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나니의 아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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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종희
그림/삽화
윤종희
작품등록일 :
2024.07.23 08:31
최근연재일 :
2024.09.17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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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1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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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8,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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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29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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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쪽

거리와 방향만 맞으면 됩니다

DUMMY

윤서는 그때야 깨달았다. 서린이 좋아하고 그토록 마음에 두고 있던 사람이 환관 이동화였다는 것을.......


환관 이동화가 발버둥치며 서린에게 다가오려 한다. 호위무사가 제지하나 홍자성이 손짓으로 놔두라고 한다. 이동화가 다가와 피를 토하는 서린의 몸을 안는다.


죽어가며 이동화를 바라보는 서린의 눈이 슬프다. 홍자성도 숨을 헐떡이며 둘의 재회를 지켜본다. 이동화의 품에서 서린의 눈이 파르르 떨리면서 감긴다. 홍자성도 서린을 바라보면서 눈을 감는다.


홍자성은 윤서에게 차를 마시지 말라고 하는 서린의 손짓을 봤다. 독을 탄 것을 알았던 것이다. 그럼에도 그는 차를 마셨다. 서린과 함께 죽으려 작정한 것이다.


홍자성과 서린은 그렇게 세상을 떠났다. 홍혁진의 말에 의하면 서린은 한 순간도 환관 이동화를 잊은 적이 없다고 한다. 그러기에 홍자성이 서린을 붙잡아 놓을 수가 있었던 것이었다.


서린은 황궁에 있는 이동화를 살리기 위해 홍자성의 곁을 떠날 수 없었다. 처음에 동정으로 시작했던 홍혁진의 그녀에 대한 마음은 연민이 되었고 그 연민은 사모하는 마음으로 발전하게 된 것이다.


그러나 서린은 홍혁진의 마음을 받아줄 수 없었다. 그녀가 사랑하는 유일한 사람은 환관 이동화였기에......




*




이동화의 집.......

윤서가 이동화를 다시 만난 것은 서린의 장례를 치른지 이틀이 지난 후였다. 홍자성이 마련해 준 서린과 이동화의 집이었다. 홍자성은 서린을 이동화에게 보내려 했다. 남은 인생이라도 그녀가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살기를 바랬던 것이다.


그래서 차를 마시던 날 황궁에서 환관 이동화를 빼내려던 거였다. 그런데 마음과는 다르게 거친 말이 나왔고, 서린은 더 이상 참을 수 없어 이동화를 살리려 홍자성과 함께 독을 넣은 차를 마신 것이다.



“황궁은 이제 들어가지 않아도 됩니까?


“대인께서 황제에게 미리 손을 쓰셨나 봅니다. 이제 들어가고 싶어도 들어갈 수 없는 몸이 되었습니다.”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 대인은 서린 부인을 십여 년간 잡아 두었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갑자기 놓아줄 생각을 했는지요?”


“그 분만이 아실 겁니다. 아마도 망해가는 명나라와 함께 자신의 운명도 다했다는 생각이 들었을 겁니다. 홍자성 대인은 명이고 명은 곧 그 분이니까요.”


“서린 부인이....... 당신을 그렇게 잊지 못하고 있는 줄 어떻게 아셨는지요? 두 분의 만남도 없었고 주고받은 서찰도 없었다면서요?”


“몰랐습니다. 날 잊은 줄 알았습니다. 아니 잊기를 바랬습니다. 잊지 않은 걸 알았다면 벌써 자결을 해서 그녀를 놓아주었을 겁니다. 그런데 이젠....... 잊을 수 없게 만들어 놓아 자결도 하지 못하는 몸이 되었습니다. 먼저 떠난 서린이....... 한 없이 원망스럽습니다.”



윤서는 아무리 생각을 해도 이해를 할 수 없다. 어떻게 서로의 기억만으로 사모하는 마음이 한결 같을 수 있단 말인가? 남녀는 서로 껴안고 서로 말을 주고받으며 서로 걱정해 주는 사이가 진정한 연인관계다.



“조선으로 돌아갈 생각은 없는 겁니까?”


“서린이 묻혀 있는 집입니다. 여기서 남은 인생을 보낼 생각입니다.”



