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혼 광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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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7.06 09: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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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마도에서 꿈꾸는 대항해시대 - 1

DUMMY

무더운 열대의 햇살이 믈라카 항구를 내리쬐던 그날, 나는 흥분된 마음을 안고 조선에서 온 상선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잠시 후면, 나의 품에 세계 각지를 누비며 보아온 그 어떤 도자기보다 아름다운 조선의 청자와 백자들을 품을 수 있으리라.

아마 포르투갈과 스페인 왕족들과 귀족들은 천금을 주고 가지려고 하겠지?

다만 까다롭다고 이름난 류낌이 과연 내가 원하는 가격에 맞춰줄 수 있을지······.


(중략)


나는 그에게 최근 배운 조선어로 인사했다.


“낌, 만나서 영광입니다.”


그는 마음에 안 든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페레이라, 반갑습니다. 그런데 우리 도자기에 관심이 있으시다고요?”


어찌 된 일인지, 그는 포르투갈어를 웬만큼 구사했다. 물론 이때부터 통역을 썼지만 말이다.


“네, 그렇습니다. 유럽에서 조선의 도자기는 황금보다 귀한 대접을 받고 있지요. 특히 순백의 달항아리는 그 아름다움이 타의 추종을 불허합니다.”


(중략)


우리의 협상은 뜻밖에 지점에서 진행되지 않았다.

가격이 문제가 아니라, 믈라카 해협에 조선의 무역 거점을 만들고 싶다는 류낌의 제시 때문이었다.


“죄송한데, 그건 제가 결정할 수 있는 사항이 아닙니다.”

“그렇다면 이 도자기는 당신에게 팔 수 없습니다.”

“아니, 그런······.”

“당신 말고도 우리 도자기를 원하는 상인은 많습니다. 에스파냐도 있고, 네덜란드도 있고, 잉글랜드도 있죠.”


류낌은 내 말을 중간에 자르고, 서둘러 상자들을 닫았다. 좀 전까지, 눈부시게 하얀 달항아리와 청화백자, 섬세한 무늬가 새겨진 분청사기들이 순식간에 내 시야에서 사라졌다.

나는 침을 꿀꺽 삼켰다.


“잠깐! 제가 설득해 보겠습니다!”


착각인지 모르지만, 류낌의 얼굴에 사악한 미소가 번지는 느낌이었다.


(후략)


마누엘 페레이라의 <조선 제국의 상인들과 거래하는 방법> 중에서


* * *


김충선을 내보낸 광해는 김류의 묘한 시선을 느꼈다.


“왜? 뭐?”

“저하의 뜻이 궁금해서요. 이렇게까지 출정을 강행하시는 이유 말입니다.”


이혼은 피식 웃었다.

원래 대마도 점령 계획을 함께 논의하면서, 광해가 직접 배에 타는 내용은 다뤄지지 않았다.


“비효율적인 거, 아시지 않습니까?”

“그건 따져봐야 하는 거고.”

“설마 노파심이 드셔서 그런 겁니까? 충무공과 제가 대마도를 점령 못 할까?”

“그럴 리가 있겠어?”


이순신은 뛰어난 장수이며, 조선 수군은 원래의 역사보다 훨씬 더 그 전력이 보존된 상태였다.

어느덧 함선만 백 척을 넘어가고, 현재도 어선을 개조하는 중이라서 점점 많아지고 있었다.

여기에 거북선도 네 척이나 존재했으니, 정벌을 이순신에게 맡기고 광해는 다른 일을 하는 것이 더 효율적일 수 있었다.


“다만 이번이 아니면, 내가 앞으로 충무공과 함께 출정할 날이 있겠나, 싶어서. 내 말이 틀려?”

“아······.”


질문의 형태였으나, 김류는 광해가 대마도 정벌에 직접 나서는 이유를 알아챘다. 아마도 이번 기회를 놓치면, 광해는 이순신의 배에서 적을 무찌르는 장면을 볼 날이 없을 것이다.


“너도 알다시피, 이번에 대마도를 정복하면, 나는 조선 땅에서 마지막 총력전을 벌일 거야. 그 후 나는 다시 한양으로 가게 될 것이니, 지금의 기회가 처음이자 마지막 경험이 될 수밖에 없잖아.”

