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나니의 아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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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종희
그림/삽화
윤종희
작품등록일 :
2024.07.23 08:31
최근연재일 :
2024.09.19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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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8,6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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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9.15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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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쪽

혼례를 했으니 우린 내외다

DUMMY

꺽쇠의 허락이다. 이제 그도 덴년이를 맞을 준비가 되어 있는 것이다.




*




지하 광장에서.......

꺽쇠와 덴년이의 혼례식이다. 막란과 윤서가 급히 서두르는 통에 다른 준비를 할 수 없었는데, 김철용의 배려로 고기와 술이 넘치게 마련되었다. 신랑의 사모관대와 신부의 붉은 활옷은 없어, 대신 둘 다 모시 적삼에 양귀비로 온 몸을 감싸 놓아 눈이 부시게 해 놓았다.


형식과 절차는 없다. 신랑과 신부가 같은 술잔을 나누어 마시고 사람들에게 절을 하면 끝이다. 아이들이 이들 주위를 빙글빙글 돌며 ‘꺽쇠는 장가가고 덴년이는 시집가네!’를 노래하듯 소리한다. 화적들은 춤을 추며 꺽쇠와 덴년에게 한 마디씩 던진다.



“형님 고자 아니라며! 확실히 혀! 덴년이한테 물어볼랑께!”


“덴년아 딸 낳으면 안 돼! 꺽쇠 닮으면 시집 못가니께!”


“아비....... 덴년이 아줌마하고 오래오래 살아! 예쁜 손주 낳아 드릴 것이여!”


“안돼 막란아! 꺽쇠형님 보다 먼저 낳으면 족보가 개 족보가 된다. 기다렸다가 형님이 낳고 네가 낳아야 돼!”


“아무렴 어떠냐! 먼저 박차고 나오는 놈이 장땡이다! 막란아 오늘부터 아끼지 말고 힘 써야 된다! 아씨도 알았죠!”


“나는 몰라요.......”



오랜만에 즐기는 잔치이다. 술을 먹고 마음껏 주사를 부려도 뭐라 하는 사람이 없다. 누구보다 꺽쇠의 마음이 좋다. 그동안 막란의 어미 때문에 덴년이의 마음을 받아줄 수 없었다.


그런데 막상 혼례를 치르니 이상하게 막란의 어미에 대한 미안함이 사라지는 것 같다. 이제는 막란의 어미를 보내줄 수 있게 되었고 그 자리에 덴년이를 맞는다.


덴년이는 왕족의 가문에서 태어나 기녀가 되고 화적이 되었다. 어려서는 윤서 못지않게 유복한 집안에서 온갖 귀여움을 받고 자랐다.


그런데 정변으로 인해 한 순간에 부모와 형제를 잃고 집안은 몰락했다. 그녀는 관비로 신분이 바뀌었고 우여곡절 끝에 화적의 아내가 된 것이다.


살고 싶지 않았지만 모지리 덕분에 살아났고, 그의 죽음으로 방황했으나 꺽쇠 때문에 힘든 삶을 이어갈 수 있었다. 덴년이가 굴곡된 인생에서 배운 것은 단 하나이다. 내일은 어떻게 될 줄 모르니 오늘만 잘 살자는 거다. 내일이 되어 오늘을 기억할 때 미소가 나오면 족한 것이다.


덴년이의 마음을 윤서는 알 것 같다. 어쩌면 같은 귀족으로 태어나 같은 화적의 아내가 된 처지 때문일 것이다.



“어머님의 이야기를 듣고 싶습니다. 친척 분들도 남아 있지 않은 겁니까?”


“남자들은 모두 능지처사의 형을 받아 남아 있지 않고, 여자들은 탐라(제주)와 호남의 관기로 보내졌다 알고 있습니다. 소식은 알고 싶으나 일부러 피하고 있습니다. 알게 되면 마음만 아플 것입니다.”


“알겠습니다. 더는 묻지 않겠습니다. 이제 아버님을 맞으셨으니 남은 인생 행복하시기 바랍니다.”


