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나니의 아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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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종희
그림/삽화
윤종희
작품등록일 :
2024.07.23 08:31
최근연재일 :
2024.09.17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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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9.09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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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쪽

개시(개똥) 누이 막심이

DUMMY

황천고개 까지 꼬박 이틀이 걸린다. 산적의 행세를 하며 민란을 꿈꾸는 김철용에게 도움을 받으려는 것이다.


가을의 깊은 밤은 겨울 못지않게 찬바람이 매섭다. 장정들이야 워낙 이골이 나 견딜 수 있다지만 노인들과 아이들은 참기가 쉽지 않다. 화적 덕팔이가 이곳에서 멀지 않은 갑천이라는 곳에 옹기를 굽는 가마소로 가자고 한다.


그곳은 덕팔의 아내 남동생 내외가 마을과 떨어져 옹기를 만들며 살고 있는 곳이다. 덕팔이의 아내 막심이는 명나라로 오기 전 함박도라는 섬에서 관군들에 잡혀 죽임을 당한 여인이다.


덕팔과 그의 아들 둘은 그 일로 한동안 힘들게 지냈었다. 덕팔은 고통스러운 아내의 기억을 끄집어내어 남동생의 집으로 인도하는 것이다.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다. 힘든 여정에 모두 지쳐 있었고 어차피 날이 새면 남의 눈에 띄지 않게 산 속에 숨어 있어야 한다. 화적들은 걸음을 옮겨 갑천으로 향했다.


동이 트기 전 옹기 가마소에 도착했다. 덕팔의 아내 남동생은 누이를 닮았다. 얼굴은 소반(작은 상)처럼 둥글고 컸으며 아미 사이는 넓고 코는 메부리여서 영 볼품이 없다. 이름은 누가 지어 주었는지 가장 천박한 개시(개똥)라 했다. 그의 처는 입만 삐뚤어져 있었고 다른 곳은 괜찮다.


누이의 소식은 이미 들어 알고 있었다. 그 일로 관군들이 몇 차례 왔다 갔다고 한다. 이곳도 안전하지 않은 것이다. 밤이 되면 서둘러 길을 떠나야 한다.


옹기를 굽는 가마터는 언덕을 이용하여 백 척(30m)이 넘는 길이로 둥근 모양을 만들어 황토로 덮는다. 거기에 불을 넣어 옹기를 굽기 때문에 휴지기 가마굴은 화적들이 임시로 숨어 있기에 안성맞춤이다.



“죄송합니다. 옥수수와 감자가 전부입니다. 다른 가마의 남은 열로 급히 준비하느라 제대로 익었는지 모르겠습니다.”



개시와 그의 처가 가져온 솥 단지 안에는 김이 펄펄 나는 옥수수와 감자가 가득 들어 있었다. 사람이 배고플 때 먹을 걸 보면 눈이 뒤집힌다는 것을 처음 알았다.



“허락도 미처 구하지 못하고 불쑥 찾아와 죄송합니다.”



꺽쇠가 나서서 고마움을 표한다. 입에 침을 흘리며 윤서가 배고픔을 이기지 못해 솥단지에 손을 가져다 댄다.



“입에 맞는지 어서 맛을 보세요.”



개시가 윤서의 배고픔에 도움을 준다. 윤서가 눈이 뒤집혀 감자에 손을 대자마자 뜨거워 얼른 손을 뗀다. 꺽쇠가 미소를 지으며 손수 감자를 집어 껍질을 까 준다.



“많이 시장하셨을 겁니다. 어서 드세요.”


“아닙니다. 찬물도 위아래가 있는 법입니다. 아버님부터 시식을 하시면 저도 들겠습니다.”



마지못해 꺽쇠가 한 입을 베어 물자 윤서가 그제야 감자를 옷소매를 이용해 가져간다. 그러나 주위에 눈을 커다랗게 뜬 아이들이 그녀를 바라본다. 잠시 갈등하다 들고 있던 감자를 제일 작은 아이에게 넘겨준다.


작은 것에 만족하고 사는 화적들이다. 하얀 쌀밥과 고기가 아니더라도 주린 배를 채울 수 있고 어두컴컴한 가마굴이라도 몸을 뉘일 수 있으면 세상 부러울 것 없는 사람들이다.


