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나니의 아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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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종희
그림/삽화
윤종희
작품등록일 :
2024.07.23 08:31
최근연재일 :
2024.09.17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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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27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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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쪽

백호은침(白毫银针)이라는 백차(白茶)입니다

DUMMY

황궁 안에서 조선말을 하는 사람을 만났다.


교지를 써 준 그 환관이다. 조선인이었던 것이다.



“차(茶)가 준비되어 있습니다.”


“저희는 황궁 구경에 족합니다. 마음 쓰지 않으셔도 됩니다.”


“황제폐하의 분부십니다. 따르지 않으시면 제가 매질을 당합니다.”



차를 마시지 않으면 환관을 때린다 하니 참으로 무식한 황제이다. 이 잘생긴 환관을 맞게 할 수는 없어 안내하는 곳으로 따라간다.


뒤태는 앞모습보다 보기가 더 좋다. 막란 서방처럼 경박스럽지 않게 뒤꿈치를 들고 사뿐사뿐 걸으며, 주위를 돌아보지 않고 앞만 걸어가는 모습이 다소곳하고, 막란이 산만하여 걸음이 늦으면 잠시 기다렸다 가는 것이 배려가 깊다.


어쩌다 조선에서 끌려와 환관이 되었을까? 조선은 머리카락으로 고환을 묶어 천천히 기능을 상실하게 하여 안전하게 내시로 만든다고 한다. 하지만 명나라에서는 고환뿐 아니라 남근 자체를 잘라버린다 하니, 과다출혈과 염증, 그리고 소변구멍이 막혀 치사율이 열에 일곱은 달한다.


그래서 어린 막란도 명나라에 끌려가기 전에 아비 꺽쇠가 꼽추로 만들어, 자칫 목숨을 잃을 뻔한 것을 구해준 것이다.


잘생긴 환관은 황궁 안에서도 인적이 드문 별실로 안내했다. 별실은 매캐한 냄새가 났고 거미줄이 쳐져 있어 오랫동안 사람을 들이지 않은 방이라는 것을 한 눈에 알 수 있었다.


막란 서방은 그렇지 않아도 곱상한 환관 얼굴 때문에 열 받고 있는데, 이런 대접을 받으니 부화가 치밀어 오르는 듯 얼굴이 붉게 타 오른다.



“부인! 나 차 안 마시겠습니다!”



윤서는 환관 얼굴 보는 재미에 방이 어떻게 생겼든 별로 신경 쓰이지 않는다.



“그래도 황궁이잖습니까? 얌전히 차나 마시세요.”


“백호은침(白毫银针)이라는 백차(白茶)입니다. 백가지 병을 고친다는 의미로 맛은 깨끗하고 신성하며 마신 후에도 담백함이 오래갑니다. 어서 드시지요.”



미리 준비한 듯한 차를 능숙한 솜씨로 우려내어 윤서와 막란에게 건넨다. 막란은 받자마자 내려놓는다.



“차나 들라고 이런 곳에 우리를 안내한 것이 아닌 줄 압니다.”



윤서는 은밀한 곳을 안내한 환관의 정체가 궁금했다. 설마 서린이 이런 내시를 연인으로 생각해서 십여 년을 잊지 못했을 리가 없기 때문이다.



“홍자성 대인 댁에서 오셨다고 알고 있습니다. 맞습니까?”


“그렇습니다. 저한테 볼 일이라도 있는 겁니까?”


“안부만 묻고 싶습니다. 잘 있는지....... 몸 상한 데가 없는지....... 저는 그것만 알면 족합니다.”



놀랍게도 서린의 연인이다. 환관을 좋아한다고? 윤서는 이해가 가지 않는다. 구실도 하지 못하는 남자 아닌 남자를 그 오랜 세월동안 잊지 못하다니.......



“저는 뭐가 뭔지 모르겠습니다. 도대체 누구십니까?”


“인사가 늦었습니다. 풍천태생 이동화라고 합니다.”


“홍자성 대인의 여인과는 어떤 관계입니까?”


“그 여인을 따라 조선에서 왔습니다.”