실제로 서린의 봉분을 집 안에 만들어 놨다. 살아남은 그는 평생 죽은 자를 그리워하며 청승맞게 이 집에서 지낼 것이다. 이동화에게 홍혁진의 이야기는 하지 않았다. 홍자성과 둘 만의 이야기로도 그에게는 벅찰 것 같아서다.


미친 어머니와 눈이 보이지 않는 아들 홍혁진은 남겨진 재물을 모두 처분하여 서역으로 간다고 한다. 모자의 치료를 위해서다. 그러나 광증과 소갈증을 세상 어디에도 치료할 수 있는 곳은 들은 바가 없다. 서린이 죽은 곳을 피해 보이지 않는 세상을 방황하러 떠나는 것이리라.


윤서와 막란도 화적들이 있는 곳을 향해 떠났다. 황제가 준 교지에는 그가 하사한 땅과 그곳에 정착하여 농토를 일구라는 어명이 적혀 있다. 이것만 있으면 아무리 조선에 있는 최이척이라도 홍자성이 죽고 없는 마당에 어쩌지는 못할 것이다.


또한 안보, 외교, 조세 등 모든 면에서 홍자성의 통제가 닿지 않은 분야가 없었는데, 특히 외교와 국방에서는 그의 영향력은 대단하여 그를 대신할 사람이 없다.


무능한 황제를 가진 명의 신하들은 오합집산이고 통일되지 못하는 정책 방향에 후금의 남하는 더욱 거세질 것이다. 조선은 더 이상 파병을 논하지 않아도 된다. 파병 조건으로 화적들의 강제송환을 요구했던 최이척의 입김은 약해질 것이다.


윤서와 막란은 명나라에서 새로운 인생을 살게 되었다. 화적들은 윤서가 마련해 준 땅에서 걱정 없이 곡식을 거두며 아이들을 돌보고 아낙들과 남은 인생을 보내게 된 것이다.



“서방님은 무엇을 하고 싶으십니까?”


“.......특별히 생각하고 있는 것은 없습니다.”


“전 사냥을 배우고 싶습니다.”


“부인은 피 보는 것을 싫어하시잖습니까?”


“처음에는 진저리를 쳤는데 지금은 목적이 정당하면 피도 볼 수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사냥을 배워서 뭐하게요?”


“이젠 서방님의 마누라가 되고 싶습니다.”


“사냥 같은 거 배우지 않아도 내 부인이십니다.”


“서린이라는 여인 결코 본받고 싶지 않은 여자입니다만 하나는 배울 점이 있더군요.”


“뭔데요? 얼굴 예쁜 거 빼 놓고 별루 던데.......”


“사랑하는 연인을 목숨 걸고 지키려 했던 거....... 저두 서방님이 만약 몸이 상하는 날이 오면 사냥이라도 해서 먹여 살려야 되지 않겠습니까?”


“차라리 논밭을 일구어 얌전히 농사나 지으시면 어떠십니까?”


“서방님은 아직도 제가 얌전히 농사나 지을 여자로 보이십니까?”


“.......”


“저는 암만 생각해도 제 성격에 사냥이 어울립니다.”


“부인이 사냥하면 저는 무엇을 하고요?”


“이 나라는 능력만 있으면 황제도 되는 나라입니다. 서방님은 다하지 못한 글공부나 하세요.”


“황제는 하기 싫습니다.”


“황제가 되라는 말이 아니잖습니까. 글자 안에 정보가 숨어 있습니다. 그 정보 때문에 사람들의 죽고 사는 문제가 달려있습니다.”


“그렇게 어려운 것은 싫어요. 난 그냥 부인하고 농사나 지으면서 살렵니다.”



차라리 막란처럼 단순하게 사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 그러나 사냥을 배우고 싶다는 윤서의 마음은 진정이었다. 사냥을 통해 칼과 화살을 배워 만일의 사태에 대비하고 싶다.


이곳은 타국이다. 같은 민족도 보호받지 못하는 나라다. 망해가는 나라다. 곧 후금에 복속되어 새로운 질서와 제도가 정착되는 과정에 이민족에게 어떤 위협을 할지 모른다.


