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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장선에 올라 남쪽을 가리키다 - 3

DUMMY

그 시각, 이순신은 깔끔하게 정돈된 지휘소에서 부하 장수들과 함께 앉아 있었다. 언제나 침착하고 단호한 표정, 그리고 날카로운 통찰력이 느껴지는 눈빛은 부하 장수들에게 위엄과 존경을 동시에 불러일으켰다.


“적 동태를 보고하시오.”


방답진 첨사 이영남이 포문을 열었다.


“적들은 거의 변함 없이, 며칠째 탈출을 시도하고 있습니다.”

“적의 사기가 크게 떨어진 것으로 보입니다. 오늘 아침에도 일곱 척이 침몰했고, 이제 그들에게 남은 배는 아흔 척에서 백 척 사이로 추정됩니다.”


여도진 만호 김인영이 보고했을 때, 원균이 재빨리 끼어들었다.


“좌수사, 백 척 아래라면, 아군 함선의 숫자가 더 많아졌고, 거북선 또한 큰 활약을 할 수 있지 않겠소? 이제는 우리가 들이칠 때라고 보오. 전 함선을 동원하여, 안골포로 들어가시는 게 어떻겠소?”


원균의 말을 듣고, 이순신은 애써 끓어오르는 분노를 억눌렀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그는 신중론을 펼쳤다.

조금 유리해지자, 이제는 먼저 들이치자고 한다.

일단, 이순신이 고개를 좌우로 저으며 그에게 말했다.


“장군, 단순히 숫자만으로 승패를 판단해서는 안 됩니다. 적은 지금 절박한 상황에 몰려있어요. 궁지에 몰린 쥐에게 물린 고양이가 될 수도 있단 말입니다. 자칫, 우리가 섣불리 공격했다간 도리어 그들에게 기회를 줄 수 있소이다.”

“어허, 이렇게 신중할 수가.”


원균의 인상을 찌푸렸지만, 이순신은 아예 그를 무시하고 다른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기다리면, 그들이 마지막 승부수를 던질 것이오. 어쩌면 그게 지금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소. 하여, 우리는 인내하되, 그들의 절박함을 최대한 이용해야 한다고 생각하오.”


모든 장수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이순신이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나 지도가 펼쳐진 탁자로 다가갔다.


“만약 적이 필사적으로 탈출을 시도한다면, 우리의 방심을 노릴 것이오. 지금까지 적이 계속 같은 방식으로 임했으니, 다음번에도 그렇게 할 거라는 우리의 방심 말이오. 해서, 정 만호.”

“네, 장군.”

“공은 쾌속선으로 여기 안골포 입구를 지키시오. 하지만 너무 가까이 가지 말고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길 바라오.”

“명을 받겠사옵니다.”

“김완, 자네는 판옥선 30척을 이끌고 여기 탈출로를 지키도록 하여라. 아마 적은 그 물길만을 이용할 것이다. 또한, 정걸 장군이 나대용과 함께 거북선을 이끌고 정 만호를 도와주시오. 적 발견 시 곧바로 협공할 수 있도록.”

“네, 명심하겠습니다.”

“그렇게 하겠소이다.”

“소장, 한 척의 배도 돌려보내지 않겠사옵니다.”


이렇게 전개되자, 원균은 불만스러운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작전이 끝나자, 오히려 혀까지 찼다.


“원, 사람이······. 저렇게 조심스러워서야. 작전도 저렇게 허술하고. 쯧쯧쯧.”


이 말에 지휘소 내의 분위기가 순식간에 얼어붙었다. 이순신의 부하 장수들은 분노와 경악을 감추지 못한 채 원균을 노려보았다.

일부는 탁자를 쳤고,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기까지 했다.


“뭐라 하셨소? 감히 그 많은 배를 자침시킨 장군이 작전을 논하시오?”

“염치도 없소! 만약 그 배들만 있었다면, 지금쯤 우리는 더 수월하게 전술을 운용할 수 있었을 거요!”


끊임없이 회자하는 자침, 그만큼 조선 수군에 뼈 아팠던 부분이다.

이는 원균에게도 마찬가지라서, 벌떡 일어설 수밖에 없었다.


“뭣이? 이것들이! 무엄하다!”


그때, 이순신이 손을 들어 부하 장수들을 먼저 제지했다.


“그만!”


비록 차분한 표정이었지만, 서늘한 기운이 감도는 이순신의 눈을 보며 다들 자리에 앉았다.


“모두 우리가 늘 같은 편이라는 걸 잊지 마시오. 서로 믿고 협력해야 할 때요. 개인의 공명심은 잠시 접어두시고 큰 그림을 보시기 바라오.”