“제가 저하의 심정을 알지 못하였군요.”

“그나마 가장 위험하지 않을 정벌에 나서는 것이다. 그러니 김류야, 너는 나를 막지 말아다오.”

“하하······. 누가 감히 저하의 앞길을 막겠사옵니까? 앞으로도 원하신다면, 직접 정벌에 나서실 수 있는 분이 저하 아니오이까?”


말은 그렇게 했지만, 김류는 잘 알고 있었다.

일단 전쟁이 끝나면, 광해는 선조와 권력을 두고 싸워야 한다.


‘어쩌면 그게 더 치열하려나?’


그래도 사전 작업을 많이 해놨다.

세자는 전쟁 영웅임과 동시에, 전시 조정을 통해서 신민을 감복시켰다.

여기에 선조의 권위가 꽤 추락했다.

뒤늦게 들었는데, 피란을 가다가 승전 소식을 듣고 멈췄다지 않았던가.

그 후, 광해가 충분한 군량을 더 보내달라고 해서, 사대부들 창고까지 건드렸단다.

왕에게 실망하고, 앙심을 품은 자들이 없지 않을 터, 선조를 허수아비 왕으로 만들 빌드업은 현재 진행 중이었다.

그래서 김류가 허세를 품은 약속 하나 던진다.


“단순히 왜적을 몰아내고, 대마도 하나를 점령한 것으로 만족할 수는 없지요. 저하는 언젠가 오대양과 여섯 개의 대륙을 누비게 될 것입니다.”

“말만 들어도 가슴이 벅차네.”

“소신, 말뿐이 아니라는 것을 반드시 증명하겠사옵니다!”


한쪽 무릎까지 꿇은 김류를 보며, 광해가 피식 웃었다.


‘제발, 그럴 날이 빨리 오길.’


* * *


출발은 다음 날 새벽이었다.

새벽안개가 채 걷히기도 전에, 광해는 준비를 끝내고 대장선에 올랐다. 선상에서 수평선을 바라보니, 차가운 바닷바람이 그의 옷자락을 살랑거렸다.

그때, 이순신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저하, 준비가 끝났사옵니다.”

“그럼, 출항하시오.”

“네, 저하.”


곧 이순신의 명령을 받은 송희립의 우렁찬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출항하라!”


격군들이 노를 젓는 동시에, 대장선과 수많은 함선이 물결을 가르는 소리가 들렸다.

광해는 배가 움직이자 드디어 실감했다.


‘기어이 가는구나.’


뒤를 보니, 수십 척의 함선들도 따르고 있었다. 광해는 갑판 위에서 점점 멀어지는 해안선을 바라보며 깊은숨을 내쉬었다.


“후······.”


항해는 순조로웠다. 그만큼 점령도 어렵지 않길 바라는 마음이었다.

그래서였는지, 광해는 이순신, 김류와 함께 전략을 논의하고 군사들을 격려하며 시간을 보냈다.

이 때문인지, 금세 희미한 대마도의 윤곽이 보이기 시작했다.

어차피 거제도에서 대마도까지, 반나절도 안 걸리는 거리.

광해는 맑은 하늘 아래 드러난 대마도를 보며 빙그레 웃었다.

물론 이것도 잠시였다.

해안이 선명하게 보이자, 이순신의 나지막한 목소리가 들어왔다.


“저하, 지금부터는 위험하오니, 안전할 때까지 절대 고개를 내미셔서는 안 되옵니다.”

“알았소. 걱정하지 마시오.”


사실은 대답만 했다.

아무리 이순신의 말이라도, 광해는 귓등으로 듣고 전방을 주시했다.

대장선이 해안에 가까이 다가갈수록, 선명하게 보이는 해안가.

몇몇 어선들이 정박해 있었고, 바다와 멀지 않은 마을에서는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었다.

목표지점은 그곳이 아니었기에, 대장선을 위시한 함선들이 유유히 해안가와 거리를 둔 채 지나가고 있었다.

작은 섬도 하나 보였는데, 그 누구보다도 이순신이 놀라고 있었다.


‘이렇게 정확할 수가!’


그는 이미 김류가 준 지도를 들고 있었다.