역사상 새로운 나라가 건립이 되면 토착세력을 회유하기 위하여 이민족들을 억압하거나 내쫒아 그들의 기득권을 보호해 준다. 윤서는 그래서 막란의 도움 없이도 이 나라에서 생존할 수 있는 것을 찾는 것이다.



“서방님 저에게 사냥을 가르쳐 줄 수 있습니까?”


“간단합니다. 활은 거리와 방향만 맞으면 됩니다.”


“.......그렇게 간단히요? 그러면 칼은요?”


“칼은 정확하면 됩니다.”


“더 없습니까?”


“나머지는 의지입니다. 할 수 있다는 의지와 함께 각고의 노력이 필요합니다.”



막란은 윤서가 평생 피를 보지 않았으면 한다. 이제 위험한 고비는 다 넘긴 것 같은데, 왜 또 철없이 사냥 같은 위험한 것을 배우려 하는지 모르겠다. 누가 밥 먹여 달라고 했나?



“실전을 가르쳐 주세요. 어떤 부위가 급소이고 어느 정도 깊이로 찔러야 즉사하는지요?”


“짐승마다 다 틀려요. 사람도 사람마다 다 틀려요. 애기, 어린놈, 젊은 놈, 늙은 놈, 아낙네, 남정네, 과부, 과분 데 아니라고 우기는 년....... 등등”


“장난하지 마세요. 서방님 없을 때 제가 개죽음을 당해야 속 시원하시겠습니까?”


“저를 먹여 살리기 위해 사냥을 배우고 싶다 하지 않았나요?”


“만일을 위해섭니다. 조선에서 만리나 떨어진 명나라 땅입니다. 도처에 잔혹한 오랑케들이 득실거립니다. 제가 사냥이라도 배워야 안심하지 않겠습니까?”


“짐승을 대하는 것과 사람을 상대로 하는 것은 천지차입니다. 짐승은 동정할 수는 있어도 사람은 동정하면 자기가 죽습니다. 자신있어요? 사람을 감정 없이 칼로 벨 수 있겠습니까?”



막란이 사람의 목숨을 거둘 때, 왜 그렇게 얼굴이 굳어있었는지 이제야 알 것 같다. 막란은 감정이 메마른 사람이 아니었다. 오히려 누구보다 순박하고 정이 많은 사람이다. 윤서는 자신이 없다. 목숨을 끊는데 어떻게 감정을 없앨 수가 있단 말인가?



“서방님 저를 위하신다면 가르쳐 주세요....... 어떻게 해야 상대방을 마음에 두지 않고 지울 수가 있는지.......”


“......부인은 오래 걸리실 겁니다. 저는 어려서부터 많은 죽음을 봐 왔습니다. 어느 순간부터는 그것이 무디어 집니다. 그리고 어차피 해야 할 일이라면 빨리 해 치워야 상대방의 고통을 줄여줄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 다음 부터는 살생 하는 것이 쉬워지더군요.”


“저두....... 서방님처럼 되고 싶습니다. 속성으로 가르쳐 주세요.”



여리고 약한 윤서를 아무리 협박을 해도 통하지 않는다. 기회를 봐서 제풀에 지치게 만들어야겠다. 사람에게 칼을 쓰는 사람은 언젠가 다른 사람의 칼에 죽는다. 윤서만큼은 지켜주고 싶다.




*




화적들의 거처 객주 집에서.......

윤서와 막란을 목이 빠지게 기다렸던 화적들이다. 윤서가 황제에게서 받은 교지를 보고 어리둥절한다. 화적들 중에서 유일하게 글자를 알아보는 덴년이가 읽어보고 꺽쇠의 등짝을 때린다.



“꺽쇠야! 우리도 땅이 생겼다!”


“그 무슨 소리요 형수!”


“황제가 우리보고 여기 경작해서 마음대로 살래!”



화적들은 믿기지 않는 눈치다. 평생 자신의 이름으로 된 땅 하나 가져보지 못한 사람들이다. 비록 산 밑의 구릉지를 받았어도 논밭을 만들 수 있는 화적들만의 땅인 것이다.



