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겜의 스킬 줍는 방랑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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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정현파
작품등록일 :
2024.07.28 19: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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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02 2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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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 (2)

DUMMY

다음날 새벽. 출발 준비는 빠르게 이루어졌다.


아직 채 밝지 않은 어스름한 빛이 창문 너머로 비쳐오는 시간. 나는 가볍게 어깨를 돌리며 여관 이 층의 침실에서 아래로 걸어 내려왔다.


“푹신한 침대도 오늘로 끝이군.”

“하암. 저 친구도 일어났구만. 여기 수프 한 그릇만 더 가져다주쇼!”


두어 명의 용병들이 잡담을 나누고 있는 1층. 테이블에 앉은 나는 앞에 놓인 양파 수프를 천천히 떠먹었다.


거친 빵조각을 찢어 남은 수프까지 깨끗하게 닦아 먹은 후 밖에 나오자 벌써부터 분주하게 움직이는 크로딘의 뒷모습이 보였다.


“아, 카론. 일어나셨군요.”


크로딘이 장부를 들고 짐을 가득 실은 여러 대의 마차를 점검하는 사이, 용병들은 각자의 짐과 무장을 마지막으로 확인했다.


대도시 카블락까지 걸리는 이동 시간은 대략 이주. 다카리스 고원을 가로지르는 덕에 꽤 단축된 것이기는 했지만, 그리 짧다고 볼 수 있는 시간은 아니었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으면 좋겠네요.”


짐이 실린 부분의 고정장치를 손으로 흔들어 점검한 크로딘이 말했다. 일찍이 출발 준비를 마치고 뒤쪽에 서 있던 나는 고개를 살짝 기울이며 대답했다.


“뭐, 다카리스 고원을 지난다고 꼭 모두가 몬스터를 마주치는 것은 아니니. 그럴 수도 있을 겁니다.”


고원은 넓다. 아니, 넓다는 말로는 부족할 만큼 광활하다.


따라서 그곳을 돌아서 가려면 상당한 시간이 소요되기 때문에, 생각보다 많은 이들이 위험을 감수하고 고원의 일정 지역을 가로지르곤 한다.


그리고 그중에서 몬스터의 습격을 받는 경우는 대략 절반쯤. 이동 시간을 대폭 감소시킬 수 있다면 상인의 입장에서는 걸어볼 만한 확률이다.


“그런데 정말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으면 저를 포함한 용병들을 고용한 돈이 아깝지 않겠습니까.”

“하하. 그것도 그렇군요.”


크로딘이 고용한 용병의 수는 무려 일곱. 어제 여관에서 마주친 이들 이외에도 두세 명이 더 있었다.


나까지 포함하면 총 여덟. 20실버씩의 선금만 따져도 합하면 1골드가 넘는 금액이다.


“뭐, 그래도 좋은 게 좋은 것 아니겠습니까. 이만 출발하죠!”


뒤쪽에서 대기하고 있던 용병들에게 큰 소리로 소리친 크로딘은 마지막으로 발로 마차의 바퀴를 탁탁 쳐서 점검했다.


미래의 거상다운 꼼꼼함이었다.


***


흉흉한 소문이 가득한 다카리스 고원. 나를 비롯한 용병들은 두 무리로 나뉘어 짐마차 주변에서 주변을 경계한 채 걸음을 옮겼다.


“...”


딱히 나누어지는 대화는 없었지만 모두는 상당한 주의를 기울이고 있었다.


나무가 드문드문 자라난, 언뜻 보면 평화로워 보이는 고원의 어딘가에는 다양한 종류의 몬스터들이 서식하고 있었으니까.


하지만 크로딘의 바람이 통한 건지, 며칠 이동하는 동안은 별다른 위험이랄 게 없었다.


기껏해야 먼발치에서 몇 마리의 코볼트들이 이쪽을 노려보다가 사라지는 것 정도.


하기야. 열 명에 가까운 무장 인원과 마차 몇 대로 구성된 무리는 어지간한 몬스터들이 쉽게 달려들지 못할 규모이기는 했다.


아마 크로딘도 그 때문에 무리하면서까지 많은 수의 용병을 고용한 것이겠지.


