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나니의 아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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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종희
그림/삽화
윤종희
작품등록일 :
2024.07.23 08:31
최근연재일 :
2024.09.19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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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3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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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8,6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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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9.13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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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쪽

여인의 귀처럼 생긴 꽃은

DUMMY

“꽃이 이쁜 곳이 있어요. 아무나 들어갈 수 없지만 언니 한테는 특별히 보여드릴게요.”


“꽃....... 무슨 꽃?”


“나중에요. 지금은 꽃이 잠자는 시간이에요. 꽃이 깨어나면 그때 보러가요.”


“한온아 너 여기에서 오래 살다 보니 막 헛것이 보이지?”


“꽃이고 사람이고 잠을 자야 합니다.”



어느새 김철용이 뒤에 서 있다.



“꽃이 있습니까? 여기에?”


“지상에 있는 것은 무엇이든 가져오려 합니다. 특히 꽃은 벌도 함께 키울 수 있어 필요한 꿀도 얻을 수 있고요. 지금은 저녁이 되어 빛을 들지 못하게 해서 휴식을 취하는 중입니다. 기회가 되면 제가 직접 보여 드리겠습니다.”



“어떻게 충당하십니까? 여기를 유지하고 사람들이 먹고 사는 것에 상당한 비용이 들지 않겠습니까? 여기만한 곳이 다섯이나 더 있다면서요?”


“여러분들도 아는 내 처 같은 사람들의 희생이 따릅니다.”



개성 과부의 이야기다. 그러나 다시 생각을 해봐도 상식적으로 이해가 되지 않는다. 연을 끊다시피 한 서방을 위해 수 십 년의 세월을 희생한다는 것은 미친년이 아니고서야 생각할 수 없다.


남자의 매력은 여자가 본능적으로 알 수 있다. 김철용은 어디를 뜯어 봐도 사내다운 매력을 느낄 수 없는 놈이다. 막란 서방과 같은 야성의 맛도 없으며 매사에 완전을 기하는 결벽증을 가진 놈이다. 이런 놈을 위해 인생을 바치는 여인이 있다는 것은 코웃음을 칠 일이다.



“솔직히 말씀해 주시죠. 우리가 여기에 머물러야 할 이유를 찾아야 합니다. 오늘 첫 끼를 때웠습니다. 밥은 오곡이었고 찬은 칠첩(일곱 가지의 반찬)이었습니다. 바깥세상에서는 쉽게 접하지 못하는 밥상입니다. 매끼 이런 줄 알고 있습니다. 당신 말처럼 개성여인은 여기에 군자금을 대주지 않았습니다. 설사 대 주었다 하더라도 이곳을 유지하는 것에 터무니없이 모자랍니다. 그러지 않습니까?”



김철용의 눈썹은 오랜 거짓이 들통 난 것처럼 가늘게 떨린다.



“알고 싶은 것이 무엇인가요? 아내의 저에 대한 생각인가요? 아니면 제가 생각하는 아내인가요? 그렇지 않으면 이곳을 유지하는 데 필요한 경비 조달의 내역인가요?”


“우리 내외 말고는 다른 부부의 관계는 궁금하지 않습니다. 솔직히 자금 출처도 궁금하지 않습니다. 이곳을 보니 전쟁이 일어나도 왜 걱정을 하지 않는지 알 것 같습니다. 땅 밑에 박혀 있으면 세상천지 뭔 일이 일어나도 관계없겠지요. 그런데 제가 궁금한 것은 도대체 우리가 뭔 일을 해야지 이곳에서 계속 살 수 있느냐는 겁니다.”


“알겠습니다. 내일 날이 밝는 대로 저희와 함께 하시죠. 제가 설명 드리는 것보다 직접 보는 것이 나을 겁니다.”



김철용은 마지못해 윤서의 물음에 답을 하는 것 같다. 아니면 원래 소심한 놈이라 그렇게 보일 수도 있다. 아무튼 날이 새면 궁금증은 풀릴 것 같다. 모든 것이 갖추어진 지하세계다. 화적들과 윤서와 막란이 살기에는 최적의 장소가 아닌가. 여기서 천년만년 살게 되었으면 좋겠다.


