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랙리스트가 EX급 검신이었다

무료웹소설 > 일반연재 > 현대판타지, 퓨전

새글

화롱
작품등록일 :
2024.07.23 19:01
최근연재일 :
2024.09.16 20:00
연재수 :
57 회
조회수 :
619,876
추천수 :
10,966
글자수 :
331,591

작성
24.08.10 22:55
조회
12,569
추천
228
글자
12쪽

헌터와 바다 (2)

DUMMY

"어휴, 더워 죽겠네."

"다듬을 파가 아직도 더 남았어? 나 팔 아파서 이제 더 못 하겠는데."

"벌써 그러면 어떡해? 이왕 벌린 일, 제대로 끝내야지."


방학동 수림 아파트 부녀회 모임이 열렸다.

오늘은 여름 더위로 인해 지친 단지 내 어르신들에게 삼계탕을 해 드리는 날이었기 때문이다.

회원들은 점심시간에 맞춰 노인정으로 음식을 배달해야 했기에, 아침부터 재료 손질을 하느라 바빴다.

아주머니들끼리 모였으니, 대화 주제는 뻔했다.

남편 얘기, 시댁 얘기, 그리고 자식 얘기다.


찰랑찰랑.


슬슬 시동을 걸 모양인지, 부녀회장인 진수 엄마가 슬쩍슬쩍 금팔찌를 흔들어 재꼈다.

옆에서 그것을 눈치챈 김 새댁이 진수 엄마에게 물었다.


"우와, 그거 순금이에요?"


진수 엄마는 천연덕스럽게 말을 받았다.


"응? 아, 이거. 우리 아들이이~. 이번에 변호사 시험 합격했다고 하나 사 준 거야. 당연히 순금이고."

"아드님 변호사 시험 합격하셨어요? 어유, 축하드려요."

"내가 축하받을 게 뭐 있나? 걔가 다 자기 할 일을 잘해서 그런걸."


'저거 또 시작이네.'

'변호사? 쩝, 부럽긴 하다.'


다른 회원들은 안 듣는 척하면서 다들 귀를 세우고 있었다.

회장도 그걸 아는지, 어깨를 좀 더 펴고 말했다.


"거기다, 이번에 한 번에 로펌에 들어갔잖아. 거기, 달성 그룹이랑도 제휴 맺었고 심지어 그 올림포스 길드랑도 일하는 곳이래."

"정말? 그러면 그 헤르메스도 직접 볼 수 있는 거야?"


유명인의 이름이 나오자, 회원들은 이제 앞다퉈 회장에게 질문을 퍼붓기 시작했다.

특히 방금 언급된 그 '헤르메스'는, 요즘 이들이 한창 '아들 삼고 싶은 사람'랭킹 탑 1위 정도에 드는 핫한 인물이었다.


'착하지, 예의 바르지, 실력 좋지, 얼굴 깔끔하지. 어디 하나 빠지는 게 없어 저 사람은.'


그에 대해선 늘 이런 평가가 따라붙었다.


"아직은 못 봤다는데, 이제 곧 보겠지. 그 사람이랑 계약도 진행할 거고."

"진수 엄마, 그럼 나 사인 좀!"

"나도!"

"다들 왜 이래? 나 우리 아들 부담 주는 거 싫어."


진수 엄마는 기분이 날아갈 듯 좋았다.

늘그막에 얻은 막둥이가 이렇게 효자 노릇을 톡톡히 해 주고 있으니까.

그렇게 한 차례 그녀가 원하던 자랑 타임을 끝낸 후.

진수 엄마는 오늘의 대미를 장식할 먹잇감을 찾았다.

원래 자랑이란, 비교 대상이 있어야 완성되는 법이니까.

그리고 그 격차는, 많으면 많을수록 좋다.


"남호 엄마는 요즘 어때?"

"예, 저요?"


'아오, 또 지랄이네. 저년.'


남호 엄마도 사실 속으론 할 말이 많았다.


'우리 아들이, 엉? 그 S급 게이트에 들어갔다가 온 사람이라고. 거기다 보상금 십억을 받았어. 너희 십억을 턱 안겨 준 자식 있어?'


이뿐인가.


'헤르메스? 참 나. 우리 아들이 거기 사람들하고 같이 싸웠다고. 올림포스에서 꽃다발이랑 한우 세트도 보냈다!'


라고 말하고 싶었다.

하지만 그녀는 잠깐의 자랑을 위해 아들을 곤란하게 만들고 싶지 않았다.