“아씨 수고 하셨습니다. 어떻게 이런 큰일을 해 내셨습니까?”


“서방님의 도움이 없었으면 되지 않을 일이었습니다. 이젠 안심하시고 이 땅에 발을 딛고 살아도 뭐라 할 사람이 없습니다.”


“조선에서 온다는 군사들은 어떻게 되었습니까?”


“우리와는 상관없는 일입니다. 황제가 우리를 이 땅의 농부로 인정한 것이니 어디 떠날 일은 없을 것입니다.”



화적들은 땅을 가진 것도 기쁘지만 칼을 들 일이 없는 것을 알고는 더 기뻐했다. 평생 천민 신분에 억압과 착취를 당하다 어쩔 수 없이 화적이 된 사람들이다.


먹기 위해 남의 것을 약탈했고, 살기 위해 칼을 휘둘렀다. 식구들이 잡혀 죽임을 당할 위기에 처해도 다른 화적들의 목숨 때문에 구하지 못했다. 그러한 기억이 한이 되어 가슴에 응어리로 남았다.


진안수령이 찾아왔다. 홍자성의 죽음도 알고 있었고, 황제가 내린 교지의 내용도 알고 있었다.



“這個名字就被毀了。 皇帝的戒律在這裡不再適用。 你們只是在朝鮮犯下謀殺罪的罪犯。 你們被捕了。(명은 망했다. 황제의 어명은 여기서는 더 이상 통하지 않는다. 너희들은 조선에서 살인을 저지르고 온 범죄자들일뿐이다. 너희들을 체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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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1 조선의 통역사는 첩자이다 NEW 56분 전 3 1 12쪽
70 그 바람이 신경이 쓰였습니다 24.09.16 5 0 11쪽
69 혼례를 했으니 우린 내외다 24.09.15 7 1 11쪽
68 저는 몰라요 24.09.14 12 0 12쪽
67 여인의 귀처럼 생긴 꽃은 24.09.13 8 1 11쪽
66 머리에 아주까리 기름을 바르면 24.09.12 10 1 12쪽
65 임금의 욕을 할 수 있는 세상을 만들어 봅시다 24.09.11 10 1 12쪽
64 64.화적과 의병의 차이 24.09.10 9 1 11쪽
63 개시(개똥) 누이 막심이 24.09.09 13 1 11쪽
62 짱돌만으로도 전쟁을 이길 수 있습니다 24.09.08 15 1 12쪽
61 망원경에서 보이는 것 24.09.07 11 1 13쪽
60 전쟁은 그런 것이다 24.09.06 15 1 12쪽
59 백정과 오랑캐 24.09.05 13 1 13쪽
58 #58.소금을 배에 옮겨라! 24.09.04 13 1 12쪽
57 王八! 24.09.03 14 0 12쪽
56 내 정체가 궁금하다 했습니까 24.09.02 17 1 12쪽
55 백년 된 잉어는 죽은 사람도 살릴 수 있다 24.09.01 15 1 12쪽
54 아홉 개의 돛을 가진 배가 필요 합니다 24.08.31 13 1 11쪽
53 무명(無名)이라 합니다. 더 이상 묻지 마세요 +1 24.08.30 19 1 12쪽
» 거리와 방향만 맞으면 됩니다 24.08.29 16 1 11쪽
51 내가 죽어야 한다면 죽겠다 24.08.28 14 1 12쪽
50 백호은침(白毫银针)이라는 백차(白茶)입니다 24.08.27 16 1 11쪽
49 구천 구백 구십 구 칸 24.08.26 17 1 11쪽
48 황주(荒酒)로 데워 만든 온주(溫酒)입니다 24.08.25 16 1 11쪽
47 한계란의 언니를 아십니까 24.08.24 15 0 12쪽
46 가을 햇살에 눈이 감긴다 24.08.23 14 0 11쪽
45 세상의 반이 사라진다는 것 24.08.22 12 0 11쪽
44 황금 열 냥으로 할 수 있는 일 24.08.21 18 0 12쪽
43 백성들아 알고 있나 막란의 처라는 걸 24.08.20 19 0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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