윤서와 막란은 오랜만에 배를 채우고 다리를 뻗었다. 사람들은 가마굴에 눕자마자 잠이 들었다. 윤서도 막란의 팔을 베고 잠이 든다. 그렇게 얼마간 흘렀다. 잠결에 뒤척이다 보니 뭔가 허전하여 주위를 더듬는다. 막란이 보이지 않는다. 가마굴에 나와 주위를 살핀다.


덕팔과 개시 그리고 꺽쇠와 막란이가 무언가 심각한 말을 주고받는다. 윤서가 무의식적으로 그곳으로 향한다.



“서방님.......”


“덕팔의 형수님이 살아있답니다.”



죽은 줄 알았던 막심이가 살아있다는 소식이다. 화적의 가족을 잡으면 죽이는 것이 관례다. 아니 국법이다. 그래서 모두가 죽은 줄 알았던 것이다.


개시가 감추려 했다. 어차피 구하지 못할 것을 덕팔이와 화적들이 알면 마음만 아프다는 이유에서다. 그런데 막심이가 생각나 대성통곡을 하는 덕팔에게 개시가 얼떨결에 살아있다고 실토한 모양이다.



“부인 구해야 합니다. 죽었으면 모를까 살아있다는 것을 알고 모른 척 할 수는 없습니다.”


“우리를 잡기 위해 일부러 살려두었을 겁니다. 우리가 구하러 갈 줄 알고요.”


“설사 그렇다 해도 구해야 합니다. 형수님을 구하려다 열이 죽어 나가도 구하러 가야 합니다.”


“아버님 생각은 어떠신지요? 아버님의 결정에 따르겠습니다.”



윤서가 결정내릴 일이 아니다. 화적의 두령 꺽쇠의 일이다. 막심이의 목숨이 그의 선택에 달려 있다.



“덕팔의 처를 구하러 저와 덕팔이가 갈 것입니다. 여기 있는 식구들은 아씨와 막란이가 책임져 주세요. 그렇게 해 주시겠습니까?”



꺽쇠가 덕팔과 함께 단 두 명으로 막심이를 구하러 간다는 뜻이다.



“아비! 둘만 가는 것은 죽으러 가는 거야! 관청은 우리 오십이 가도 될까 말까 하다구!”


“아버님 저도 반대입니다. 승산 없는 행동은 안하느니만 못합니다.”


“우리가 조선 땅에 들어왔다는 사실은 여기 개시 내외만 알고 아직 아무도 모릅니다. 우리의 존재를 모르게 하기 위해서라도 둘만 움직이는 것이 낫습니다. 설사 잡히더라도 명나라에서 둘만 나왔다고 할 것입니다. 그러니 제 계획을 따라 주세요.”


“오늘 들은 이야깁니다. 서두를 일이 아닙니다.”


“곧 북풍한파가 몰아치는 겨울이 옵니다. 감옥소는 매 맞아 죽는 경우보다 겨울에 얼어 죽는 사람이 더 많습니다. 덕팔이 처는 누구보다 추위를 많이 타는 아낙입니다. 겨울이 오기 전에 구해내야 합니다.”



관청의 감옥은 바람을 막아줄 벽도... 몸을 덮어줄 이불도 없는 곳이다. 오로지 자신의 체온으로 겨울을 나야 한다. 그러기에 모진 고문에 죽는 죄인보다 얼어 죽는 사람이 더 많다.



“알겠습니다. 아버님 뜻대로 따를 것입니다. 그러나 막란 서방님도 데려가 주세요. 아버님이 잘못되시는 날에는 서방님도 괴로워 견디지 못할 것입니다. 곁에서 돕도록 허락해 주세요.”



윤서는 꺽쇠가 허락하든 안하든 막란이 따라갈 것을 알았다. 둘의 다툼을 미리 방지하자는 것도 있었으나 막란이의 능력을 믿었다. 그의 동물적인 본능은 항상 위기에서 빛을 발했다. 특히 궁궐에서 윤서를 구해 나올 때 막란의 순간적인 판단능력은 그녀를 감동시켰다. 그때 윤서는 생각했다. 이놈은 보통 놈이 아니구나 하고.......


