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나니의 아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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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종희
그림/삽화
윤종희
작품등록일 :
2024.07.23 0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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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17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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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22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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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쪽

세상의 반이 사라진다는 것

DUMMY

꺽쇠도 김의영의 진심어린 도움에 더 이상 거부하기 어렵다. 거처를 옮기기로 한다.




*




황천고개에서 만난 김철용은 처음 그대로였다. 임금과 백성이 평등하고 천민들도 성을 가져 족보를 만들 수 있으며, 여인들도 정사(政事)에 참여하여 나라 일을 할 수 있는 그런 세상을 꿈꾸고 있었다.



“내 아내가 보낸 분들이십니다. 끝까지 돕겠습니다. 필요하신 것이 있으면 뭐든 말씀하시지요.”



그는 죽은 개성 여인을 아직도 잊지 못하고 있는 듯하다. 윤서에게 자꾸 그 여인에 대해서 물어본다. 민란을 일으키기 전에 여인에 대한 조그마한 기억이라도 남기려는 것이다.



“아내는 닭 잡는 솜씨가 일품이었습니다. 그 모습을 본 적이 있다고 하시니 제 말에 수긍하실 겁니다.”


“아무렴요. 그 솜씨로 상인들도 잡아서 이곳으로 군자금도 댄 것 아니겠습니까?”


“서방님도 참....... 닭잡는 이야기 하는데 왜 사람 잡는 이야기를 하십니까?”


“하하....... 괜찮습니다.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닌걸요.”



하는데 김철용의 눈가에 이슬이 맺힌다. 윤서가 얼른 화제를 돌린다.



“백숙도 잘 끓였습니다. 원래 요리를 잘 하셨지요?”


“.......아닙니다. 음식 만드는 걸 귀찮아했습니다. 모든 찬에 과하다 싶을 정도로 소금을 많이 넣었습니다. 조금씩 먹게 해서 찬 만드는 수고를 덜고 싶어 했어요.”


“아....... 그래서 백숙이 그렇게 짰구나! 이제야 바른 말이지 그날 냉수를 한 바가지는 먹었을 겁니다.”


“서방님도 참....... 돌아가신 분이지만 여기 부군이 시퍼렇게 살아계신데 무안하게시리.......”



하는데 김철용이 또 울먹거려 윤서가 자리에서 일어난다.



“이제 길을 떠나야 겠습니다. 하시는 일 성공하길 바랍니다.”


“도울 일이 있으면 언제든 오세요. 여러분들을 보면 제 아내를 보는 것 같아 가슴이 뜨거워집니다.”



더 이상 지체할 수 없어 서둘러 자리에서 일어났다. 김철용은 이 십 여년을 이상 속에서 살고 있다. 그가 꿈꾸는 세상은 차별 없고 차이도 없으며 가진 것도 고루 분배되어 부의 많고 적음이 없는 나라이다. 단언컨대 그런 세상은 절대 오지 않을 것이다. 사람들의 욕심을 없애지 않는 한.......



“부인 나는 이상하게 김철용이라는 사람의 말을 들으면 술 먹은 것처럼 가슴이 콩닥콩닥 뜁니다.”


“서방님은 술을 끊으셔야 합니다. 한 번만 더 술을 드시면 다시는 저와 합방할 생각은 마세요.”


“아니....... 술을 먹지 않아도 그 사람 말을 들으면 뭔가 홀린 듯 기분이 이상해진다니까요.”


“그 사람 꿈을 꾸고 있어서 그래요. 그 꿈 때문에 자신의 아내를 버리고 세상을 등졌습니다. 서방님은 그러고 싶으세요?”


“모르겠습니다. 그만한 가치가 있는 것도 같고....... 사기꾼 같기도 하고요.”



막란 같이 평생을 억눌려 살아온 사람들이 김철용의 말을 들으면 혹할 것도 같다. 그 역시 자신의 최면에 오랜 세월 꿈꾸고 있지 않은가. 순진한 막란 서방은 물들게 하면 안 된다.