크게 북쪽의 상도(上島)와 남쪽의 하도(下島)로 나뉜 대마도, 남북의 안쪽에 있는 복잡한 해안선마저도 정교하게 그려져 있었다.

지금 지나치는 섬은 우도(牛島)였는데, 이쯤 되면 지도의 정밀함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물론 지도는 적의 함선 위치까지 알려주지 않았으니, 이순신은 계속해서 경계를 게을리하지 말라고 신호를 주었다.

그런데 잠시 후, 가장 앞서 나간 배에서 신호가 들어왔다.

송희립이 그걸 보고, 즉각 보고했다.


“적 함선을 발견한 거 같습니다.”


이순신이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가장 앞에 세운 함선들은 조선의 그것이 아니다.

그동안 전투에서 빼앗은 안택선 몇 척에 김충선과 준사 등, 항왜 1,200명을 태웠다.

지난 4월, 이미 그들은 대마도를 거쳐서 조선에 들어왔다.

즉, 여기 있는 그 누구보다도 대마도를 잘 알 수밖에 없었으니, 그들에게 첨병을 맡기는 것은 당연했다.

여기까지 생각했을 때, 적 함선의 숫자도 들어왔다.


“두 척이랍니다! 교전에 들어갔다고 하옵니다.”

“벌써 교전에 들어갔다?”

“아무래도 충선과 준사 등이 탄 배가 왜 함선이었기에, 적이 자기네 편으로 착각한 모양입니다.”


이순신도 그 정도는 짐작한다.

그런데도 송희립과 계속 대화를 나누는 이유는 아까부터 눈에 호기심을 가득 내보인 세자에게 들려주기 위해서다.

단, 그는 세자의 안위를 책임져야 하는 몸.


“저하, 아군과 적이 싸우고 있사옵니다. 아무리 궁금하셔도, 옥체를 보존하셔야 하옵니다.”

“걱정하지 마시오. 내, 알아서 하겠소.”


이순신은 쓴웃음을 입에 물었다.

알아서 하겠다는 의미는, 결코 거북이처럼 움츠러들지 않겠다는 뜻.

결국, 방패를 들고 있는 수병들에게 눈으로 신호하며, 저하를 죽을힘을 다해 보호하라고 표현할 수밖에 없었다.


‘참, 신기한 분.’


이윽고, 대장선 등 조선의 함선이 안택선끼리 바싹 붙은 곳에 다다르게 되었다.

이쯤에서 세자와 김류의 대화가 들려온다.


“역시 백병전이로군.”

“어쩔 수 없죠. 세키부네는 함포를 매달 수 없으니까요.”

“하지만 언젠가 우리도 저런 배를 만들어야 할 것이다.”

“그래도 되고, 왜적들한테 계속 빼앗아도 됩니다. 정 안 되면, 대마도에서 배를 만들 수 있는 놈들한테 시켜야죠.”

“이참에 조금 개조하는 것도 나쁘지 않을 듯싶어.”

“지당하신 말씀이옵니다.”


세키부네가 중형 안택선이라는 뜻은 이미 준사 등 항왜들끼리 이야기하는 것을 들은 바 있었다.

그런데 앞으로 그 배를 만든다고?

왜일까? 방어가 아닌 공격용 배를 만드는 이유가?


‘음······.’


이순신은 왠지 모르게 세자가 품고 있는 야심을 어렴풋이 읽을 수 있었다.

물론 이 생각도 잠시였다.

곧 교전 상황의 세키부네 두 척이 눈에 들어왔다.

아니, 거의 마무리되는 시점이라고나 할까?

배 위에서는 시체가 여기저기 널브러져 있었는데, 그 뒤로 왜적들이 무릎을 꿇고 있었다.

그때, 대장선이 가까이 왔다는 걸 확인한 김충선과 다른 항왜 장수들이 갑판 위로 나와 한쪽 무릎을 꿇었다.

그들의 얼굴에는 승리의 기쁨이 가득했다.


“저하!”


대표로 김충선이 우렁찬 목소리로 외쳤다.


“첫 전투에서 승리했사옵니다!”


다른 항왜 장수들도 연이어 외쳤다.


“저하, 소장, 선봉에 서서 대마도를 바치겠사옵니다!”

“저하, 저도 그렇게 하겠사옵니다!”


