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혼 광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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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스토리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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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7.06 09: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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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장선에 올라 남쪽을 가리키다 – 4

DUMMY

도쿠이 미치유키는 이번 탈출 작전이 얼마나 허술했는지 깨달았다.


‘이런, 적의 본진이 근처에 있었어······.’


실은 이런 전개를 알면서도, 스스로 최면을 걸었던 것 같았다.


‘이대로 계속 가는 게 좋을까?’


미치유키가 잠시 주저하자, 더 큰 재앙이 다가왔다.


“복카이센! 복카이센이 나타났다!”

“해저 괴물이다!”


복카이센, 해저 괴물, 구선, 그리고 거북선.

전부 같은 말이다. 그리고 같은 의미도 지니고 있었다.

공포의 대명사, 바로 그것이었다.


“으아······.”

“우린 죽었다······.”


일본 병사들의 절망이 함선을 가득 메웠다.

미치유키의 얼굴도 창백해졌다. 그는 이미 첫 교전에서 거북선과 마주한 적이 있었다.


“복카이센이라니······.”


그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거북선이 함포를 쏘며 거침없이 진격해 왔다.

연기와 불꽃이 튀는 가운데, 일본 병사들은 공포에 질려 우왕좌왕했다.


“도, 도노! 어떻게 해야 합니까?”


부관들이 물어보지만, 미치유키는 하얗게 공백이 된 머릿속에서 작은 묘수 하나도 떠올릴 수 없었다.

뒤에는 조선의 쾌속선이 쫓아오고, 앞에는 판옥선과 거북선이 막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계속 가만히 있을 수는 없는 법.


“앞을 뚫고 간다. 그리고 등선(登船)을 준비한다.”


등선, 즉, 배에 오른다는 의미는 백병전을 감수하겠다는 뜻. 애초의 작전은 삼십육계 퇴각이었는데, 지금은 상황이 달라졌으니······.


“서둘러라. 어서!”

“네, 도노!”


곧 변경된 명령을 전하는 뿔 나팔 소리가 울려 퍼졌다.


뿌우우~ 뿌우우~


같은 시각, 조선의 대장선에서는 이순신의 우렁찬 목소리가 들려왔다.


“전 함대, 한 척도 놓치지 말고 모조리 격침해라! 오늘 모든 화약과 대장군전을 다 써도 좋다! 준비되는 순간 발포하라! 거북선은 당파로 적 함선에 돌격하라!”


이순신의 명령에 명령 깃발이 휘날리고, 북소리 또한 전장에 휘몰아쳤다.


둥! 둥! 둥!


일정 간격으로 나오는 북소리에 일본군은 미칠 지경이었다.

바다는 순식간에 혼돈의 도가니로 변했다. 이순신의 우렁찬 목소리가 전장을 가로질렀다.


“공격을 늦추지 말아라! 거북선은 당파로 적 함선에 돌격하라!”


둥! 둥! 둥!


북소리와 깃발이 주는 명령 신호에 따라, 모든 거북선이 마치 살아있는 괴물처럼 움직이기 시작했다.


“복카이센이다! 피해라!”


일본 병사들의 비명이 울려 퍼졌지만 이미 늦었다.

미치유키의 대장선도 마찬가지.

정걸의 거북선이 뾰족한 앞부분을 앞세워 거칠게 들이받았다.


쾅!


엄청난 충격에 미치유키의 배가 크게 흔들렸다.

순간적으로 미치유키는 균형을 잃고 갑판에 쓰러졌다. 주변에서는 비명과 함께 병사들이 물속으로 떨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혼비백산한 미치유키는 그 무엇도 할 수가 없었다.


“이, 이럴 수가······.”


미처 일어나기도 전에 두 번째 충격이 왔다. 이번에는 배의 중앙을 강타했고, 나무가 으스러지는 소리와 함께 배가 두 동강 나기 시작했다.


쩌적······!


물이 빠르게 차올랐다.


“이, 이런······.”


미치유키는 절망 속에서 주변을 둘러보았다.

사방에서 일본 함선들이 불타오르며 침몰해 가고 있었다.

공포에 질린 비명이 바다를 뒤덮었지만, 이미 늦었다.

조선의 판옥선과 쾌속선이 사방을 에워싸고 있었기 때문이다.


‘끝났구나······.’


