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나니의 아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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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종희
그림/삽화
윤종희
작품등록일 :
2024.07.23 08:31
최근연재일 :
2024.09.17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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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26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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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쪽

구천 구백 구십 구 칸

DUMMY

“우리보고 홍자성을 죽여 달라는 부탁이죠?”


“대가는 여러분들의 목숨입니다.”


“우리의 처지를 알고 있습니까?”


“조선에서 온 화적 분들의 목숨을 살리려 천자를 만나겠다는 것이 아닙니까?”



서린은 윤서의 상황을 너무 잘 알고 있었다. 그러기에 협상을 통해 그녀의 요구를 관철하려는 것이다.



“천자를 만나게 해 주겠다는 겁니까?”


“여러분들의 목숨을 살려드리겠다는 뜻입니다.”


“어떻게요?”


“홍자성의 목숨만 거두면 됩니다. 그러면 여러분들의 목숨은 구하게 되는 것입니다.”



천자를 만나 굳이 화적들의 목숨을 구걸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다. 화적들을 최이척에게 넘겨준다는 것은 홍자성의 개인적인 협상이라고 하지만 그의 권력은 명과 조선의 조정에서 절대적인 힘을 갖고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조선의 군사는 명나라에서 원하는 것입니다. 홍자성을 죽여도 화적들을 보내라는 최이척의 부탁을 들어줄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명나라의 운명은 다했습니다. 조선에서 파병을 하든 안하든 곧 망국의 길로 접어들 것입니다.”



서린의 말이 사실이라면 조선에서 파병을 하지 말아야 한다. 망해가는 나라에 와서 젊은 사람들 만 명의 목숨을 잃을 필요가 없지 않은가.


홍자성은 이를 모를 리 없다. 그런데도 조선의 도움을 얻어 명나라의 생명줄을 연장시키려는 것은 그동안 쌓아 올렸던 권력과 명예 그리고 부 때문일 것이다.



“명나라는 신하들이 다 도망가서 그나마 외교를 할 수 있는 사람은 홍자성 하나입니다. 그 사람만 없애면 조선의 파병은 없을 것입니다.”


“천자를 만나게 해 주세요. 확인할 것이 있습니다.”


“궁에는 동생의 사람이 있습니다. 만나게 해 드리는 것은 어렵지 않으나 천자는 홍자성의 꼭두각시일 뿐입니다.”



홍자성과 십년을 같이 산 서린이다. 그런데 사랑하는 사람을 살리기 위해 갑자기 홍자성을 죽여 달라는 것이다. 사람을 좋아하면 눈깔이 획 돌아 그럴 수도 있지만, 지나온 세월이 너무 길다. 무슨 일이 있었고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궁에 들어가 확인해야겠다.



“홍자성을 죽이는 일은 어려운 일입니다. 그래서 저희에게 부탁한 것이겠지요. 신중을 기하려는 것뿐이니 천자를 만나게 해 주세요.”



“알겠습니다. 준비하겠습니다.”



서린이 자리에서 일어나자 윤서가 골똘히 생각한다. 이때 그녀를 건드리면 또 화내니 막란이가 얌전히 이부자리를 깐다. 막란은 더 이상 생각할 것이 없는데 윤서가 이상한 것이다. 홍자성만 죽이면 화적들도 살리고 조선의 파병도 물 건너 갈 것인데, 왜 이렇게 윤서는 머리를 싸매고 고민하는지 모르겠다.



“부인 그냥 콱 죽여 버립시다.”


“.......”


“나 먼저 자도 돼죠?”


“서방님!”


“아니 안 잘게요!”


“서방님은 나를 십년동안 보지 않아도 날 좋아할 수 있어요?”


“.......솔직히요?”


“솔직히 말씀하지 않으면....... 알죠? 내가 어떻게 할지?”


“난 그래도....... 부인을 좋아할 겁니다. 무지.......”


“난 자신이 없는데....... 내가 이상한 건가?”



윤서는 몸이 멀어지면 마음도 멀어진다는 생각을 가졌다. 그래서 막란에게 악착같이 붙어 있는 것이다. 서린이 사랑한다는 사람은 궁궐에 살고 있다고 한다.


