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원상인이 너무 강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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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스더
작품등록일 :
2024.07.27 01:36
최근연재일 :
2024.08.21 2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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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08 2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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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풍의 기사

DUMMY


14.


“찾으셨다고 들었습니다. 성주님.”


똑똑. 짧은 노크음이 들리고, 성주. 아니 마탑주의 방으로 젊은 마법사가 들어섰다.


“...... 성주님?”


그러나 마법사의 입장에도 불구하고, 마탑주 에스피린은 여전히 고개를 돌리지 않고 바깥을 바라보고 있었다.


“자칼. 오랜만에 의뢰에요.”


여전히 고개는 깜깜한 밤의 레제논을 향한 채로, 에스피린이 나지막이 읊조렸다.


“또 무엇이 성주님의 심기를 건드렸습니까?”


자칼이라 불린 마법사는 왠지 지금 마탑주의 표정이 어떤지 알 것 같았다.


“아비드 헨케일. 기간은 그가 하얀 마녀를 만나기 전까지.”


그것으로 둘의 대화는 끝이였다.


자칼은 짧게 목례한 뒤, 유유히 마탑주의 방을 빠져나갔다.


소름 끼치는 미소를, 잔뜩 머금은 채로.


***


“레이나, 괜찮으십니까?”


마탑에서 빠져나온 아비드 일행은 에스피린이 알려준 하얀 마녀의 거처로 향하기로 했다.


“... 아무 문제 없어요. 그냥 좀 역겨운 걸 봤다고 생각하니 구토가 나올거같아서...”


하지만 계속 전진하기엔 척 봐도 레이나의 상태는 정상이 아니였다.


아무래도 충격이 큰 모양이였다.


“이게, 이게 맞는 걸까요? 분명히, 분명히 그 자는 알고 있었어요.”

“그 자라면 누굴...”

“단장. 나이카르 기사단장. 제가 믿고 따랐던 그 분은, 전염병의 근원을 알고도 가만히 있었어요.”


배신감이였다.


단순히 전염병의 주체가 청색 마탑이라는 사실 때문이 아니였다. 오랜 기간 보아온 환자들에 대한 동정심이 아니였다.


그보다 더한, 레이나의 상처에 불을 지핀 것은 바로 배신감이였다.


믿고 따랐던, 누구보다 동경했던 자의 추악한 진실은, 그녀의 마음을 산산조각 내버렸다.


“제가 기사가 되기로 결심한 그 날, 당시 전장에서 수많은 야만인들의 목을 베고 귀환하신 케스퍼 단장께서 해주신 말씀이 있었습니다.”


적풍의 기사 마르엘 케스퍼.


공화국에서 무소불위의 인기와 권력을 가진 최고의 기사 중 한명이자, 대륙 십강의 1인.


게다가 전 대륙에서 한 자리 숫자만이 있다는 전설의 소드마스터 중 1인.


이렇듯 수많은 수식언을 가진 기사였기에, 그는 수많은 기사들의 롤모델이였다. 물론 레이나도 마찬가지였고.


“기사에겐 긍지가 있아야 하고, 또한 평생토록 간직할 신념이 있어야 한다고요.”


수도나 대도시를 거점삼아 지키는 일부 기사단을 제외하면, 대부분의 기사들은 언제 죽을지도 모르는 피의 전장에서 일상을 보낸다.


특히나 재능이 없다면, 더더욱 그런 경향이 높았다. 물론 대부분의 기사들에겐 재능이 없었고.


그렇기에 케스퍼는 강조한 것이다.


아군의 피인지 적군의 피인지, 아군의 시체인지 적군의 시체인지 구분조차 되지 않는 전장에서.


평생토록 간직할 신념조차 없다면. 너무나 외롭고 비참하니까.


신념을 가졌다고 해서 전장에서 죽지 않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신념이 없다고 해서 전장에서 무조건 죽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면 왜 신념을 가져야 하는가?


“의미없는 죽음일지라도, 신념을 가진 채로 죽었다면 그건... 평생토록 신념을 잃지 않은 것과 다름 없다고 했었나요...”


자신의 죽음을 의미없는 죽음으로 생각하지 못하게 하기 위한, 특단의 조치였던 것이다.


실제로 저 말이 널리 퍼진 이후로, 웃는 얼굴로 전사한 기사들의 시체가 많아졌다고 하니...


죽음으로써 임무를 마친 기사들을 위로해줄 수 있는 최고의 방법이였던 것이다.


“그럼... 케스퍼는 자신이, 무슨 신념을 가졌다고 했습니까?”


......

레이나는 말하기를 주저했다.

하지만 곧 정신을 차리고 무거운 입을 열었다.


“정의. 라고 했습니다.”


크하하하-!


레이나가 ‘정의’라는 말을 내뱉자마자, 어딘가에서 웃음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아니, 착각이 아니였다.


눈깜짝할 새도 없이, 멀리 있던 저택의 지붕에서 누군가 그들의 앞으로 도약했다.


“역시, 잘 기억하고 있구나 레이나 프로스토!”

“다... 단장님?”


