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 전기팀 (3), 커튼콜
새로운 아침에 눈을 떴다. 오늘은 아침 6시에 울리는 알람이 없었다. 새로운 시작에 대한 나름의 배려인 것 같다.
항상 그렇듯이 간단하게 씻고 A2회의실로 이동했다.
오늘은 타커조교도 나보다 먼저 도착해 있었다.
“파이스 마지막 날이라고 이렇게 늦어도 되는 거냐”
“죄송합니다”
“스텔라는 아직도 자고 있나 보군. 어차피 같은 팀이니까 오늘 이동할 때 깨워서 같이 가도록.”
“합!”
“자 슬슬 시작하지. 지금까지 기초 교육을 듣느라 수고가 많았다 세타급 바스크들. 너희가 앞으로 마주칠 것들은 지금 훈련과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어렵고 힘들 거야. 너희가 이 기술들만을 가지고 살아갈 수 있다고 나는 절대 장담하지 못한다. 너희 팀을 믿고 동료를 믿어라. 죽어도 같이 죽고 살아도 같이 사는 거다. 다른 팀이 되었다고 절대 남이 아니야. 계속해서 보게 될 테니 서로 간단하게만 인사하고 앞에 붙어있는 종이로 보고 각자 이동하도록. 다시 한번 수고 많았다.”
내가 가야 할 곳은 지하 5층 최하층. 전기팀과 설비팀이 함께 쓰는 공간이다. 오스카는 자주 볼 듯하다.
옆에서 나를 부르는 목소리가 들린다 베아트리체다.
“파이스 마지막까지 못 보고 가는 줄 알았어. 어제 뭔 일 있었어? 스텔라가 들어와서 이불을 푹 뒤집어쓰고 막 이불을 막 발로 차더라고 둘이 싸운 게 아닌가 해서⋯”
“풉”
좋은 놀림거리가 생겼다.
“음 싸웠다기보다는 놀렸다가 맞는 것 같은데? 아 어쨌든 베아 우리 꼭 다시 볼 수 있을 거라 생각해. 넌 쉽게 죽을 애는 아니니까!”
“응응! 파이스 너도!”
옆에 알버트랑 제이콥도 인사를 하러 왔다.
“파이스 아침에 너무 곤히 자서 도저히 못 꺠우겠더라고. 조교님도 깨우지 말라고 하시고”
“아 그랬구나 알버트. 너랑 룸메여서 솔직히 좋았어. 그래도 친구사이인데 그 정도까지 배려를 할 필요는 없었는데. 좀 더 편하게 하지”
“하하 그럴걸 그랬나?”
“제이콥! 훈련 때 정말 도움 많이 받았어. 진짜 너 없었으면 몇 번은 낙오할 뻔했다니까?”
“아이 뭘 부끄럽게⋯ 파이스 한 번만 안아보자.”
무섭다. 뼈가 으스러 질 지도 모른다.
“에이 남사스럽게⋯ 계속 볼 건데 그런 건 넣어둬”
화기애애한 분위기로 인사를 마쳤다. 모두 살아서 다시 봤으면이란 생각을 한다.
의미 없이 죽기에는 너무 좋은 친구들이다.
이제 스텔라를 데리고 전기팀에 갈 시간이다.
“똑똑⋯ 스텔라 자니? 우리 이제 갈 시간이야. 늦으면 첫날부터 찍힌다?”
스텔라가 문을 벌컥 열었다.
“파이스 이거봐바”
예전에 수건을 몸에 두르고 머리가 젖어있는 그때와 같은 모습이다. 그 상태로 내 손목을 끌고 예전에 봤던 버튼 쪽으로 갔다.
‘나를 찾지 마’
이해가 가지 않는다. 탈출버튼 위에 문구가 변해있었다.
“뭐⋯ 이게 뭐야 왜 글씨가 바뀌어있어?”
“나도 마지막 날이라 방 정리를 하는데 우연히 발견했어. 언제 바꾼 거지? 이게 뭐야? 왜⋯. 누가 어떻게?”
“모르겠어 우선 적어두자. 이번엔 필체까지 베껴두는 게 좋을 것 같아. 이건 나중에 생각하고 스텔라 준비하고 나와”
이걸 수정할 수 있는 건 우리가 훈련을 할 때 누군가가 들어와서 바꾸거나, 베아말고는 바꿀 사람이 없다. 그러나 첫 번째 문구로 봤을 때 글쓴이는 분명 돔 밖에 있을 텐데?