윤서의 고집에 꺽쇠도 막란을 데리고 가는 것에 허락을 한다. 덕팔의 처남 개시도 합류를 해서 네 명이 의주에 있는 관청으로 향한다. ‘막심이 구하기’ 작전이 시작된 것이다.


막심이는 의주에 있는 관청에 있다. 명나라에서 넘어오면 의주가 제일 가깝기 때문에, 그녀의 소식을 빨리 접할 수 있어, 화적들을 함정에 쉽게 빠트리기 위해서다.


윤서는 날이 어두워지자 화적들을 데리고 황천고개로 향한다. 김철용을 만나기 위해서다. 그는 산적으로 위장하고 평등한 세상을 만들기 위해 민란을 일으키려 한다.


그라면 관군들에 쫒기고 갈 곳 없는 화적들을 받아들일 것이다. 동조하는 세력이 많고 같이 할 수 있는 사람들이 많을수록, 그의 꿈을 이루는데 한층 더 가까이 갈 수 있기 때문이다.




*




의주 관청에서.......

개시가 누이의 면접권을 얻어 막심이를 본다. 갇혀 있는 것은 알았지만 처음 대면한다. 화적의 가족은 원래 면회가 안 된다. 그러나 막심이는 예외다. 면접을 온 사람들의 뒤를 캐어 화적들의 은신처를 알아내려는 것이다. 개시는 이 함정에 스스로 빠졌다. 누이를 구하려면 어쩔 수 없다.



“누이 괜찮소? 살이 빠지니 산송장 같소.”



한쪽 벽에 엎드려 결박되어 누워 있는 자세가 이미 죽어 있는 사람 같다. 개시가 부르자 막심이가 고개를 돌려 겨우 그를 확인한다. 나장이 들어가 막심이에게 물려 있던 재갈을 풀어준다. 혀를 깨물어 자결하는 것을 방지하는 방법이다.



“오지 말아야 할 곳을 왔네....... 난 여기서 곧 죽을 몸이니 다시는 찾아오지 말게.”



개시를 보자 반가움보다 그가 처해질 두려움으로 막심이가 겨우 말한다.



“누이는 죽지 않소....... 내가 살게 만들 거요!”


“내가 살아있으면 다른 사람들이 위험해.......”



막심이를 미끼로 다른 화적을 잡아들이려 한다는 것을 그녀도 알았다. 그래서 기회를 봐 자결을 하려는 거였다. 그러나 강제로 돼지죽을 먹이고 언제나 재갈을 물려 기회가 없었다. 지금도 나장 하나가 떠나지 않고 막심이를 지켜보고 있다.



“다시 볼 날이 있을 거요 누이....... 다른 나쁜 마음먹지 말고 몸이나 잘 살피시오!”



희망을 주려 직접적인 말을 전하고 싶었으나 막심이의 자결을 감시하는 나장 때문에, 더는 깊은 말을 주고받지 못하고 자리에서 일어난다.



개시의 면회로 관청은 발칵 뒤집어졌다. 비록 누이와 동생 사이라 하지만 보통의 마음으로는 화적의 식구를 보지 않는 것이 불문율이다. 그런데도 보겠다고 찾아온 것이다. 개시를 통해 화적들의 은신처를 알아내야 한다. 의주 관찰사가 당장 개시를 잡아 추문을 한다.



“이놈! 저년의 잔당들이 어디에 있는지 당장 불어라!”


“단지 누이의 몸이 걱정되어 면접을 온 것뿐입니다.”



예상했던 일이다. 그러기에 죽기를 각오하고 누이를 찾은 것이다.



“여봐라 당장 이놈의 누이를 끌고 오너라!”



의주 관찰사는 최이척의 명을 받아 막심이를 데리고 있었고 그녀를 이용해 화적들을 잡아들여야 한다. 이 일이 잘되면 중앙관직으로 보직을 보장받을 수 있어 무슨 일이 있어도 해결해야 한다.


거의 반송장이 된 막심이를 끌고 와 개시 앞에 놓는다.



“당장 화적들의 은신처를 대지 않으면 네 놈 누이의 목을 베겠다. 이래도 불지 않겠느냐!”


“안됩니다! 내 누이를 살려주십시요!”