“천하의 개 쌍놈이 맞습니다. 지어미가 죽는다 해도 팽개치고 죽어서야 질질 짜는 놈입니다. 그게 어디 사람 놈입니까? 서방님은 아무리 이루고 싶은 꿈이 있어도 저를 버릴 수 있습니까? 생각을 해서 말 잘해야 할 것입니다.......”


“바우야 너는 이루고 싶은 꿈이 있냐?”


“저는 꿈을 잘 꾸지 않습니다. 형님.”


“서방님에게 물은 겁니다. 어서 대답 안 해요!”


“부인이 없으면....... 저는 식욕을 잃을 것 같습니다.”


“고작 먹을 것하고 저를 비교하시는 겁니까?


“저는 세상이 먹을 수 있는 것하고 없는 것 딱 두 가지로 이루어 졌다고 믿는 놈입니다. 식욕이 없다는 뜻은 세상의 반이 사라진 다는 겁니다. 나머지 반은 의미 없으니까 제게는 세상 모두를 잃는 다는 뜻입니다.”



막란은 세상에서 가장 순진한 사람이다. 이런 사람의 머리에 김철용 같은 사상을 집어넣으면 얼마나 혼란이 일어날까? 다시는 김철용을 만나지 못하게 해야겠다.



“서방님....... 엎드리세요.”


“네.......”



막란 서방의 등이 가장 편하다. 남포항까지 업혀서 가야겠다....... 명나라에 있는 화적들이 걱정이다. 산에서만 살았던 사람들이다. 윤서가 없으면 모르는 사람이 찾아와 콩으로 메주를 쑨다고 해도 믿지 말라고 했다. 냇가에 내 놓은 아이들처럼 걱정된다.




*




명나라 진안에서.......

오리만 걸으면 된다고 했다. 그러나 이십 리를 걸어도 김의영이 말한 객주 집은 보이지 않는다. 이제 길도 제대로 되어 있지 않은 산 속으로 들어간다.



“아이들과 여인들이 힘들어 하고 있습니다. 아직 객주는 멀었습니까?”



임신한 거란족 여인이 겨우 따라오고 있었다. 그것도 여인들의 부추김을 받지 않으면 여기까지 못 왔을 것이다. 포기하고 뒤돌아 가려 했지만 그동안 보여준 김의영의 성의에 그럴 수도 없었다. 그를 실망시킬 수 없었던 것이다. 십리를 더 산 속으로 갔다.


객주 집이라 하기에는 차라리 창고처럼 보였다. 그런 건물이 네 채나 되었다. 안에서 건장한 사람들이 화적들을 맞는다. 남자들과 나머지 사람들이 나누어 안으로 들어가야 한다고 했다. 몸을 씻어야 하기 때문이란다.



“몸에 벼룩이 있어 그렇습니다. 씻고 새 옷을 갈아입고 들어가야 몸에 피부병이 생기지 않습니다.”



맞는 말이기는 하지만 건물은 화적들의 옷차림보다 더러워 보였다. 많이 낡아 색이 바래 쓰러질 것 같았고 특히 창문이 없어 을씨년스럽기까지 했다. 김의영이 안에는 괜찮다며 남자들부터 몰아넣고 나머지 사람들은 이들과 떨어진 건물로 안내한다.


모두 들어가자 밖에서 문을 걸어 잠근다. 화적들의 웅성대는 소리....... 건물 안에는 계단이 없고 외부에서 올라가야만 하는 이층에서 김의영이 나타난다.



“난 상인이다! 너희 같은 놈들을 잡아 노비로 파는 상인이란 말이다!”



놈은 노예 상인이었던 것이다. 자국에서 살지 못하고 어쩔 수 없이 불법으로 국경을 넘는 사람들을 잡아다 노비로 만들어 파는 놈이다. 불법 이민자들은 어디에도 적을 두지 못하기 때문에 명나라의 법의 보호를 받지 못한다. 잡아다 팔면 그만인 것이다.


한꺼번에 이백 명이라는 노예를 얻었으니 김의영은 횡재했다. 그는 이 바닥에서 꽤 유명한 노예상인이다.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라 노예상인도 거란족 여인의 보증인으로서 김의영을 선뜻 허락해 준 것이다.



“사고를 치거나 도망가는 놈들은 뒤꿈치를 잘라 놓을 것이다!”