그녀가 도망가면 홍자성이 사지를 잘라 놓는다고 했으니 아마도 천한 신분일 것이다. 그런 사람들은 궁에 한번 들어가면 죽어야 궁 밖으로 나올 수 있다.


서린도 순장당할 뻔 했으니 얼굴이 알려진 그녀는 궁 안으로 들어가지 못한다. 그러면 서로 십년동안 얼굴도 보지 못했을 텐데, 그런 사람을 위하여 자신의 목숨을 위험해지면서 까지 홍자성을 죽여 달라고 한다.


서린은 비록 첩이라고는 하지만 하인을 전부 물릴 정도로 이 집안에서 무시하지 못하는 존재인 것 같다. 정실부인의 얼굴도 보지 못했다.


조선도 마찬가지이지만 중국은 예를 중요시 하는 유교 국가이다. 손님이 찾아오면 정실부인이 맞이하는 것이 그 집안의 관례이다. 그런데 첩인 서린이 윤서를 상대한다. 즉 첩인 서린이 정실부인보다 서열이 위에 있다는 뜻이다.


막란은 코를 골며 자고 있다. 배부르고 등만 따뜻하면 근심 없는 사람이다. 윤서는 아무래도 오늘은 잠이 올 것 같지 않다. 방문을 열어 밖을 나와 본다. 오늘은 보름달이다. 정원을 지나 무작정 집 안을 걸어본다.


저만치 여인의 형상이 보인다. 누군지 모르지만 바위에 앉아 별구경하는 모습이 참 청승맞아 보인다. 가까이 가 보았다. 윤서를 보고 놀란다. 자세히 보니 나이가 든 여인이다. 혹시.......



“你是洪子成的妻子嗎?(홍자성대인의 부인되십니까?)”


“你是誰?(누구십니까?)”


“我叫崔潤瑞,來自朝鮮(조선에서 온 최윤서라 합니다.)”



하인 둘이 다가와 홍자성 부인을 데리고 사라진다. 짧은 시간에 벌어진 일이었다. 그러기에 더 이상의 대화는 하지 못했다.



“홍자성의 부인입니다.”



어느새 윤서 뒤에 서린이 와 있다.



“다리를 저시는 걸 보니 몸이 불편한 가 봅니다.”


“아들 둘이 있는데 그 중 하나를 후금과의 전장에서 얼마 전 잃으셨습니다. 그 충격으로 몸의 반을 쓰지 못하십니다.”



궁금증 하나가 풀리는 듯 했다. 그래서 서린이 정실부인의 노릇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다른 아드님은 무사하신 겁니까?”


“아직은.......”


“어디 계십니까 그 아드님은?”



서린의 말끝을 흐리는 모습이 불안하다.



“홍자성과 함께 있습니다.”


“아드님을 데리고 다닐 정도이면 남다른 애정이 있는 것 같습니다.”


“아닙니다. 하나 밖에 없는 그 아들도 홍자성이 죽음의 전쟁터로 내 몰려는 것입니다. 그래서 부인이 걱정하는 것이고요.”



어쩐지 정실부인이 슬퍼 보인다 했더니, 남은 아들도 잃게 될 까봐 그렇게 보였던 것이다.



“전쟁터에 간다고 해서 반드시 죽어 돌아오는 것은 아니지 않습니까?”


“홍자성은 패배를 인정하지 않아요. 전쟁에서 질 바에는 자결하라는 자이니까요.”



홍자성은 노비에서 시작해 명나라에서 최고 관직에 오른 사람이다. 실패와 포기를 모르는 사람이다. 그의 이면에는 이렇게 가족의 희생도 불사하는 잔혹한 성격이 숨어있었던 것이다.



“그럼 이번에도 하나 밖에 없는 아들을 전장에 두고 오는 것입니까?”


“.......그렇다고 들었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자식을 위해서 세상을 사는 것이 아닌 것 같다. 적어도 홍자성에게는 말이다. 그가 없어져야 이 집안의 여러 생명을 구할 것 같다.



“알겠습니다. 이 큰 집이 왜 이렇게 쓸쓸한지 알 것도 같습니다.”