“다른 놈들의 목을 내 놓으면 네 놈들의 목숨은 살릴 것이다. 어서 말해 보거라!”


“사실 나와 같이 온 자들이 있습니다. 놈들 중에서 제일 칼을 잘 쓰는 자들입니다. 관군들 여럿이 붙어도 당해내지 못할 놈들입니다. 놈들이 무섭습니다. 우리 오누이를 보호해 주신다면 말 못할 이유도 없습니다.”


“놈들은 나라에서 언제든 죽이라는 어명이 떨어진 자들이다. 관청의 모든 힘을 쏟아 반드시 잡아 죽일 터이니 걱정 말고 놈들의 소재지를 말해 보거라!”


“놈들은 이곳 관청에 누이가 잡혀 있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먼저 누이를 비밀스러운 거처로 옮겨 주십시오. 그러면 빠짐없이 소상히 말할 것입니다.”


“여기는 개미 새끼 한 마리 들어올 수 없고 내 허락 없이는 죽어서도 나갈 수 없는 평안도 최고의 관청이다. 그만큼 관군들의 경계는 삼엄하니 놈들이 함부로 들어올 수가 없다.”


“이곳보다 열 배는 많은 수비대가 지키고 있는 한양의 궁궐도 마음대로 들락거리는 놈들이라 들었습니다. 언제 놈들이 들어와 배신한 우리 오누이의 목숨을 앗아갈지 모르는 일입니다. 부디 저의 부탁을 들어주세요.”


“알았다. 그래야 불안한 마음이 풀어진다면 네 말대로 하겠다. 여봐라! 어서 이 년을 가마에 태워 은밀히 내 보내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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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1 조선의 통역사는 첩자이다 NEW 50분 전 3 1 12쪽
70 그 바람이 신경이 쓰였습니다 24.09.16 5 0 11쪽
69 혼례를 했으니 우린 내외다 24.09.15 7 1 11쪽
68 저는 몰라요 24.09.14 12 0 12쪽
67 여인의 귀처럼 생긴 꽃은 24.09.13 8 1 11쪽
66 머리에 아주까리 기름을 바르면 24.09.12 10 1 12쪽
65 임금의 욕을 할 수 있는 세상을 만들어 봅시다 24.09.11 10 1 12쪽
64 64.화적과 의병의 차이 24.09.10 9 1 11쪽
» 개시(개똥) 누이 막심이 24.09.09 13 1 11쪽
62 짱돌만으로도 전쟁을 이길 수 있습니다 24.09.08 15 1 12쪽
61 망원경에서 보이는 것 24.09.07 11 1 13쪽
60 전쟁은 그런 것이다 24.09.06 15 1 12쪽
59 백정과 오랑캐 24.09.05 12 1 13쪽
58 #58.소금을 배에 옮겨라! 24.09.04 12 1 12쪽
57 王八! 24.09.03 13 0 12쪽
56 내 정체가 궁금하다 했습니까 24.09.02 17 1 12쪽
55 백년 된 잉어는 죽은 사람도 살릴 수 있다 24.09.01 15 1 12쪽
54 아홉 개의 돛을 가진 배가 필요 합니다 24.08.31 13 1 11쪽
53 무명(無名)이라 합니다. 더 이상 묻지 마세요 +1 24.08.30 18 1 12쪽
52 거리와 방향만 맞으면 됩니다 24.08.29 15 1 11쪽
51 내가 죽어야 한다면 죽겠다 24.08.28 14 1 12쪽
50 백호은침(白毫银针)이라는 백차(白茶)입니다 24.08.27 16 1 11쪽
49 구천 구백 구십 구 칸 24.08.26 16 1 11쪽
48 황주(荒酒)로 데워 만든 온주(溫酒)입니다 24.08.25 16 1 11쪽
47 한계란의 언니를 아십니까 24.08.24 15 0 12쪽
46 가을 햇살에 눈이 감긴다 24.08.23 14 0 11쪽
45 세상의 반이 사라진다는 것 24.08.22 12 0 11쪽
44 황금 열 냥으로 할 수 있는 일 24.08.21 17 0 12쪽
43 백성들아 알고 있나 막란의 처라는 걸 24.08.20 19 0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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