침몰하는 배와 함께 수장되어 가며, 미치유키의 머릿속엔 마지막 순간 두 사람의 모습이 스쳐 지나갔다.


‘관백, 반드시 조선을 멸하소서.’

‘그런데 이순신을 어떻게 하지 않고서는 절대 그 천년대계에 성공할 수 없을 것이옵니다······.’


* * *


한편, 정운의 쾌속선은 적선들 사이를 빠르게 가로지르며 오늘 가장 큰 활약을 펼치고 있었다. 그의 재빠른 판단력과 날카로운 지휘로 여러 적선을 격파하는 데 성공했기 때문이다.

지금도 그랬다.


“좌현으로! 저 배를 노려라!”


정운의 외침과 함께 쾌속선이 날쌔게 방향을 틀었다.

순간, 적선의 측면에 접근해 일제히 포를 쏘아댔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정운의 배는 적진 깊숙이 들어가게 되었고, 곧 위험한 상황에 빠지게 되었다.


“이, 이런······.”


정운도 아군과 떨어졌다는 것을 뒤늦게 알고, 낭패의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이 순간에도 결연한 각오를 다졌다.


“모두 힘을 내라! 우리가 여기서 버텨야 다른 아군들이 승리할 수 있다!”


정운의 외침에 부하들도 필사적으로 싸웠다. 하지만 적의 포격이 쾌속선의 옆구리를 강타했고, 배가 크게 기울었다.


“장군님······, 배가······.”


정운은 고개를 끄덕였다. 호랑이를 닮은 눈에는 이미 죽음을 각오한 빛이 엿보였다.


“좋다. 우리의 최후가 적에게 공포가 되게 하자. 남은 화약을 모두 모아라!”


부하들이 놀란 눈으로 김완을 바라보았다.


“배가 침몰하는 순간, 우리와 함께 적선을 수장시키겠다. 조선 수군의 기개를 보여주자!”


정운의 말에 부하들은 숙연해졌다가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그들은 빠르게 움직여 남은 화약을 한곳에 모았다.

물이 빠르게 차오르는 가운데, 정운은 마지막으로 대장기를 향해 묵례했다.


“장군, 저 먼저 가겠습니다······.”


그 순간 적선이 쾌속선에 부딪혔고, 엄청난 폭발음과 함께 불기둥이 하늘로 치솟았다.


* * *


정운이 마지막으로 떠올린 이순신은 이때 미치유키의 함선이 침몰하는 것을 확인하고 있었다.

불현듯, 좋지 않은 예감에 이순신이 조선의 수군 상황을 살폈고, 곧 걱정의 그림자가 스쳐 지나갔다.


“음, 쾌속선 중에 정 만호의 배가 보이지 않는구나.”


아무리 전쟁 중이지만, 부하를 아끼는 마음이 차올랐다. 그때였다. 이순신의 마음을 아는지, 누군가가 급하게 달려와 보고했다.


“장군! 정 만호의 쾌속선이 적에게 포위당했다고 하옵니다!”


마지막 발악인가? 하나라도 물귀신처럼 발목을 잡고 지옥으로 함께 가려는?

대장선이 침몰하는 것을 보는 기쁨도 잠시, 전장의 냉혹한 현실이 그를 덮쳤다.


“김완에게 명하라. 즉시 정운의 함선을 구원하라고! 나대용도 함께 가서 거북선으로 포위를 뚫어라!”


물론 아직 끝나지 않은 전투도 독려하는 것을 잊지 않았다.


“좋다. 이대로 계속 압박하되, 차근차근 배 한 척씩 침몰시킨다! 한 놈도 놓치지 마라!”


여러 명령이 한꺼번에 떨어지고, 조선 수군은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다.

곧 바다 위에 파편과 시체가 떠다녔고, 곳곳에서 일본 함선들이 불타오르며 침몰해 갔다.

마땅히 기뻐해야 하건만, 이순신의 얼굴에는 깊은 고뇌 또한 서려 있었다.

그는 승리의 대가로 치러야 할 희생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는 사람이다.


‘오늘도 내 명령 하나에 많은 목숨이 사라졌구나······.’


이순신은 묵묵히 전장을 바라보며, 승리의 짐을 홀로 짊어지고 있었다.


* * *


전투가 끝났다. 적함은 무려 여든두 척이 침몰했으며, 남은 열다섯 척도 항복을 표시했다.


“우리의 피해 상황은?”