"남호야, 여기 기사에 네 이야긴 별로 없는 거 같아."

"내가 일부러 빼 달라고 한 거야. 여기저기 기사 나고 사람들이 알면 뭐 좋나? 괜히 돈 있는 거 소문만 나지."

"하긴, 네 말이 맞다. 우리 남호 그렇게 깊이 생각할 줄도 알고 대단하네!"

"아, 그런 애들한테 쓰는 말투는 쓰지 마."


아들을 떠올린 그녀가 조용히 미소 지었다.

그래, 다들 몰라주면 어때.

이렇게 정신 차리고 잘살고 있는 녀석인데.


"저야 뭐 잘 지내요. 남편도 하던 일 계속 꾸준히 하고 있고."

"남호는?"


진수 엄마의 물음에 옆에 있던 아줌마가 그녀의 어깨를 툭 쳤다.

그리곤 다 들리도록 말했다.


"아이, 남호는 그 용역 일 하잖아."

"아, 그랬구나. 미안."


뭐가 미안하다는 것인지.

마치 물어선 안 될 것을 물어본 양 저들끼리 쇼를 하는 게 남호 엄마는 그저 웃겼다.

전처럼 남호가 정신 못 차렸을 때였다면 마음이 찢어졌겠지만.

지금은 그래도 그 정도는 아니었다.

그래서 당당하게 그들에게 말했다.


"네. 용역 일도 하고 있고, 요즘엔 출입국 관리 부서에서 일하고 있어요."

"출입국?"

"그거 공무원 아냐?"

"남호는 헌터잖아? 혹시 그럼 협회에 들어가게 된 거야?"


협회라 함은, 공기업 수준이 아닌가.

의외의 소식에 사람들이 남호 엄마를 채근했고, 진수 엄마는 살짝 긴장했다.


"협회에서 보낸 거긴 하죠. 서해 근방에서 밀입국하는 녀석들을 잡는다나 봐요. 잠시긴 하지만."

"잠시?"

"네. 한 달 정도."

"아하."


그럼 그렇지.

맨날 엄마 속만 썩이던 녀석이 협회는 무슨.

진수 엄마가 온화한 얼굴로 말했다.


"나도 그런 거 들었어. 취업 안 되는 애들한테 정부에서 일 만들어 주는 거. 뭐, 가면 프린트 정도 하고 그런다더라."

"남호는 헌터니까, 사무 일은 안 하지 않을까?"

"어쨌든 고작 한 달 일할 거. 거기까지 가느라 힘들었겠다."


역시 남호네는 그대로였다.

그렇게 오늘의 목적을 모두 마친 진수 엄마와 부녀회원들이 다시 요리에 전념하려고 할 때.

벽에 걸린 작은 티비에서 뉴스 속보가 떴다.


"속보입니다! 금일 오전 여섯 시 반 경. 서해에서 일급 밀수 헌터와 국내 헌터의 전투가 있었습니다. 다행히 사망자는 없었으며, 전투를 치른 두 명만이 중상을 입어 병원으로 이송되었습니다. 다행히 우리나라 헌터의 생명에는 지장이 없다고 합니다. 김현아 기자가 현장에서 자세히 전달해 드리겠습니다."


'이게 무슨 소리야?'


서해, 헌터.

그냥 지나갈 수 없는 단어에 남호 엄마의 고개가 티비 쪽으로 홱 돌아갔다.


"네, 여기는 현장의 김현아입니다. 보시다시피, 이송이 모두 끝난 바다에는 이렇게 붉은 핏물만 번져 있습니다."


'피?'


남호 엄마의 걱정이 더욱 커졌다.


"오늘 오전, 이곳에서 밀입국 관리부 헌터와 일급 수배범이자 블랙리스트 헌터인 '백상아리'의 전투가 있었습니다. 그 백상아리는 무려 십 년 전 우리 해군을 공격했던 '서해 습격 사건'의 주범으로 알려져, 큰 충격을 주고 있습니다."


속보를 들은 회원들이 떠들기 시작했다.


"서해 습격이면 옛날 그 사건 아니야?"

"그래. 그놈이 이제 잡혔다네."

"세상에. 누군지 정말 큰일 했다. 큰일 했어."


그리고 다음엔.

사람들이 찍어 올린 전투 장면이 송출됐다.


촤아아악.


튀어 오르는 커다란 상어와 그 위에서 필사적으로 적을 찌르고 있는 한 남자.

이 영상은 사람들에게 큰 감명을 줬다.

어떤 사람들은 해당 영상을 밈으로 만들거나, 그림으로 그려 존경을 표하기도 했다.