어느 정도 노동력이 상실돼도 뒤꿈치를 잘라 다시는 사고를 치거나 도망가지 못하게 한다. 또 남자들의 이마에 노비(奴婢)라는 글자를 새겨 도망가도 발각되기 쉽게 한다.


여자들은 매음굴이나 주인들의 성적인 노리개 대상으로 많이 나가기 때문에 몸에 상처를 내지 않는다. 그러나 단순 노동력을 원하는 구매자라면 원하는 대로 글자를 몸 어디에도 새겨 준다.


남자들에게 물을 뿌려 채찍질을 한다. 이마에 글자를 새기기 전에 힘을 빼 놓으려는 거다. 아무리 화적이라 하더라도 따로 떼어놓고 사방에서 채찍질 하는 통해, 당해낼 재간 없이 기력이 다할 때까지 맞아야 했다.



“이놈! 김의영 이놈! 네 놈을 가만두지 않을 테다!”



채찍질을 맞으며 김의영한테 꺽쇠가 울부짖는다.



“저 놈을 더욱 쳐라! 입에서 소리가 새어나오지 않도록 매우 쳐라!”



꺽쇠에게는 더욱 세찬 매질이 시작된다. 가죽으로 된 채찍이 그의 몸을 찢어 논다. 꺽쇠의 몸이 축 늘어지자 노비라는 글자가 이마에 인두로 새겨진다.


여자들이 있는 창고에 거란족 여인이 산통을 시작한다. 열 달이 되지 않았다고 하는데, 다시 노비가 된다는 충격적인 상황에 산모의 몸이 놀란 것이다. 그러나 문은 열리지 않는다.


산모의 자궁도 쉽게 열리지 않았다. 화적 아내들의 출산을 몇 번 도와주었던 덴년이의 손도 떨린다. 이렇게 난산은 처음인 것이다. 산모의 얼굴이 점점 노랗게 변해간다. 정신을 차리라고 뺨을 때리지만 숨이 넘어가는 소리가 심상치 않다.


드디어 문이 열리고 사내들이 들어온다. 거란족 여인을 살피더니 밖으로 끌고 나간다. 덴년이가 함께 붙어 있으려 했지만 도리어 발길질을 당해 한쪽으로 내동댕이쳐진다. 그렇게 얼마간 시간이 흐르는데 바깥에서 아기의 울음소리가 들린다. 화적의 아내들은 그제서야 가슴을 쓸어내리며 마음을 놓는다.


문이 열리며 사내들이 치마에 둘러싸인, 탯줄도 잘리지 않은 핏덩이 아기를 덴년이에게 넘긴다. 문이 열린 틈으로 치마가 벗겨져 널브러져 있는 거란족 여인이 보인다. 아마도 가망 없는 거란족 여인의 몸에 칼을 대어 아기를 끄집어냈으리라.......




*




윤서일행이 찾은 객주 집에서.......

항구에 도착한 윤서일행이 객주 집을 찾았지만 화적들은 이미 모두 떠난 뒤였다. 행선지를 남겼다는 김의영의 서찰은 백지였다. 심상치가 않다. 주인 말로는 조선에서 온 상인을 따라갔다고 하지만, 윤서일행이 오기 전에 쉽게 움직일 사람들이 아니다. 그러나 어디로 갔는지 흔적을 남기지 않았다. 더욱 수상하다.



꺽쇠와 덴년이가 임신한 여인을 노예로 사 들였다고 한다. 그것과 연관이 있을 것 같다. 진안에서 가장 큰 노예시장에서 사 왔다고 한다. 보증을 세워 닷 냥을 덜 지불하고 데려왔다고 한다. 윤서는 명나라 부잣집 여인으로 치장을 하고 막란과 바우와 함께 노예시장으로 향한다.


사람들이 노예들을 보기 위해 인산인해를 이룬다. 노예시장은 언제나 인기가 있다. 허우대가 좋은 남자들과 얼굴이 반반한 여자들은 값을 매기자마자 팔려 나간다. 윤서가 상인에게 임신부의 보증서를 찾는다.