활활 따오르는 불꽃의 문장이 새겨진 갑옷을 입은 거대한 체구의 기사.


“그런데 말이지. 아무리 성녀의 부탁을 받았어도, 근무시간에 근무지를 이탈하면 쓰나?”


적풍의 기사. 수많은 기사들의 롤모델인 그가, 지금 아비드의 눈 앞에 있었다.


“그나저나, 옆에 귀공은 누구신지? 이 근방에선 처음 보는 얼굴인거 같은데.”

“... 당신도, 청색 마탑과 한 편입니까?”

“얼씨구. 질문은 내가 먼저 했는데? 그리고 한 편이면, 뭐 어쩌려고. 나 죽이려고?”


적풍의 기사의 눈에는 자신감이 있었다. 절대로 지지 않으리라는 자신감이.


적풍의 기사씩이나 되니 가질 수 있는 자신감이였다.


촤아악-!

적풍의 기사가 손짓했다. 그러자 거대한 해일이 덮치는 듯한 소음이 밀려왔다.


반응할 새도 없이 순식간에. 화염으로 만들어진 결계가 반경을 완전히 장악했다.


‘이런, 이건 또 무슨...’


그러나 화염의 결계를 펼친 적풍의 기사는 의외로 그들을 공격하지 않았다.


그저 조용히 허공을 응시하다가 시선을 내릴 뿐.


“... 레이나 프로스토.”


그는 나지막이, 아까와는 확연히 다른 분위기로 속삭였다.


크지 않은 목소리였지만, 아비드와 레이나에게는 충분히 들릴 정도로. 뚜렷하게.


“전장의 병사들이 널 ‘신성한 불꽃’이라 부르더군. 아는 바가 있나?”


그리곤 레이나에게 물었다.


아비드는 어째선지 그 대화에 끼면 안될 것 같다는 생각에, 눈치껏 입을 닫았다.


“아니요, 들어본 적 없습니다.”


그 대신 아비드는 적풍의 기사의 눈을 보았다.


아비드의 예상과는 다르게, 그의 눈에서는 여전히 신념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혼탁한 색이 전혀 없이 맑은 청색(靑色). 의지와 결의, 그리고 신념의 색이였다.


“역시 그런가. 그럼 그들이 널 감히 무어라 생각하는지도 모르겠군.”

“무슨 말씀이십니까...?”

“겁도 없는 모양인지. 감히 내가 버젓이 살아있는데 내 후계자 자리에 누가 올지 토론을 하고 있더군.”


적풍의 기사가 저런 말을 하는 의도가 무엇일까. 그 의도를 파악하는 데에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이 자리에 있는 모두가, 그 말의 의미를 알고 있었다.


“신성한 불꽃 레이나 프로스토, 상관으로써 명한다. 어떤 수단을 써도 좋으니, 나를 죽여라.”


그러고는 씩 웃었다. 더 이상 레이나도 얼타지 않았다. 이미 알고 있었으니까.


눈 앞의 붉은 기사는, 자신이 한 말을 절대 번복하지 않는다는 것을.


“거기 너, 보아하니 너도 검깨나 쓰는 것 같은데. 원한다면 협공해도 좋다.”


적풍의 기사는 아비드에게도 검을 꺼내기를 권유했다. 하지만 이번만큼은. 아비드도 검을 꺼낼 생각이 없었다.


“... 제가 낄 자리가 아닌 것 같은데요.”

“네가 없다면 레이나가 죽을수도 있을텐데.”

“그렇다면 그건 배드엔딩이겠죠. 저에겐 두 분의 이야기에 끼어들 권한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아비드는 외지인이였다. 그리고 그는 쓸데없이 남의 이야기에 참견하고 싶지는 않았다.


아비드 나름의 신념이였던 걸까.


“... 이상한 데서 신념을 가지고 있군. 뭐, 좋다. 그럼 정정당당히 겨뤄보자 레이나!”


호기롭게 웃은 적풍의 기사가 등에 메고 있던 두꺼운 장검을 꺼내 양손으로 잡았다.


츠바이헨더(Zweihänder).

그건 실로 무지막지한 크기의 양손검이였다.


그러나 그에 비해 레이나의 검은 짧고 얇았다.


레이피어(Raiper).

얇고 가벼운, 적들의 허를 찌르기 위한 한손검.


레이피어로는 철 갑옷은 뚫을 수조차 없었기에, 이 결투는 레이나가 압도적으로 불리해보였다.


“5번째 접전지로 향하시기 전, 기사단에 막 들어온 그 때의 저로 생각하시면 아무리 당신이라도 큰코 다치실겁니다.”


둘 사이의 거리는 어림잡아 약 10m. 그리 가깝지도, 그리 멀지도 않은 거리.


츠바이헨더를 휘두르면 바로 닿을 수 있을 정도의 거리였다.


‘시작됐군.’


선공은 적풍의 기사였다.


부웅-!


초인적인 힘으로 레이나를 향해 휘둘러지는 츠바이헨더.


‘맨몸으로 저 일격을 맞으면...’


백퍼센트 죽는다.


