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ASK: 아포칼립스의 파밍꾼들

무료웹소설 > 일반연재 > SF, 전쟁·밀리터리

한이량
그림/삽화
한이량 (자체 AI 병합모델)
작품등록일 :
2024.07.15 22:06
최근연재일 :
2024.09.09 1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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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9.09 1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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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쪽

41. 인터루드 (페르소나)

DUMMY

파이스네 조는 오늘 떠나갔다.

우리 조는 8시에 회의를 또 하기로 했지만 나는 그전에 리더의 방으로 갔다.


“리더 계세요?”

“음? 카노? 아직 8시가 아닌데? 내가 회의시간을 잘못 알고 있었나?”

“그것 말고 드릴 이야기가 있어요”

“이야기? 그래. 뭐 우리 둘이 따로 이야기를 한지 오래되긴 했지. 들어와 커피 한잔 타줄게”


리더의 방은 이미지와는 다르게 생각보다 지저분했다.

벽에는 수 없이 많은 기사와 정보들이 붙어있고 책상은 정리되지 않았다.

이 사람이 노력파라는 점은 이 방만 봐도 알 수가 있었다.

리더는 내려둔 커피를 컵에 따라주었다. 아직 따뜻하다


“그래 카노. 어떤 이야기야?”

“저 이번 작전이 끝나면 다음 출정 때 팀을 나가서 8번 돔으로 가고 싶어요.”


리더가 당황한 표정을 금치 못한다. 컵으로 가져가던 커피가 중간에 멈추었다.


“카노가 이렇게 진지한 표정을 짓는다는 건, 많은 고민을 했다는 것일 텐데⋯ 왜? 우리 팀에 무언가 서운한 점이 있었어? 내 선에서 해결해 줄게.”


리더는 티는 잘 내지 않는 편이지만 이런 부분까지 세심하게 고려하고 있었다.

이런 말을 하는 내 마음도 편하지는 않다. 배신하는 기분까지 든다. 그렇지만 나는 이번만큼은 확실하게 결심했다.


"아뇨. 저는 저희 팀을 만나서 정말 좋았어요. 다만⋯ 그런 문제가 아니라 제가 하는 일 자체에 대한 회의감이 들었어요.

누군가를 속이고 어떻게 죽일지 고민하고 성공하면 기뻐하고 있는 정신 나간 나를 발견하고, 어떻게 죽지 않을지 발버둥 치고 두려움에 떨다 도망치고 동료가 죽으면 내가 아니어서 다행이다 생각하고.

저는 더 이상 이렇게 살고 싶지 않아요. 저를 잃어버린 것 같아요. 그만⋯ 그만하고 싶어요."

“⋯”


리더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뭐라고 답변을 해 주면 좋겠다. 안 된다면 안 된다고, 된다면 된다고.

우선 조금만 더 말해보기로 했다.


“신병들이 들어와서 행복했을 때는 인류의 미래 따위는 생각이 들지 않았어요. 평범한 사람들처럼 행복한 하루를 보내고 안락한 곳에서 좋은 사람들과 따뜻한 저녁식사만 있으면 되겠다고 생각이 들었어요. ‘내일 이 사람들이 죽지는 않을까?’ 하는 걱정은 더 이상 하고 싶지 않아요. 저는⋯ 다른 사람들처럼 무뎌지지 않더라고요. 오히려 약해졌어요.”


니는 이런 대화에 서투르다. 내 마음이 제대로 전달되었는지 모르겠다.


“카노⋯ 너는 항상 죽을뻔하거나 동료를 잃었을 때면 항상 밤에 혼자 울곤 했지. 심지어 스파이를 죽였을 때에도. 그리고 다음 날에는 아무렇지 않은 표정으로 일어났었어”


리더는 내가 울었던 것을 다 알고 있었다. 조금 부끄러웠다.


“나는 너가 때가 되면 보내줘야겠다고 항상 생각하고 있었어. 겉과는 다르게 속이 여린 친구여서 항상 미안했거든. 그럼에도 말을 하지 않았던 건 내 욕심이었어. 알다시피 너만 한 테크니션은 이 돔에서 찾기 힘드니까. 그래. 카노. 이번 조사가 끝나면 8번 돔으로 가. 내가 관리직 추천서를 써 줄게. 너만 한 기술자면 반려되는 일은 절대 없을 거야.”

“붙잡을 생각은 없으신가요?”