“고맙습니다. 아씨와 막란이 덕분으로 제게도 서방이 생겼습니다.”


“아비....... 아들 술 한 잔 받아........ 마시고 나도 한 잔 줘!”


“안됩니다. 이사람 술 들어가면 좋은 자리가 시끄러워집니다.”


“잔칫날에는 시끄러워야 합니다. 내가 그동안 부인 몰래 ‘한 오백년’이라는 창을 연습한 것이 있습니다. 한이 서린 노래라 서글퍼서 좋습니다. 제가 한 번 뽑아 볼께요.”


“이 좋은 날에 그런 창은 어울리지 않습니다.”


“가사가 쥑입니다. ‘한 많은 이 세상 야속한 님아....... 한 오백년 사자는데 왠 성화요....... 얼마나 좋습니까?”


“그만하세요. 서방님은 눈치가 너무 없습니다.”



막란과 윤서가 한창 실갱이를 벌이고 있을 때 김철용이가 한온과 함께 화주(花酒)라며 술병을 들고 다가왔다.



“국화와 작약으로 내어 만든 술입니다. 제가 한 잔 따라 올리겠습니다.”


“저희 식구들 때문에 마음이 많이 쓰였을 텐데 또 번잡한 일을 만들어드려 죄송합니다.”


“이제 한 가족이나 진배없습니다. 가족의 잔치인데 너무 준비된 것이 없어 미안한 마음이 큽니다.”



한온이의 똘망한 눈을 보니 덴년이가 절로 기분이 좋아진다. 앳된 얼굴에 체구가 작아 누가 보아도 열아홉으로 보이지 않는다.



“한온이라 했지? 햇빛에 과민증상이 있다 들었다. 해가 지는 밤에는 괜찮은 거야?”


“아줌마 한 쪽 얼굴은 왜 그래요? 나쁜 사람이 그랬어요? 복수하고 싶지 않으세요?”



묻는 말에 답은 하지 않고 궁금한 것에 되묻는 것이 윤서와 닮았다. 그런 그녀가 덴년이는 싫지 않다.



“아니 이렇게 된 것이 좋아. 얼굴이 말짱했을 때는 사내 놈들을 많이 상대해야 했거든....... 지금은 한 놈만 상대하면 되니까 너무 좋아!”


“난 먼지에도 두드러기가 나서 밤에 밖에 나가는 것도 안 돼요. 아줌마는 이 아저씨가 뭐가 좋아요. 우락부락하게 생겨서 나는 싫은데. 나는 막란이 오라버니가 좋아요.”


“얘 너 또 속 뒤집는 소리 할래! 내 서방이 뭐가 좋다고 이 지랄이니!”


“언니도 좋아요. 난 다 좋아요.”



속이 부글부글 끓어올라도 한온이의 철없는 소리가 밉지만은 않다. 그래도 막란 서방은 단도리를 잘 해 놔야 한다. 혈기왕성한 연놈들이 아닌가?



“얘 너 활쏘기 나한테 배워보지 않을래?”


“나 배워보고 싶어요. 여기서는 누구도 가르쳐 주지 않거든요.”


“알써. 그 대신 내 서방하고 단 둘이 놀면 안 돼.”


“지금 가르쳐 줘요!”



윤서가 나서고 한온이가 뒤를 쫓는다.



“한온이가 혼자 있으니 많이 외롭습니다. 제가 같이 있어 주지 못하니까 더 사람들을 따르는 것 같습니다.”


“아내 분의 생각은 나지 않으십니까?”



막란이가 김철용에게는 기억하기 싫은 그의 아내 이야기를 물어본다. 한온의 출생이 궁금해서다. 한온은 김철용을 닮았으나 그의 아이는 아니다.


막란은 개성 여인의 아이라 짐작한다. 막란이 햇빛에 대한 발진은 개성 여인과 닮아 있기 때문이다. 그녀 역시 언제나 소매 긴 옷을 입고 다녔고 두건을 두르고 다녔기 때문이다.



“잊은 지 오랩니다. 기억해야 할 것도 없고요.”