하지만 레이나는 간단히 일격을 피해낸 뒤 반격을 준비했다.


“단장님께서 그러셨습니다. 신념을 지키지 못하고 죽은 기사는 용서할 수 있어도, 살아서 신념을 포기한 기사는 죽어 마땅하다고.”


푸른 오오라.


레이나의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푸른 오오라가 피어올랐다.


그녀는 이 전투를 길게 끌 생각이 없었다.


“그러니, 신념을 저버린 당신은... 제 손으로 죽여드리겠습니다.”


원망과 회한, 슬픔이 가득 담긴 기사의 오러.


소드 마스터가 되기 위한 첫 단계라 일컬어지는 오러가, 그녀의 검에서부터 발산하고 있었다.


‘불이다. 불을 형상화했어!’


오러의 형상화(形象化).


역시 공화국 최고 기사단의 기사인 이유가 있었던 것이였다!


“오호. 한 걸음 더 내딛은 모양이구나. ‘경지’에.”


오러가 실린 검이 적풍의 기사의 몸에 닿을 때까지, 그는 더욱 더 크게 웃었다.


콰앙.

갑옷과 검이 부딪히며 난 굉음과 함께, 레이나의 오러는 흩어져버렸다.


“이런...!”


그리고-

순식간에, 육중한 크기의 양손검은 그녀의 갑옷을 찢어버렸다.


외마디의 비명조차 지르지 못하고.


단단한 금속으로 만들어졌던 레이나의 갑옷은 산산조각이 났다.


‘굉장한 위력이군. 저 자가 왜 적풍의 기사이라 불리는 지 알겠어.’


피바람의 적풍. 그리고 츠바이헨더에서 흘러나오는 붉은 불꽃.


전장에서 저런 것을 마주한다면, 눈 깜짝할 새도 없이 적풍에 휩쓸릴 것만 같았다.


“아직,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처절한 말투. 하지만 그녀의 의지만큼은 처절하지 않았다.


그녀는 떨리는 몸을 다시 바로세우고, 레이피어를 똑바로 쥐었다.


한 걸음.

두 걸음.

세 걸음.

......


레이나가 한 걸음을 내딛을 때마다, 둘의 거리는 점점 가까워져만 갔다.


츠바이헨더가 그녀의 옆구리에 닿았지만, 그럼에도 그녀는 굴하지 않고 걸음을 내딛었다.


‘저건... 대체 뭘 하는...’


레이나의 눈이 마침내 푸른 빛을 띄었다.


신념과 긍지가 아니였다.


상대할 수 없는 적을 꺾으려 했던 레이나의 굳건한 의지는, 불가능한 한계를 뛰어넘고 그 ‘위’에 닿았다.


“마, 마침내 도달했구나 레이나 프로스토!!”


처음이였다. 저 경지에 닿은 인간이, 전력을 내뿜는 모습을 보는 것은 아비드로써도.


적풍의 기사는 그 경지에 닿았지만 전력을 내지 않았다. 주 무기도 아닐뿐더러, 오러조차 발산하지 않았다.


하지만 레이나는 달랐다.


그녀는 이미 전력이였고, 그녀를 초월에 이르게 한 것은 굳건한 의지였다.


“...... 넌, 이제부터 적풍의 기사다.”


적풍의 기사. 아니 이제는 그 이름을 후대에 물려준 남자, 마르엘 케스퍼.


“레이나 프로스토.”


그것이 그 남자의 유언이였다.


서 걱 - !


무언가가 통째로 뚫리는 듯한 굉음과 함께, 마르엘 케스퍼의 상반신과 하반신이 분리되었다.


......


그리고 수 시간이 지난 후.


화염 결계가 걷힌 곳에서 아비드를 암살하러 온 자칼이 본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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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 긴 여정의 끝 24.08.16 18 0 13쪽
21 유인 작전 24.08.15 16 0 11쪽
20 수련 그 이후. 24.08.14 14 0 13쪽
19 서클을 연성하는 법 24.08.12 16 0 12쪽
18 폐관 24.08.11 14 0 11쪽
17 하얀 마녀 (2) 24.08.11 14 0 11쪽
16 동업자 계약 24.08.09 16 0 13쪽
» 적풍의 기사 24.08.08 23 0 11쪽
14 하얀 마녀 24.08.07 17 0 11쪽
13 인간성 24.08.06 16 0 12쪽
12 오랜 친우 24.08.05 19 0 13쪽
11 그만이 할 수 있는 것. 24.08.04 31 0 11쪽
10 당돌함 24.08.03 25 1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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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거래를 제안하고 싶습니다. 24.08.01 37 1 14쪽
7 태산을 넘어 흐르듯이 24.07.31 36 1 15쪽
6 개척자의 눈 24.07.30 44 1 12쪽
5 청색 마탑의 흉계 24.07.29 56 2 14쪽
4 새로운 세계 24.07.28 70 3 14쪽
3 [제 1장] - 영원의 반지 24.07.27 104 2 13쪽
2 [제 0장] - 서막 24.07.27 158 2 13쪽
1 프롤로그 24.07.27 208 6 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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