“리더로 오래 일하다 보니 붙잡는다고 잡히지 않더라고. 다만 하나만 말해줄게. 새로운 국면이 시작되었고 끝이 얼마 남지 않았어. 지금까지 카노 너가 지금까지 바스크로 활동한 시간보다 훨씬 짧은 시간 내에 역사는 바뀌겠지. 결과는 어떻게 될지 모르지만 우리는 그 역사의 산 증인이 될 거야. 나도 지금은 그 이후에 일에 대해서 어떻게 살지 생각하고 있어. 만약, 조금만 더 버틸 마음이 있다면, 세계의 변화의 최전방에 설 생각이 들면, 언제든 마음을 바꾸고 찾아와도 돼”

“합⋯”

“그래. 회의 준비를 하자”


리더를 만날 때는 확고했지만 답변을 듣고서 오히려 고민이 많아졌다. 확실히 변화가 시작된 것은 알고 있지만 끝이 언제 날 지 감이 잡히지 않기에⋯ 모르겠다.


***


회의실에는 아직 아무도 도착하지 않았다

밀이 오기 까기지 기다리는 30분 동안 지금까지 리더와 하지 못한 이야기를 했다.

이런 생각이 들 때마다 리더랑 이런 이야기를 했었다면 좋았을 텐데 후회가 들기도 한다.

너무 늦어버린 것 같다.

밀은 9시에 딱 맞추어 도착했다.


“자 그럼 이번 작전에 대해 설명하겠다. 이번 작전명은 판도라다.”


리더는 항상 작전명을 정하는 습관이 있다. 그만큼 치밀하게 기획하는 사람이라는 걸 반증한다.


"이번 작전에는 조력자가 있어. 그때도 우리 팀을 도와줬던 중앙타워에서 일하는 알파팀의 알폰소의 지원을 받아 중앙 타워로 진입할 거다. 그 이후에는 셋이 다른 역할을 부여받고 업무를 진행할 거다.

첫 번째, 나는 통제실로 간다. 모든 카메라와 보안 흔적을 지울 거야.

두 번째, 밀은 상부층의 데이터센터로 가서 자료를 갈취한다.

세 번째, 카노는 지하로 가서 대기하다 밀이 신호를 보내면 전력을 끊고 다른 두 명이 탈출하면 전력을 복구하고 탈출한다.

끝이야. 어때 쉽지? 데이터센터의 자료, 속칭 판도라만 갈취하면 되는 거야"


말은 쉬워 보이는 작전이지만 리더의 작전은 쉬운 적이 한 번도 없었다.


“이번 작전 자체는 조력자가 있는 만큼 그렇게 어렵지 않을 거야. 그 이후에 얻게 되는 정보에 따라서 힘들어지기는 하겠지만. 아쉽게도 작전은 오늘 바로 시작한다. 자, 다들 정비공 옷으로 갈아입고 준비해.”

“무기사용 수칙은 어떻게 됩니까?”


밀이 리더에게 물었다. 아무래도 상층부까지는 탈출도 힘들기에 걱정이 많은 듯했다.


“이번에 무기는 들고 가지 않는다. 다만 위험할 때를 대비해 손이 잘 닿는 곳에 스패너 정도는 준비해 둬라”

“합.”


이번엔 리더답지 않게 작전이 간결하고 명료했다. 그만큼 준비를 많이 해 둔 것이겠지. 리더는 그렇게 허술한 사람이 아니다.

우리는 걸어서 중앙탑에 도착했다.

높은 건물. 약 40층은 되어 보이는 높이.


"자, 자연스럽게 행동해. 전력공급에 문제가 생겨서 데이터센터의 자료와 보안시설에 문제가 생겨버린 거야. 그래서 타워에서 일하고 있는 알폰소가 외부의 기술자, 즉 우리를 벌써 부른 상황이야.

아무 걱정 안 해도 돼. 무전기는 공구가방에 가지고 가. 그런 고급 장비를 들키면 좋은 꼴을 보지 못할 거야. 소리는 최소로 해 두고"


우리는 중앙탑으로 들어갔다. 나는 살면서 처음 들어가 보는 공간이다.

널찍한 로비가 나온다. 물이 벽을 타고 내려가며 그 벽에는 큰 조각이 세겨져 있다.

여기에 쓰이는 전기만 배분했어도 사람들이 잘 살 수 있을 텐데. 이를 질끈 물었다. 이 타워 전체를 무너뜨리고 싶었다.

안내원이 우리 앞으로 다가왔다.

우리는 모자를 깊게 눌러썼다.


“아. 요청한 전기 기술자들인가 보네? 빨리 가.”

“네. 혹시 데이터센터와 배전설비, 보안실이 각각 어디 있나요? 3개 의뢰받았습니다.”