거짓이다. 그의 눈꺼풀이 가늘게 떨리는 걸 봐서 아직 개성의 여인은 김철용의 머리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이제는 묻지 않을 작정이다. 한온이가 불쌍해서 사실을 알아보려 했는데 다시 생각해보니 누구의 아이면 어쩔 것인가? 윤서가 뭐라 하든 한온이와 잘 놀아줘야겠다.



“알겠습니다. 지나간 사람은 다시 오지 않는 법이지요. 한온이가 선생님을 많이 의지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선생님의 호적에 입적이 되어 있어 나중에라도 한온이가 고마워 할 것 같습니다.”



막란이가 무심코 던진 말인데 김철용이가 약간 놀라는 눈치다. 한온이의 출생을 막란이가 눈치를 챈 것 같아서다. 그러나 이내 김철용은 단호해진다.



“한온이는 제 딸입니다. 누구의 생자인지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어려서부터 제가 길렀고 앞으로도 여기서 저와 살 것입니다. 한온이가 저를 의지하는 만큼 저도 한온이와 함께 했습니다. 그러면 된 것입니다.”



어쩌면 한온이를 위해 이 지하세계를 만들었는지 모른다. 개성여인을 평생 잊지 못하는 만큼 한온이는 김철용에게 전부가 되어 있었다.




*




김철용의 기억에서.......

한온이가 세 살 때였다. 김철용에게 개성의 아내가 찾아왔다. 물론 그의 아이가 아니었다. 그럼에도 뻔뻔하게 아이를 맡아 달라고 했다. 거절했다. 자신을 버린 여자였다.


다른 남자의 아이를 데려온 것이다. 아무리 아내를 마음에 담아두고 있다 하더라도 남의 아이까지 키울 자신이 없었다. 아내는 울며 아이를 보여주었다.


얼굴과 온몸에 발진이 나 있어 몰골이 말이 아니었다. 아내와 같이 햇빛에 민감하게 반응을 한다고 한다. 뿐만 아니라 아내에게는 없는 증상인 먼지에도 두드러기가 일어났다. 여러 한의원을 다녔지만 소용이 없어 마지막으로 김철용에게 데려왔다는 것이다.


한의학에 조금 식견이 있어 얼른 아편으로 진정을 시켰다. 아이는 이내 편안해졌고 그의 품에서 잠이 들었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아내는 사라졌다. 아내는 자신의 첫 번째 아이를 잃고 충격을 받아 남의 사내를 빌어 두 번 째 아이를 얻은 것이다. 김철용은 한온이를 받아들였다.




*



현실에 돌아와서.......

윤서는 한온이와 티격태격 하면서도 잘 놀아준다. 활쏘기뿐만 아니라 한온이가 좋아하는 무등도 태워준다. 막란 대신 하려는 거다. 그러나 한온이가 왜소한 체구여도 윤서도 작은 몸이다. 한온이를 태우고 일어서려다 함께 구른다. 한온이가 다시는 윤서와 무등 놀이를 하지 않을 것이다.




*




양귀비 꽃 밭에서.......

김철용의 배려로 특별히 양귀비 꽃 밭에 신방이 차려졌다. 동굴의 방은 여러 사람이 지내는 곳이라 방음이 되지 않아, 어쩔 수 없이 김철용의 허락 없이는 들어올 수 없는 양귀비 꽃 밭에 방을 꾸민 것이다.


대신에 낮에는 아편의 재료가 되는 씨방 채집을 해야 한다. 그러면 어떠랴....... 당분간이지만 덴년이와 둘만의 자리를 즐길 수 있는데.......



“꺽쇠야 왜 자꾸 도망 가냐? 이리 와 봐라.”


“도망은 무슨....... 술 냄새 풍기고 싶지 않아 그렇지.”


“육시럴 놈....... 이야기나 해보려 한다. 왜 겁나냐?”



꺽쇠가 가까이 오는 것을 주저하자 덴년이가 다가간다.



“천천히 해요.......”


“뭘 천천히 해........ 누워!”


“왜 누워요?”


“마주보고 있으니 남사스러워 그런다. 니 다리에 내 다리 올리게 해 줘라! 그래야 마음이 놓일 것 같다.”



