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ASK: 아포칼립스의 파밍꾼들

무료웹소설 > 일반연재 > SF, 전쟁·밀리터리

한이량
그림/삽화
한이량 (자체 AI 병합모델)
작품등록일 :
2024.07.15 22:06
최근연재일 :
2024.09.09 1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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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31 1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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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쪽

35. 혁명(1)

DUMMY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우리는 종이와 천에 대자보를 만드는 것을 도와주었다.

나는 이 대자보만큼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했다.


“아! 스텔라! 혁명하는데 그 귀여운 곰돌이 그림은 뭐야!”

“그렇지만⋯ 흰 천이라 그림이라도 없으면 너무 밋밋한걸?”

“어휴⋯”

“근데 파이스, 이런 게 효과가 있을까?”

“음⋯ 스텔라, 너는 아마 잘 모를 수도 있겠는데 나는 4급 시민이었잖아? 우리가 살던 곳에는 매일같이 대자보가 붙었었어. 그리고 매일같이 패트롤들이 와서 그걸 떼냈었고. 근데 정말 신기하게도 사람들은 대자보를 붙은 내용 때문에 화가 나는 게 아니라 대자보를 떼는 패트롤들을 보면서 화를 냈어. 그때 알았어. 대자보 내용은 사실 우리에게는 일상이었고 그 화를 풀 상대를 까먹고 있었던 거야. 그러다가 패트롤들이 화풀이의 대상이라고 생각하고 욕을 해 댔지.”

“그런 일이 있었구나⋯”

“뭐 사는 구역이 달랐으니까. 어쨌든 여기도 같아.”


내 말을 메이슨도 경청하고 있었다.


“아마 여기 시민들도 그때의 나랑 똑같은 기분일 거야. 누구를 탓하고 싶은데 아무것도 안 하는 의회를 탓할지, 자기들만 잘 살면 된다고 생각하는 기업들을 탓할지, 아니면 능력 없는 자신들을 탓할지 모를 거야. 그때 우리는 공격의 화살을 바르게 잡아줄 필요가 있다고 봐.”


스텔라는 어느 정도 수긍하는 느낌이었다.

그렇게 셋이서 대자보를 열심히 만들고 있을 때 캠프 관리자 길버트가 토스트를 들고 들어왔다.


“여러분 죄송해요. 오늘은 알다시피 통제 때문에 신문이 없⋯ 잠깐⋯ 이게 다 뭐야! 침대 커버를 이렇게! 너네 이거 다 물어내! 설마⋯ 전기도 너네가 끊은 거야?”

“아니 이건 종이가 따로 없어서⋯ 전기 끊는 건 머스켓이 시킨 거예요!”

“안 되겠다. 너희는 바스크라도 잡아가라고 신고해야겠다.”


[쾅!]


길버트는 화가 났는지 토스트를 던져두고 문을 세게 닫고 나갔다.

스텔라가 내 눈치를 봤다.


“어⋯ 내가 만나서 사과를 좀 하고 올게.”


나는 사과도 할 겸 다른 바스크들도 볼 겸 세이프 하우스 방을 둘러보기로 했다. 여기 와서 그럴 여유조차 없었다.

마침 많은 사람들이 대자보를 만드는 것이 보였다. 그리고 복도 끝에는 세이프 하우스 관리자 길버트가 허탈한 모습으로 서 있었다.


“침대 커버 142개⋯ 이불 62개⋯”

“아⋯ 저기 길버트 씨⋯ 죄송해요. 저도 이렇게 될 줄은 몰랐어요. 근데 다른 방도 침대 커버를 쓰는 것 같은데⋯”

“하하 그러게요⋯ 머스켓 이 자식을! 후 죄송해요⋯ 아까는 흥분했네요.”


사과를 하러 갔는데 사과를 받을 줄은 몰랐다.

길버트는 머스켓이랑 친한 것처럼 느껴졌다. 둘의 과거가 살짝 궁금해졌다.


“아까 방을 둘러보다 보니까 머스켓은 안보이던데요?”

“뭐 또 어디 방에 박혀서 작전이나 연구하고 있겠죠.”

“하하⋯ 그나저나 여기 대부분은 알파팀인가요? 어쩌다 여기에 자리를 잡은 거예요?”

“음⋯ 초기에는 대부분 알파팀이었죠. 요즘은 평범한 바스크들도 많이 왔지만요. 여기 있는 알파들은 큰 전쟁을 치르고 남은 패잔병들의 모임이에요. 저나⋯ 머스켓이나⋯ 갈 곳이 없어서 여기로 흘러들어오게 되었죠”

“전쟁이요?”

“네. 아무도 믿지 않는 전쟁.”


길버트는 생각에 빠졌는지 말을 멈추었다. 그리고 손을 벌벌 떨었다. 좋지 않은 기억임은 분명했다.


“우리는 바스크 본부의 명령을 따르지 않아요. 그저 협력하는 관계에 불가하죠. 그들은 저희를 버렸거든요⋯ 그들을 믿지 마세요.”