“데이터센터는 28층, 보안서버는 5층, 배전설비는 음⋯ 지하 어딘가로 기억하는데? 뭐 대충 찾아가”

“네 감사합니다.”


리더의 연기는 능청스럽다. 알면서도 물어보는 저 뻔뻔함은 놀랍다.


“어이~ 일 끝나면 먼저 나가.”

“예 반장님”


우리는 각자 찢어졌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밀과 리더는 갔고 나는 지하로 이동했다.

아무도 없는 지하 시설설비. 배전선을 찾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배전선은 훨씬 단순했다. 차단기만 내리면 바로 정전이다.

확실히 어려운 임무는 아니었다. 주변에는 아무도 없는 것을 확인하고 리더에게 무전을 했다.


“전기 작업준비 완료 되었습니다.”

[치직⋯ 어어 그래. 스흡⋯ 나도 준비는 된 것 같은데⋯ 이거 정전 한 10분 될 거라고 알려줘야겠는데? 데이터센터는 어떻게 되어갈라나?]


보안실로 간 리더는 주변에 사람이 있는 만큼 혼잣말을 하는 듯 연기했다.


[치직⋯ 흐음⋯ 도착했는데 이거 시간이 조금 걸리겠는데요? 정전 조금만 기다려 줘]

“그래. 빨리 좀 부탁해”


어둠 속에서 10분을 기다렸다.


[치직⋯ 데이터센터 끝났어요.]

[치직⋯ 아이고! 이거 보안백업이 다 날아가서 이건 복구 안 되겠는데요. 이거 초기화해야겠어요. 한 5분 정도면 초기화 끝나니 조금 기다려주세요.]


데이터센터의 주요 데이터는 탈취했고 리더는 5분 정도면 우리의 흔적을 전부 날린다는 의미다.

그 후 내가 정전시켜 두 사람이 나가기를 기다린 후 10분 뒤 차단기를 올리고 내가 나가기만 하면 된다.


“안내드립니다. 잠시 후 전기시설 점검으로 약 10분간 정전이 될 예정입니다.”


안내방송이 나오고 잠시 기다린 뒤 나는 퓨즈 스위치를 내렸다. 건물 전체가 암흑에 휩싸인다. 지하는 정말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이제 10분만 있다가 스위치를 올리고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밖으로 나오기만 하면 된다.


벽에 기대어 쪼그려 앉았다.

나는 사실 어두운 곳이 좋다.

항상 밝은 척을 하는 것은 힘들다. 어둠은 온전히 나만의 공간이었다. 어떤 표정을 지어도 아무도 모르고 혼자 생각하기도 편하다.

그래서 이 어둠이 더 아늑하게 느껴진다.

편안함에 심취해 노래를 한곡 부른다.


“흠 흠흠~”


항상 엄마는 집안일을 할 때면 이 콧노래를 흥얼거렸다. 그 소소한 일상이 행복해 보였다.

내가 가끔 집에 돌아올 때도 이 노래를 흥얼거리셨다.

온갖 끔찍한 것들을 보고 들은 후에 듣는 이 노래는 내 삶의 전부였다.

어둠은 생각을 정리하기에 좋았다.

확고해졌다.

이 임무가 나의 마지막 임무가 될 것이다.


“치직⋯ 반장님. 문제가 생겼습니다. 무장한 패트롤들이 제 층에 올라왔습니다”


내 평온을 깨는 소리가 들렸다.

듣고 싶지 않았다. 그저 조용히 5분만 더 있고 싶었다.


[치직⋯ 반장님, 들리십니까? 저를 찾고 있는 것 같습니다. 카노 들려?]

[치직⋯ 밀, 리더다. 들린다. 무전기 계속 켜놔. 우선 조용히 계단으로 빠져나와. 카노, 밀이 안전해졌다는 표현을 하면 바로 차단기를 올려.]

“알겠습니다.”


항상 일이 잘 풀리는 것 같으면 이런 일이 일어난다.


[탕! 치직.. 탕! 탕!]


무전기 너머로 총소리가 들린다. 일이 생겼다.


[치직⋯ 밀! 무슨 일이야? 괜찮아?]

“으윽⋯ 옆구리에 총을 맞았습니다. 우선 계단으로 도망치고 있습니다.”

[치직⋯ 젠장. 뭔가 잘못되었어. 카노, 차단기 올리지 말고 옷 갈아입고 우선 너라도 빠져나와. 난 밀을 구하러 간다.]

“합. 알겠습니다”


상황이 너무 안 좋게 흘러간다.

