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혼 광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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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스토리안
작품등록일 :
2024.07.06 09: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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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속에서, 바다에서 - 5

DUMMY

성벽 아래에서 순식간에 물살이 거세지며 소용돌이치기 시작했다. 일본 병사들의 눈에 공포가 서렸다.


“물이다! 물이 밀려온다!”

“도망쳐! 빨리 높은 곳으로!”


다급한 외침이 성안을 가득 메웠다. 병사들은 무기를 내던지고 필사적으로 높은 곳을 향해 달렸다.

그러느라고 넘어진 병사들, 그들을 밟는 병사들, 갑작스러운 물살에 휩쓸린 병사들 등, 아비규환이 따로 없다.

문제는 이제야 물이 성안으로 들어오기 시작한다는 것.

한 번 침범한 물은 아래쪽부터 차오르기 시작하더니, 순식간에 흙탕물이 허리춤까지 차올랐다.

경주성 안은 순식간에 지옥도로 변했다.


“사, 살려줘!”

“나 좀 잡아줘. 헤엄을 못 친단 말이야!”


갑작스러운 물살에 휩쓸린 병사들의 비명이 사방에서 울려 퍼지다가, 절규하는 그 소리가 물소리에 묻혀갔다.

성안의 건물들도 마찬가지다. 마치 종이로 만든 듯 물살에 휩쓸려 무너져 내리기 시작했다.

거리는 순식간에 격류로 변했고, 그 위로 병사들의 몸이 나뭇잎처럼 떠다녔다.

일부 병사들은 지붕 위로 올라가 필사적으로 버텼지만, 계속 불어나는 물살에 그마저도 위태로워 보였다.


“도노! 도노! 어떻게 해야 합니까?”


한 부하가 공포에 질린 목소리로 외쳤지만, 유키나가와 기요마사조차 대답할 말을 찾지 못했다.

아니, 그들도 살길을 찾아야 했다. 그래서 자랑스러운 군대가 순식간에 무너져 내리는 걸 뒤로하고, 분루를 삼키면서 성 밖을 향해 달렸다.


“큭······, 미안하다······”


유키나가가 목이 멘 듯한 목소리로 사과했다.


“언젠가 내가 꼭 복수할 거다!”


반면, 이 마당에도 기요마사는 반드시 원한을 갚아주겠다고 고함을 쳤다. 그러나 과연 그게 이루어질 수 있을까?


“살려줘!”

“사람 살려!”


성안의 부하들이 외친 마지막 절망이 이들의 귀를 강타한다.


* * *


광해는 높은 언덕에서 경주성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의 눈에는 복잡한 감정이 서려 있었다. 승리의 기쁨과 동시에 많은 생명이 사라지는 무거움이 공존했던 것.

물론 다시 똑같은 상황과 직면한다면, 그는 또 한 번 수공을 선택할 것이다.

이 전술은 최소한의 아군으로 최대한의 적군을 섬멸할 방법이었으니 말이다.

한편, 광해 곁에 있던 문무 대신들의 얼굴에도 역시 경외와 감탄, 그리고 복잡한 감정이 뒤섞여 있었다.


“이렇게 적은 희생으로 큰 승리를 거두다니······.”

“전쟁이란 게 참으로 무섭고 잔인합니다. 우리 승리에 기쁘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저 아래에서 사라져간 목숨 때문에 가슴이 먹먹해집니다.”

“그렇죠. 적이라 해도 저들도 누군가의 자식이자 형제일 테니. 저 역시 승리했다는 기쁨보다는 이 참혹함에 마음이 무겁습니다.”


이것도 잠시였다. 곧 세자를 칭송하는 말들이 흘러나왔다.


“하지만 저하께서 이런 결단을 내리지 않으셨다면, 우리의 백성들이 더 큰 고통을 겪었을 것입니다. 때로는 이런 어려운 선택이 필요한 법이지요.”

“그렇습니다. 저하의 계책은 겪을수록 놀랍기 이를 데 없습니다. 이 전란에 저하께서 능력을 발휘하시다니, 그저 감사할 따름입니다.”


광해는 묵묵히 그들의 말을 들으며 다시 한번 성을 내려다보았다. 그러고는 하는 말.


“오늘의 승리에 취해 방심해서는 안 됩니다. 전쟁은 끝난 것이 아니고, 우리의 진정한 목표는 왜적을 이 땅에서 완전히 몰아내는 것이니까요.”


그의 말에 모든 대신과 장수가 고개를 숙이며 동의를 표했다. 그때 드디어 신립이 모습을 드러내며, 광해에게 보고하기 시작했다.


“저하, 물이 성안을 거의 다 채웠습니다. 적군의 저항은 거의 사라졌고, 대부분이 물에 휩쓸렸거나 높은 곳에 고립된 상태입니다.”

“우리 군사들의 피해는?”

“거의 없습니다. 아니, 아예 없다고 봐도 무방합니다.”