다시 지휘소로 돌아온 이순신이 곁에 있던 아들 이회에게 묻자, 곧바로 대답이 들려왔다.


“쾌속선 세척, 포작선 네 척이 침몰했고, 판옥선 두 척이 크게 파손되었습니다. 사상자는 아직 정확히 집계되지 않았으나, 이백 명은 넘을 것으로 보이고······. 만호 정운이······ 전사하였사옵니다.”

“음······.”


마지막에 울컥하는 이회의 목소리를 들으며 이순신도 순간적으로 입을 열지 못했다.

끝내, 정운을 구하지 못하였다.

승리의 기쁨보다는 깊은 허무함을 느끼며, 이순신은 잠시 눈을 감았다.

분명, 오늘의 교전이 끝났는데, 어디에선가 귓가에 울리는 함성과 비명, 포성이 뒤섞인 소리가 멎지 않는 것 같았다.

그래서 다시 눈을 떴다.


‘그래, 더 많은 이들을 지켜내려면, 이 전쟁을 하루빨리 끝내야 해.’


밀려오는 슬픔을 꾹 참고 이순신은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랬구나······. 안타깝다. 장례를 잘 치러주도록 하라.”

“네, 아버님.”


무거운 목숨값 하나가 더 그의 어깨 위에 추가되었다.

이럴 때마다 함께 나눌 사람이 필요했는데, 지금 이순신의 머리에 한 사람의 이름이 떠오른다.


‘저하······.’


아직 만나보지 못한 세자. 소문으로는 들은 내용을 곱씹었다.

그의 뛰어난 지략과 판단력, 그리고 확실한 신상필벌과 백성에 대한 애정까지.


‘이 전쟁의 흐름을 바꾸신 분.’


이순신은 세자와의 만남에 대한 기대를 품었다.

논공행상을 위해 호출했다고는 하나, 왠지 그게 다가 아닐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그래, 저하를 뵙고 이야기를 들어봐야겠다.’


잠시 생각에 잠겼던 이순신이 수평선 멀리 바라보았다.

언제쯤 오시려나······.


* * *


그 시각, 한양에서는 광해의 장계가 도착했다.

임금 이연은 긴장된 표정으로 이항복에게 읽게 했다.


“불초 소신 광해, 삼가 아뢰옵니다. 경주에서 팔로군을 편성하여 남하를 시작했사옵니다. 각 군의 지휘관은 다음과 같사옵니다.”


광해의 장계는 늘 소상하기 이를 데 없었다. 이번에도 그랬고, 한참이나 지휘관과 편제를 들을 수밖에 없었다.

이어지는 내용은 다음과 같았다.


“소신은 왜적의 잔당을 울산과 부산으로 몰아넣을 전략을 세웠사옵니다. 하오나 이를 위해서는 충분한 보급이 필요하오니, 특히 군량을 넉넉히 보내주시기를 간곡히 청하옵니다.”


이연의 눈썹이 살짝 찌푸려졌다. 이항복 역시 잠시 눈치를 보았으나, 계속 읽어 내려갔다.


“또한, 소신은 직접 남해로 가서, 이순신과 함께 수륙 섬멸 작전을 펼치고자 하옵니다.”


여기서도 왜 그래야 하는지, 당위성이 자세히 적혀있었다.

마지막에는 이런 말로 장식되었다.


“더불어 불초 소신, 왜적이 잡아간 우리의 포로들을 반드시 구출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겠사옵니다.”


장계를 다 들은 이연의 얼굴에 복잡한 기색이 스쳤다.

국본이 직접 바다로 나간다니, 이는 너무나 위험한 일이었다. 말리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으나, 이미 출발했을 터이니 늦었다고 판단했다.


‘그런데 포로를 구해?’


전쟁 중에 포로가 생기는 건 당연했다.

이미 조선에도 한양으로 압송되어 온 소 요시토시와 고니시 유키나가, 가토 기요마사 등이 있지 않은가.

당연하게도 왜적이 잡은 포로 중 상당수가 저 멀리 일본에 가 있을 확률이 높았다.


‘거기까지는 너무 과하다.’


그래도 이연은 여기서 생각을 줄였다. 설마하니, 세자가 왜적의 근거지를 공격하리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실은 더 큰 문제가 그의 머리를 아프게 했다. 그게 바로 군량 요청이었다.