나는 정비복을 공구함에 넣고 올라갈 준비를 했다.

어두운 지하에서는 앞이 보이지 않았지만 벽을 따라 계단을 찾아 이동했다.

1층, 나가려는데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나도 가야 하는가? 동료들을 버리고 이렇게 가도 되는 것인가?

하지만, 이런 생각이 무색하게 로비 입구에는 경비 전체가 깔려 있었다. 나가지도 못하게 되었다.

너무나도 이상했다. 마치 우리가 올 것을 준비라도 해둔 것처럼⋯ 함정에 빠진 것 같다.


“리더. 저희 힘정에 빠진 것 같습니다. 입구가 수십 명의 경비로 막혀 있습니다.”

[치직⋯ 젠장 나도 보안실 나가는데 패트롤들을 마주쳤어. 카노, 너라도 지금 빠져나와. 거기 지하 1층에 대용량 환풍기가 있어. 너 정도 몸집이면 지나가고도 충분할 거야. 이번 작전은 실패다. 바스크 본부에서 만나자.]

[하아⋯ 하아⋯ 전 틀렸습니다. 출혈이 너무 많아요. 카노, 리더⋯ 먼저 탈출해요. 가족들한테 사랑한다고⋯ 전해주고요. 마지막으로⋯ 하나만⋯ 끄윽⋯ 그들은 겁이 많아요. 그들은 중앙탑이 아닌 우리처럼 큰 건물에 지하로⋯ 들어가⋯ 삐이이이이익]


밀의 무전기에서 귀가 찢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이윽고 낯선 남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치직⋯ 어이 들리나? 이게 누구야 낄낄! 바스크들이잖아? 어떻게, 너네 동료가 계단에 그냥 쓰러졌는데 버리고 가게? 우리가 너희를 어떻게 잡았는지 궁금하지 않아?]


누군가가 밀의 무전기를 노획한 모양이다. 밀은 완전히 잡혀버렸다.


[치직⋯ 그 누구야⋯ 그 똑똑한 척하던 놈 밑에서 일하던 놈? 알폰소였나? 걔를 잡았거든. 그리고 함정을 팠는데 이게 뭐야. 월척이 걸려버렸네? 낄낄!]


정신 나간 목소리다. 누군지는 몰라도 높은 사람인 것은 분명하다.


[나랑 한 가지 게임을 하자. 여기 지금 16층 계단이거든?

그리고 내가 너네 지금 3명인 거 알아.

10분 내에 동료를 구하러 한 명도 안 오면 지금 피나는 애는 죽는 거고,

한 명만 오면 둘 다 죽는 거고,

두 명 다 오면 셋 다 손잡고 건물을 나가는 거야.

내가 특별히 정비복 입은 애들 쏘지 말라고 할게. 지금부터 시간 잰다. 시~작! 아 맞다! 무전 쓰면 반칙이야~ 바로 죽일 거야~]


환풍구로 가던 길을 멈추었다.

선택을 해야만 했다. 리더는 절대 동료를 버릴 사람이 아니었다.

그렇지만 우리 둘 다 간다고 해서 저 미친놈이 우리를 살려줄 것이라 생각이 들지는 않았다.


[치직⋯ 혹시나 해서 말하는 건데 난 약속은 꼭 지키거든. 진짜 살려줄 거야. 낄낄! 시간이 흘러요~ 똑딱똑딱~ 바스크들은 의리가 있다매! 그것 좀 보여줘 봐]


내 생각을 읽은 것 같았다. 그리고 저 정신 나간 놈은 이 상황을 장난 그 이상으로 바라보고 있지 않았다.

어떻게 해야 하지?


시간이 흐른다.


나는⋯


나는⋯


환풍기 팬을 뜯었다.


미안했다. 동료들에게 너무나도 미안했다. 눈물이 난다.

그래도. 나는 도망치기로 했다.


[치직⋯쨔잔! 한 명이 도착했습니다! 다른 한 명은 언제 올까요? 5분 남았는데? 낄낄]


리더가 갔나 보다. 죄송하다. 나는 눈물을 흘리며 환풍기를 기어갔다.

처량하다. 나약해서. 우리가 나약해서, 아니 내가 나약하고 겁쟁이여서 가지 않았다.

이기적이어서, 이 작전을 마지막으로 하고 싶어서. 나는 기어가고 있었다.


[치직⋯ 10분이 되었습니다. 낄낄!]


10분은 벌써 지났다. 나는 배신자다. 팀원들을 두 번 다시 볼 명목이 없다. 두 번 다시 볼 수도 없겠지.

