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혼 광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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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7.06 09: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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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속에서, 바다에서 - 8

DUMMY

세자가 이순신에게 간다고 하자, 일순간 정적이 흘렀다. 그러나 문무 대신들의 반대 의견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저하, 신중히 생각하셔야 합니다. 전쟁 중 세자께서 위험을 무릅쓰고 움직이신다면, 혹여 불측의 사태라도 발생한다면 어찌하려 하십니까?”

“그렇사옵니다, 저하. 순신을 만나는 것도 중요하지만, 저하의 안위가 더욱 중요하옵니다. 차라리 신하 중 한 명을 보내는 것이 어떠신지요?”

“비록 전쟁 중이라 하오나, 세자께서 직접 나서시는 것은 너무 위험해 보이옵니다. 좌수사를 오라고 하는 것이 더 안전할 것 같사옵니다.”


류성룡, 정인홍, 이덕형에 이어, 마지막으로 신립이 무인다운 직설적인 어조로 말했다.


“저하, 군사들의 사기를 고려하셔야 합니다. 만약 저하께 무슨 일이라도 생긴다면, 전군의 사기가 땅에 떨어질 것이옵니다. 신이 직접 가서 순신과 의논하고 오겠사옵니다.”


네 명의 대신들은 각자의 방식으로 광해의 결정에 반대했지만, 그들 이외에도 모든 대소신료의 눈빛에서는 공통으로 세자의 안위를 걱정하는 마음이 읽혔다.

김류만이 묵묵히 이들의 이야기를 듣다가, 다시 나서면서 그답지 않게 진중한 표정으로 말했다.


“저하, 외람되오나, 소신 한 말씀 올리겠사옵니다.”

“말하시오.”

“소신, 지난 시간을 돌이켜보면 저하의 결정이 늘 옳았음을 알 수 있었사옵니다. 문경새재 전투, 견훤산성 방어, 경주성 수공까지. 하나, 매번 반대가 있었사온데, 결과는 어떠했습니까? 모두 대승으로 돌아왔사옵니다.”


김류는 각 사례를 들며 신하들을 바라보았다. 일부 신하들이 얼굴로 인정하는 듯한 표정이 드러났다.


“소신, 이번에도 저하께서 이순신 장군을 만나려 하시는 데에는 분명 더 깊은 뜻이 있으실 거라고 믿사옵니다. 해안을 완전히 봉쇄하거나, 수륙 양쪽에서 더 효율적으로 방어할 전략이 있으실 거라고. 그런데도 반대만 하는 대신들이 있으니, 통탄할 노릇이 아닐 수 없사옵니다. 대안이라도 내놓으면 모를까, 이 전쟁, 꼭 저하 혼자 하시는 것 같사옵니다.”


김류의 말에 일부 신하들은 수치심에 물든 눈빛이었으나, 대부분은 불편한 기색을 보였다.

이를 알아챘을까? 붉어진 얼굴로 이덕형이 재빨리 나섰다.


“김 교위의 너무 지나치오! 어찌 감히 그런 식으로 말할 수 있소?”


만약 이 자리가 공식적인 자리가 아니었다면, 친우 이항복의 제자인 김류에게 회초리를 들고 싶었던 마음이었다.

그만큼 화가 치솟았고, 간신히 참으며 꾸짖었던 건데, 이때 광해가 드디어 격노했다.


“덕형의 말이 옳다! 김류, 너의 말이 과하다! 선을 넘어도 한참 넘었다!”

“저, 저하! 그게 아니오라······.”

“닥치거라! 그동안 네 공이 높아, 내, 너를 어여삐 보았다. 하나, 지금 하는 짓을 보니, 버릇이 없어져도 단단히 없어졌도다. 안하무인이 따로 없다! 내, 더는 참을 수 없다!”


털썩!


세자의 격노가 장난이 아니라는 것을 느낀 김류가 얼른 무릎을 꿇고 죄를 빌었다.


“저, 저하! 신, 큰 죄를 지었나이다. 다시는, 절대로 선을 넘지 않겠사옵니다!”