이 말에도 원균은 여전히 고깝다는 표정을 지우지 않았는데, 그때 밖에서 보고가 들어왔다.


“장군, 세자 저하의 서신이 당도했다고 하옵니다.”


전쟁 영웅 세자의 서신이라니? 그에 대한 소문도 익히 들었고, 지난번 송희립이 직접 보고 와서 한 말도 떠올랐다.


- 저하께서는 전략과 전술에 조예가 깊으실 뿐만 아니라, 문무 대신 골고루 기용하신다는 느낌을 받았사옵니다. 더군다나 늘 경청하며, 현명한 판단을 내리시는 것 같았사옵니다.


이순신은 얼른 파발을 알리는 이를 들게 했다.

그리고 아들 이회에게 서찰을 읽도록 지시했다.

곧 그가 서찰을 펼쳐 읽기 시작하자 지휘소 안의 모든 이들이 귀를 기울였다.


“전라 좌수사 순신, 들으라.


왜적의 침입이 날로 심해지는 이 위급한 상황에서 그대의 공로를 높이 치하하노라. 하나, 국가의 안위를 위해 몇 가지 중대한 결정을 내렸음을 알리고자 한다.


첫째, 전라 좌수사 순신 이외에 크고 작은 공을 세운 장수들에 대한 논공행상이 그간 박했도다. 하여, 적절한 논공행상을 위해 내가 직접 거제도로 갈 터이니, 공을 세운 모든 장수와 함께 기다리도록 하여라. 단, 만약에 적과 교전 중이라면, 나를 굳이 신경 쓰지 않아도 좋다.


둘째, 경상 우수사 원균을 삭탈관직한다. 그의 무능과 패전으로 인해, 나라의 운명은 풍전등화 일보 직전까지 갔다. 마땅히 중죄로 다스려야 하나, 지금은 전시이기에 백의종군으로 공을 세우라, 명한다······. 후에, 내가 도착해서, 그를 따로 처리하겠노라.”


마지막 부분은 너무 뜻밖이라서, 이회의 목소리가 작아졌다.

지휘소의 분위기도 숨죽인 채, 침묵에 휩싸였다.

그때, 창백해진 얼굴의 원균이 갑자기 벌떡 일어났다.


“말도 안 되는 소리! 내가 무능하다고? 이, 이건······, 뭔가 잘못됐어!”


원균은 이회에게 달려들어 세자의 서찰을 거칠게 낚아챘다.


“······!”

“······!”


순간, 모든 이의 얼굴에 경악과 공포가 스쳐 지나갔다.

지휘소 안의 공기도 삽시간에 얼어붙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여기 있는 사람들은 모두 전시 조정을 나누고, 세자에게 전권을 위임한다는 임금의 교지를 받았다.

따라서, 세자의 서찰은 교지나 다름없다.

그런 교지를 함부로 다루는 것은 중죄 중 중죄, 필요에 따라 즉결 처분도 가능한 일이었다.

당연히 이순신에게는 그동안 참고 참았던 인내의 끈이 끊어지는 순간이었다.


“원균!”


이순신의 호통 소리가 지휘소 안을 울렸다.


“당장 그 서찰을 내려놓으시오.”

“뭐, 뭐라?”

“지금 당신이 하는 행동이 어떤 의미인지 알고 있소?”


그제야 원균은 흠칫 놀라서, 자기 행동이 얼마나 무모했는지 깨달은 듯 말을 더듬었다.


“그, 그게 아니라······.”


하지만 서릿발 같은 이순신의 표정을 보고 입을 닫았다.

자기도 모르게 이순신의 허리에 찬 칼이 유독 눈에 들어왔다.


‘서, 설마 진짜 즉결 처분까지 하는 건 아니겠지?’


그때 원균을 살리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장군! 왜적이 탈출을 시도하고 있습니다!”


이순신은 잠시 눈을 감았다. 그러다가 짧은 순간 생각을 정리하고 즉시 입을 열었다.


“지금 우리 앞에 놓인 것은 나라의 운명이오.”


그의 목소리는 차분했지만, 그 안에는 강철같은 의지가 담겨 있었다.


“원균의 처사는 후에 논하기로 하고, 지금은 눈앞의 적을 물리치는 데 집중해야 하오. 다만······.”


여기서 이순신은 잠시 말을 멈추고 원균을 바라보았다.


“그대는 이번 전투가 끝날 때까지 따로 계셔야 할 것 같소. 여봐라, 원균을 안전한 곳으로 호송하라.”