그때 무전이 한번 더 들렸다.


[치직⋯ 에이 김 빠지게 아무도 안 왔어. 뭐 솔직히 말하면 너네 동료는 벌써 죽었지만⋯ 낄낄! 혼자 헐떡거리더니 죽던데? 총 한발 맞은 게 전부인데 원래 사람이 이렇게 빨리 죽나? 물어볼 거 많았는데⋯ 돌아가면 죽였다고 혼나겠네? 아! 그리고 솔직히 말하면 너네도 오면 심문하고 죽이긴 할 거였. 낄낄!]


밀이⋯ 밀이 죽었다. 내 동기. 오랜 기간 묵묵하게 함께했던 내 동기. 나는 더 이상 앞으로 나아갈 수 없었다.

너무 허무하게 동료를 잃었다. 무기도 없이 어떠한 저항도 하지 못한 채로 동료를 잃었다. 동료의 시체조차 찾을 수 없다.


“흑⋯ 흑⋯ 흐어어어엉”


나는 소리 내어 울었다. 환풍구 전체가 내 울음소리와 함께 공명해주고 있었다.


나는 어둠이 좋다.

내 가면을 벗을 수 있으니까.

내 나약함을 드러낼 수 있으니까.

나는 어둠의 힘을 빌려 건물을 나왔다.


버버리 2가 바스크본부 입구 앞에 리더가 기다리고 있었다.

벽에 기대어 앉아 처량한 모습이다. 리더의 이런 모습을 보는 건 처음이었다.

그리고⋯ 밀은 보이지 않았다.

나는 리더가 앉아있는 벽 바로 옆에 기대어 앉았다.

우리는 해가 질 때까지 서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해가 질 때쯤 되어 리더는 하늘을 보며 이야기를 꺼냈다.


“카노, 미안해. 이번 작전을 한 번이라도 더 의심하고 더 세심하게 세웠어야 했어.”

“⋯”

“그거 알아? 사람은 다 똑같아, 나약하고 이기적이고 겁쟁이야. 내가 파이스에게 리더를 시키고 후계로 키우려는 건 파이스에게 리더를 넘기기 위해서였어. 내가 리더를 하기 싫었거든. 나는 머리가 그다지 좋지 못해서 치밀하게 계획을 세우지 않으면 나 때문에 지금보다 더 많은 사람이 죽었겠지. 내가 부족해서, 나 때문에 죽은 팀원들과 동료들의 모습이 아직도 잊히지 않아. 나는 리더에 어울리지 않아. 파이스처럼 애초부터 똑똑하고 사람을 조금 더 잘 이해하며 헌신적인 사람이 해야 하는 게 맞아.”

“평소의 리더답지 않네요.”

“이게 평소의 나야. 항상 가면을 쓰고 있었을 뿐이지.”

“저는 지금까지 리더를 믿고 따라왔어요. 당신이 실수를 했어도 지금까지 저를 수십 번 살렸다는 건 변함이 없어요. 그래서⋯”

“오늘 아침에 나한테 그만하고 싶다고 했지? 강한 척을 했어도 바스크가 되고 나서부터 10년이 가까워진 지금까지 나도 같은 생각을 해. 근데 난 너처럼 떠날 수 없어. 도망치려고 할 때마다 나 때문에 죽은 동료들이 날 못 도망치게 잡아.”


리더는 나약해졌다. 지금까지 리더의 이런 모습을 본 적이 없었기에 어떤 말도 할 수가 없었다.


“그러면 앞으로 어떻게 하실 건가요?”

“나는 바스크를 떠나지는 못해. 그러기엔 죽은 동료들이 나를 용서하지 않을 거야. 다만, 나는 이 무거운 짐을 다른 사람에게 넘기고 싶어. 이 길고 긴 여정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게 느껴지거든, 하찮은 욕심이지만 이 끝은 보고 싶어⋯ 너는⋯ 너는 너가 하고 싶은 길을 걸어가. 후회가 남지 않게. 오늘 오전에 했던 말은 변함이 없니?”

“조금만 더 생각을 해볼게요. 이대로는 밀에게 너무⋯”

“그래.”


완벽한 사람은 없다.

가면 뒤에 모두가 숨어 완벽을 연기한다.

그리고 그 가면이 벗겨졌을 때,

그 가면은 두 번 다시 쓸 수 없는 가면이 된다.

우리는 더 이상 연기할 필요도 없었고 더 이상 연기할 수도 없었다.

그렇게 우리는 무너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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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 36. 혁명(2) 24.09.02 9 0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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