두번째 문구의 의미랑도 맞지가 않는다. 기다린다면서 갑자기 찾지 말라니⋯ 이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스텔라가 나왔다.
“가자!”
우리는 전기팀으로 이동했다. 물론 가면서 어제의 이불킥 이야기는 잊지 않았다.
화물 엘리베이터를 타고 도착해 보니 지하 5층. 건물 전체가 기계와 전선 투성이다. 기름냄새가 코를 찌른다.
두리번거리고 있을 때 누군가가 우리를 발견하고 크게 소리쳤다.
“리더! 세타 2명 도착했습니다!”
“안녕하십니까!”
"어 나는 전기 3팀에서 테크니션 겸 파머를 담당하는 델타급 바스크 카노라고 해. 말 편하게 할게?
지금 이 지하 3층에 전기팀은 우리 팀이 전부야. 1팀 2팀은 다음 주 출정을 위해서 선발대로 건설팀이랑 설비팀이랑 전선 깔러 갔어.
요즘은 2차 감시탑까지 땅을 파서 지상이 아닌 지하로 전선을 깔고 있거든"
그때 옆에서 누군가가 지나가며 말했다.
“세타들?”
“아 어 스카웃 2명”
“⋯ 내 등이나 쏘지 말라그래”
“아하하⋯ 이해해 줘 원래 초면엔 좀 차가워. 우리 팀의 루터를 담당하고 있는 델타급 메이슨이라고 해. 상당한 실력자야.”
그때 리더로 보이는 사람이 나타났다.
“세타들인가?”
“아 네 세타급 바스크 파이스와 스텔라입니다.”
“만나서 반갑네. 난 이 팀의 헤더 베타급 바스크 거스트라고 하네 리더라고 불러라.”
“우리 리더는 좋은 사람이야. 잘 따라와 주면 좋겠어”
의아하다. 소문으로 들은 것과는 다르게 팀 내에서는 좋은 평판을 가지고 있는 듯하다.
“마지막 한 친구는 지금 화장실에 있을 텐데 나중에 만나면 인사해. 델타급 바스크 밀이라고 해. 내 동기야. 지금까지 지겹게 붙어있지”
새로운 사람들과 새로운 팀. 나는 이들의 목숨을 지킴과 동시에 이들에게 내 목숨을 맡겨야 한다.
출정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내 몸이 직감적으로 느끼고 있었다.
***
CurtainCall 5
눈을 떠 보니 옥수수가 가득한 밭 사이였다.
손목은 묶여있지만 발은 자유롭다.
무엇으로 묶었는지는 모르겠지만 플라스틱의 무언가로 묶여있다. 돌에 수십 번 찍어 내리니까 툭 하고 끊어졌다.
“개자식들⋯ 제일 먼저 뒤질 놈들이 감히 나한테 이런 짓을 해? 두고 봐 다 쓸어버리겠어”
우선 가족들한테 도움을 요청해야겠다. 이 개자식들이 무슨 일을 할지 모른다.
중앙 광장에서 옷을 훔쳐 입고 모자를 눌러썼다. 시간대도 맞아서 학생들은 하교를 할 시간이다. 타이밍이 좋다. 패트롤들은 나를 신경조차 쓰지 않는다.
집에 황급히 가니 집에 아무도 없다. 엄마랑 아빠는 아직 일을 하고 있는 모양이다.
“개자식들⋯ 개자식들⋯ 내가 누군지 알고.”
집에 있는 빗자루와 식칼을 가지고 무기를 만들었다. 누구든지 나를 찾아오면 죽여버릴 것이다.
과연 찾아올까? 아니야. 개내들이 뭘 할 수 있겠어. 쓰레기나 줍는 쓰레기들이⋯
집 밖으로 걸음 소리가 들리더니 문을 여는 소리가 들렸다.
찌를뻔했다. 엄마랑 아빠다.
내 모습을 보자마자 둘은 크게 놀란다.
“뭐야 너 왜 돌아왔어?”
“별거 아니야. 버러지만도 못한 놈들이 내가 누군 줄 알고⋯ 엄마! 나 돈 좀 줘.”