조선은 현재 경상도가 왜적에 침탈당해 세금 걷기도 힘든 상황이었다. 부족한 세수로 전쟁까지 치르다 보니, 더는 보낼 식량이 없었다.

그러나 전쟁의 승리를 위해서는 보급이 최우선이었기에, 이연은 고민 끝에 결단을 내렸다.


“사대부에게 전하라. 십시일반으로 군량을 보태라고 하여라.”


신하들이 잠시 망설였지만, 이들도 어쩔 수 없이 임금의 명을 받들어 나갔다.

그러자 곧 한양의 양반들 사이에서 다양한 반응이 일어났다.


“나라가 위태로울 때 재산을 아낀다면 그게 무슨 사대부요?”

“그렇소이다. 내, 전답의 절반을 내놓겠소. 우리 군사들이 굶어야 하겠소?”


하지만 인간은 이기심과 욕심의 동물이다.

대다수가 안 보이는 곳에서 불만을 터트렸다.


“어찌 우리의 재산을 이리 함부로······?”

“나라를 위해서라지만, 너무하지 않소?”

“임금께서 만백성의 고통을 모르시는 것 같소.”


이렇게 양반들 사이에서도 의견이 갈리며, 그들의 마음속에 불편한 감정이 자리 잡기 시작했다.

급기야 임금 이연을 향한 반감의 싹이 트고 있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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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3 이간계, 반간계, 삼십육계 – 8 24.09.14 572 25 12쪽
72 이간계, 반간계, 삼십육계 – 7 +3 24.09.13 749 28 12쪽
71 이간계, 반간계, 삼십육계 – 6 +2 24.09.12 798 25 12쪽
70 이간계, 반간계, 삼십육계 – 5 +3 24.09.11 881 28 13쪽
69 이간계, 반간계, 삼십육계 – 4 +3 24.09.10 908 28 13쪽
68 이간계, 반간계, 삼십육계 - 3 +2 24.09.09 956 33 13쪽
67 이간계, 반간계, 삼십육계 – 2 +3 24.09.08 1,059 33 12쪽
66 이간계, 반간계, 삼십육계 - 1 +2 24.09.07 1,038 36 12쪽
65 대마도에서 꿈꾸는 대항해시대 – 8 +2 24.09.06 1,099 36 12쪽
64 대마도에서 꿈꾸는 대항해시대 – 7 +1 24.09.05 1,053 38 12쪽
63 대마도에서 꿈꾸는 대항해시대 – 6 +4 24.09.04 1,050 40 13쪽
62 대마도에서 꿈꾸는 대항해시대 - 5 +4 24.09.03 1,111 40 11쪽
61 대마도에서 꿈꾸는 대항해시대 - 4 +1 24.09.02 1,137 38 12쪽
60 대마도에서 꿈꾸는 대항해시대 - 3 +4 24.09.01 1,127 38 12쪽
59 대마도에서 꿈꾸는 대항해시대 - 2 +1 24.08.31 1,164 40 12쪽
58 대마도에서 꿈꾸는 대항해시대 - 1 +3 24.08.30 1,231 39 12쪽
57 대장선에 올라, 남쪽을 가리키다 – 8 +4 24.08.29 1,244 44 11쪽
56 대장선에 올라, 남쪽을 가리키다 – 7 +2 24.08.28 1,204 37 11쪽
55 대장선에 올라, 남쪽을 가리키다 - 6 +6 24.08.27 1,256 42 12쪽
54 대장선에 올라 남쪽을 가리키다 – 5 +5 24.08.26 1,282 42 12쪽
» 대장선에 올라 남쪽을 가리키다 – 4 +1 24.08.25 1,303 40 12쪽
52 대장선에 올라 남쪽을 가리키다 - 3 +3 24.08.24 1,353 45 11쪽
51 대장선에 올라 남쪽을 가리키다 - 2 +1 24.08.23 1,405 39 12쪽
50 대장선에 올라 남쪽을 가리키다 - 1 +1 24.08.22 1,435 39 12쪽
49 물속에서, 바다에서 - 8 +1 24.08.21 1,429 44 12쪽
48 물속에서, 바다에서 - 7 +3 24.08.20 1,400 40 13쪽
47 물속에서, 바다에서 - 6 +1 24.08.19 1,424 46 12쪽
46 물속에서, 바다에서 - 5 +3 24.08.18 1,438 47 11쪽
45 물속에서, 바다에서 - 4 +2 24.08.17 1,444 48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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