“我是來向孕婦要保證的(임신한 여자의 보증서를 찾으러 왔다)”


“擔保人已經走了(이미 그 보증인이 찾아 갔다)”


“擔保人是誰?(보증인이 누군가?)”


“我不知道(모른다.)”



황금 닷 냥이나 되는 보증서이다. 보증인의 신원이 확실하지 않은 보증서는 받지 않는다. 노예상인은 그 놈과 한패인 것이다. 장이 파하기를 기다린다.


남은 노예들을 거두어들인다. 옷을 입히고 발목에 사슬을 채워 달구지에 밀어 넣는다. 노예 사육장으로 가면 감시가 더해져 기회를 잡기가 더욱 어려워진다.


인적이 없는 산길로 들어서자 바우가 물 한바가지를 들고 와 노예들에게 먹인다. 상인의 수하들이 달려들어 바우를 떼어 놓는다. 바우가 지랄하며 발광을 한다. 수하들과 싸움이 붙는다.


그 틈을 이용해 막란이 말에 탄 상인의 목을 잡아끈다. 수레 뒤에서 상인의 목혈을 눌러 기절시킨다. 수하들과 얽혀있는 바우에게 다가간다. 그를 둘러싼 수하들을 상인에게서 빼앗은 칼을 이용해 모두 베어 버린다.


노예들을 풀어주고 안에 상인을 가두어 놓는다. 잠시 눈을 떠 상황을 살피고 겁을 집어 먹는 상인에게 막란이가 칼을 이마에 대고 위협을 한다. 윤서의 물음에 화적들의 행선지를 쉽게 답한다. 막란은 상인의 이마에 인두가 아닌 칼로 노비(奴婢)라는 글자를 새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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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1 조선의 통역사는 첩자이다 NEW 59분 전 3 1 12쪽
70 그 바람이 신경이 쓰였습니다 24.09.16 5 0 11쪽
69 혼례를 했으니 우린 내외다 24.09.15 7 1 11쪽
68 저는 몰라요 24.09.14 12 0 12쪽
67 여인의 귀처럼 생긴 꽃은 24.09.13 8 1 11쪽
66 머리에 아주까리 기름을 바르면 24.09.12 10 1 12쪽
65 임금의 욕을 할 수 있는 세상을 만들어 봅시다 24.09.11 10 1 12쪽
64 64.화적과 의병의 차이 24.09.10 9 1 11쪽
63 개시(개똥) 누이 막심이 24.09.09 13 1 11쪽
62 짱돌만으로도 전쟁을 이길 수 있습니다 24.09.08 16 1 12쪽
61 망원경에서 보이는 것 24.09.07 12 1 13쪽
60 전쟁은 그런 것이다 24.09.06 15 1 12쪽
59 백정과 오랑캐 24.09.05 13 1 13쪽
58 #58.소금을 배에 옮겨라! 24.09.04 13 1 12쪽
57 王八! 24.09.03 14 0 12쪽
56 내 정체가 궁금하다 했습니까 24.09.02 18 1 12쪽
55 백년 된 잉어는 죽은 사람도 살릴 수 있다 24.09.01 16 1 12쪽
54 아홉 개의 돛을 가진 배가 필요 합니다 24.08.31 13 1 11쪽
53 무명(無名)이라 합니다. 더 이상 묻지 마세요 +1 24.08.30 19 1 12쪽
52 거리와 방향만 맞으면 됩니다 24.08.29 16 1 11쪽
51 내가 죽어야 한다면 죽겠다 24.08.28 14 1 12쪽
50 백호은침(白毫银针)이라는 백차(白茶)입니다 24.08.27 16 1 11쪽
49 구천 구백 구십 구 칸 24.08.26 17 1 11쪽
48 황주(荒酒)로 데워 만든 온주(溫酒)입니다 24.08.25 16 1 11쪽
47 한계란의 언니를 아십니까 24.08.24 15 0 12쪽
46 가을 햇살에 눈이 감긴다 24.08.23 14 0 11쪽
» 세상의 반이 사라진다는 것 24.08.22 13 0 11쪽
44 황금 열 냥으로 할 수 있는 일 24.08.21 18 0 12쪽
43 백성들아 알고 있나 막란의 처라는 걸 24.08.20 19 0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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