“흠⋯ 무슨 일인지는 몰라도 알파팀하고 본부가 별로 사이가 좋지 않나 보네요.”

“뭐⋯ 사이가 좋지 않다고 해야 하나? 조직 내에 다른 조직이라고 해야 하나? 뭐 비슷하겠네요. 저도 이만 이번 작전에 필요한 물자를 준비하러 갈게요. 당신에게 거는 기대가 커요. 파이스.”


또 나한테 뭘 기대한다는 건지도 모르겠다.

나는 길버트가 대화를 멈추고 싶어 한다고 느꼈기에 차마 물어볼 수 없었다.

그는 긴 복도를 걷더니 금방 사라져 버렸다.

나중에 기회가 되면 적당한 때를 봐서 다른 사람에게 길버트가 한 이야기를 다시 한번 물어봐야겠다고 생각했다.


준비는 빠르게 되어갔고 밤이 되자 알파팀들은 자연스럽게 밖으로 나갔다. 알파팀들이 우리가 만든 현수막과 대자보들까지도 모두 가져갔기에 우리는 밖으로 나갈 필요가 없었다.


스텔라와 메이슨, 그리고 나는 큰 박스를 가운데 두고 앉아있었다.

가장 먼저 입을 연 것은 스텔라였다.


“음⋯ 왜 저 사람들은 우리를 못 나가게 하는 거야?”

“나가지 말라고는 안 했어. 그냥 우리를 보호하려는 느낌이 들어. 아니, 우리를 믿지 않는 건가?”


과묵한 메이슨도 입을 열었다.


“그렇지 파이스? 나도 우리를 보호하려는 걸 조금 느꼈어. 하지만 믿지 않는 건 아닐 거야. 그러면 작전을 말해주지 않았겠지. 이거 우리 무언가 상당히 엄청난 일에 휘말린 것 같단 말이야⋯ 근데 지금은 이렇게 숨어 있는 게 맞아. 어제 일로 많은 기업들이 우리를 눈이 빠지게 찾고 있을 테니까.”

“그렇죠⋯ 그래도 밖의 상황이 궁금하긴 한데⋯.”

“뭐 내가 들은 선에서 말해주자면 시민들은 아직 밖으로 나오지 않고 있어. 중앙 의회도 뚜렷한 지침을 내린 것 같지는 않아.”

“적어도 내일부터는 나가야 해요. 저희 임무도 있잖아요.”

“음⋯ 이왕 이렇게 된 김에 우선 저쪽 일부터 끝내고 하자고.”

“네 그러죠.”

“그나저나 여기 커피 상당히 맛있네. 이 귀한 게 여기는 넘쳐나는 것 같은데 우리 돔으로 돌아갈 때 좀 챙겨가야겠어.”


스텔라가 홀짝 거리더니 인상을 쓴다.


“윽⋯ 이렇게 쓴 게 뭐가 맛있다고 그래요? 취향 참 독특해”

“스텔라. 이게 어른의 맛이라는 거란다.”

“아이고 대단한 어른 납셨네요. 같은 조로 파밍 할 때도 그러더니⋯ 아주 혼자 멋진 척은 다해! 파이스! 나랑 둘이 있을 때만 이랬는데 갈수록 심해지는 거 같아. 리더로서 뭐라 한마디 해줘”

“하하⋯”


그러고 보니 스텔라와 메이슨 둘이서는 많은 대화를 나누는 것을 보지 못했다.

사이가 좋아 보이면서도 안 좋아 보이는 느낌이었다. 리더라는 자리는 이런 팀원들의 관계까지도 생각해야 한다고 생각이 들었다.

오늘 밤은 긴 티타임과 이야기로 끝이 났다.


***


다음날 아침. 이제 세이프 하우스에도 전기가 들어오지 않았다. 보조 발전기가 다 된 것 같았다. 창문 하나 없는 지하이기에 정말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다행히 스텔라가 가져온 양초덕에 그나마 살짝 보이기는 했다.


“와 스텔라 없었으면 큰일 날 뻔했네.”

“그⋯그러게 파이스 너⋯ 지금 손 덴 거 나야”

“어? 뭐라고? 아 미안! 그냥 옷을 찾고 있었는데⋯”


우리는 어차피 어두워서 본부 안에 있을 수 없었기에 옷만 주섬주섬 챙겨 입고 밖으로 나왔다.

밖으로 나왔을 때는 놀라운 광경이 펼쳐졌다.

밤에 붙여둔 대자보와 현수막의 효과 때문이었을까?

통행금지라는 것을 인지하지도 못하게 많은 사람들이 밖에 나와있었다. 벌써 누군가가 만든지도 모르는 구호를 외치면서 사람들이 다니고 있었다.


[무능력한 의회 타도]

[자유와 평등을 위한 사투⋯]


벽에 있는 많은 대자보들이 눈에 띈다.