이동화의 말은 이렇다. 서린을 사모하는 마음에 그녀가공녀로 발탁되어 명나라로 오자 자진하여 따라왔다고 한다. 서린이 황궁으로 입궁하면서 그 역시 거세하여 환관이 되어 그녀 옆에 있었다는 것이다.


그러다 황제가 죽어 서린이 순장당할 위기에 처하게 되자, 평소 그녀를 마음에 두고 있었던 홍자성과 함께, 서린 대신 시녀를 순장해서 무사히 궁에서 빠져 나왔다는 것이다.


그 이후 서린을 만날 수는 없었고 이렇게 가끔 우연한 기회를 통해 그녀의 안부만 접하고 있다고 한다.



“여인은 아직도 당신을 잊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 여인은 나를 기억은 해도 좋아한 적이 없습니다.”



이건 또 무슨 말인가? 이 자를 살리려 위험을 무릅쓰고 홍자성을 죽이려는 서린이 아니던가........ 그런데 자기를 좋아한 적이 없다니?



“당신을 살리려 여인은 죽음도 각오하고 있습니다.”


“잘못 알고 계신 듯합니다. 이곳은 벙어리와 귀머거리 흉내만 내면 바깥세상보다 더 오래 수명을 부지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누가 이 하찮은 환관의 목숨을 탐하겠습니까?”



윤서는 머리를 씨게 맞은 듯 정신이 바짝 든다. 전쟁터에 함께 데려간 홍자성의 아들을 이야기 할 때 분명 그녀의 눈물이 비쳤던 것이 생각났다.


서린이 좋아하는 남자는 홍자성의 아들이었던 것이다. 오랫동안 그 집에서 정을 통해 왔고, 아버지 홍자성으로 인해 전쟁터로 내몰려 개죽음을 당하게 되자, 윤서를 이용해 홍자성을 죽이려는 거였다.


이동화 환관 이자는 그냥 십여 년 동안 혼자 북치고 장고치는 순애보만 키워 온 것이다. 어떻게 한 여자를 위하여 거세를 하고 황궁에 들어와, 보지도 못하는 여인의 안부를 가끔 묻는 것에 만족을 하며 살 수 있는지, 윤서는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 여인은 좋아하지도 않는 당신을 입에 담으며, 다른 연인을 살리려 하고 있습니다. 화나지 않으세요?”


“......그 사람만 좋으면 저는 아무렇게 되어도 상관이 없습니다.”



천하의 등신....... 세상에 이런 천치가 어디 있을까? 자기를 좋아해 주지도 않는데, 순장 당할 뻔 한 것을 분명 목숨 걸고 구해주었을 테고, 지금은 다른 남자를 살리기 위해 지랄 염병을 떨고 있는데 괜찮단다.



“그 여인은 요녀(妖女)입니다. 당신의 인생에서 가치를 둘 만한 여인이 아닙니다. 냉수 드시고 정신 차리시기를 바랍니다. 진정입니다.”


“여인들은 마지막 사람을 마음에 두지만 남정네들은 처음의 여자를 마음에 남깁니다.”


“처음이고 마지막이고 한 사람만 바라보기에는 세상은 넓고 할 일은 많습니다. 부디 남자 구실을 하지 못해도 사람 구실을 하고 사시기를 바랍니다.”



윤서는 화가 나서 더 이상 자리에 앉아 있을 수가 없었다. 막란의 모가지를 끌다시피 방에서 나온다. 막란 고소하다는 듯이 윤서의 눈치를 살핀다.



“환관 놈이 준 차가 맛이 없었지요?”


“서방님!”


“왜 그러십니까 무섭게?”


“혹시....... 내가 죽고 서방님이 혼자 남게 돼도 청승맞게 날 그리워하며 살지 마세요. 저 환관 놈처럼!”


“부인이 저 세상으로 가면 나두 따라 죽을 겁니다.”


“서방님! 내 말을 뭘로 들으셨어요! 귓구녕을 꼬챙이로 파 드릴까요!”


“귓구녕이든 똥구녕이든 안만 파내어도 사내 마음은 그런 겁니다.”



막란은 헛소리를 가끔 할 뿐 마음에 없는 소리는 하지 않는다. 윤서가 잘못되는 날에는 그도 윤서의 뒤를 따를 것 같은 불길한 예감이 든다.