“이 새끼가 지금 무슨 소리 하는 거야!”
아빠가 버럭하고 소리친다.
젠장 나이 먹어서 상황파악이 둘 다 안되나 보다. 시간이 없다. 돈 찾아서 빨리 도망가야 한다.
분명 부엌 어딘가에 숨겨둔 것을 기억한다.
부엌으로 가서 뒤적거리는데 뒤에서 목소리가 들린다.
“너 이 새끼 도망쳐 나온 거냐? 우선 손에 든 거 내려놔! 애새끼를 잘못 키워서 집안 말아먹게 생겼네. ”
아빠가 내 손에 들려있는 막대기를 잡았다.
“아 별거 아니니까 놓으라고!”
‘서걱⋯’
⋯
순간의 정적
⋯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었다. 붉은색 무언가가 뿜어져 나오고 아빠는 목을 잡고 컥컥거리고 있다.
실수였다. 그러니까 막대기를 왜 잡아서⋯
“잠깐만⋯ 아니야. 이건 고의가 아니야. 내가 잘못한 건 없어. 다 그 새끼들 잘못이야⋯”
붉은색이 방 안을 물들인다.
“꺄아아아악”
엄마의 비명소리와 함께 바닥에 붉은 웅덩이가 눈에 들어온다. 그리고 손을 떨고 있는 나.
“아니야. 이건 내 잘못이 아니야⋯”
손에 무언가를 들고 있을 힘이 없다.
나는 맨 몸으로 뛰쳐나왔다.
다시 옥수수밭.
해가 진다.
춥다.
“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 끄윽끄윽.. 흐흐”
왜 이렇게 된 거지.
어디서부터 잘못된 거야.
“나는 잘못한 게 없는데⋯”
목소리가 들렸다.
“진짜?”
뒤를 돌아봤다.
어떤 새끼지? 바스크인가? 나를 지금까지 지켜보고 있었나? 내가 아빠를 죽이는 것도 분명 봤을 것이다. 목격자는 죽여야 한다. 주변에 있는 돌을 주웠다.
“나와! 내가 죽여줄게.”
“큭큭큭⋯ 네가? 나를?”
“시X 너 같은 것 내가 무서워할 것 같아? 내가 겁쟁이라고? 사람도 죽인 내가 겁쟁이일리가 없잖아!”
“겁쟁이 아니야? 또 도망쳐서 옥수수밭이잖아.”
“끄아아아아아 나와!”
고요한 밭에는 그의 목소리만이 가득했다.
***
CurtainCall 6
“신문 봤어? 이번 낙오자 한 명이 자기 아빠도 죽이고 도망치다 잡힌 거.”
“뭐 듣기로는 정신착란에 환각까지 있었다매? 우리 쪽에선 도망친 걸로 보고했고. 뭐 얘는 100프로 생체실험행이네. 다이어 님이 퀭한 눈으로 잘 봤네. 우리 팀으로 왔으면⋯”
“야! 입조심해. 안 그래도 우리 지금 평판이 좋지 않아. 쥐새끼들을 잡은 것뿐인데⋯ 다들 모르고 지껄이는 것 이라지만, 딱히 우리가 이해받을 만한 행동을 한 것도 아니잖아.”
“알았어⋯ 주의할게. 쥐새끼들이 너무 많아. 개척팀에도 쥐새끼들 잡으려고 믿을만한 괜찮은 세타들이 좀 간 것 같아.”
“뭐 그건 그쪽 사정이고⋯ 우리 팀에 오는 세타들은 어떤 애들 이래? 전자기기랑 좀 친하나?”
“한 명은 백 명에 한 명 나올까 말까 한 인재라던데? 원래 개척팀 갈 예정이었는데 중요한 애라서 쥐새끼 때문에 거기로 안 보냈데. 아! 가장 중요한 거! 좀 잘 생겼데! 아 너무 좋아! 매일 끌고 다닐 거야. 나 애들 오는 날 화장하려고”
“⋯잘 가르치기나 해⋯ 다른 한 명은?”
“하⋯ 그 제일 이쁜 애가 오나 봐. 여우 같은 년. 청소나 하루종일 시켜야겠어”
“그래??? 미안. 다음 출정 때 둘이서만 정말 우연하게 낙오될 느낌이 와버렸어. 날 그만 잊어줘.”