원균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그의 마음속에서는 두려움과 후회, 분노가 뒤엉켰다.


‘이럴 순 없어. 내가 여기까지 오는 데 얼마나 죽을힘을 다했는데······’


다시 항변하려 했지만, 이순신의 서릿발 같은 눈빛과 마주하자마자 할 말이 쏙 들어갔다.

실은 그럴 틈도 없이, 이순신이 명령을 내렸다.


“모두 전투 준비에 임하라!”


* * *


이순신의 명령이 떨어지자마자 지휘소는 순식간에 긴장된 움직임으로 가득 찼다.

김완은 즉시 밖으로 나가 판옥선 30척의 준비 상태를 점검하기 시작했고, 정걸과 나대용은 거북선 주변으로 뛰어가며 마지막 점검을 서둘렀다.

그런가 하면, 정운은 쾌속선 승무원들에게 신속히 지시를 내리며 출발 준비를 했다.

이영남과 김인영 역시 각자의 부대로 돌아가 전투태세를 갖추도록 독려했다.

이 모든 과정이 한치의 시간 낭비 없이 톱니바퀴처럼 이루어지니, 입구에서 교전하던 일본의 수군이 미처 빠져나가기 전에 조선의 수군은 진용을 갖출 수 있었다.

사실은 아슬아슬했다. 입구에서 대기하던 판옥선들이 처음 열 척의 왜군 함선을 침몰시키자마자, 아흔 척에 가까운 적의 함선이 튀어나왔기 때문이다.

당시, 이곳을 담당하던 이가 전라 우수사 이억기였다. 마음이 급한지 그는 재빨리 부하들에게 물었다.


“좌수사께 보고가 되었느냐?”

“아마 지금쯤······, 어? 보입니다! 오고 있습니다!”

“그야말로 하늘이 도왔구나. 하하하.”


이순신의 배로 보이는 대장기가 눈에 들어오자, 이억기가 활짝 웃었다.

물론 이것도 잠깐이다.


“어서 뒤를 쫓아라! 좌수사와 협공해서, 일망타진할 기회가 왔다!”


이억기의 명령에 부관이 소리를 질렀다.


“전속력으로 노를 저어라!”


그 소리가 아래로 전달되고, 노가 세차게 저어지며 배에 속도가 붙었다.

다만 이억기의 배보다 더 빠르게 왜 함선을 쫓는 쾌속선이 있었으니, 바로 정운이 운용하는 함선이었다.

두무악선(頭無岳船)이라고 불리는 이 쾌속선은 원래 성종 때 어업용으로 만든 배를 개조한 것.

특히, 해적이 빈번한 남해에서 활약했는데, 이순신이 적극적으로 도입하여 이처럼 속도가 필요할 때 쓰임새가 있었다.

지금도 왜 함선에 바짝 붙으면서, 정운이 명령을 내린다.


“포가 준비되면, 바로 발포하라!”

“포가 준비되면, 바로 발포하라!”


정운의 명에 복명복창이 즉시 이어졌고, 준비된 천자총통이 불을 뿜었다.


쾅!


드디어 이순신의 함선이 자랑하는 대장군전이 또 한 번 그 위용을 드러냈다.

사실 이 무기는 명종 때 만들어졌다.

단, 제대로 활용하는 곳은 이순신의 수군밖에 없었으니, 그가 얼마나 전쟁을 대비해 왔는지 알 수 있었다.

이 대장군전에 사람이 맞으면 즉사요, 배에 떨어지면 갑판을 뚫고 바닥까지 구멍을 내버린다.

지금 몇몇 함선이 그랬다.


“도노! 바닷물이 차오릅니다!”

“보고는 나중에 해도 된다! 어서 막아라!”


그러나 말이 쉽지, 또 날아오는 대장군전에 속수무책이다.

그동안 왜 이순신이 승승장구했겠는가.

전략도, 전술도, 그리고 무기도, 실상 모든 면에서 왜군을 압도했기 때문이다.

함선의 숫자만 제외하고 말이다.

그리하여 이번에 도쿠이 미치유키가 세운 탈출 작전도 거의 실패로 돌아가기 일보 직전이었으니.


“도노! 저기 적 함선이······.”


가장 앞에서 도망치던 도쿠이 미치유키의 눈앞이 캄캄해졌다. 언제 나타났는지, 수많은 판옥선이 다가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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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3 대장선에 올라 남쪽을 가리키다 – 4 +1 24.08.25 1,303 40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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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 대장선에 올라 남쪽을 가리키다 - 1 +1 24.08.22 1,436 39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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