방은 열 개이고 방 하나에 각기 격벽이 열 개가 만들어져 있어 이십 명씩 들어가면 이백의 사람들이 잘 수 있게 되어 있다.


격벽 방 입구에도 천이 둘러쳐져 있어 사생활도 어느 정도 보호될 수 있는 구조다. 단지 목소리가 큰 사람이 말을 하면 공명이 되어 울리는 단점이 있다.


한온이가 외롭다며 같이 자고 싶다고 한다. 막란 서방은 그러자고 했지만 윤서가 화를 내며 내 쫓았다. 나이는 열아홉이지만 남녀를 알만 한 정신적인 연령은 되지 못하는 것 같다.



“부인은 여기서 살고 싶지 않습니까?”


“서방님은 여기가 좋으십니까?‘


“천당이 있으면 이곳과 진배없겠지요. 먹을 것이 많아 좋습니다. 많이 먹어도 뭐라 하는 사람이 없어 좋습니다. 발 뻗고 누워 있어도 불안하지 않아 좋습니다.”


“여기서 살게 될 것입니다. 사람은 마음이 편안한 곳에 살면 그만입니다.”


“그런데 답답합니다. 몸에 맞지 않는 옷을 입고 있는 것 같아요. 부인은 어떠십니까?”



어려서부터 산과 들을 좋아해서 마음껏 자연을 누비던 막란이다. 의식주가 해결 된다고 해서 사람의 마음까지 편하지 않은 것 같다. 모자라고 불편해도 역시 지가 놀던 물이 좋다.



“전 바깥세상이 더 답답합니다. 오히려 여기가 갇혀있지 않고 확 트인 것처럼 가슴이 시원합니다.”



윤서는 부족함 없이 자랐다. 막란이 항상 옆에서 지켜주고 보호해 주어도 뭔가 모자라고 불편한 것이 싫었다. 이 지하세계는 모든 것이 완벽했다. 먹을 것은 넘치고 잠자리는 편안하며 무엇보다 물이 풍부해서 원할 때 몸을 씻을 수 있어서 좋았다.



“부인이 좋으면 그걸로 됐습니다. 남자들은 밖에 나가 일을 하는 모양이니까 그때 멧돼지 같은 걸 잡으면 됩니다.”


“김철용이라는 사람은 겉과 속이 다른 거 같아요. 조심해야 합니다.”


“원래 음흉하게 생겨서 그렇습니다. 부인은 너무 외모만 따지는 것 같습니다.”


“제가 외모만 따졌다면 서방님과 혼례는 하지 않았을 겁니다.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요?”


“저는 외모가 반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부인을 보자마자 이 여자가 내 여자구나 하고 생각했던 겁니다. 후에 부인의 성격을 알고 조금 그랬습니다만 그래도 첫 인상을 무시할 수는 없었습니다.”


“그래서 저를 택한 것을 후회한다는 말입니까? 뭡니까!”


“철용이 이야기 하는 겁니다. 외모는 그래도 마음은 따뜻할 거란 말입니다.”


“숨기는 것이 너무 많아요. 개성 부인이 군자금을 대 왔다는 것도 거짓 같고 조선 각 지역에서 재화를 보내준다는 것도 사실이 아닌 것 같습니다.”


“아니면 어떻고 기면 어떻습니까? 세상 둥글게 사는 것도 하나의 방법입니다.”



윤서도 막란이처럼 아무 생각 없이 살았으면 좋겠다. 의심나면 봐야 하고 보면 해결해야 한다. 윤서는 그래야 가슴이 뚫린다.


사방에서 코고는 소리로 장단을 맞추는 것 같다. 윤서의 물음에 잠을 이루지 못하고 억지로 답을 주던 막란이가 어느새 코를 곤다. 아무리 피곤해도 등을 보이지 않고 잠이 드는 막란이가 고맙다.




*




다음날 숲 속에서.......

오늘은 지하세계의 사람들을 데리고 바깥에 나왔다. 한 달에 한 번 날을 잡아 사냥을 한다고 한다. 지하에서 키우는 짐승들이 있지만 그것은 식용으로 쓰이는 것이다. 날짐승을 잡는 이유는 그것을 팔아 다른 필요한 물품과 교환을 하기 위해서라고 한다.