그때 누군가가 들어왔다.
“똑같은 놈들이.. 회의 준비나 해!”
“아! 오셨습니까? 리더!”
“준비물들은 준비 됐어?”
“합!”
“좋아 들고 가자. 오늘부로 단장님 직속명령으로 우리 팀 단독 기밀 작전을 시작한다. 작전판 준비해.”
“세타들은 이번 작전 참여합니까?”
“상황 봐서. 아직 조금 더 정보가 필요해. 여자애는 작전 대상이다 보니 조금 더 신중할 필요가 있어.”
“아이고 어떡하나? 둘이서만 낙오돼서 등에 화살 꽂히겠네?”
“닥쳐⋯”
***
CurtainCall 7
“오늘 나가지?”
“어. 가기 전에 메시지는 남겨 두었어.”
“만약 발견 못하면?”
“그럴리는 없어. 베아가 있잖아. 신분도 철저히 숨겨주었고. 명심해. 본부가 절대 알면 안 돼. 그리고.. 내가 2주 동안 정기 연락이 없으면 찾지 말라고 메시지를 바꿔줘”
“알폰소 메시지는 어떻게 할까?”
“알폰소는 뭐⋯ 알아서 하겠지.”
“알았어. 몸 조심해. 우리가 잘하고 있는 거겠지?”
“잘하고 있는 것 맞아. 지금 바스크에는 쥐새끼들이 너무 많아. 여기서는 아무것도 못해. 그리니까 너도 타이밍 맞춰서 나와”
“타이밍이면 알파팀 정식출정 지원 말고는 없잖아? 음⋯ 그럼 나도 알파팀 되는 거야?”
“팔도 제대로 못 쓰면서⋯ 그냥 안전가옥에 박혀있어.”
“몸조심해. 8번 돔 동태가 수상해.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어. 마치 전쟁이라도 하려는 것 같아”
“전쟁? 우리라도 공격하려는 거야? 곧 무너질 돔을? 상식적으로 얻을 수 있는 게 없잖아. 무역이라고 해도 우리가 항상 손해 보고 있는 입장인데?”
“모르겠어. 이번에 그런데 확실하게 특별한 점이 중화기를 준비하고 있다는 점이야.”
“⋯그건 조금 조사할 필요가 있겠네. 알았어 우선 8번 돔 조사를 먼저 하고 있을게.”
***
CurtainCall 8
“너 똑바로 이야기하지 않으면 너를 포함해서 너의 가족들 모두가 위험해질 거야.”
“저는 정말로 몰라요. 그냥 같이 다닌 거지 사실 그 친구를 별로 좋아하지도 않았어요.”
화가 난다. 왜 그 새끼 때문에 내가 이런 일을 당해야 하는 거지? 다시는 보지 않을 줄 알았는데 인생에 전혀 도움이 안 된다.
“그럼 그 친구가 평소에 어디를 가는 걸 좋아했지?”
“자기네 집 옥상 말고는 딱히 가는 곳은 없었어요. 아! 쓰레기장. 거기서 이것저것 주워서 고치는 걸 좋아했어요.”
“거기에 뭔가 특별한 것이 있었나? 누구를 만났다던”
“아뇨. 그런 건 전혀 없었어요. 그냥 뭐 고치고 그런 걸 좋아하는 것뿐이었어요.”
“더 이상 정보가 없겠는걸요?”
“그런 거 같군. 본인도 몰랐던 것 같아.”
“이 녀석은 어떻게 할까요?”
“처리해.”
처리하라고? 그 새끼 때문에 나까지 죽게 생겼다. 왜 멀린도 있는데 나만 잡힌 거야! 내가 4급이라서? 이대로 죽을 수는 없어.
“잠시만요. 저 시키는 거 뭐든 다 할게요. 그니까 목숨만은 살려주세요”
뒤를 돌아섰던 총을 든 사내가 다시 나를 바라봤다.
“시키는 걸 다 한다고?”
“네! 그 새끼를 잡아오라고 하면 잡아오고 죽이라 하면 죽일게요. 제발 살려주세요”
“그래? 음⋯ 그럼 우리를 위해 일해 볼래? 4급 직업으로 죽는 것보다는 날걸?”
“네 네! 제가 뭘 하면 될까요?”
“바스크에 들어가.”
“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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