핏 들으면 그다지 높은 급수는 아니지만, 달리안이 아직 열네 살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역사에 다시 없을 천재였다. 그러는 중에도 달리안은 입을 쉬지 않았다.


“나는 지금까지 마공학 위주로 연구했지만, 공격 마법도 특기거든. 마탑 안에서는 사용 금지라 자주 쓰지는 않았지만. 네가 에테르 폭주라도 하면 공격해서라도 막을 수 있는 사람은 아마 나밖에 없을 거야.”

“그렇구나···.”

“그리고 이 정도 순도는 나도 처음 보니까, 위력이 얼마나 나올지도 궁금한걸? 후후후···. 좋아, 결정했어. 내일부터 수업 끝나면 내 연구실로 찾아와, 매일.”


불길한 웃음 탓에 헬리온의 등에서 식은땀이 흘렀다. 대학 시절 교수님께 대학원 진학을 권유받았을 때와 비슷한 느낌이었다.


“···시험은 어쩌고? 시험공부는 해야 할 거 아냐. 그 시간에도 다 네 연구실로 가?”

“걱정 마, 마법 관련 과목은 내가 전부 보충해 줄게. 다른 과목은 쉬우니까 괜찮아.”


믿을 수가 없다. 물론 대한민국의 초중고등학교를 졸업한 그에게 열여섯 살이 받는 교육이 어려울 거란 생각은 들지 않았지만, 조기 입학한 천재가 말하니 신뢰도가 바닥을 찍었다.

때마침 문밖에서 노크 소리가 들려왔다.


“네에, 열어드릴게요!”


아마 레온하르트일 것이다. 달리안은 마치 제 방인 양 쪼르르 나가 문을 연다. 손바닥 뒤집듯 바뀌는 태도에 정신이 혼미했다.

앞으로의 학교생활이 순탄치 않겠다는 예감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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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 26. 피할 수 없으면 즐겨라(2) 24.08.09 10 0 11쪽
25 25. 피할 수 없으면 즐겨라(1) 24.08.07 10 0 10쪽
24 24. 금빛 태양 24.08.05 10 0 10쪽
23 23. 헬리온 딜라드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4) 24.08.02 11 0 10쪽
22 22. 헬리온 딜라드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3) 24.07.31 13 0 10쪽
21 21. 헬리온 딜라드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2) 24.07.29 10 0 11쪽
20 20. 헬리온 딜라드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1) 24.07.26 11 0 11쪽
19 19. 피서지는 북쪽으로(2) 24.07.24 14 0 9쪽
18 18. 피서지는 북쪽으로(1) 24.07.22 13 0 12쪽
17 17. 진급 시험(5) 24.07.19 15 0 10쪽
16 16. 진급 시험(4) 24.07.17 16 0 10쪽
15 15. 진급 시험(3) 24.07.15 19 0 10쪽
14 14. 진급 시험(2) 24.07.12 17 0 13쪽
13 13. 진급 시험(1) 24.07.10 16 0 9쪽
12 12. 방어는 최선의 공격(3) 24.07.08 20 0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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