멍하니 그 전투 과정을 보고 있던 회원들도 대한민국 국민인 만큼, 존경심과 고마움을 느꼈다.

그리고 누군가 남자의 얼굴을 크게 캡쳐한 사진이 나왔을 때.


"꺄아악!"


남호 엄마가 비명을 질렀다.


"왜, 왜 그래?"


사람들이 서둘러 그녀를 부축했다.

그리고 회원 중, 남호의 얼굴을 기억하는 한 사람이 외쳤다.


"저거, 남호잖아요."

"뭐?"


부녀회 회원들은 전부 멍하니 티비에 집중했다.

저게 그 녀석이라고?

자신들이 조금 전까지 비웃었던 백남호라고?


"백상아리는 인근 국가의 골칫거리였습니다. 이에 따라 우리 해상 경찰과 헌터들의 위상이 올라갔으며, 정부에서는 헌터 본인과 밀입국 관리소에 포상을 내릴 것이라 발표했습니다."


이후 뉴스에서는 이 사건에 대한 여파에 대해 계속 이야기했지만.

놀라 기함하기 직전인 남호 엄마에게는 잘 들리지 않았다.


***


"안녕하세요."

"네, 반갑습니다. 헌터 겁쟁이입니다."


올림포스 길드.

그 안에서 겁쟁이는 드디어 길드장 '카산드라'를 만났다.

사십 대 후반쯤 되어 보이는 그녀는, 단정한 정장을 갖춰 입고 있었다.

솔직히, 헌터라기보단 그냥 일반 회사의 사무원 같은 느낌이 들었다.


"반갑습니다. 길드장 카산드라입니다. 저번 S급 게이트에서 우리 길드원들을 구해주셨다고 들었어요. 그때의 일, 다시 한번 감사드립니다."


S급 헌터의 고개 숙인 인사에, 겁쟁이가 당황하며 손사래를 쳤다.


"아유, 아닙니다! 저는 별로 한 일도 없어요. 다 올림포스 분들하고 우리 조장이 한 일입니다."


그의 말에 카산드라가 싱긋 웃었다.


"겸손한 분이시네요. 그래도 그 난전에서 지시에 충실해 끝까지 싸운 건 칭찬받을 만한 일이에요."

"아, 감사합니다."


이렇게 엄청난 사람에게서 칭찬받은 것은 조장 이후 처음이기에.

겁쟁이의 얼굴이 살짝 붉어졌다.

그런 그를 보고 웃던 카산드라가 말했다.


"그럼, 오늘 왜 면담했는지는 알고 계시죠?"

"예. 제 잠재력을 보시고 새 헌터 네임을 정해 주실 거라 들었습니다."


카산드라의 능력은 '고위 탐색'이다.

이것은 접촉한 상대의 특성과 앞으로의 장래성을 엿보는 특성으로써.

주로 헌터들의 재능을 감별하는 데 쓰였다.

전투 능력은 좀 떨어지지만, 이 능력 덕에 그녀는 S급을 받을 수가 있었다.

소문에 의하면 그 협회에서도 종종 그녀에게 헌터의 능력과 관련한 자문을 구한다고.


"그러면 제가 머리에 잠시 손을 올려도 될까요?"

"네, 물론입니다."


S급 카산드라가 자기 잠재력을 봐 준다는 건 오히려 영광이었다.

그녀가 겁쟁이의 머리에 손을 올렸고.

눈을 감아 그의 내면을 관조했다.


'음, 그 실력보다는 내면이 아주 단단한 사람이야. 거기다, 커다란 정신적 지주가 자리잡고 있어.'


그녀는 상대가 앞으로 가질 능력을 속속들이 알 수 있는 건 아니었다.

다만, 그 끝이 어딘지 어떤 방향으로 흐를지만 '느낌적으로' 짐작할 뿐이다.

하지만 이것만으로도, 그녀는 최고의 '예언자' 칭호를 받았다.


"겁쟁이님, 고유 특성도 얻으시고 굉장하네요. 그 네임이 전혀 어울리지 않아요."

"하하, 그런가요."


슥.


예언을 끝낸 카산드라가 손을 내려놨다.

그녀가 살짝 상기된 얼굴로 말했다.


"곧게 뻗어나가는 쇠뇌가 보였어요. 그것을 꺾을 수 있는 건 당신의 약한 마음뿐입니다. 즉, 마음만 단단히 하신다면 누구도 당신의 활을 막을 수 없을 거예요."

"다행이네요!"