그때였다. 이일이 불쑥 나섰다.


“저하, 소장, 감히 한 말씀 올리겠사옵니다.”

“말하라.”

“김류가 비록 실언하였사오나, 본심은 그게 아니었을 줄로 아뢰옵니다. 또한, 그간 공이 작지 않았사오니, 저하께 소장이 대신 엎드려 사죄를 바라옵니다.”


이일이 시작이었다. 류성룡과 정인홍, 그리고 신립과 나중에는 김류를 꾸짖었던 이덕형까지, 대신 용서를 빌었다.

이유는 간단했다. 그동안 세자의 성정을 봤을 때, 확실한 신상필벌로 김류를 파직이라도 할 것 같은 분위기였기 때문.

일부는 어렴풋이 광해와 김류가 혹시 이 판을 짠 게 아닌지 의심했으나, 그렇다 해도 전시 조정에서 세자가 한 번 내뱉은 옥음은 쉽게 돌이킬 수 없는 법.

결국, 광해가 김류를 노려보더니, 짐짓 분노를 간신히 거두고 있었다.


“경들의 뜻이 그러하다면, 내, 이번만은 김류를 용서하겠소.”


드디어 용서라는 말이 나오자, 김류가 고개를 바닥에 처박았다.


“저하, 서, 성은이 망극하옵니다!”


다만 아직 끝나지 않은 논제가 있었다.


“그리고 경들께 다시 말하겠소. 나는 직접 이순신을 만나 의논해야 할 것들이 많소. 그러니 더는 말리지 마시오”


세자의 선언에 대다수가 속으로 헛웃음을 지었다.


‘속았구나······’

‘역시 내, 이럴 줄 알았다.’

‘이런 건, 꼭 금상과 비슷하다.’


가끔 임금 이연은 본인의 뜻을 관철하기 위해서, 격노한 척하곤 했다. 그렇다고 말리지 않으면, 파직과 귀양의 희생자가 나왔으니.


‘쩝, 어쩔 수 없지······.’

‘휴, 김류 말이 거칠어서 그렇지, 틀린 건 없다.’


늘 반대만 해왔으나, 정작 세자가 밀어붙였던 것은 실패했던 적이 없다. 어쩔 수 없이, 대신들은 고개를 숙이며 세자의 뜻에 따르겠다 하였다.

그러느라 이들은 보지 못했다. 광해가 간신히 웃음을 참는 표정을.


* * *


세자에게 받은 질책에 풀이 죽었을까? 아니면, 반성의 빛을 보여야 한다고 생각한 걸까?

이날 오전 회의가 끝나고, 김류를 본 대신은 없었다.

그를 격려나 위로, 또는, 조언이나 훈계하려고 찾는 이들만 많았을 뿐이다.

실은 김류가 이동한 곳은 경주의 임시 군기시였다.

특히, 그는 대량으로 개조되는 조총을 보며, 언제 혼났냐는 얼굴로 밝게 웃었다.


“이 별제, 고생이 많소. 하하하.”

“아니옵니다.”

“혹시 개량한 조총의 시험 발사는 한 적이 있소?”

“훈련도감의 총수들이 꾸준히 해오고 있사옵니다. 다만 명중률이 원래의 조총보다 더 높지 않아, 실전에 배치하지 않았사옵니다.”


이장손은 광해가 개량을 지시했을 때부터 연구하여, 보름 전부터 조총의 개조에 들어갔다.

실상, 개조가 그리 어렵지는 않았다. 기존 총신에 받침대만 큰 것으로 바꾸면 되는 거니까.

다만 무게 중심이 잡혀서, 더 명중률이 올라간다고 생각했는데, 엇비슷하거나 오히려 더 낮아졌다.

그때부터 고민에 빠졌으나, 세자는 괜찮다며 그냥 개조하라고 명령했다.


“아무래도 더 무거워져서 아니면, 왜인들과 비교해서 경험이 부족해서 아닐까, 생각하옵니다.”