하지만 물론, 나는 몬스터들의 습격이라는 건 당장 한 시간 뒤에도 언제든 일어날 수 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오늘은 이쯤에서 야영을 하죠.”


해가 진 직후. 우리는 적당한 곳에서 야영 준비를 마쳤다.


불을 피우고 따뜻한 음식이 들어가자 한결 풀어진 분위기. 우리는 수프를 요리하고 난 냄비를 물로 대충 헹군 뒤, 말린 허브를 넣고 끓인 차를 나누어 마셨다.


“카론이라고 했나? 자네가 산적들을 처리했다며.”


입가심, 혹은 양치 대용으로 쓰이는 차를 후루룩 마신 용병 한 명이 나를 흘끗 바라보며 말했다.


“아. 산적 두목의 모가지를 보자기에 싸서 가져왔다는데. 하하.”

“보기와는 다르게 꽤나 강단 있군그래.”


자연스럽게 이어진 대화. 용병들의 태도는 우호적이었다.


임무에 실력자가 끼어있다는 건 자신들의 생존 확률도 그만큼 올라간다는 뜻이었으니까.


“카론이라. 이름만 들어서는 어디 출신인지 모르겠군. 그 실력을 가지고 이 근방에서 활동했다면 내가 한 번쯤은 들어보았을 텐데.”

“말해도 모를걸. 여기서는 먼 곳이라.”


피식 웃으며 건넨 솔직한 대답. 말을 건넨 용병은 대수롭지 않게 어깨를 으쓱였다.


“그런가? 뭐, 그럼 어쨌든 꽤 많은 곳들을 돌아다녔겠군.”

“최근에는 디에타 평원을 지나왔지.”

“디에타 평원?”


마른 나뭇가지를 불 속에 휙 집어 던진 용병 한 명이 입을 열었다.


“거긴 케른 성과 그리 멀리 떨어지지 않은 곳이잖나. 그곳 영주가 전쟁광이라는 소문이 돌았었지.”

“나도 들은 것 같군. 그래도 그 근처 싸움은 거의 끝나간다던데. 듣자 하니 최근 한 전투에서 크게 패배한 모양이야.”


대화 주제는 자연스럽게 주변 정세로 옮겨갔다.


“아마 곧 중부도 시끄러워질 겁니다. 아시탄 왕국이 봉쇄령을 선언했거든요. 아직 거기를 빠져나오지 못한 상인들은 손해깨나 볼 겁니다.”


정보에 민감한 상인 크로딘도 대화에 끼어들어 이런저런 이야기를 늘어놓았다.


“빌라스크 공작이 휘하의 기사들을 소집하고 있다더군. 벌써 모인 기수들만 수십 명이라는 모양이야.”

“...허. 우리 같은 용병 나부랭이들이 낄 싸움이 아니로군. 그쪽으로는 얼씬도 하지 말아야겠어.”

“파체른의 철갑 기사단이 로크 강을 가로질렀다는 소문이 들리던데.”

나는 잠자코 그들의 대화를 들었다. 나름 유익한 정보들이었다.


과거에는 멋도 몰랐던 시절이라, 이맘때의 세세한 흐름은 내가 모르는 부분이 꽤 많았으니까.


물론 2, 3년 후의 결과는 잘 알고 있었지만.


곳곳에서 일어나는 크고 작은 전쟁들. 대륙은 지금과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혼란스러워진다.


그리고 그 틈을 타 문명 세계의 그림자에서 기어 나와 세상을 갉아먹는 각종 단체와 존재들까지.


어둡기만 한 결말을 향해 달려가는 세계.


하루 벌어 먹고살고 살아남기 바빴던 과거에는 알아도 감히 어떻게 해볼 도리가 없는 문제들이었다.


그러나.


‘이제는 다르지.’


나는 다양하게 오가는 용병들의 말을 들으며 차분히 생각을 정리했다.


그 이후에도 이어진 이런저런 이야기들과 함께 시간을 때운 우리는 곧 취침을 준비했고, 순번을 정해 불침번을 정한 후 모닥불의 크기를 살짝 줄였다.


얼마 지나지 않아 불침번을 제외한 모두가 잠든 밤. 주변은 조용했다.