"당신의 새 네임은, '아폴론'으로 하죠."

"헉!"


그도 올림포스의 기본 규칙 같은 건 대충 알고 있었다.

그중 그리스·로마 신화에 나오는 주된 12신의 이름은 아무에게나 부여되지 않는다는 것도.

이건, 카산드라가 자신을 엄청나게 잘 쳐줬다는 뜻이다.


"제가 그런 이름을 받을 자격이 있을까요?"

"그럼요. 우리 길드에 좋은 사람이 들어왔군요. 그리고 앞으로도 계속 이 마음으로 정진한다면, 후에 헌터님의 소망을 이룰 수 있을 겁니다."


카산드라가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

그녀는 겁쟁이를 살펴보면서, 그의 마음 안에서 타오르는 욕망을 읽은 모양이었다.


"그건 좋은 일이네요."


현재 겁쟁이의 소망은 딱 하나였다.

자신이 목숨과 미래를 구원해 준 사람에게.

언젠가 목숨까진 아니어도, 그에 준하는 도움을 줄 수 있기를 바랐다.

그 사람은, 당연히 식칼 헌터인 백남호였고.


"누군가 아주 특별한 사람이 당신을 이끌어 줬군요."


그 말이 나오자, 겁쟁이의 눈이 반짝였다.


"네. 우리 조장이요. 그분은 정말 대단한 사람입니다."

"음, 확실히 그런 것 같기는 해요."


카산드라가 손가락으로 창밖을 가리켰다.

손가락이 가리키는 곳엔 빌딩 위에 서 있는 큰 전광판이 있었는데.

거기에 오늘의 뉴스 속보가 뜨고 있었다.


"어! 조장!"


전광판을 보고 있던 카산드라가 아쉽다는 듯 말했다.


"화면 너머로만 봤을 뿐인데도, 강대한 잠재력이 느껴지네요. 저분도 함께 오셨으면 정말 좋았을 텐데."


쩝.


그녀가 입맛을 다시며 이제 아폴론이 된 헌터에게 말했다.


"저분이 있는 곳이, 이 세상의 중심이 될 테니까."


작가의말

이번 회차는 연참입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3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블랙리스트가 EX급 검신이었다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공지 연재시간 : 오후 8시 정각으로 고정합니다. 24.08.13 7,496 0 -
57 극강의 비기 (4) NEW +3 3시간 전 815 48 12쪽
56 극강의 비기 (3) +2 24.09.15 2,694 88 12쪽
55 극강의 비기 (2) +2 24.09.14 3,484 101 12쪽
54 극강의 비기 (1) +4 24.09.13 3,876 111 14쪽
53 조우 (2) +4 24.09.12 4,159 113 13쪽
52 조우 (1) +3 24.09.11 4,518 115 12쪽
51 마인드 컨트롤러 +5 24.09.10 4,845 118 12쪽
50 일시적 동맹 +2 24.09.09 5,326 116 14쪽
49 쾌보 +3 24.09.08 5,675 143 12쪽
48 기선 제압 +3 24.09.07 5,909 150 13쪽
47 떠나기 전에 (2) +3 24.09.06 6,072 124 12쪽
46 떠나기 전에 (1) +2 24.09.05 6,345 125 13쪽
45 동상이몽 +2 24.09.04 6,624 138 12쪽
44 더블 플레이 +1 24.09.03 6,837 132 13쪽
43 험한 것 (3) +1 24.09.02 7,164 143 13쪽
42 험한 것 (2) +3 24.09.01 7,332 148 13쪽
41 험한 것 (1) +3 24.08.31 7,602 161 12쪽
40 업그레이드 +3 24.08.30 8,020 156 14쪽
39 대련 (2) +7 24.08.29 8,153 149 14쪽
38 대련 (1) +1 24.08.28 8,488 155 15쪽
37 S급 흡혈 원석 +4 24.08.27 8,634 152 12쪽
36 해외 파견 (2) +4 24.08.26 8,814 178 14쪽
35 해외 파견 (1) +2 24.08.25 9,176 157 14쪽
34 일격필살 (2) +3 24.08.24 9,280 171 13쪽
33 일격필살 (1) +2 24.08.23 9,535 175 14쪽
32 안녕, 나의 워라밸 +3 24.08.22 9,783 159 13쪽
31 엄청난 경력 +3 24.08.21 9,989 170 13쪽
30 고속 승진 (2) 24.08.20 10,319 173 13쪽
29 고속 승진 (1) +4 24.08.19 10,628 191 13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