“둘 다 맞을 거요. 그런데 한번 또 생각해 보시오. 경험이 부족한데, 오히려 명중률이 얼추 비슷하다? 이는 무게 중심이 잡혀서인 거요. 한 마디로, 숙련되지 않은 병사도 어렵지 않게 사용할 수 있다는 뜻이오.”

“네······.”

“이를 개선할 방법은 개머리판은 그대로 쓰되, 총신의 무게를 줄이는 방식이오.”

“여기서 총신을 더 줄이라는 말씀이옵니까? 그렇게 되면, 명중률이 더 낮아질 터인데요?”


사실 명중률은 총신의 길이와 비례한다. 총신 내부의 공간이 더 길어지면 탄환이 날아가는 거리가 늘어나고, 더 안정적으로 비행할 수 있기 때문이다.

김류가 그걸 모르겠는가.


“옳은 말이오. 근데 저하께서 보여주신 그림은 개량형 조총이 아니오. 포도아(葡萄牙 : 포르투갈)와 서반아(西班牙 : 스페인)에서 만들어진 화승총이오. 나중에 왜인들에게 흘러들어왔는데, 그 화승총을 개량해서 조총으로 만든 것이오.”


실은 더 복잡한 과정이 있었지만, 김류는 굳이 그 설명을 피했다. 지금은 화승총이나 조총의 유래를 알리는 시간이 아니다.


“정확히는 왜인들에겐 화승총은 물론 조총을 개량할 기술이 없었소. 그래서 포도아인에게 돈을 주고 만들게 했고, 왜인들이 옆에서 배우다가 근래 대량으로 생산할 수 있었던 거요.”

“그, 그렇사옵니까?”


밀리터리라면 무기에서부터 전술 전략까지, 그 누구든 밤을 새워서 이야기할 수 있는 김류였다. 지금도 잘 됐다고 여기며, 자기 생각을 계속 쏟아냈다.


“무릇, 손재주는 왜인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조선인이 뛰어나오. 해서, 그들이 침략하자마자, 도공과 사기장, 그리고 옹기장이 위주로 납치하지 않았소? 하여, 화승총은 물론 조총도 이 별제를 포함하여, 우리 군기시의 화포장들이 더 훌륭하게 만들어 낼 수 있다고 생각하오.”

“그거야 당연한 말씀이죠.”


이번만은 이장손이 자부심 넘치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러자 김류가 웃으며 그에게 숙제를 내듯 말했다.


“하면, 한 가지만 말씀드리겠소. 내, 우연히 책에서 읽었는데, 총신 안쪽에 홈을 파면, 총신이 길지 않아도 충분히 멀리 나갈 수 있다고 적혀있었소.”

“홈 말이옵니까?”

“그렇소. 나선형으로 파면, 탄이 회전하면서 안정적으로 멀리 나가게 되오. 정확도 역시 엄청나게 나아지오.”


이장손의 눈이 커졌다. 그는 무기를 만든 사람이다. 김류의 설명을 듣고, 자연스럽게 머릿속에서 그림을 그릴 수 있었으니.


“그, 그럴듯하옵니다. 아니, 회전하는 탄이라면, 틀림없이 멀리 정확하게 날아갈 것이옵니다.”

“책에 적힌 방법이니, 틀림이 없을 것이오. 그리고 이게 아까 말했던 무게를 줄일 방법이오. 더구나 남는 총신 재료를 통해서 뭐든 또 만들어 낼 수 있지 않겠소? 예를 들면, 대장군전 앞에 작은 비진천뢰포를 단다든지.”

“아!”


준비 없이 전쟁하다 보니, 부족한 게 한둘이 아니었다. 그중 쇠붙이가 제일 필요했다. 화약이야, 한양에서 2백 년간 비축한 양이 존재했고, 임금이 아낌없이 쓰라고 허락했다지만, 훨씬 더 많이 필요한 쇠붙이는 동이 나기 시작했다.