“될 수 있으면 무기를 버리고 도주하는 자들을 사로잡으시오.”

“네, 저하.”


그리고 잠시 후.


“적장을 잡았다! 내가 적장을 잡았다!”

“적장이다! 이놈이 적장이야!”


몇몇 조선 병사들이 물에 빠져 허우적대는 두 명의 장수를 기어이 잡았다.

그들은 이 와중에도 용케 살아남은 유키나가와 기요마사였는데, 처참한 몰골로 광해 앞에 끌려왔다.


“저하, 유키나가와 기요마사입니다.”


광해는 고개를 끄덕이며, 그들을 천천히 살폈다. 온몸이 흙탕물에 젖어 있었고, 얼굴에는 절망과 분노가 뒤섞여 있었다.

그런 그들을 향해 광해가 서리도록 차가운 말을 내뱉었다.


“너희 죄를 알겠느냐?”


놀랍게도 일본어로 묻고 있었기에, 그들은 몸을 부르르 떨었다. 겁이 나서가 아니라, 당황해서였다. 그리고 곧바로 수치심이 자리한다.


“죽여라! 지금 나를 죽이지 않으면, 언젠가 내가 너를 벨 것이다.”

“이놈! 우리를 모욕하느냐?”

“갈!”


드디어 광해가 그들에게 호통을 쳤다.


“아직도 너희 죄를 모르다니! 내가 똑똑히 알려주마.”


이어서 나오는 광해의 음성은 단호하고 냉정했다.


“첫째, 너희는 항복 권유를 받고도 고집을 부려 수많은 부하의 목숨을 헛되이 희생시켰다. 장수로서 부하의 생명을 소중히 여기지 않은 죄가 크다.”


인간에겐 근원적인 양심이라는 게 존재한다. 유키나가와 기요마사도 마찬가지. 그래서 세자가 짚어준 원죄에 얼굴이 창백해질 수밖에 없었다.

급기야 이들의 눈에 후회와 자책의 빛이 스쳐 지나갔다.

거기에 대고, 광해가 말을 이어갔다.


“둘째, 너희는 감히 이 나라의 국본인 나에게 불경한 언사를 퍼부었다. 이는 단순한 무례를 넘어, 우리 왕실에 대한 모독이요, 너희 나라를 부끄럽게 하는 태도다.”


이 또한 알아들었다. 일본의 전국시대에서도 다른 다이묘를 모욕하는 것은 큰 실수에 해당했다. 아무리 서로 칼과 총을 겨냥하고 있다고 해도 말이다.

더구나 일본의 사무라이 정신에 비추어 볼 때, 상대국의 고위 인사를 모욕하는 것은 수치스러운 행위였으니.

이는 곧 국가의 위신 실추시킴과 동시에 문화적 소양이 부족하다는 걸 드러내는 짓이었다.

결국, 기요마사가 이를 악물었고, 유키나가는 고개를 숙인 채 침묵을 지켰다.


“마지막으로, 가장 중대한 죄는 바로 우리 조선을 침략한 것이다. 무고한 백성들의 삶을 파괴하고, 이 땅에 전쟁의 참화를 불러일으킨 너희의 죄는 결코 용서받지 못할 것이다.”


광해의 목소리가 점점 높아졌다. 주변의 대신들과 병사들은 숨을 죽이고 이 장면을 지켜보았다.


“이 세 가지 죄목으로 너희를 처단해도 시원치 않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너희의 목숨을 지금 여기서 거두지 않겠다. 너희를 직접 처단하실 분은 이 나라의 임금이시니라.”


광해의 선고가 끝나자, 주변에서 탄성이 흘러나왔다.

다만 여기서 유키나가가 고개를 들어 광해를 바라보며 드디어 질문을 던졌다.


“저하께 묻겠소. 수공은 누구의 머리에서 나온 거요?”


그것 하나만은 꼭 알고 죽겠다는 듯, 유키나가가 회한 서린 음성을 내보였다.

광해는 곧바로 답했다.


“나다.”


순간, 두 왜장의 눈에 복잡한 감정이 서려 있었다.

패배의 쓴맛도 있었지만, 그동안 당했던 전술의 주인공이 광해라는 걸 깨닫고, 자기들도 모르게 경외심이 일어났던 것.

그런 그들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광해의 입에서 마지막 말이 흘러나왔다.


“끌고 가라!”


광해의 명령에 따라 끌려가는 두 장수는 탄식했다.


‘이번 전쟁, 역시 시작하지 말아야 했다······.’

‘조선의 세자가 전술의 천재였다니······.’


* * *


경주성 전투가 끝난 후, 광해는 곧바로 성 복구 작업에 들어갔다.


“백성들이 돌아오면, 많이들 놀랄 것이오. 한시바삐 성을 최대한 빨리 복구하시오.”


명령에 따라 7만이 넘는 병사들이 부지런히 움직였다. 물에 잠겼던 건물들을 수리하고, 무너진 성벽을 다시 쌓았다.