바깥에서 하는 일을 보여준다고 윤서가 잔뜩 기대했지만 고작 사냥이라는 말에 실망을 했다. 그러나 첫 날부터 배부를 수는 없다. 사냥은 막란이 잘 할 수 있는 한 가지다. 윤서도 사실 칼은 써 본적은 없어도 활은 자신이 있다. 거리와 방향만 맞으면 되는 일이다.


아버지 최이현이 어린 시절 윤서에게 장차 무엇이 되고 싶냐고 물어봤을 때, 조선의 무사가 되고 싶다고 말하자 하늘이 무너지는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 그때부터 윤서의 화살을 죄다 구부려 놓아 적어도 활만큼은 그녀가 재능이 없다고 느끼게 만들어 놓았다.


그러나 다른 곳에서 윤서는 자신의 재능을 알아 차렸다. 먹을 것을 구걸하러 다니는 문둥이를 동네 아이들이 돌 팔매질을 했다. 그 문둥이는 살이 터지고 피가 흐르며 윤서 앞에서 정신을 잃고 쓰러졌다.


그럼에도 아이들이 계속해서 돌을 던졌다. 윤서도 돌을 집었다. 아이들이 예닐곱이라 기억되는데. 윤서가 돌을 던져 그들의 팔을 쓰지 못하게 만들었다. 그 중의 한 명은 왼손잡이 였지만 그마져도 정확하게 맞혀 버렸다. 그때부터 윤서는 다시 무사의 꿈을 키웠다.


후에 임금의 사냥터에서 사슴을 살리려 의도했던 곳으로 탄착지점에 화살이 꽂히자 윤서는 비로소 자신의 재능을 믿어 의심치 않게 되었다.


활만큼은 막란보다 윤서가 나았다. 나무 위에 있는 새를 막란은 겨우 맞춰 내지만 그녀는 하늘을 나는 꿩도 떨어트린다. 막란은 전부터 눈치를 채고 있었지만 그래도 자존심이 상한다.



“부인 오늘은 그만 하시지요. 선생님도 활을 거두셨습니다.”


“전 이제 시작입니다. 꿩도 스무 마리 밖에 잡지 못했습니다.”


“대신에 제가 멧돼지도 두 마리 잡아 드렸잖아요.”


“전 고라니와 사슴 다섯 마리입니다. 호랭이를 본 것 같습니다. 가만히 계세요.”


“물물을 교환하러 가자면 지금 멈춰야 시간 안에 당도한다고 합니다.”


“어딘데요? 그 곳이?”


“의주도 가야하고 개성도 가야 한답니다. 평양도 있고요.”


“짐승 몇 마리 갖고 평안도 전체에 소문 낼 일이 있답니까?”


“각지에 주문이 있습니다.”



김철용이 윤서에게 다가온다.



“집짐승 보다 날짐승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특히 한약재에 들어가는 사슴과 고라니는 한약방에서 원하고요. 해가 넘어가기 전에 지금 떠나야 합니다.”


“지금 출발하면 밤길을 가야합니다. 짐승들도 해체를 해야 하고요.”



보통 사냥을 해서 고기를 팔려면 뼈와 살을 발라야 한다. 털에 숨은 벼룩과 균들로 인해 고기가 상하기 쉽기 때문이고, 소분해야 운반이 편리하기 때문이다.



“대충은 소분하지만 뼈와 가죽은 그냥 둘 것입니다. 우리의 고객들은 해체하지 않은 것을 원합니다.”



거짓이다. 김철용 이놈은 막란이 백정이라는 사실을 모른다. 짐승을 잡으면 털과 가죽을 해체해야지 위생과 보관에 유리하다. 윤서도 막란에게 몇 번 들어 아는 사실이다. 그런데 왜?



“저도 물물을 교환하는 곳에 따라가면 안 되겠습니까?”


“안됩니다. 여러분은 전국에 수배령이 내려진 사람들입니다. 잊으셨습니까?”


“우리는 항상 쫓겨 다니며 살았습니다. 밤길을 이용하여 가자면 위험할 일도 없습니다. 일을 배우고 싶습니다. 누구에게 짐승을 넘기며 어떤 것을 받아 오는지요.”