“서방님 약속해 주세요. 제가 죽으면 새 장가 가겠다고요!”


“부인이 정 원하신다면....... 그 약속은 지켜 드리지요.”



그러면 그렇지....... 사내놈은 다 똑같다. 두 발로 서 있는 힘만 있으면 열 여자 마다 하지 않을 것이다. 거세된 사람만 제외하고 말이다.


막란은 최근 윤서가 자꾸 이상한 이야기를 하는 것이 불안하다. 막란을 먼저 재워 놓고 혼자 산책 나가기를 좋아하고, 윤서가 죽으면 잊어버리고 새 장가나 가라 그러고.......


막란에게 세상을 나누라 하면 윤서 있는 세상과 없는 세상이다. 없는 세상은 꿈도 꾸지 못한다. 그래서 세상은 하나다. 윤서 있는 세상만이 막란에게 유일한 세상이다.




*




홍자성의 집.......



“천자(天子)는 만나고 오셨습니까?”


“천자보다는 이동화 환관의 소식이 궁금하지 않으십니까?”


“.......”


“좋아하지도 않은 사람을 고문하고 있더군요.”



윤서는 돌려 말하는 것을 싫어한다. 아니 부탁을 받아 홍자성을 죽여야 해도 사실을 알고 싶어 했다. 어차피 화적들을 조선으로 강제송환 당하지 않으려면 홍자성은 없애야 한다. 하지만 서린의 거짓된 사연으로 그녀의 부탁을 들어주고 싶지는 않다.



“그 사람의 인생입니다. 저와는 상관없는 일입니다.”


“그 사람을 살려야 한다고 하지 않으셨습니까?”


“저의 안부만이 유일한 낙인 사람입니다. 그의 청대로 저는 탈 없이 살면 그만인 것입니다.”


“그 사람을 만나 주세요. 그래야 부인의 부탁을 들어줄 수 있습니다.”



윤서는 이동화에게 마지막 선물을 주고 싶었다. 이 못된 서린이도 양심이 있다면, 평생을 자기만 생각하고 사는 남자에게, 그 정도는 해 줄 수 있으리라 믿었다.



“안됩니다. 제멋대로 남근을 잘라내고 내시로 황궁에 들어간 사람입니다. 그 사람의 인생은 거기서 끝난 것입니다. 이미 내 기억에서 사라진 사람입니다.”



서린은 만나주지 않겠다고 한다. 그런데 생각 외로 화를 낸다. 남근을 잘라낸 것이 그녀가 화를 내는 이유인지, 아니면 멋대로 그녀를 좋아해서 화내는 것인지 모르겠다.



“부인이 좋아하는 사람은 따로 있지요?”



홍자성의 아들과 정을 통해 왔다는 사실을 불게 만들고 싶었다. 괜히 엄한 사람을 끌어들여 거짓으로 동정을 구하려는 그녀가 보기 싫었다.



“.......그런 사람 없습니다.”



끝까지 오리발이다. 홍자성의 아들놈이 아니냐고 입 밖으로 내 뱉으려다 겨우 참아냈다. 뭐....... 사실이면 어떻고 아니라도 윤서와는 상관없는 일이 아니던가.


그래도 얼굴색 하나 변하지 않고 거짓을 말하는 그녀가 참으로 뻔뻔하다. 그런 그녀의 얼굴이 뭐가 예쁘다고 넋 놓고 바라보는 막란이 더 싫다.



“뭐해요! 밤이 늦었어요. 자러 안가요!”



죄 없는 막란이만 잡는다.



“홍자성 대인이 올 것입니다.”



오늘 밤 안으로 온다는 기별을 받았다고 한다.



“전쟁터에서 아들이 죽기 전에 홍자성을 처리하라고요?”



윤서는 일부러 쏘아 붙인다.



“후금의 군사를 상대하는 것은 자살행위입니다. 아드님을 어서 전쟁터에서 빼와야 합니다. 정실부인도 지금 제 정신이 아닙니다.”


“정실부인이 아니라 안절부절 못하는 사람은 따로 있는 것 같습니다.”


“.......”


“걱정마세요. 대인을 요절내든 구워삶든 우리가 알아서 할 겁니다.”