“...”


하지만 나는 감고 있었던 눈을 천천히 떴다.


단순히 잠이 오지 않아서는 아니었다.


그보다는.


‘뭔가가 다가오고 있다.’


거의 직감에 가까운 불길함이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기사에게서 흡수한 후 한껏 예민해진 감각이 나에게 무언가를 이야기하고 있었다.


스윽. 천천히 일으킨 몸. 불침번을 서고 있던 용병이 그런 나를 발견하고는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음? 아직 그쪽 순서는 멀었는데.”

“쉿, 잠깐.”


어리둥절한 얼굴로 말을 거는 그에게 손을 들어 보인 나는 귀를 기울였다.


용병들이 코를 고는 소리와 모닥불이 타닥거리는 소리. 바람이 나뭇잎을 스치는 소리.


그리고.


육중한 무언가가 한껏 억누른 동작으로 풀을 밟으며 이쪽을 향해 다가오는 소리.


타닥. 빠르게 몸을 일으킨 나는 품속으로 손을 집어넣으며 근처에 놓여 있던 신호용 호각을 주워 들었다.


삐익─


날카로운 소리가 야영지에 울려 퍼짐과 동시에.


휘익. 내가 던진 단검이 허공을 갈랐다.


이전에 산적 두목에게서 흡수한 능력, 단검 던지기.


보다 강력한 내 힘과 합쳐진 능력은 산적 두목이 펼쳤던 것 이상의 위력을 내었다.


그리고 그 결과는.


“꿰엑!”


거북한 소리를 내며 쓰러지는 덩치. 그제야 어둠 속에서 뭔가가 다가오고 있었음을 알아차린 불침번이 큰 목소리로 소리쳤다.


“모, 몬스터다!”


이미 내가 힘껏 내지른 소리에 반쯤 일어나고 있던 용병들이 다급한 동작으로 각자의 무기를 집어 들었다.


그리고.


크아악. 소름끼치는 소리와 함께, 커다란 오크들이 야영지를 비추는 모닥불 바깥쪽으로 모습을 드러내었다.


***


오크는 가장 널리 알려져 있는 몬스터 중 하나다.


건장한 성인 남성보다 머리 서너 개는 큰 키. 터질듯한 근육으로 이루어진 신체.


그야말로 전투를 위해 태어난 존재라고 볼 수 있는 외형. 하지만 무엇보다 가장 경계해야 할 점은 그들의 흉폭하면서도 영악한 성향이었다.


“씨발. 오크다!”


다급한 외침. 빠르게 무장을 마친 용병들이 욕설을 내뱉으며 무기를 들어 올렸다.


어둠을 탄 급습. 사냥감을 노리는 맹수처럼 기척을 죽인 채 접근해온 오크의 수는 대략 스무 마리.


내가 한발 먼저 놈들의 접근을 알아차리지 못했다면 대부분이 제대로 싸워보지도 못하고 숨을 거두었을지도 모르는 숫자였다.


하지만 오히려, 가장 먼저 쓰러진 것은 내가 던진 단검에 맞은 선두의 오크. 이내 기습이 실패로 돌아갔다는 것을 인지한 오크들이 알아들을 수 없는 괴성을 내지르며 달려들었다.


나는 단검을 던진 뒤 빠르게 검을 뽑아 들며 앞쪽으로 달려갔다.


채앵─


모닥불의 불빛이 거의 닿지 않는 곳. 육중한 오크의 전투 도끼와 부딪힌 대검에서 불똥이 피어올랐다.


그그극. 쇠가 마찰하며 일으키는 소리. 하지만 힘겨루기는 길게 이어지지 않았다.


대검을 비스듬하게 긁어내린 내가 몸을 옆으로 비틀며 오크의 몸통을 베어버렸으니까.


꿰엑. 시끄러운 단말마와 함께 쓰러져 내린 오크의 시체. 나는 검을 다시금 똑바로 들어 올리며 주변을 빠르게 훑었다.


사방에서 들려오는 고함과 무기가 맞부딪히는 소리. 용병들이 각자 흩어진 곳에서 전투를 치르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하지만 내 시선을 사로잡은 건 다른 것이었다.