“이젠 주무셔야 합니다. 날이 새면 할 일이 많습니다.”



뭔가 정리가 되는 것 같다. 오늘은 그래도 잠이 들것 같다.




*




명나라 황궁 안.......

환관을 따라 윤서가 막란과 함께 황제를 만났다. 황제는 윤서가 왔다는 소식은 이미 홍자성을 통해 알고 있었다. 그래서 윤서의 부탁 이전에 이미 만나고 싶어 했다고 한다. 어쩌면 그의 며느리가 되었을지도 모를 윤서이기에.......



“聽說朝鮮很冷。 這裡的天氣怎麼樣?(조선은 춥다고 들었다. 어떠냐 이곳의 날씨가?)”


“與朝鮮相比,這裡溫暖。(조선에 비해 이곳은 따뜻합니다.)”


“請與洪子成討論出兵朝鮮的事宜。 如果這就是你來這裡的目的。(조선의 파병은 홍자성하고 상의 하거라. 그 일로 온 것이라면.)”



“不。 我不是因為政治問題才來的。 這就是租地耕種。(아닙니다. 정치적인 문제 때문에 온 것이 아닙니다. 땅을 빌려 농사를 짓기 위함입니다.)”



이왕 온 김에 땅이나 왕창 얻어내어 화적들의 보금자리를 만들어 주고 싶었다. 황제도 마다하지 않을 것이다. 농부야 항상 부족한 일꾼이고, 농사를 지어 곡식을 얻는다면 세수도 확보되기 때문이다.



“有大量的農田。 做你想做的事。 但有人會種田嗎?(농토야 얼마든지 있다. 마음대로 하거라. 그런데 농사지을 사람은 있는 것이냐?)”


“從北韓帶來的人員約有二百人。(조선에서 데려온 이백 여명이 있습니다.)”


“我得到它。 你愛怎麼做就怎麼做。(알겠다. 너의 뜻대로 하거라.)”



사실 최이척하고 맺은 협상안 중에 화적들의 강제송환조건을 황제가 아는지 알려고 온 것이다. 황제는 모르고 있다. 그렇다면 홍자성만 죽이면 화적들은 무사할 수 있다는 뜻이다. 그 화적들을 농부로 사용한다고 미리 황제에게 이야기 해 놓는 것이다.



“請您簽發一份教學通知書,說我可以使用農地和從北韓帶來的人當農民嗎?(농토와 조선에서 데리고 온 사람들을 제가 농부로 써도 좋다는 교지를 내려 주실 수 있습니까?)”


“當然。 您好,請記下學校通訊。(물론이다. 여봐라 교지를 내려라.)”



황제는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은 병적으로 급히 서두른다는 소문을 서린에게서 들었다. 아마도 언제 죽을지 모르는 암살의 위협에서 생긴 버릇이리라.......


교지는 그 자리에서 작성이 되었다. 옆에서 막란이 이백 여명의 이름을 한자로 써 준다. 미리 막란을 잡아 화적들의 이름을 외우게 한 것이다. 막란은 땡깡은 부려도 윤서가 시키는 일은 곧잘 따라 한다.


막란이가 써 준 이름을 교지에 옮겨 적는 환관의 얼굴에 눈이 간다. 피부가 하얗고 이목구비가 뚜렷하여 여인이라 하여도 믿을 만큼 자태가 곱다. 막란과 비교하니 괜히 신경질이 난다. 애써 눈을 돌려 윤서는 궁금한 점을 황제에게 물어본다.



“說陛下,後晉的勢力很可怕。 你準備如何?(폐하 후금의 세력이 무섭다 들었습니다. 어떻게 대비하시는 지요?)”


“不用擔心。 聽說洪子成打敗了所有人。(염려할 것 없다. 홍자성이 모두 물리치고 있다)”



더 이상 황제 이놈에게는 들을 것이 없다. 서린이 말한 대로 허수아비 황제이다. 듣고 싶은 말만 듣고 하고 싶은 일만 하는 놈이다. 이러니 나라가 망할 수밖에.......