혼례 날이다. 뭐든 못해 주랴. 덴년이의 다리를 받치고 있으니 이상하게 꺽쇠의 마음도 편안해 진다. 주위의 양귀비 꽃 향이 진하다.



“꺽쇠야 고맙다.......”


“고맙긴....... 얼른 자요. 피곤할 텐데.......”


“육시럴 놈....... 너 고자지?”


“미안하오. 모지리 형님이 아직 눈앞에 아른 거려요.”


“그런데 날 왜 받아 준거냐?”


“형수라서....... 다른 여자 같으면 어림없었소.”


“미친 놈....... 혼례를 했으니 우린 내외다.”


“그건 맞소.”


“그러니 니 다리에 내 다리 올리는 건 뭐라 하면 안 된다.”


“대신에 나 고자라 소문내면 안 되오.”


“보기 전에 나두 말 하지 않으마”


“며칠 내로 보여주겠소........ 하지만 오늘은 안돼요. 나두 정리할 시간이 필요해요.”


“썩을 놈........ 넌 미친놈이다!”



덴년이가 꺽쇠의 다리에 그녀의 다리를 더욱 깊게 포개어 올려놓는다. 덴년이의 다리가 새털 같이 가볍다. 누구보다 부끄러움을 많이 타는 그녀다.


그런데 유독 꺽쇠한테는 거리낌이 없다. 나이 들어도 꺽쇠한테 똥오줌을 받아달라고 할 기세다. 그래서 꺽쇠는 덴년이를 받아들인 것이다.


꺽쇠의 몸을 껴안고 자는 덴년이의 내뱉는 숨이 목덜미에서 느껴진다. 그녀는 그새 잠이 들었다. 영혼까지 순수한 여인이다. 꺽쇠는 이 여인의 영혼까지 지켜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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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3 서방님의 코를 실룩 거리세요 NEW 2시간 전 4 1 12쪽
72 찬란한 노을이 지면 24.09.18 8 0 11쪽
71 조선의 통역사는 첩자이다 24.09.17 9 1 12쪽
70 그 바람이 신경이 쓰였습니다 24.09.16 10 0 11쪽
» 혼례를 했으니 우린 내외다 24.09.15 13 1 11쪽
68 저는 몰라요 24.09.14 15 0 12쪽
67 여인의 귀처럼 생긴 꽃은 24.09.13 10 1 11쪽
66 머리에 아주까리 기름을 바르면 24.09.12 11 1 12쪽
65 임금의 욕을 할 수 있는 세상을 만들어 봅시다 24.09.11 11 1 12쪽
64 64.화적과 의병의 차이 24.09.10 11 1 11쪽
63 개시(개똥) 누이 막심이 24.09.09 14 1 11쪽
62 짱돌만으로도 전쟁을 이길 수 있습니다 24.09.08 16 1 12쪽
61 망원경에서 보이는 것 24.09.07 12 1 13쪽
60 전쟁은 그런 것이다 24.09.06 15 1 12쪽
59 백정과 오랑캐 24.09.05 13 1 13쪽
58 #58.소금을 배에 옮겨라! 24.09.04 13 1 12쪽
57 王八! 24.09.03 15 0 12쪽
56 내 정체가 궁금하다 했습니까 24.09.02 19 1 12쪽
55 백년 된 잉어는 죽은 사람도 살릴 수 있다 24.09.01 18 1 12쪽
54 아홉 개의 돛을 가진 배가 필요 합니다 24.08.31 15 1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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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 내가 죽어야 한다면 죽겠다 24.08.28 16 1 12쪽
50 백호은침(白毫银针)이라는 백차(白茶)입니다 24.08.27 17 1 11쪽
49 구천 구백 구십 구 칸 24.08.26 17 1 11쪽
48 황주(荒酒)로 데워 만든 온주(溫酒)입니다 24.08.25 16 1 11쪽
47 한계란의 언니를 아십니까 24.08.24 15 0 12쪽
46 가을 햇살에 눈이 감긴다 24.08.23 14 0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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