그런데 지금 해법이 떠올랐다. 지금까지 왜적들을 물리치면서 수거한 조총만 4천 정이 넘는다. 김류가 제시한 방법으로 얼마나 줄어들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남는 쇠붙이를 다른 무기로 만들어 낼 수 있었다.

다만 대장군전에 비진천뢰포를 단다?


“아, 아직 전갈을 못 받았겠구려? 이번에 저하께서 직접 남해로 나아가, 전라 좌수사 이순신을 위무하고 전략을 논의하기로 했소이다.”

“그, 그게 정말이옵니까?”

“그렇소. 뭐, 준비 기간이 며칠 걸릴 테니, 그사이 내가 말씀드린 나선형 홈의 화승총과 비진천뢰포가 하나씩 만들어졌으면 좋으련만······. 그래야 저하께서도 이 좌수사를 만나서 선물 하나 안길 게 아니오?”


대장군전은 몸체를 나무로 만들었다. 가장 앞에는 철갑탄이 있었다. 김류는 이를 좀 개조하여, 폭발력 있는 것으로 했으면 좋겠다고 제안한 것.


‘일종의 미사일이지. 흐흐흐.’


김류는 속으로 사악한 웃음을 갈무리하며, 이장손을 바라봤다. 대답을 왜 안 하나 싶었더니, 머릿속으로 뭔가를 계산하는 것 같았다.


“하나 정도라면, 대가리에 비진천뢰포를 장착한 대장군전이 그리 어렵지 않을 듯싶사옵니다. 아니, 오늘이라도 만들어 낼 수 있사옵니다. 크기와 심지만 조절하면, 되니까요. 하오나, 총신 내부에 나선형 홈을 판 화승총은 장담하기 어렵사옵니다. 금세 만드는 게 중요한 것이 아니라, 실제로 잘 작동하는지 알 수 없으니까요.”

“걱정하지 마시오. 저하께서는 작동과 관계없이 도전 자체에 이 별제의 공을 높이 살 거요. 내가 장담하오.”

“그, 그럴까요?”

“나만 믿으시오. 자, 시간이 없으니, 지금 바로 시작하시고.”

“그, 그렇게 하겠사옵니다.”


돌아서는 김류의 표정에 아까 갈무리했던 사악한 미소가 새겨진다.


‘오케이, 좋아.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란 말이지. 일단은 한번 만들어 보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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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1 이간계, 반간계, 삼십육계 – 6 +2 24.09.12 798 25 12쪽
70 이간계, 반간계, 삼십육계 – 5 +3 24.09.11 882 28 13쪽
69 이간계, 반간계, 삼십육계 – 4 +3 24.09.10 908 28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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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7 이간계, 반간계, 삼십육계 – 2 +3 24.09.08 1,059 33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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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5 대마도에서 꿈꾸는 대항해시대 – 8 +2 24.09.06 1,100 36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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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8 대마도에서 꿈꾸는 대항해시대 - 1 +3 24.08.30 1,231 39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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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6 대장선에 올라, 남쪽을 가리키다 – 7 +2 24.08.28 1,204 37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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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4 대장선에 올라 남쪽을 가리키다 – 5 +5 24.08.26 1,282 42 12쪽
53 대장선에 올라 남쪽을 가리키다 – 4 +1 24.08.25 1,303 40 12쪽
52 대장선에 올라 남쪽을 가리키다 - 3 +3 24.08.24 1,354 45 11쪽
51 대장선에 올라 남쪽을 가리키다 - 2 +1 24.08.23 1,406 39 12쪽
50 대장선에 올라 남쪽을 가리키다 - 1 +1 24.08.22 1,436 39 12쪽
» 물속에서, 바다에서 - 8 +1 24.08.21 1,430 44 12쪽
48 물속에서, 바다에서 - 7 +3 24.08.20 1,400 40 13쪽
47 물속에서, 바다에서 - 6 +1 24.08.19 1,424 46 12쪽
46 물속에서, 바다에서 - 5 +3 24.08.18 1,440 47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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