마침 비가 잦아졌고, 다음 날에는 멈추기까지 했다.

이쯤에서 경주에 살다가 피란 간 백성들도 돌아와 복구 작업을 도왔다.

워낙 많은 인원이 붙었고, 광해도 아예 직접 나서서 그런지 몰라도.

며칠 만에 경주성은 제 모습을 찾아갔다.

그사이 새로운 소식도 전해졌다.


“저하, 좌수사가 가덕도에서 적의 보급을 완전히 끊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부산포 공격을 준비하고 있다고 하옵니다!”


이번에 한양에서 보급을 운반한 병조정랑 강수남이 고개를 조아리며 보고하자, 광해가 얼른 질문을 던졌다.


“상세히 말해보라.”

“네, 저하.”


이어지는 내용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았다.


1. 가덕도에 임시 수영을 꾸린 이순신은 180여 척의 적 전투선을 유인한 후, 120척의 보급선을 모조리 침몰시켰다.


2. 곧바로 칠천량에서 적함 선과 마주했으나, 적 사령관 도도 다카도라가 뱃머리를 돌려 부산으로 돌아갔단다. 이는 다행스러운 일이었다. 조선 수군의 화약이 많이 소진되었기에, 분명히 피해가 있었을 테니까.


3. 그 후 이순신은 부산포에 척후선을 보냈고, 보고를 통해서 왜의 전함 370여 척이 넓게 포진했다는 것을 확인했단다.


4. 현재, 왜적은 조선 수군의 공격에 철저히 대비하는 중이며, 부산포 해안 인근에 발석차는 물론 조선에서 빼앗은 천지현황 총통까지 배치한 상태였다.


5. 참고로 부산포에는 내로라하는 수군 왜장들이 즐비해 있다고 한다. 쿠키 요시타카, 도도 다카토라, 가토 요시아키 등등. 여기에 히데요시의 칠본창 중 하나인 와키자카 야스하루도 합류했단다. 사령관은 도요토미 히데카츠로, 히데요시의 조카란다.


6. 여러모로 공격이 여의찮은 상황이지만, 이순신은 부산에서 적의 숨통을 끊어야 제해권을 완전히 가져온다고 판단하였다. 결국, 조선 함대를 총동원하여 부산포를 향했다고 한다.


이 내용을 다 듣고, 광해는 몹시 기꺼워했다.

또한, 기대에 차올랐다.

만약 부산포에서 대승만 거둔다면, 전세가 크게 기울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더불어 육지에서의 전투에 더욱 집중할 수 있게 되었다는 생각에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한양에서 좌수사의 장계를 받았을 때가 벌써 나흘 전이옵니다. 아마 지금쯤은 교전에 들어갔을 줄로 아뢰옵니다.”

“그렇겠어. 아니, 이미 교전을 끝내고, 승전했다는 장계를 또 쓰고 있을지도.”


광해의 이순신에 대한 신뢰는 매우 깊다.

안 그럴 수 없다. 원래의 역사에서도 충무공은 23전 23승, 단 한 번도 패하지 않았던 장수였다.


‘앞으로도 잘 부탁하오.’


잠시 감상에 젖었던 광해가 드디어 전투에 참여한 이들의 논공행상에 들어갔다. 이것을 확정해야, 또 강수남이 올라갈 때 장계 내용에 곁들여 쓸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대들의 용기와 충성심이 없었다면 이 승리는 불가능했을 것이오.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친 그대들의 공을 치하하며, 새로운 벼슬을 내릴 것이오.”


이렇게 품계를 올리고, 벼슬을 내린 과정까지 끝난 후, 광해는 다시 남쪽을 바라보며 속으로 중얼거렸다.


‘충무공, 바다를 부탁하오. 나는 여기서 적들을 몰아내겠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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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8 대마도에서 꿈꾸는 대항해시대 - 1 +3 24.08.30 1,231 39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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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6 대장선에 올라, 남쪽을 가리키다 – 7 +2 24.08.28 1,204 37 11쪽
55 대장선에 올라, 남쪽을 가리키다 - 6 +6 24.08.27 1,256 42 12쪽
54 대장선에 올라 남쪽을 가리키다 – 5 +5 24.08.26 1,282 42 12쪽
53 대장선에 올라 남쪽을 가리키다 – 4 +1 24.08.25 1,303 40 12쪽
52 대장선에 올라 남쪽을 가리키다 - 3 +3 24.08.24 1,353 45 11쪽
51 대장선에 올라 남쪽을 가리키다 - 2 +1 24.08.23 1,406 39 12쪽
50 대장선에 올라 남쪽을 가리키다 - 1 +1 24.08.22 1,435 39 12쪽
49 물속에서, 바다에서 - 8 +1 24.08.21 1,429 44 12쪽
48 물속에서, 바다에서 - 7 +3 24.08.20 1,400 40 13쪽
47 물속에서, 바다에서 - 6 +1 24.08.19 1,424 46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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