“그럼 믿고 기다리겠습니다.”



뭘 믿는지는 몰라도 재수 없게 다소곳이 허리를 굽혀 인사를 하고, 여우 아니랄까봐 뒤꿈치를 들고 사뿐사뿐 뒤 돌아 사라진다.


내키지 않아도 홍자성의 목숨은 없애야 한다. 홍자성이 오늘 밤에 도착한다는 말을 들은 막란의 눈빛이 살기를 띈다.


이 큰 집에 하인들이 별로 없다. 아마도 서린이 막란을 위해 최소한만 남겨두고 모두 물렸을 것이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홍자성에게 사정해, 윤서일행을 집으로 불러들이라고 했다는 것이다. 화적들과 막란이라면 능히 홍자성이 경계를 풀어 기회를 노리기에 적당한 상대라 판단한 것이다.


자정이 다 되어 홍자성은 변방에서 집으로 도착했다. 그런데 그의 아들도 함께였다. 듣기로는 변방에 아들을 남겨놓고 후금과 상대할 것이라 했는데 그러지 않고 같이 돌아온 것이다.


홍자성은 여독을 풀기 위해 방으로 향했고, 아들은 그의 어머니 홍자성의 정실부인과 서로 껴안고 눈물을 흘리며 상봉하고 있다. 그 옆에는 서린이 짠하게 바라보고 있다.


멀리서 이들을 바라보는 윤서가 서린이 혼자 있을 때 기회를 노려 다가간다. 아들이 위험하지 않다면 구태여 홍자성을 서둘러 죽일 필요까지는 없지 않은가.



“아닙니다. 반드시 죽여야 합니다. 홍자성을 죽여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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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1 조선의 통역사는 첩자이다 NEW 45분 전 3 1 12쪽
70 그 바람이 신경이 쓰였습니다 24.09.16 5 0 11쪽
69 혼례를 했으니 우린 내외다 24.09.15 7 1 11쪽
68 저는 몰라요 24.09.14 12 0 12쪽
67 여인의 귀처럼 생긴 꽃은 24.09.13 8 1 11쪽
66 머리에 아주까리 기름을 바르면 24.09.12 10 1 12쪽
65 임금의 욕을 할 수 있는 세상을 만들어 봅시다 24.09.11 10 1 12쪽
64 64.화적과 의병의 차이 24.09.10 9 1 11쪽
63 개시(개똥) 누이 막심이 24.09.09 12 1 11쪽
62 짱돌만으로도 전쟁을 이길 수 있습니다 24.09.08 15 1 12쪽
61 망원경에서 보이는 것 24.09.07 11 1 13쪽
60 전쟁은 그런 것이다 24.09.06 14 1 12쪽
59 백정과 오랑캐 24.09.05 12 1 13쪽
58 #58.소금을 배에 옮겨라! 24.09.04 12 1 12쪽
57 王八! 24.09.03 13 0 12쪽
56 내 정체가 궁금하다 했습니까 24.09.02 17 1 12쪽
55 백년 된 잉어는 죽은 사람도 살릴 수 있다 24.09.01 15 1 12쪽
54 아홉 개의 돛을 가진 배가 필요 합니다 24.08.31 12 1 11쪽
53 무명(無名)이라 합니다. 더 이상 묻지 마세요 +1 24.08.30 18 1 12쪽
52 거리와 방향만 맞으면 됩니다 24.08.29 15 1 11쪽
51 내가 죽어야 한다면 죽겠다 24.08.28 14 1 12쪽
» 백호은침(白毫银针)이라는 백차(白茶)입니다 24.08.27 16 1 11쪽
49 구천 구백 구십 구 칸 24.08.26 16 1 11쪽
48 황주(荒酒)로 데워 만든 온주(溫酒)입니다 24.08.25 15 1 11쪽
47 한계란의 언니를 아십니까 24.08.24 14 0 12쪽
46 가을 햇살에 눈이 감긴다 24.08.23 13 0 11쪽
45 세상의 반이 사라진다는 것 24.08.22 12 0 11쪽
44 황금 열 냥으로 할 수 있는 일 24.08.21 17 0 12쪽
43 백성들아 알고 있나 막란의 처라는 걸 24.08.20 19 0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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