그래도 멍청한 황제 놈을 이용하여 전답을 얻을 수 있고 화적들의 목숨을 살릴 수 있다. 이제는 홍자성을 잡는 일만 남았다. 그리고 서린이 살리고 싶어 한다는 그 연인 놈의 행적만 파악하면 된다. 도대체 얼마나 잘 생겼기에 십년을 보지 못해도 잊지 못하고 있는지 얼굴을 보고 싶다.


황제에게 말해 궁궐 구경을 하고 싶다고 말했다. 그리고 환관들에게 홍자성 집에서 윤서와 꼽추 막란이 왔다고 궁 안에 소문을 내라고 했다. 그래야 서린의 연인이 어떡해서라도 알아보고 그녀에게 접근할 것이기에.......


남경의 궁은 규모가 어마어마하다. 듣기로는 정문에서 북문 끝까지의 거리가 십리 가까이 된다고 들었다. 칸수로는 구천 구백 구십 구 칸이라 하니 조선의 궁보다 열 배나 크다. 여기서 사람이 죽어나가도 모를 것 같다. 그래서 그렇게 황제가 독살되어 나갔나 보다.


황제에게 특별히 부탁해 시중은 따르지 못하게 했다. 막란과 여유롭게 돌아다니고 싶어서다. 오늘 다 보지 못하면 내일 또 오면 된다. 내일도 부족하면 그 다음날 오면 된다. 서린의 연인이 다가오기까지.......


궁궐의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다 막란이 오줌 마렵다며 뒷간을 찾는데 누군가 조심스럽게 다가온다.



“홍자성 대인의 댁에서 오셨습니까?”



황궁 안에서 조선말을 하는 사람을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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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1 조선의 통역사는 첩자이다 NEW 56분 전 3 1 12쪽
70 그 바람이 신경이 쓰였습니다 24.09.16 5 0 11쪽
69 혼례를 했으니 우린 내외다 24.09.15 7 1 11쪽
68 저는 몰라요 24.09.14 12 0 12쪽
67 여인의 귀처럼 생긴 꽃은 24.09.13 8 1 11쪽
66 머리에 아주까리 기름을 바르면 24.09.12 10 1 12쪽
65 임금의 욕을 할 수 있는 세상을 만들어 봅시다 24.09.11 10 1 12쪽
64 64.화적과 의병의 차이 24.09.10 9 1 11쪽
63 개시(개똥) 누이 막심이 24.09.09 13 1 11쪽
62 짱돌만으로도 전쟁을 이길 수 있습니다 24.09.08 15 1 12쪽
61 망원경에서 보이는 것 24.09.07 11 1 13쪽
60 전쟁은 그런 것이다 24.09.06 15 1 12쪽
59 백정과 오랑캐 24.09.05 13 1 13쪽
58 #58.소금을 배에 옮겨라! 24.09.04 13 1 12쪽
57 王八! 24.09.03 14 0 12쪽
56 내 정체가 궁금하다 했습니까 24.09.02 17 1 12쪽
55 백년 된 잉어는 죽은 사람도 살릴 수 있다 24.09.01 15 1 12쪽
54 아홉 개의 돛을 가진 배가 필요 합니다 24.08.31 13 1 11쪽
53 무명(無名)이라 합니다. 더 이상 묻지 마세요 +1 24.08.30 18 1 12쪽
52 거리와 방향만 맞으면 됩니다 24.08.29 15 1 11쪽
51 내가 죽어야 한다면 죽겠다 24.08.28 14 1 12쪽
50 백호은침(白毫银针)이라는 백차(白茶)입니다 24.08.27 16 1 11쪽
» 구천 구백 구십 구 칸 24.08.26 17 1 11쪽
48 황주(荒酒)로 데워 만든 온주(溫酒)입니다 24.08.25 16 1 11쪽
47 한계란의 언니를 아십니까 24.08.24 15 0 12쪽
46 가을 햇살에 눈이 감긴다 24.08.23 14 0 11쪽
45 세상의 반이 사라진다는 것 24.08.22 12 0 11쪽
44 황금 열 냥으로 할 수 있는 일 24.08.21 18 0 12쪽
43 백성들아 알고 있나 막란의 처라는 걸 24.08.20 19 0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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