“차차 아시게 될 겁니다. 오늘은 늦었으니 그만 돌아가시죠.”



김철용이 한사코 말리는 통에 사람들을 따라갈 수 없었다. 과하다 싶을 정도로 커다란 봇짐에 짐승을 소분한 고기 몇 덩어리를 집어넣고 수 십 명이 길을 떠났다.


지하로 내려오자 한온이가 맞는다. 항상 온화한 미소를 짓는 그녀의 표정이 예쁘다.



“어땠어요? 저는 바깥을 나가지 못해 항상 궁금했는데 백설기 같다는 눈은 아직 내리지 않았지요?


“이제 서리가 내린다는 한로(寒露)이잖니....... 눈이 오려면 달포(한 달 보름)정도 있어야 돼.”


“눈이 보고 싶어요. 말만 들었지 한 번도 보지는 못했거든요.”


“내일이라도 나가면 되잖어.”


“아버님이 허락을 하지 않습니다. 그렇게 부탁을 했는데도요.”


“어떤 사연이 있어 허락을 안 해 주는지는 몰라도 내가 부탁할게.”


“고맙습니다. 언니.”


“그런데 한온아 꽃을 키운다고 했지? 어떤 꽃이야?”


“이름은 모릅니다. 두 개의 아름다운 빨간 꽃잎이 마치 여인의 귀 모양처럼 생겼습니다.”


“두개라 하면 ‘양’이고 여인의 귀라면 ‘귀비’가 아닙니까 부인!”


“설마....... 양귀비!”



양귀비는 아편이다. 소량으로 수입해 약재로 쓰이기는 하나 환각제 성분이 다량 포함되어 있어 잘 못 사용하면 죽음으로 몰고 갈 수 있는 꽃이다. 때문에 조선에서는 재배가 금지된 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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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3 서방님의 코를 실룩 거리세요 NEW 2시간 전 4 1 12쪽
72 찬란한 노을이 지면 24.09.18 8 0 11쪽
71 조선의 통역사는 첩자이다 24.09.17 9 1 12쪽
70 그 바람이 신경이 쓰였습니다 24.09.16 10 0 11쪽
69 혼례를 했으니 우린 내외다 24.09.15 13 1 11쪽
68 저는 몰라요 24.09.14 15 0 12쪽
» 여인의 귀처럼 생긴 꽃은 24.09.13 11 1 11쪽
66 머리에 아주까리 기름을 바르면 24.09.12 11 1 12쪽
65 임금의 욕을 할 수 있는 세상을 만들어 봅시다 24.09.11 11 1 12쪽
64 64.화적과 의병의 차이 24.09.10 11 1 11쪽
63 개시(개똥) 누이 막심이 24.09.09 14 1 11쪽
62 짱돌만으로도 전쟁을 이길 수 있습니다 24.09.08 16 1 12쪽
61 망원경에서 보이는 것 24.09.07 12 1 13쪽
60 전쟁은 그런 것이다 24.09.06 15 1 12쪽
59 백정과 오랑캐 24.09.05 13 1 13쪽
58 #58.소금을 배에 옮겨라! 24.09.04 13 1 12쪽
57 王八! 24.09.03 15 0 12쪽
56 내 정체가 궁금하다 했습니까 24.09.02 19 1 12쪽
55 백년 된 잉어는 죽은 사람도 살릴 수 있다 24.09.01 18 1 12쪽
54 아홉 개의 돛을 가진 배가 필요 합니다 24.08.31 15 1 11쪽
53 무명(無名)이라 합니다. 더 이상 묻지 마세요 +1 24.08.30 21 1 12쪽
52 거리와 방향만 맞으면 됩니다 24.08.29 17 1 11쪽
51 내가 죽어야 한다면 죽겠다 24.08.28 16 1 12쪽
50 백호은침(白毫银针)이라는 백차(白茶)입니다 24.08.27 17 1 11쪽
49 구천 구백 구십 구 칸 24.08.26 17 1 11쪽
48 황주(荒酒)로 데워 만든 온주(溫酒)입니다 24.08.25 16 1 11쪽
47 한계란의 언니를 아십니까 24.08.24 15 0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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