신기한 느낌이 들었다. 외부인의 입장에서 이 글을 쓰는 것만으로도 상당히 오글거리고 웃길 뿐이었지만 길에 다니는 시민들의 눈에는 분노가 가득했다.

우리가 저지른 일은 결코 가벼운 일이 아니었다.

우리 셋은 각자 거리를 둘러보기로 하고 헤어진 후 나는 혼자 골목을 걸었다.

그때 누군가 옆에서 나와 같은 속도로 걷더니 나에게 말을 걸었다.


“어때요?”


머스켓이다. 나를 어떻게 발견한 거지?


“아⋯ 좋은 아침입니다. 생각했던 것 큰일이 벌어졌네요.”

“그렇죠. 여기 시민들에게는 우리가 모르는 감정들이 훨씬 많이 쌓여있을 테니까요. 가난하면 굶어 죽거나 돔 밖으로 내몰리는 상황이 어차피 잃을 게 없다는 생각을 하게 만들기 충분하거든요. 저희 돔과는 다르죠. 저희는 돔 밖으로 쫓아내지는 않으니까요. 자! 구경은 이쯤 하고 밥 먹으러 가죠. 아마 기업들이 자신의 회사에까지 피해가 갈까 봐 이미지 마케팅을 위해 배급소를 운영할 거예요”


나는 머스켓을 따라 배급소에 향했다. 더 놀라운 점은 우리가 이런 일을 할 거라는 것을 먼저 알았던 것처럼 기업의 이름이 박힌 큰 현수막과 수많은 생존 용품들이 있었다.

시민들이 오늘 거리로 나올 것을 어떻게 알고 기업들이 이런 걸 준비했는지도 모르겠다. 머스켓이란 사람은 내 생각을 읽은 것처럼 말을 꺼냈다.


“하하 뭐 별거 없습니다. 기업 안에도 알파팀은 많거든요. 이야기만 살짝 흘려주면 그 뒤로는 욕심 많은 높은 분들의 잔치일 뿐이니까요”

“이러면 실제로 기업들의 권력 확보에 도움이 되나요?”

“그럼요. 고객 확보에 최고의 방법은 고객의 신뢰감과 환심이거든요. 충성스러운 고객이라고 해야 하나? 뭐 대충 그런 게 있어요.”


밥을 먹는 와중에도 거리에 사람들은 더 많아졌다.

우리가 만들어 낸 작은 불씨는 생각 이상으로 빠르게 번져나갔다. 머스켓은 약간 걱정되는 듯이 내게 말했다.


“음⋯ 생각보다 확산 속도가 빨라요. 뭐 이건 좀 더 지켜봐야겠지만 그것보다 큰 문제는 지금 2가지 의견이 충돌한다는 거예요.”

“2가지 의견이요?”

“네. 악덕 기업의 타도와 중앙 의회의 타도. 집회의 방향성이 엇갈리고 있는 느낌이에요. 중앙 의회의 타도 쪽으로 교통정리가 필요할 것 같군요.”


구호를 듣다 보니 그렇기는 하다. 머스켓의 목표는 중앙 의회였지만 기업을 비난하는 이야기도 들린다.


“왜 중앙 의회만 공격의 대상으로 정하신 건가요?”

“저희가 특정 기업을 비난하면 분명 그 기업을 싫어하는 다른 기업들이 시민 편에 붙을 것이 분명해요. 만약 시민들이 그 기업을 추앙하게 된다면 악순환의 반복일 뿐이에요. 그 기업들이 시민들을 등에 업고 같은 짓을 반복할 것이거든요.”

“거기까지는 생각이 닿지 않았네요.”

“기업은 계획대로 기업끼리 싸움을 붙여야 해요.”

“흠⋯ 어쨌든 파이스 님. 이렇게 둘이 꼭 한번 대화를 나누고 싶었어요. 그분의 아드님을 이렇게 뵙게 되네요.”

“잠깐! 저희 아버님을 아세요? 아! 아버님이 8번 돔으로 간다고 했어요. 혹시 어디 계셨는지 아세요?”

“어 정말요? 저희도 어디 있는지는 몰라요. 이번일이 잘 끝나면 한번 찾아볼게요. 그나저나 이렇게 이야기를 하다 보니 파이스 님의 아버님이 생각이 나네요. 뭐 지금은 제가 강제로 끌고 가고 있긴 하지만요 하하. 아버님도 지금과 비슷한 상황을 만난 적이 있어요. 그때 저는 그걸 지금의 파이스 님처럼 옆에서 보고 있었죠”

“2차 혁명 때인가요?”

“네 맞아요. 그분이 마지막으로 선택한 결과가 옳은 것인지는 잘 모르겠어요. 파이스 님의 아버님은 많은 사람들을 살리는 선택을 하셨지만⋯ 저는 어떤 선택을 해야 할까요?”


머스켓은 고민을 하고 있었다. 또한 자신을 내 아버지와 비슷하게 생각하고 있는 듯했다.

우리는 밥을 다 먹고 일어났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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