‘...!’


조금 떨어진 곳. 처음 내가 던진 단검에 맞아 쓰러진 녀석과 조금 전 검으로 베어버린 녀석.


두 구의 시체에서 희미한 빛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익숙한 빛. 나는 그것을 보며 옅은 헛웃음을 지었다.


아무래도, 힘의 흡수가 가능한 것은 사람의 시체뿐만이 아닌 모양이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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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9 수도 (5) +15 24.09.15 12,602 458 12쪽
48 수도 (4) +24 24.09.14 12,933 493 11쪽
47 수도 (3) +22 24.09.13 13,494 501 12쪽
46 수도 (2) +14 24.09.12 14,348 447 11쪽
45 수도 (1) +16 24.09.11 14,722 477 11쪽
44 흑마법사 +25 24.09.10 14,716 532 12쪽
43 수도의 감사관 +15 24.09.09 15,148 472 12쪽
42 들판의 배회자 (4) +10 24.09.08 15,515 473 12쪽
41 들판의 배회자 (3) +21 24.09.07 15,633 519 11쪽
40 들판의 배회자 (2) +21 24.09.06 16,134 494 11쪽
39 들판의 배회자 (1) +12 24.09.05 17,040 484 12쪽
38 영지전 (6) +18 24.09.04 16,759 558 13쪽
37 영지전 (5) +21 24.09.03 16,530 573 11쪽
36 영지전 (4) +13 24.09.02 16,984 521 12쪽
35 영지전 (3) +16 24.09.01 17,061 546 11쪽
34 영지전 (2) +16 24.08.31 17,413 534 12쪽
33 영지전 (1) +21 24.08.30 18,332 514 12쪽
32 숲의 거미 (2) +24 24.08.29 18,512 530 12쪽
31 숲의 거미 (1) +19 24.08.28 19,243 560 11쪽
30 복귀 +16 24.08.27 20,008 563 12쪽
29 대화 (3) +14 24.08.26 19,846 613 12쪽
28 대화 (2) +10 24.08.25 19,946 567 11쪽
27 대화 (1) +14 24.08.24 21,008 588 12쪽
26 기사의 자격 (3) +17 24.08.23 21,140 581 12쪽
25 기사의 자격 (2) +15 24.08.22 20,482 596 12쪽
24 기사의 자격 (1) +23 24.08.21 21,413 623 15쪽
23 지하 수로의 암살자 (3) +15 24.08.19 20,948 591 14쪽
22 지하 수로의 암살자 (2) +12 24.08.18 21,491 584 12쪽
21 지하 수로의 암살자 (1) +17 24.08.17 22,476 593 10쪽
20 베리드 용병단 (3) +13 24.08.16 22,101 628 11쪽
19 배리드 용병단 (2) +10 24.08.15 21,999 601 11쪽
18 베리드 용병단 (1) +10 24.08.14 22,984 609 11쪽
17 리베르 상회 (3) +11 24.08.13 23,188 621 11쪽
16 리베르 상회 (2) +12 24.08.12 23,603 622 10쪽
15 리베르 상회 (1) +14 24.08.12 25,085 608 11쪽
14 포겔스 마을 (2) +15 24.08.10 24,234 666 11쪽
13 포겔스 마을 (1) +16 24.08.09 25,194 663 11쪽
12 접촉 (2) +17 24.08.08 25,772 672 11쪽
11 접촉 (1) +8 24.08.07 25,542 664 11쪽
10 트롤 (3) +13 24.08.06 25,546 679 10쪽
9 트롤 (2) +12 24.08.05 25,545 708 10쪽
8 트롤 (1) +12 24.08.04 26,491 695 10쪽
7 대도시 카블락 +23 24.08.03 26,665 706 12쪽
» 이동 (2) +20 24.08.02 27,303 741 10쪽
5 이동 (1) +22 24.08.01 28,102 734 11쪽
4 마땅한 값 (2) +24 24.07.31 28,685 764 13쪽
3 마땅한 값 (1) +13 24.07.30 30,100 756 9쪽
2 기사 +23 24.07.29 32,235 771 10쪽
1 특전 +15 24.07.29 37,281 696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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