이 장면을 이순신은 짐짓 놀랐다.


‘이런 방식으로 왜적과 싸운다······?’


지금까지 수전에서는 백병전은 그렇게 많지 않았다.

아니, 배 위에서 싸웠어도, 주로 등선을 당하는 편이었다.

그런데 이번 작전은 세자와 김류의 의견을 많이 반영했으니, 항왜를 활용하여 왜적을 치는 방식의 결과가 이렇게 나왔다.

야차와 같은 항왜들은 흉포한 왜적을 쉽게 제압할 수 있었다.

여기까지 생각한 이순신이 뒤를 돌아봤다.

그리고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뒷짐을 진 세자에게 여쭸다.


“저하, 포로로 잡은 왜적을 통해, 섬의 상황을 알아보도록 하겠사옵니다.”

“그렇게 하시오.”


세자의 명령이 떨어지자, 이순신이 노획한 세키부네를 향해서 외쳤다.


“부교를 내려 항복한 자들을 데려오도록 하라.”


곧 부교가 내려지고, 포로들이 대장선으로 올라왔다.

그들의 얼굴에는 공포와 혼란이 가득했는데, 광해가 직접 나서서 말했다.


“나는 조선의 국본, 세자니라.”

“······!”

“내, 바른대로 말하면, 너희를 살려줄 것이니라.”


거제도에서부터 확인한 광해의 유창한 일본어는 들을 때마다 이순신을 놀라게 하고 있었다.

지금 항복한 왜인들은 어떻겠는가?

조선의 세자라니? 이걸 믿어야 하나?

일순간 뇌가 정지한 모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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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1 이간계, 반간계, 삼십육계 – 6 +2 24.09.12 798 25 12쪽
70 이간계, 반간계, 삼십육계 – 5 +3 24.09.11 881 28 13쪽
69 이간계, 반간계, 삼십육계 – 4 +3 24.09.10 908 28 13쪽
68 이간계, 반간계, 삼십육계 - 3 +2 24.09.09 956 33 13쪽
67 이간계, 반간계, 삼십육계 – 2 +3 24.09.08 1,059 33 12쪽
66 이간계, 반간계, 삼십육계 - 1 +2 24.09.07 1,038 36 12쪽
65 대마도에서 꿈꾸는 대항해시대 – 8 +2 24.09.06 1,099 36 12쪽
64 대마도에서 꿈꾸는 대항해시대 – 7 +1 24.09.05 1,053 38 12쪽
63 대마도에서 꿈꾸는 대항해시대 – 6 +4 24.09.04 1,050 40 13쪽
62 대마도에서 꿈꾸는 대항해시대 - 5 +4 24.09.03 1,110 40 11쪽
61 대마도에서 꿈꾸는 대항해시대 - 4 +1 24.09.02 1,136 38 12쪽
60 대마도에서 꿈꾸는 대항해시대 - 3 +4 24.09.01 1,126 38 12쪽
59 대마도에서 꿈꾸는 대항해시대 - 2 +1 24.08.31 1,163 40 12쪽
» 대마도에서 꿈꾸는 대항해시대 - 1 +3 24.08.30 1,230 39 12쪽
57 대장선에 올라, 남쪽을 가리키다 – 8 +4 24.08.29 1,244 44 11쪽
56 대장선에 올라, 남쪽을 가리키다 – 7 +2 24.08.28 1,204 37 11쪽
55 대장선에 올라, 남쪽을 가리키다 - 6 +6 24.08.27 1,255 42 12쪽
54 대장선에 올라 남쪽을 가리키다 – 5 +5 24.08.26 1,281 42 12쪽
53 대장선에 올라 남쪽을 가리키다 – 4 +1 24.08.25 1,302 40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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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 대장선에 올라 남쪽을 가리키다 - 2 +1 24.08.23 1,405 39 12쪽
50 대장선에 올라 남쪽을 가리키다 - 1 +1 24.08.22 1,435 39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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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8 물속에서, 바다에서 - 7 +3 24.08.20 1,400 40 13쪽
47 물속에서, 바다에서 - 6 +1 24.08.19 1,424 46 12쪽
46 물속에서, 바다에서 - 5 +3 24.08.18 1,438 47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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